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콘텐츠부

전재욱

기자

그해 오늘

  • 시속 37㎞ 사망사고의 진실…아내·아들이 진범이었다[그해 오늘]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5년 2월 4일, 전주지방법원 정읍지원의 한 법정에서 수의를 입은 채 피고인석에 서있는 백모(당시 60세)씨, 김모(당시 37세)씨에게 나란히 무기징역이 선고됐다.재판부는 이들에게 적용된 ‘존속살해’ 혐의를 유죄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백씨 모자가 재판 내내 강력 부인했던 8년 전 사망 사건이 이들의 계획적 살인이라는 점이 인정되는 순간이었다. 정읍 50대 남성 살인사건의 범인인 아내 백모씨와 아들 김모씨. (사진=SBS ‘궁금한 이야기 Y’ 갈무리)사건은 8년 전 발생했다. 2006년 12월 25일 밤 9시께, 전북 정읍의 칠보삼거리에서 정읍시청 공무원이었던 김모(당시 54세)씨 가족이 타고 있던 SUV 차량이 A씨가 운전하는 승용차 범퍼를 추돌하는 사고가 났다.사고 직후 신고를 받고 밤 9시 11분 현장에 충돌한 경찰은 조수석에 타고 있던 김씨가 의식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119에 신고했다.119 구급대가 긴급히 현장에 도착해 상태를 확인했으나, 김씨는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구급대원들은 김씨가 이미 사망한 것으로 판단한 후 밤 9시36분 전북의 한 병원에 김씨를 이송했다.◇사고 직후 시신 인도돼 바로 화장 김씨 상태를 확인한 병원 의사는 호흡·맥박 등 생체징후가 전혀 없고 심장 박동도 없다며 ‘도착 당시 이미 사망’ 판정을 했다. 김씨 시신은 사고 부검 없이 사고 다음 날 박씨 아내인 백씨에게 인도돼 27일 화장됐다.김씨 가족들은 보험회사들에 보험금 지급을 요청해 6억원이 넘는 돈을 받았으나, 일부 보험사는 ‘보험사기’를 의심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실제 교통사고로 보기엔 이상한 정황이 다수 있었다. 당시 김씨가 탔던 차량의 속도는 시속 37㎞ 정도에 불과했고, 에어백도 터지지 않았다. 추돌에 의한 차량 손상 역시 모두 범퍼만 파손된 정도였다.조수석에 탔던 김씨가 사망했음에도 차량을 운전한 김씨의 아들과, 뒷좌석에 탔던 백씨는 가벼운 부상만 입은 상태였다. 또 평균 월급여가 260만원에 불과했던 김씨 앞으로 매달 총 보험료만 180만원에 달하는 보험 20개가 가입된 점도 사건에 의구심을 갖게 하는 배경이었다.경찰은 타살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에 나섰지만 이미 시신이 화장된 상태라 물증 찾기에 애를 먹다가, 2007년 5월 A씨가 백씨 명의 휴대전화로 백씨와 통화한 내역을 확인한 후 수사에 활로를 찾기 시작했다.자신의 아들을 만나기 위해 부근을 갔다가 칠보삼거리에서 사고가 났다고 진술한 A씨와 백씨가 범행 전후로 수차례 통화를 한 것이 확인된 것이다. 하지만 백씨는 “A씨 얼굴만 알뿐, 전화번호도 모르고 통화한 사실도 없다”고 잡아뗐다. 경찰이 통화내역을 근거로 백씨에게 “A씨와 내연관계 아니냐”고 추궁하자, 백씨는 “몇 번 전화기를 빌려준 것뿐”이라고 이를 부인했다.◇수사 본격화되자 경찰 매수 시도하기도경찰이 자신과 백씨의 통화내역을 확보한 것을 알게된 A씨는 이후 경찰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잠적했다. 그리고 백씨는 느닷없이 수사 경찰관들에게 수백만원의 뇌물을 건네려 했다.A씨 잠적으로 수사에 진척되지 못하던 상황에서 경찰은 우선적으로 백씨의 뇌물공여죄와 아들 김씨의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죄 사건을 수사했고, 검찰은 이들을 재판에 넘겼다. 법원은 2008년 3월 백씨에겐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아들 김씨에겐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살인사건 수사는 2009년 11월 A씨가 검거되며 다시 재개됐다. A씨는 검거 직후부터 “교통사고는 백씨 제의로 실행됐고, 교통사고 전에 이미 김씨는 죽어있었던 것 같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그는 “백씨에게 범행 제안을 받았고, 백씨가 범행 하루 전 아들 김씨에게 ‘네가 내려와야 실행에 옮긴다’고 말하는 통화를 들었다”며 “백씨가 ‘남편이 좋아하는 복분자에 약을 타서 주겠다’고 얘기도 했다”고 밝혔다. 백씨도 A씨와의 내연관계였다는 점과 남편 김씨에게 복분자를 먹였다는 점을 인정했다.A씨 진술로 수사가 활기를 띠게 되던 상황에서 이번엔 사고 차량을 운전했던 김씨의 아들이 호주로 출국해 버리며 수사는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검찰은 일단 2009년 말 아내 백씨와 A씨를 보험사기 혐의로 우선 기소했다. 법원은 2010년 6월 백씨와 A씨에게 각각 징역 5년,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백씨가 항소했으나 형은 2011년 1월 그대로 확정됐다. 그리고 2014년 4월 호주로 도피했던 아들 김씨가 호주에서 추방된 후 인천국제공항에서 입국 즉시 체포됐다. 검경은 일단 아들 김씨에 대해 보험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기는 한편, 살인 혐의에 대해선 재수사에 나섰다. 아들 김씨의 보험 사기 혐의는 1심에서 징역 5년형이 내려졌다.수사 결과, 아내 백씨와 아들 김씨는 피해자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다. 백씨의 경우 오래전부터 피해자와 사실상 별거를 하고 있었고, 아들 김씨의 경우 결혼 반대에 앙심을 품고 있었다.◇끝까지 범행 부인…아내 2심서 “아들 아닌 내연남이 공범”두 사람은 2006년 사고 당일 오후 6~9시 사이에 피해자를 살해한 후, 시신을 조수석에 태운채 칠보사거리로 이동해 A씨 차량과 고의로 접촉사고를 일으켜 교통사고로 위장을 시도했다.아내 백씨와 아들 김씨는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교통사고로 인해 우연히 사망한 것이지, 피해자를 고의로 살해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법원은 백씨 모자의 주장을 일축하고 “살인이 맞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119구급대 도착 당시 생체징후가 전혀 없었고, 당시 촬영된 사진 속 피해자 모습이 이미 사망 몇 시간이 지난 것으로 추정되는 점 등을 유죄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1심은 백씨 모자에 대해 ‘존속살해’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각각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보험금 편취를 위해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음에도 여전히 변명에 급급한 태도로 일관하며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다.백씨 모자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아들 김씨의 보험사기 사건도 2심에서 병합돼 함께 진행됐다. 아들 김씨가 1심 때와 마찬가지로 범행 일체를 강력 부인하는 가운데, 백씨는 재판 도중 “남편을 죽인 것은 맞지만, 아들이 아닌 내연남 A씨와 공모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2심 재판부는 아들 김씨 주장과 백씨의 새 주장 모두 믿기 어렵다며 1심과 같이 존속살해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다만 양형의 경우 “피해자의 다른 유족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고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며 백씨에게 징역 15년, 아들 김씨에겐 보험사기죄까지 더해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형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한광범 기자 2023.02.04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5년 2월 4일, 전주지방법원 정읍지원의 한 법정에서 수의를 입은 채 피고인석에 서있는 백모(당시 60세)씨, 김모(당시 37세)씨에게 나란히 무기징역이 선고됐다.재판부는 이들에게 적용된 ‘존속살해’ 혐의를 유죄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백씨 모자가 재판 내내 강력 부인했던 8년 전 사망 사건이 이들의 계획적 살인이라는 점이 인정되는 순간이었다. 정읍 50대 남성 살인사건의 범인인 아내 백모씨와 아들 김모씨. (사진=SBS ‘궁금한 이야기 Y’ 갈무리)사건은 8년 전 발생했다. 2006년 12월 25일 밤 9시께, 전북 정읍의 칠보삼거리에서 정읍시청 공무원이었던 김모(당시 54세)씨 가족이 타고 있던 SUV 차량이 A씨가 운전하는 승용차 범퍼를 추돌하는 사고가 났다.사고 직후 신고를 받고 밤 9시 11분 현장에 충돌한 경찰은 조수석에 타고 있던 김씨가 의식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119에 신고했다.119 구급대가 긴급히 현장에 도착해 상태를 확인했으나, 김씨는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구급대원들은 김씨가 이미 사망한 것으로 판단한 후 밤 9시36분 전북의 한 병원에 김씨를 이송했다.◇사고 직후 시신 인도돼 바로 화장 김씨 상태를 확인한 병원 의사는 호흡·맥박 등 생체징후가 전혀 없고 심장 박동도 없다며 ‘도착 당시 이미 사망’ 판정을 했다. 김씨 시신은 사고 부검 없이 사고 다음 날 박씨 아내인 백씨에게 인도돼 27일 화장됐다.김씨 가족들은 보험회사들에 보험금 지급을 요청해 6억원이 넘는 돈을 받았으나, 일부 보험사는 ‘보험사기’를 의심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실제 교통사고로 보기엔 이상한 정황이 다수 있었다. 당시 김씨가 탔던 차량의 속도는 시속 37㎞ 정도에 불과했고, 에어백도 터지지 않았다. 추돌에 의한 차량 손상 역시 모두 범퍼만 파손된 정도였다.조수석에 탔던 김씨가 사망했음에도 차량을 운전한 김씨의 아들과, 뒷좌석에 탔던 백씨는 가벼운 부상만 입은 상태였다. 또 평균 월급여가 260만원에 불과했던 김씨 앞으로 매달 총 보험료만 180만원에 달하는 보험 20개가 가입된 점도 사건에 의구심을 갖게 하는 배경이었다.경찰은 타살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에 나섰지만 이미 시신이 화장된 상태라 물증 찾기에 애를 먹다가, 2007년 5월 A씨가 백씨 명의 휴대전화로 백씨와 통화한 내역을 확인한 후 수사에 활로를 찾기 시작했다.자신의 아들을 만나기 위해 부근을 갔다가 칠보삼거리에서 사고가 났다고 진술한 A씨와 백씨가 범행 전후로 수차례 통화를 한 것이 확인된 것이다. 하지만 백씨는 “A씨 얼굴만 알뿐, 전화번호도 모르고 통화한 사실도 없다”고 잡아뗐다. 경찰이 통화내역을 근거로 백씨에게 “A씨와 내연관계 아니냐”고 추궁하자, 백씨는 “몇 번 전화기를 빌려준 것뿐”이라고 이를 부인했다.◇수사 본격화되자 경찰 매수 시도하기도경찰이 자신과 백씨의 통화내역을 확보한 것을 알게된 A씨는 이후 경찰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잠적했다. 그리고 백씨는 느닷없이 수사 경찰관들에게 수백만원의 뇌물을 건네려 했다.A씨 잠적으로 수사에 진척되지 못하던 상황에서 경찰은 우선적으로 백씨의 뇌물공여죄와 아들 김씨의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죄 사건을 수사했고, 검찰은 이들을 재판에 넘겼다. 법원은 2008년 3월 백씨에겐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아들 김씨에겐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고,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살인사건 수사는 2009년 11월 A씨가 검거되며 다시 재개됐다. A씨는 검거 직후부터 “교통사고는 백씨 제의로 실행됐고, 교통사고 전에 이미 김씨는 죽어있었던 것 같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그는 “백씨에게 범행 제안을 받았고, 백씨가 범행 하루 전 아들 김씨에게 ‘네가 내려와야 실행에 옮긴다’고 말하는 통화를 들었다”며 “백씨가 ‘남편이 좋아하는 복분자에 약을 타서 주겠다’고 얘기도 했다”고 밝혔다. 