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제부

김정남

기자

미국은 지금

  • '중금리 중물가' 시대 왔나…고장난 연준 공격 긴축[미국은 지금]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효과는 고장 났나. 연준이 1년여간 역대급 돈줄 조이기에 나섰음에도 예상을 깨고 5% 안팎에서 ‘끈적끈적한’ 고물가가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저금리 저물가’ 시대가 저물고 ‘중금리 중물가’ 시대가 왔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마냥 긴축에 나서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있다.이 때문에 연준이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때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어느 때보다 고민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공격 긴축을 지속하면 경기 침체는 강하게 오는 와중에 물가는 안 잡히는 최악의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까지 나온다.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사진=AFP 제공)◇공격 긴축에도 물가 고공행진29일(현지시간) 미국 미시건대에 따르면 4월 미시건대 1년 기대인플레이션 중간값은 4.6%를 기록했다. 지난해 11월(4.9%) 이후 최고치다. 사람들이 1년간 4% 후반대 물가 상승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는 의미다. 연준이 지난해 3월 이후 금리를 무려 475bp(1bp=0.01%포인트) 인상하는 역대급 긴축을 펼쳤음에도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조사하는 1년 기대인플레이션 역시 현재 4.7% 수준이다. 심지어 5년 기대인플레이션마저 3.0%로 전월(2.9%)보다 높아졌다. 연준 목표치를 한참 웃도는 수준이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팬데믹 기간의 재정 확대는 미국을 2%대 인플레이션 국가에서 5%대 인플레이션 국가로 만들어 놓았다”며 “경제가 눈에 띄게 둔화하기 전까지는 인플레이션이 하락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근래 서머스 교수는 2020년대 들어서며 2010년대와는 다른 높은 중립금리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해 왔다.연준이 주시하는 개인소비지출(PCE) 보고서에서도 그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3월 PCE 가격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4.2% 상승했다. 직전 월인 2월 당시 상승률(5.1%)보다 낮았다. 2021년 5월 이후 최소 폭 상승이다. 그러나 변동성이 큰 에너지, 식료품을 제외한 PCE 근원물가는 예상을 웃돌았다. 1년 전보다 4.6% 상승하면서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4.5%)를 상회했다. 연준 통화정책 목표치(2.0%) 대비 한참 높다. 기조적인 물가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가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지속하고 있다는 뜻이다. 월가 한 금융사의 채권 애널리스트는 “4월 들어 유가가 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4월 물가는 근원물가뿐만 아니라 헤드라인물가 역시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경제고문은 이번 PCE 보고서를 두고 “인플레이션은 예상보다 훨씬 더 끈적끈적하다”고 평가했다.◇6월 이후 연준 고민 더 커질듯또 주목할 만한 것은 개인 소득이 줄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3월 개인 소득은 전월 대비 0.3% 증가했다. 2월(0.3%)과 비슷했다. 노동시장 과열에 따른 임금 상승세는 구조적인 인플레이션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다른 지표들도 인플레이션 장기화에 무게를 실었다.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올해 1분기 고용비용지수(ECI)는 전기 대비 1.2% 상승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시장 전망치(1.1%)를 웃돌았다. 지난해 4분기(1.1%)보다 오름 폭을 키웠다.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는 “ECI는 임금 상승률이 둔화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에 무게를 싣는다”고 했다.이에 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은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전날 기준 시장은 연준이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통해 금리를 25bp 올릴 확률을 83.9%로 보고 있다. 다만 6월 이후부터는 고민의 연속일 가능성이 크다. 시장은 연준이 6월 FOMC 때 추가로 25bp 더 인상해 5.25~5.50%에 이를 확률을 26.8%로 보고 있다. 그 대신 5.00~5.25%로 동결할 것이라는 베팅은 62.2%로 상대적으로 높다. 금리를 올려도 물가가 잘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최근 경기 침체 우려까지 부쩍 커지고 있는 만큼 두 차례 이상 추가 인상은 무리라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자칫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일각에서 나온다.
    김정남 기자 2023.05.01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효과는 고장 났나. 연준이 1년여간 역대급 돈줄 조이기에 나섰음에도 예상을 깨고 5% 안팎에서 ‘끈적끈적한’ 고물가가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저금리 저물가’ 시대가 저물고 ‘중금리 중물가’ 시대가 왔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마냥 긴축에 나서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있다.이 때문에 연준이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때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어느 때보다 고민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공격 긴축을 지속하면 경기 침체는 강하게 오는 와중에 물가는 안 잡히는 최악의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까지 나온다.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사진=AFP 제공)◇공격 긴축에도 물가 고공행진29일(현지시간) 미국 미시건대에 따르면 4월 미시건대 1년 기대인플레이션 중간값은 4.6%를 기록했다. 지난해 11월(4.9%) 이후 최고치다. 사람들이 1년간 4% 후반대 물가 상승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는 의미다. 연준이 지난해 3월 이후 금리를 무려 475bp(1bp=0.01%포인트) 인상하는 역대급 긴축을 펼쳤음에도 약발이 먹히지 않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조사하는 1년 기대인플레이션 역시 현재 4.7% 수준이다. 심지어 5년 기대인플레이션마저 3.0%로 전월(2.9%)보다 높아졌다. 연준 목표치를 한참 웃도는 수준이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팬데믹 기간의 재정 확대는 미국을 2%대 인플레이션 국가에서 5%대 인플레이션 국가로 만들어 놓았다”며 “경제가 눈에 띄게 둔화하기 전까지는 인플레이션이 하락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근래 서머스 교수는 2020년대 들어서며 2010년대와는 다른 높은 중립금리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해 왔다.연준이 주시하는 개인소비지출(PCE) 보고서에서도 그 징후를 발견할 수 있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3월 PCE 가격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4.2% 상승했다. 직전 월인 2월 당시 상승률(5.1%)보다 낮았다. 2021년 5월 이후 최소 폭 상승이다. 그러나 변동성이 큰 에너지, 식료품을 제외한 PCE 근원물가는 예상을 웃돌았다. 1년 전보다 4.6% 상승하면서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4.5%)를 상회했다. 연준 통화정책 목표치(2.0%) 대비 한참 높다. 기조적인 물가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가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지속하고 있다는 뜻이다. 월가 한 금융사의 채권 애널리스트는 “4월 들어 유가가 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4월 물가는 근원물가뿐만 아니라 헤드라인물가 역시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경제고문은 이번 PCE 보고서를 두고 “인플레이션은 예상보다 훨씬 더 끈적끈적하다”고 평가했다.◇6월 이후 연준 고민 더 커질듯또 주목할 만한 것은 개인 소득이 줄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3월 개인 소득은 전월 대비 0.3% 증가했다. 2월(0.3%)과 비슷했다. 노동시장 과열에 따른 임금 상승세는 구조적인 인플레이션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다른 지표들도 인플레이션 장기화에 무게를 실었다.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올해 1분기 고용비용지수(ECI)는 전기 대비 1.2% 상승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시장 전망치(1.1%)를 웃돌았다. 지난해 4분기(1.1%)보다 오름 폭을 키웠다.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는 “ECI는 임금 상승률이 둔화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에 무게를 싣는다”고 했다.이에 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은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전날 기준 시장은 연준이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통해 금리를 25bp 올릴 확률을 83.9%로 보고 있다. 다만 6월 이후부터는 고민의 연속일 가능성이 크다. 시장은 연준이 6월 FOMC 때 추가로 25bp 더 인상해 5.25~5.50%에 이를 확률을 26.8%로 보고 있다. 그 대신 5.00~5.25%로 동결할 것이라는 베팅은 62.2%로 상대적으로 높다. 금리를 올려도 물가가 잘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최근 경기 침체 우려까지 부쩍 커지고 있는 만큼 두 차례 이상 추가 인상은 무리라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자칫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일각에서 나온다.
  • 예상밖 호실적에도…월가 리더들은 웃지 못했다[미국은 지금]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더 높은 금리가 오랜 기간 지속할 위험에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연방준비제도(Fed)가 50bp(1bp=0.01%포인트) 혹은 75bp 추가로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할 겁니다.”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미국 주요 금융기관들이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의 반사이익을 누리며 ‘어닝 서프라이즈’를 보였지만, 월가 수장들은 결코 웃지 못했다. 각 금융기관은 시스템으로 묶여 있는 만큼 추가 파산이 현실화할 경우 또 언제든 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2010년대와는 다른 ‘더 높은 금리’ ‘더 높은 물가’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도 나왔다.이번 깜짝 실적은 은행 위기 이후 처음 나온 금융기관 ‘성적표’라는 점에서 주목 받았다. 다만 실적 그 자체보다 월가 리더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이목이 더 모아졌다.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 (사진=AFP 제공)◇다이먼 “높은 금리의 영향 연구중”선봉에 선 이는 ‘월가 황제’ 다이먼 회장이었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를 2004년부터 20년째 이끌고 있는 베테랑인 그는 이번 SVB 사태 때 주요 은행들을 불러 모아 돈을 걷은 뒤 위기를 초기에 수습해 주목받았다.JP모건은 유독 두드러진 깜짝 실적을 공개했다. 올해 1분기 4.10달러의 주당순이익(EPS)을 올리며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이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3.41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매출액은 383억5000만달러로 시장 전망치(361억3000만달러)를 상회했다. 특히 지난달 말 고객 예금은 지난해 12월 말보다 370억달러 급증한 2조3800억달러로 나타났다. 미국인들이 중소형은행에서 돈을 빼 대형은행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은행 위기가 JP모건체이스에 오히려 호재로 작용한 셈이다.그러나 컨퍼런스콜에 나선 다이먼 회장의 목소리는 그리 밝지 않았다. 그는 “우리는 6%에 가까운 기준금리가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고 있다”며 “JP모건체이스의 모든 고객들에게 ‘당신의 기업과 당신의 비즈니스와 당신의 투자가 더 높아진 금리에 따른 과도한 위험에 처하지 말게 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번에 중소형은행 불안은 결국 금리가 상승했기 때문에 벌어졌다는 의미로 읽힌다. 다이먼 회장은 “다른 지역은행들도 꽤 좋은 실적을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추가적인 은행 파산의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다이먼 회장은 “소비자들은 계속 돈을 쓰고 있고 기업들은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면서도 “지난 1년간 봤던 경제 먹구름은 여전히 남아 있고 은행권 혼란은 이런 위험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은행권 불안 △매파적인 연준 △불확실한 대(對)중국 관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을 거론하며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들”이라고 했다.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 (사진=AFP 제공)◇핑크 “50bp 혹은 75bp 추가 인상”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큰 손’ 블랙록의 이끄는 핑크 회장 역시 금리 위험을 강조했다. 블랙록은 올해 1분기 7.93달러의 EPS를 기록하면서 월가 예상치(7.78달러)를 웃도는 호실적을 보였다.핑크 회장은 CNBC와 만난 자리에서 “내년 초에는 경기 침체가 닥칠 수 있지만 올해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다소 낙관론을 폈다. 그는 그러나 인플레이션 고공행진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기 침체 가능성은 연준이 벌이는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 달려있다”며 “인플레이션이 당분간 더 오래 지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연준이 50bp 혹은 75bp 금리를 더 올려야 할 것이라고 했다. 현재 4.75~5.00%에서 최고 5.50~5.75%까지 인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월가 컨센서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핑크 회장은 “금융시장은 이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 고객들은 까다로운 경제 환경에 대비해 투자 포트폴리오를 더 탄력적으로 운용하고 있다”며 “그것이 지금 보고 있는 일”이라고 했다.미국 3위 은행인 씨티그룹은 1분기 1.86달러의 EPS를 올리며 시장 전망치(1.69달러)를 넘는 호실적을 발표했다. 제인 프레이저 최고경영자(CEO)는 컨퍼런스콜에 나와 “(최근 은행권 불안이) 올해 말 미국 경제의 얕은 침체를 유발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며 “특히 1분기 내내 소비 지출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고 말했다.제인 프레이저 씨티그룹 최고경영자(CEO). (사진=AFP 제공)
