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부

오현주

기자

e갤러리

  • 추상도형 옆 구상문자, '마술'에 붙인 친절한 설명 [e갤러리]
    경현수 ‘매직 램프’(Magic Lamp·2022), 캔버스에 아크릴, 130.3×162.2㎝(사진=이유진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삐죽하고 뾰족한 도형의 밀집체. 그 사이를 세련되게 파고든 바늘 같은 선과 면이 보인다. 둥그런 유연체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딱 떨어지는 형체를 잡아내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애써 구체적인 뭔가를 잡아내려는 노력이 부질없단 뜻이다. 다만 힌트는 얻을 수 있다. 작가 경현수의 작업이라면 최소한 ‘출발지’는 있으니까. 바로 지도 속 길과 공간을 기하학적 추상언어로 바꿔낸 일 말이다. 사실 말처럼 쉽진 않다. 이 과정에서 공들여 축출한 디지털정보를 아날로그 조형으로 다시 옮겨놓기도 했는데, ‘경부고속도로’(2016)란 작품이 그랬더랬다. 당시 작가는 “모호한 생각에 불확실한 아이디어를 쌓아 형상을 만들고, 이 형상에 질감을 입혀 떠돌던 생각을 캔버스에 드러나게 한다”고, 알듯 모를 듯한 설명을 했더랬다. 물론 그게 끝은 아니었다. 작가의 추상언어는 작가의 길을 따르며 오랜시간 다듬어지고 변화해왔던 거다. 그렇게 ‘매직 램프’(Magic Lamp·2022)에까지 왔다. 현재 지점을 일러주듯, 컴퓨터모니터에나 떠다니는 화살표 커서가 등장하고, 이 ‘모호한’ 지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접 써놓기까지 했다. ‘구상’의 문자로 말이다. 8일까지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77길 이유진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매직 램프’에서 볼 수 있다. 경현수 ‘조지 콘도’(Goerge Condo·2022), 캔버스에 아크릴, 130.3×162.2㎝(사진=이유진갤러리)경현수 ‘K군’(K-Gun·2021), 캔버스에 아크릴, 65.2×65.2㎝(사진=이유진갤러리)
    오현주 기자 2022.10.04
    경현수 ‘매직 램프’(Magic Lamp·2022), 캔버스에 아크릴, 130.3×162.2㎝(사진=이유진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삐죽하고 뾰족한 도형의 밀집체. 그 사이를 세련되게 파고든 바늘 같은 선과 면이 보인다. 둥그런 유연체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딱 떨어지는 형체를 잡아내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애써 구체적인 뭔가를 잡아내려는 노력이 부질없단 뜻이다. 다만 힌트는 얻을 수 있다. 작가 경현수의 작업이라면 최소한 ‘출발지’는 있으니까. 바로 지도 속 길과 공간을 기하학적 추상언어로 바꿔낸 일 말이다. 사실 말처럼 쉽진 않다. 이 과정에서 공들여 축출한 디지털정보를 아날로그 조형으로 다시 옮겨놓기도 했는데, ‘경부고속도로’(2016)란 작품이 그랬더랬다. 당시 작가는 “모호한 생각에 불확실한 아이디어를 쌓아 형상을 만들고, 이 형상에 질감을 입혀 떠돌던 생각을 캔버스에 드러나게 한다”고, 알듯 모를 듯한 설명을 했더랬다. 물론 그게 끝은 아니었다. 작가의 추상언어는 작가의 길을 따르며 오랜시간 다듬어지고 변화해왔던 거다. 그렇게 ‘매직 램프’(Magic Lamp·2022)에까지 왔다. 현재 지점을 일러주듯, 컴퓨터모니터에나 떠다니는 화살표 커서가 등장하고, 이 ‘모호한’ 지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접 써놓기까지 했다. ‘구상’의 문자로 말이다. 8일까지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77길 이유진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매직 램프’에서 볼 수 있다. 경현수 ‘조지 콘도’(Goerge Condo·2022), 캔버스에 아크릴, 130.3×162.2㎝(사진=이유진갤러리)경현수 ‘K군’(K-Gun·2021), 캔버스에 아크릴, 65.2×65.2㎝(사진=이유진갤러리)
  • [e갤러리] 나무 몇그루 짊어지고 하산…이현호 '나무, 나무'