백씨도 A씨와의 내연관계였다는 점과 남편 김씨에게 복분자를 먹였다는 점을 인정했다.A씨 진술로 수사가 활기를 띠게 되던 상황에서 이번엔 사고 차량을 운전했던 김씨의 아들이 호주로 출국해 버리며 수사는 또 다른 난관에 봉착했다.검찰은 일단 2009년 말 아내 백씨와 A씨를 보험사기 혐의로 우선 기소했다. 법원은 2010년 6월 백씨와 A씨에게 각각 징역 5년,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백씨가 항소했으나 형은 2011년 1월 그대로 확정됐다. 그리고 2014년 4월 호주로 도피했던 아들 김씨가 호주에서 추방된 후 인천국제공항에서 입국 즉시 체포됐다. 검경은 일단 아들 김씨에 대해 보험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기는 한편, 살인 혐의에 대해선 재수사에 나섰다. 아들 김씨의 보험 사기 혐의는 1심에서 징역 5년형이 내려졌다.수사 결과, 아내 백씨와 아들 김씨는 피해자와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다. 백씨의 경우 오래전부터 피해자와 사실상 별거를 하고 있었고, 아들 김씨의 경우 결혼 반대에 앙심을 품고 있었다.◇끝까지 범행 부인…아내 2심서 “아들 아닌 내연남이 공범”두 사람은 2006년 사고 당일 오후 6~9시 사이에 피해자를 살해한 후, 시신을 조수석에 태운채 칠보사거리로 이동해 A씨 차량과 고의로 접촉사고를 일으켜 교통사고로 위장을 시도했다.아내 백씨와 아들 김씨는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교통사고로 인해 우연히 사망한 것이지, 피해자를 고의로 살해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법원은 백씨 모자의 주장을 일축하고 “살인이 맞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119구급대 도착 당시 생체징후가 전혀 없었고, 당시 촬영된 사진 속 피해자 모습이 이미 사망 몇 시간이 지난 것으로 추정되는 점 등을 유죄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1심은 백씨 모자에 대해 ‘존속살해’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각각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보험금 편취를 위해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음에도 여전히 변명에 급급한 태도로 일관하며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다.백씨 모자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아들 김씨의 보험사기 사건도 2심에서 병합돼 함께 진행됐다. 아들 김씨가 1심 때와 마찬가지로 범행 일체를 강력 부인하는 가운데, 백씨는 재판 도중 “남편을 죽인 것은 맞지만, 아들이 아닌 내연남 A씨와 공모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2심 재판부는 아들 김씨 주장과 백씨의 새 주장 모두 믿기 어렵다며 1심과 같이 존속살해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다만 양형의 경우 “피해자의 다른 유족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고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며 백씨에게 징역 15년, 아들 김씨에겐 보험사기죄까지 더해 징역 22년을 선고했다. 형은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 일가족 몰살시킨 둘째 아들, 죽은 형에게 누명까지[그해 오늘]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3년 2월 3일 새벽. 경찰이 전북 전주의 한 콩나물공장에서 잠을 자고 있던 박모(당시 25세)씨를 긴급체포했다. 박씨의 혐의는 존속살해였다. 집에서 연탄불 연기에 사망한 채 발견된 부모와 친형의 살인 용의자가 바로 당시 유일한 생존자였던 그가 바로 살인자였다.전주 일가족 존속살인 사건 범인 박모씨가 2013년 2월 7일 현장검증에 앞서 취재진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사건은 같은 해 1월 30일 오전 11시가 막 넘은 시간 119로 걸려온 한 통의 긴급구조 전화로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됐다.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부모 및 친형과 전주의 한 아파트에서 살던 박씨였다. 그는 힘없는 목소리로 “살려달라. 빨리 와달라”고 신고를 했다. 소방구조대가 긴급 출동해 아파트 초인종을 누르자 신고자인 박씨가 직접 문을 열고 나왔다.구조대가 집안으로 들어갔을 당시 연탄가스 냄새가 코를 찔렀다. 부모가 지내던 작은방은 약간 뿌옇게 연기가 찬 정도였고, 안방과 거실은 연기가 살짝 있는 정도였다. 구조대는 집안을 수색해 작은방에서 박씨 부모를, 안방에서 박씨 친형을 발견해 병원으로 긴급 후송했다. 세 사람 모두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박씨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은 병원 후송 직후 사망 판정을 받았다. 박씨는 병원에서 이뤄진 첫 경찰 조사에서 “새벽 5시까지 형과 술을 마시고 곯아떨어진 뒤 기억이 없다. 깨어났더니 연기가 자욱했다”고 진술했다. ‘일가족 동반 자살’로 보일 수 있는 사건이었지만, 경찰은 현장에서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고 숨진 이들이 평소 주변에 자살에 대해 암시를 전혀 하지 않았던 점을 토대로 여러 가능성을 두고 수사를 진행했다.수사 초기 사건 발생 불과 약 3주 전인 1월 8일에도 박씨 부모와 박씨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병원치료를 받았던 점이 확인됐다. 당시엔 일산화탄소 중독 원인을 발견하지 못해 치료만 받은 상태였다. 경찰은 이 점을 근거로 자살이 아닌 타살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이와중에 박씨는 부모와 친형 시신의 부검을 원하지 않는다고 경찰에 수차례 요청했다. 그는 애초 경찰 조사에서 “부모님과 친형 모두 가정생활에 문제없고, 지병도 없었다. 부검을 할 필요가 없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경찰은 박씨 요청을 일축하고 법원으로부터 부검영장을 받아 숨진 가족들의 부검을 진행했다. 수사가 타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진행되는 것을 눈치챈 박씨는 느닷없이 숨진 친형을 범인으로 몰기 시작했다. 친형이 가족을 죽이고 자살을 했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박씨는 음식점을 하던 친형이 장사가 잘 되지 않아 고민이 컸다며, 자신은 사고 당일 새벽 5시께 친형이 준 음료를 마신 직후 깊은 잠이 들었다고 주장했다.경찰은 박씨 진술의 신빙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듯한 일부 증거도 확인했다. 친형 차량에서 번개탄과 화덕을 옮긴 흔적이 발견됐고, 사망 당일 새벽 6시30분께 친형이 여자친구 등 지인들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안방과 작은방 컵에서 모두 졸피뎀 성분이 발견된 것도 박씨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듯했다.◇가족 살해후 상주 노릇하며 장례 치르기도하지만 친형을 범인으로 볼 수 없는 다수 증거와 정황도 잇따라 드러나며 박씨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어갔다. 특히 부모 시신 부검 결과와 박씨가 추론한 친형의 범행 시간이 맞지 않았다. 더욱이 콩나물공장을 운영하던 박씨 부친이 당일 새벽 2시가 넘은 시간 직원에게 ‘오늘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도 박씨 범행으로 보기엔 이해가 되지 않는 정황이었다..또 친형의 경우 당시 결혼을 준비하던 상황이었다. 새벽 시간 박씨 친형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은 당시 여자친구는 경찰 조사에서 “평소에 보내던 문자 표현 방식과 다르고 어색했다. 최근 저와 결혼을 약속하며 항상 행복해했다. 오히려 동생인 박씨가 친형에게 힘들다는 말을 자주하며 이런저런 부탁을 했다”고 진술했다. 아울러 ‘친형 가게 운영이 어려웠다’는 박씨 진술과 달리 친형 동업자는 경찰 조사에서 “가게 운영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이 같은 상황에서 박씨 부친 지인은 경찰 조사에서 “박씨 부친이 성격상 작은 아들인 박씨와는 같이 살 수 없어 공장을 큰 아들에게 물려주고 같이 살 계획이라고 말해왔다”며 “사고 직후인데도 박씨가 거래처 유지에 주력하는 등 공장 운영에 적극 개입하는 수상한 행동을 했다”고 진술했다.이제 경찰은 친형이 아닌 박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박씨는 상주 노릇을 하며 장례식을 치르기도 했다. 경찰은 장례식 이후 박씨의 차량에 대한 감식을 진행했는데, 차량은 얼마 전 차량 내외부 모두 세차를 해 깨끗한 상태였다.그리고 2월 2일 박씨 지인 A씨가 직접 경찰서를 찾았다. 박씨 차량을 직접 세차했다는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건 다음날 박씨가 차량과 원룸을 치워달라고 부탁했다. 박씨로부터 ‘내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말을 듣고 신고하러 왔다”고 진술했다. A씨로부터 이 같은 얘기를 들었다는 다른 지인들도 함께 경찰서를 찾았다. 경찰은 A씨 등 지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3일 새벽 박씨를 긴급체포했다.경찰 조사 결과, 장교 출신인 엄격했던 아버지에게 어린 시절부터 불만을 갖고 있던 박씨는 부친 공장에서 일하며 자주 혼이 나며 다퉜다. 박씨는 부친은 물론 모친과도 자주 다투며 이들에 대한 분노를 키웠고, 살인을 계획했다.◇지인에게 ‘범행’ 털어놨다가 덜미 박씨 부모가 원인미상의 ‘이산화탄소 중독’으로 치료를 받았던 1월 초 사건도 박씨의 살인미수 범행이었다. 그는 1월 7일 늦은 밤, 부모가 잠든 시간에 보일러 가스를 부모 거주방에 유입하는 방법으로 살인을 시도했다. 하지만 범행은 부모가 두통으로 잠에서 깨며 미수에 그쳤다.첫 번째 범행이 미수에 그친 박씨는 같은 달 30일 졸피뎀을 몰래 탄 음료를 부모와 친형에게 마시게 한 후, 새벽 시간 이들의 방에서 연탄을 넣은 화덕을 이용해 이들을 숨지게 했다. 졸피뎀은 친구 명의로 박씨가 처방받은 것이었다. 박씨는 연기가 방안을 가득 찬 이후에도 집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가족들이 연탄가스로 사망하길 기다렸다가 119에 전화를 했다.그는 범행 하루 뒤 병원으로 자신을 병문안 온 지인 A씨에게 “형과 함께 부모님을 돌아가시게 했다. 형과 함께 자살을 시도했지만 나 혼자 살아남았다”며 차량 세차 등을 통한 증거인멸을 요청했다. 범행 도구를 치워준 A씨가 고심 끝에 경찰에 직접 출석해 박씨로부터 들은 얘기를 털어놓은 것이다.검찰은 박씨를 존속살해, 살인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긴급체포 후 범행을 인정한 박씨는 법정에서 “실제 가족과 함께 죽으려고 했다. 또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1심은 “박씨는 가족들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119에 신고를 했고, 자신의 몸에선 소량의 일산화탄소만 검출됐다”며 “동반자살을 위장해 가족들을 계획적으로 살해한 것”이라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1심 재판부는 “부모와 친형을 살해한 박씨 범행은 지극히 반인륜적이고 반사회적”이라며 “가족 재산 탈취나 거액 보험금 수익 목적의 범행으로 의심된다”고 판단했다.검찰은 ‘사형을 선고해 달라’며 항소했으나, 2심은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생명을 빼앗는 사형에 처하기보다는 박씨를 사회로부터 무기한 격리해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참회하도록 해야 한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기징역은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확정됐다.
