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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휴학만 해도 실패 간주, 연구자 실패하기 꺼려
우리나라의 연구개발(R&D) 과제 성공률은 얼마나 될까. 공식적인 통계는 집계하고 있지 않지만, 과학계는 R&D 과제의 성공률이 거의 100%에 육박한다고 보고 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이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과제의 성공률은 △2017년(98.8%) △2018년(99.2%) △2019년(98.8%) △2020년(99.7%) △2021년(99.2%)로 조사됐다. 한국연구재단이 관리하는 과제에서도 불성실 판정을 받은 비율이 거의 비슷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KAIST 실패연구소와 실패학회를 공동 주관한 학생 단체 ‘아이시스츠 카이스트(ICISTS KAIST)’의 김지환 회장은 “학생들은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완전히 패배했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다”며, “실패는 성공을 이루기 위한 시행을 늘려가는 과정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실제로는 학점 문제에 대한 부담이 가장 크고, 휴학조차 실패로 간주하는 학생들도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 연구소의 연구자나 직원들 역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조성호 KAIST 실패연구소장은 “아직 시도해보지 않은 것을 시도하면 시행착오가 따를 수밖에 없다”며, “논리적으로는 이해하지만 이를 실천에 옮기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 분위기 조성 및 과학자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려운 연구 시도하고, 실패학회 공동 개최 등 추진
그런데 최근 들어 과학계에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우선, 정부의 R&D 사업에서 변화가 감지된다. 한국연구재단 한계도전전략센터는 기존의 이산화탄소 포집·활용 기술에서 설비나 기술 개발 과정 중 또 다른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점을 간과한 문제를 인식하고, 탄소 순환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최영진 한계도전전략센터장은 “과학 분야에서는 실패를 단정 짓기 어렵고, 반대로 성공을 증명했다고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다”며, “(연구의 성공이냐, 실패냐뿐 아니라) 연구 중단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연구자들이 어려운 연구에 도전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과제가 중단되더라도 그 부산물을 활용하거나 후속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KAIST 실패연구소는 매년 개최해 온 실패학회를 4대 과학기술원 및 대덕연구개발특구 등으로 확대해 실패 문화를 널리 알릴 계획이다. 올해 학회에서는 다양한 기관들로부터 협력 제안이 들어오고 있어, 이를 어떻게 실현할지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조성호 소장은 “내년에는 실패학회를 4대 과학기술원으로 확장하거나 대덕특구 내 다른 기관들과 협력해 규모를 키우려 한다”며, “신용보증기금과 재도전·재창업 지원제도 개선을 위한 협력처럼, 실패 사례를 공유하고 도전과 성취를 장려하는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계는 이러한 변화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은 “누리호 1차 발사 당시 우리나라는 ‘미완의 성공’을 거뒀지만, 실패에도 자부심을 가지고 ‘과학 선진국’으로서의 태도를 보여줬다”며, “실패와 성공은 종이 한 장 차이로, 도전이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패는 중요한 경험”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