    이현호 ‘나무, 나무’(2022 사진=청화랑)[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좀더 당겨냈다. 먼 산에 빽빽하게 꽂혔던 나무를 끌어내 눈앞에 들이댔다는 얘기다. 산과 숲을 즐겨 그리던 작가가 나무 몇그루 짊어지고 하산한 듯하달까. 작가 이현호(37)는 어디 내놔도 한눈에 알아볼 ‘수묵채색화’를 그린다. 여느 동양화·한국화와는 다른 기법이 도드라진데. 여백 없이 빼곡하게 들어찬 화면이 그 하나다. 일체의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오로지 눈앞에 일렁이는 한 장면에만 집중해 그 밀도감 만큼 화면을 채워내는 거다. 명료하고 선명한 묘사가 특징인 전통화법과는 다른, 흐릿하고 뿌연 효과도 일반적이지 않다. 자칫 핀이 어긋난 사진이 아닌가, 한참을 들여다볼 만큼 덧입힌 헷갈림이 ‘독보적’이란 말이다. “항상 새로운 풍경과 마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익숙한 풍경을 작업으로 가져오는 연습이 필요했다”는 작가가 “눈에 익은 주변이지만 뻔한 풍경이 아닌 작업”을 위해 고안한 치열한 결과물이라고 할까. 덕분에 ‘나무, 나무’(2022)는 멀리서 관망하듯,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붓끝으로만 긋는 옛 산수화와는 세계도, 차원도 다른 전경으로 섰다. 냉정하게 뚝 끊어버린 단면으로 당황스럽게 하더니, 빼어난 산세만 그림이 될 수 있단 공식까지 깼다고 일러준다. 10월 5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로147길 청화랑서 여는 개인전 ‘나무, 나무’에서 볼 수 있다. 한지에 채색. 73×73㎝. 청화랑 제공. 이현호 ‘나무, 나무’(2022), 한지에 채색, 73×60㎝(사진=청화랑)
    오현주 기자 2022.09.29
    이현호 ‘나무, 나무’(2022 사진=청화랑)[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좀더 당겨냈다. 먼 산에 빽빽하게 꽂혔던 나무를 끌어내 눈앞에 들이댔다는 얘기다. 산과 숲을 즐겨 그리던 작가가 나무 몇그루 짊어지고 하산한 듯하달까. 작가 이현호(37)는 어디 내놔도 한눈에 알아볼 ‘수묵채색화’를 그린다. 여느 동양화·한국화와는 다른 기법이 도드라진데. 여백 없이 빼곡하게 들어찬 화면이 그 하나다. 일체의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오로지 눈앞에 일렁이는 한 장면에만 집중해 그 밀도감 만큼 화면을 채워내는 거다. 명료하고 선명한 묘사가 특징인 전통화법과는 다른, 흐릿하고 뿌연 효과도 일반적이지 않다. 자칫 핀이 어긋난 사진이 아닌가, 한참을 들여다볼 만큼 덧입힌 헷갈림이 ‘독보적’이란 말이다. “항상 새로운 풍경과 마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익숙한 풍경을 작업으로 가져오는 연습이 필요했다”는 작가가 “눈에 익은 주변이지만 뻔한 풍경이 아닌 작업”을 위해 고안한 치열한 결과물이라고 할까. 덕분에 ‘나무, 나무’(2022)는 멀리서 관망하듯,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붓끝으로만 긋는 옛 산수화와는 세계도, 차원도 다른 전경으로 섰다. 냉정하게 뚝 끊어버린 단면으로 당황스럽게 하더니, 빼어난 산세만 그림이 될 수 있단 공식까지 깼다고 일러준다. 10월 5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로147길 청화랑서 여는 개인전 ‘나무, 나무’에서 볼 수 있다. 한지에 채색. 73×73㎝. 청화랑 제공. 이현호 ‘나무, 나무’(2022), 한지에 채색, 73×60㎝(사진=청화랑)
  • 헵번이 캔버스로 돌아왔을 때…'빛의 색' 얹은 그 영화 [e갤러리]
    이승현 ‘문 리버’(2022), 캔버스에 오일, 130×100㎝(사진=갤러리도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영화를 봤다면 귓가에 울릴 거다. 창틀에 걸터앉은 배우 오드리 헵번이 연한 기타반주에 보탠 노랫소리가 말이다. 비틀린 왜곡이나 덧붙인 해석 없이 저 장면 그대로다. 작가 이승현이 캔버스에 풀어낸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1962)이 말이다. 그런데 참 의외다 싶다. 작가의 작업에서 선명했던 건 말없이 눈으로 전하는 풍경이었으니까. 그 속에 사람이 있기도 없기도 했더랬다. 대놓고 작품에 세우진 않았어도 말이다. 어디쯤 그들이 설 수 있는지, 어디쯤 그들이 쉴 수 있는지, 배려하는 마음이 보였단 얘기다. 그런데 그 잔잔한 조화가 갑자기 영화로 옮겨갔으니. 