    한광범 기자 2023.02.03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3년 2월 3일 새벽. 경찰이 전북 전주의 한 콩나물공장에서 잠을 자고 있던 박모(당시 25세)씨를 긴급체포했다. 박씨의 혐의는 존속살해였다. 집에서 연탄불 연기에 사망한 채 발견된 부모와 친형의 살인 용의자가 바로 당시 유일한 생존자였던 그가 바로 살인자였다.전주 일가족 존속살인 사건 범인 박모씨가 2013년 2월 7일 현장검증에 앞서 취재진 질문에 답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사건은 같은 해 1월 30일 오전 11시가 막 넘은 시간 119로 걸려온 한 통의 긴급구조 전화로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됐다. 전화를 건 사람은 바로 부모 및 친형과 전주의 한 아파트에서 살던 박씨였다. 그는 힘없는 목소리로 “살려달라. 빨리 와달라”고 신고를 했다. 소방구조대가 긴급 출동해 아파트 초인종을 누르자 신고자인 박씨가 직접 문을 열고 나왔다.구조대가 집안으로 들어갔을 당시 연탄가스 냄새가 코를 찔렀다. 부모가 지내던 작은방은 약간 뿌옇게 연기가 찬 정도였고, 안방과 거실은 연기가 살짝 있는 정도였다. 구조대는 집안을 수색해 작은방에서 박씨 부모를, 안방에서 박씨 친형을 발견해 병원으로 긴급 후송했다. 세 사람 모두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박씨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은 병원 후송 직후 사망 판정을 받았다. 박씨는 병원에서 이뤄진 첫 경찰 조사에서 “새벽 5시까지 형과 술을 마시고 곯아떨어진 뒤 기억이 없다. 깨어났더니 연기가 자욱했다”고 진술했다. ‘일가족 동반 자살’로 보일 수 있는 사건이었지만, 경찰은 현장에서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고 숨진 이들이 평소 주변에 자살에 대해 암시를 전혀 하지 않았던 점을 토대로 여러 가능성을 두고 수사를 진행했다.수사 초기 사건 발생 불과 약 3주 전인 1월 8일에도 박씨 부모와 박씨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병원치료를 받았던 점이 확인됐다. 당시엔 일산화탄소 중독 원인을 발견하지 못해 치료만 받은 상태였다. 경찰은 이 점을 근거로 자살이 아닌 타살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기 시작했다. 이와중에 박씨는 부모와 친형 시신의 부검을 원하지 않는다고 경찰에 수차례 요청했다. 그는 애초 경찰 조사에서 “부모님과 친형 모두 가정생활에 문제없고, 지병도 없었다. 부검을 할 필요가 없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경찰은 박씨 요청을 일축하고 법원으로부터 부검영장을 받아 숨진 가족들의 부검을 진행했다. 수사가 타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진행되는 것을 눈치챈 박씨는 느닷없이 숨진 친형을 범인으로 몰기 시작했다. 친형이 가족을 죽이고 자살을 했을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박씨는 음식점을 하던 친형이 장사가 잘 되지 않아 고민이 컸다며, 자신은 사고 당일 새벽 5시께 친형이 준 음료를 마신 직후 깊은 잠이 들었다고 주장했다.경찰은 박씨 진술의 신빙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듯한 일부 증거도 확인했다. 친형 차량에서 번개탄과 화덕을 옮긴 흔적이 발견됐고, 사망 당일 새벽 6시30분께 친형이 여자친구 등 지인들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안방과 작은방 컵에서 모두 졸피뎀 성분이 발견된 것도 박씨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듯했다.◇가족 살해후 상주 노릇하며 장례 치르기도하지만 친형을 범인으로 볼 수 없는 다수 증거와 정황도 잇따라 드러나며 박씨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어갔다. 특히 부모 시신 부검 결과와 박씨가 추론한 친형의 범행 시간이 맞지 않았다. 더욱이 콩나물공장을 운영하던 박씨 부친이 당일 새벽 2시가 넘은 시간 직원에게 ‘오늘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도 박씨 범행으로 보기엔 이해가 되지 않는 정황이었다..또 친형의 경우 당시 결혼을 준비하던 상황이었다. 새벽 시간 박씨 친형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은 당시 여자친구는 경찰 조사에서 “평소에 보내던 문자 표현 방식과 다르고 어색했다. 최근 저와 결혼을 약속하며 항상 행복해했다. 오히려 동생인 박씨가 친형에게 힘들다는 말을 자주하며 이런저런 부탁을 했다”고 진술했다. 아울러 ‘친형 가게 운영이 어려웠다’는 박씨 진술과 달리 친형 동업자는 경찰 조사에서 “가게 운영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이 같은 상황에서 박씨 부친 지인은 경찰 조사에서 “박씨 부친이 성격상 작은 아들인 박씨와는 같이 살 수 없어 공장을 큰 아들에게 물려주고 같이 살 계획이라고 말해왔다”며 “사고 직후인데도 박씨가 거래처 유지에 주력하는 등 공장 운영에 적극 개입하는 수상한 행동을 했다”고 진술했다.이제 경찰은 친형이 아닌 박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박씨는 상주 노릇을 하며 장례식을 치르기도 했다. 경찰은 장례식 이후 박씨의 차량에 대한 감식을 진행했는데, 차량은 얼마 전 차량 내외부 모두 세차를 해 깨끗한 상태였다.그리고 2월 2일 박씨 지인 A씨가 직접 경찰서를 찾았다. 박씨 차량을 직접 세차했다는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건 다음날 박씨가 차량과 원룸을 치워달라고 부탁했다. 박씨로부터 ‘내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말을 듣고 신고하러 왔다”고 진술했다. A씨로부터 이 같은 얘기를 들었다는 다른 지인들도 함께 경찰서를 찾았다. 경찰은 A씨 등 지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3일 새벽 박씨를 긴급체포했다.경찰 조사 결과, 장교 출신인 엄격했던 아버지에게 어린 시절부터 불만을 갖고 있던 박씨는 부친 공장에서 일하며 자주 혼이 나며 다퉜다. 박씨는 부친은 물론 모친과도 자주 다투며 이들에 대한 분노를 키웠고, 살인을 계획했다.◇지인에게 ‘범행’ 털어놨다가 덜미 박씨 부모가 원인미상의 ‘이산화탄소 중독’으로 치료를 받았던 1월 초 사건도 박씨의 살인미수 범행이었다. 그는 1월 7일 늦은 밤, 부모가 잠든 시간에 보일러 가스를 부모 거주방에 유입하는 방법으로 살인을 시도했다. 하지만 범행은 부모가 두통으로 잠에서 깨며 미수에 그쳤다.첫 번째 범행이 미수에 그친 박씨는 같은 달 30일 졸피뎀을 몰래 탄 음료를 부모와 친형에게 마시게 한 후, 새벽 시간 이들의 방에서 연탄을 넣은 화덕을 이용해 이들을 숨지게 했다. 졸피뎀은 친구 명의로 박씨가 처방받은 것이었다. 박씨는 연기가 방안을 가득 찬 이후에도 집에서 머물렀다. 그리고 가족들이 연탄가스로 사망하길 기다렸다가 119에 전화를 했다.그는 범행 하루 뒤 병원으로 자신을 병문안 온 지인 A씨에게 “형과 함께 부모님을 돌아가시게 했다. 형과 함께 자살을 시도했지만 나 혼자 살아남았다”며 차량 세차 등을 통한 증거인멸을 요청했다. 범행 도구를 치워준 A씨가 고심 끝에 경찰에 직접 출석해 박씨로부터 들은 얘기를 털어놓은 것이다.검찰은 박씨를 존속살해, 살인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긴급체포 후 범행을 인정한 박씨는 법정에서 “실제 가족과 함께 죽으려고 했다. 또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1심은 “박씨는 가족들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119에 신고를 했고, 자신의 몸에선 소량의 일산화탄소만 검출됐다”며 “동반자살을 위장해 가족들을 계획적으로 살해한 것”이라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1심 재판부는 “부모와 친형을 살해한 박씨 범행은 지극히 반인륜적이고 반사회적”이라며 “가족 재산 탈취나 거액 보험금 수익 목적의 범행으로 의심된다”고 판단했다.검찰은 ‘사형을 선고해 달라’며 항소했으나, 2심은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생명을 빼앗는 사형에 처하기보다는 박씨를 사회로부터 무기한 격리해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참회하도록 해야 한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기징역은 대법원에서도 그대로 확정됐다.
