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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고인에 대해 “한국 영화의 황금기를 이끌며
스크린에 살아 숨 쉬는 감정과 우아함을 새겨 넣었던 분. 관객에게는 위로와 감동을, 동료에게는 귀감과 영감을 주셨다”며 “그의 눈빛 하나, 미소 하나에는 영화가 가진 힘과 인간이 가진 따뜻함이 함께 담겨 있었다”고 말했다.
조정민은 “그분의 예술은 시간이 지나도 희미해지지 않는 별처럼 한국 영화사에 영원히 자리할 것”이라며 “부디 하늘에서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그 오랜 시간 우리에게 주셨던 감동과 사랑,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당시 김지미는 조정민에 대해 “보기 드물게 갖춰져 있는 친구”라며 “(조정민이) 연습하는 곳도 가보면서 인연이 됐다. 미국에서 한국에 올 때마다 시간이 맞으면 만난다”고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조정민은 촬영 당시 고인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게재하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나란히 선 채 밝게 웃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고인은 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해 1990년대까지 활동을 하며 약 700편의 작품을 남겼다. 대표작은 영화 ‘비오는 날의 오후 세시’(1959), ‘바보온달과 평강공주’(1961), ‘춘향전’(1961), ‘장희빈’(1961), ‘이수일과 심순애’(1965), ‘홍도야 울지 마라’(1965), ‘토지’(1974), ‘비구니’(1984), ‘티켓’(1986) 등이다.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린 고 김지미는 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부일영화상, 대종상 등 시상식을 휩쓸며 연기력을 인정 받았다.
고인은 데뷔 후 1년 뒤인 1958년 영화감독 홍성기와 결혼했지만 4년 뒤인 1962년 이혼했고 이후 1963년 배우 최무룡과 재혼해 딸을 출산했으나 1969년 이혼했다. 1976년 당대 인기 가수 나훈아를 만나 1982년까지 동거하며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으나 결별했고 1991년 의사인 이종구 박사와 네 번째 결혼 후 11년 뒤 이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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