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호

기자

송길호의 파워인터뷰

  • 안동현 “디지털 금융환경의 부작용, 패닉 무차별 확산…결국 신뢰관리가 생명”[송길호의 파워인터뷰]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최근 은행 연쇄도산 사태와 관련, “금융당국은 뱅크런이 발생해도 유동성 지원을 통해 막아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시장에 심어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송길호 이데일리 논설위원 겸 에디터] 미국 16위 규모의 중형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사태)으로 파산한데 이어 167년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의 크레디트스위스(CS)은행도 보유자산 부실에 따른 유동성 위기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비이성적 공포가 전염병처럼 급속히 번지는 ‘뱅크데믹’(Bankdemic·은행+ 팬데믹)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덮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 금리인상의 후폭풍이 금융시장에 파열음을 내며 굴지의 은행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신용위기가 도래하면서 2008년 금융위기의 데자뷔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지난 2월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장으로 위촉돼 금융정책을 자문하고 있는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부터 현 상황의 진단과 해법을 들었다. 고려대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 자본시장연구원장을 거친 그는 금융위기 시절 영국 대표 은행인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의 퀀트전략본부장으로 투자전략을 담당하는 등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최고의 금융석학 중 한 명으로 꼽힌다.안 교수는 최근 서울대 연구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SVB사태는 트위터가 유발한 최초의 뱅크런(the first Twitter-fueled bank run)”이라며 “디지털화에 따른 금융환경의 변화가 패닉을 급속히 확산시켰다는 점에서 새로운 위기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신뢰를 잃고 패닉에 빠지면 멀쩡한 은행도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시대”라며 “신뢰관리를 위해선 은행은 파산하지 않는다는 믿음, 설령 뱅크런이 발생해도 금융당국이 유동성 지원을 통해 막아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를 심어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 “상황별 비상계획, 컨틴젼시 플랜(contingency plan)을 통해 방어선을 차례로 만드는 등 위기대응시스템을 철저히 구축해야 한다”며 “특히 정치적 합의와 법적 제도적 장치를 통해 당국자들의 면책범위를 넓혀주는 등 신속한 대처를 위한 능동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스마트 기기 일상화…뱅크런 위험 상존 ▶SVB사태가 금융위기의 시발점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습니다. “뱅크런은 1930년대 대공황을 상징하는 장면중 하나입니다. 당시 은행 1만개가 뱅크런으로 문을 닫았어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영국 노던록은행에서 크게 일어났지만 사실 1980년대 이후 뱅크런에 의한 은행 파산은 거의 사라졌죠. 금융당국이 사전규제 및 사후감시, 그리고 예금자보호제도와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기능을 통해 금융시장에 패닉이 발생하더라도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는 신뢰가 형성됐다고 보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뱅크런은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런 고전적 뱅크런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SVB사태는 복고형 파산입니다. 새로운 위기국면이 나타난 거죠.” ▶지금 금융시장의 혼란은 기존 금융위기 상황과는 다르다는 거군요. “2008년 금융위기때처럼 최근의 은행 파산은 대차대조표상 차변(자산)항목이 원인인 경우가 일반적이에요. 위험자산에 과도하게 노출되면서 부실로 이어지죠. 그런데 SVB는 보유 자산의 60%정도가 신용도 높은 미국 국채로 구성됐어요.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평가손은 늘었지만 만기까지 보유하면 모두 상환되는 자산입니다. 문제는 고객 분산이 제대로 안 돼 있었다는 거예요.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고객 대부분이 스타트업으로 거의 동질하고 뭉치돈이 많이 들어와 예금이 한번 빠지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어요. SVB만의 특수한 케이스는 아니에요. 미국 지역은행 대부분은 대변·차변 항목 모두 분산이 안 돼 있습니다. 지역마다 유사한 비즈니스로 경기사이클에 따라 예금이 한꺼번에 들어오고 빠져나가는 쏠림현상이 심하죠. 그런 면에서 이번 파산은 차변이 아닌 대변(부채·은행으로선 예금)쪽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데 주목해야 해요. 금융위기 이후 항상 은행 보유자산의 분산을 강조했는데 이번 교훈은 위험관리 차원에서 예금 고객도 분산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CS의 파산은 공격적인 투자가 원인이었지요.“CS의 경우는 금융위기의 후속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부분의 유럽계 은행이 고위험 고수익의 IB(Investment Banking)업무를 축소하고 전통적인 CB(Commercial Banking)업무로 복귀하기 시작했어요. 오직 CS만 예외였습니다. 오히려 더 공격적으로 IB업무에 치중했죠. 그러다보니 초고위험 헤지펀드나 상업용 부동산 등 위험자산에 투자를 너무 많이 했어요. 그러다보니 투자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매몰비용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죠. CS는 SVB와는 달리 2008년 금융위기때의 전형적인 은행 파산처럼 차변 항목이 원인이 돼 무너진거죠. 종합하면 이번 은행 연쇄파산은 1907년과 1930년대 경험했던 뱅크런(SVB)과 2008년 금융위기때 관찰됐던 보유자산 부실에 따른 자본상각형 파산(CS)이 동시에 발생한 겁니다.”▶SVB와 CS는 원인은 다르지만 연쇄 도산하면서 금융위기 국면으로 치닫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금융위기는 사소한 이벤트로 촉발됩니다. SVB사태는 지난해 11월 JP모건의 리서치 리포트에서 시작됐어요. SVB가 보유하고 있는 국채의 듀레이션(현재가치를 기준으로 채권에 투자한 원금을 회수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봤을때 30% 이상의 평가손이 났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는데 이후 시장에 불안감이 형성된 거죠. 문제는 SNS와 스마트 뱅킹이 불안심리를 전염병처럼 확산시켰다는 겁니다. 이런 뉴스에 무방비로 노출되면 어떤 은행도 안전할 수 없어요. 여기에 은행으로 직접 달려가 줄을 서지 않아도 이젠 모바일앱으로 클릭 몇 번하면 예금을 즉시 인출할 수 있잖아요. SVB가 유동성 위기로 증자계획을 발표하는 순간 공포심리가 무차별적으로 전염되면서 스마트폰으로 단 하루 만에 420억 달러의 예금이 빠져나갔어요. 파산까지는 단 36시간이 걸렸지요. 그래서 SVB 사태를 ‘트위터가 유발한 최초의 뱅크런’ 이라고 합니다. 디지털화에 따른 금융환경의 변화가 패닉을 급속히 확산시켰다는 면에서 우려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뱅크데믹(Bankdemic·은행+팬데믹)…공포의 확산 ▶SNS와 스마트기기가 루머와 공포를 만들고 확산시키는 기제가 됐군요. “사실 은행업의 본질상 뱅크런이라는 위험요인은 피할 수 없어요. 은행의 고유기능은 단기예금을 장기대출로 전환하는 이른바 유동성 전환(liquidity transformation)을 통해 실물투자, 즉 산업자본의 형성을 도모해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데 있습니다. 이에 따른 위험요인이 바로 뱅크런입니다. 예금을 대출이나 비유동성 투자와 같은 장기자산 형식으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예금자들이 어떤 이유로든 한꺼번에 인출하면 감당할 방법이 없는거죠. 이는 은행의 펀더멘탈과도 무관해요. 돌발적인 대규모 예금인출에 대비하려면 대부분의 자산을 유동성 자산으로 보유해 지불준비금으로 확보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유동성 전환이 이뤄지지 않아 은행의 본질이 훼손됩니다. 그런데 예전 뱅크런은 앞줄에 서야 인출을 할 수 있는 달리기 싸움이었다면 이제는 스마트폰 싸움이 됐어요. SNS나 인터넷을 통해 차변쪽에 약간이라도 불안하다는 루머가 돌면 일단 예금을 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형태의 뱅크런은 앞으로 자주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안 교수는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다이아몬드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와 디빅 워싱턴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공동연구를 통해 밝힌 태양 흑점 균형(sun spot equilibrium)이론을 통해 뱅크런을 설명했다. “묘하게 이들이 노벨상을 탄 후 지금 이 사건이 터졌어요. 이들이 다룬 논문의 주제가 바로 뱅크런이었거든요. 결론은 사람들의 기대를 변화시켜 곡물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태양흑점처럼, 뱅크런도 펀더멘털과 관련없이 돌발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사전에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이를 수리적으로 증명한 거에요. 갑자기 사람들이 패닉이 돼서 예금을 인출하기 시작하면 옆 사람도 동참하게 되고 그러면 파산하는 거죠. 은행이 건전하다고 파산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어요. 물론 예측도 불가능하죠. 공포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닌 인간 심리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위기가 재연되느냐 아니냐라는 논쟁은 별 의미가 없겠군요. “금융위기 당시 업계에서 트레이드 데스크로 근무하면서 느낀 점이지만 좋은 트레이더는 예측을 잘하는 트레이더가 아니라 그때그때 시장 상황에 잘 대응하는 트레이더에요. 이들이 돈도 잘 법니다. 얼마나 즉각적으로 신속히 잘 대응하느냐가 중요한 거죠. 바둑을 두는데 상대방의 수를 모두 예측해 둘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예상과 달라도 그때그때 전략을 수정해 대응하는거죠. 정책도 마찬가지예요. 예측에만 기반한 정책은 한계가 있어요. 시장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잖아요. 비상상황에 따른 대응계획을 얼마나 많이 그리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느냐가 관건이에요.” ▶금융당국이나 중앙은행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군요. “그런 면에서 이번 Fed의 대응은 굉장히 서툴렀어요. SVB사태 발생 후 처음엔 파산시키겠다고 했더니 난리가 났죠. 미국 예금자보호한도가 25만달러인데 대부분 기업고객이라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지역은행들로 위기가 확산될 조짐이 보이니 그 다음날 백악관이 나서서 예금자 전액을 보장해주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다음날 주가가 반등하고 위기는 지났다 싶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미국의 이런 지역은행이 얼마나 많은데 문제가 생길때마다 이걸 다 막을 수 있겠냐는 의문이 제기된 겁니다. 뱅크런처럼 은행 구제에도 순서가 생겨버린거죠. 그래서 엘런 재무장관이 JP모건을 비롯한 대형은행에 예금을 채워주라고 한겁니다. 시스템에 따라 처리한 게 아니라 그때그때 임시방편 미봉책 (ad-hoc response)으로 봉합한거죠.” ◇선제적 모니터링 그리고 상황별 비상계획 ▶Fed도 새로운 위기 상황에 허둥지둥한 거군요. “만약 패닉 초반에 SVB보유 국채를 담보로 Fed가 유동성 지원을 해주겠다, 빠져나간 돈만큼 모두 메워주겠다고 했으면 추가적인 예금인출을 막고 은행파산을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갑작스런 돌발상황에 그런 생각까진 못한 거예요.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금융회사들이 모럴해저드에 빠져 성과급 챙기려고 위험자산에 투자한 게 아니잖아요. 최후의 대부자로서 중앙은행은 (이런 비이성적 패닉으로 발생한) 유동성위기는 다 막아주겠다는 의지를 처음부터 확고히 보였어야 했어요. 돈을 메꿔주는 그 자체보다 예금자들의 불안 해소를 위해 어떤 방식이 가장 효과적인지, 즉 어떻게 최소비용으로 예금자들의 신뢰를 회복시킬 수 있는지, 1차·2차 방어선 등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우리 금융당국과 중앙은행도 반면교사로 삼아야겠군요. “다시 강조하지만 사람들이 신뢰감을 잃고 패닉에 빠져버리면 어떤 금융기관도 안전할 수 없어요. 특히 (비보험 자산인 예금이 주요 부채인) 은행은 취약할 수밖에 없죠. 이런 식의 위기가 우리라고 터지지 말라는 법이 없어요. 2008년 금융위기때와는 달라요. 이젠 사람들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면 그 자체가 위기가 돼 버립니다. 위기라고 생각하는 순간 위기가 오는 겁니다. 그래서 패닉을 없애는 방법은 신뢰밖에 없어요. 은행이 파산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사람들이 한꺼번에 돈을 빼지 않고 만약에 뺀다 해도 어떤 식으로든 금융당국이 유동성 지원을 통해 이를 막아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어야 해요.” ▶선제적 대응을 통해 위기 발생 확률을 줄일 수 있을지 몰라도 더 중요한 건 신속한 사후대처라는 거군요. “지금 같은 시스템에선 SVB사태같은 일이 발생하면 Fed처럼 우왕좌왕할 거에요. 오히려 법적, 정치적 위험이 큰 우리 체제에서는 정책당국자가 즉각적으로 대응하는데 제약이 많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라 상황에 따른 비상계획을 철저히 마련해야 해요. 컨틴젼시 플랜(contingency plan)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제도적으로 한은, 금융위, 기재부의 역할 등을 미리 정리해놓고 사후 정치적으로나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도록 면책기능을 넓혀 당국자가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합니다. 그동안 구조조정이나 베일아웃(bail-out)으로 유동성 지원을 해준 후 검찰에 불려가지 않은 장관이나 행장이 없잖아요. 나중에 문책의 소지가 있다면 공무원들은 절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직권남용으로 걸면 안 걸릴 수가 없어요. 평시에는 별 문제 없지만 진짜 위기가 터졌을때는 자기 목을 걸고 해결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위기대응은 속도전이에요.”◇국내 기관, 해외 상업용 부동산 투자 비상 ▶우리는 지역은행은 물론 2금융권에 동질성 있는 금융기관이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역 특화은행 육성 방안 등은 재고해야 합니다. 고객층이 비슷한 저축은행, 단위신협, 새마을금고 등에 대해서도 철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죠. 이중 새마을 금고는 규제의 사각지대예요. 은행과 유사한 업의 본질을 볼 때 행안부 밑에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동일행위 동일규제 원칙에 따라 금융당국 규제를 받아야 합니다. 물론 사전규제는 금융위와 행안부가 비슷하게 맞춰놨을 겁니다. 중요한 건 사후 모니터링이에요. 금융기관들은 모두 금융당국의 감시 대상인데 행안부 관할인 새마을금고만 빠져 있습니다. 대체투자, 특히 부동산PF 대출을 새마을금고의 중앙회 외에 각 지점에 위임한 것이 문제입니다. 지점에 전문인력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런 무분별한 투자에 대해 모니터링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거죠” 행안부에 따르면 새마을금고의 건설·부동산업 대출잔액은 2019년 말 27조2000억원에서 올 1월말 56조4000억원으로 배가 넘게 급증했다. 반면 연체율은 2.5%에서 9.2%로 3.7배 치솟았다.▶부동산 PF 부실은 2금융권 전반에 확산돼 있죠. “1차적으로는 증권사가 문제죠. 지난 연말에 레고 사태로 인한 부동산 PF문제로 몇개 무너질뻔 했잖아요. 정부가 막지 않았으면 7개사 정도는 문을 닫을 뻔했습니다. 여기에 일부 증권사들은 해외대체투자도 많이 했는데 대부분 인프라나 상업용 부동산이에요. 해외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니 익스포져가 큰 기관들은 위험에 처하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지금 외국계에서 국내 은행이나 증권사에 대해 가장 먼저 물어보는게 해외부동산 익스포져가 어느 정도냐는 겁니다. 이미 위험을 감지했다는 거죠. 상업용 부동산이 무너지면 파괴력이 매우 큽니다. 국민연금, 공제회 등 국내 기관투자가(LP)들도 지난 20여년 동안 해외에 가장 많이 투자한 대상이 상업용 부동산이었어요.” ▶위기의 뇌관은 상업용부동산이 되겠군요. “우리나라 부동산은 리스크 대비 리턴이 너무 높아요. 그러다보니 부동산불패신화가 생기고 거의 10년에 한번씩 버블이 꺼지는데 그럴때마다 직격탄을 맞는 금융회사들이 있어요. 금융위기 후 이명박정부시절 부동산가격이 30%정도 빠질때 저축은행 PF사태가 있었고 이번엔 부동산 대체투자를 과도하게 한 증권사와 캐피탈사 등이 위험한 거죠. 여기까지가 주거용 부동산 문제였다면 해외발 위험은 상업용 부동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에요.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다 지금 빠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금융위기 때는 주거용모기지담보부증권(RMBS)이, 이번엔 상업용모기지담보부증권(CMBS)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만약에 SVB처럼 불안심리가 확 퍼지면 한밤의 도둑처럼 위기가 터질 가능성이 높아요.” ▶위기국면에서 일반 투자자들은 어떻게 대처해야할까요.“폭탄이 떨어진 진원지 한 가운데에 있을때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터지고 난 후 한참 후에야 알 수 있죠.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바닥이 어딘지 미리 예측을 해서 투자하는 건 매우 위험합니다. 그런데 자꾸 예측하려고 하죠. 리먼브러더스 파산때 우리도 그랬어요. 당시 산은 회장이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전 바닥이라고 생각하고 인수하려고 했죠.나중에 보니 저점은 파산(2008년 9월) 후 반년이 지난 그 다음해 3월이었어요. 너무 성급하다는 걸 많이 느껴요. 위기 후 반등은 V자형이라기보다는 W자형으로 갑니다. 회복을 확인한 후 행동해도 늦지 않습니다.”안 교수는…△1964년 예천 출생 △고려대 경영학과 ·경영학 석사 △뉴욕대 경영학 박사 △고려대 경영대 조교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경영대학 재무학 부교수 △RBS 퀀트전략본부장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 위원 △국민경제자문회의 기초경제1분과 위원 △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위원 △자본시장연구원장 △(현)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장