  • 부모 직장까지 잃게 했던 과외…8년만에 허용되다[그해 오늘]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1989년 2월 2일, 정부가 대학생 과외를 전면 허용했다. 전두환 신군부가 권력을 탈취한 이후인 1980년 7월 30일 전면적인 과외 금지를 내건 지 8년 7개월 만이었다.문교부(현 교육부)는 이날 과외금지조치 완화방안으로 이 같은 대학생 과외를 전면적으로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당초 정부 내부에선 ‘방학 중 허용’을 고심했으나 논의 과정에서 전면 허용으로 변경됐다. 다만 입시학원의 경우는 여전히 재학생들에겐 방학에 한해서만 허용됐다.1998년 9월 서울시내 인문계 고교 교무부장둘이 서울시교육청 강당에서 불법 고액과외 추방을 위한 자정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우리나라 사교육 시장은 현재와 같은 학원이 아닌 과외 중심이었다. 높은 교육열 때문에, 1950년대부터 과외 수요는 폭발적이었다. 과거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시험을 보고 들어갔기에, 치열한 입시 전쟁 속에서 과외 등 사교육에 대한 수요도 매우 높았다.현재와 같이 대학교 재수에 그치지 않고 명문 중·고교에 입학하기 위해 재수를 하는 학생들도 많았기에 이들을 위한 사교육 시장도 점차 커지게 됐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대한 순차적인 평준화가 실시됐지만, 사교육 열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급격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국민들의 소득 수준도 높아지며 사교육 수요는 나날이 높아졌다. 현직교사들이 불법적으로 과외를 하다 적발되는 사건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기도 했다.◇자녀 과외시켰다가 공직자 139명 쫓겨나전두환 신군부는 권력을 탈취한 직후 인기영합주의 차원에서 과외를 전면 금지시켰다. 학원의 경우도 졸업생이나 독학생에 대해서만 전면 허용됐고, 중고교 재학생의 경우 방학에만 다닐 수 있도록 했다. 과외를 하다 적발되면 부모 신상이 공개되는 것은 물론, 공무원을 포함해 일반 사기업에서도 면직되는 등 강력한 처벌을 내리도록 했다. 단속을 위해 내부부(현 행정안전부)와 국세청 등이 포함된 합동단속반을 대규모로 꾸리기도 했다.실제 신군부는 과외금지 정책을 실시한 직후 대규모 단속을 실시해 그해 11월 과외를 받은 중·고생 96명을 적발해 이들 중 47명에 대해 무기정학을 시키고, 이들 부모는 24명에 대해선 직장에서 해고했다. 과외 교사들은 재판에 넘겨져 처벌을 받았다. 1987년 말까지 과외로 적발된 인원은 약 2500명, 이중 10%가량이 형사입건됐고, 직장에서 쫓겨난 공직자만 139명에 달했다.이처럼 제도 시행 초기, 신군부는 경찰을 중심으로 ‘과외 소탕’에 나섰다. 신군부는 정기적으로 과외 단속 실적을 발표하며 근절 의지를 드러내는 등 강력한 단속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과외 금지는 점점 더 유명무실해지고 있었다. 신군부가 사교육을 대체하겠다며 교육방송을 개국했지만 사교육 수요는 여전했다. 암암리에 비밀과외는 성행하고 있었고, 오히려 과외비에는 적발을 고려한 ‘위험수당’까지 포함되며 과외비가 더 오르게 됐다. 지난해 1월 서울의 한 아파트에 개인과외 광고 전단이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대법원도 1984년 9월 정부의 획일적 과외 단속에 제도를 거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대법원은 ‘불법 과외 교습’은 일정기간 동안 반복적으로 교습하는 행위만 해당하고, 지인 집에서 지인 자녀에게 반복성 없이 공부를 가르친 대학원생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헌재 “과외금지는 자녀교육권, 직원선택자유 침해”그 후 1987년 6.10 항쟁 등 민주화 열기가 고조되며 전두환 신군부의 퇴장을 앞둔 시기, ‘과외를 다시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8년부턴 정부의 사실상 과외 단속도 사라지며 비밀과외는 더욱 활성화됐고, 결국 정부도 사회적 분위기를 따랐다.1989년 정부의 발표 내용은 대학생에 한해서만 과외를 허용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엔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던 대학생들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대학생이 아닌 일반인의 과외는 물론, 대학생이 전문적으로 하는 과외 역시 금지했다. 중·고교 재학생들의 학원도 여전히 불법이었다.정부는 이후에도 대학생 과외가 아닌 불법과외에 대해 지속적으로 단속을 했다. 시민들 사이에선 일반인 과외가 횡행했지만, 법에선 여전히 일반인 과외를 엄격 금지했고 위반 시 ‘1년 이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생 과외만 허용되자, 결국 높은 과외비를 충당할 수 있는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의 사교육 격차는 커지기 시작했고, 시민들의 불만도 함께 커졌다. 결국 정부는 1991년 7월 초·중·고교 재학생의 학원 수강을 전면 허용했다.문민정부였던 김영삼·김대중 정부는 대학생 한정을 넘어 ‘과외 전면 허용’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으나, 여론의 반발에 밀려 결국 포기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헌법재판소가 2000년 4월 ‘과외금지’ 조항에 대해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므로 국민의 자녀교육권,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권,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규정”이라고 결정하며 ‘과외 금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한광범 기자 2023.02.02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1989년 2월 2일, 정부가 대학생 과외를 전면 허용했다. 전두환 신군부가 권력을 탈취한 이후인 1980년 7월 30일 전면적인 과외 금지를 내건 지 8년 7개월 만이었다.문교부(현 교육부)는 이날 과외금지조치 완화방안으로 이 같은 대학생 과외를 전면적으로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당초 정부 내부에선 ‘방학 중 허용’을 고심했으나 논의 과정에서 전면 허용으로 변경됐다. 다만 입시학원의 경우는 여전히 재학생들에겐 방학에 한해서만 허용됐다.1998년 9월 서울시내 인문계 고교 교무부장둘이 서울시교육청 강당에서 불법 고액과외 추방을 위한 자정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우리나라 사교육 시장은 현재와 같은 학원이 아닌 과외 중심이었다. 높은 교육열 때문에, 1950년대부터 과외 수요는 폭발적이었다. 과거 중학교와 고등학교도 시험을 보고 들어갔기에, 치열한 입시 전쟁 속에서 과외 등 사교육에 대한 수요도 매우 높았다.현재와 같이 대학교 재수에 그치지 않고 명문 중·고교에 입학하기 위해 재수를 하는 학생들도 많았기에 이들을 위한 사교육 시장도 점차 커지게 됐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대한 순차적인 평준화가 실시됐지만, 사교육 열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급격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국민들의 소득 수준도 높아지며 사교육 수요는 나날이 높아졌다. 현직교사들이 불법적으로 과외를 하다 적발되는 사건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기도 했다.◇자녀 과외시켰다가 공직자 139명 쫓겨나전두환 신군부는 권력을 탈취한 직후 인기영합주의 차원에서 과외를 전면 금지시켰다. 학원의 경우도 졸업생이나 독학생에 대해서만 전면 허용됐고, 중고교 재학생의 경우 방학에만 다닐 수 있도록 했다. 과외를 하다 적발되면 부모 신상이 공개되는 것은 물론, 공무원을 포함해 일반 사기업에서도 면직되는 등 강력한 처벌을 내리도록 했다. 단속을 위해 내부부(현 행정안전부)와 국세청 등이 포함된 합동단속반을 대규모로 꾸리기도 했다.실제 신군부는 과외금지 정책을 실시한 직후 대규모 단속을 실시해 그해 11월 과외를 받은 중·고생 96명을 적발해 이들 중 47명에 대해 무기정학을 시키고, 이들 부모는 24명에 대해선 직장에서 해고했다. 과외 교사들은 재판에 넘겨져 처벌을 받았다. 1987년 말까지 과외로 적발된 인원은 약 2500명, 이중 10%가량이 형사입건됐고, 직장에서 쫓겨난 공직자만 139명에 달했다.이처럼 제도 시행 초기, 신군부는 경찰을 중심으로 ‘과외 소탕’에 나섰다. 신군부는 정기적으로 과외 단속 실적을 발표하며 근절 의지를 드러내는 등 강력한 단속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과외 금지는 점점 더 유명무실해지고 있었다. 신군부가 사교육을 대체하겠다며 교육방송을 개국했지만 사교육 수요는 여전했다. 암암리에 비밀과외는 성행하고 있었고, 오히려 과외비에는 적발을 고려한 ‘위험수당’까지 포함되며 과외비가 더 오르게 됐다. 지난해 1월 서울의 한 아파트에 개인과외 광고 전단이 붙어 있다. (사진=연합뉴스)대법원도 1984년 9월 정부의 획일적 과외 단속에 제도를 거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대법원은 ‘불법 과외 교습’은 일정기간 동안 반복적으로 교습하는 행위만 해당하고, 지인 집에서 지인 자녀에게 반복성 없이 공부를 가르친 대학원생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헌재 “과외금지는 자녀교육권, 직원선택자유 침해”그 후 1987년 6.10 항쟁 등 민주화 열기가 고조되며 전두환 신군부의 퇴장을 앞둔 시기, ‘과외를 다시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8년부턴 정부의 사실상 과외 단속도 사라지며 비밀과외는 더욱 활성화됐고, 결국 정부도 사회적 분위기를 따랐다.1989년 정부의 발표 내용은 대학생에 한해서만 과외를 허용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엔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던 대학생들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대학생이 아닌 일반인의 과외는 물론, 대학생이 전문적으로 하는 과외 역시 금지했다. 중·고교 재학생들의 학원도 여전히 불법이었다.정부는 이후에도 대학생 과외가 아닌 불법과외에 대해 지속적으로 단속을 했다. 시민들 사이에선 일반인 과외가 횡행했지만, 법에선 여전히 일반인 과외를 엄격 금지했고 위반 시 ‘1년 이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생 과외만 허용되자, 결국 높은 과외비를 충당할 수 있는 가정과 그렇지 못한 가정의 사교육 격차는 커지기 시작했고, 시민들의 불만도 함께 커졌다. 결국 정부는 1991년 7월 초·중·고교 재학생의 학원 수강을 전면 허용했다.문민정부였던 김영삼·김대중 정부는 대학생 한정을 넘어 ‘과외 전면 허용’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으나, 여론의 반발에 밀려 결국 포기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헌법재판소가 2000년 4월 ‘과외금지’ 조항에 대해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므로 국민의 자녀교육권,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권,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규정”이라고 결정하며 ‘과외 금지’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 대권 꿈꾸던 안희정의 처참한 몰락[그해 오늘]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해 8월 4일 오전 만기 출소해 경기 여주교도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9년 2월 1일, 서울고법 형사12부가 성폭력 혐의로 재판을 받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게 징역 3년 6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5년 취업제한 명령도 함께 내려졌다. 안 전 지사 수행비서였던 김지은씨가 2018년 3월 5일 한 방송사 저녁 뉴스에 나와 “성폭력을 당했다”고 인터뷰한 지 10개월여 만이다. 안 전 지사는 당시 김씨의 방송 인터뷰 몇 시간 만인 6일 0시 50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김씨에 대한 사과와 함께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 입장은 잘못”이라고 밝힌 후, 도지사직 사퇴와 정치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그리고 6일 오전 10시 30분께 사직서를 제출하고 도지사직에서 물러났다.김씨는 변호인단을 구성해 6일 안 전 지사에 대해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 등의 혐의로 고소장을 서울서부지검에 냈다. 김씨 인터뷰 후 종적을 감췄던 안 전 지사는 8일 충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계획했으나 예정된 시간 직전 이를 취소했다. 그리고 하루 뒤인 9일 오후 5시 서울서부지검에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그리고 같은 달 19일 오전 10시 검찰에 두 번째 출석하며 취재진 앞에서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고소인들께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하십니다. 사과드립니다”라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검찰 조사에서도 “성관계 시 위력은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검찰은 두 차례 안 전 지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모두 기각됐다. 혐의를 다퉈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검찰은 안 전 지사에 대해 강제추행, 피감독자간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과 안 전 지사 측은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김씨 역시 증인으로 출석하거나 방청을 하며 수차례 재판을 지켜봤다.1심은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안 전 지사와 김씨가 지위상 위력관계인 점은 인정되나 김씨 진술 등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증언에 신빙성이 부족한 점이 다수 나타나고 그 외에 공소사실에 대해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이 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검찰은 즉각 항소했고, 서울고법 형사12부는 김씨 진술의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하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이 사소한 부분에서 불명확하더라도 그 진정성을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특히 첫 간음이 이뤄진 시기를 고려할 때, 수행비서 업무를 시작한 지 겨우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상황 등을 고려할 때 합의 하에 성관계를 했다는 것은 석연치 않다고 결론 냈다. 안 전 지사는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2019년 9월 9일 상고를 기각하고 유죄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안 전 지사는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 경기도 여주교도소로 이감돼 남은 형기를 복역한 후 지난해 8월 만기출소했다.
