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메모리 양극화 영향으로 지난해 4분기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 성적표를 냈다. 반도체(DS)부문 영업이익이 2조9000억원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주력 제품인 범용 D램에서 수요 약세가 발생하며 주춤한 데다, 수익성이 높은 5세대 HBM3E가 부진했던 탓이다. ‘메모리 겨울’은 올해 상반기까지는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이 첫손에 꼽은 조언은 ‘근원 기술력’이다. 특히 수요가 많은 인공지능(AI)향 HBM 등에서 주도권을 확보해야 하는데, 차세대 HBM4에서 반전을 이루려면 기본으로 돌아가 10㎚(나노미터·10억분의 1m)급 5세대(1b) D램을 개선하고 6세대(1c) D램에서 높은 기술력을 증명해 HBM4에서 치고 나가야 한다는 게 주된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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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단장은 “HBM3E 역시 삼성이 조만간 (엔비디아로부터) 퀄(품질) 테스트를 통과할 것으로 본다”며 “HBM이 결국은 1b 나노 기반 D램의 문제이기 때문에 삼성은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영현 DS부문장 부회장이 DS부문 산하 메모리사업부장을 겸하며 사업을 직접 챙기기로 한 것은 D램 근원 기술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김 단장은 “전 부회장이 핵심 사업인 메모리의 초격차를 회복하기 위해 직접 나선 만큼 조만간 기술적인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HBM3E 제품을 공급하더라도 SK하이닉스와 당장 어깨를 나란히 하기는 어렵다. SK하이닉스와 엔비디아의 신뢰 관계가 그만큼 두텁기 때문이다. 김 단장은 “승자독식 구조인 반도체 산업 특성상 삼성전자가 HBM3E를 납품해도 SK하이닉스만큼 단가를 많이 받긴 어려울 것”이라며 “그래서 HBM4에서 결판을 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삼성은 1c 나노 기반 HBM4를 계획대로 올해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김용석 가천대 석좌교수(반도체교육원장)는 “지금 삼성전자는 AI 시대에 제대로 올라타지 못하고 있다”며 “HBM4를 계획대로 준비해 일정을 잘 맞춰야 하는 게 큰 숙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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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외에 고객사를 더 넓혀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특히 브로드컴과 마벨이 구글, 메타, 아마존 등 미국 빅테크가 자체적으로 만든 AI 전용 주문형반도체(ASIC)를 만들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이들 기업이 AI 전용 칩을 만드는 데 투자를 이어가고 있어, HBM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HBM 외에 최신 메모리인 DDR5, LPDDR5 역시 수요는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AI향 메모리 사업에서 성과를 내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파운드리사업부와 ‘턴키’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파운드리사업부와 시스템LSI사업부는 여전히 적자 신세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에서 올해 2나노 공정에 승부를 걸어 올해 2나노 1세대 공정 양산에 들어가고, 내년 2나노 2세대 공정 양산을 한다고 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삼성전자는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을 해봤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며 “AI 반도체에서 메모리(HBM)와 파운드리 2나노 공정을 결합하는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산업계를 강타하고 있는 중국발(發) 딥시크 여파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나왔다. 엔비디아의 저가 AI 가속기인 H20의 중국 수출이 막힐 가능성이 있어서다. 삼성전자는 H20에 탑재되는 HBM3를 공급하고 있다. 이규복 석좌연구위원은 “만약 미국이 저가 AI 가속기에도 제재를 가하게 되면 반도체 시장을 압박해 영향을 줄 것”이라면서도 “딥시크 자체를 검증해야 할 필요는 있으나 결국에는 HBM 자체는 꾸준한 수요가 이어질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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