    송길호 기자 2023.04.06
    안동현 서울대 교수는 최근 은행 연쇄도산 사태와 관련, “금융당국은 뱅크런이 발생해도 유동성 지원을 통해 막아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시장에 심어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송길호 이데일리 논설위원 겸 에디터] 미국 16위 규모의 중형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사태)으로 파산한데 이어 167년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의 크레디트스위스(CS)은행도 보유자산 부실에 따른 유동성 위기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비이성적 공포가 전염병처럼 급속히 번지는 ‘뱅크데믹’(Bankdemic·은행+ 팬데믹)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덮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 금리인상의 후폭풍이 금융시장에 파열음을 내며 굴지의 은행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신용위기가 도래하면서 2008년 금융위기의 데자뷔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지난 2월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장으로 위촉돼 금융정책을 자문하고 있는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부터 현 상황의 진단과 해법을 들었다. 고려대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 자본시장연구원장을 거친 그는 금융위기 시절 영국 대표 은행인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의 퀀트전략본부장으로 투자전략을 담당하는 등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최고의 금융석학 중 한 명으로 꼽힌다.안 교수는 최근 서울대 연구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SVB사태는 트위터가 유발한 최초의 뱅크런(the first Twitter-fueled bank run)”이라며 “디지털화에 따른 금융환경의 변화가 패닉을 급속히 확산시켰다는 점에서 새로운 위기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신뢰를 잃고 패닉에 빠지면 멀쩡한 은행도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시대”라며 “신뢰관리를 위해선 은행은 파산하지 않는다는 믿음, 설령 뱅크런이 발생해도 금융당국이 유동성 지원을 통해 막아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를 심어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해 “상황별 비상계획, 컨틴젼시 플랜(contingency plan)을 통해 방어선을 차례로 만드는 등 위기대응시스템을 철저히 구축해야 한다”며 “특히 정치적 합의와 법적 제도적 장치를 통해 당국자들의 면책범위를 넓혀주는 등 신속한 대처를 위한 능동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스마트 기기 일상화…뱅크런 위험 상존 ▶SVB사태가 금융위기의 시발점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습니다. “뱅크런은 1930년대 대공황을 상징하는 장면중 하나입니다. 당시 은행 1만개가 뱅크런으로 문을 닫았어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영국 노던록은행에서 크게 일어났지만 사실 1980년대 이후 뱅크런에 의한 은행 파산은 거의 사라졌죠. 금융당국이 사전규제 및 사후감시, 그리고 예금자보호제도와 중앙은행의 최종대부자 기능을 통해 금융시장에 패닉이 발생하더라도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는 신뢰가 형성됐다고 보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뱅크런은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런 고전적 뱅크런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SVB사태는 복고형 파산입니다. 새로운 위기국면이 나타난 거죠.” ▶지금 금융시장의 혼란은 기존 금융위기 상황과는 다르다는 거군요. “2008년 금융위기때처럼 최근의 은행 파산은 대차대조표상 차변(자산)항목이 원인인 경우가 일반적이에요. 위험자산에 과도하게 노출되면서 부실로 이어지죠. 그런데 SVB는 보유 자산의 60%정도가 신용도 높은 미국 국채로 구성됐어요.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평가손은 늘었지만 만기까지 보유하면 모두 상환되는 자산입니다. 문제는 고객 분산이 제대로 안 돼 있었다는 거예요. 이 점이 중요합니다. 고객 대부분이 스타트업으로 거의 동질하고 뭉치돈이 많이 들어와 예금이 한번 빠지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어요. SVB만의 특수한 케이스는 아니에요. 미국 지역은행 대부분은 대변·차변 항목 모두 분산이 안 돼 있습니다. 지역마다 유사한 비즈니스로 경기사이클에 따라 예금이 한꺼번에 들어오고 빠져나가는 쏠림현상이 심하죠. 그런 면에서 이번 파산은 차변이 아닌 대변(부채·은행으로선 예금)쪽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데 주목해야 해요. 금융위기 이후 항상 은행 보유자산의 분산을 강조했는데 이번 교훈은 위험관리 차원에서 예금 고객도 분산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CS의 파산은 공격적인 투자가 원인이었지요.“CS의 경우는 금융위기의 후속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부분의 유럽계 은행이 고위험 고수익의 IB(Investment Banking)업무를 축소하고 전통적인 CB(Commercial Banking)업무로 복귀하기 시작했어요. 오직 CS만 예외였습니다. 오히려 더 공격적으로 IB업무에 치중했죠. 그러다보니 초고위험 헤지펀드나 상업용 부동산 등 위험자산에 투자를 너무 많이 했어요. 그러다보니 투자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매몰비용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죠. CS는 SVB와는 달리 2008년 금융위기때의 전형적인 은행 파산처럼 차변 항목이 원인이 돼 무너진거죠. 종합하면 이번 은행 연쇄파산은 1907년과 1930년대 경험했던 뱅크런(SVB)과 2008년 금융위기때 관찰됐던 보유자산 부실에 따른 자본상각형 파산(CS)이 동시에 발생한 겁니다.”▶SVB와 CS는 원인은 다르지만 연쇄 도산하면서 금융위기 국면으로 치닫는 게 아니냐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금융위기는 사소한 이벤트로 촉발됩니다. SVB사태는 지난해 11월 JP모건의 리서치 리포트에서 시작됐어요. SVB가 보유하고 있는 국채의 듀레이션(현재가치를 기준으로 채권에 투자한 원금을 회수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봤을때 30% 이상의 평가손이 났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는데 이후 시장에 불안감이 형성된 거죠. 문제는 SNS와 스마트 뱅킹이 불안심리를 전염병처럼 확산시켰다는 겁니다. 이런 뉴스에 무방비로 노출되면 어떤 은행도 안전할 수 없어요. 여기에 은행으로 직접 달려가 줄을 서지 않아도 이젠 모바일앱으로 클릭 몇 번하면 예금을 즉시 인출할 수 있잖아요. SVB가 유동성 위기로 증자계획을 발표하는 순간 공포심리가 무차별적으로 전염되면서 스마트폰으로 단 하루 만에 420억 달러의 예금이 빠져나갔어요. 파산까지는 단 36시간이 걸렸지요. 그래서 SVB 사태를 ‘트위터가 유발한 최초의 뱅크런’ 이라고 합니다. 디지털화에 따른 금융환경의 변화가 패닉을 급속히 확산시켰다는 면에서 우려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뱅크데믹(Bankdemic·은행+팬데믹)…공포의 확산 ▶SNS와 스마트기기가 루머와 공포를 만들고 확산시키는 기제가 됐군요. “사실 은행업의 본질상 뱅크런이라는 위험요인은 피할 수 없어요. 은행의 고유기능은 단기예금을 장기대출로 전환하는 이른바 유동성 전환(liquidity transformation)을 통해 실물투자, 즉 산업자본의 형성을 도모해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데 있습니다. 이에 따른 위험요인이 바로 뱅크런입니다. 예금을 대출이나 비유동성 투자와 같은 장기자산 형식으로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예금자들이 어떤 이유로든 한꺼번에 인출하면 감당할 방법이 없는거죠. 이는 은행의 펀더멘탈과도 무관해요. 돌발적인 대규모 예금인출에 대비하려면 대부분의 자산을 유동성 자산으로 보유해 지불준비금으로 확보해야 하는데 그럴 경우 유동성 전환이 이뤄지지 않아 은행의 본질이 훼손됩니다. 그런데 예전 뱅크런은 앞줄에 서야 인출을 할 수 있는 달리기 싸움이었다면 이제는 스마트폰 싸움이 됐어요. SNS나 인터넷을 통해 차변쪽에 약간이라도 불안하다는 루머가 돌면 일단 예금을 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형태의 뱅크런은 앞으로 자주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안 교수는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다이아몬드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와 디빅 워싱턴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공동연구를 통해 밝힌 태양 흑점 균형(sun spot equilibrium)이론을 통해 뱅크런을 설명했다. “묘하게 이들이 노벨상을 탄 후 지금 이 사건이 터졌어요. 이들이 다룬 논문의 주제가 바로 뱅크런이었거든요. 결론은 사람들의 기대를 변화시켜 곡물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태양흑점처럼, 뱅크런도 펀더멘털과 관련없이 돌발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사전에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이를 수리적으로 증명한 거에요. 갑자기 사람들이 패닉이 돼서 예금을 인출하기 시작하면 옆 사람도 동참하게 되고 그러면 파산하는 거죠. 은행이 건전하다고 파산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어요. 물론 예측도 불가능하죠. 공포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닌 인간 심리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위기가 재연되느냐 아니냐라는 논쟁은 별 의미가 없겠군요. “금융위기 당시 업계에서 트레이드 데스크로 근무하면서 느낀 점이지만 좋은 트레이더는 예측을 잘하는 트레이더가 아니라 그때그때 시장 상황에 잘 대응하는 트레이더에요. 이들이 돈도 잘 법니다. 얼마나 즉각적으로 신속히 잘 대응하느냐가 중요한 거죠. 바둑을 두는데 상대방의 수를 모두 예측해 둘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예상과 달라도 그때그때 전략을 수정해 대응하는거죠. 정책도 마찬가지예요. 예측에만 기반한 정책은 한계가 있어요. 시장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잖아요. 비상상황에 따른 대응계획을 얼마나 많이 그리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느냐가 관건이에요.” ▶금융당국이나 중앙은행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군요. “그런 면에서 이번 Fed의 대응은 굉장히 서툴렀어요. SVB사태 발생 후 처음엔 파산시키겠다고 했더니 난리가 났죠. 미국 예금자보호한도가 25만달러인데 대부분 기업고객이라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지역은행들로 위기가 확산될 조짐이 보이니 그 다음날 백악관이 나서서 예금자 전액을 보장해주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다음날 주가가 반등하고 위기는 지났다 싶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미국의 이런 지역은행이 얼마나 많은데 문제가 생길때마다 이걸 다 막을 수 있겠냐는 의문이 제기된 겁니다. 뱅크런처럼 은행 구제에도 순서가 생겨버린거죠. 그래서 엘런 재무장관이 JP모건을 비롯한 대형은행에 예금을 채워주라고 한겁니다. 시스템에 따라 처리한 게 아니라 그때그때 임시방편 미봉책 (ad-hoc response)으로 봉합한거죠.” ◇선제적 모니터링 그리고 상황별 비상계획 ▶Fed도 새로운 위기 상황에 허둥지둥한 거군요. “만약 패닉 초반에 SVB보유 국채를 담보로 Fed가 유동성 지원을 해주겠다, 빠져나간 돈만큼 모두 메워주겠다고 했으면 추가적인 예금인출을 막고 은행파산을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갑작스런 돌발상황에 그런 생각까진 못한 거예요. 2008년 금융위기 때처럼 금융회사들이 모럴해저드에 빠져 성과급 챙기려고 위험자산에 투자한 게 아니잖아요. 최후의 대부자로서 중앙은행은 (이런 비이성적 패닉으로 발생한) 유동성위기는 다 막아주겠다는 의지를 처음부터 확고히 보였어야 했어요. 돈을 메꿔주는 그 자체보다 예금자들의 불안 해소를 위해 어떤 방식이 가장 효과적인지, 즉 어떻게 최소비용으로 예금자들의 신뢰를 회복시킬 수 있는지, 1차·2차 방어선 등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우리 금융당국과 중앙은행도 반면교사로 삼아야겠군요. “다시 강조하지만 사람들이 신뢰감을 잃고 패닉에 빠져버리면 어떤 금융기관도 안전할 수 없어요. 특히 (비보험 자산인 예금이 주요 부채인) 은행은 취약할 수밖에 없죠. 이런 식의 위기가 우리라고 터지지 말라는 법이 없어요. 2008년 금융위기때와는 달라요. 이젠 사람들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면 그 자체가 위기가 돼 버립니다. 위기라고 생각하는 순간 위기가 오는 겁니다. 그래서 패닉을 없애는 방법은 신뢰밖에 없어요. 은행이 파산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사람들이 한꺼번에 돈을 빼지 않고 만약에 뺀다 해도 어떤 식으로든 금융당국이 유동성 지원을 통해 이를 막아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어야 해요.” ▶선제적 대응을 통해 위기 발생 확률을 줄일 수 있을지 몰라도 더 중요한 건 신속한 사후대처라는 거군요. “지금 같은 시스템에선 SVB사태같은 일이 발생하면 Fed처럼 우왕좌왕할 거에요. 오히려 법적, 정치적 위험이 큰 우리 체제에서는 정책당국자가 즉각적으로 대응하는데 제약이 많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라 상황에 따른 비상계획을 철저히 마련해야 해요. 컨틴젼시 플랜(contingency plan)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제도적으로 한은, 금융위, 기재부의 역할 등을 미리 정리해놓고 사후 정치적으로나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도록 면책기능을 넓혀 당국자가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합니다. 그동안 구조조정이나 베일아웃(bail-out)으로 유동성 지원을 해준 후 검찰에 불려가지 않은 장관이나 행장이 없잖아요. 나중에 문책의 소지가 있다면 공무원들은 절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직권남용으로 걸면 안 걸릴 수가 없어요. 평시에는 별 문제 없지만 진짜 위기가 터졌을때는 자기 목을 걸고 해결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위기대응은 속도전이에요.”◇국내 기관, 해외 상업용 부동산 투자 비상 ▶우리는 지역은행은 물론 2금융권에 동질성 있는 금융기관이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역 특화은행 육성 방안 등은 재고해야 합니다. 고객층이 비슷한 저축은행, 단위신협, 새마을금고 등에 대해서도 철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죠. 이중 새마을 금고는 규제의 사각지대예요. 은행과 유사한 업의 본질을 볼 때 행안부 밑에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동일행위 동일규제 원칙에 따라 금융당국 규제를 받아야 합니다. 