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 잔금 연체료, 언제부터 내야 할까?[판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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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있는 최신 판례 공부방(47)
잔금 날짜 지났으니 연체료 내라?
대법원 "등기 넘겨줄 준비 먼저"
연체료 약정 있어도 '동시이행'이 원칙
  • 등록 2025-10-18 오후 12:30:00

    수정 2025-10-18 오후 12:30:00

[하희봉 로피드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부동산 분양 계약, 특히 상가와 같은 수익형 부동산 계약에는 종종 복잡한 특약이 포함된다. ‘임대차 계약이 완료되면 잔금을 치른다’거나, ‘잔금 지급 지체 시 연 12%의 연체료를 부과한다’는 식의 조항이 대표적이다. 최근 대법원은 이러한 조항들이 얽힌 분쟁에서 잔금 지급 의무와 소유권 이전 의무의 관계, 그리고 연체료 발생 시점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바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사진=나노바나나
A와 B(원고, 수분양자)는 2020년 3월, C사(피고, 분양사)로부터 상가를 약 12억7000만원에 분양받는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2억1400만원을 납부했다. 이 계약서에는 두 가지 중요한 특약이 있었다. 첫째, 통상적인 ‘준공 후 20일 이내’라는 잔금 지급 기일 대신 “잔금은 임대차계약 완료 시 입금한다”고 정했다. 둘째, 수분양자가 잔금 납부를 지연할 경우 연 12%의 연체료를 가산하고, 반대로 분양사의 귀책으로 소유권 이전이 지연될 경우에도 분양사가 동일한 이율의 지체상금을 지급한다는 조항이 포함되었다.

이후 분양사는 2022년 5월, 제3자와 해당 상가에 대한 임대차계약을 체결했고, 임차인은 6월 3일까지 보증금 전액을 납부했다. 특약에 따라 수분양자의 잔금 지급 의무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수분양자들은 분양사가 자신들의 동의 없이 상가를 임대해 인도 의무를 불이행했다며 계약 해제를 통보하고 계약금 반환 소송(본소)을 제기했다. 이에 분양사는 잔금과 연체료를 지급하라며 맞소송(반소)을 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수분양자의 잔금 지급 의무’와 ‘분양사의 소유권 이전 의무’ 중 무엇이 선행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연체료는 언제부터 발생하는가였다.

제1심은 두 의무가 동시이행 관계에 있다고 보았다. 즉, 분양사가 소유권 이전에 필요한 서류를 제공하며 자신의 의무를 이행해야만 수분양자에게 지체 책임(연체료)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법원은 분양사가 이러한 이행 제공을 계속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수분양자들은 잔금 원금만 지급할 의무가 있고 연체료는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반면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계약서의 연체료 및 지체상금 조항(제4조 1, 2항)에 주목했다. 양측 모두에게 지체 책임을 부과한 이 조항은, 일반적인 쌍무계약의 원칙인 동시이행의 권리를 서로 포기하기로 한 특약에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분양사의 소유권 이전 서류 제공 여부와 관계없이, 수분양자들은 잔금 지급 기일(임대차계약 완료 다음 날)인 2022년 6월 4일부터 연 12%의 연체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1심과 정반대의 결론이었다.

대법원은 항소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부동산 매매계약에서 잔금 지급과 소유권 이전은 원칙적으로 동시이행 관계에 있으며, 이를 깨뜨리는 동시이행항변권의 포기는 매우 엄격하고 신중하게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잔금을 지연하면 연체료를 낸다”는 약정은 단순히 채무 불이행에 대한 손해배상을 예정한 것일 뿐, 그 자체로 ‘소유권 이전과 상관없이 무조건 잔금을 먼저 지급하겠다’는 동시이행 권리의 포기 의사로 볼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는 항소심의 해석이 지나치게 확장된 것임을 지적한 것이다.

따라서 수분양자에게 연체료를 부과하려면, 분양사가 먼저 소유권 이전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고 이를 통지하는 등 자신의 의무를 이행 제공했음이 증명되어야 한다. 연체료는 계약상 잔금 지급일이 도래했다고 하여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분양사의 이행 제공으로 수분양자가 이행 지체 상태에 빠진 시점부터 기산된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판결이다.

다만, 대법원은 한 가지 중요한 단서를 달았다. 이 사건처럼 수분양자들이 이미 계약 해제를 주장하며 잔금 지급을 명백히 거부하는 상황에서는, 분양사의 이행 제공 수준을 엄격하게 요구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즉, 분양사가 소유권 이전에 필요한 서류 일체를 법무사 사무실에 준비해두었다고 통지한 정도만으로도 유효한 이행 제공이 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파기환송심에서는 바로 이 유효한 이행 제공이 언제 있었는지를 다시 심리하여 연체료 발생 시점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부동산 계약서의 특약은 그 내용이 명확해야 분쟁을 피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분쟁이 발생했을 때, 법원은 계약서의 문언을 넘어 동시이행이라는 쌍무계약의 대원칙을 중시한다는 점을 이번 판결은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계약 당사자 모두 자신의 권리뿐만 아니라 의무의 이행에도 충실해야 예측하지 못한 손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희봉 변호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4회 변호사시험 △특허청 특허심판원 국선대리인 △(현)대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변호인 △(현)서울고등법원 국선대리인 △(현)대한변호사협회 이사 △(현)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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