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 많이, 콩 많이"…경쟁하며 송편 빚고, 전 부치던 부엌[응답하라 9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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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종류 전부터 푸짐한 갈비찜까지 간편하게
변화한 차례상…고물가·잔반 부담스러워
"며칠 전부터 모여 북적북적 음식하던 때 그립기도"
  • 등록 2025-10-05 오후 1:30:15

    수정 2025-10-05 오후 1:30:15

90년대만 해도 명절 마다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이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제기차기를 하거나, 목욕탕을 가거나 하는 모습들이죠.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고 새로운 문화들이 이를 대체하면서 많은 풍경들이 변했습니다. 명절을 맞아 조금은 희미해진 추억을 다시 꺼내보며 이야기를 나눠보시면 어떨까요.

[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집집마다 전 부치는 기름 냄새가 퍼지면 ‘명절이구나’ 했죠.”

90년대엔 명절이 다가오면 전통시장과 슈퍼마켓을 돌아다니며 장을 보고, 명절 전날엔 다같이 모여 전을 부치고 음식을 하는 풍경이 보통이었다. 음식을 하는 공간에는 항상 어린 아이들이 와글와글 모여 음식이 완성되기도 손으로 집어먹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가스레인지 위 냄비에선 큰 고기 덩어리가 익어가고, 큰 보온 밥솥에선 식혜 밥알이 동동 떠올랐다. 부엌과 거실에 놓인 큰 전기팬엔 가지각색 전이 끊임없이 올랐다. ‘명절’ 하면 이처럼 음식을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이 가장 대표적이었다.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판매 중인 송편. (사진= 연합뉴스)


하지만 명절 상차림을 직접 준비하기보단 간편식을 이용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점차 이 같은 풍경이 사라지게 됐다. 몇 날 며칠, 몇 시간씩 음식을 만드는 고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간편하게 나온 음식으로 명절을 보내는 것이 효율과 시간을 모두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을 하는 시간과 공간이 없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족이 다 함께 모이는 일은 줄어들게 됐다.

식탁을 덮친 고물가도 이 같은 분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풍성한 차례상을 차리기에는 주머니 사정이 부담스러워진 가정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홀로 추석을 보내는 1인 가구까지 늘어나면서 90년대 명절에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은 점차 추억으로만 남게 됐다. 실제로 이 같은 현상은 다양한 설문조사에서도 두드러진다.

롯데멤버스 자체 리서치 플랫폼 ‘라임(Lime)’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8월 28~29일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차례를 지내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자는 절반을 넘은 64.8%를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16.4%p 증가한 수치다.

차례를 지낸다고 응답한 이들 중 67.6%는 ‘온 가족이 모여 차례 음식을 직접 만들 예정’이라고 했지만 ‘각자 집에서 차례 음식을 만들어 올 예정’(23.9%)이거나 ‘시중에 판매하는 차례 음식을 살 예정’(8.5%)라는 답변도 적지 않았다.

예전엔 갈비찜, 탕국, 전, 나물 등 손이 많이 가는 명절 음식을 대부분 직접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상품과 방식이 많이 알려졌다.

예를 들면 포장을 뜯어 기름에 그대로 부치기만 하는 각종 냉동 전 상품이 나왔고, 갈비찜과 반찬 등도 전문점에 얼마든지 배달시킬 수 있게 됐다. 간편식으로 나온 상품의 질이 발전하면서 ‘제사 음식은 정성’이라고 고집하던 집안 내 큰 어른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주부인 이모(56)씨는 “옛날엔 동그랑땡만 해도 다진 고기에 야채, 계란을 넣고 반죽해 직접 하나하나 빚어 부쳤고 나물도 하나하나 다 무쳐 며칠씩 준비해야 했다”며 “제사 음식은 정성이라지만 최근엔 어떤 간편식을 사도 다 너무 맛있고 모양도 예쁘고 부족함이 없어 세상 참 편해졌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추석을 상징하는 송편도 마찬가지다. 이전엔 집에서 찹쌀가루를 익반죽해 송편을 빚고 솔잎과 함께 쪄먹었다. 그러나 요즘엔 대부분 떡집에 주문을 넣거나 마트에서 소량씩 사먹는다. 직장인 김모(32)씨는 “사촌들이랑 송편을 빚으면서 속에 ‘깨’를 넣냐, ‘콩’을 넣냐로 소소하게 실랑이를 벌이며 경쟁하기도 했다”며 “송편을 빚어본 지도 20년이 훌쩍 넘은 것 같은데, 추석 때 떡집 앞을 지나면 송편을 빚던 추억이 생각난다”고 미소지었다.

이전엔 명절의 ‘풍성함’이 덕목이었지만 지금은 명절 때마다 치솟는 과일값, 야채값에 대한 부담으로 제수과일을 최소한으로 구입하며 차례상을 간소화하는 집안도 많다. 최근엔 잔반을 줄이자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다. 명절의 풍족함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먹지 않는 음식을 상에 올리지 않는 말자는 효율성 취지다. 전 찌개 등 명절 후 남은 음식을 ‘재탕’해 먹는 것을 소소한 별미로 여기기도 했지만 이도 많이 사라졌다.

이러한 변화로 ‘명절증후군’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긍적적인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변화하는 명절 문화에 아쉽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지금은 가족과 친척들이 명절에 모이지 않는 경우도 허다해 다같이 모여 음식을 나누는 ‘명절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는 아쉬움이다.

젊은 세대는 명절 연휴에 가족끼리 여행을 가거나, 개인을 위한 재충전 시간을 보내는 것을 선호하기도 한다. 실제 이번 추석 연휴는 최장 열흘로, 가족을 만나기보다 여행을 가는 이들도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추석 연휴 계획을 묻는 질문에 ‘여행을 떠날 예정’이라는 응답자가 47.4%로 가장 많았다.

장거리 운전이나, 기차 티켓팅을 감수하기보단 혼자 명절을 보내는 ‘혼추족’들도 있다. 1일 혼삶레터가 2030 특화 리서치 플랫폼 픽플리와 함께 1인가구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3명 중 1명은 추석 연휴에 이동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답했다. 이들은 가족들과 함께 만든 음식이 아니라 전과 불고기가 담긴 편의점 도시락을 먹으며 명절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 명절 연휴 편의점 간편식 매출은 매년 증가하는데, CU의 최근 3년간 명절 연휴 기간 도시락의 전년 대비 매출 신장률을 보면 2022년 13.4%, 2023년 18.5%, 지난해 20.8%로 꾸준히 늘고 있다.

60대 주부 김모씨는 “전처럼 바리바리 음식을 해서 가져가거나, 시댁에 가서 음식을 하진 않고 자식들과 며칠씩 여행을 가는 명절을 보내고 있다”며 “지금도 행복하지만, 가끔은 옛날에 옆에서 전을 집어 먹던 자식들이 생각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명절엔 자식들이 바쁘다고 집에 내려오지 않는데, 그럴 땐 북적북적하던 옛 명절이 생각나긴 한다”며 “어떤 명절이든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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