굳이 왜? “멈춰 있는 게 아닌 살아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어서”란다. ‘달빛이 강인 듯하다’는 뜻의 ‘문 리버’(Moon River·2022)를 비롯해 시공간을 따라 이동해간 장면에서 공을 들인 건 ‘빛’이란다. “빛으로 이뤄진 영화 대신 물감으로 이뤄진 회화에서도 빛을 느끼게” 했다는데. 영화와는 다른 질감·색감은 그 ‘빛의 색’ 덕이기도 하다. 볕으로 다가오는 빛은 작가의 대단한 무기였으니까. 영화의 서사를 붙잡으려 작가의 붓이 움직였다기보다 작가의 서사를 붙잡으려 영화의 컷이 움직인 듯도 하다. “삶의 장면에서 나온 그림이 다시 내 삶의 장면이 되더라”고 했다. 10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도올서 여는 개인전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볼 수 있다. 이승현 ‘그 남자의 방’(2022), 캔버스에 오일, 120×85㎝(사진=갤러리도올)이승현 ‘노란 택시’(Yellow Cap·2022), 캔버스에 오일, 130×86㎝(사진=갤러리도올)이승현 ‘티파니에서 아침을’(2022), 캔버스에 오일, 130×95㎝(사진=갤러리도올)
    오현주 기자 2022.09.29
    이승현 ‘문 리버’(2022), 캔버스에 오일, 130×100㎝(사진=갤러리도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영화를 봤다면 귓가에 울릴 거다. 창틀에 걸터앉은 배우 오드리 헵번이 연한 기타반주에 보탠 노랫소리가 말이다. 비틀린 왜곡이나 덧붙인 해석 없이 저 장면 그대로다. 작가 이승현이 캔버스에 풀어낸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1962)이 말이다. 그런데 참 의외다 싶다. 작가의 작업에서 선명했던 건 말없이 눈으로 전하는 풍경이었으니까. 그 속에 사람이 있기도 없기도 했더랬다. 대놓고 작품에 세우진 않았어도 말이다. 어디쯤 그들이 설 수 있는지, 어디쯤 그들이 쉴 수 있는지, 배려하는 마음이 보였단 얘기다. 그런데 그 잔잔한 조화가 갑자기 영화로 옮겨갔으니. 굳이 왜? “멈춰 있는 게 아닌 살아 있는 이야기를 담고 싶어서”란다. ‘달빛이 강인 듯하다’는 뜻의 ‘문 리버’(Moon River·2022)를 비롯해 시공간을 따라 이동해간 장면에서 공을 들인 건 ‘빛’이란다. “빛으로 이뤄진 영화 대신 물감으로 이뤄진 회화에서도 빛을 느끼게” 했다는데. 영화와는 다른 질감·색감은 그 ‘빛의 색’ 덕이기도 하다. 볕으로 다가오는 빛은 작가의 대단한 무기였으니까. 영화의 서사를 붙잡으려 작가의 붓이 움직였다기보다 작가의 서사를 붙잡으려 영화의 컷이 움직인 듯도 하다. “삶의 장면에서 나온 그림이 다시 내 삶의 장면이 되더라”고 했다. 10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도올서 여는 개인전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볼 수 있다. 이승현 ‘그 남자의 방’(2022), 캔버스에 오일, 120×85㎝(사진=갤러리도올)이승현 ‘노란 택시’(Yellow Cap·2022), 캔버스에 오일, 130×86㎝(사진=갤러리도올)이승현 ‘티파니에서 아침을’(2022), 캔버스에 오일, 130×95㎝(사진=갤러리도올)
  • 마음까지 집어삼키는 소용돌이…한지에 홀리다 [e갤러리]
    김희경 ‘블룸 220405’(2022), 한지, 150.3×150.3×14.2㎝(사진=오페라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모든 게 빨려들 듯한 소용돌이. 시선만 잡아끄는 게 아니라 마음까지 집어삼켜버린다. 저 깊은 안쪽에 뭐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 어쩌겠나. 그저 빨려들 수밖에. 바로 작가 김희경(66)이 의도한 그거다. 작품에 꽂힌 눈과 숨이 잔뜩 엉켜 ‘하나’가 되는 순간을 지켜보는 일 말이다. 작가는 한지로 ‘회화조각’을 한다. 뼈대를 올려 대략의 형태를 잡은 뒤 드로잉하듯 낱장을 차곡차곡 붙여 방대한 추상의 형상을 완성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공을 들이는 것 역시 ‘한지’다. 잔잔한 물결로 흘려내는 것도, 딱딱한 나무로 곧추세우는 것도 덧대고 덧댄 ‘한지’의 기운이란 거다. 소재는 자연이다. 아니 사실, 그리 단순치가 않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가져다, 자연이 준 영감을 얹어, 자연을 닮은 형체를 빚어내니까. 만개·만발쯤으로 풀이할 ‘블룸 220405’(Bloom·2022)은 원과 각의 조화로 활짝 피운 ‘꽃잎 혹은 풀잎’의 흔적이다. 