물론 사전규제는 금융위와 행안부가 비슷하게 맞춰놨을 겁니다. 중요한 건 사후 모니터링이에요. 금융기관들은 모두 금융당국의 감시 대상인데 행안부 관할인 새마을금고만 빠져 있습니다. 대체투자, 특히 부동산PF 대출을 새마을금고의 중앙회 외에 각 지점에 위임한 것이 문제입니다. 지점에 전문인력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런 무분별한 투자에 대해 모니터링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거죠” 행안부에 따르면 새마을금고의 건설·부동산업 대출잔액은 2019년 말 27조2000억원에서 올 1월말 56조4000억원으로 배가 넘게 급증했다. 반면 연체율은 2.5%에서 9.2%로 3.7배 치솟았다.▶부동산 PF 부실은 2금융권 전반에 확산돼 있죠. “1차적으로는 증권사가 문제죠. 지난 연말에 레고 사태로 인한 부동산 PF문제로 몇개 무너질뻔 했잖아요. 정부가 막지 않았으면 7개사 정도는 문을 닫을 뻔했습니다. 여기에 일부 증권사들은 해외대체투자도 많이 했는데 대부분 인프라나 상업용 부동산이에요. 해외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니 익스포져가 큰 기관들은 위험에 처하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지금 외국계에서 국내 은행이나 증권사에 대해 가장 먼저 물어보는게 해외부동산 익스포져가 어느 정도냐는 겁니다. 이미 위험을 감지했다는 거죠. 상업용 부동산이 무너지면 파괴력이 매우 큽니다. 국민연금, 공제회 등 국내 기관투자가(LP)들도 지난 20여년 동안 해외에 가장 많이 투자한 대상이 상업용 부동산이었어요.” ▶위기의 뇌관은 상업용부동산이 되겠군요. “우리나라 부동산은 리스크 대비 리턴이 너무 높아요. 그러다보니 부동산불패신화가 생기고 거의 10년에 한번씩 버블이 꺼지는데 그럴때마다 직격탄을 맞는 금융회사들이 있어요. 금융위기 후 이명박정부시절 부동산가격이 30%정도 빠질때 저축은행 PF사태가 있었고 이번엔 부동산 대체투자를 과도하게 한 증권사와 캐피탈사 등이 위험한 거죠. 여기까지가 주거용 부동산 문제였다면 해외발 위험은 상업용 부동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에요.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다 지금 빠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금융위기 때는 주거용모기지담보부증권(RMBS)이, 이번엔 상업용모기지담보부증권(CMBS)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만약에 SVB처럼 불안심리가 확 퍼지면 한밤의 도둑처럼 위기가 터질 가능성이 높아요.” ▶위기국면에서 일반 투자자들은 어떻게 대처해야할까요.“폭탄이 떨어진 진원지 한 가운데에 있을때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터지고 난 후 한참 후에야 알 수 있죠.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바닥이 어딘지 미리 예측을 해서 투자하는 건 매우 위험합니다. 그런데 자꾸 예측하려고 하죠. 리먼브러더스 파산때 우리도 그랬어요. 당시 산은 회장이 리먼브러더스 파산 직전 바닥이라고 생각하고 인수하려고 했죠.나중에 보니 저점은 파산(2008년 9월) 후 반년이 지난 그 다음해 3월이었어요. 너무 성급하다는 걸 많이 느껴요. 위기 후 반등은 V자형이라기보다는 W자형으로 갑니다. 회복을 확인한 후 행동해도 늦지 않습니다.”안 교수는…△1964년 예천 출생 △고려대 경영학과 ·경영학 석사 △뉴욕대 경영학 박사 △고려대 경영대 조교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경영대학 재무학 부교수 △RBS 퀀트전략본부장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회 위원 △국민경제자문회의 기초경제1분과 위원 △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위원 △자본시장연구원장 △(현)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장
  • 김태기 "70년 된 낡은 노동법 올가미에...MZ세대 창의자본 싹 못 틔워"[송길호의 파워인터뷰]
    김태기 중앙노동위원장은 “노동이 단순 생산 요소가 아닌 인적자본 내지 창의자본이 될 수 있도록 제도와 관행을 뒷받침해야 한다”며 “자율과 분권의 기조아래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라 70년 낡은 노동법제를 현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송길호 이데일리 논설위원 겸 에디터]윤석열 대통령이 올해를 노동개혁 추진 원년으로 삼고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특권노조의 일탈과 비리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개혁의 목소리는 그 어느때보다 높다. 법치 수호를 위한 정부의 원칙적이고 단호한 대응이 국민 지지를 이끌어내며 동력도 살아나고 있다. 하지만 당위성에 대한 공감대는 확산되고 있지만 실행방안에 대한 논란은 분분하다. 전체적인 컨센서스는 모아지지 않은채 부분적 산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다개혁의 발판은 마련했지만 구체적인 청사진이 나오지 않은 이때, 전체적인 로드맵은 어떻게 짜야할까. 시대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70년 낡은 법제는 어떻게 개편해야할까. 퇴행적 노동운동, 후진적 노사관행은 어떻게 개선할까.김태기 중앙노동위원장에게 노동개혁의 갈 길을 물었다. 노동조합과 노사관계 분야를 오래 연구해온 그는 김영삼정부시절부터 30여년간 각종 노동 관련 위원회의 공익위원 또는 분과별 위원장을 맡으며 노사 대립과 갈등의 현장을 생생히 경험한 노동경제학계의 석학이다.김 위원장은 최근 서울 정부청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노동개혁과 관련, “국가차원에선 생산수단으로서의 노동을 인적자본으로 확장, 생산성을 높여 불평등을 줄이고, 개인 차원에선 양질의 일자리와 이동성의 기회를 확대하는 일”이라며 “결국 취약계층을 끌어올려 중산층을 두껍게 하는 모두의 윈윈게임”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법치를 확립하고 노동법제를 자율· 분권의 기조 아래 글로벌스탠더드에 따라 현대화해야 한다”며 “시대착오적 노동법 체계로는 노동력의 확장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도 지속적인 성장도 이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노조회계 공개는 조합 민주주의의 기본 -노조의 회계공개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는데요. 노조의 약점을 정확히 짚은 것 같습니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노동조합의 회계에 대해 정부가 사실상 강력한 감독 권한이 있었어요. 그런데 민주화 이후 (이런 권한이)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제한했어요. 그래서 ‘회계장부를 요구할 수 있다’는 정도의 근거조항만 남겨두었죠. 부작용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약했던 셈이에요. 문제는 국민 세금이 노조에 지원된다는 건데 어떻게 쓰이는지 모른다면 말이 안 되는 거죠. 조합원들이 낸 돈도 투명하게 알 권리가 있잖아요. 그러지 않으면 노동조합의 기본 원칙 ‘조합 민주주의’에 반하는 거예요. 특정 노동단체에 세금을 지원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어요.”-민주노총 지도부에는 종북노선을 추종하는 세력도 있습니다. “미국도 비슷한 경로를 거쳤어요. 산업혁명 이후 2차 대전을 치르면서 미국의 노동 운동에도 공산주의자들이 침투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민주노총격인 CIO(산업별조합회의)의 경우 국익보다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식이었어요. 그래서 안보 위협이 발생해요. 여기에 산별노조들이 마피아와 손을 잡고 검은 돈을 거래합니다. 비리가 터지기 시작하죠. 여론이 들끓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민주·공화 양당이 함께 법을 만들어 대응합니다. 1947년 태프트·하틀리법(Taft - Hartley Act)으로 불린 노사 관계법이 그렇게 제정됐어요. 미국에선 적어도 안보위협, 노조비리에 대해선 초당적으로 협력합니다.이후 노동계도 위기감을 느껴 돌파구를 찾으려고 했어요. 1955년 양대 노총인 AFL(노동총연맹)과 CIO가 합쳐 AFL-CIO가 탄생한 배경이에요.”러시아 공산혁명 2년 후인 1919년 출범한 미 공산당(CPUSA)은 소련과 유기적으로 내통하며 노조와 결탁, 1936년 대선까지 참여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제정된 태프트 · 하틀리법은 노조의 예산· 결산 공개를 강제하고 노조의 정치헌금을 금지시켰을 뿐 아니라 노조 지도자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점을 선언하도록 의무화했다. -노동단체의 전횡과 일탈은 선진국도 마찬가지군요.“노동조합 정치, 이른바 노동정치(Labor Politics)는 어느 나라에나 있죠. 정상적인 노동 정치라면 노조가 국회나 정부를 설득해 근로자에게 유리한 정책이 나오도록 하는거예요. 하지만 노조가 정치자금이나 선거자금을 통해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파업 등 물리적 힘을 동원해 기득권을 지키려 하면 민의를 왜곡하게 되죠. 민주주의의 마이너스 요인이에요. 그런 일들이 실제 산업혁명 이후 선진국에서 나타났지만 대부분 극복했어요. 지금 우리나라에서 겪는 문제들은 이미 선진국이 거쳐갔던 일들입니다. 미국의 경우는 40년대 후반∼ 50년대, 유럽은 대략 70년대 대략 마무리됩니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여전히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원인은.“선진국들은 시대변화에 따라 노동법을 계속 진화 발전시켰어요. 미국은 40∼50년대 노동의 과보호 규정을 없앴고 90년대 클린턴 시대엔 직업훈련, 능력개발, 디지털 격차에 따른 소외계층해소 문제를 어젠다로 삼았죠. 오바마 시대엔 직업교육의 중추를 고교차원에서 전문대 차원으로 높입니다. 이런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노동개혁의 수준을 계속 끌어올린 거예요. 미국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건 노동법을 글로벌 스탠더드가 될 수 있도록 잘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유럽도 90년대 영국, 스웨덴을 필두로 덴마크 노르웨이 독일이 차례로 노동법을 개정했어요. 남유럽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0년대 들어서야 착수했죠. 결국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노동법을 현대화한 나라가 지속적인 성장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어요.” ◇시대변화에 뒤처진 노동법제…노동 불평등 심화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노동법은 답보상태라는 거군요. “김영삼 정부시절 노동법 파동 이후 발목이 잡혔어요. 1996년말 당시 노동법을 통과시켜놓고도 야당의 결사반대와 정치선동으로 번복했는데 결정적 실수예요. 당시 노동법 파동을 주도한 DJ는 집권후 IMF의 압박으로 정리해고 법제화 등에 나섰지만 사실 별 진전된 내용은 없습니다. 해고 요건에 대한 정비부터 안 돼 있어요. 1990년대 디지털시대로 접어들면서 각국은 고용관계에 대한 정부 개입을 축소하는 등 노동의 자유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노동법 개정에 나섰지만 우리는 반대방향으로 간 거에요. 노동법이 시대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노사관행도 여전히 구태에 머물러 있는 셈이죠.” -낡은 노동법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유발하는 거죠. “노동시장 건전성의 척도는 이동성(mobility)이에요.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중소기업 근로자가 대기업 근로자로 쉽게 전환될 수 있어야 해요. 디지털 시대로 전환되면서 노동이동이 매우 왕성해야 할텐데 각종 산업규제와 노동규제로 막혀 있어요. 근로시간 규제 때문에 일을 더 하고 싶어도 못해요. 노동법이 전체 근로자의 12%에 불과한 대기업 정규직을 과도하게 보호하고 있잖아요. 여기에 양대노총의 주축인 강성노조의 전횡이 이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어요. 이는 결국 노동력을 제대로 활용 못 한다는 의미이고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져요. 경제의 활력은 떨어지고 불평등도 그만큼 커지게 되는 거예요.”-올해로 노동법 제정 70주년인데 이젠 재설계할 때가 됐습니다.“노동법은 시대의 산물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입법배경이 다른 나라와 다르죠. 제헌헌법이 이례적으로 노동기본권을 보장했는데 노동조합법을 통해 그 한계를 정할 필요가 있었어요. 1953년 노동조합법, 노동쟁의 조정법, 노동위원회법, 근로기준법을 차례로 제정했으니 일반법의 기초인 민법(1958년)보다 먼저 만든 셈이에요. 주목할 점은 근로기준법보다 노동조합법을 먼저 마련했다는 점이에요. 당시 주요 산업기반이 되는 공장의 노동조합을 공산주의자들이 장악하면서 노조를 적화 수단으로 삼았던 겁니다. 이들이 총파업을 하면 산업 전체가 마비되는 거에요. 체제위협을 느낀 이승만정부로선 서둘러 노동조합법을 제정해 이를 통제할 필요가 있었던 거죠.” -노동조합의 정치적 성격은 역사적 연원이 있었군요. “노동조합법의 이런 입법배경 때문에 노조가 파업을 하면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정상파업인지 정치파업인지를 민감하게 보게 됩니다. 우리나라 노조는 태생적으로 정치적이고 노동법은 정치적 요인에 의해 결정적 영향을 받은 셈이죠. 지난 70여년간 노조가 정치투쟁에 몰두하고 성역화하면서 특권의식을 가지게 된 건 이런 역사적 상황과도 무관치 않아요. 1953년 노조법이 처음 제정된 후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노조의 활동과 쟁의행위를 억제하는데 초점을 맞췄어요. 1987년 민주화 이후엔 노조의 자유를 확대하는 쪽으로 나아갑니다. 그 기조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데 문제는 도를 넘기 시작했다는거예요. 노란봉투법을 보세요. 친노동정권을 표방했던 문재인정부조차 문제점을 인식하고 뭉갰던 법이에요. 그런데 지금 정치적 이유로 갑자기 민주당의 제 1 민생과제가 됐어요.” -노동자의 일할 자유는 억제하면서 노조 활동의 자유만 확대하는 꼴이군요. “법이 재산권을 보호해주고 법치를 확립해야 거래관계나 고용관계에서 신뢰가 형성돼요. 노란봉투법처럼 법이 재산권을 보호해주지 않고 노사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다면 법치와 신뢰 모두 무너집니다. 중대재해처벌법도 마찬가지예요. 규제와 처벌 중심의 법은 실효성이 없어요. 산업 안전을 명분으로 한다지만 사실상 기업에 부담만 주는 법입니다. 규제와 처벌에 치중하면 불신이 생기고 그 불신 때문에 더 이상한 규제가 나오게 마련입니다. 규제의 악순환이에요. 그 덫에 걸리면 나라 경제는 흔들리는거죠. 정치경제학 원론중의 원론입니다.”◇인적자본으로 노동력 확장…규제보다는 자율 -노동법은 결국 자율과 분권의 기조에 따라 업그레이드해야겠군요. “디지털 시대에 맞춰 개정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정보화 수준과 교육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예요. 노동력이 단순 생산 요소를 넘어 인적자본 내지 창의자본으로 빛을 발할 수 있는 만큼 노동법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겁니다. 과거 노동은 자본과 기계에 붙는 생산요소, 종속 노동이었던 만큼 규제가 필요했겠죠. 지금은 인적자본으로서 혁신의 주체예요. 자율을 보장해야 합니다. 근로시간, 임금 모두 고용인과의 자율적 계약이 생명이에요. 왜 이 모든 기준을 정부가 획일적으로 정합니까. 그러면에서 문재인정부 시절 거꾸로 갔던 임금· 근로시간 규정부터 반드시 되돌려야 해요.” -노사정 삼자 내지 노사공 3자 회의라는 사회적 협의기구는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사회적 협의체는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집단지성을 발휘해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민주노총이 완전히 대화의 문을 닫아놓고 있는 현실에선 사회적 합의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외환위기때 IMF의 압박으로 노사정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그후 제대로 역할을 한게 거의 없잖아요. 사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노동법을 개혁한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사회적 대화는 필요하지만 합의로 법을 만들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노동법 개정의 주체는 정부예요. 노사와 충분히 대화를 하고 한발 더 나아가 국민 의견을 잘 수렴해야 합니다. 특히 현 노동체제의 희생자인 청년들의 목소리를 잘 들어야 합니다.” -최근 MZ세대 노조의 출범도 이런 시대적 흐름과 맥을 같이하는 거겠죠.“MZ세대는 기술과 경제 사회 환경의 변화속에서 나타난 디지털 세대에요. 단순히 청년노조라는 차원에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자율과 분권의 기조를 노동조합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선진국 노동운동이 조합원들의 개별 니즈에 충실하려고 하잖아요. 집단서비스나 정치투쟁과는 거리를 두고 있어요. 이런 면에서 디지털 시대 MZ노조의 목소리는 점점 커질 겁니다. 다만 기존 노조를 대체하는데는 시기상조예요. 노조는 공동체의 가치를 전제로 성립해요. 단순히 이익을 얻기 위한 도구로선 존속하기 어렵습니다. 상식과 공정 뿐 아니라 그들이 내세우는 가치와 철학, 비전을 더욱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어요.” -지금은 노동운동의 전환기라고 볼 수 있겠군요. “노동조합의 대전제(본분)는 사회적 책임이에요. 헌법이 노동기본권이란 특권을 보장해준 만큼 그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어려운 근로자들을 위해 낮은 곳으로 임해야 하죠.