    한광범 기자 2023.02.01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지난해 8월 4일 오전 만기 출소해 경기 여주교도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9년 2월 1일, 서울고법 형사12부가 성폭력 혐의로 재판을 받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게 징역 3년 6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5년 취업제한 명령도 함께 내려졌다. 안 전 지사 수행비서였던 김지은씨가 2018년 3월 5일 한 방송사 저녁 뉴스에 나와 “성폭력을 당했다”고 인터뷰한 지 10개월여 만이다. 안 전 지사는 당시 김씨의 방송 인터뷰 몇 시간 만인 6일 0시 50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김씨에 대한 사과와 함께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 입장은 잘못”이라고 밝힌 후, 도지사직 사퇴와 정치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그리고 6일 오전 10시 30분께 사직서를 제출하고 도지사직에서 물러났다.김씨는 변호인단을 구성해 6일 안 전 지사에 대해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 등의 혐의로 고소장을 서울서부지검에 냈다. 김씨 인터뷰 후 종적을 감췄던 안 전 지사는 8일 충남도청에서 기자회견을 계획했으나 예정된 시간 직전 이를 취소했다. 그리고 하루 뒤인 9일 오후 5시 서울서부지검에 자진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그리고 같은 달 19일 오전 10시 검찰에 두 번째 출석하며 취재진 앞에서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고소인들께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하십니다. 사과드립니다”라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검찰 조사에서도 “성관계 시 위력은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검찰은 두 차례 안 전 지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모두 기각됐다. 혐의를 다퉈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었다.검찰은 안 전 지사에 대해 강제추행, 피감독자간음,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과 안 전 지사 측은 법정에서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김씨 역시 증인으로 출석하거나 방청을 하며 수차례 재판을 지켜봤다.1심은 안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안 전 지사와 김씨가 지위상 위력관계인 점은 인정되나 김씨 진술 등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증언에 신빙성이 부족한 점이 다수 나타나고 그 외에 공소사실에 대해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이 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검찰은 즉각 항소했고, 서울고법 형사12부는 김씨 진술의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하며 1심 판결을 뒤집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이 사소한 부분에서 불명확하더라도 그 진정성을 함부로 배척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특히 첫 간음이 이뤄진 시기를 고려할 때, 수행비서 업무를 시작한 지 겨우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상황 등을 고려할 때 합의 하에 성관계를 했다는 것은 석연치 않다고 결론 냈다. 안 전 지사는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2019년 9월 9일 상고를 기각하고 유죄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구치소에 수감 중이던 안 전 지사는 대법원 확정 판결 이후 경기도 여주교도소로 이감돼 남은 형기를 복역한 후 지난해 8월 만기출소했다.
  • "엄마를 죽여달라" 딸의 살인청부…엄마는 용서했다[그해 오늘]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9년 1월 31일. 서울남부지법 한 법정에 여성 A씨(당시 31세)가 울먹이며 피고인신문을 받고 있다. A씨에게 공소가 제기된 혐의는 존속살해예비죄였다. 심부름업체에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해달라고 청부했다는 혐의였다. 심부름업체 운영자 B씨가 애초부터 A씨로부터 돈만 받아 챙기려 했기에, 실제 범행은 실행되지 않았다.어린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A씨는 어린 시절부터 결혼 이후까지 어머니 C씨로부터 사사건건 통제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그는 2018년 10월 사실혼 관계에 있던 남편과 헤어지고 내연남과 새로운 출발을 꿈꿨다. 당시 A씨의 내연남은 쇼트트랙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김동성이었다.2018년 4월 김동성을 처음 만난 A씨는 친절하던 김동성에게 빠져 들었고, 적극적으로 애정공세를 폈다. 당시 A씨는 물론 김동성 역시 모두 배우자가 있던 상황이었다.A씨는 김동성에게 자신의 강남 아파트 등기부등본까지 보여주는 등 재력을 과시하며 접근했다. 교제 기간 동안 A씨가 김동성에게 건넨 금품은 애스턴마틴 승용차, 롤렉스 시계를 포함해 5억5000만원 상당이었다.◇“오늘 내일 중 범행하면 추가 1억 주겠다”김동성과의 새출발을 꿈꾼 A씨는 모친의 존재가 새출발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청부살인을 계획했다. 그는 2018년 11월 인터넷에서 검색한 ‘심부름센터’에 메일로 ‘자살로 위장해 살인을 할 수 있느냐’고 청부살인을 의뢰했다.심부름센터로부터 ‘가능하다’는 답장을 받은 A씨는 이후 한 달여 동안 모친 집의 주소, 비밀번호, 모친의 생활습관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총 6500만원을 송금했다. 심부름센터 운영자 B씨가 돈을 받은 후에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자, 같은 해 12월엔 “오늘 내일 중으로 마무리하면 1억원 드리겠다”고 추가 제안을 하기도 했다.A씨는 이 같은 제안을 하며 12월 초 김동성과 살기 위해 계약한 강남 아파트 전세계약 잔금지급 일정과 범행시 모친 장례일정 등을 언급하며 범행을 재촉하기도 했다. 하지만 애초 돈만 받고 살인할 계획이 없던 B씨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실행하지 않았다. 그 사이 A씨의 남자관계를 의심하던 A씨 남편이 A씨의 이메일에 몰래 접속하며 범행은 탄로 났다.당시 사건은 세간에 충격을 줬다. 서울 강남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재력이 있는 현직 중학교 기간제 교사가 자신을 홀로 키운 어머니를 살해하려 했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김동성도 A씨 모친으로부터 뒤늦게 연락을 받고서야 A씨의 살인청부 범행을 알게 됐다.자칫 존속살인 피해자가 될 수 있었던 A씨 모친은 수사기관과 법원에 딸의 탄원서를 수차례 냈다. 그는 탄원서에서 “저의 지나친 간섭과 폭언, 폭행 등 강압적인 통제로 딸이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르게 됐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그는 거의 매일 구치소에 수감된 딸을 찾았다. ◇당사자들 “내연관계 아니다”→법원 “내연관계”A씨는 “어릴 때부터 엄마로부터 너무 많은 억압과 규제를 받았다. 제가 만나는 남자친구를 다 탐탁지 않게 여기고 그런 부분에서 엄마가 없으면 힘들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이 있었다”고 평소 모친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이어 “엄마는 도덕적 잣대가 높아서 김동성을 만난다고 하면 그 남자를 죽이려고 하실 게 뻔했다”며 “(살인청부가 김동성 때문이라고) 꼭 그렇게 볼 수는 없지만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청부살인 의뢰는 단순 호기심 차원이었다”고 주장했다.그는 다만 모친과 관련해선 “죄는 내가 지었는데 엄마가 죄책감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면회를 오신 엄마가 ‘내가 받아야 할 죄를 네가 대신 받는구나’라며 많이 울고 가셨다”며 “엄마가 면회에 오지 않는 날이 있었는데 엄마가 날 포기한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웠다”며 울먹였다.김동성은 A씨와 내연관계가 아니라고 주장했고 A씨 역시 “나 혼자 좋아한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으나, 법원은 “내연관계”라고 인정했다.1심은 “적극적으로 피해자 정보를 제공하고 거액의 금원을 교부한 점에 비춰보면 A씨의 청부살인 의뢰 의사는 아주 진지하고 확고했다”며 “범행 배경엔 단순히 모친과의 갈등뿐만 아니라 재속 상속이라는 금전적 의도도 있었다고 보인다”고 판단했다.그러면서도 “피해자인 A씨의 모친이 범행의 배경이 강압적 통제 등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라며 선처를 탄원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징역 2년을 선고했다. A씨는 “형량이 높다”며 상소했지만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한광범 기자 2023.01.31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9년 1월 31일. 서울남부지법 한 법정에 여성 A씨(당시 31세)가 울먹이며 피고인신문을 받고 있다. A씨에게 공소가 제기된 혐의는 존속살해예비죄였다. 심부름업체에 자신의 어머니를 살해해달라고 청부했다는 혐의였다. 심부름업체 운영자 B씨가 애초부터 A씨로부터 돈만 받아 챙기려 했기에, 실제 범행은 실행되지 않았다.어린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A씨는 어린 시절부터 결혼 이후까지 어머니 C씨로부터 사사건건 통제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그는 2018년 10월 사실혼 관계에 있던 남편과 헤어지고 내연남과 새로운 출발을 꿈꿨다. 당시 A씨의 내연남은 쇼트트랙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던 김동성이었다.2018년 4월 김동성을 처음 만난 A씨는 친절하던 김동성에게 빠져 들었고, 적극적으로 애정공세를 폈다. 