가장 보편적이면서 가장 독특하게 ‘생명의 기운’ ‘자연의 숨결’을 심어냈다는데. 번져나가다가 종국엔 한곳에 모이기를 반복하는 ‘울림의 미학’. 그 미묘한 소용돌이를 시각화해 경이로운 떨림까지 이끌어냈다.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언주로 오페라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생명의 파동, 그 울림의 변주’에서 볼 수 있다. 김희경 ‘블룸 210919’(Bloom·2021), 한지, 121×121×10㎝(사진=오페라갤러리)김희경 ‘관조 220307’(Contemplation·2022), 한지, 113×166×15.5(사진=오페라갤러리)
    오현주 기자 2022.09.25
    김희경 ‘블룸 220405’(2022), 한지, 150.3×150.3×14.2㎝(사진=오페라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모든 게 빨려들 듯한 소용돌이. 시선만 잡아끄는 게 아니라 마음까지 집어삼켜버린다. 저 깊은 안쪽에 뭐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 어쩌겠나. 그저 빨려들 수밖에. 바로 작가 김희경(66)이 의도한 그거다. 작품에 꽂힌 눈과 숨이 잔뜩 엉켜 ‘하나’가 되는 순간을 지켜보는 일 말이다. 작가는 한지로 ‘회화조각’을 한다. 뼈대를 올려 대략의 형태를 잡은 뒤 드로잉하듯 낱장을 차곡차곡 붙여 방대한 추상의 형상을 완성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공을 들이는 것 역시 ‘한지’다. 잔잔한 물결로 흘려내는 것도, 딱딱한 나무로 곧추세우는 것도 덧대고 덧댄 ‘한지’의 기운이란 거다. 소재는 자연이다. 아니 사실, 그리 단순치가 않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가져다, 자연이 준 영감을 얹어, 자연을 닮은 형체를 빚어내니까. 만개·만발쯤으로 풀이할 ‘블룸 220405’(Bloom·2022)은 원과 각의 조화로 활짝 피운 ‘꽃잎 혹은 풀잎’의 흔적이다. 가장 보편적이면서 가장 독특하게 ‘생명의 기운’ ‘자연의 숨결’을 심어냈다는데. 번져나가다가 종국엔 한곳에 모이기를 반복하는 ‘울림의 미학’. 그 미묘한 소용돌이를 시각화해 경이로운 떨림까지 이끌어냈다. 30일까지 서울 강남구 언주로 오페라갤러리서 여는 개인전 ‘생명의 파동, 그 울림의 변주’에서 볼 수 있다. 김희경 ‘블룸 210919’(Bloom·2021), 한지, 121×121×10㎝(사진=오페라갤러리)김희경 ‘관조 220307’(Contemplation·2022), 한지, 113×166×15.5(사진=오페라갤러리)
  • [e갤러리] 캔버스 살점 뚫고 드나드는 붓? 바늘!…김규민 '기도-보풀'
    김규민 ‘기도-보풀’(Pray-Coton·2022·사진=슈페리어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캔버스에 물감을 겹겹이 올린 작업을 ‘그림’이라 여긴다면, 당혹스러울 만하다. 실뜨기하듯 겹겹이 얽히고설킨, 보슬보슬한 털실이 눈앞에 펼쳐져 있으니. 실뭉치를 사뿐히 올린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캔버스의 살점을 뚫고 들어갔다가 빼내기를 반복하면서 쭉쭉 당겨낸 선들에선 팽팽한 긴장감마저 감돌고 있으니. 작가 김규민(45)은 물감 대신 실로, 붓 대신 바늘로 회화작업을 한다. 아니 자수작업을 한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 수 있겠다. 섬유예술을 전공해 실 만지고 바늘 꽂는 일에는 도통했겠지만, 바느질의 기본기는 작가를 키우다시피 한 이모에게서 배웠단다. 그때의 가르침이었으려나. 자칫 손끝에서 피를 볼 수 있는 일임에도 이 작업에 굳이 키워드가 필요하다면 ‘평정’이란다. 실과 실로 화면을 덮어내는 중복적인 행위가 “감정의 반복이자 만나고 헤어지는 유기적 관계를 의미”한다니. “실이 캔버스를 통과할 때 내는 마르고 거친 소리, 실과 실을 묶고 물감을 칠하는 모든 과정에서 복잡한 생각이 조용히 정리되길 바란다”고도 했다. 그래서 ‘기도-보풀’(Pray-Coton·2022)인가 보다. 배배 꼬인 사는 일의 복잡한 방정식을 작가는 이렇게 풀어낸다. 28일까지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슈페리어갤러리서 여는 김태화·은유영과 여는 3인전 ‘내 마음의 평온을 찾아서’(Find Peace in My Heart)에서 볼 수 있다. 전통한지에 아크릴·자수. 슈페리어갤러리 제공. 김태화 ‘노스탤지어(Nostalgia·2022), 캔버스에 오일, 100×100㎝(사진=슈페리어갤러리)은유영 ‘황혼이 시작됐을 때’(Just When The Twilight Started·2019), 나무에 우레탄·아크릴·진주가루·자개, 53.0×45.5㎝(사진=슈페리어갤러리)