    김정남 기자 2023.04.16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더 높은 금리가 오랜 기간 지속할 위험에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연방준비제도(Fed)가 50bp(1bp=0.01%포인트) 혹은 75bp 추가로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할 겁니다.”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미국 주요 금융기관들이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의 반사이익을 누리며 ‘어닝 서프라이즈’를 보였지만, 월가 수장들은 결코 웃지 못했다. 각 금융기관은 시스템으로 묶여 있는 만큼 추가 파산이 현실화할 경우 또 언제든 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2010년대와는 다른 ‘더 높은 금리’ ‘더 높은 물가’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도 나왔다.이번 깜짝 실적은 은행 위기 이후 처음 나온 금융기관 ‘성적표’라는 점에서 주목 받았다. 다만 실적 그 자체보다 월가 리더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이목이 더 모아졌다.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 (사진=AFP 제공)◇다이먼 “높은 금리의 영향 연구중”선봉에 선 이는 ‘월가 황제’ 다이먼 회장이었다.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건체이스를 2004년부터 20년째 이끌고 있는 베테랑인 그는 이번 SVB 사태 때 주요 은행들을 불러 모아 돈을 걷은 뒤 위기를 초기에 수습해 주목받았다.JP모건은 유독 두드러진 깜짝 실적을 공개했다. 올해 1분기 4.10달러의 주당순이익(EPS)을 올리며 금융정보업체 팩트셋이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3.41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매출액은 383억5000만달러로 시장 전망치(361억3000만달러)를 상회했다. 특히 지난달 말 고객 예금은 지난해 12월 말보다 370억달러 급증한 2조3800억달러로 나타났다. 미국인들이 중소형은행에서 돈을 빼 대형은행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은행 위기가 JP모건체이스에 오히려 호재로 작용한 셈이다.그러나 컨퍼런스콜에 나선 다이먼 회장의 목소리는 그리 밝지 않았다. 그는 “우리는 6%에 가까운 기준금리가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고 있다”며 “JP모건체이스의 모든 고객들에게 ‘당신의 기업과 당신의 비즈니스와 당신의 투자가 더 높아진 금리에 따른 과도한 위험에 처하지 말게 하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번에 중소형은행 불안은 결국 금리가 상승했기 때문에 벌어졌다는 의미로 읽힌다. 다이먼 회장은 “다른 지역은행들도 꽤 좋은 실적을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추가적인 은행 파산의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다이먼 회장은 “소비자들은 계속 돈을 쓰고 있고 기업들은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면서도 “지난 1년간 봤던 경제 먹구름은 여전히 남아 있고 은행권 혼란은 이런 위험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은행권 불안 △매파적인 연준 △불확실한 대(對)중국 관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을 거론하며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들”이라고 했다.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 (사진=AFP 제공)◇핑크 “50bp 혹은 75bp 추가 인상”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큰 손’ 블랙록의 이끄는 핑크 회장 역시 금리 위험을 강조했다. 블랙록은 올해 1분기 7.93달러의 EPS를 기록하면서 월가 예상치(7.78달러)를 웃도는 호실적을 보였다.핑크 회장은 CNBC와 만난 자리에서 “내년 초에는 경기 침체가 닥칠 수 있지만 올해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다소 낙관론을 폈다. 그는 그러나 인플레이션 고공행진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기 침체 가능성은 연준이 벌이는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 달려있다”며 “인플레이션이 당분간 더 오래 지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연준이 50bp 혹은 75bp 금리를 더 올려야 할 것이라고 했다. 현재 4.75~5.00%에서 최고 5.50~5.75%까지 인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월가 컨센서스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핑크 회장은 “금융시장은 이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 고객들은 까다로운 경제 환경에 대비해 투자 포트폴리오를 더 탄력적으로 운용하고 있다”며 “그것이 지금 보고 있는 일”이라고 했다.미국 3위 은행인 씨티그룹은 1분기 1.86달러의 EPS를 올리며 시장 전망치(1.69달러)를 넘는 호실적을 발표했다. 제인 프레이저 최고경영자(CEO)는 컨퍼런스콜에 나와 “(최근 은행권 불안이) 올해 말 미국 경제의 얕은 침체를 유발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며 “특히 1분기 내내 소비 지출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고 말했다.제인 프레이저 씨티그룹 최고경영자(CEO). (사진=AFP 제공)
  • "S&P 4600 간다" vs "약세장 랠리일 뿐"[미국은 지금]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새로운 강세장의 시작일까. 약세장 중 반짝 랠리일까.뉴욕 증시가 올해 1분기 예상 밖 상승하면서 추후 흐름에 관심이 모아진다.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지속, 갑작스러운 은행권 위기, 짙어진 경기 침체 그림자 등을 둘러싼 해석에 따라 전망은 엇갈리는 분위기다. 변수 하나하나가 모두 불확실한 만큼 큰 변동성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1일(현지시간)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대형주 중심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전기 대비 7.03% 상승했다. 지난달 31일 종가는 4109.31을 기록했다.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 지수는 16.77% 뛰었다. 특히 나스닥 지수의 상승 폭은 지난 2020년 2분기 이후 가장 컸다.이는 당초 예상보다 강세를 보인 것이다. 이데일리가 지난해 말 당시 집계한 월가 22개 기관들의 올해 S&P 지수 전망치는 평균 4169.54(전년 대비 8.40% 상승)로 나타났는데, 한 분기 만에 이에 근접했기 때문이다. 오는 2~4분기 때 하락 전환 가능성이 있지만, 그럼에도 긴축 국면을 딛고 올랐다는 점에서 뜻밖의 랠리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사진=AFP 제공)◇“은행 위기 끝나…증시 추가 상승”그렇다면 앞으로 뉴욕 증시 흐름은 어떻게 될까. 일단 현재 강세 분위기를 타고 상승을 지속할 것이라는 주장이 많다. ‘월가 강세론자’ 에드 야데니 야데니리서치 대표는 “최근 은행권 혼란으로 인해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중단할 가능성이 높다”며 “올해 금리를 내릴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더 올릴 필요는 없을 정도로 이미 충분히 제한적인 수준에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 위기로 연준의 최종금리가 낮아지면서 증시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의미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시장은 연준이 차기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금리를 4.75~5.00%로 동결할 확률을 51.6%로 보고 있다. 25bp(1bp=0.01%포인트) 인상(48.4%)보다 약간 높다. 더 나아가 6월과 7월 FOMC 때 이를 유지한 뒤 9월부터는 인하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는데 다소 기울어 있다.야데니 대표는 또 “은행 위기는 연준과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잘 억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올해 말 S&P 전망치를 4600으로 제시했다. 지금보다 12% 가까이 추가 상승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는 이전 예상치(4800)보다 하향했지만, 그래도 지난해 10월 12일(3577.01)을 바닥으로 강세장이 이어지고 있다는 시각은 바꾸지 않았다.CFRA 리서치의 알렉산더 요쿰 분석가는 “최근 약세를 보인 지역 은행주를 중심으로 저가 매수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P 지역은행 상장지수펀드(ETF)는 은행 불안이 수면 위에 오른 지난달 8일 이후 23.99% 급락했다. CFRA 리서치의 연말 S&P 전망치는 4575다. 시장분석기관 펀드스트랫의 연구에 따르면 1950년 이후 12번의 증시 약세장 가운데 6번은 10월에 바닥을 쳤다. 지금도 바닥을 쳤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펀드스트랫의 톰 리 리서치 책임자는 채권 변동성 지수(MOVE index)가 지난달 15일 198.71까지 치솟았다가 다시 135.93까지 떨어진 점을 언급하면서 “은행 위기가 끝났다는 중요한 신호”라고 했다.[이데일리 이미나 기자]◇“침체 탓에 S&P 3500선 각오해야”그러나 현재 상승장이 약세장 랠리일 뿐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모건스탠리의 마이크 윌슨 수석주식전략가는 “일부 투자자들이 은행주 대신 기술주에 눈을 돌리고 있지만 기업들은 (경기 침체 탓에) 수익 압박에 직면할 것”이라며 “(은행 위기 등) 최근 몇 주간 사태들을 보면 우리의 가이던스는 점점 비현실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모건스탠리는 당초 올해 S&P 전망치를 3900으로 제시했는데, 이보다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윌슨 전략가는 “증시를 둘러싼 위험은 지난 6~12개월 동안보다 더 높아졌다”고 했다.블랙록의 웨이 리 글로벌주식전략가는 “연준의 급격한 긴축으로 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떠오르고 있다”며 “현재 증시 수익률 전망은 다가올 경기 침체를 반영한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블랙록은 당초 S&P 전망치를 3930으로 내놓았던 기관이다. 리 전략가는 여전히 미국 주식에 대해 ‘비중 축소’를 권고했다. 재무전략 플랫폼 소피의 리즈 영 투자전략본부장은 “연준이 1년 만에 475bp 인상한 후 강세장으로 향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며 “경기 침체는 증시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15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증시는 최고점에서 58% 폭락했다”며 “이번이 금융위기의 재림은 아니지만 적어도 25% 이상 하락할 것”이라고 했다. 시장이 달아올랐던 2021년 12월 31일 당시 고점(4766.18)과 비교하면 S&P 지수가 적어도 3500선까지는 떨어질 것으로 보는 셈이다.올해 2분기 반짝 상승 후 하락장에 접어들 것이라는 예측 역시 있다. 밥 미셸 JP모건 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금융위기 당시 (2008년 3월에 있었던) JP모건의 베어스턴스 합병 이후 그 다음 분기 때 증시는 15~20% 올랐다”며 “이번에도 2분기에는 위험 자산 선호가 나타날 것”이라고 점쳤다. 그는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라며 “미국은 연준의 긴축에 따른 경기 침체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김정남 기자 2023.04.03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새로운 강세장의 시작일까. 약세장 중 반짝 랠리일까.뉴욕 증시가 올해 1분기 예상 밖 상승하면서 추후 흐름에 관심이 모아진다.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지속, 갑작스러운 은행권 위기, 짙어진 경기 침체 그림자 등을 둘러싼 해석에 따라 전망은 엇갈리는 분위기다. 변수 하나하나가 모두 불확실한 만큼 큰 변동성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1일(현지시간) 마켓포인트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서 대형주 중심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전기 대비 7.03% 상승했다. 지난달 31일 종가는 4109.31을 기록했다.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 지수는 16.77% 뛰었다. 특히 나스닥 지수의 상승 폭은 지난 2020년 2분기 이후 가장 컸다.이는 당초 예상보다 강세를 보인 것이다. 이데일리가 지난해 말 당시 집계한 월가 22개 기관들의 올해 S&P 지수 전망치는 평균 4169.54(전년 대비 8.40% 상승)로 나타났는데, 한 분기 만에 이에 근접했기 때문이다. 오는 2~4분기 때 하락 전환 가능성이 있지만, 그럼에도 긴축 국면을 딛고 올랐다는 점에서 뜻밖의 랠리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사진=AFP 제공)◇“은행 위기 끝나…증시 추가 상승”그렇다면 앞으로 뉴욕 증시 흐름은 어떻게 될까. 일단 현재 강세 분위기를 타고 상승을 지속할 것이라는 주장이 많다. ‘월가 강세론자’ 에드 야데니 야데니리서치 대표는 “최근 은행권 혼란으로 인해 연준이 기준금리 인상을 중단할 가능성이 높다”며 “올해 금리를 내릴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더 올릴 필요는 없을 정도로 이미 충분히 제한적인 수준에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 위기로 연준의 최종금리가 낮아지면서 증시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의미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시장은 연준이 차기 5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금리를 4.75~5.00%로 동결할 확률을 51.6%로 보고 있다. 25bp(1bp=0.01%포인트) 인상(48.4%)보다 약간 높다. 더 나아가 6월과 7월 FOMC 때 이를 유지한 뒤 9월부터는 인하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는데 다소 기울어 있다.야데니 대표는 또 “은행 위기는 연준과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잘 억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올해 말 S&P 전망치를 4600으로 제시했다. 지금보다 12% 가까이 추가 상승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는 이전 예상치(4800)보다 하향했지만, 그래도 지난해 10월 12일(3577.01)을 바닥으로 강세장이 이어지고 있다는 시각은 바꾸지 않았다.CFRA 리서치의 알렉산더 요쿰 분석가는 “최근 약세를 보인 지역 은행주를 중심으로 저가 매수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S&P 지역은행 상장지수펀드(ETF)는 은행 불안이 수면 위에 오른 지난달 8일 이후 23.99% 급락했다. CFRA 리서치의 연말 S&P 전망치는 4575다. 