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노조는 이익단체나 정치단체처럼 행동해요. 대기업 공기업의 정규직, 상위 10%만을 위한 특권노조 아닌가요. 일반 근로자 대부분이 노조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건 노동 기본권에 역행하는 일이에요. 그런 면에서 노동운동은 지금 대변혁기에 들어섰어요. 모순은 언젠가 무너집니다. 예컨대 디지털 인프라가 가장 강한 나라, 젊은이들의 학력 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에서 지금 우리 청년들이 가장 어렵게 살아요. 청년 3분의2가 비정규직이에요. 양대 노총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친자본 프레임을 걸고 노동개혁에 저항하면 할 수록 국민과는 더 멀어집니다.” -노동개혁의 전체적인 로드맵은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요 “노동개혁의 목적은 국가 차원에선 노동력을 확장, 생산성을 높이고 불평등을 줄이는 일입니다. 개인 차원에선 양질의 일자리를 찾고 이동성의 확대를 통해 기회를 늘려가는 일이죠. 결국 취약계층을 끌어올려 중산층을 두껍게 하는 일입니다. 정부가 노동법치를 확립하고 노동법 개정을 통해 노동력의 가치를 단순 생산요소를 넘어 혁신을 이끄는 인적자본으로 키우게 되면 노동이동이 촉진되고 취약계층의 일자리와 소득은 올라갑니다. 여기에 선진화된 노사관행이 노동현장에 자리잡으면 지속 성장이 가능하겠죠. 모두가 윈윈하는 길입니다.”-노동개혁의 마지막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지금 노동개혁에 대한 지지가 높아 다행이지만 여전히 40∼50년대 미국, 80∼90년대 유럽 등과 비교해 개혁의 절박함은 잘 보이지 않아요. 대통령은 저 멀리 앞서나가는데 당도 정부도 못 따라가는 것 같아요. 국민들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박수는 치고 있지만 개혁의 방향에 대한 컨센서스는 아직 모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개혁에 대한 반대는 시대착오적이에요. 영국은 보수당의 대처 뿐 아니라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시절 노동개혁이 가장 활발했어요. 독일에서도 하르츠 개혁을 완수한 슈레더는 사회민주당 골수에요. 노동개혁엔 여도 야도, 진보도 보수도 따로 없습니다.” 김 위원장은…△1956년 부산 출생 △경동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아이오와대 경제학 석·박사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 △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 위원장 △경사노위 임금근로시간제 개선위원장 △한국노동경제학회장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현)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송길호 기자 2023.03.02
    김태기 중앙노동위원장은 “노동이 단순 생산 요소가 아닌 인적자본 내지 창의자본이 될 수 있도록 제도와 관행을 뒷받침해야 한다”며 “자율과 분권의 기조아래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라 70년 낡은 노동법제를 현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송길호 이데일리 논설위원 겸 에디터]윤석열 대통령이 올해를 노동개혁 추진 원년으로 삼고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특권노조의 일탈과 비리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면서 개혁의 목소리는 그 어느때보다 높다. 법치 수호를 위한 정부의 원칙적이고 단호한 대응이 국민 지지를 이끌어내며 동력도 살아나고 있다. 하지만 당위성에 대한 공감대는 확산되고 있지만 실행방안에 대한 논란은 분분하다. 전체적인 컨센서스는 모아지지 않은채 부분적 산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모습이다개혁의 발판은 마련했지만 구체적인 청사진이 나오지 않은 이때, 전체적인 로드맵은 어떻게 짜야할까. 시대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70년 낡은 법제는 어떻게 개편해야할까. 퇴행적 노동운동, 후진적 노사관행은 어떻게 개선할까.김태기 중앙노동위원장에게 노동개혁의 갈 길을 물었다. 노동조합과 노사관계 분야를 오래 연구해온 그는 김영삼정부시절부터 30여년간 각종 노동 관련 위원회의 공익위원 또는 분과별 위원장을 맡으며 노사 대립과 갈등의 현장을 생생히 경험한 노동경제학계의 석학이다.김 위원장은 최근 서울 정부청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노동개혁과 관련, “국가차원에선 생산수단으로서의 노동을 인적자본으로 확장, 생산성을 높여 불평등을 줄이고, 개인 차원에선 양질의 일자리와 이동성의 기회를 확대하는 일”이라며 “결국 취약계층을 끌어올려 중산층을 두껍게 하는 모두의 윈윈게임”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법치를 확립하고 노동법제를 자율· 분권의 기조 아래 글로벌스탠더드에 따라 현대화해야 한다”며 “시대착오적 노동법 체계로는 노동력의 확장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도 지속적인 성장도 이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노조회계 공개는 조합 민주주의의 기본 -노조의 회계공개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는데요. 노조의 약점을 정확히 짚은 것 같습니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노동조합의 회계에 대해 정부가 사실상 강력한 감독 권한이 있었어요. 그런데 민주화 이후 (이런 권한이)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제한했어요. 그래서 ‘회계장부를 요구할 수 있다’는 정도의 근거조항만 남겨두었죠. 부작용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약했던 셈이에요. 문제는 국민 세금이 노조에 지원된다는 건데 어떻게 쓰이는지 모른다면 말이 안 되는 거죠. 조합원들이 낸 돈도 투명하게 알 권리가 있잖아요. 그러지 않으면 노동조합의 기본 원칙 ‘조합 민주주의’에 반하는 거예요. 특정 노동단체에 세금을 지원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어요.”-민주노총 지도부에는 종북노선을 추종하는 세력도 있습니다. “미국도 비슷한 경로를 거쳤어요. 산업혁명 이후 2차 대전을 치르면서 미국의 노동 운동에도 공산주의자들이 침투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민주노총격인 CIO(산업별조합회의)의 경우 국익보다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식이었어요. 그래서 안보 위협이 발생해요. 여기에 산별노조들이 마피아와 손을 잡고 검은 돈을 거래합니다. 비리가 터지기 시작하죠. 여론이 들끓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민주·공화 양당이 함께 법을 만들어 대응합니다. 1947년 태프트·하틀리법(Taft - Hartley Act)으로 불린 노사 관계법이 그렇게 제정됐어요. 미국에선 적어도 안보위협, 노조비리에 대해선 초당적으로 협력합니다.이후 노동계도 위기감을 느껴 돌파구를 찾으려고 했어요. 1955년 양대 노총인 AFL(노동총연맹)과 CIO가 합쳐 AFL-CIO가 탄생한 배경이에요.”러시아 공산혁명 2년 후인 1919년 출범한 미 공산당(CPUSA)은 소련과 유기적으로 내통하며 노조와 결탁, 1936년 대선까지 참여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제정된 태프트 · 하틀리법은 노조의 예산· 결산 공개를 강제하고 노조의 정치헌금을 금지시켰을 뿐 아니라 노조 지도자들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점을 선언하도록 의무화했다. -노동단체의 전횡과 일탈은 선진국도 마찬가지군요.“노동조합 정치, 이른바 노동정치(Labor Politics)는 어느 나라에나 있죠. 정상적인 노동 정치라면 노조가 국회나 정부를 설득해 근로자에게 유리한 정책이 나오도록 하는거예요. 하지만 노조가 정치자금이나 선거자금을 통해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파업 등 물리적 힘을 동원해 기득권을 지키려 하면 민의를 왜곡하게 되죠. 민주주의의 마이너스 요인이에요. 그런 일들이 실제 산업혁명 이후 선진국에서 나타났지만 대부분 극복했어요. 지금 우리나라에서 겪는 문제들은 이미 선진국이 거쳐갔던 일들입니다. 미국의 경우는 40년대 후반∼ 50년대, 유럽은 대략 70년대 대략 마무리됩니다.”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여전히 후진성을 면치 못하는 원인은.“선진국들은 시대변화에 따라 노동법을 계속 진화 발전시켰어요. 미국은 40∼50년대 노동의 과보호 규정을 없앴고 90년대 클린턴 시대엔 직업훈련, 능력개발, 디지털 격차에 따른 소외계층해소 문제를 어젠다로 삼았죠. 오바마 시대엔 직업교육의 중추를 고교차원에서 전문대 차원으로 높입니다. 이런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통해 노동개혁의 수준을 계속 끌어올린 거예요. 미국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건 노동법을 글로벌 스탠더드가 될 수 있도록 잘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유럽도 90년대 영국, 스웨덴을 필두로 덴마크 노르웨이 독일이 차례로 노동법을 개정했어요. 남유럽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0년대 들어서야 착수했죠. 결국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노동법을 현대화한 나라가 지속적인 성장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어요.” ◇시대변화에 뒤처진 노동법제…노동 불평등 심화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노동법은 답보상태라는 거군요. “김영삼 정부시절 노동법 파동 이후 발목이 잡혔어요. 1996년말 당시 노동법을 통과시켜놓고도 야당의 결사반대와 정치선동으로 번복했는데 결정적 실수예요. 당시 노동법 파동을 주도한 DJ는 집권후 IMF의 압박으로 정리해고 법제화 등에 나섰지만 사실 별 진전된 내용은 없습니다. 해고 요건에 대한 정비부터 안 돼 있어요. 1990년대 디지털시대로 접어들면서 각국은 고용관계에 대한 정부 개입을 축소하는 등 노동의 자유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노동법 개정에 나섰지만 우리는 반대방향으로 간 거에요. 노동법이 시대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노사관행도 여전히 구태에 머물러 있는 셈이죠.” -낡은 노동법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유발하는 거죠. “노동시장 건전성의 척도는 이동성(mobility)이에요.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중소기업 근로자가 대기업 근로자로 쉽게 전환될 수 있어야 해요. 디지털 시대로 전환되면서 노동이동이 매우 왕성해야 할텐데 각종 산업규제와 노동규제로 막혀 있어요. 근로시간 규제 때문에 일을 더 하고 싶어도 못해요. 노동법이 전체 근로자의 12%에 불과한 대기업 정규직을 과도하게 보호하고 있잖아요. 여기에 양대노총의 주축인 강성노조의 전횡이 이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어요. 이는 결국 노동력을 제대로 활용 못 한다는 의미이고 생산성 하락으로 이어져요. 경제의 활력은 떨어지고 불평등도 그만큼 커지게 되는 거예요.”-올해로 노동법 제정 70주년인데 이젠 재설계할 때가 됐습니다.“노동법은 시대의 산물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입법배경이 다른 나라와 다르죠. 제헌헌법이 이례적으로 노동기본권을 보장했는데 노동조합법을 통해 그 한계를 정할 필요가 있었어요. 1953년 노동조합법, 노동쟁의 조정법, 노동위원회법, 근로기준법을 차례로 제정했으니 일반법의 기초인 민법(1958년)보다 먼저 만든 셈이에요. 주목할 점은 근로기준법보다 노동조합법을 먼저 마련했다는 점이에요. 당시 주요 산업기반이 되는 공장의 노동조합을 공산주의자들이 장악하면서 노조를 적화 수단으로 삼았던 겁니다. 이들이 총파업을 하면 산업 전체가 마비되는 거에요. 체제위협을 느낀 이승만정부로선 서둘러 노동조합법을 제정해 이를 통제할 필요가 있었던 거죠.” -노동조합의 정치적 성격은 역사적 연원이 있었군요. “노동조합법의 이런 입법배경 때문에 노조가 파업을 하면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정상파업인지 정치파업인지를 민감하게 보게 됩니다. 우리나라 노조는 태생적으로 정치적이고 노동법은 정치적 요인에 의해 결정적 영향을 받은 셈이죠. 지난 70여년간 노조가 정치투쟁에 몰두하고 성역화하면서 특권의식을 가지게 된 건 이런 역사적 상황과도 무관치 않아요. 1953년 노조법이 처음 제정된 후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노조의 활동과 쟁의행위를 억제하는데 초점을 맞췄어요. 1987년 민주화 이후엔 노조의 자유를 확대하는 쪽으로 나아갑니다. 그 기조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데 문제는 도를 넘기 시작했다는거예요. 노란봉투법을 보세요. 친노동정권을 표방했던 문재인정부조차 문제점을 인식하고 뭉갰던 법이에요. 그런데 지금 정치적 이유로 갑자기 민주당의 제 1 민생과제가 됐어요.” -노동자의 일할 자유는 억제하면서 노조 활동의 자유만 확대하는 꼴이군요. “법이 재산권을 보호해주고 법치를 확립해야 거래관계나 고용관계에서 신뢰가 형성돼요. 노란봉투법처럼 법이 재산권을 보호해주지 않고 노사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다면 법치와 신뢰 모두 무너집니다. 중대재해처벌법도 마찬가지예요. 규제와 처벌 중심의 법은 실효성이 없어요. 산업 안전을 명분으로 한다지만 사실상 기업에 부담만 주는 법입니다. 규제와 처벌에 치중하면 불신이 생기고 그 불신 때문에 더 이상한 규제가 나오게 마련입니다. 규제의 악순환이에요. 그 덫에 걸리면 나라 경제는 흔들리는거죠. 정치경제학 원론중의 원론입니다.”◇인적자본으로 노동력 확장…규제보다는 자율 -노동법은 결국 자율과 분권의 기조에 따라 업그레이드해야겠군요. “디지털 시대에 맞춰 개정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정보화 수준과 교육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예요. 노동력이 단순 생산 요소를 넘어 인적자본 내지 창의자본으로 빛을 발할 수 있는 만큼 노동법이 이를 뒷받침해야 한다는 겁니다. 과거 노동은 자본과 기계에 붙는 생산요소, 종속 노동이었던 만큼 규제가 필요했겠죠. 지금은 인적자본으로서 혁신의 주체예요. 자율을 보장해야 합니다. 근로시간, 임금 모두 고용인과의 자율적 계약이 생명이에요. 왜 이 모든 기준을 정부가 획일적으로 정합니까. 그러면에서 문재인정부 시절 거꾸로 갔던 임금· 근로시간 규정부터 반드시 되돌려야 해요.” -노사정 삼자 내지 노사공 3자 회의라는 사회적 협의기구는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사회적 협의체는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집단지성을 발휘해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민주노총이 완전히 대화의 문을 닫아놓고 있는 현실에선 사회적 합의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외환위기때 IMF의 압박으로 노사정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그후 제대로 역할을 한게 거의 없잖아요. 사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노동법을 개혁한 나라는 거의 없습니다. 사회적 대화는 필요하지만 합의로 법을 만들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노동법 개정의 주체는 정부예요. 노사와 충분히 대화를 하고 한발 더 나아가 국민 의견을 잘 수렴해야 합니다. 특히 현 노동체제의 희생자인 청년들의 목소리를 잘 들어야 합니다.” -최근 MZ세대 노조의 출범도 이런 시대적 흐름과 맥을 같이하는 거겠죠.“MZ세대는 기술과 경제 사회 환경의 변화속에서 나타난 디지털 세대에요. 단순히 청년노조라는 차원에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자율과 분권의 기조를 노동조합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선진국 노동운동이 조합원들의 개별 니즈에 충실하려고 하잖아요. 집단서비스나 정치투쟁과는 거리를 두고 있어요. 이런 면에서 디지털 시대 MZ노조의 목소리는 점점 커질 겁니다. 다만 기존 노조를 대체하는데는 시기상조예요. 노조는 공동체의 가치를 전제로 성립해요. 단순히 이익을 얻기 위한 도구로선 존속하기 어렵습니다. 상식과 공정 뿐 아니라 그들이 내세우는 가치와 철학, 비전을 더욱 명확히 제시할 필요가 있어요.” -지금은 노동운동의 전환기라고 볼 수 있겠군요. “노동조합의 대전제(본분)는 사회적 책임이에요. 헌법이 노동기본권이란 특권을 보장해준 만큼 그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어려운 근로자들을 위해 낮은 곳으로 임해야 하죠.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노조는 이익단체나 정치단체처럼 행동해요. 대기업 공기업의 정규직, 상위 10%만을 위한 특권노조 아닌가요. 일반 근로자 대부분이 노조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건 노동 기본권에 역행하는 일이에요. 그런 면에서 노동운동은 지금 대변혁기에 들어섰어요. 모순은 언젠가 무너집니다. 예컨대 디지털 인프라가 가장 강한 나라, 젊은이들의 학력 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에서 지금 우리 청년들이 가장 어렵게 살아요. 청년 3분의2가 비정규직이에요. 양대 노총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친자본 프레임을 걸고 노동개혁에 저항하면 할 수록 국민과는 더 멀어집니다.” -노동개혁의 전체적인 로드맵은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요 “노동개혁의 목적은 국가 차원에선 노동력을 확장, 생산성을 높이고 불평등을 줄이는 일입니다. 개인 차원에선 양질의 일자리를 찾고 이동성의 확대를 통해 기회를 늘려가는 일이죠. 결국 취약계층을 끌어올려 중산층을 두껍게 하는 일입니다. 정부가 노동법치를 확립하고 노동법 개정을 통해 노동력의 가치를 단순 생산요소를 넘어 혁신을 이끄는 인적자본으로 키우게 되면 노동이동이 촉진되고 취약계층의 일자리와 소득은 올라갑니다. 여기에 선진화된 노사관행이 노동현장에 자리잡으면 지속 성장이 가능하겠죠. 모두가 윈윈하는 길입니다.”-노동개혁의 마지막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지금 노동개혁에 대한 지지가 높아 다행이지만 여전히 40∼50년대 미국, 80∼90년대 유럽 등과 비교해 개혁의 절박함은 잘 보이지 않아요. 대통령은 저 멀리 앞서나가는데 당도 정부도 못 따라가는 것 같아요. 국민들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박수는 치고 있지만 개혁의 방향에 대한 컨센서스는 아직 모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개혁에 대한 반대는 시대착오적이에요. 영국은 보수당의 대처 뿐 아니라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시절 노동개혁이 가장 활발했어요. 독일에서도 하르츠 개혁을 완수한 슈레더는 사회민주당 골수에요. 노동개혁엔 여도 야도, 진보도 보수도 따로 없습니다.” 김 위원장은…△1956년 부산 출생 △경동고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아이오와대 경제학 석·박사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중앙노동위원회 공익위원 △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 위원장 △경사노위 임금근로시간제 개선위원장 △한국노동경제학회장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현)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 허용석 "G7진입 마지막 흔들다리…기업가형 국가 전환이 열쇠"[송길호의 파워인터뷰]
