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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8월 1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걸프전’ 발발 직전에 CIA 본부 인근에서 피자 가게를 운영하던 프랭크 믹스는 황당한 일을 겪습니다. 심야 시간에 느닷없이 CIA가 21개의 피자를 주문한 것입니다. 심야 시간에 이런 주문을 받는 것이 처음이었던 피자 가게 주인은 이를 언론에 이야기했고, 미 언론에서는 앞다퉈 이 에피소드를 다뤘습니다. 그 누구보다 ‘피자 배달부’가 무언가 수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 재미있는 소재였을 겁니다.
걸프전 상황이 악화되며 결국 미국이 이라크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한 1991년 1월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미국은 ‘사막의 폭풍’ 작전을 시행하며 공습을 시작했는데, 매일 3건 정도의 주문만 있던 펜타곤 인근 매장에서 101개의 주문이 쏟아져나왔다고 합니다. 백악관 인근 피자집에서도 새벽 시간대에 55개 주문이 밀렸죠.
지난 13일 이스라엘이 이란에 기습 공습을 단행했을 때도 펜타곤 피자 리포트는 무언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이달 들어 펜타곤 피자 리포트는 드문드문 게시글을 올리다가, 13일에 “펜타곤 인근 피자집들이 붐비고 있다”는 게시글을 연달아 올렸습니다. 그리고 1시간 뒤, 이란 공영 방송에서 이스라엘의 공습을 발표했죠. 이날 펜타곤 인근 도미노피자는 마감 시간 직전까지 엄청나게 붐볐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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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어디까지나 ‘피자 가설’은 검증되지 않은 가설일 뿐입니다. 펜타곤이 야근을 하며 바쁘게 돌아가면 저녁 식사로 피자 주문을 시킬 수 있지만, 이를 ‘인과관계’로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는 게 주된 시각입니다. 미 국방부에서도 펜타곤 내부에 피자를 팔고 있다며 이러한 ‘피자 가설’을 부인한 적이 있습니다.
한편, 한국에서도 배달 정보를 근거로 의미있는 다른 정보를 도출하는 일은 종종 있는데요. 최근 건진법사 의혹을 추적하는 검찰은 주요 인물들의 실거주지 확인을 위해 ‘배달 앱’ 사용 내역을 압수 대상 목록에 포함해 화제가 됐습니다.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요기요 등 국내 배달앱 사용자는 매달 3700만명 이상인데, 국민 10명 중 7명이 사용할만큼 일상적인 앱이기 때문입니다. 단순 휴대전화 추적은 당사자가 꺼버리면 무용지물이지만, 배달 앱이 가리키는 정보는 사용자가 직접 입력하는 ‘유용한 정보’기 때문이죠. 아무튼 세계 정세를 읽는 방법은 거창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동네 피자집 주문표가 가장 빠른 뉴스가 될 수도 있는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