시장분석기관 펀드스트랫의 연구에 따르면 1950년 이후 12번의 증시 약세장 가운데 6번은 10월에 바닥을 쳤다. 지금도 바닥을 쳤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펀드스트랫의 톰 리 리서치 책임자는 채권 변동성 지수(MOVE index)가 지난달 15일 198.71까지 치솟았다가 다시 135.93까지 떨어진 점을 언급하면서 “은행 위기가 끝났다는 중요한 신호”라고 했다.[이데일리 이미나 기자]◇“침체 탓에 S&P 3500선 각오해야”그러나 현재 상승장이 약세장 랠리일 뿐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모건스탠리의 마이크 윌슨 수석주식전략가는 “일부 투자자들이 은행주 대신 기술주에 눈을 돌리고 있지만 기업들은 (경기 침체 탓에) 수익 압박에 직면할 것”이라며 “(은행 위기 등) 최근 몇 주간 사태들을 보면 우리의 가이던스는 점점 비현실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모건스탠리는 당초 올해 S&P 전망치를 3900으로 제시했는데, 이보다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윌슨 전략가는 “증시를 둘러싼 위험은 지난 6~12개월 동안보다 더 높아졌다”고 했다.블랙록의 웨이 리 글로벌주식전략가는 “연준의 급격한 긴축으로 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떠오르고 있다”며 “현재 증시 수익률 전망은 다가올 경기 침체를 반영한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블랙록은 당초 S&P 전망치를 3930으로 내놓았던 기관이다. 리 전략가는 여전히 미국 주식에 대해 ‘비중 축소’를 권고했다. 재무전략 플랫폼 소피의 리즈 영 투자전략본부장은 “연준이 1년 만에 475bp 인상한 후 강세장으로 향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며 “경기 침체는 증시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15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증시는 최고점에서 58% 폭락했다”며 “이번이 금융위기의 재림은 아니지만 적어도 25% 이상 하락할 것”이라고 했다. 시장이 달아올랐던 2021년 12월 31일 당시 고점(4766.18)과 비교하면 S&P 지수가 적어도 3500선까지는 떨어질 것으로 보는 셈이다.올해 2분기 반짝 상승 후 하락장에 접어들 것이라는 예측 역시 있다. 밥 미셸 JP모건 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금융위기 당시 (2008년 3월에 있었던) JP모건의 베어스턴스 합병 이후 그 다음 분기 때 증시는 15~20% 올랐다”며 “이번에도 2분기에는 위험 자산 선호가 나타날 것”이라고 점쳤다. 그는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라며 “미국은 연준의 긴축에 따른 경기 침체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 "세계 금융계 누구든 다이먼 회장 전화는 받는다"[미국은 지금]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쓰리 J’(three J).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이번 은행 줄도산 위기를 두고 명명한 ‘소방수들’이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의 이름(first name) 첫 글자를 딴 명칭이다. 정책당국 핵심 수장인 옐런 장관과 파월 의장은 그렇다 쳐도, 민간 금융사 수장인 다이먼 회장이 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다소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한국으로 따지면 자산 1위의 특정 금융그룹 회장이 기획재정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와 함께 금융 시스템 리스크 방어에 나설 꼴이기 때문이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 (사진=AFP 제공)◇은행마다 직접 전화 돌린 다이먼그러나 다이먼 회장의 지난 일주일을 돌아보면, 사실상 당국자 이상의 역할을 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유동성 위기설이 처음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지난 8~9일(현지시간). 고객들의 예금 인출 요구에 대응하고자 매도가능증권(AFS·만기 전 팔 의도로 매수한 주식·채권)을 모두 팔았고, 이에 따라 18억달러 손실을 내면서다. 야후파이낸스 등 외신을 종합하면, 다이먼 회장은 이때부터 위기를 감지하고 최고위 당국자들과 물밑 논의를 시작했다. 금융당국이 SVB를 전격 폐쇄한 10일에는 월리 아데예모 재무부 부장관과 만났다. 그 직후 주말 내내 이어진 비보험 예금 보호 조치 등 주요 대책들이 다이먼 회장과의 조율 끝에 나왔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의 존재감은 13일 또 다른 지역은행인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며 더 드러났다. 다이먼 회장은 다음날인 14일부터 본격적으로 옐런 장관, 파월 의장과 통화하며 대응책을 강구했고, ‘민간 주도’ 구제 대책을 이끌어 나갔다. 한 소식통은 야후파이낸스에 “옐런 장관이 주요 은행들이 참여하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전했다.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사태에서 착안한 것이다. 당시 러시아 채권을 대거 보유했던 LTCM이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지불 유예)으로 파산설이 불거졌을 때, 연준은 14개 금융회사로부터 36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이끌어 냈다.문제는 다른 은행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것이었는데, 각 은행에 직접 전화를 돌리는 역할은 다이먼 회장이 했다. 그렇게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씨티그룹, 웰스파고 같은 초대형 은행들이 참여하기로 했고, 결국 16일 오후 11개 주요 은행들은 300억달러를 끌어모아 퍼스트리퍼블릭 구제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그 과정에서 연준 부의장 출신인 라엘 브레이너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과도 막후 조율을 했다고 한다. 미국 금융가에서는 그가 왜 ‘월가 황제’로 불리는지 여실히 보여줬다는 말이 나왔다.◇“누구든 다이먼 전화는 받는다”그렇다면 옐런 장관이 기댈 수밖에 없는 다이먼 회장의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무엇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경륜에서 비롯했다는 관측이 많다. 월가 뮤추얼펀드의 한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결국 이번 사태는 1998년 LTCM처럼 끝날지, 아니면 2008년 베어스턴스처럼 끝날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LTCM은 대마불사(大馬不死) 논란에도 어쨌든 위기까지 번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2008년은 달랐다. 베어스턴스가 2008년 3월 파산한 뒤 그해 9월 리먼 브러더스가 무너지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는 본격화했다. SVB 파산 이후 리먼 브러더스 같은 ‘더 큰 은행’이 무너진다면, 정말 위기가 올 수도 있는 셈이다. 이때 베어스턴스를 인수한 곳이 JP모건체이스였고, 다이먼 회장은 당시 JP모건체이스 회장을 맡고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살아남은 월가 최고경영자(CEO)는 그가 유일하다. 또 다른 월가 고위인사는 “다이먼 회장이 옐런, 파월, 브레이너드보다 사태를 보는 눈이 몇 수는 더 위일 것”이라고 했다. 금융위기 당시 옐런 장관은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를, 파월 의장은 글로벌 인바이런먼트펀드 파트너를, 브레이너드 위원장은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을 각각 맡고 있었다. 1981년생인 아데예모 부장관은 사회 초년생이었다.제프리 소넨펠드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세계 금융계에서는 모두 다이먼 회장의 전화는 받는다”며 “그는 전문성과 권위, 보기 드문 판단력으로 업계에서 오래 몸담아 왔다”고 전했다.◇“이상한 정책” 일각서 비판론도다만 이번 위기 국면은 막 본격화했다는 점에서 ‘다이먼 역할론’은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퍼스트리퍼블릭 주가는 11개 은행의 구제안 발표 직후인 18일 32.80% 폭락했다. 이번 사태의 파장과 규모가 만만치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월가 일각에서는 민간 대형 은행들이 직접 지원하는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 역시 있다. 억만장자 투자자인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회장은 “이번 개입이 전이 위험을 확산했다”며 “잘못된 정책”이라고 경고했다. “퍼스트리퍼블릭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이 대형 은행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투자자문사 블리클리 파이낸셜그룹의 피터 부크바르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옐런 장관이 월마트, 코스트코, 타깃, 아마존을 불러서 다른 소매체인의 상품을 사도록 했다고 상상해 보라”라며 “이번 구제는 매우 이상하다”고 했다.
    김정남 기자 2023.03.19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쓰리 J’(three J).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이번 은행 줄도산 위기를 두고 명명한 ‘소방수들’이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의 이름(first name) 첫 글자를 딴 명칭이다. 정책당국 핵심 수장인 옐런 장관과 파월 의장은 그렇다 쳐도, 민간 금융사 수장인 다이먼 회장이 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다소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한국으로 따지면 자산 1위의 특정 금융그룹 회장이 기획재정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와 함께 금융 시스템 리스크 방어에 나설 꼴이기 때문이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 (사진=AFP 제공)◇은행마다 직접 전화 돌린 다이먼그러나 다이먼 회장의 지난 일주일을 돌아보면, 사실상 당국자 이상의 역할을 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유동성 위기설이 처음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은 지난 8~9일(현지시간). 고객들의 예금 인출 요구에 대응하고자 매도가능증권(AFS·만기 전 팔 의도로 매수한 주식·채권)을 모두 팔았고, 이에 따라 18억달러 손실을 내면서다. 야후파이낸스 등 외신을 종합하면, 다이먼 회장은 이때부터 위기를 감지하고 최고위 당국자들과 물밑 논의를 시작했다. 금융당국이 SVB를 전격 폐쇄한 10일에는 월리 아데예모 재무부 부장관과 만났다. 그 직후 주말 내내 이어진 비보험 예금 보호 조치 등 주요 대책들이 다이먼 회장과의 조율 끝에 나왔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의 존재감은 13일 또 다른 지역은행인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유동성 위기에 빠지며 더 드러났다. 다이먼 회장은 다음날인 14일부터 본격적으로 옐런 장관, 파월 의장과 통화하며 대응책을 강구했고, ‘민간 주도’ 구제 대책을 이끌어 나갔다. 한 소식통은 야후파이낸스에 “옐런 장관이 주요 은행들이 참여하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전했다.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사태에서 착안한 것이다. 당시 러시아 채권을 대거 보유했던 LTCM이 러시아의 모라토리엄(지불 유예)으로 파산설이 불거졌을 때, 연준은 14개 금융회사로부터 36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이끌어 냈다.문제는 다른 은행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것이었는데, 각 은행에 직접 전화를 돌리는 역할은 다이먼 회장이 했다. 그렇게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씨티그룹, 웰스파고 같은 초대형 은행들이 참여하기로 했고, 결국 16일 오후 11개 주요 은행들은 300억달러를 끌어모아 퍼스트리퍼블릭 구제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그 과정에서 연준 부의장 출신인 라엘 브레이너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과도 막후 조율을 했다고 한다. 미국 금융가에서는 그가 왜 ‘월가 황제’로 불리는지 여실히 보여줬다는 말이 나왔다.◇“누구든 다이먼 전화는 받는다”그렇다면 옐런 장관이 기댈 수밖에 없는 다이먼 회장의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무엇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경륜에서 비롯했다는 관측이 많다. 월가 뮤추얼펀드의 한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결국 이번 사태는 1998년 LTCM처럼 끝날지, 아니면 2008년 베어스턴스처럼 끝날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LTCM은 대마불사(大馬不死) 논란에도 어쨌든 위기까지 번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2008년은 달랐다. 베어스턴스가 2008년 3월 파산한 뒤 그해 9월 리먼 브러더스가 무너지면서 글로벌 금융위기는 본격화했다. SVB 파산 이후 리먼 브러더스 같은 ‘더 큰 은행’이 무너진다면, 정말 위기가 올 수도 있는 셈이다. 이때 베어스턴스를 인수한 곳이 JP모건체이스였고, 다이먼 회장은 당시 JP모건체이스 회장을 맡고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살아남은 월가 최고경영자(CEO)는 그가 유일하다. 또 다른 월가 고위인사는 “다이먼 회장이 옐런, 파월, 브레이너드보다 사태를 보는 눈이 몇 수는 더 위일 것”이라고 했다. 금융위기 당시 옐런 장관은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를, 파월 의장은 글로벌 인바이런먼트펀드 파트너를, 브레이너드 위원장은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을 각각 맡고 있었다. 1981년생인 아데예모 부장관은 사회 초년생이었다.제프리 소넨펠드 예일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세계 금융계에서는 모두 다이먼 회장의 전화는 받는다”며 “그는 전문성과 권위, 보기 드문 판단력으로 업계에서 오래 몸담아 왔다”고 전했다.◇“이상한 정책” 일각서 비판론도다만 이번 위기 국면은 막 본격화했다는 점에서 ‘다이먼 역할론’은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퍼스트리퍼블릭 주가는 11개 은행의 구제안 발표 직후인 18일 32.80% 폭락했다. 이번 사태의 파장과 규모가 만만치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월가 일각에서는 민간 대형 은행들이 직접 지원하는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 역시 있다. 억만장자 투자자인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회장은 “이번 개입이 전이 위험을 확산했다”며 “잘못된 정책”이라고 경고했다. “퍼스트리퍼블릭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이 대형 은행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투자자문사 블리클리 파이낸셜그룹의 피터 부크바르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옐런 장관이 월마트, 코스트코, 타깃, 아마존을 불러서 다른 소매체인의 상품을 사도록 했다고 상상해 보라”라며 “이번 구제는 매우 이상하다”고 했다.
