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벗겨내야 비로소 보인다. 흔히 잘 보이려 싸고 덮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하지만 ‘벗겨낸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외로운 일이고. 아무에게나 드러낼 수 없는 모양이니까.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과정이기도 하고.
막연하고 추상적인 얘기가 아니다. 바로 눈앞에 있다. 차가운 바닥에서 온몸을 비틀며 허물을 벗겨내는 뱀의 꿈틀거림이 적나라하다. 떨어져나온 몸의 파편은 그 지난한 순간의 흔적이다.
 | 곽재선문화재단이 할리스와 함께 진행한 ‘제3회 아트공모전’에서 수상한 작가들이 지난 6일 서울 중구 통일로 KG타워에서 연 시상식 이후 자신의 작품들 앞에 모였다. 올해 을사년 ‘뱀’을 테마로 한 ‘제3회 아트공모전’은 15명 작가의 수상작을 선정했다. KG타워 갤러리선에서는 수상작을 비롯해 주요 참여작 40여 점을 내놓고 ‘복 주는 화사전: 스네이크 센스’를 28일까지 이어간다(사진=이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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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선문화재단이 할리스와 함께 진행한 올해 ‘제3회 아트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작가 김민지(30)의 조각작품 ‘탈피’(2022)는 외형과 의미 둘 다 강렬하다. 김 작가는 “뱀이 ‘탈피’한다는 점에 영감을 받아 반복하는 성장을 주제로 작업했다”고 했다. “뱀은 평생 여러 번 허물을 벗겨낸다. 매번 신체 일부를 포기해야 성장에 닿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결국 사람의 성장도 뱀이 허물을 벗듯 비우고 비워내야 가능해진다는 메시지를 심은 거다.
곽재선문화재단은 해마다 띠를 상징하는 미술창작물을 공모해 연초에 선정작을 발표하고 전시한다. 올해는 을사년의 ‘뱀’을 테마로 했다. 사실 김 작가는 뱀의 해를 피해갈 수 없었다. 작가의 작업 자체가 세라믹을 소재로 수없이 겹을 쌓고 그걸 다시 긁어 드러내는 방식이니까. 사람의 출생년에 늘 함께해온 12간지 중에서 작가의 작업처럼 허물을 벗는 동물은 뱀 하나뿐이다. 어쩌면 작가와 뱀은 공동의 운명을 타고 났다고 할까.
 | 곽재선문화재단 ‘제3회 아트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가 김민지가 수상작 ‘탈피’(2022, 120×70×45㎝) 뒤에 앉았다. 작가 뒤 오른쪽으로 조각작품 ‘성장통’(2021∼2022, 11×11×160∼200㎝)이, 왼쪽으로 부조작품 ‘줄기’(2024, 27×35㎝ 3점)가 보인다(사진=이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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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명의 339점 출품서 대상 등 수상작 15점
김 작가와 함께 뱀을 직·간접적으로 작품에 들여 올해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가는 모두 15명이다. 선악과를 따먹은 뒤에도 채울 수 없는 인간의 공허함을 그린 오승언(35, 회화 ‘벌거숭이’)이 최우수상을, 시대의 정서가 돼버린 불안을 오방색으로 휘감은 뱀의 형상으로 위로한 레아 인(36, 회화 ‘매직 스펠’), 조선시대 명필가 창암 이삼만의 글씨 ‘산광수색’을 가져다가 뱀의 이미지에 투영한 장영준(35, 회화 ‘산광수색’)이 우수상을 받았다.
또 할리스특별상은 진종현(21, 일러스트 ‘꽃과 뱀’)에게 돌아갔다. 부정적인 일과 긍정적인 일이 공존하는 게 삶이라 여기고 그 둘을 조율하는 ‘아름다운’ 여정을 푸른색 뱀의 몸짓으로 경쾌하게 꾸몄다. 이외에도 강승혜(52), 김보경(27), 김소정(32), 김현정(55), 서진영(25), 이해(16), 최용준(32), 최재용(16), 최재이(51), 황정원(28) 등 10명이 입선에 뽑혔다.
지난해 10∼11월 한 달간 진행한 공모에 출품한 작품은 259명 작가의 339점(회화 164점, 조각·공예 25점, 영상 5점, 일러스트 128점 등)이다. 대학교수·미술평론가 등 4인의 심사위원이 그중 수상작을 최종적으로 골라냈다. 심사위원들은 “여느 해보다 아이디어와 표현이 출중한 수준 높은 작품들로 선정에 숙고를 거듭했다”고 입을 모았다.
 | 지난 6일 서울 중구 통일로 KG타워에서 연 곽재선문화재단 ‘제3회 아트공모전’ 시상식에서 수상한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곽재선문화재단 이사장인 곽재선(뒷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 KG그룹 회장이 수상자들과 함께했다(사진=이영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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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 인간에 친근하지 않단 선입견 뒤집어”
지난 6일 서울 중구 통일로 KG타워에서 연 시상식에서 곽재선문화재단 이사장인 곽재선 KG그룹 회장은 수상자들의 작품 표현력에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뱀은 인간에게 친근하지 않다는 선입견을 뒤집는 작품이 많아 놀랐다”며 “좋은 작품은 미술에 조예가 없는 사람에게도 다정하게 다가서더라”고 수상작을 높이 평가했다.
대상 수상자 김민지는 수상소감으로 ‘성장과 실패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말했다. “작업을 하면서도 제대로 가고 있는지 고민이 많았다”는 작가는 “이번 수상을 잘하고 있다는 응원으로 여기겠다”고 했다. 하지만 성장에 마땅히 따르기 마련인 실패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도자로 형상을 만들고 색을 입힌 뒤 다시 도려내면서 상처 난 형상과 그 파편까지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했다”고 하니 말이다.
아트공모전의 성과를 내놓는 전시 ‘복 주는 화사전: 스네이크 센스’도 이날 KG타워 갤러리선에서 개막했다. 수상작을 비롯해 올해 공모에 참여한 우수작 40여 점을 걸고 세웠다. 전시는 28일까지 이어간다.
 | 서울 중구 통일로 KG타워 갤러리선에서 열고 있는 ‘복 주는 화사전: 스네이크 센스’ 전경. 곽재선문화재단이 할리스와 함께 진행한 ‘제3회 아트공모전’ 수상작을 비롯해 주요 참여작 40여 점을 걸고 세웠다. 왼쪽으로 최우수상을 받은 오승언의 ‘벌거숭이’(2023, 116.8×91.0㎝)가, 오른쪽으로 우수상을 받은 레아 인의 ‘매직 스펠’(2024, 106.0×90.0㎝·앞)과 장영준의 ‘산광수색’(2024, 77.6×65.4×10.0㎝·둘 중 오른쪽)이 나란히 걸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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