당시 A씨는 물론 김동성 역시 모두 배우자가 있던 상황이었다.A씨는 김동성에게 자신의 강남 아파트 등기부등본까지 보여주는 등 재력을 과시하며 접근했다. 교제 기간 동안 A씨가 김동성에게 건넨 금품은 애스턴마틴 승용차, 롤렉스 시계를 포함해 5억5000만원 상당이었다.◇“오늘 내일 중 범행하면 추가 1억 주겠다”김동성과의 새출발을 꿈꾼 A씨는 모친의 존재가 새출발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청부살인을 계획했다. 그는 2018년 11월 인터넷에서 검색한 ‘심부름센터’에 메일로 ‘자살로 위장해 살인을 할 수 있느냐’고 청부살인을 의뢰했다.심부름센터로부터 ‘가능하다’는 답장을 받은 A씨는 이후 한 달여 동안 모친 집의 주소, 비밀번호, 모친의 생활습관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총 6500만원을 송금했다. 심부름센터 운영자 B씨가 돈을 받은 후에도 별다른 움직임이 없자, 같은 해 12월엔 “오늘 내일 중으로 마무리하면 1억원 드리겠다”고 추가 제안을 하기도 했다.A씨는 이 같은 제안을 하며 12월 초 김동성과 살기 위해 계약한 강남 아파트 전세계약 잔금지급 일정과 범행시 모친 장례일정 등을 언급하며 범행을 재촉하기도 했다. 하지만 애초 돈만 받고 살인할 계획이 없던 B씨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실행하지 않았다. 그 사이 A씨의 남자관계를 의심하던 A씨 남편이 A씨의 이메일에 몰래 접속하며 범행은 탄로 났다.당시 사건은 세간에 충격을 줬다. 서울 강남에 아파트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재력이 있는 현직 중학교 기간제 교사가 자신을 홀로 키운 어머니를 살해하려 했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김동성도 A씨 모친으로부터 뒤늦게 연락을 받고서야 A씨의 살인청부 범행을 알게 됐다.자칫 존속살인 피해자가 될 수 있었던 A씨 모친은 수사기관과 법원에 딸의 탄원서를 수차례 냈다. 그는 탄원서에서 “저의 지나친 간섭과 폭언, 폭행 등 강압적인 통제로 딸이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르게 됐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그는 거의 매일 구치소에 수감된 딸을 찾았다. ◇당사자들 “내연관계 아니다”→법원 “내연관계”A씨는 “어릴 때부터 엄마로부터 너무 많은 억압과 규제를 받았다. 제가 만나는 남자친구를 다 탐탁지 않게 여기고 그런 부분에서 엄마가 없으면 힘들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이 있었다”고 평소 모친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했다.이어 “엄마는 도덕적 잣대가 높아서 김동성을 만난다고 하면 그 남자를 죽이려고 하실 게 뻔했다”며 “(살인청부가 김동성 때문이라고) 꼭 그렇게 볼 수는 없지만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청부살인 의뢰는 단순 호기심 차원이었다”고 주장했다.그는 다만 모친과 관련해선 “죄는 내가 지었는데 엄마가 죄책감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면회를 오신 엄마가 ‘내가 받아야 할 죄를 네가 대신 받는구나’라며 많이 울고 가셨다”며 “엄마가 면회에 오지 않는 날이 있었는데 엄마가 날 포기한 것 같아서 너무 무서웠다”며 울먹였다.김동성은 A씨와 내연관계가 아니라고 주장했고 A씨 역시 “나 혼자 좋아한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으나, 법원은 “내연관계”라고 인정했다.1심은 “적극적으로 피해자 정보를 제공하고 거액의 금원을 교부한 점에 비춰보면 A씨의 청부살인 의뢰 의사는 아주 진지하고 확고했다”며 “범행 배경엔 단순히 모친과의 갈등뿐만 아니라 재속 상속이라는 금전적 의도도 있었다고 보인다”고 판단했다.그러면서도 “피해자인 A씨의 모친이 범행의 배경이 강압적 통제 등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라며 선처를 탄원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징역 2년을 선고했다. A씨는 “형량이 높다”며 상소했지만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 "난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습니다"[그해 오늘]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1991년 1월30일 서른 살 여성 김부남씨가 55세 남성 송백권씨를 살해했다. 김씨는 아홉 살 때 송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데 대한 복수로 살인을 결심하고 실행했다.1991년 재판을 받던 김부남씨.(사진=KBS)어려서 김씨네 집은 우물이 없었다. 송씨네 집에 달린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일은 김씨의 몫이었다. 송씨는 이를 이용해 김씨를 상대로 성폭행을 저질렀다. 김씨는 이 사실을 알리면 가족을 해칠 것이라는 송씨의 협박에 무력하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속을 앓았다.이후 심각한 대인 기피증과 혐오증을 겪었다. 정상적인 학창생활도 사회생활도 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성인이 돼 짝을 만나 결혼을 했지만, 결혼 생활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당시 겪은 일이 떠올라서 부부관계를 맺을 수가 없었다. 이혼하고 재혼했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 트라우마가 심해졌다.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송씨를 처벌해야겠다는 심정이 섰지만, 제도는 김씨 편이 아니었다. 성범죄는 친고죄여서 피해자가 6개월 안에 신고해야 가해자를 처벌하던 시대였다. 아홉 살이던 김씨는 이미 서른 살이 돼 버린 상태였다. 게다가 공소시효도 만료해서 송씨를 벌할 길이 없었다.송씨를 찾아가 따졌으나 송씨는 사과 한마디 없이 합의금으로 40만 원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다 끝난 일이라고 반발했다. 절망한 김씨는 사적 복수를 결심했다. 그리고 사건 당일 송씨 집으로 찾아가 복수를 단행했다. 김씨의 칼날은 송씨의 사타구니에 집중됐다. 중풍을 맞아 거동이 불편했던 송씨는 별 저항도 못하고 갔다.살인 현행범으로 체포된 김씨의 혐의는 명백했다. 김씨는 법정에서 “나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다”고 스스로 자백했다. 사연이 알려지면서 김씨 구명 운동이 벌어졌다. 검찰은 살인죄의 최소 형량 징역 5년을 구형했다.그럼에도 유죄는 피할 수 없었다. 1심 법원은 징역 2년6개월의 집행을 5년간 유예하는 형을 선고했다. 최소 형량의 절반 수준을 선고하고 집행을 유예한 것이다. 이 판결은 대법원까지 그대로 확정됐다. 김씨는 치료감호소에서 지내다가 1993년 5월 출소했다.이 사건은 아동 성폭력의 심각성을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다. 김부남 사건이 발생한 이듬해 김보은-김진관 사건이 발생했다. 어려서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성인이 돼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었다.성폭행 친고죄는 2013년 폐지됐다.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아도 처벌하고, 합의하더라도 처벌한다. 현재는 성폭행 피해자가 13세 미만인 사건은 공소시효 없이 처벌한다.
    전재욱 기자 2023.01.30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1991년 1월30일 서른 살 여성 김부남씨가 55세 남성 송백권씨를 살해했다. 김씨는 아홉 살 때 송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데 대한 복수로 살인을 결심하고 실행했다.1991년 재판을 받던 김부남씨.(사진=KBS)어려서 김씨네 집은 우물이 없었다. 송씨네 집에 달린 우물에서 물을 길어오는 일은 김씨의 몫이었다. 송씨는 이를 이용해 김씨를 상대로 성폭행을 저질렀다. 김씨는 이 사실을 알리면 가족을 해칠 것이라는 송씨의 협박에 무력하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속을 앓았다.이후 심각한 대인 기피증과 혐오증을 겪었다. 정상적인 학창생활도 사회생활도 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성인이 돼 짝을 만나 결혼을 했지만, 결혼 생활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당시 겪은 일이 떠올라서 부부관계를 맺을 수가 없었다. 이혼하고 재혼했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 트라우마가 심해졌다.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송씨를 처벌해야겠다는 심정이 섰지만, 제도는 김씨 편이 아니었다. 성범죄는 친고죄여서 피해자가 6개월 안에 신고해야 가해자를 처벌하던 시대였다. 아홉 살이던 김씨는 이미 서른 살이 돼 버린 상태였다. 게다가 공소시효도 만료해서 송씨를 벌할 길이 없었다.송씨를 찾아가 따졌으나 송씨는 사과 한마디 없이 합의금으로 40만 원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다 끝난 일이라고 반발했다. 절망한 김씨는 사적 복수를 결심했다. 그리고 사건 당일 송씨 집으로 찾아가 복수를 단행했다. 김씨의 칼날은 송씨의 사타구니에 집중됐다. 중풍을 맞아 거동이 불편했던 송씨는 별 저항도 못하고 갔다.살인 현행범으로 체포된 김씨의 혐의는 명백했다. 김씨는 법정에서 “나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다”고 스스로 자백했다. 사연이 알려지면서 김씨 구명 운동이 벌어졌다. 검찰은 살인죄의 최소 형량 징역 5년을 구형했다.그럼에도 유죄는 피할 수 없었다. 1심 법원은 징역 2년6개월의 집행을 5년간 유예하는 형을 선고했다. 최소 형량의 절반 수준을 선고하고 집행을 유예한 것이다. 이 판결은 대법원까지 그대로 확정됐다. 김씨는 치료감호소에서 지내다가 1993년 5월 출소했다.이 사건은 아동 성폭력의 심각성을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다. 김부남 사건이 발생한 이듬해 김보은-김진관 사건이 발생했다. 어려서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성인이 돼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었다.성폭행 친고죄는 2013년 폐지됐다.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아도 처벌하고, 합의하더라도 처벌한다. 현재는 성폭행 피해자가 13세 미만인 사건은 공소시효 없이 처벌한다.