  • 인플레發 눈물의 재고떨이…초저가 마트만 '호황'[미국은 지금]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지난 2일 오후 2시께(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버겐카운티에 위치한 대형 소매체인 타깃(Target). 매장에 들어선 이후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의류 코너의 재고 할인 판매였다. 한쪽은 여성 의류를 쭉 걸어놓고 ‘50% 할인’ 팻말을 붙여놓았고, 그 옆에는 듬성듬성 아동복을 두고 30% 할인을 한다고 알렸다.할인은 매장 곳곳에서 이뤄졌다. 30온스(oz) 볶은 땅콩은 정가보다 2달러 싼 14.99달러에 팔고 있었다. 피넛버터 초콜릿 리세스(reese’s)는 한 봉지 6.66달러짜리를 3.79달러로 싸게 팔았고, 두 봉지를 가져가면 7달러만 받겠다고 했다. 그밖에 가정용품, 침구류, 학용품 등도 대대적으로 할인 판매를 하고 있었다. 곧바로 타깃 온라인에 접속해보니, 재고 할인 품목은 무려 3000개 가까이 됐다. 매장에서 장을 보던 리사(44)씨는 “음료, 과자, 냉동식품 등을 살 때 저가형 마트를 많이 이용했는데, 이제는 내부가 깔끔한 타깃을 자주 온다”고 전했다.반면 ‘테크 센터’는 썰렁했다. TV, 휴대폰, 노트북, IT 액세서리 등을 파는 곳이다. 바로 옆에 위치한 게임기, 게임팩, 음악 CD, 장난감 코너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현장의 한 타깃 관계자는 “지난해 말 연휴 시즌 이후 새해 들어서는 게임팩 등의 판매가 줄고 있다”고 전했다.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버겐카운티에 위치한 대형 소매체인 타깃(Target)에서 재고 할인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사진=김정남 특파원)◇나이키마저 운동화 ‘재고떨이’타깃의 분위기는 요즘 미국의 소비 패턴 변화를 대변하고 있다. 초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하면서 일상에 필요한 식료품을 중심으로 구매한 후 집에서 직접 요리해서 먹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악성 재고를 떨어내려는 유통체인의 전략과 맞물려 소비 전반은 꺾이지 않는 듯한 기류다. 그러나 속내를 자세히 보면 생활에 꼭 필요하지는 않은 이른바 임의소비재(discretionary items)는 부진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런 흐름이 이어진다면 소비는 점차 둔화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이데일리가 미국 유통업계의 2023회계연도 4분기(지난해 11월~올해 1월) 실적을 분석해보니, 대다수 유통 공룡들은 3%대 영업이익률에 머물렀다. 타깃은 3.7%를 기록하면서 1년 전(6.8%) 대비 급락했다. 월마트의 경우 같은 기간 4.5%에서 3.3%로 낮아졌다. 전사적으로 ‘눈물의 재고떨이’를 펼치는 와중에 이익이 많이 남는 전자제품, 게임기 등의 판매가 부진했던 탓이다. 타깃과 월마트 모두 매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각각 1.3%, 7.3% 늘었으나, 정작 영업이익은 각각 44.7%, 5.5% 줄었다. 그 과정에서 타깃의 재고 증가율은 지난해 1분기 이후 43%→36%→14%를 보였다가, 4분기 -2.9%로 떨어졌다.브라이언 코넬 타깃 최고경영자(CEO)는 CNBC에 나와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높고 매우 완고하다”며 “소비자들이 필수소비재를 집중적으로 소비하는 매우 어려운 환경”이라고 토로했다.전자제품 전문점인 베스트바이(Best Buy)는 사정이 더 심상치 않다. 지난해 4분기 매출액(147억달러)은 10.0%, 영업이익은 25.7% 각각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은 4.9%에서 4.1%로 떨어졌다. 기자가 2일 오후 찾아간 동네 인근 베스트바이 매장은 고객보다 직원이 더 많아 보였다. 휴대폰 코너에만 몇몇이 있었고, 특히 각종 가전 코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인근 나이키 매장 역시 재고떨이에 한창이었다. 한쪽 벽면 전체에 20% 할인 운동화를 배치했고, 고객들은 그곳에만 몰려 있었다. 예컨대 150.00달러짜리 게놈 에어 맥스는 104.99달러에, 50.00달러짜리 플렉스 러너2 러닝화는 39.00달러에 각각 팔고 있었다. 월가 금융사의 한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나이키는 높은 물가에도 불구하고 스포츠용품 업계에서 가장 이익을 많이 내고 있는 곳”이라면서도 “그럼에도 재고 급증은 피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9~11월 당시 나이키의 재고는 1년 전보다 43% 늘어난 93억달러에 달했다.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버겐카운티에 위치한 전자제품 전문점 베스트바이(Best Buy) 매장이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김정남 특파원)◇가격 부담에 외식 점점 줄인다소비 패턴 변화는 식탁 풍경까지 바꿔놓고 있다. 사람들이 값비싼 외식을 점점 부담스러워 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기자가 한 한식당에서 돌솥비빔밥과 도미구이 정식을 각각 주문했더니, 음식값에 세금과 팁을 포함해 46달러 이상이 나왔다. 한국 돈으로 6만원이 넘는다. 그 대신 식재료를 사서 집에서 해먹으면 그보다 절반 이상 아낄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람들이 집에서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조리를 더 하고 있는 덕에 (식음료품을 중심으로) 타깃과 월마트의 매출액이 늘었다”고 전했다.게다가 조금이라도 더 저렴한 식재료를 구하려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독일계 초저가 마트 알디(Aldi)에서 만난 헬렌(43)씨는 알디의 자체 브랜드(PB) 상품인 0.5갤런(1갤런=3.785ℓ)짜리 유기농 우유 ‘심플리 네이처’를 구매했다. 가격은 1개당 3.79달러였다. 유명 브랜드 ‘호라이즌’ 유기농 우유(5.99달러)보다 훨씬 싸다. 헬렌씨는 “알디는 가격을 낮추고 군더더기를 최소화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독일 느낌이 강하다”며 “저렴하지만 질은 별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알디와 리들(Lidl) 등 유럽계 초저가 매장은 인플레이션 폭등 와중에 실적 고공행진을 벌이는 것으로 미국 내에서 입소문이 자자한 업체들이다.상황이 이렇자 미국 소비가 차츰 둔화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아직은 코로나19 당시 모아둔 저축으로 버티고 있지만, 갑자기 소비 절벽이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컨퍼런드보드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신뢰지수는 102.9로 나타났다. 월가 예상치(108.5)를 밑돌았다. 전월(106)보다 낮았다. 지난달 기대지수는 69.7로 전월 76.0에서 더 떨어졌다. 기대지수가 80을 밑도는 것은 경기 침체의 신호다. 미국 최대 슈퍼마켓 운영업체인 크로거의 로드니 맥멀런 CEO는 “고객들이 저가 브랜드와 소용량 상품 위주로 구매하고 있다”며 “이미 불황에 빠진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했다.