    오현주 기자 2022.09.23
    김규민 ‘기도-보풀’(Pray-Coton·2022·사진=슈페리어갤러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캔버스에 물감을 겹겹이 올린 작업을 ‘그림’이라 여긴다면, 당혹스러울 만하다. 실뜨기하듯 겹겹이 얽히고설킨, 보슬보슬한 털실이 눈앞에 펼쳐져 있으니. 실뭉치를 사뿐히 올린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캔버스의 살점을 뚫고 들어갔다가 빼내기를 반복하면서 쭉쭉 당겨낸 선들에선 팽팽한 긴장감마저 감돌고 있으니. 작가 김규민(45)은 물감 대신 실로, 붓 대신 바늘로 회화작업을 한다. 아니 자수작업을 한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 수 있겠다. 섬유예술을 전공해 실 만지고 바늘 꽂는 일에는 도통했겠지만, 바느질의 기본기는 작가를 키우다시피 한 이모에게서 배웠단다. 그때의 가르침이었으려나. 자칫 손끝에서 피를 볼 수 있는 일임에도 이 작업에 굳이 키워드가 필요하다면 ‘평정’이란다. 실과 실로 화면을 덮어내는 중복적인 행위가 “감정의 반복이자 만나고 헤어지는 유기적 관계를 의미”한다니. “실이 캔버스를 통과할 때 내는 마르고 거친 소리, 실과 실을 묶고 물감을 칠하는 모든 과정에서 복잡한 생각이 조용히 정리되길 바란다”고도 했다. 그래서 ‘기도-보풀’(Pray-Coton·2022)인가 보다. 배배 꼬인 사는 일의 복잡한 방정식을 작가는 이렇게 풀어낸다. 28일까지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슈페리어갤러리서 여는 김태화·은유영과 여는 3인전 ‘내 마음의 평온을 찾아서’(Find Peace in My Heart)에서 볼 수 있다. 전통한지에 아크릴·자수. 슈페리어갤러리 제공. 김태화 ‘노스탤지어(Nostalgia·2022), 캔버스에 오일, 100×100㎝(사진=슈페리어갤러리)은유영 ‘황혼이 시작됐을 때’(Just When The Twilight Started·2019), 나무에 우레탄·아크릴·진주가루·자개, 53.0×45.5㎝(사진=슈페리어갤러리)
  • 얼굴 없는 '배웅'…뒷모습에 엮어낸 '관계'의 색 [e갤러리]
    이이수 ‘배웅’(2022), 캔버스에 아크릴, 116.8×91㎝(사진=갤러리마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떠나는 사람과 떠나보내는 사람. 이 사이에 오가는 온갖 감정이 이토록 찬란한 색으로 정리될 수 있을까. 서서히 끓어오르는 아쉬움은 붉은 바탕에, 애써 감춰야 하는 섭섭함은 분홍 셔츠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은 오렌지색 바지에. 강아지 한 마리의 마음까지 하얀 꽁무니에 녹여서. 이들 모두의 공통점이라면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 작가 이이수는 투박하지만 따뜻한, 단순하지만 정감 넘치는 일상의 장면을 그려왔다. 특징이라면 ‘뒷모습’이다. 둘 이상 여럿, 여기에 반려동물까지 ‘뒷모습에 엮어낸 관계’를 담아내는데. 서로 뒷모습을 바라봐줄 수 있을 때 진정으로 귀한 존재들이 돼줄 수 있다고 믿는 거다. 언젠가 작가 스스로가 떠났던 혹은 떠나보냈던 그때를 떠올렸을 ‘배웅’(2022)은 밀도 높은 바로 그 ‘관계의 뒷모습’을 끌어낸 작품이라고 할까. 아마 앞보다 더 익숙한 뒷모습이라서일 거다. 6년 수녀생활 끝에 한계에 부딪혀 수도원을 떠난 뒤 뒤늦은 미술공부로 작가가 됐단다. 하지만 이조차 작가에겐 ‘새로운 수도자의 길’이라니. 그 길이 그렇지 않겠나. 돌아선 이들의 뒷모습을 오래 품어야 하는 길일 테니.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경희궁1길 갤러리마리서 여는 개인전 ‘편집 없는 대화’에서 볼 수 있다. 회화와 드로잉 43점을 걸었다. 이이수 ‘우리들의 대화’(2022), 캔버스에 아크릴, 162.2×112.1㎝(사진=갤러리마리)이이수 ‘또복이 G’(2022), 캔버스에 아크릴, 145.5×112.1㎝(사진=갤러리마리)
    오현주 기자 2022.09.22