    허용석 현대경제연구원장은 한국의 G7진입과 관련, “경제지표는 이미 G7 수준에 도달했지만 출산율, 고령층 빈곤율, 자살률 등 사회적 지표는 여전히 열위에 있다”며 “복지체계 전반을 세심히 점검하고 챙기는 일이 마지막 관문”이라고 강조했다.[송길호 이데일리 논설위원 겸 에디터]초불확실성의 시대. 한국경제는 미증유의 짙은 안개속에 휩싸여 있다. 미국의 고강도 통화긴축,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리오프닝 등으로 대외 경제상황이 극도로 혼미한 상태에서 대내적으로는 3고 현상(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후폭풍이 본격적으로 불어닥치며 역대급 불황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세계 10위 수준의 경제규모, 세계 7번째 5030클럽(인구 5000만명,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 가입,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 선진국 분류. 세계 최빈국에서 ‘한강의 기적’을 거쳐 선진국 클럽에 가입한 한국경제는 올해 성장기조가 급격히 흔들리며 일각에선 구조적 침체에 진입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한다. 격랑 속의 한국경제, 체질을 개선하고 성장동력을 회복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은 무엇일까. 선진국 문턱을 넘어 G7, 한발 더 나아가 G5로 도약하기 위한 과제는 어떤 것일까.허용석 현대경제연구원장으로부터 해법을 들었다. 그는 최근 서울 종로 집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불확실성 속의 압박이 정점에 이른 올해는 G7으로 가는 마지막 흔들다리(Final Rocking Bridge)”라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그는 “잠재성장률 만큼 성장을 이루지 못하면 자칫 선진국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며 “민관 공조의 기업가형 국가(Entrepreneurial State)로 전환, 국민소득 4만달러 국가 수준의 규제개혁과 기술혁신 등을 통해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경제지표는 이미 G7 수준에 진입했지만 출산율, 고령층 빈곤율, 자살률 등 사회적 지표는 여전히 열위에 있다”며 “사회안전망은 물론 복지체계 전반을 세심히 점검하고 챙기는 일이 G7진입의 마지막 관문”이라고 강조했다. ◇G7수준의 기업 환경 조성, ‘기업가형 국가’ 전환 -경기흐름이 본격적인 침체국면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올 상반기가 압박의 피크예요. 3고 현상의 후폭풍이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침체 기조에 빠질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고물가 억제를 위해 전세계적으로 통화 긴축정책을 공격적으로 시행했잖아요. 실물부문에 대한 기준금리 인상 효과는 6개월∼1년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고 볼 때 파급효과는 올 상반기 집중될 거예요. 최근 주요 기관들이 올해 한국의 경제 성장률을 2%대에서 1%대로 하향 조정하는 추세예요. 잠재성장률이 2% 내외 수준임을 고려할 때, 1%대의 성장률은 경기가 침체국면에 접어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에 진입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옵니다.“성장이 정체된 화석경제로 전락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와요. 고령화와 생산가능인구가 2019년을 정점으로 빠르게 감소하며 노동력 부족이 현실화되고 있고 자본축적과 기술혁신이 정체되면서 잠재성장률 하락이 가속화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으로 잠재성장률은 2016~2020년 연평균 2.5%에서 2021~25년 2.0% 그리고 2026~30년 1.7%로 빠르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와요. 내실을 다져 빠른 시일내 2%성장을 회복해야 해요. 이마저 달성 못하면 선진국 함정에 빠지는 거죠.” -성장동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적 선택은.“기업가형 국가로 전환해 민관 공조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어야 해요. 정부는 민간이 기피하는 위험부담이 큰 프로젝트에 과감히 투자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면서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애플, 구글 등 혁신 기업의 탄생 이면에는 미국 정부의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투자가 그 원천이었어요. 아이폰에 탑재된 GPS,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 등 핵심기술 모두 정부의 재정지원과 R&D투자를 통해 개발된 기술 아닌가요. 애플은 정부가 개발한 기술을 바탕으로 스마트폰을 개발해 글로벌 공룡기업으로 탄생한 거예요.” -과학기술 입국으로 전진해야 한다는 얘기군요.“2017년 1월 미·중 무역분쟁이 막 터질 때 미국 대통령 과학기술 자문위원회에서 ‘미국 반도체 산업 장기 우위를 위한 전략보고서’라는 걸 냈어요. 여기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술혁신’이란 말이 나와요. 바로 이 점이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 되는 비결이에요. 경제도 국방에도 기술혁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것도 웬만한 수준이어선 안 되고 타의 추종을 불어하는 수준이어야만 살 수 있다는 거예요. 이는 문샷 프로젝트(Moonshot projects)와도 연관돼요. 한마디로 목표를 설정하면 장단기 이해득실, 리스크 모두 따지지 않고 과감히 시도한다는 거예요. 무모하다고 할 정도로 강한 개념이지요. 사실 어떤 프로젝트를 추진할때 이런저런 리스크 다 따지면 타당성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하지만 꼭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다면 이런 파격적인 방식을 선택할 필요가 있습니다.”-문샷 프로젝트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미국은 정부 기업 대학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어요. 정부는 일단 차세대 산업의 기반이 되는 초창기 기술의 R&D에 엄청난 투자를 하지요. 투자해도 99%는 다 사장돼 없어질 거를 정부가 다 합니다. 여기에서 싹이 좀 보인다 싶으면 기업으로 넘어가고 기업이 문제에 봉착하면 대학으로 가요. 기업이 직면한 문제가 얼마나 빨리 대학의 책상 위에 놓여지는지 그 속도에 따라 기술혁신 경쟁의 우위가 판가름난다고 해요. AI, 양자 컴퓨팅, 반도체, 바이오, 우주, 해양 등 4차 산업혁명과 연관된 미래의 먹거리들이 이런 과감하고 선도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술혁신을 이룬다는 거예요. 정부의 지원방식도 이젠 전통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우리나라도 R&D투자에 신경을 많이 쓰지만 민간과의 이런 연계는 잘 이뤄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우리나라 R&D 투자의 가장 큰 맹점은 지나치게 성공을 요구한다는 거예요. 평가 제도가 문제지요. 실패하면 용납을 안 합니다. 우리나라의 R&D성공률이 90%가 넘는다는 얘기가 있어요. 그런데 정말 가치있는 투자는 성공률이 90%가 넘을 수가 없어요. 10%도 안 되는 분야에 투자하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에요. 우리 R&D투자는 전 세계에서 GDP대비 비율이 ‘톱3’에 들어갈 만큼 양적으로는 충분해요. 하지만 질적으로는 빈약하죠. 쉬운 것만 골라 하니 도전적인 과제에 대한 투자는 이뤄지지 않는 겁니다.” -기업가형 국가로 전환하기 위해선 규제혁파를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급선무일텐데요. 규제개혁의 준거점은. “지엽적인 내용에 얽매이기보다는 큰 그림을 그리면서 가시적인 결과를 내야 합니다. 규제혁파의 기준은 G7, 최소한 G7+중국 수준이 돼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나라 규제 수준은 턱없이 복잡합니다. 대기업·중소기업, 수도권· 비수도권, 고소득 ·저소득 이런식으로 나눠 규제수준을 달리하는 건 사회 정의나 형평성 측면에선 일견 타당할 수 있겠지만 나라밖에서 보면 의미가 없어요. ‘선진국, 경쟁국에 없는 규제는 모두 철폐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선진국과 대등한 경쟁을 벌이기 위해선 노동·환경·세제 등 모든 기업 환경을 이들과 비교해 뒤처지지 않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규제개혁의 접근 전략은. “온전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선행돼야 해요. 타다와 택시 논쟁 보세요. 모빌러티 혁신을 위해 타다의 진입은 바람직하지만 택시업자들은 직장을 잃어요. 이들에겐 퇴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갈등관리를 잘해야 해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는 거죠. 당장 직장을 잃어도 당분간 소득의 70%정도는 보장되고 전직을 위한 교육 훈련 체계 등이 마련돼야 해요.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 구축되지 않으면 성공적인 규제개혁을 이룰 수 없습니다. 기득권층의 퇴로를 열기 위한 사회 안전망을 점검해야 할 시기예요. 우리나라 공공사회성 지출이 GDP대비 12%정도인데 OECD 38개국중 35위로 최하위권이예요. 앞으로 관련 예산이 폭발적으로 늘 텐데 지금부터 대비해야 합니다.”-사회안전망 구축은 결국 선진국 도약의 마지막 퍼즐이겠군요.“우리나라는 G7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GDP, 1인당 국민소득, 교역규모 등 경제지표는 일부 G7국가를 앞서기 시작했어요. 앞으로 세심히 챙길 건 저출산, 고령층 빈곤율, 자살률 등 사회적 지표예요. 연구결과 우리나라의 사회발전정도는 G7국가의 70%수준을 밑돌아요. 모든 지표에서 열위에 있습니다. 선진국 지위를 공고히 하면서 G7을 넘어 G5로 도약하기 위해선 성장 동력 회복뿐 아니라 복지부문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일이 절실합니다. 그런 점에서 초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하는 올해는 G7으로 가는 ‘마지막 흔들다리’라고 규정할 수 있겠군요.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세를 하루빨리 회복하고 사회안전망과 전반적인 복지체계를 점검해야 할 시기입니다. 경제 지표를 개선하기 위해선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도록 경제자유도를 최대한 높여주면 되지만 사회 지표개선에는 정부의 ‘보이는 손’이 결정적으로 작용합니다.” ◇경제체질 개선…디레버리징 그리고 택스믹스 -경제체질 개선을 위해선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이 급선무입니다.“한국경제는 부채의 늪에 빠져 있어요. 가장 큰 문제는 가계부채겠지요. 최근엔 기업부채가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수준을 넘어섰어요. 국제결제은행(BIS)의 비금융섹터 신용 통계에 따르면 2022년 2분기 현재 GDP 대비 기업신용 비율이 116.5%에요. 외환위기 당시 1998년 2분기에 111.9%였어요.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하고 고금리 충격으로 연체율이 급등하면 경제 위기가 본격화되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중소기업이 문제예요. 한계기업들을 솎아내야 하는데 일종의 정서법이 있어 세제나 금융지원을 줄이기 어려워요. 하지만 한계기업의 단계적 정리는 꼭 필요합니다.” -재정건전성도 위협을 받고 있는데요. 재정준칙 3% 법제화도 지지부진하고. “국가 부채는 먼 수평선 위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검은 구름과 같아요. 긴 호흡으로 대응하면 됩니다. 최근 급격히 확대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는 주요국 대비 낮은 수준이에요. 다만 저출산·고령화 등 당면과제들과 향후 위기 발생 등에 대비해 재정여력을 충분히 확보해야겠지요. 그런 면에서 중립적이고 효율적인 재정준칙 마련은 필수적입니다. 2022년 기준 105개 국가가 이런 준칙을 마련한 상태예요. 재정준칙을 도입하면 재정건전성 제고는 물론 고물가 압력이 점증하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재정 인플레이션(fiscal inflation)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재정을 방만히 운용하면 일종의 인플레이션 세금(inflation tax)을 국민에게 부과하는 셈인데 이를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예요.” -조세시스템은 어떻게 정비해야 할까요. “최적조세구조(택스믹스·Tax Mix)를 디자인해 과세구조를 선진국형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세금은 필연적으로 경제왜곡을 초래해요. 형평성이 깨지면서 정치적 사회적 비용이 불필요하게 발생하고 효율성이 깨지면서 경제적 후생도 줄게 되지요. 그 비용을 최소화한 게 재정학에서 강조하는 최적조세구조입니다. 이런 택스믹스가 선진국의 조세구조에 녹아들어있다고 봅니다. G7이나 국민소득 4만 달러 이상 국가들에 답이 있습니다. 이들 국가의 조세체계는 오랜 기간 성숙되고 누적된 정치적 합의와 타협의 산물이에요. 불형평과 비효율이 초래하는 정치·경제적 비용을 최소화한 조세구조라고 볼 수 있지요.” -선진국의 조세구조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거군요.“우리나라의 경우 법인세와 재산세(상속·증여, 보유세·거래세) 과세 비중이 선진국보다 높은 편이에요. 법인세의 경우 대부분의 국가가 단일세율이나 2단계 세율이지만 우리나라는 4단계 누진세율(9%, 19%, 21%, 24%)로 운용 중이지요. 최고 세율(24%)도 OECD평균(21.2%)은 물론 G7 평균(20.9%)보다 높아요. 택스믹스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법인세 부담이 과도하게 높은 편이고 소득세와 부가세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지요. 법인에다가 세금을 왕창 때리는 나라는 최소한 소득 3만 달러 이상 국가에선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선진국 세금구조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나라는 지금 소득세를 늘리고 법인세를 줄여야 합니다.” -소득세를 높인다면 정치적 저항이 크지 않을까요. “국민개세주의의 실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매우 높아요. 고소득자들이 세금을 제법 부담하고 있다는 얘기에요. 반면 선진국은 최고 세율을 적용하는 과표구간이 매우 낮습니다. 한국과 선진국의 평균임금을 100만원이라고 할 때 우리나라는 소득 500만원, 선진국은 300만원이 기준입니다. 면세비율도 마찬가지예요. 일본만 해도 15.1%인데 우리나라는 37.2%(이상 2020년 기준)에 달해요. 최고세율을 더 높일 게 아니라 아래쪽부터 구조적으로 세부담을 더 늘려야 합니다.” -증세 논의도 동반돼야겠군요. “재정건전성 차원뿐 아니라 고령화나 복지재원 마련 등을 위해 증세는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어요. 조세부담률이 22.1%(2021년 기준)로 여전히 OECD평균(24.3%, 2020년 기준)보다 낮은 수준이에요. 선진국 기준에 맞춰 점진적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세수 확대가 삶의 질을 높여 다시 세수가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해요. 장기적 안목으로 증세를 하면서 최적조세구조를 설계해야 합니다. 단순히 개별 세목 차원이 아닌 전체 조세체계를 보고 접근해야 합니다. 정치적으로 흥정하듯이 세율을 정하고 공제를 남발하면 세제는 누더기가 되고 전체적인 균형은 무너집니다.”허 원장은…△1956년 서울 출생 △덕수상고 △연세대 경영학과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 ·미국 밴더빌트대학원 경제학 석사, 홍익대 세무학 박사 △공인회계사 △행정고시 22회 △ 재경부 외화자금과장 △재경부 세제실장 △관세청장 △삼일경영연구원 원장 △세제발전심의위원회·재정개혁특별위원회 위원 △SK네트웍스 이사회 의장 △(현)현대경제연구원장