    김정남 기자 2023.03.06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지난 2일 오후 2시께(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버겐카운티에 위치한 대형 소매체인 타깃(Target). 매장에 들어선 이후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의류 코너의 재고 할인 판매였다. 한쪽은 여성 의류를 쭉 걸어놓고 ‘50% 할인’ 팻말을 붙여놓았고, 그 옆에는 듬성듬성 아동복을 두고 30% 할인을 한다고 알렸다.할인은 매장 곳곳에서 이뤄졌다. 30온스(oz) 볶은 땅콩은 정가보다 2달러 싼 14.99달러에 팔고 있었다. 피넛버터 초콜릿 리세스(reese’s)는 한 봉지 6.66달러짜리를 3.79달러로 싸게 팔았고, 두 봉지를 가져가면 7달러만 받겠다고 했다. 그밖에 가정용품, 침구류, 학용품 등도 대대적으로 할인 판매를 하고 있었다. 곧바로 타깃 온라인에 접속해보니, 재고 할인 품목은 무려 3000개 가까이 됐다. 매장에서 장을 보던 리사(44)씨는 “음료, 과자, 냉동식품 등을 살 때 저가형 마트를 많이 이용했는데, 이제는 내부가 깔끔한 타깃을 자주 온다”고 전했다.반면 ‘테크 센터’는 썰렁했다. TV, 휴대폰, 노트북, IT 액세서리 등을 파는 곳이다. 바로 옆에 위치한 게임기, 게임팩, 음악 CD, 장난감 코너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현장의 한 타깃 관계자는 “지난해 말 연휴 시즌 이후 새해 들어서는 게임팩 등의 판매가 줄고 있다”고 전했다.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버겐카운티에 위치한 대형 소매체인 타깃(Target)에서 재고 할인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사진=김정남 특파원)◇나이키마저 운동화 ‘재고떨이’타깃의 분위기는 요즘 미국의 소비 패턴 변화를 대변하고 있다. 초인플레이션이 장기화하면서 일상에 필요한 식료품을 중심으로 구매한 후 집에서 직접 요리해서 먹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악성 재고를 떨어내려는 유통체인의 전략과 맞물려 소비 전반은 꺾이지 않는 듯한 기류다. 그러나 속내를 자세히 보면 생활에 꼭 필요하지는 않은 이른바 임의소비재(discretionary items)는 부진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런 흐름이 이어진다면 소비는 점차 둔화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이데일리가 미국 유통업계의 2023회계연도 4분기(지난해 11월~올해 1월) 실적을 분석해보니, 대다수 유통 공룡들은 3%대 영업이익률에 머물렀다. 타깃은 3.7%를 기록하면서 1년 전(6.8%) 대비 급락했다. 월마트의 경우 같은 기간 4.5%에서 3.3%로 낮아졌다. 전사적으로 ‘눈물의 재고떨이’를 펼치는 와중에 이익이 많이 남는 전자제품, 게임기 등의 판매가 부진했던 탓이다. 타깃과 월마트 모두 매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각각 1.3%, 7.3% 늘었으나, 정작 영업이익은 각각 44.7%, 5.5% 줄었다. 그 과정에서 타깃의 재고 증가율은 지난해 1분기 이후 43%→36%→14%를 보였다가, 4분기 -2.9%로 떨어졌다.브라이언 코넬 타깃 최고경영자(CEO)는 CNBC에 나와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높고 매우 완고하다”며 “소비자들이 필수소비재를 집중적으로 소비하는 매우 어려운 환경”이라고 토로했다.전자제품 전문점인 베스트바이(Best Buy)는 사정이 더 심상치 않다. 지난해 4분기 매출액(147억달러)은 10.0%, 영업이익은 25.7% 각각 감소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은 4.9%에서 4.1%로 떨어졌다. 기자가 2일 오후 찾아간 동네 인근 베스트바이 매장은 고객보다 직원이 더 많아 보였다. 휴대폰 코너에만 몇몇이 있었고, 특히 각종 가전 코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인근 나이키 매장 역시 재고떨이에 한창이었다. 한쪽 벽면 전체에 20% 할인 운동화를 배치했고, 고객들은 그곳에만 몰려 있었다. 예컨대 150.00달러짜리 게놈 에어 맥스는 104.99달러에, 50.00달러짜리 플렉스 러너2 러닝화는 39.00달러에 각각 팔고 있었다. 월가 금융사의 한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나이키는 높은 물가에도 불구하고 스포츠용품 업계에서 가장 이익을 많이 내고 있는 곳”이라면서도 “그럼에도 재고 급증은 피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9~11월 당시 나이키의 재고는 1년 전보다 43% 늘어난 93억달러에 달했다.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뉴저지주 버겐카운티에 위치한 전자제품 전문점 베스트바이(Best Buy) 매장이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김정남 특파원)◇가격 부담에 외식 점점 줄인다소비 패턴 변화는 식탁 풍경까지 바꿔놓고 있다. 사람들이 값비싼 외식을 점점 부담스러워 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기자가 한 한식당에서 돌솥비빔밥과 도미구이 정식을 각각 주문했더니, 음식값에 세금과 팁을 포함해 46달러 이상이 나왔다. 한국 돈으로 6만원이 넘는다. 그 대신 식재료를 사서 집에서 해먹으면 그보다 절반 이상 아낄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람들이 집에서 시간을 더 많이 보내고 조리를 더 하고 있는 덕에 (식음료품을 중심으로) 타깃과 월마트의 매출액이 늘었다”고 전했다.게다가 조금이라도 더 저렴한 식재료를 구하려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독일계 초저가 마트 알디(Aldi)에서 만난 헬렌(43)씨는 알디의 자체 브랜드(PB) 상품인 0.5갤런(1갤런=3.785ℓ)짜리 유기농 우유 ‘심플리 네이처’를 구매했다. 가격은 1개당 3.79달러였다. 유명 브랜드 ‘호라이즌’ 유기농 우유(5.99달러)보다 훨씬 싸다. 헬렌씨는 “알디는 가격을 낮추고 군더더기를 최소화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독일 느낌이 강하다”며 “저렴하지만 질은 별로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알디와 리들(Lidl) 등 유럽계 초저가 매장은 인플레이션 폭등 와중에 실적 고공행진을 벌이는 것으로 미국 내에서 입소문이 자자한 업체들이다.상황이 이렇자 미국 소비가 차츰 둔화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아직은 코로나19 당시 모아둔 저축으로 버티고 있지만, 갑자기 소비 절벽이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컨퍼런드보드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신뢰지수는 102.9로 나타났다. 월가 예상치(108.5)를 밑돌았다. 전월(106)보다 낮았다. 지난달 기대지수는 69.7로 전월 76.0에서 더 떨어졌다. 기대지수가 80을 밑도는 것은 경기 침체의 신호다. 미국 최대 슈퍼마켓 운영업체인 크로거의 로드니 맥멀런 CEO는 “고객들이 저가 브랜드와 소용량 상품 위주로 구매하고 있다”며 “이미 불황에 빠진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했다.
  • 어느새 다시 온 킹달러…"원·달러 1350원 간다"[미국은 지금]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킹달러’가 귀환할까. 지난해 10월부터 주춤했던 미국 달러화 가치가 이번달 들어 다시 가파르게 오르면서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다. 미국 경제의 예상 밖 성장세에 긴축 장기화 관측이 퍼지면서 강달러 현상은 더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원·달러 환율도 1300원 중반대까지는 열어둬야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그래픽=이미나 기자)◇이번달 갑자기 치솟는 달러화18일(현지시간) 마켓포인트, 마켓워치 등에 따르면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지수화한 달러인덱스는 지난 17일 103.88에 마감했다. 장중 104.67까지 뛰었다. 이번달 초 101 초반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불과 3주 만에 2.6% 이상 급등한 것이다. 금융정보업체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104.67의 달러인덱스 레벨은 지난달 5일 이후 6주 만의 최고치다. 지난해 9월 말 115에 육박한 ‘갓달러’ 현상 이후 줄곧 하락세를 보였다가, 이번달 갑자기 반등하고 있는 것이다.달러화는 모든 주요국들의 통화보다 강세를 띠고 있다. 이를테면 유로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유로·달러 환율은 17일 1유로당 1.0694달러를 기록했다. 이번달 초 1유로당 1.1달러에 육박했는데, 유로화 가치가 3주 만에 2.7% 가까이 떨어진 것이다(유로화 약세·달러화 강세). 달러인덱스 내 6개 통화 중 유로화 비중은 57.6%에 달한다. 같은 기간 파운드·달러 환율은 1파운드당 1.2376달러에서 1.2035달러로 하락했다(파운드화 약세·달러화 강세). 달러·엔 환율은 1달러당 128.93엔에서 134.15엔으로 올랐고(달러화 강세·엔화 약세), 달러·캐나다달러 환율 역시 소폭 상승했다. 달러인덱스에 포함돼 있지 않은 한국 원화도 달러화 대비 가치가 급락하고 있다. 이번달 초 원·달러 환율은 1230원대였는데, 전거래일 어느새 장중 1300원을 돌파했다.그렇다면 달러화는 왜 치솟는 것일까. 미국이 이번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가장 가파른 긴축에 나서고 있음에도 경기 침체의 기색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해 3월 이후 1년도 채 안 돼 기준금리를 450bp(1bp=0.01%포인트) 올렸다. 현재 4.50~4.75%다. 유럽중앙은행(3.00%), 영국 영란은행(4.00%), 일본은행(-0.10%), 캐나다 중앙은행(4.50%)보다 높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3.50%다.특히 근래 강력한 경제지표는 시장을 놀라게 했고, 이는 달러화 가치를 더 끌어올렸다. 비농업 신규 고용(51만7000개), 실업률(3.4%),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0.5%·이하 전기 대비),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률(0.7%), 소매판매 증가율(3.0%) 등 지난달 주요 지표들은 시장이 당초 점쳤던 고물가 완화와 경기 침체 시나리오를 한참 벗어났다. 심지어 경기 하강은 없다는 ‘노 랜딩’(no landing) 시나리오까지 힘을 받고 있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GDP 나우’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성장률 전망치는 이번달 초만 해도 0.7%였다. 그런데 현재 2.5%까지 급등했다.이 때문에 월가는 연준의 빅스텝(한 번에 50bp 인상) 인상 가능성을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블룸버그TV에 나와 ‘연준이 다음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때부터 50bp 인상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데 대해 “너무 이르다”며 “경제가 갑자기 멈출(sudden stop)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나 연준의 긴축 효과가 신통치 않음을 지적하면서 “한 번에 25bp 넘게 인상해야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SGH 매크로 어드바이저스의 조 듀이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추후 지표들이 최근 추세를 따른다면 시장 참가자들을 50bp 인상으로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달 나오는 고용과 CPI 보고서에 따라 50bp 카드가 얼마든지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원·달러 1350원 상승 가능성”상황이 이렇자 월가는 달러화 추가 상승에 무게를 두는 기류다. 105에 육박하는 달러인덱스는 이미 그 자체로 초강세다. 이번 인플레이션 국면을 제외하면 2002년 11월 이후 105를 넘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미국 경제가 유로존, 영국, 일본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예상 밖 호황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더 오를 수 있다는 예상이 훨씬 더 많다. 월가 한 고위인사는 “달러인덱스가 4주 연속 오르는 것은 지난해 4월 이후 없을 만큼 이례적인 일”이라며 “105 레벨을 단기 저항선으로 추후 1~2주 숨고르기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다만 “105~110 레벨 가능성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인터랙티브 브로커스의 스티브 소스닉 최고전략가는 블룸버그TV에서 “이미 킹달러가 왔다고 본다”며 “추후 달러화 강세에 별다른 걸림돌은 없다”고 말했다.스노든 레인 파트너스의 피터 황 선임파트너는 최근 미 한국상공회의소(KOCHAM) 웨비나에서 “달러화 가치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면서도 “미국 인플레이션이 빨리 떨어질 것 같지 않은 상황이어서 추가로 상승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원·달러 환율 흐름에 대해서는 “여러 변수를 검토해야 하겠지만 1350원까지는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일각에서는 달러인덱스가 110을 넘는 갓달러 현상을 배제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이럴 경우 미국을 제외한 웬만한 통화의 가치가 흘러내리면서,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은 충격이 불가피할 수 있다. 다만 경제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만큼 상황이 다시 바뀔 가능성 역시 있다. 역대급 긴축 여파 탓에 미국 경제에 갑자기 침체 신호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서머스 교수는 “연준은 지금 경제 상황을 겸손하게 바라봐야 한다”며 불확실성을 토로했다. ‘채권 구루’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경제고문은 “연준은 경제를 짓누르지 않고서는 2% 물가 목표치에 도달할 수 없다”고 했다.
