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덕질 20년 차’ 3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지인들 사이에서 가상(버추얼) 아이돌 전도사로 불린다. 만찢(만화책을 찢고 나온 듯한) 비주얼에 음악도 좋고, 열애설에 휘말리거나 사고 칠 우려가 없다 보니 마음 놓고 덕질(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파고드는 일)하기 좋다며 적극 권유하고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가상 아이돌을 왜 좋아하냐”고 핀잔을 줬던 A씨의 회사 동료들도 어느덧 함께 덕질하는 사이가 됐다는 후문이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가상 아이돌은 비주얼이 완성된 상태이기에 음악에만 집중하면 된다”며 “한눈팔지 않고 오직 팬들만 바라본다는 점에서 덕질하기 좋은 요건을 갖췄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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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아이돌 전성시대다. K팝(인간) 아이돌 못지않게 음원 성적, 음반 판매량 등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떨치고 있다. AI(인공지능), XR(혼합현실) 등 첨단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최근에는 가상 아이돌이 오프라인에서 팬미팅을 열고, 콘서트도 가능한 수준이 됐다.
반응도 뜨겁다. 플레이브는 지난 3일 발매한 미니 3집 ‘칼리고 파트1’으로 초동(발매 첫 일주일간 음반 판매량) 103만 8308장을 판매했다. 올해 보이그룹 최초이자 역대 가상 아이돌 최초의 초동 100만 장 돌파다. 대중성 척도인 음원차트에서도 활약이 대단하다. 타이틀곡 ‘대시’는 발매와 동시 주요 음원차트 1위에 올랐고, 발매 24시간 만에 누적 스트리밍 1100만을 돌파하면서 멜론에서 발매된 전체 앨범 중 24시간 최고 스트리밍 횟수를 보유한 밀리언스 앨범에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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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아이돌이 인기를 끌면서 광고계 러브콜도 쏟아지고 있다. 롯데마트·슈퍼는 지난해 빼빼로데이(11월 11일)를 앞두고 출시한 한정판 ‘플레이브 롯데 빼빼로’로 대박을 터트렸다. 점포 오픈 1시간 만에 준비 물량의 90%가 소진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추가 생산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하루 만에 완판됐다.
SM엔터테인먼트 소속 나이비스는 지난해 12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할리스의 홀리데이시즌 뮤즈로 발탁됐다. 나이비스가 홍보에 나선 ‘딸기는 파티 중’은 다양한 프로모션과 맞물리며 지난 시즌 홀케이크 대비 199% 수준의 높은 판매 성장세를 기록했다. 패러블엔터테인먼트 소속 이세계아이돌은 찜닭 전문 브랜드 두찜과의 컬래버 이벤트를 진행, 오픈런(매장 오픈 전 줄을 서는 행위) 매진을 기록했다.
엔터업계 관계자는 “가상 아이돌은 인적 리스크에서 자유롭고, 시공간의 제약도 없어 확장성도 좋다”며 “향후 음악, 광고, 메타버스 등 다방면 활약이 기대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