    송길호 기자 2023.02.03
    허용석 현대경제연구원장은 한국의 G7진입과 관련, “경제지표는 이미 G7 수준에 도달했지만 출산율, 고령층 빈곤율, 자살률 등 사회적 지표는 여전히 열위에 있다”며 “복지체계 전반을 세심히 점검하고 챙기는 일이 마지막 관문”이라고 강조했다.[송길호 이데일리 논설위원 겸 에디터]초불확실성의 시대. 한국경제는 미증유의 짙은 안개속에 휩싸여 있다. 미국의 고강도 통화긴축,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리오프닝 등으로 대외 경제상황이 극도로 혼미한 상태에서 대내적으로는 3고 현상(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후폭풍이 본격적으로 불어닥치며 역대급 불황국면에 진입하고 있다. 세계 10위 수준의 경제규모, 세계 7번째 5030클럽(인구 5000만명,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 가입,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 선진국 분류. 세계 최빈국에서 ‘한강의 기적’을 거쳐 선진국 클럽에 가입한 한국경제는 올해 성장기조가 급격히 흔들리며 일각에선 구조적 침체에 진입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한다. 격랑 속의 한국경제, 체질을 개선하고 성장동력을 회복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은 무엇일까. 선진국 문턱을 넘어 G7, 한발 더 나아가 G5로 도약하기 위한 과제는 어떤 것일까.허용석 현대경제연구원장으로부터 해법을 들었다. 그는 최근 서울 종로 집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불확실성 속의 압박이 정점에 이른 올해는 G7으로 가는 마지막 흔들다리(Final Rocking Bridge)”라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그는 “잠재성장률 만큼 성장을 이루지 못하면 자칫 선진국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며 “민관 공조의 기업가형 국가(Entrepreneurial State)로 전환, 국민소득 4만달러 국가 수준의 규제개혁과 기술혁신 등을 통해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경제지표는 이미 G7 수준에 진입했지만 출산율, 고령층 빈곤율, 자살률 등 사회적 지표는 여전히 열위에 있다”며 “사회안전망은 물론 복지체계 전반을 세심히 점검하고 챙기는 일이 G7진입의 마지막 관문”이라고 강조했다. ◇G7수준의 기업 환경 조성, ‘기업가형 국가’ 전환 -경기흐름이 본격적인 침체국면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올 상반기가 압박의 피크예요. 3고 현상의 후폭풍이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침체 기조에 빠질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고물가 억제를 위해 전세계적으로 통화 긴축정책을 공격적으로 시행했잖아요. 실물부문에 대한 기준금리 인상 효과는 6개월∼1년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고 볼 때 파급효과는 올 상반기 집중될 거예요. 최근 주요 기관들이 올해 한국의 경제 성장률을 2%대에서 1%대로 하향 조정하는 추세예요. 잠재성장률이 2% 내외 수준임을 고려할 때, 1%대의 성장률은 경기가 침체국면에 접어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에 진입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옵니다.“성장이 정체된 화석경제로 전락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와요. 고령화와 생산가능인구가 2019년을 정점으로 빠르게 감소하며 노동력 부족이 현실화되고 있고 자본축적과 기술혁신이 정체되면서 잠재성장률 하락이 가속화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현대경제연구원 분석으로 잠재성장률은 2016~2020년 연평균 2.5%에서 2021~25년 2.0% 그리고 2026~30년 1.7%로 빠르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와요. 내실을 다져 빠른 시일내 2%성장을 회복해야 해요. 이마저 달성 못하면 선진국 함정에 빠지는 거죠.” -성장동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적 선택은.“기업가형 국가로 전환해 민관 공조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어야 해요. 정부는 민간이 기피하는 위험부담이 큰 프로젝트에 과감히 투자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면서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애플, 구글 등 혁신 기업의 탄생 이면에는 미국 정부의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투자가 그 원천이었어요. 아이폰에 탑재된 GPS,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 등 핵심기술 모두 정부의 재정지원과 R&D투자를 통해 개발된 기술 아닌가요. 애플은 정부가 개발한 기술을 바탕으로 스마트폰을 개발해 글로벌 공룡기업으로 탄생한 거예요.” -과학기술 입국으로 전진해야 한다는 얘기군요.“2017년 1월 미·중 무역분쟁이 막 터질 때 미국 대통령 과학기술 자문위원회에서 ‘미국 반도체 산업 장기 우위를 위한 전략보고서’라는 걸 냈어요. 여기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술혁신’이란 말이 나와요. 바로 이 점이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 되는 비결이에요. 경제도 국방에도 기술혁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보여줍니다. 그것도 웬만한 수준이어선 안 되고 타의 추종을 불어하는 수준이어야만 살 수 있다는 거예요. 이는 문샷 프로젝트(Moonshot projects)와도 연관돼요. 한마디로 목표를 설정하면 장단기 이해득실, 리스크 모두 따지지 않고 과감히 시도한다는 거예요. 무모하다고 할 정도로 강한 개념이지요. 사실 어떤 프로젝트를 추진할때 이런저런 리스크 다 따지면 타당성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하지만 꼭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다면 이런 파격적인 방식을 선택할 필요가 있습니다.”-문샷 프로젝트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미국은 정부 기업 대학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어요. 정부는 일단 차세대 산업의 기반이 되는 초창기 기술의 R&D에 엄청난 투자를 하지요. 투자해도 99%는 다 사장돼 없어질 거를 정부가 다 합니다. 여기에서 싹이 좀 보인다 싶으면 기업으로 넘어가고 기업이 문제에 봉착하면 대학으로 가요. 기업이 직면한 문제가 얼마나 빨리 대학의 책상 위에 놓여지는지 그 속도에 따라 기술혁신 경쟁의 우위가 판가름난다고 해요. AI, 양자 컴퓨팅, 반도체, 바이오, 우주, 해양 등 4차 산업혁명과 연관된 미래의 먹거리들이 이런 과감하고 선도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술혁신을 이룬다는 거예요. 정부의 지원방식도 이젠 전통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우리나라도 R&D투자에 신경을 많이 쓰지만 민간과의 이런 연계는 잘 이뤄지지 않는 것 같은데요.“우리나라 R&D 투자의 가장 큰 맹점은 지나치게 성공을 요구한다는 거예요. 평가 제도가 문제지요. 실패하면 용납을 안 합니다. 우리나라의 R&D성공률이 90%가 넘는다는 얘기가 있어요. 그런데 정말 가치있는 투자는 성공률이 90%가 넘을 수가 없어요. 10%도 안 되는 분야에 투자하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에요. 우리 R&D투자는 전 세계에서 GDP대비 비율이 ‘톱3’에 들어갈 만큼 양적으로는 충분해요. 하지만 질적으로는 빈약하죠. 쉬운 것만 골라 하니 도전적인 과제에 대한 투자는 이뤄지지 않는 겁니다.” -기업가형 국가로 전환하기 위해선 규제혁파를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급선무일텐데요. 규제개혁의 준거점은. “지엽적인 내용에 얽매이기보다는 큰 그림을 그리면서 가시적인 결과를 내야 합니다. 규제혁파의 기준은 G7, 최소한 G7+중국 수준이 돼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나라 규제 수준은 턱없이 복잡합니다. 대기업·중소기업, 수도권· 비수도권, 고소득 ·저소득 이런식으로 나눠 규제수준을 달리하는 건 사회 정의나 형평성 측면에선 일견 타당할 수 있겠지만 나라밖에서 보면 의미가 없어요. ‘선진국, 경쟁국에 없는 규제는 모두 철폐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선진국과 대등한 경쟁을 벌이기 위해선 노동·환경·세제 등 모든 기업 환경을 이들과 비교해 뒤처지지 않도록 설계해야 합니다.” -규제개혁의 접근 전략은. “온전한 사회안전망 구축이 선행돼야 해요. 타다와 택시 논쟁 보세요. 모빌러티 혁신을 위해 타다의 진입은 바람직하지만 택시업자들은 직장을 잃어요. 이들에겐 퇴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갈등관리를 잘해야 해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는 거죠. 당장 직장을 잃어도 당분간 소득의 70%정도는 보장되고 전직을 위한 교육 훈련 체계 등이 마련돼야 해요.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 구축되지 않으면 성공적인 규제개혁을 이룰 수 없습니다. 기득권층의 퇴로를 열기 위한 사회 안전망을 점검해야 할 시기예요. 우리나라 공공사회성 지출이 GDP대비 12%정도인데 OECD 38개국중 35위로 최하위권이예요. 앞으로 관련 예산이 폭발적으로 늘 텐데 지금부터 대비해야 합니다.”-사회안전망 구축은 결국 선진국 도약의 마지막 퍼즐이겠군요.“우리나라는 G7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GDP, 1인당 국민소득, 교역규모 등 경제지표는 일부 G7국가를 앞서기 시작했어요. 앞으로 세심히 챙길 건 저출산, 고령층 빈곤율, 자살률 등 사회적 지표예요. 연구결과 우리나라의 사회발전정도는 G7국가의 70%수준을 밑돌아요. 모든 지표에서 열위에 있습니다. 선진국 지위를 공고히 하면서 G7을 넘어 G5로 도약하기 위해선 성장 동력 회복뿐 아니라 복지부문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일이 절실합니다. 그런 점에서 초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하는 올해는 G7으로 가는 ‘마지막 흔들다리’라고 규정할 수 있겠군요.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세를 하루빨리 회복하고 사회안전망과 전반적인 복지체계를 점검해야 할 시기입니다. 경제 지표를 개선하기 위해선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도록 경제자유도를 최대한 높여주면 되지만 사회 지표개선에는 정부의 ‘보이는 손’이 결정적으로 작용합니다.” ◇경제체질 개선…디레버리징 그리고 택스믹스 -경제체질 개선을 위해선 디레버리징(Deleveraging)이 급선무입니다.“한국경제는 부채의 늪에 빠져 있어요. 가장 큰 문제는 가계부채겠지요. 최근엔 기업부채가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습니다. 외환위기 수준을 넘어섰어요. 국제결제은행(BIS)의 비금융섹터 신용 통계에 따르면 2022년 2분기 현재 GDP 대비 기업신용 비율이 116.5%에요. 외환위기 당시 1998년 2분기에 111.9%였어요.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하고 고금리 충격으로 연체율이 급등하면 경제 위기가 본격화되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특히 중소기업이 문제예요. 한계기업들을 솎아내야 하는데 일종의 정서법이 있어 세제나 금융지원을 줄이기 어려워요. 하지만 한계기업의 단계적 정리는 꼭 필요합니다.” -재정건전성도 위협을 받고 있는데요. 재정준칙 3% 법제화도 지지부진하고. “국가 부채는 먼 수평선 위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검은 구름과 같아요. 긴 호흡으로 대응하면 됩니다. 최근 급격히 확대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는 주요국 대비 낮은 수준이에요. 다만 저출산·고령화 등 당면과제들과 향후 위기 발생 등에 대비해 재정여력을 충분히 확보해야겠지요. 그런 면에서 중립적이고 효율적인 재정준칙 마련은 필수적입니다. 2022년 기준 105개 국가가 이런 준칙을 마련한 상태예요. 재정준칙을 도입하면 재정건전성 제고는 물론 고물가 압력이 점증하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재정 인플레이션(fiscal inflation)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재정을 방만히 운용하면 일종의 인플레이션 세금(inflation tax)을 국민에게 부과하는 셈인데 이를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예요.” -조세시스템은 어떻게 정비해야 할까요. “최적조세구조(택스믹스·Tax Mix)를 디자인해 과세구조를 선진국형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세금은 필연적으로 경제왜곡을 초래해요. 형평성이 깨지면서 정치적 사회적 비용이 불필요하게 발생하고 효율성이 깨지면서 경제적 후생도 줄게 되지요. 그 비용을 최소화한 게 재정학에서 강조하는 최적조세구조입니다. 이런 택스믹스가 선진국의 조세구조에 녹아들어있다고 봅니다. G7이나 국민소득 4만 달러 이상 국가들에 답이 있습니다. 이들 국가의 조세체계는 오랜 기간 성숙되고 누적된 정치적 합의와 타협의 산물이에요. 불형평과 비효율이 초래하는 정치·경제적 비용을 최소화한 조세구조라고 볼 수 있지요.” -선진국의 조세구조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거군요.“우리나라의 경우 법인세와 재산세(상속·증여, 보유세·거래세) 과세 비중이 선진국보다 높은 편이에요. 법인세의 경우 대부분의 국가가 단일세율이나 2단계 세율이지만 우리나라는 4단계 누진세율(9%, 19%, 21%, 24%)로 운용 중이지요. 최고 세율(24%)도 OECD평균(21.2%)은 물론 G7 평균(20.9%)보다 높아요. 택스믹스라는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 법인세 부담이 과도하게 높은 편이고 소득세와 부가세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지요. 법인에다가 세금을 왕창 때리는 나라는 최소한 소득 3만 달러 이상 국가에선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선진국 세금구조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나라는 지금 소득세를 늘리고 법인세를 줄여야 합니다.” -소득세를 높인다면 정치적 저항이 크지 않을까요. “국민개세주의의 실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매우 높아요. 고소득자들이 세금을 제법 부담하고 있다는 얘기에요. 반면 선진국은 최고 세율을 적용하는 과표구간이 매우 낮습니다. 한국과 선진국의 평균임금을 100만원이라고 할 때 우리나라는 소득 500만원, 선진국은 300만원이 기준입니다. 면세비율도 마찬가지예요. 일본만 해도 15.1%인데 우리나라는 37.2%(이상 2020년 기준)에 달해요. 최고세율을 더 높일 게 아니라 아래쪽부터 구조적으로 세부담을 더 늘려야 합니다.” -증세 논의도 동반돼야겠군요. “재정건전성 차원뿐 아니라 고령화나 복지재원 마련 등을 위해 증세는 불가피하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필요가 있어요. 조세부담률이 22.1%(2021년 기준)로 여전히 OECD평균(24.3%, 2020년 기준)보다 낮은 수준이에요. 선진국 기준에 맞춰 점진적으로 끌어올려야 합니다. 세수 확대가 삶의 질을 높여 다시 세수가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해요. 장기적 안목으로 증세를 하면서 최적조세구조를 설계해야 합니다. 단순히 개별 세목 차원이 아닌 전체 조세체계를 보고 접근해야 합니다. 정치적으로 흥정하듯이 세율을 정하고 공제를 남발하면 세제는 누더기가 되고 전체적인 균형은 무너집니다.”허 원장은…△1956년 서울 출생 △덕수상고 △연세대 경영학과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 ·미국 밴더빌트대학원 경제학 석사, 홍익대 세무학 박사 △공인회계사 △행정고시 22회 △ 재경부 외화자금과장 △재경부 세제실장 △관세청장 △삼일경영연구원 원장 △세제발전심의위원회·재정개혁특별위원회 위원 △SK네트웍스 이사회 의장 △(현)현대경제연구원장