    김정남 기자 2023.02.19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킹달러’가 귀환할까. 지난해 10월부터 주춤했던 미국 달러화 가치가 이번달 들어 다시 가파르게 오르면서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다. 미국 경제의 예상 밖 성장세에 긴축 장기화 관측이 퍼지면서 강달러 현상은 더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원·달러 환율도 1300원 중반대까지는 열어둬야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그래픽=이미나 기자)◇이번달 갑자기 치솟는 달러화18일(현지시간) 마켓포인트, 마켓워치 등에 따르면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지수화한 달러인덱스는 지난 17일 103.88에 마감했다. 장중 104.67까지 뛰었다. 이번달 초 101 초반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불과 3주 만에 2.6% 이상 급등한 것이다. 금융정보업체 리피니티브에 따르면 104.67의 달러인덱스 레벨은 지난달 5일 이후 6주 만의 최고치다. 지난해 9월 말 115에 육박한 ‘갓달러’ 현상 이후 줄곧 하락세를 보였다가, 이번달 갑자기 반등하고 있는 것이다.달러화는 모든 주요국들의 통화보다 강세를 띠고 있다. 이를테면 유로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유로·달러 환율은 17일 1유로당 1.0694달러를 기록했다. 이번달 초 1유로당 1.1달러에 육박했는데, 유로화 가치가 3주 만에 2.7% 가까이 떨어진 것이다(유로화 약세·달러화 강세). 달러인덱스 내 6개 통화 중 유로화 비중은 57.6%에 달한다. 같은 기간 파운드·달러 환율은 1파운드당 1.2376달러에서 1.2035달러로 하락했다(파운드화 약세·달러화 강세). 달러·엔 환율은 1달러당 128.93엔에서 134.15엔으로 올랐고(달러화 강세·엔화 약세), 달러·캐나다달러 환율 역시 소폭 상승했다. 달러인덱스에 포함돼 있지 않은 한국 원화도 달러화 대비 가치가 급락하고 있다. 이번달 초 원·달러 환율은 1230원대였는데, 전거래일 어느새 장중 1300원을 돌파했다.그렇다면 달러화는 왜 치솟는 것일까. 미국이 이번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가장 가파른 긴축에 나서고 있음에도 경기 침체의 기색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해 3월 이후 1년도 채 안 돼 기준금리를 450bp(1bp=0.01%포인트) 올렸다. 현재 4.50~4.75%다. 유럽중앙은행(3.00%), 영국 영란은행(4.00%), 일본은행(-0.10%), 캐나다 중앙은행(4.50%)보다 높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3.50%다.특히 근래 강력한 경제지표는 시장을 놀라게 했고, 이는 달러화 가치를 더 끌어올렸다. 비농업 신규 고용(51만7000개), 실업률(3.4%),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0.5%·이하 전기 대비),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률(0.7%), 소매판매 증가율(3.0%) 등 지난달 주요 지표들은 시장이 당초 점쳤던 고물가 완화와 경기 침체 시나리오를 한참 벗어났다. 심지어 경기 하강은 없다는 ‘노 랜딩’(no landing) 시나리오까지 힘을 받고 있다.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GDP 나우’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성장률 전망치는 이번달 초만 해도 0.7%였다. 그런데 현재 2.5%까지 급등했다.이 때문에 월가는 연준의 빅스텝(한 번에 50bp 인상) 인상 가능성을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블룸버그TV에 나와 ‘연준이 다음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때부터 50bp 인상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데 대해 “너무 이르다”며 “경제가 갑자기 멈출(sudden stop)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나 연준의 긴축 효과가 신통치 않음을 지적하면서 “한 번에 25bp 넘게 인상해야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SGH 매크로 어드바이저스의 조 듀이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추후 지표들이 최근 추세를 따른다면 시장 참가자들을 50bp 인상으로 이끌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달 나오는 고용과 CPI 보고서에 따라 50bp 카드가 얼마든지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원·달러 1350원 상승 가능성”상황이 이렇자 월가는 달러화 추가 상승에 무게를 두는 기류다. 105에 육박하는 달러인덱스는 이미 그 자체로 초강세다. 이번 인플레이션 국면을 제외하면 2002년 11월 이후 105를 넘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미국 경제가 유로존, 영국, 일본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예상 밖 호황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더 오를 수 있다는 예상이 훨씬 더 많다. 월가 한 고위인사는 “달러인덱스가 4주 연속 오르는 것은 지난해 4월 이후 없을 만큼 이례적인 일”이라며 “105 레벨을 단기 저항선으로 추후 1~2주 숨고르기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다만 “105~110 레벨 가능성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인터랙티브 브로커스의 스티브 소스닉 최고전략가는 블룸버그TV에서 “이미 킹달러가 왔다고 본다”며 “추후 달러화 강세에 별다른 걸림돌은 없다”고 말했다.스노든 레인 파트너스의 피터 황 선임파트너는 최근 미 한국상공회의소(KOCHAM) 웨비나에서 “달러화 가치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면서도 “미국 인플레이션이 빨리 떨어질 것 같지 않은 상황이어서 추가로 상승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원·달러 환율 흐름에 대해서는 “여러 변수를 검토해야 하겠지만 1350원까지는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일각에서는 달러인덱스가 110을 넘는 갓달러 현상을 배제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이럴 경우 미국을 제외한 웬만한 통화의 가치가 흘러내리면서,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은 충격이 불가피할 수 있다. 다만 경제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만큼 상황이 다시 바뀔 가능성 역시 있다. 역대급 긴축 여파 탓에 미국 경제에 갑자기 침체 신호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서머스 교수는 “연준은 지금 경제 상황을 겸손하게 바라봐야 한다”며 불확실성을 토로했다. ‘채권 구루’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경제고문은 “연준은 경제를 짓누르지 않고서는 2% 물가 목표치에 도달할 수 없다”고 했다.
  • 미국 '고용 과열' 수수께끼…시장은 불안하다[미국은 지금]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지난 3일 오전 8시30분(현지시간). 미국 뉴욕 월가는 일순간 정적이 일었다. 시장 인사들은 연방준비제도(Fed) 통화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노동부의 고용보고서를 기다렸는데, 상상하지도 못한 신규 일자리 수치가 나왔기 때문이다.그 내용은 이랬다. 가장 주목받았던 지난달 비농업 신규 고용 규모는 51만7000개로 나타났다.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18만7000개)를 세 배 가까이 웃돌았다. 전달인 지난해 12월 22만3000개와 비교하면 두 배 이상 폭증했다. 지난해 7월(53만7000개) 이후 최대 규모다.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노동시장을 냉각시키고자 역대급 긴축을 강행하고 있으나, 고용은 오히려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그래픽=이미나 기자)◇“깜짝 놀랄 만한 미 일자리 폭증”월가 한 뮤추얼펀드의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고용보고서 수치는 한 달 뒤 수정치가 나오는데, 이때 크게 바뀔 때가 있기는 하다”면서도 “그러나 예상과 이렇게 차이가 난 것은 본 적이 없다”며 놀라워했다. 또 다른 금융사의 채권 어드바이저는 “눈을 의심했다”며 “깜짝 놀랄 만한 숫자”라고 했다.여가·접대업의 신규 일자리가 12만8000개 급증하며 노동시장 과열을 주도했다. 전월(6만4000개) 대비 두 배 늘었다. 이는 오락, 엔터테인먼트, 숙박, 외식 같은 서비스업을 포함한 항목이다. 전문·기업 서비스업(8만2000개), 정부 공공직(7만4000개), 의료 서비스업(5만8000개) 등도 큰 폭 증가했다.더 관심을 모은 것은 지난달 실업률이 3.4%로 떨어졌다는 점이다. 1969년 5월 이후 거의 54년 만의 최저치다. 시장 전망치(3.6%)보다 낮았다. 시장과 학계에서 올해 4~5%대 실업률 급등으로 경기 침체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오는 와중에 뜬금없이 하락한 것이다. 게다가 임금 상승 속도는 가팔라졌다. 시간당 평균 임금은 전월 대비 0.3% 증가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4.4% 늘었다. 월가 예상치(4.3%)를 웃돌았다. 노동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구인난이 이어지면서 임금이 고공행진을 하고있는 것이다. 임금 인플레이션 공포가 더 커질 수 있는 수준이다.노동시장 이상 과열의 징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지난해 이후 주간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오히려 하향 안정화하고 있다. 지난달 22~28일 당시 건수는 18만3000개였다. 지난해 4월 셋째주(18만1000개) 이후 가장 적다. 20만건을 밑도는 실업수당 청구는 역사적으로 봐도 그리 흔하지 않다. 아울러 미국 노동부가 최근 공개한 지난해 12월 기업 구인 건수는 1101만건으로 컨센서스(1030만건)를 훌쩍 상회해, 시장을 놀라게 했다. 이에 월가 일부에서는 이례적인 고용 과열이 마치 수수께끼 같다는 말이 나온다.◇자존심 센 서머스마저 “모르겠다”그렇다면 이번 고용보고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주목할 것은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일자리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월가의 한 고위인사는 “여가·접대업 일자리가 늘었다는 것은 미국 경제에서 소비를 지탱하는 총수요가 아직 강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실제 신용정보 관리업체인 트랜스유니언의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4분기 미국 신용카드 부채는 전년 대비 18.5% 급증한 9306억달러(약 1164조원)로 나타났다. 사상 최대다. CNBC는 “소비자들이 식음료, 월세 등 점점 더 비싸지는 필수품을 감당하기 위해 빚에 의존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가계가 빚을 늘리는데 한계가 올 경우 서비스업이 갑자기 망가질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번 일자리 폭증은 ‘일시적’이라는 얘기다.세계적인 석학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가 급랭(sudden downturn)할 위험이 있다”며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하락하지 않는다면 경기 연착륙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뱅가드의 앤드루 패터슨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올해 하반기 침체가 올 확률이 높다”고 했다.반대로 최근 인플레이션 둔화가 뚜렷한 와중에 일자리가 느는 것을 나쁘게 볼 일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라일리 파이낸셜의 아트 호건 수석시장전략가는 “연준의 금리 인상 사이클이 끝에 가까워졌다”며 “시장은 굿 뉴스(good news)를 굿 뉴스로 인식할 것”이라고 했다. 시장이 일자리 급증을 두고 공격 긴축 악재가 아니라 경기 반등 호재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사진=AFP 제공)상황이 이렇자 고용 과열 수수께끼를 둘러싼 금융시장의 혼란은 커지는 분위기다. 서머스 교수는 “미국 경제가 어디로 향할 지에 대해서는 ‘불가지론’(agnosticism· 알 수 없는 실재를 인정하는 것)을 견지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학문적인 자존심이 센 그마저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이에 따라 연준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더 커지게 됐다. 시장은 연준이 오는 5월 금리 인상을 중단(4.75~5.00%)할 것이라는데 무게를 뒀다가, 다시 5.00~5.25%까지 올릴 것이라는 쪽으로 의견을 바꾸고 있다. UBS 수석이코노미스트로 일했던 래리 해서웨이는 워싱턴포스트(WP) 칼럼을 통해 “연준은 무엇이 지금 경제를 이끌고 있는 핵심 지표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은데, 이는 작은 위험이 아니다”며 “우리는 1970년대 연준의 끔찍한 정책 실기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남 기자 2023.02.05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지난 3일 오전 8시30분(현지시간). 미국 뉴욕 월가는 일순간 정적이 일었다. 시장 인사들은 연방준비제도(Fed) 통화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노동부의 고용보고서를 기다렸는데, 상상하지도 못한 신규 일자리 수치가 나왔기 때문이다.그 내용은 이랬다. 가장 주목받았던 지난달 비농업 신규 고용 규모는 51만7000개로 나타났다.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18만7000개)를 세 배 가까이 웃돌았다. 전달인 지난해 12월 22만3000개와 비교하면 두 배 이상 폭증했다. 지난해 7월(53만7000개) 이후 최대 규모다.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노동시장을 냉각시키고자 역대급 긴축을 강행하고 있으나, 고용은 오히려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그래픽=이미나 기자)◇“깜짝 놀랄 만한 미 일자리 폭증”월가 한 뮤추얼펀드의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고용보고서 수치는 한 달 뒤 수정치가 나오는데, 이때 크게 바뀔 때가 있기는 하다”면서도 “그러나 예상과 이렇게 차이가 난 것은 본 적이 없다”며 놀라워했다. 