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은 스페셜 스페이스 대표] 339개 과제, 28조원 규모. 청년정책의 현주소다. 일자리·주거·복지·교육까지 분야도 다채롭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정책이 청년세대에게만 집중해 다른 세대가 소외 받고 있다고 우려한다. 여기에 청년정책 대부분은 미래세대 또는 경제주체로서의 청년이 아닌 ‘청년이면 누구나’ 혜택을 받는 구조로 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의 수혜자인 청년 대부분은 “체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정책은 넘치는데 청년의 선택이 어려워지는 역설은 왜 나타날까.
누구나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를 가지고 최적의 길을 가려고 하나 선택지가 많으면 오히려 아무것도 고르지 않는 ‘선택 과부하’(Choice overload)가 나타난다. 때로는 대형 쇼핑몰 대신 내 취향에 맞는 작은 옷 가게를 찾는 이유와 같다. 빼곡하게 나열된 물건은 어지러울 뿐 선택을 주저하게 하고 피로감을 낳는다. 오늘날 청년정책의 현실과 매우 유사하다. 이번 칼럼에서는 행동경제학의 관점으로 청년정책의 새로운 방향 전환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는 ‘방어적 보험’으로서의 성격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은 이득보다 손실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손실을 피하려는 편향에 취약하다고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은 설명한다. 지금까지 청년정책은 위기 상황 때마다 ‘손실 최소화’를 목표로 즉각적인 대안을 내놓는 ‘응급 처방식’이 주를 이뤘다. 장기적 개선을 위한 정책 구조를 갖추기보다 단기적 불안을 달래주는 수준에 머물렀던 것이다. 특히 정책은 위험이 닥쳤을 때 손실을 최소화하는 ‘헤지’(Hedge)의 역할로서 보험처럼 안전망과 보장의 의미로 설계하다 보니 성장까지 도모하지는 못했다. 궁극적인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청년들의 삶의 궤적까지 변화시키지는 못한 것이다. 이제는 단순한 방어적 보험 성격의 정책 구조에서 벗어나 미래 사회적 자본 형성의 투자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손실 회피적 처방이 아닌 장기적 이득을 극대화하는 ‘정책 디자인’(Policy design)이 필요하다. 이행기 전환 학습 지원 및 재교육, 창업 생태계 조성, 다양한 경험과 네트워크 확장 등 청년 개인의 근본적 역량을 강화함으로써 국가 전체 혁신 역량 투자로 귀결되는 관점의 설계가 필요하다.
그다음으로는 ‘찾아가는 정책’이 아니라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정책’이어야 한다. 청년이 필요로 하는 순간 부드러운 개입으로 청년이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인공지능(AI) 기반 맞춤형 추천 시스템을 도입하고 적극 활용해 개인의 상황을 먼저 진단하고 맞춤형 정책을 자동으로 추천하는 방식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또한 구직자가 이력서를 등록하면 상담·훈련·지원금 등 필요한 프로그램들이 자동으로 원스톱 연결되는 ‘디폴트 옵션’(Default option) 구조 설계 등을 갖춘다면 청년들은 필요한 지원 경로에 적절하게 진입할 수 있다. 기본값을 바꿨을 뿐인데 참여율이 폭발했던 영국의 연금 자동 가입 제도처럼 삶의 현장에서 정책 경로에 쉽게 올라탈 수 있도록 행동을 유도하는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어렵지만 가장 필요한 과제는 중복과 과잉을 걷어내는 작업이다. 그간 정책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정권과 기조가 바뀔 때마다 정책명과 내용을 크고 작게 수정하고 변경해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책의 가짓수가 끝없이 늘어나기도 하는데 정작 정책수혜자는 마냥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때 필요한 것이 ‘소거법적 접근’이다. 중복정책, 실효성 없는 정책을 단순히 폐지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이 현명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정책을 정리하는 디자인 전략이다. 이를 위해선 뒷받침할 수 있는 ‘행동 데이터 기반 평가 체계 마련’이라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며 단단한 체계에 기반한 ‘정책 작동 메커니즘’을 살펴봐야 한다. 실제 이용률과 정책 만족도, 선택 회피 패턴 등을 분석해 정책을 폐지·개선·확산해 나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정책의 신뢰성과 지속가능성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올바른 청년정책의 방향은 무엇일까. 무색무취의 백가쟁명식 정책보다 숫자는 적더라도 방향을 꿰뚫는 똑똑한 정책이 필요하다. 양보다 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