  • 이근면 "지금은 개혁의 라스트 미니트…공공부문 제살부터 깎아라"[송길호의 파워인터뷰]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은 구조개혁의 전략과 관련, “제 살 깎기식 공공부문 개혁을 통해 정권 먼저 일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 고통분담이 필요한 연금 교육 노동 등 3대 개혁에 동력이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송길호 논설위원 겸 에디터]윤석열정부 6개월이 지났지만 대통령 지지율은 30%대 초중반에서 답보상태다. 정권 초 부실 검증에 따른 장관 후보자의 잇따른 낙마, 검찰 출신의 과도한 기용으로 집약되는 인사 난맥상이 설익은 정책 등과 맞물려 지지율 정체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가대개조의 일환으로 천명한 각종 개혁작업도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나지 않은채 동력이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집권 초 ‘허니문 효과’도 없이 냉랭한 이때, 국정쇄신을 위한 반전의 돌파구는 어떻게 마련할까. 인사 문제는 어떻게 풀고 공직사회에 활력은 어떻게 불어넣을까. 절체절명의 과제인 구조개혁 과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삼성그룹에서 36년 동안 재직하며 삼성SDS, 삼성전자 정보통신 총괄 인사책임자를 거친 후 박근혜정부 초대 인사혁신처장을 역임한 이근면 성균관대 특임교수로부터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그는 세계 3대 인명 사전의 하나인 ‘마르퀴스 후즈 후’(Marquis Who’s Who in the World)에 등재된 국제 공인 인사전문가이자 공무원연금 개혁을 드라마틱하게 성사시킨 개혁의 전도사다. 그는 최근 서울 강남의 집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청와대정부를 지향했던 문재인정부와 달리 윤석열정부는 작은 대통령실, 큰 행정부를 지향하면서도 정작 장관들은 보이지 않는다”면서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기 보다는 장관 중심의 소통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조개혁과 관련해선 “연금 교육 노동 등 3대 개혁은 국민에게 부담을 요구하는 개혁이지만 공공개혁은 정권이 스스로 제 살을 깎아야 할 개혁”이라면서 “공공개혁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면서 국민 동참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권 먼저 일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 고통분담이 필요한 각종 개혁 드라이브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얘기다.◇인사난맥 …순혈주의 타파, ‘베스트’ 써야 ▶정권초부터 인사실책에 대한 비판이 많습니다.“나라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대처가 시원시원하지 않으니 인사 난맥상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것 같아요. 대부분 인재 풀이 협소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어요. 사실 정권 주도세력 중 고시출신이 많아요. 순혈주의가 심하고 다양성이 부족해요. 이들이 과연 현장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정부 공언대로 민간주도의 패러다임 전환은 가능할까요. 대통령의 인사를 보면 사전 스터디를 통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어요. 예기치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에 올랐고 경험도 특정분야에 제한돼 있다 보니 인재 기용 폭이 넓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엔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문제가 계속 터지는 걸 보면서 참모들이나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그룹이 제 역할을 했는지 의문이 들더군요. 인사는 전문영역입니다. 정부에 제대로 된 인사 전문가 그룹이 존재하는지 모르겠습니다.”▶대통령이 참고해야 할 인사원칙이 있다면.“인사는 인사권자의 지혜라고 하죠. 인사권은 전리품이 아닌데 내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민주국가에서 대통령 인사권은 고유권한이라기 보다 국민이 위임한 것입니다. 내 편 네편 구분 말고 최고(Best)를 써야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할 일’, 미션을 정의해야 해요. 그 이후 그에 적합한 사람을 기용하는 겁니다. ‘당신은 이 자리에 이런 필요성 때문에 임명하니 이 부분을 꼭 해결하라’는 식으로 할 일을 명확히 제시하는 거죠. 장관의 역할은 부처를 일반적으로 통솔하는 고유기능과 시대에 맞는 미션을 수행하는 기능, 두 가지인데 중요한 건 후자예요. 해당 미션에 적합한 사람을 쓰고 왜 이 사람을 쓰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후보자의 걸어온 길만 볼게 아니라 할 일을 먼저 봐야 해요.” ▶인사체계를 제대로 정립해야겠군요. “인사는 조직의 명운을 결정합니다. 장점주의 인사가 필요해요. 성과를 내는 건 그 사람의 장점이지 단점이 아니에요. 최소한의 도덕성, 공인의식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장관 인선도 그런 원칙에 따르면 됩니다. 이 사람이 왜 필요한지 지금 시점에서 기용하는게 타당한지 판단하면 돼요. 기본적으로는 국가의 종합 인사기능을 체계화해야 인사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기업에 인사담당최고책임자(CHO)를 두듯 인사혁신처장에게 역할을 맡기면 됩니다. 국가인재 데이터 베이스도 적절히 활용해야 해요. 정파에 관계없이 장관급 후보자 관리 레벨이 있어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에요. 국민추천제도 공식화하면 됩니다. 숨은 인재들을 더 많이 공직에 임명할 수 있는 루트예요. 다만 절차는 투명해야 해요. 어떻게 추천 받았고 할 일은 이러이러한데 이런 면에서 적합하기 때문에 후보자로 올린다는 거죠. 채용 과정에 있어 ‘적정 수준’의 투명성이 필요합니다.” ▶청문제도나 보은인사 등 구조적 관행적 요인도 손질이 불가피한데요. “청문제도 때문에 현실적으로 정부 입각을 원하지 않는 인재들이 너무 많습니다. 공직자로서의 역량과 자질을 제대로 갖췄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보기보다는 신상이나 허물을 들춰내 모욕과 망신주기를 일삼고 있기 때문이죠. 검증하는 의원들도 통과못할 엄격한 기준을 정해놓고 흠집내기식 청문회를 하면 누가 살아남겠습니까. 정권이 바뀌어도 공수만 달라질 뿐 똑같이 반복되고 있어요. 인사청문회가 인재를 사장시키는 블랙홀이 되고 있잖아요.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논공행상도 문제예요. 선거 공신이라는 이유로 전리품처럼 자리를 배분하다 보니 인재 기용 폭이 좁을 수밖에 없어요.”▶인사 청문회 제도 개선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 같은데요.“정책 중심, 태스크 중심으로 일을 해낼 수 있는지 여부를 검증하고 윤리적 문제는 법 개정 없이도 국회 차원에서 비공개를 천명하면 돼요. 언론도 엠바고 같은 자율적 규제처럼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결과만 발표할뿐 검증과정은 보도하지 말 것을 합의해야 합니다. 알 권리 차원에서 후보자의 정책능력과 도덕성 모두 국민들이 알아야겠지만 최소한 도덕성 문제는 적정 수준의 국민 눈높이에서 걸러줘야 합니다. 기준은 선출직 공직자의 도덕성 정도로 삼는게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선출직 의원들의 평균적 도덕성이 공직 후보자의 평균적 도덕성 아니겠습니까. (검증을 제대로 했는지 여부를 떠나) 국민이 이 정도면 합격이라고 용인했기 때문에 선출직이 된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청문위원 본인들이 떳떳한 경우에만 질문하라고 하면 되요. 그래야 인재를 널리 발탁할 수 있어요.” ◇책임장관제…장관 중심 소통방식으로 전환▶논공행상 관행은 어떻게 척결해야 할까요.“미국의 경우처럼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공직자 리스트, 플럼북(Plum Book)을 활용해 대통령 인사권의 존중과 제한을 도모하면 되요. 이러면 대통령의 인사부담을 덜어줄 수 있어요. 보은인사 관행을 하루아침에 단절할 수 없다면 국가자문위원회 같은 기구를 공개적인 인재풀로 만들수도 있어요. 대선 공신으로 빚을 갚아야 할 사람이 있는 게 현실이고 이들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면 최소한의 필요악이라고 생각할 수 있죠. 적합한 인재는 공공기관 등에 기용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나름의 장기를 살려 계속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면 되요. 자격 안 되는 사람을 무리하게 공공기관장에 임명하면 그 피해가 더 크니 이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보상해주는 셈이죠.부분적으로나마 좀 투명하게 하자는 거에요.”▶정권초 내각 구성이 지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새도우캐비넷 도입을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요. 출범 첫 내각만은 러닝메이트제처럼 정권 시작과 동시에 곧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예비내각을 구성하면 유권자들이 후보 주변의 인물을 보고 좀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지요. 대선과정에서 대통령이 누구랑 일할지 알 수 있고 예측 가능해집니다. 후보자의 인사역량을 시험해볼 수도 있고요. 각료 후보자들도 대통령 후보의 국정운영철학을 분명히 드러낼 수 있고 대선을 치르면서 비전을 내재화하며 입각 준비도 할 수 있어요. 해당 대선 후보가 승리하면 그 예비내각은 국민투표로 승인받았다고 간주하면 됩니다. 대통령 임기도중 교체하는 장관에 대해서만 인사청문회를 열면 돼요. 전부가 어렵다면 주요 부처만이라도 예비내각을 구성하면 어떨까요. 그렇게 하면 이번 정부 초반과 같은 파행은 일어나지 않겠지요. 누가 정권을 잡든 집권초 골든타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지요.”▶정부 조직 개편 과정에서 논란이 많았는데요. “역대 대통령들은 국정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정부조직 개편에 나섰지만 부처 몇개 만들고 폐지하는 수준의 짜집기에 머물렀어요. 장기적인 국가과제와 비전을 고려한 통합적 안목의 조직개편을 이루지 못한거에요. 윤석열정부는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고 하는데 오해가 좀 있는 것 같아요. 작은 정부는 적은 비용의 정부이지 장관, 부처가 적은 정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부처를 통폐합하는 식으로 무조건 조직을 줄이는 게 능사는 아니에요. 110만명에 달하는 공무원을 줄이고 관련 예산을 감축해야 작은 정부예요. 일단 공무원 총량규제부터 해야 합니다. 부처수는 늘어나도 상관없어요. 부총리는 오히려 더 늘려도 돼요. 예를 들어 저출산 고령화 관련 부서는 부총리급이 장기적으로 운영해야 해요. 이런 프로젝트형 정부 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여가부 폐지문제의 경우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어 정치적 부담이 되고 있어요. 일을 더 잘하는 게 목적이지 부처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책임있는 내각으로 가야 합니다.” ▶대통령은 책임총리·책임장관제를 공언하고 스타 장관 만들겠다고도 했는데.“문재인정부는 ‘청와대 정부’라고 했죠. 이 정부는 반면교사로 ‘작은 대통령실, 책임있는 행정부’를 지향하고 있는데 장관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무언가 개선할 점이 있다는 얘기예요. 대통령의 소통 방식부터 생각해봐야 해요. 예를 들어 도어스테핑을 통해 매일 현안을 밝히는 게 과연 바람직한 건지. 차라리 장관이나 고위 관료 중심으로 대응하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요.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열심히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좋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장관이 안 보인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어요. 특히 대통령이 현안질의에 답하면 곧바로 지침이 돼 버려요. 정책의 최종 책임은 대통령이 져야겠지만 이는 정치적 책임일 뿐이에요. 일에 대한 책임은 장관이 지는거에요. 그런 면에서 최근 불미스러운 사태가 원인이 되긴 했지만 도어스테핑을 중단한 건 차라리 잘한 일이에요. 추후 재개한다면 형식과 내용을 개선해야 해요. 대통령은 철저히 총론으로만 접근해야 합니다.”◇공직 인사관리… 전문가형· 리더형 투트랙 관리 ▶공직사회에 활력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공직사회는 3가지가 없어요. 비전, 전문성, 도전정신. 인사혁신처장 시절 가까이서 관찰한 공무원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들이었지만 이 3가지가 없어 뛰어난 자질과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장기적인 비전이 없으니 다람쥐 쳇바퀴 돌듯 주어진 일에만 매몰돼 있고 그러다 보니 도전정신도 업무 전문성도 떨어져요. 이런 분위기 때문에 정부가 하는 일은 민간에 비해 한박자 느리기 일쑤예요. 원인은 인사운영체계에 있습니다. 평가 보직 보상체계에 문제가 있어요. 경직적 조직 운영과 낙후적인 성과평가체계 때문이에요. 일 잘하는 공무원은 파격적으로 보상해주고 퇴출제를 도입해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조직에 건강한 긴장감이 돌게 해야 해요. 공직사회 이대로 가면 위기예요.”최근 퇴직 공무원 비율이 늘면서 인사혁신처는 ‘하위직 중심으로’ 임금을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교수는 “일부 하위직 공무원에 대해선 최저임금, 물가인상률 등을 감안, 적절한 인상을 검토해야 하지만 봉급인상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단순 처우개선을 넘어 일한 만큼 보상하고 일 못한 사람은 재교육이나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며 “전체적으로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경쟁력을 높여 미래의 발전을 약속하는 일이 인사관리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경직적이고 분절적인 관료 조직 어떻게 일신할까요. “공무원은 그냥 쓰고 버리는 패가 아니에요. 국가의 중요한 자원이에요. 하지만 개개인의 경쟁력은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요. 이를 국가가 책임져야 해요. 이를 위해 투 트랙으로 인사관리를 할 필요가 있어요. 기획통 세제통 인사통처럼 전문가중심의 인재를 양성하는 트랙과 창조형 인재를 선발해 핵심 리더로 키우는 트랙으로 나눠야 해요. 전문성이 중요한 핵심 직위는 승진에 연연하지 않고 한 우물을 파도록 하고 장·차관 등 리더로 키울 인재는 다양한 보직을 맡도록 관리하면 됩니다. 그런면에서 무차별적 순환보직제는 개선해야 해요.”▶민간기업의 인사 시스템을 적용할 필요도 있겠군요. “개발시대 기업은 정부에서 배워 따라했어요. 이젠 더 이상 정부로부터 배운다고 안 하죠. 정부는 기업에서 배우면 안 되나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한 공직사회 구축이 필요해요. 변방의 조그마한 기업이 세계를 제패하는 걸 봤어요. 삼성이 1등할 줄 누가 알았어요. 국가도 마찬가지에요. 예를 들어 ‘G3’까지 가보자며 국가적 비전을 세우면 안되나요. 꿈 꿀때가 됐어요. 된다고 믿는 사람이 있으면 되는거에요. 잘되는 조직은 된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는 거에요. 1인 창업자도 세계 일류를 꿈꾸고 나아가는데 국가는 왜 못하나요. 우리가 못 이루면 다음 세대가 하면 되요. 민간기업은 망하면 없어지지만 국가는 계속 그런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잖아요.” ◇개혁실종… 두들겨 맞아도 갈 길 가야 ▶구조개혁은 논의만 무성한 채 겉도는 것 같습니다. “개혁의 실종이에요. 개혁은 시대적 소명이고 공약인데….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국가적 역량을 모아야 하는데 아직 어젠다화도 돼 있지 않아요. 국가 대개조 수준의 개혁을 한다고 했으면 이를 조직화하고 정치적·정책적 자원을 배분해야지요. 일단 국가차원의 프로젝트인 연금 노동 교육 등 3대 개혁은 민관정 묶어 거국적으로 접근해야 해요. 개혁의 프레임을 짜고 이를 점진적 체계적으로 추진해 나갈 개혁위원회 같은 기구가 필요해요. 정부 혼자 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되요. 정부가 중심 잡고 여야 언론 학계 기업 시민사회 등이 머리를 맞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조직을 출범시켜야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어요. 개혁의 직접 수혜자인 청년층도 의사결과정 과정에 참여시켜 대안을 모색토록 해야 해요. 자신의 문제를 다룰때 가장 치열하고 생산적인 고민과 토론이 가능하지 않겠어요. 개혁의 마차는 결국 민간과 공공영역 두 바퀴로 굴러갑니다. 개혁의 청사진을 함께 그리고 현장에서 수용가능한 개혁안을 도출해야 해요. 그런 후국민에게 소상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행위를 무한 반복해야 합니다.”▶개혁 과제들에 대한 전략적 접근은 어떻게. “3대 개혁에 앞서 공공부문 개혁의 성과를 반드시 보여줘야 해요. 3대 개혁은 국민에게 부담을 요구하는 개혁이고 공공개혁은 정권 스스로 제살을 깎는 개혁이에요. 나부터 개혁하는 모습을 보여야 해요. 공공기관 개혁을 선도적으로 해서 일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들에게 고통분담을 요구할 수 있지 않겠어요. 이명박정부시절 공공개혁이 미완에 그친 건 정치적 동력이 약한 측면도 있었지만 의지의 문제였어요. 제살 제대로 못 깎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차기 대권을 희망하는 분들이 주도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미래 세대를 위한 개혁을 해달라고 하면 돼요. 실적이 있으면 국민이 신임하고 그걸로 검증하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검증된 대통령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공공부문 개혁의 방식은.“공공기관의 경우 대표(CEO)에게 분명한 미션을 주고 이를 수행하도록 하면 돼요. 임무 수행 못하면 해임절차 밟으면 되요. 임기제라도 해임의 명분이 있잖아요. (전임정권에서 임명한 인사들의 알박기 논란이 있는데) 미션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물러나는 게 당연한거죠. 이는 공인 의식의 문제에요. 알박기 인사의 폐해를 막기 위해 공공기관장 임기나 연임 기간을 대통령 임기와 일치시키는 법안까지 제출됐는데 이는 비정상의 합법화일뿐이죠. 오죽하면 이런 법이 나왔겠어요. 공공기관 CEO는 그 자리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관료가 가장 적합한 것 같아요. 민간기업 출신, 내부 승진자도 문제없지만 교수의 경우 조직 관리 능력이 검증된 경우에 한해 임명했으면 해요. 정치인은 개인별 능력에 따라 차이 많이 나요. 분명한 건 해당 자리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사심없는 분들이 맡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 자리를 발판으로 다른 자리로 영전해보겠다는 사람은 임명 안 했으면 좋겠어요. 비전과 조직장악 모두 문제 될 수 있어요.” 그는 공공기관 감사직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공기관 감사, 누구를 위한 자리인가요? 