    이이수 ‘배웅’(2022), 캔버스에 아크릴, 116.8×91㎝(사진=갤러리마리)[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떠나는 사람과 떠나보내는 사람. 이 사이에 오가는 온갖 감정이 이토록 찬란한 색으로 정리될 수 있을까. 서서히 끓어오르는 아쉬움은 붉은 바탕에, 애써 감춰야 하는 섭섭함은 분홍 셔츠에,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은 오렌지색 바지에. 강아지 한 마리의 마음까지 하얀 꽁무니에 녹여서. 이들 모두의 공통점이라면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 작가 이이수는 투박하지만 따뜻한, 단순하지만 정감 넘치는 일상의 장면을 그려왔다. 특징이라면 ‘뒷모습’이다. 둘 이상 여럿, 여기에 반려동물까지 ‘뒷모습에 엮어낸 관계’를 담아내는데. 서로 뒷모습을 바라봐줄 수 있을 때 진정으로 귀한 존재들이 돼줄 수 있다고 믿는 거다. 언젠가 작가 스스로가 떠났던 혹은 떠나보냈던 그때를 떠올렸을 ‘배웅’(2022)은 밀도 높은 바로 그 ‘관계의 뒷모습’을 끌어낸 작품이라고 할까. 아마 앞보다 더 익숙한 뒷모습이라서일 거다. 6년 수녀생활 끝에 한계에 부딪혀 수도원을 떠난 뒤 뒤늦은 미술공부로 작가가 됐단다. 하지만 이조차 작가에겐 ‘새로운 수도자의 길’이라니. 그 길이 그렇지 않겠나. 돌아선 이들의 뒷모습을 오래 품어야 하는 길일 테니.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경희궁1길 갤러리마리서 여는 개인전 ‘편집 없는 대화’에서 볼 수 있다. 회화와 드로잉 43점을 걸었다. 이이수 ‘우리들의 대화’(2022), 캔버스에 아크릴, 162.2×112.1㎝(사진=갤러리마리)이이수 ‘또복이 G’(2022), 캔버스에 아크릴, 145.5×112.1㎝(사진=갤러리마리)
  • [e갤러리] 없는 세상, 있는 듯 펼치는 법…최영빈 '멀리아직작은다리큰달'
    최영빈 ‘멀리아직작은다리큰달’(2022·사진=도로시살롱)[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곧 무너져 내릴 듯 불안해 보이는 나무다리의 형체만 잡힌다. 그 다리 밑으로 쌓고 가라앉힌 수많은 단상은 알아채기 쉽지가 않다는 뜻이다. 비단 눈으로 구별해낼 수 있는 형체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하나의 일관된 흐름 이상의 것들이 녹아들어 정돈되지 않은 화면을 구성하고 있단 얘기다. 작가 최영빈(38)은 “어긋나 겹쳐진 상태”의 시공간을 그린다. 여러 공간 여러 시간에 걸쳐, 다른 공간 다른 시간에 봤던 이미지를 한 화면에 옮겨놓는 작업이란다. 덕분에 작가의 그림은 단순한 재구성과는 거리가 멀다. 쪼개고 합치고, 포개고 얹어낸 것들이니까. 오로지 작가만의 기억과 느낌으로 살려낸, 없는 세상을 있는 듯 펼쳐내는데. 누구의 눈에도 똑같이 보였을 그 출발이 작가의 붓끝에서 전혀 다른 마감을 끌어내는 거다. 추상과 구상의 조화를 꾀한 듯한 ‘멀리아직작은다리큰달’(2022)은 작가의 특별한 조형언어가 더 도드라진 작품. 여러 단어를 다닥다닥 붙여 만든 타이틀이, 마치 여러 컷의 필름을 오버랩한 듯 구상하고 그려내는 작업과 비슷하다.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도로시살롱서 여는 개인전 ‘물의 교차’(Same Water Crossing)에서 볼 수 있다. 같은 물에서 나온 물줄기가 교차하며 만들어낸 새로운 파도란 의미를 담았단다. 캔버스에 오일. 162×130㎝. 도로시살롱 제공. 최영빈 ‘물의 교차’(2022), 캔버스에 오일, 162×130㎝(사진=도로시살롱)최영빈 ‘자기 복제를 허용하며 원본이 됩니다’(2022), 캔버스에 오일, 130×162㎝(사진=도로시살롱)
    오현주 기자 2022.09.19
    최영빈 ‘멀리아직작은다리큰달’(2022·사진=도로시살롱)[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곧 무너져 내릴 듯 불안해 보이는 나무다리의 형체만 잡힌다. 그 다리 밑으로 쌓고 가라앉힌 수많은 단상은 알아채기 쉽지가 않다는 뜻이다. 비단 눈으로 구별해낼 수 있는 형체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하나의 일관된 흐름 이상의 것들이 녹아들어 정돈되지 않은 화면을 구성하고 있단 얘기다. 작가 최영빈(38)은 “어긋나 겹쳐진 상태”의 시공간을 그린다. 여러 공간 여러 시간에 걸쳐, 다른 공간 다른 시간에 봤던 이미지를 한 화면에 옮겨놓는 작업이란다. 덕분에 작가의 그림은 단순한 재구성과는 거리가 멀다. 쪼개고 합치고, 포개고 얹어낸 것들이니까. 오로지 작가만의 기억과 느낌으로 살려낸, 없는 세상을 있는 듯 펼쳐내는데. 누구의 눈에도 똑같이 보였을 그 출발이 작가의 붓끝에서 전혀 다른 마감을 끌어내는 거다. 추상과 구상의 조화를 꾀한 듯한 ‘멀리아직작은다리큰달’(2022)은 작가의 특별한 조형언어가 더 도드라진 작품. 여러 단어를 다닥다닥 붙여 만든 타이틀이, 마치 여러 컷의 필름을 오버랩한 듯 구상하고 그려내는 작업과 비슷하다. 25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도로시살롱서 여는 개인전 ‘물의 교차’(Same Water Crossing)에서 볼 수 있다. 같은 물에서 나온 물줄기가 교차하며 만들어낸 새로운 파도란 의미를 담았단다. 캔버스에 오일. 162×130㎝. 도로시살롱 제공. 최영빈 ‘물의 교차’(2022), 캔버스에 오일, 162×130㎝(사진=도로시살롱)최영빈 ‘자기 복제를 허용하며 원본이 됩니다’(2022), 캔버스에 오일, 130×162㎝(사진=도로시살롱)