  • 그놈 목소리 찾습니다..이형호군 유괴[그해 오늘]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1991년 1월29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놀이터에서 이형호 군이 사라졌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이군은 그날 저녁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췄다. 그날 밤 이군을 데리고 있다는 남성이 이군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유괴였다.범인 몽타주.(사진=경찰)이군의 몸값으로 현금 7000만원을 요구한 범인은 의심이 많았다. 김포공항에 돈을 실은 차량을 주차해두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는데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와서는 “차에 사람이 타 있으면 어떡하느냐”고 따졌다. 트렁크에 형사가 타고 있었지만, 차에는 사람이 타 있지 않았다. 다음에는 서울 충무로 태극당 앞으로 돈을 가지고 나오라고 하고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온 범인은 현장에 경찰관이 있어서 안 나갔다고 했다. 다 넘겨짚은 것으로 보였다.한번은 집으로 전화를 걸어 형사인 척하면서 “옆에 형사 좀 바꿔달라”고 하기도 했다. 경찰에 신고했는지 떠보려고 한 것이었다. 경찰관이 이군의 집에 있었지만 가족의 기지로 위기를 넘겼다.그러자 범인은 계좌로 돈을 보내라고 요구했다. 돈을 찾으러 은행에 나타났지만 의심이 많은 범인은 그대로 도망했다. CCTV가 없어서 범인 모습과 행적을 파악하지 못했다. 사실 범인을 잡을 기회는 이전에도 있었다. 앞서 양화대교 모처에 돈을 두라고 해서 가짜 돈다발을 가져다 두었고 실제로 범인은 그 돈을 가져갔다. 경찰이 잠복하고 있었지만, 실수로 범인을 놓쳤다. 가짜 돈을 가져간 범인은 전화를 걸어서 “형호를 되찾길 바라지 않는 걸로 알겠다”고 하고서는 연락을 끊었다. 그게 마지막 연락이었다. 그날까지 44차례 전화를 걸어서 가족을 괴롭혔다.그해 3월13일 형호군의 시신이 한강공원 잠실지구에서 발견됐다. 부검 결과 유괴된 당일 살해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범인은 형호군이 무사한 듯이 가족을 속여서 몸값을 받아내려고 한 것이다. 이후 사건은 공개수사로 전환됐다. 협박 전화 녹음이 방송과 유선으로 공개됐다. 녹음테이프가 팔려나갈 만큼 전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경찰은 형호군의 친척을 용의자로 지목했다. 여러 정황 증거와 성문 분석 결과가 그의 범행을 지목하고 있었다. 그러나 범인으로 특정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는 없었다. 수사는 오리무중이었고 결국 이 사건은 지금까지 미제로 남았다. 2006년 1월 공소시효도 지나버렸다.SBS의 간판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는 첫화(1992년 3월31일 방영)에서 이 사건을 다뤘다. 이 방송의 피디를 맡았던 박진표 감독은 이 사건을 영화 ‘그놈 목소리’로 만들었다.
    전재욱 기자 2023.01.29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1991년 1월29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놀이터에서 이형호 군이 사라졌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이군은 그날 저녁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췄다. 그날 밤 이군을 데리고 있다는 남성이 이군의 집으로 전화를 걸어왔다. 유괴였다.범인 몽타주.(사진=경찰)이군의 몸값으로 현금 7000만원을 요구한 범인은 의심이 많았다. 김포공항에 돈을 실은 차량을 주차해두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는데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와서는 “차에 사람이 타 있으면 어떡하느냐”고 따졌다. 트렁크에 형사가 타고 있었지만, 차에는 사람이 타 있지 않았다. 다음에는 서울 충무로 태극당 앞으로 돈을 가지고 나오라고 하고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온 범인은 현장에 경찰관이 있어서 안 나갔다고 했다. 다 넘겨짚은 것으로 보였다.한번은 집으로 전화를 걸어 형사인 척하면서 “옆에 형사 좀 바꿔달라”고 하기도 했다. 경찰에 신고했는지 떠보려고 한 것이었다. 경찰관이 이군의 집에 있었지만 가족의 기지로 위기를 넘겼다.그러자 범인은 계좌로 돈을 보내라고 요구했다. 돈을 찾으러 은행에 나타났지만 의심이 많은 범인은 그대로 도망했다. CCTV가 없어서 범인 모습과 행적을 파악하지 못했다. 사실 범인을 잡을 기회는 이전에도 있었다. 앞서 양화대교 모처에 돈을 두라고 해서 가짜 돈다발을 가져다 두었고 실제로 범인은 그 돈을 가져갔다. 경찰이 잠복하고 있었지만, 실수로 범인을 놓쳤다. 가짜 돈을 가져간 범인은 전화를 걸어서 “형호를 되찾길 바라지 않는 걸로 알겠다”고 하고서는 연락을 끊었다. 그게 마지막 연락이었다. 그날까지 44차례 전화를 걸어서 가족을 괴롭혔다.그해 3월13일 형호군의 시신이 한강공원 잠실지구에서 발견됐다. 부검 결과 유괴된 당일 살해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범인은 형호군이 무사한 듯이 가족을 속여서 몸값을 받아내려고 한 것이다. 이후 사건은 공개수사로 전환됐다. 협박 전화 녹음이 방송과 유선으로 공개됐다. 녹음테이프가 팔려나갈 만큼 전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경찰은 형호군의 친척을 용의자로 지목했다. 여러 정황 증거와 성문 분석 결과가 그의 범행을 지목하고 있었다. 그러나 범인으로 특정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는 없었다. 수사는 오리무중이었고 결국 이 사건은 지금까지 미제로 남았다. 2006년 1월 공소시효도 지나버렸다.SBS의 간판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는 첫화(1992년 3월31일 방영)에서 이 사건을 다뤘다. 이 방송의 피디를 맡았던 박진표 감독은 이 사건을 영화 ‘그놈 목소리’로 만들었다.
  • 성덕바우만, 잘 지내시나요?[그해 오늘]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성덕 바우만, 이 아이를 누가 살릴 것인가’.한국방송(KBS)이 1996년 1월28일 방영한 이 한편의 프로그램은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1977년 미국 미네소타주(州) 가정으로 입양된 한국계 미국 입양아 김성덕(미국명 브라이언 성덕바우만) 씨 얘기였다.공군사관학교복을 입은 성덕 바우만(왼쪽).(사진=연합뉴스)장성한 김씨는 미국 공군사관학교에 1992년 입학했다. 사관학교는 미국 주류사회를 구성하는 엘리트의 산실이었기에 아메리칸드림이었다. 그러나 재학 도중 만성 골수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타인에게서 골수를 이식받지 못하면 생명이 위태로운 병이었다.김씨의 부모는 치료를 위해 전 재산을 쏟아 부었지만, 대증요법일 뿐이었다. 결국, 골수를 이식받아야 풀릴 문제였다. 1996년 5월 임관을 앞둔 김씨의 꿈, 파일럿은 이렇게 지는 듯했다. 미국에서 기증자를 찾지 못한 김씨 가족은 한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병세는 만성에서 급성으로 악화해갔다.KBS 방송으로 김씨의 딱한 사연이 국내에 알려지자 골수 이식 희망자가 줄을 이었다. 한국 사관생도들이 골수를 이식하겠다고 검사를 자처했다. 그러나 골수 이식은 의지만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주는 쪽과 받는 이의 유전자가 일치해야 가능했다. 일치할 확률이 높은 혈족 간에도 어긋나기가 일쑤였다. 피가 안 섞인 남남끼리 유전자가 맞기는 수십만 명에 하나일 만큼 희박했다.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육군 병장으로 복무하던 서한국씨 유전자가 김씨와 일치한 것이다. 대한적십자사가 7000여명의 유전자를 대조한 끝에 얻어낸 결과였다. 1996년 7월 미국으로 날아간 서씨는 김씨에게 골수를 이식했다. 당대 인기가수 룰라는 미국 현지에서 성덕바우만 회복을 위한 공연을 열어 쾌유를 빌었다.다행히 두 사람은 순조롭게 회복했다. 이로써 김씨는 건강하게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내부 규정상 임관은 하지 못해 파일럿의 꿈을 접었지만, IT 업계에 종사하며 2002년 가정을 꾸렸다.김씨 사례는 국내에 여러 변화를 불러왔다. 우선 골수 이식에 대한 저변을 크게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조혈모세포를 기증하는 바람이 일었다. 실제로 성덕바우만이 수술받은 이듬해 또 다른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계가 한국인으로부터 골수를 이식받기도 했다. 아울러 해외로 입양된 이들의 친족을 찾는 움직임에 힘을 실어줬다. 타인보다는 혈족의 도움을 받는 것이 골수 이식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전재욱 기자 2023.01.28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성덕 바우만, 이 아이를 누가 살릴 것인가’.한국방송(KBS)이 1996년 1월28일 방영한 이 한편의 프로그램은 전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1977년 미국 미네소타주(州) 가정으로 입양된 한국계 미국 입양아 김성덕(미국명 브라이언 성덕바우만) 씨 얘기였다.공군사관학교복을 입은 성덕 바우만(왼쪽).(사진=연합뉴스)장성한 김씨는 미국 공군사관학교에 1992년 입학했다. 사관학교는 미국 주류사회를 구성하는 엘리트의 산실이었기에 아메리칸드림이었다. 그러나 재학 도중 만성 골수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타인에게서 골수를 이식받지 못하면 생명이 위태로운 병이었다.김씨의 부모는 치료를 위해 전 재산을 쏟아 부었지만, 대증요법일 뿐이었다. 결국, 골수를 이식받아야 풀릴 문제였다. 1996년 5월 임관을 앞둔 김씨의 꿈, 파일럿은 이렇게 지는 듯했다. 미국에서 기증자를 찾지 못한 김씨 가족은 한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병세는 만성에서 급성으로 악화해갔다.KBS 방송으로 김씨의 딱한 사연이 국내에 알려지자 골수 이식 희망자가 줄을 이었다. 한국 사관생도들이 골수를 이식하겠다고 검사를 자처했다. 그러나 골수 이식은 의지만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주는 쪽과 받는 이의 유전자가 일치해야 가능했다. 일치할 확률이 높은 혈족 간에도 어긋나기가 일쑤였다. 피가 안 섞인 남남끼리 유전자가 맞기는 수십만 명에 하나일 만큼 희박했다.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육군 병장으로 복무하던 서한국씨 유전자가 김씨와 일치한 것이다. 대한적십자사가 7000여명의 유전자를 대조한 끝에 얻어낸 결과였다. 1996년 7월 미국으로 날아간 서씨는 김씨에게 골수를 이식했다. 당대 인기가수 룰라는 미국 현지에서 성덕바우만 회복을 위한 공연을 열어 쾌유를 빌었다.