또 다른 금융사의 채권 어드바이저는 “눈을 의심했다”며 “깜짝 놀랄 만한 숫자”라고 했다.여가·접대업의 신규 일자리가 12만8000개 급증하며 노동시장 과열을 주도했다. 전월(6만4000개) 대비 두 배 늘었다. 이는 오락, 엔터테인먼트, 숙박, 외식 같은 서비스업을 포함한 항목이다. 전문·기업 서비스업(8만2000개), 정부 공공직(7만4000개), 의료 서비스업(5만8000개) 등도 큰 폭 증가했다.더 관심을 모은 것은 지난달 실업률이 3.4%로 떨어졌다는 점이다. 1969년 5월 이후 거의 54년 만의 최저치다. 시장 전망치(3.6%)보다 낮았다. 시장과 학계에서 올해 4~5%대 실업률 급등으로 경기 침체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오는 와중에 뜬금없이 하락한 것이다. 게다가 임금 상승 속도는 가팔라졌다. 시간당 평균 임금은 전월 대비 0.3% 증가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4.4% 늘었다. 월가 예상치(4.3%)를 웃돌았다. 노동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구인난이 이어지면서 임금이 고공행진을 하고있는 것이다. 임금 인플레이션 공포가 더 커질 수 있는 수준이다.노동시장 이상 과열의 징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연준이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지난해 이후 주간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오히려 하향 안정화하고 있다. 지난달 22~28일 당시 건수는 18만3000개였다. 지난해 4월 셋째주(18만1000개) 이후 가장 적다. 20만건을 밑도는 실업수당 청구는 역사적으로 봐도 그리 흔하지 않다. 아울러 미국 노동부가 최근 공개한 지난해 12월 기업 구인 건수는 1101만건으로 컨센서스(1030만건)를 훌쩍 상회해, 시장을 놀라게 했다. 이에 월가 일부에서는 이례적인 고용 과열이 마치 수수께끼 같다는 말이 나온다.◇자존심 센 서머스마저 “모르겠다”그렇다면 이번 고용보고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주목할 것은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일자리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월가의 한 고위인사는 “여가·접대업 일자리가 늘었다는 것은 미국 경제에서 소비를 지탱하는 총수요가 아직 강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실제 신용정보 관리업체인 트랜스유니언의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4분기 미국 신용카드 부채는 전년 대비 18.5% 급증한 9306억달러(약 1164조원)로 나타났다. 사상 최대다. CNBC는 “소비자들이 식음료, 월세 등 점점 더 비싸지는 필수품을 감당하기 위해 빚에 의존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가계가 빚을 늘리는데 한계가 올 경우 서비스업이 갑자기 망가질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번 일자리 폭증은 ‘일시적’이라는 얘기다.세계적인 석학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가 급랭(sudden downturn)할 위험이 있다”며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하락하지 않는다면 경기 연착륙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뱅가드의 앤드루 패터슨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올해 하반기 침체가 올 확률이 높다”고 했다.반대로 최근 인플레이션 둔화가 뚜렷한 와중에 일자리가 느는 것을 나쁘게 볼 일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라일리 파이낸셜의 아트 호건 수석시장전략가는 “연준의 금리 인상 사이클이 끝에 가까워졌다”며 “시장은 굿 뉴스(good news)를 굿 뉴스로 인식할 것”이라고 했다. 시장이 일자리 급증을 두고 공격 긴축 악재가 아니라 경기 반등 호재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다.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사진=AFP 제공)상황이 이렇자 고용 과열 수수께끼를 둘러싼 금융시장의 혼란은 커지는 분위기다. 서머스 교수는 “미국 경제가 어디로 향할 지에 대해서는 ‘불가지론’(agnosticism· 알 수 없는 실재를 인정하는 것)을 견지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학문적인 자존심이 센 그마저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이에 따라 연준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더 커지게 됐다. 시장은 연준이 오는 5월 금리 인상을 중단(4.75~5.00%)할 것이라는데 무게를 뒀다가, 다시 5.00~5.25%까지 올릴 것이라는 쪽으로 의견을 바꾸고 있다. UBS 수석이코노미스트로 일했던 래리 해서웨이는 워싱턴포스트(WP) 칼럼을 통해 “연준은 무엇이 지금 경제를 이끌고 있는 핵심 지표인지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은데, 이는 작은 위험이 아니다”며 “우리는 1970년대 연준의 끔찍한 정책 실기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 美 19일 국가부채 상한선 도달…또 부채한도 논쟁[미국은 지금]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미국의 국가부채 한도가 턱밑까지 차오르면서 미국이 또 국가 부채 상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미 의회는 오는 7월 이전 부채한도를 높이는 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하지만 백악관의 한도 상향 요구에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은 부정적인 입장이다. 양측의 갈등이 장기화 되면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가 고조되며 금융시장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상·하원 지도부에 보낸 서한을 통해 “미국 부채가 오는 19일 법정 한도(31조4000억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의회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미국은 나랏빚 상한선을 법률로 정한다. 부채가 상한선에 가까워졌을 때 의회가 한도를 늘리는 식으로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이론적으로는 디폴트를 맞는다. 미국 예산관리국(OMB)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연방 부채는 30조9289억달러(약 3경8414조원)다. 옐런 장관은 “디폴트를 피하고자 특별 조치 시행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공무원 퇴직 기금에 대한 지출 유예 같은 정부 차원의 조치로 버텨보겠지만 의회가 손을 놓으면 올해 6월 이후에는 재정이 고갈될 것이라는 게 옐런 장관의 설명이다.이에 따라 새 의회는 출범하자마자 정치 공방전이 불가피해 보인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이를 두고 “협상 불가”라고 밝혔다. 다른 사안과 연계하지 말고 한도를 증액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공화당은 지출 삭감 문제까지 같이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부채한도 논쟁 2011년엔 경제 위기설도 미국의 부채 상한 논쟁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잊을 만하면 빚 문제로 협상을 벌였고, 거의 대다수는 한도를 늘리는 식으로 해결했다. 1939년 국가 부채 한도 제도를 도입한 후 부도를 낸 적은 없다. 유일하게 세계 경제 위기설까지 불거졌던 게 2011년 8월이다. 여야 협상이 지지부진해지자,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최우량인 ‘AAA’에서 ‘AA+’로 낮췄다. 하지만 2011년 위기설도 시간이 흐르고 보니 정치적으로는 요란했지만 결국 ‘찻잔 속 미풍’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금융시장이 충격에 빠진 2011년 3분기 미국 연방 부채는 14조7903억달러였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94.52%였다. 이후 수차례 한도를 증액해 현재(지난해 3분기 기준) 부채는 31조9289억달러로 두 배 이상 불어났고 부채 비율은 120.23%로 치솟았다. 만약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였다면 당장 재정위기 공포가 커졌겠지만, 미국은 흔들림이 없었다. S&P는 국가신용등급을 AA+로 유지하고 있고 무디스와 피치는 최우량인 Aaa, AAA 등급을 각각 매기고 있는 게 그 방증이다. 세 곳 모두 신용등급 전망은 ‘안정적’(stable)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이 그 정도로 빚을 냈다면 환율이 폭등(화폐가치 하락)하고 물가가 치솟았을 게 뻔하다. 유럽 역시 2010년 재정위기를 겪었으니, 오로지 미국만 굳건하다는 분석이 가능하다.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정치 공방이 커질 수 있겠지만 큰 틀에서 보면 무난하게 한도 증액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시장에서는 “이번 이슈가 일부 소음을 야기하겠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할 정도다.◇세계 유일한 ‘달러화 패권국’의 특권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미국이 달러화 패권을 쥔 기축통화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로’에 가까우니, 미국 입장에서는 한도를 늘려 국채를 발행하고 이자 비용만 투자자들에게 지불하면 그만이다. 돈을 찍어내면 되니 굳이 갚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기류도 있다.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사진=AFP 제공)그렇다면 미국은 무한정 빚을 져도 괜찮을 것일까. 월가에서는 ‘달러화 위기론’ 보고서가 종종 나온다. 빚더미에 허덕였던 영국이 미국에 패권을 빼앗겼듯, 현재 세계 최대 채무국인 미국이 비슷한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크 팬들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5월 보고서를 통해 “달러화가 과대평가돼 있다”며 “침체가 닥치면 강달러가 이어질지 불확실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지난해 ‘킹달러’ 현상과 함께 단기적으로는 어긋난 예측으로 판명됐다. 월가의 몇몇 인사들은 “골드만 보고서가 달러화의 몰락으로 결론 내린 것은 아니다”며 “오히려 패권은 이어질 것이라는 결론에 가깝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유로화, 엔화, 위안화 등이 달러화에 도전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미국이 가진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에 이르는 유무형의 파워 덕이다.그렇다고 역대급 빚더미를 둘러싼 우려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디폴트는 재앙”이라며 “(부채 한도 증액을 둘러싼 여야 협상은) 가장 멍청한 토론”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인구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급증과 (중국의 도전에 대한) 국방비 지출 등으로 향후 재정이 상당폭 증가할 필요성을 고려할 때 재정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토론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정남 기자 2023.01.16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미국의 국가부채 한도가 턱밑까지 차오르면서 미국이 또 국가 부채 상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미 의회는 오는 7월 이전 부채한도를 높이는 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하지만 백악관의 한도 상향 요구에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은 부정적인 입장이다. 양측의 갈등이 장기화 되면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가 고조되며 금융시장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상·하원 지도부에 보낸 서한을 통해 “미국 부채가 오는 19일 법정 한도(31조4000억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의회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미국은 나랏빚 상한선을 법률로 정한다. 부채가 상한선에 가까워졌을 때 의회가 한도를 늘리는 식으로 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이론적으로는 디폴트를 맞는다. 미국 예산관리국(OMB)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연방 부채는 30조9289억달러(약 3경8414조원)다. 옐런 장관은 “디폴트를 피하고자 특별 조치 시행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공무원 퇴직 기금에 대한 지출 유예 같은 정부 차원의 조치로 버텨보겠지만 의회가 손을 놓으면 올해 6월 이후에는 재정이 고갈될 것이라는 게 옐런 장관의 설명이다.이에 따라 새 의회는 출범하자마자 정치 공방전이 불가피해 보인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이를 두고 “협상 불가”라고 밝혔다. 다른 사안과 연계하지 말고 한도를 증액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작은 정부’를 추구하는 공화당은 지출 삭감 문제까지 같이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부채한도 논쟁 2011년엔 경제 위기설도 미국의 부채 상한 논쟁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잊을 만하면 빚 문제로 협상을 벌였고, 거의 대다수는 한도를 늘리는 식으로 해결했다. 1939년 국가 부채 한도 제도를 도입한 후 부도를 낸 적은 없다. 유일하게 세계 경제 위기설까지 불거졌던 게 2011년 8월이다. 여야 협상이 지지부진해지자,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 국가신용등급을 최우량인 ‘AAA’에서 ‘AA+’로 낮췄다. 하지만 2011년 위기설도 시간이 흐르고 보니 정치적으로는 요란했지만 결국 ‘찻잔 속 미풍’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금융시장이 충격에 빠진 2011년 3분기 미국 연방 부채는 14조7903억달러였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94.52%였다. 