  • [e갤러리] 긴목 긴팔, 그가 돌아왔다 납작하게…김경민 '너의 심장'
    김경민 ‘너의 심장’(2022·사진=본화랑)[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말풍선까지 날린 기분 좋은 날. 구름 닮은 풍선 안이 비어있더라도 그 속을 채울 말쯤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저 청년의 유쾌한 얼굴이 이미 다 터트리지 않았나. 그런데 말이다. 이 청년, 낯이 익다. 긴 목과 긴 팔을 가진 가느다란 외형은 물론,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익살스러운 표정까지. 맞다. 도시 곳곳에서 알록달록한 색과 경쾌한 동작으로 시선을 끄는 ‘가늘고 긴 몸매를 가진 가족’ 중 한 얼굴. 작가 김경민(50)이 숱하게 빚어온 조각작품 속 그 얼굴 말이다. 작가는 일상의 장면을 잘라 최대한 과장되게 표현할 줄 아는 한 가족의 몸을 빌려 장구한 스토리를 써왔다. 인생의 기쁨·즐거움을 위트와 유머로 부풀리는 건 기본이고, 양념처럼 따라붙는 슬픔·노여움은 재치와 위로로 공중분해 시켰더랬다. 그런데 작가가 조각만 고집하진 않았던 거다. 흔치 않겠지만 캔버스화로 완성한 ‘너의 심장’(Your Heart: Boy·2022)이 감춰뒀던 사진처럼 등장하지 않았나. 입체작품을 단단하게 눌러낸 듯한 평면작품으로. 사는 일의 평범한 얘기를 극적으로 꾸며내는 작가의 ‘연출물’은 여전히 제작 중이다. 도톰하든, 납작하든.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본화랑과 브루지에-히가이갤러리서 동시에 여는 개인전 ‘가볍게, 행복’에서 볼 수 있다. 캔버스에 아크릴. 131×97㎝. 본화랑 제공. 김경민 ‘야구’(Baseball·2022), 브론즈에 아크릴, 32×29×54(h)㎝(사진=본화랑)김경민 ‘첫 만남 2’(2022), 레진에 아크릴·스테인리스스틸, 50×32㎝(사진=본화랑)
    오현주 기자 2022.09.18
    김경민 ‘너의 심장’(2022·사진=본화랑)[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말풍선까지 날린 기분 좋은 날. 구름 닮은 풍선 안이 비어있더라도 그 속을 채울 말쯤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저 청년의 유쾌한 얼굴이 이미 다 터트리지 않았나. 그런데 말이다. 이 청년, 낯이 익다. 긴 목과 긴 팔을 가진 가느다란 외형은 물론,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익살스러운 표정까지. 맞다. 도시 곳곳에서 알록달록한 색과 경쾌한 동작으로 시선을 끄는 ‘가늘고 긴 몸매를 가진 가족’ 중 한 얼굴. 작가 김경민(50)이 숱하게 빚어온 조각작품 속 그 얼굴 말이다. 작가는 일상의 장면을 잘라 최대한 과장되게 표현할 줄 아는 한 가족의 몸을 빌려 장구한 스토리를 써왔다. 인생의 기쁨·즐거움을 위트와 유머로 부풀리는 건 기본이고, 양념처럼 따라붙는 슬픔·노여움은 재치와 위로로 공중분해 시켰더랬다. 그런데 작가가 조각만 고집하진 않았던 거다. 흔치 않겠지만 캔버스화로 완성한 ‘너의 심장’(Your Heart: Boy·2022)이 감춰뒀던 사진처럼 등장하지 않았나. 입체작품을 단단하게 눌러낸 듯한 평면작품으로. 사는 일의 평범한 얘기를 극적으로 꾸며내는 작가의 ‘연출물’은 여전히 제작 중이다. 도톰하든, 납작하든.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본화랑과 브루지에-히가이갤러리서 동시에 여는 개인전 ‘가볍게, 행복’에서 볼 수 있다. 캔버스에 아크릴. 131×97㎝. 본화랑 제공. 김경민 ‘야구’(Baseball·2022), 브론즈에 아크릴, 32×29×54(h)㎝(사진=본화랑)김경민 ‘첫 만남 2’(2022), 레진에 아크릴·스테인리스스틸, 50×32㎝(사진=본화랑)
  • [e갤러리] 세상서 가장 고단한 그림…김남표 '즉흥적 풍경-기원'
