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한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전 한국증권학회장] 구윤철 경제부총리가 제시한 ‘초혁신경제’ 비전의 핵심은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스타트 업·스마트 업·스케일 업’(Start up·Smart up·Scale up)이라는 3단계 지원 전략을 마련했다. 아이디어 검증과 사업화 초기 단계에서는 자금·기술 지원을 집중하고 디지털 전환과 인공지능(AI) 도입을 통해 경쟁력을 고도화하며 마지막으로 시장 점유율 확대와 글로벌 진출을 촉진하는 단계를 거쳐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도록 돕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 기업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해 대기업으로 분류되는 순간 각종 규제의 그물에 걸린다. 출자총액제한제도, 일감 몰아주기 규제, 계열사 공시 의무, 부담금 부과 등이 대표적이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도약을 주저하고 오히려 중소기업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이른바 ‘피터팬 증후군’에 빠진다. 실제로 매출 1조원을 넘긴 중견기업 A사는 대기업 지정과 함께 공시 규제에 묶이며 해외투자 계획을 철회해야 했다. 반면 미국은 대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일수록 세제 혜택과 연구개발(R&D) 지원을 강화해 글로벌 시장 진출을 뒷받침한다. 그 결과 2024년 기준 미국의 유니콘 기업은 650개가 넘는 반면 한국은 15개에 불과하다. 대기업 규제가 성장 사다리를 왜곡한 결과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시각 전환이 필요하다. 대기업은 경제력 집중의 주범이 아니라 중소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돕는 동반자가 될 수 있다. 우리 중소기업은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도 해외 수출에서 트랙 레코드(실적)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이때 삼성전자나 LG전자가 중소기업 제품을 글로벌 공급망에 채택한다면 곧바로 신뢰성과 시장 접근성이 확보된다. 실제로 한국무역협회 조사에 따르면 대기업 공급망에 포함된 중소기업의 수출 성공률은 일반 중소기업의 3배에 달한다. 이는 협력 구조의 효과를 분명히 보여준다.
해외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독일은 미텔슈탄트(Mittelstand)라고 불리는 강소기업들이 글로벌 대기업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한다. 지멘스나 폭스바겐 같은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공급망 파트너로 육성하고 정부는 세제와 금융을 통해 이를 지원한다. 일본 역시 토요타가 수천 개 중소기업과 협력해 ‘공동 혁신 생태계’를 만든 덕분에 글로벌 제조 경쟁력을 확보했다. 이들 국가는 대기업 성장을 억제하기보다 대기업을 매개로 중소기업을 세계로 연결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대기업 규제 완화를 통해 성장 유인을 높이는 동시에 대기업이 중소기업 제품을 적극 활용할 경우 세제 혜택이나 규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중소기업은 이를 발판으로 해외에서 자생력을 확보할 수 있고 대기업은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으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이렇게 ‘대기업 성장 → 중소기업 동반 진출 → 국가 경쟁력 강화’의 선순환을 만들어야 앞서 언급한 ‘3S Up’ 전략이 제대로 작동한다. 대기업이 더 커질수록 더 많은 기회가 열리는 구조를 만들어야만 경제부총리가 강조한 ‘초혁신경제’가 현실에서 구현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