다행히 두 사람은 순조롭게 회복했다. 이로써 김씨는 건강하게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내부 규정상 임관은 하지 못해 파일럿의 꿈을 접었지만, IT 업계에 종사하며 2002년 가정을 꾸렸다.김씨 사례는 국내에 여러 변화를 불러왔다. 우선 골수 이식에 대한 저변을 크게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조혈모세포를 기증하는 바람이 일었다. 실제로 성덕바우만이 수술받은 이듬해 또 다른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계가 한국인으로부터 골수를 이식받기도 했다. 아울러 해외로 입양된 이들의 친족을 찾는 움직임에 힘을 실어줬다. 타인보다는 혈족의 도움을 받는 것이 골수 이식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 개과천선 '노숙자의 천사' 형제?…그들은 아동성범죄자였다[그해 오늘]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3년 1월 27일. 인천 중부경찰서는 당시 인천 지역에서 10여년 동안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며 ‘노숙자의 천사’로 불리던 A씨 형제를 구속했다고 발표했다.A씨 형제에게 적용된 혐의는 미성년자 강간과 상습공갈 등이었다. 과거 주먹 세계 생활을 청산하고 개과천선해 여러 언론에도 미담사례로 소개됐던 형제의 민낯이 드러난 순간이었다.개과천선한 ‘노숙자의 천사’로 알려졌던 A씨 형제. 이들의 실체는 10여년 만에 드러났다. (사진=YTN뉴스 갈무리)A씨와 동생 B씨는 각각 전과 14범, 13범이었다. A씨는 마지막 출소 이후인 2000년부터 인천에서 무료급식소와 노숙자 쉼터를 운영했고, 동생 B씨는 이 쉼터에서 거주했다.다수의 폭력 전과를 갖고 있던 A씨 형제는 출소 후 개관천선하겠다며 노숙자 급식소를 운영했다. A씨는 자신을 목사라 사칭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한 지상파 프로그램에 나와 유명세를 탔고,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까지 받기도 했다.◇장애인 가족 수당 1800만원도 협박으로 빼앗아지적장애 노숙인이었던 C씨는 2005년부터 A씨가 운영하는 노숙자 쉼터에서 거주하기 시작했고, 이듬해 자신의 두 딸을 노숙자 쉼터로 데려와 함께 거주했다. C씨의 두 딸 모두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7~8세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었다.A씨 형제의 본색은 2009년께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몸에 있는 문신을 보여주고 과거 조직폭력배였다고 말을 하며 C씨를 지속적으로 폭행하거나 위협했다.이들은 C씨가 장애인 수급비를 받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폭행과 협박을 동원해 이를 가로채기 시작했다. A씨 형제가 2년 넘게 갈취한 장애인 수급비만 1800만원이 넘었다. 이들은 장애인 수급비를 주지 않으려던 C씨를 흉기로 찌르기도 했다.이를 지켜본 C씨의 10대 초중반 자녀들이 자신들에게 두려움을 느끼자 성폭행을 시작했다. 지적장애가 있던 C씨의 두 딸들은 속수무책으로 A씨 형제로부터 수년 간 피해를 당했다. 마찬가지로 지적장애가 있던 C씨는 A씨 형제의 계속된 폭행과 공갈에 두려움을 떨다 노숙자 쉼터를 자주 비우며 C씨 자녀들은 더욱 무방비로 성폭력에 노출되기도 했다. 성폭력은 무려 3년 넘게 지속됐지만 C씨는 자녀들에 대한 성폭력은 전혀 알지 못했다.피해자들이 제대로 신고를 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범행은 우연한 기회에 드러나게 됐다. 담당 구청이 C씨 가족의 가정 환경을 관찰하다가 C씨가 자주 집을 비우는 사실을 확인하고, ‘자녀들이 방치되고 있다’고 판단한 구청은 C씨에게 친권포기를 제안했다.◇구청, 피해사실 모른채 아버지 친권박탈 시도이를 뒤늦게 알게 된 C씨가 구청을 찾아 난동을 부렸고,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C씨 조사 과정에서 “A씨 형제로부터 지속적으로 폭행·공갈을 당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A씨 형제의 여죄 확인을 위해 C씨 자녀들을 조사했고 이 과정에서 성폭행 사실도 확인했다.경찰은 C씨 자녀들의 진술을 토대로 A씨 형제를 긴급체포한 후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구속했다. 검찰은 A씨 형제에게 청소년 강간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A씨 형제는 “협박에 의한 강압적 성관계는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1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A씨와 B씨에게 각각 징역 12년과 징역 10년을 선고하고 신상정보 10년 고지를 명령했다.재판부는 “지역사회 이름이 알려진 자선활동 사업가로 활동하며 피해자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해줘야 할 지위에 있었음에도 성범죄에 취약한 피해자들을 지속적으로 강간하거나 추행해 사회적 비난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질타했다.이어 “어리고 지적장애가 있는 피해자들을 수년간에 걸쳐 강간하고 추행해 죄질이 극히 중하고 반사회적으로서, 피해자들은 평생 치유하기 힘든 극심한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지적했다.C씨와 두 자녀가 법원에 A씨 형제에 대한 처벌불원서를 제출했지만 양형에 적용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은 미성년자이자 장애인에 해당하고 처벌불원의사에 통상적으로 납득할 만한 사유가 없으며 처벌불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인식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A씨 형제는 판결에 불복해 상소했지만 1심 형량은 2013년 11월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한광범 기자 2023.01.27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3년 1월 27일. 인천 중부경찰서는 당시 인천 지역에서 10여년 동안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며 ‘노숙자의 천사’로 불리던 A씨 형제를 구속했다고 발표했다.A씨 형제에게 적용된 혐의는 미성년자 강간과 상습공갈 등이었다. 과거 주먹 세계 생활을 청산하고 개과천선해 여러 언론에도 미담사례로 소개됐던 형제의 민낯이 드러난 순간이었다.개과천선한 ‘노숙자의 천사’로 알려졌던 A씨 형제. 이들의 실체는 10여년 만에 드러났다. (사진=YTN뉴스 갈무리)A씨와 동생 B씨는 각각 전과 14범, 13범이었다. A씨는 마지막 출소 이후인 2000년부터 인천에서 무료급식소와 노숙자 쉼터를 운영했고, 동생 B씨는 이 쉼터에서 거주했다.다수의 폭력 전과를 갖고 있던 A씨 형제는 출소 후 개관천선하겠다며 노숙자 급식소를 운영했다. A씨는 자신을 목사라 사칭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한 지상파 프로그램에 나와 유명세를 탔고,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까지 받기도 했다.◇장애인 가족 수당 1800만원도 협박으로 빼앗아지적장애 노숙인이었던 C씨는 2005년부터 A씨가 운영하는 노숙자 쉼터에서 거주하기 시작했고, 이듬해 자신의 두 딸을 노숙자 쉼터로 데려와 함께 거주했다. C씨의 두 딸 모두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었고 7~8세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었다.A씨 형제의 본색은 2009년께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몸에 있는 문신을 보여주고 과거 조직폭력배였다고 말을 하며 C씨를 지속적으로 폭행하거나 위협했다.이들은 C씨가 장애인 수급비를 받는 사실을 알게 된 후 폭행과 협박을 동원해 이를 가로채기 시작했다. A씨 형제가 2년 넘게 갈취한 장애인 수급비만 1800만원이 넘었다. 이들은 장애인 수급비를 주지 않으려던 C씨를 흉기로 찌르기도 했다.이를 지켜본 C씨의 10대 초중반 자녀들이 자신들에게 두려움을 느끼자 성폭행을 시작했다. 지적장애가 있던 C씨의 두 딸들은 속수무책으로 A씨 형제로부터 수년 간 피해를 당했다. 마찬가지로 지적장애가 있던 C씨는 A씨 형제의 계속된 폭행과 공갈에 두려움을 떨다 노숙자 쉼터를 자주 비우며 C씨 자녀들은 더욱 무방비로 성폭력에 노출되기도 했다. 성폭력은 무려 3년 넘게 지속됐지만 C씨는 자녀들에 대한 성폭력은 전혀 알지 못했다.피해자들이 제대로 신고를 하지 못하던 상황에서 범행은 우연한 기회에 드러나게 됐다. 담당 구청이 C씨 가족의 가정 환경을 관찰하다가 C씨가 자주 집을 비우는 사실을 확인하고, ‘자녀들이 방치되고 있다’고 판단한 구청은 C씨에게 친권포기를 제안했다.◇구청, 피해사실 모른채 아버지 친권박탈 시도이를 뒤늦게 알게 된 C씨가 구청을 찾아 난동을 부렸고,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C씨 조사 과정에서 “A씨 형제로부터 지속적으로 폭행·공갈을 당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A씨 형제의 여죄 확인을 위해 C씨 자녀들을 조사했고 이 과정에서 성폭행 사실도 확인했다.경찰은 C씨 자녀들의 진술을 토대로 A씨 형제를 긴급체포한 후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구속했다. 검찰은 A씨 형제에게 청소년 강간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A씨 형제는 “협박에 의한 강압적 성관계는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1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A씨와 B씨에게 각각 징역 12년과 징역 10년을 선고하고 신상정보 10년 고지를 명령했다.재판부는 “지역사회 이름이 알려진 자선활동 사업가로 활동하며 피해자들을 실질적으로 보호해줘야 할 지위에 있었음에도 성범죄에 취약한 피해자들을 지속적으로 강간하거나 추행해 사회적 비난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질타했다.이어 “어리고 지적장애가 있는 피해자들을 수년간에 걸쳐 강간하고 추행해 죄질이 극히 중하고 반사회적으로서, 피해자들은 평생 치유하기 힘든 극심한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지적했다.C씨와 두 자녀가 법원에 A씨 형제에 대한 처벌불원서를 제출했지만 양형에 적용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은 미성년자이자 장애인에 해당하고 처벌불원의사에 통상적으로 납득할 만한 사유가 없으며 처벌불원의 의미를 정확하게 인식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A씨 형제는 판결에 불복해 상소했지만 1심 형량은 2013년 11월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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