이후 수차례 한도를 증액해 현재(지난해 3분기 기준) 부채는 31조9289억달러로 두 배 이상 불어났고 부채 비율은 120.23%로 치솟았다. 만약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였다면 당장 재정위기 공포가 커졌겠지만, 미국은 흔들림이 없었다. S&P는 국가신용등급을 AA+로 유지하고 있고 무디스와 피치는 최우량인 Aaa, AAA 등급을 각각 매기고 있는 게 그 방증이다. 세 곳 모두 신용등급 전망은 ‘안정적’(stable)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이 그 정도로 빚을 냈다면 환율이 폭등(화폐가치 하락)하고 물가가 치솟았을 게 뻔하다. 유럽 역시 2010년 재정위기를 겪었으니, 오로지 미국만 굳건하다는 분석이 가능하다.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정치 공방이 커질 수 있겠지만 큰 틀에서 보면 무난하게 한도 증액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시장에서는 “이번 이슈가 일부 소음을 야기하겠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할 정도다.◇세계 유일한 ‘달러화 패권국’의 특권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미국이 달러화 패권을 쥔 기축통화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로’에 가까우니, 미국 입장에서는 한도를 늘려 국채를 발행하고 이자 비용만 투자자들에게 지불하면 그만이다. 돈을 찍어내면 되니 굳이 갚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기류도 있다.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 (사진=AFP 제공)그렇다면 미국은 무한정 빚을 져도 괜찮을 것일까. 월가에서는 ‘달러화 위기론’ 보고서가 종종 나온다. 빚더미에 허덕였던 영국이 미국에 패권을 빼앗겼듯, 현재 세계 최대 채무국인 미국이 비슷한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크 팬들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5월 보고서를 통해 “달러화가 과대평가돼 있다”며 “침체가 닥치면 강달러가 이어질지 불확실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지난해 ‘킹달러’ 현상과 함께 단기적으로는 어긋난 예측으로 판명됐다. 월가의 몇몇 인사들은 “골드만 보고서가 달러화의 몰락으로 결론 내린 것은 아니다”며 “오히려 패권은 이어질 것이라는 결론에 가깝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유로화, 엔화, 위안화 등이 달러화에 도전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미국이 가진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에 이르는 유무형의 파워 덕이다.그렇다고 역대급 빚더미를 둘러싼 우려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디폴트는 재앙”이라며 “(부채 한도 증액을 둘러싼 여야 협상은) 가장 멍청한 토론”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인구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급증과 (중국의 도전에 대한) 국방비 지출 등으로 향후 재정이 상당폭 증가할 필요성을 고려할 때 재정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토론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이번엔 맞을까…새해 美 증시 또 '위험한 낙관론'[미국은 지금]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오펜하이머 5330. 도이치방크 5250. 크레디트스위스 5200. 골드만삭스 5100.1년 전 이맘때 월가 주요 기관들이 내놓았던 뉴욕 증시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 예상치다. 지난 2021년 말 S&P 지수가 4766.18에 마감했으니, 최대 12% 가까이 추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이 많았다는 의미다. 당시 뱅크오브아메리카(4600), 모건스탠리(4400) 정도를 제외하면 5000선 안착론은 대세였다.1년이 지난 현재 월가는 말 그대로 ‘죽을 맛’이다. S&P 지수는 지난해 무려 19.44% 폭락한 3839.50에 거래를 마쳤다. 기존 예상치와 크게는 1500포인트 가까이 차이가 났다.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와 나스닥 지수는 각각 8.78%, 33.10%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이후 볼 수 없었던 낙폭이다. 월가 한 뮤추얼펀드의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이 이 정도로 빠를 것이라고 점치지 못했던 게 가장 뼈아프다”고 전했다. 또 다른 채권 어드바이저는 “통상 기관들이 10% 안팎은 더 긍정적으로 예상한다고는 하지만, 이번처럼 이렇게 예측이 빗나간 것은 본 적이 없다”며 놀라워 했다.[이데일리 문승용 기자]◇월가 “새해 S&P 10% 안팎 오른다”그렇다면 새해 월가 기관들의 예측은 어떨까. 이데일리가 22개 주요 기관들의 올해 말 S&P 전망치를 분석해보니, 평균 4169.54로 나타났다. 올해보다 8.60% 더 오를 것이라는 뜻이다. 다른 조사 역시 대동소이하다. 로이터통신(4200), 블룸버그(4009) 모두 4000 초반대로 오를 것이라는 집계를 내놓았다. CNBC가 최근 400명의 시장 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10명 중 4명은 올해 S&P 지수가 6~10% 오를 것으로 봤다. 11~19% 치솟을 것이라는 답변도 10명 중 2명이나 됐다. CNBC는 “올해 금융시장 대혼란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새해를 상당히 낙관적으로 맞고 있다”고 전했다.지난해보다 지수 자체가 떨어질 것으로 보는 곳은 바클레이스(3675), 소시에테 제네랄(3800), 캐피털 이코노믹스(3800) 정도에 불과하다. 소시에테 제네랄은 “약세장이 이어지겠지만 지난해만큼은 아닐 것”이라며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이 끝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약세장을 점친 이들마저 그렇게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셈이다.그외 대다수 기관들은 오히려 ‘장밋빛’에 가깝다. 중립 기조의 뱅크오브아메리카(4000), 골드만삭스(4000), RBC 캐피털(4100) 등은 시장 평균값 혹은 중간값과 비슷했다. JP모건(4200), 제프리스(4200), BMO(4300) 등은 다소 긍정적으로 봤고, 오펜하이머(4400), 웰스파고(4300~4500), 도이치방크(4500), 야데니 리서치(4800) 등은 아예 강세장 반전을 점쳤다. 루톨드그룹은 올해 말 S&P 지수가 5000을 찍을 것으로 내다봤다. 실물경기 침체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는 경고가 무색한 지경이다.◇“1년 전과 판박이”…일각서 신중론이들이 상승장을 점치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CNBC 설문 결과 전문가의 73%는 올해 가장 큰 우려로 연준 통화정책을 꼽았다. 중국의 대만 침공(12%), 노동시장과 공급망 대란(9%), 중국의 코로나19 재유행(6%) 등은 10% 안팎에 그쳤다. 이는 곧 연준이 인플레이션 둔화를 등에 업고 피봇(pivot·통화 긴축에서 완화로 전환)에 나선다면, 지난해 움츠렸던 증시가 반등할 수 있다는 의미다. 상반기까지 연준의 긴축을 소화한 뒤 하반기에는 뛰어오르는 ‘상저하고’ 흐름을 띨 것이라는 관측이 대세다.RBC 캐피털의 로리 칼바시나 주식전략 헤드는 “연준 정책이 전환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야데니 리서치의 에드 야데니 대표는 “소비자와 노동시장이 견고한 기반을 유지하고 있다”며 “연준이 금리를 5% 이상으로 올려도 침체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연말 지수 5000을 점친 루톨드그룹의 짐 폴슨 최고투자전략가는 아예 현재 레벨을 ‘저점’으로 규정하면서 “향후 12개월간 새로운 강세장이 이어질 것”이라고 낙관했다.그러나 월가 일각에서는 현재 낙관론이 다소 위험하다는 평가도 있다. 1년 전 이맘때와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월가의 한 고위인사는 “연준 입장에서는 인플레이션의 세심한 관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주가 반등을 용인할지 의구심이 있다”고 말했다. 주가가 뛰면서 소비심리가 살아나고 기대인플레이션이 상승하는 것이 연준에 좋지 않은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이 인사는 “올해 1분기는 일단 투자하지 말고 기다려야 하는 시기”라며 “S&P 지수는 3500~3600 레벨까지는 열어둬야 한다”고 지적했다.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한 행사에서 “시장은 연준이 조만간 최종금리가 도달하고 다시 금리를 내릴 것으로 가정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긴축의) 초기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시장 불확실성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다.
    김정남 기자 2023.01.01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오펜하이머 5330. 도이치방크 5250. 크레디트스위스 5200. 골드만삭스 5100.1년 전 이맘때 월가 주요 기관들이 내놓았던 뉴욕 증시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 예상치다. 지난 2021년 말 S&P 지수가 4766.18에 마감했으니, 최대 12% 가까이 추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이 많았다는 의미다. 당시 뱅크오브아메리카(4600), 모건스탠리(4400) 정도를 제외하면 5000선 안착론은 대세였다.1년이 지난 현재 월가는 말 그대로 ‘죽을 맛’이다. S&P 지수는 지난해 무려 19.44% 폭락한 3839.50에 거래를 마쳤다. 기존 예상치와 크게는 1500포인트 가까이 차이가 났다.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와 나스닥 지수는 각각 8.78%, 33.10%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 이후 볼 수 없었던 낙폭이다. 월가 한 뮤추얼펀드의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이 이 정도로 빠를 것이라고 점치지 못했던 게 가장 뼈아프다”고 전했다. 또 다른 채권 어드바이저는 “통상 기관들이 10% 안팎은 더 긍정적으로 예상한다고는 하지만, 이번처럼 이렇게 예측이 빗나간 것은 본 적이 없다”며 놀라워 했다.[이데일리 문승용 기자]◇월가 “새해 S&P 10% 안팎 오른다”그렇다면 새해 월가 기관들의 예측은 어떨까. 이데일리가 22개 주요 기관들의 올해 말 S&P 전망치를 분석해보니, 평균 4169.54로 나타났다. 올해보다 8.60% 더 오를 것이라는 뜻이다. 다른 조사 역시 대동소이하다. 로이터통신(4200), 블룸버그(4009) 모두 4000 초반대로 오를 것이라는 집계를 내놓았다. CNBC가 최근 400명의 시장 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10명 중 4명은 올해 S&P 지수가 6~10% 오를 것으로 봤다. 11~19% 치솟을 것이라는 답변도 10명 중 2명이나 됐다. CNBC는 “올해 금융시장 대혼란에도 불구하고 투자자들은 새해를 상당히 낙관적으로 맞고 있다”고 전했다.지난해보다 지수 자체가 떨어질 것으로 보는 곳은 바클레이스(3675), 소시에테 제네랄(3800), 캐피털 이코노믹스(3800) 정도에 불과하다. 소시에테 제네랄은 “약세장이 이어지겠지만 지난해만큼은 아닐 것”이라며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이 끝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약세장을 점친 이들마저 그렇게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셈이다.그외 대다수 기관들은 오히려 ‘장밋빛’에 가깝다. 중립 기조의 뱅크오브아메리카(4000), 골드만삭스(4000), RBC 캐피털(4100) 등은 시장 평균값 혹은 중간값과 비슷했다. JP모건(4200), 제프리스(4200), BMO(4300) 등은 다소 긍정적으로 봤고, 오펜하이머(4400), 웰스파고(4300~4500), 도이치방크(4500), 야데니 리서치(4800) 등은 아예 강세장 반전을 점쳤다. 루톨드그룹은 올해 말 S&P 지수가 5000을 찍을 것으로 내다봤다. 실물경기 침체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는 경고가 무색한 지경이다.◇“1년 전과 판박이”…일각서 신중론이들이 상승장을 점치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CNBC 설문 결과 전문가의 73%는 올해 가장 큰 우려로 연준 통화정책을 꼽았다. 중국의 대만 침공(12%), 노동시장과 공급망 대란(9%), 중국의 코로나19 재유행(6%) 등은 10% 안팎에 그쳤다. 이는 곧 연준이 인플레이션 둔화를 등에 업고 피봇(pivot·통화 긴축에서 완화로 전환)에 나선다면, 지난해 움츠렸던 증시가 반등할 수 있다는 의미다. 상반기까지 연준의 긴축을 소화한 뒤 하반기에는 뛰어오르는 ‘상저하고’ 흐름을 띨 것이라는 관측이 대세다.RBC 캐피털의 로리 칼바시나 주식전략 헤드는 “연준 정책이 전환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야데니 리서치의 에드 야데니 대표는 “소비자와 노동시장이 견고한 기반을 유지하고 있다”며 “연준이 금리를 5% 이상으로 올려도 침체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연말 지수 5000을 점친 루톨드그룹의 짐 폴슨 최고투자전략가는 아예 현재 레벨을 ‘저점’으로 규정하면서 “향후 12개월간 새로운 강세장이 이어질 것”이라고 낙관했다.그러나 월가 일각에서는 현재 낙관론이 다소 위험하다는 평가도 있다. 1년 전 이맘때와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월가의 한 고위인사는 “연준 입장에서는 인플레이션의 세심한 관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주가 반등을 용인할지 의구심이 있다”고 말했다. 주가가 뛰면서 소비심리가 살아나고 기대인플레이션이 상승하는 것이 연준에 좋지 않은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이 인사는 “올해 1분기는 일단 투자하지 말고 기다려야 하는 시기”라며 “S&P 지수는 3500~3600 레벨까지는 열어둬야 한다”고 지적했다.데이비드 솔로몬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한 행사에서 “시장은 연준이 조만간 최종금리가 도달하고 다시 금리를 내릴 것으로 가정하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긴축의) 초기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시장 불확실성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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