    김남표 ‘즉흥적 풍경-기원’(2022·사진=호리아트스페이스&아이프아트매니지먼트)[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곤두선 그림이다. 한올 한올 일으켜 세웠다는 뜻이다. 인조모피를 펼쳐두고 바늘로 스크래칭해 나무를 심고, 풀은 흔들리게 물은 흐르게 했다는 뜻이다. 작가 김남표(52)는 모피를 바늘로 긁어 그림을 그린다. 말이 쉬워 그림이지, 붓 한획으로 긋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작업이다. 머리카락 굵기 정도의 세밀한 선들을 수만 혹은 수십만번 미세하게 건드리고 뽑아내야 간신히 한점 풍경을 완성할 수 있다고 하니. 그 작업이 벌써 26년째란다. 마치 수도승이 구도의 길을 걷는 듯한 이 일에는 이유가 있단다. “회화는 숭고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을 가장 고단한 방식으로 개척해낸 건데. 연작 중 한 점인 ‘즉흥적 풍경-기원’(Instant Landscape-Origin #7·2022)은 바로 그 회화의 절대가치를 위한 작가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헌신인 셈이다. 다만 작가의 수고만큼 ‘제3자의 주의’도 필요한데. “순간적 음영을 통해 이미지가 드러나는 만큼 손으로 쓱 문지르면 끝장”이란 거다. 흔히 털옷을 문지르면 납작하게 가라앉는 그 현상을 떠올리면 된다. 23일까지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80길 호리아트스페이스와 아이프라운지서 여는 개인전 ‘검은 풍경’(Origin-Instant Landscape)에서 볼 수 있다. 인조모피에 스크래칭. 145.5×112.1㎝. 호리아트스페이스&아이프아트매니지먼트 제공. 김남표 ‘즉흥적 풍경-기원’(Instant Landscape-Origin #3·2022), 인조모피에 스크래칭, 97×130.3㎝(사진=호리아트스페이스&아이프아트매니지먼트)김남표 ‘즉흥적 풍경-감각의 광야’(Instant Landscape-Wilderness of Sense #3·2022), 캔버스에 오일·그래피티, 130.3×162.2㎝(사진=호리아트스페이스&아이프아트매니지먼트)
    오현주 기자 2022.09.16
    김남표 ‘즉흥적 풍경-기원’(2022·사진=호리아트스페이스&아이프아트매니지먼트)[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곤두선 그림이다. 한올 한올 일으켜 세웠다는 뜻이다. 인조모피를 펼쳐두고 바늘로 스크래칭해 나무를 심고, 풀은 흔들리게 물은 흐르게 했다는 뜻이다. 작가 김남표(52)는 모피를 바늘로 긁어 그림을 그린다. 말이 쉬워 그림이지, 붓 한획으로 긋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작업이다. 머리카락 굵기 정도의 세밀한 선들을 수만 혹은 수십만번 미세하게 건드리고 뽑아내야 간신히 한점 풍경을 완성할 수 있다고 하니. 그 작업이 벌써 26년째란다. 마치 수도승이 구도의 길을 걷는 듯한 이 일에는 이유가 있단다. “회화는 숭고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을 가장 고단한 방식으로 개척해낸 건데. 연작 중 한 점인 ‘즉흥적 풍경-기원’(Instant Landscape-Origin #7·2022)은 바로 그 회화의 절대가치를 위한 작가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헌신인 셈이다. 다만 작가의 수고만큼 ‘제3자의 주의’도 필요한데. “순간적 음영을 통해 이미지가 드러나는 만큼 손으로 쓱 문지르면 끝장”이란 거다. 흔히 털옷을 문지르면 납작하게 가라앉는 그 현상을 떠올리면 된다. 23일까지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80길 호리아트스페이스와 아이프라운지서 여는 개인전 ‘검은 풍경’(Origin-Instant Landscape)에서 볼 수 있다. 인조모피에 스크래칭. 145.5×112.1㎝. 호리아트스페이스&아이프아트매니지먼트 제공. 김남표 ‘즉흥적 풍경-기원’(Instant Landscape-Origin #3·2022), 인조모피에 스크래칭, 97×130.3㎝(사진=호리아트스페이스&아이프아트매니지먼트)김남표 ‘즉흥적 풍경-감각의 광야’(Instant Landscape-Wilderness of Sense #3·2022), 캔버스에 오일·그래피티, 130.3×162.2㎝(사진=호리아트스페이스&아이프아트매니지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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