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권등기를 해두면, 이사를 가더라도 기존의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이 그대로 유지된다. 그래서 많은 임차인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일단 임차권등기명령부터 신청하고 이사 갈 집을 알아본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언제 이사하는 것이 안전할까? 법원에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한 직후일까, 아니면 등기사항증명서(등기부등본)에 임차권등기가 ‘기입’된 것을 확인한 후일까?
이 사소해 보이는 시간 차이가 수천만원, 혹은 전 재산일 수 있는 보증금의 운명을 가를 수 있다. 최근 바로 이 쟁점에 대해 하급심과 다른 판단을 내린 의미 있는 대법원 판결(2024다326398)이 있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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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계약 만료 후 A씨는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결국 A씨는 보증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고 보험사는 A씨를 대신해 2019년 3월 법원에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보험사는 4월 5일 A씨에게 보증금 전액을 지급했고 A씨는 그날 바로 이사를 갔다. 그런데 법원의 임차권등기명령에 따른 등기는 그로부터 3일 뒤인 4월 8일에야 등기사항증명서에 기입이 완료되었다.
1심과 2심 법원은 보험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한 이상 행정 절차상 등기 완료까지 시간이 걸리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임차인의 대항력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보았다. 즉, 낙찰자 C씨가 남은 보증금을 반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상식적으로 충분히 수긍이 가는 판결이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냉정하고 단호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대법원은 1·2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대법원의 논리는 명확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대항력의 핵심 요건은 ‘점유(거주)’와 ‘주민등록’이다. 이 두 가지 요건은 대항력을 처음 취득할 때뿐만 아니라 유지하기 위해서도 ‘계속’ 존속하고 있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A씨(보험사)의 임차권 순위는 2018년에 설정된 후순위 근저당권보다 뒤로 밀려나게 되었다. 경매에서 선순위 근저당권이 소멸하면 그보다 후순위인 임차권도 함께 소멸하므로 낙찰자 C씨는 보증금 반환 의무를 승계하지 않는다는 것이 대법원의 최종 결론이다.
이 판결은 임차권등기 절차를 밟고 있는 수많은 임차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준다. 보증금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보루인 임차권등기, 그 효력은 ‘신청’한 때가 아니라 사항증명서에 ‘등기’된 때부터 발생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따라서 임대인에게 보증금을 받지 못해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했다면 절대로 성급하게 이사해서는 안 된다. 법원에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인터넷등기소 등을 통해 등기사항증명서를 직접 열람하여 임차권등기가 ‘완료’된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후에 짐을 빼야 한다. 보통 신청 후 등기 완료까지는 1~2주가 소요될 수 있다. 이 기간을 참지 못하고 성급하게 이사했다가 이 판결의 사례처럼 수천만원, 혹은 수억원에 달하는 소중한 보증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모든 임차인이 명심해야 한다.
■하희봉 변호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4회 변호사시험 △특허청 특허심판원 국선대리인 △(현)대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변호인 △(현)서울고등법원 국선대리인 △(현)대한변호사협회 이사 △(현)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