500명짜리 회사도 5000명 짜리 회사도 감사실이 있어 감사를 임명하겠다고 하는데 겸직이든 비상근이든 적정화시켜 합리화해야 합니다. 물론 법적으로 감사는 필요하지만 실제 일 할 사람을 보내야 하고 작은 기관에는 외부 감사로 대체하든 기관별로 묶든 통합감사 하면 됩니다. 위인설관식 세금자리는 더 이상 만들지 말아야 해요.”▶공무원연금 개혁을 벤치마킹한다면. “공무원연금개혁을 1년 가까이 진행했어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적 이해득실보다는 위국에 대한 의지가 강했고 확고한 원칙이 있었어요. 정치적 합의를 통해 성과를 낼 수 있었어요. 610조원 아꼈습니다. 공무원, 노동조합, 은퇴자 그룹 등 이해관계자 모두 가슴을 터놓고 협조해준 결과예요. 개혁의 공감대를 이룰 수 있었던 건 실상을 솔직히 밝혔기 때문이에요. 모든 데이터를 공개하고 사실대로 얘기했어요. 공무원노조가 처음에는 반대 많이 했어요. 그래서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돈 내는 건 당신 후배들이고 국민 세금으로 들어가는데 대안이 있어야 될 것 아니냐’고 반문했어요. 공무원이라면 최소 국민에 대한 봉사적 의무라는 DNA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 부담이 너무 높아진다는 데 대해 본인들로서도 석연치 않았던 것 같아요. 결국 그들도 받아들였어요. 절충선을 찾았지요. 전략상 계획했던 선에서 적절히 마무리했습니다. 해외에서도 성공적인 개혁이란 평이 나왔습니다.”문재인정부시절 공무원 13만명이 증원되면서 공무원연금의 추가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는 “단기적으로는 기여금이 늘겠지만 향후엔 눈덩이처럼 부담이 커질 게 확실하다”며 “어떤 형태로든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혁은 결국 리더의 의지에 달려있군요. “리더는 인기를 따를지 시대적 사명을 따를지 선택의 기로에 있게 마련이에요. 진정한 리더란 어떤 리더일까요. 국민에게 두들겨 맞아도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물론 그 밑바탕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하고 솔선수범이 필요해요. 지금 구조개혁은 외면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에요. 절체절명의 시기 아닌가요. 문재인 정부에서 연금 개혁의 씨앗조차 심어놓지 않은 게 두고두고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지금은 개혁의 골든타임이 아니라 라스트 미니트(Last minute)예요. 더 늦어지면 지금 이 시대를 살았다는 게 부끄럽게 됩니다. 개혁을 시도하기 좋은 환경이란 결코 오지 않습니다. 일단 시작해야 해요. 누가 언제 하더라도 혼란과 고통을 피할 수 없어요.” 이 초대 처장은…△1952년 경기 파주 출생 △성균관대 화학공학 학사 △아주대 경영학 석사, 강원대·창원대 명예경영학박사 △삼성SDS 교육본부장·삼성전자 인사팀장 △삼성광통신 대표이사 △강원대·성균관대 초빙교수, 아주대 겸임교수 △마르퀴스 후즈 후 등재 △청년위함 운영위원장 △초대 인사혁신처 처장 △공직자윤리위원회 부위원장 △국회 미래인사포럼 자문위원장 △한국장학재단 경영고문 △일본 와세다대 초빙연구원 △(현)사람들연구소 소장, 국가인재경영연구원 자문위원장, 성균관대 특임교수
    송길호 기자 2022.12.01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은 구조개혁의 전략과 관련, “제 살 깎기식 공공부문 개혁을 통해 정권 먼저 일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 고통분담이 필요한 연금 교육 노동 등 3대 개혁에 동력이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송길호 논설위원 겸 에디터]윤석열정부 6개월이 지났지만 대통령 지지율은 30%대 초중반에서 답보상태다. 정권 초 부실 검증에 따른 장관 후보자의 잇따른 낙마, 검찰 출신의 과도한 기용으로 집약되는 인사 난맥상이 설익은 정책 등과 맞물려 지지율 정체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가대개조의 일환으로 천명한 각종 개혁작업도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나지 않은채 동력이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집권 초 ‘허니문 효과’도 없이 냉랭한 이때, 국정쇄신을 위한 반전의 돌파구는 어떻게 마련할까. 인사 문제는 어떻게 풀고 공직사회에 활력은 어떻게 불어넣을까. 절체절명의 과제인 구조개혁 과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삼성그룹에서 36년 동안 재직하며 삼성SDS, 삼성전자 정보통신 총괄 인사책임자를 거친 후 박근혜정부 초대 인사혁신처장을 역임한 이근면 성균관대 특임교수로부터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그는 세계 3대 인명 사전의 하나인 ‘마르퀴스 후즈 후’(Marquis Who’s Who in the World)에 등재된 국제 공인 인사전문가이자 공무원연금 개혁을 드라마틱하게 성사시킨 개혁의 전도사다. 그는 최근 서울 강남의 집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청와대정부를 지향했던 문재인정부와 달리 윤석열정부는 작은 대통령실, 큰 행정부를 지향하면서도 정작 장관들은 보이지 않는다”면서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기 보다는 장관 중심의 소통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조개혁과 관련해선 “연금 교육 노동 등 3대 개혁은 국민에게 부담을 요구하는 개혁이지만 공공개혁은 정권이 스스로 제 살을 깎아야 할 개혁”이라면서 “공공개혁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면서 국민 동참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권 먼저 일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 고통분담이 필요한 각종 개혁 드라이브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얘기다.◇인사난맥 …순혈주의 타파, ‘베스트’ 써야 ▶정권초부터 인사실책에 대한 비판이 많습니다.“나라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대처가 시원시원하지 않으니 인사 난맥상이 더욱 부각되고 있는 것 같아요. 대부분 인재 풀이 협소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어요. 사실 정권 주도세력 중 고시출신이 많아요. 순혈주의가 심하고 다양성이 부족해요. 이들이 과연 현장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정부 공언대로 민간주도의 패러다임 전환은 가능할까요. 대통령의 인사를 보면 사전 스터디를 통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어요. 예기치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에 올랐고 경험도 특정분야에 제한돼 있다 보니 인재 기용 폭이 넓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엔 대통령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문제가 계속 터지는 걸 보면서 참모들이나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그룹이 제 역할을 했는지 의문이 들더군요. 인사는 전문영역입니다. 정부에 제대로 된 인사 전문가 그룹이 존재하는지 모르겠습니다.”▶대통령이 참고해야 할 인사원칙이 있다면.“인사는 인사권자의 지혜라고 하죠. 인사권은 전리품이 아닌데 내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민주국가에서 대통령 인사권은 고유권한이라기 보다 국민이 위임한 것입니다. 내 편 네편 구분 말고 최고(Best)를 써야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할 일’, 미션을 정의해야 해요. 그 이후 그에 적합한 사람을 기용하는 겁니다. ‘당신은 이 자리에 이런 필요성 때문에 임명하니 이 부분을 꼭 해결하라’는 식으로 할 일을 명확히 제시하는 거죠. 장관의 역할은 부처를 일반적으로 통솔하는 고유기능과 시대에 맞는 미션을 수행하는 기능, 두 가지인데 중요한 건 후자예요. 해당 미션에 적합한 사람을 쓰고 왜 이 사람을 쓰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후보자의 걸어온 길만 볼게 아니라 할 일을 먼저 봐야 해요.” ▶인사체계를 제대로 정립해야겠군요. “인사는 조직의 명운을 결정합니다. 장점주의 인사가 필요해요. 성과를 내는 건 그 사람의 장점이지 단점이 아니에요. 최소한의 도덕성, 공인의식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장관 인선도 그런 원칙에 따르면 됩니다. 이 사람이 왜 필요한지 지금 시점에서 기용하는게 타당한지 판단하면 돼요. 기본적으로는 국가의 종합 인사기능을 체계화해야 인사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기업에 인사담당최고책임자(CHO)를 두듯 인사혁신처장에게 역할을 맡기면 됩니다. 국가인재 데이터 베이스도 적절히 활용해야 해요. 정파에 관계없이 장관급 후보자 관리 레벨이 있어요.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에요. 국민추천제도 공식화하면 됩니다. 숨은 인재들을 더 많이 공직에 임명할 수 있는 루트예요. 다만 절차는 투명해야 해요. 어떻게 추천 받았고 할 일은 이러이러한데 이런 면에서 적합하기 때문에 후보자로 올린다는 거죠. 채용 과정에 있어 ‘적정 수준’의 투명성이 필요합니다.” ▶청문제도나 보은인사 등 구조적 관행적 요인도 손질이 불가피한데요. “청문제도 때문에 현실적으로 정부 입각을 원하지 않는 인재들이 너무 많습니다. 공직자로서의 역량과 자질을 제대로 갖췄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보기보다는 신상이나 허물을 들춰내 모욕과 망신주기를 일삼고 있기 때문이죠. 검증하는 의원들도 통과못할 엄격한 기준을 정해놓고 흠집내기식 청문회를 하면 누가 살아남겠습니까. 정권이 바뀌어도 공수만 달라질 뿐 똑같이 반복되고 있어요. 인사청문회가 인재를 사장시키는 블랙홀이 되고 있잖아요.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논공행상도 문제예요. 선거 공신이라는 이유로 전리품처럼 자리를 배분하다 보니 인재 기용 폭이 좁을 수밖에 없어요.”▶인사 청문회 제도 개선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 같은데요.“정책 중심, 태스크 중심으로 일을 해낼 수 있는지 여부를 검증하고 윤리적 문제는 법 개정 없이도 국회 차원에서 비공개를 천명하면 돼요. 언론도 엠바고 같은 자율적 규제처럼 이 부분에 대해서는 결과만 발표할뿐 검증과정은 보도하지 말 것을 합의해야 합니다. 알 권리 차원에서 후보자의 정책능력과 도덕성 모두 국민들이 알아야겠지만 최소한 도덕성 문제는 적정 수준의 국민 눈높이에서 걸러줘야 합니다. 기준은 선출직 공직자의 도덕성 정도로 삼는게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선출직 의원들의 평균적 도덕성이 공직 후보자의 평균적 도덕성 아니겠습니까. (검증을 제대로 했는지 여부를 떠나) 국민이 이 정도면 합격이라고 용인했기 때문에 선출직이 된 거 아니겠어요. 그래서 청문위원 본인들이 떳떳한 경우에만 질문하라고 하면 되요. 그래야 인재를 널리 발탁할 수 있어요.” ◇책임장관제…장관 중심 소통방식으로 전환▶논공행상 관행은 어떻게 척결해야 할까요.“미국의 경우처럼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공직자 리스트, 플럼북(Plum Book)을 활용해 대통령 인사권의 존중과 제한을 도모하면 되요. 이러면 대통령의 인사부담을 덜어줄 수 있어요. 보은인사 관행을 하루아침에 단절할 수 없다면 국가자문위원회 같은 기구를 공개적인 인재풀로 만들수도 있어요. 대선 공신으로 빚을 갚아야 할 사람이 있는 게 현실이고 이들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면 최소한의 필요악이라고 생각할 수 있죠. 적합한 인재는 공공기관 등에 기용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나름의 장기를 살려 계속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면 되요. 자격 안 되는 사람을 무리하게 공공기관장에 임명하면 그 피해가 더 크니 이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보상해주는 셈이죠.부분적으로나마 좀 투명하게 하자는 거에요.”▶정권초 내각 구성이 지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새도우캐비넷 도입을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요. 출범 첫 내각만은 러닝메이트제처럼 정권 시작과 동시에 곧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예비내각을 구성하면 유권자들이 후보 주변의 인물을 보고 좀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지요. 대선과정에서 대통령이 누구랑 일할지 알 수 있고 예측 가능해집니다. 후보자의 인사역량을 시험해볼 수도 있고요. 각료 후보자들도 대통령 후보의 국정운영철학을 분명히 드러낼 수 있고 대선을 치르면서 비전을 내재화하며 입각 준비도 할 수 있어요. 해당 대선 후보가 승리하면 그 예비내각은 국민투표로 승인받았다고 간주하면 됩니다. 대통령 임기도중 교체하는 장관에 대해서만 인사청문회를 열면 돼요. 전부가 어렵다면 주요 부처만이라도 예비내각을 구성하면 어떨까요. 그렇게 하면 이번 정부 초반과 같은 파행은 일어나지 않겠지요. 누가 정권을 잡든 집권초 골든타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지요.”▶정부 조직 개편 과정에서 논란이 많았는데요. “역대 대통령들은 국정철학을 구현하기 위해 정부조직 개편에 나섰지만 부처 몇개 만들고 폐지하는 수준의 짜집기에 머물렀어요. 장기적인 국가과제와 비전을 고려한 통합적 안목의 조직개편을 이루지 못한거에요. 윤석열정부는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고 하는데 오해가 좀 있는 것 같아요. 작은 정부는 적은 비용의 정부이지 장관, 부처가 적은 정부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부처를 통폐합하는 식으로 무조건 조직을 줄이는 게 능사는 아니에요. 110만명에 달하는 공무원을 줄이고 관련 예산을 감축해야 작은 정부예요. 일단 공무원 총량규제부터 해야 합니다. 부처수는 늘어나도 상관없어요. 부총리는 오히려 더 늘려도 돼요. 예를 들어 저출산 고령화 관련 부서는 부총리급이 장기적으로 운영해야 해요. 이런 프로젝트형 정부 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여가부 폐지문제의 경우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어 정치적 부담이 되고 있어요. 일을 더 잘하는 게 목적이지 부처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책임있는 내각으로 가야 합니다.” ▶대통령은 책임총리·책임장관제를 공언하고 스타 장관 만들겠다고도 했는데.“문재인정부는 ‘청와대 정부’라고 했죠. 이 정부는 반면교사로 ‘작은 대통령실, 책임있는 행정부’를 지향하고 있는데 장관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무언가 개선할 점이 있다는 얘기예요. 대통령의 소통 방식부터 생각해봐야 해요. 예를 들어 도어스테핑을 통해 매일 현안을 밝히는 게 과연 바람직한 건지. 차라리 장관이나 고위 관료 중심으로 대응하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요.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열심히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좋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장관이 안 보인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어요. 특히 대통령이 현안질의에 답하면 곧바로 지침이 돼 버려요. 정책의 최종 책임은 대통령이 져야겠지만 이는 정치적 책임일 뿐이에요. 일에 대한 책임은 장관이 지는거에요. 그런 면에서 최근 불미스러운 사태가 원인이 되긴 했지만 도어스테핑을 중단한 건 차라리 잘한 일이에요. 추후 재개한다면 형식과 내용을 개선해야 해요. 대통령은 철저히 총론으로만 접근해야 합니다.”◇공직 인사관리… 전문가형· 리더형 투트랙 관리 ▶공직사회에 활력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공직사회는 3가지가 없어요. 비전, 전문성, 도전정신. 인사혁신처장 시절 가까이서 관찰한 공무원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들이었지만 이 3가지가 없어 뛰어난 자질과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았어요. 장기적인 비전이 없으니 다람쥐 쳇바퀴 돌듯 주어진 일에만 매몰돼 있고 그러다 보니 도전정신도 업무 전문성도 떨어져요. 이런 분위기 때문에 정부가 하는 일은 민간에 비해 한박자 느리기 일쑤예요. 원인은 인사운영체계에 있습니다. 평가 보직 보상체계에 문제가 있어요. 경직적 조직 운영과 낙후적인 성과평가체계 때문이에요. 일 잘하는 공무원은 파격적으로 보상해주고 퇴출제를 도입해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조직에 건강한 긴장감이 돌게 해야 해요. 공직사회 이대로 가면 위기예요.”최근 퇴직 공무원 비율이 늘면서 인사혁신처는 ‘하위직 중심으로’ 임금을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교수는 “일부 하위직 공무원에 대해선 최저임금, 물가인상률 등을 감안, 적절한 인상을 검토해야 하지만 봉급인상이 전부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단순 처우개선을 넘어 일한 만큼 보상하고 일 못한 사람은 재교육이나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며 “전체적으로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경쟁력을 높여 미래의 발전을 약속하는 일이 인사관리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경직적이고 분절적인 관료 조직 어떻게 일신할까요. “공무원은 그냥 쓰고 버리는 패가 아니에요. 국가의 중요한 자원이에요. 하지만 개개인의 경쟁력은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요. 이를 국가가 책임져야 해요. 이를 위해 투 트랙으로 인사관리를 할 필요가 있어요. 기획통 세제통 인사통처럼 전문가중심의 인재를 양성하는 트랙과 창조형 인재를 선발해 핵심 리더로 키우는 트랙으로 나눠야 해요. 전문성이 중요한 핵심 직위는 승진에 연연하지 않고 한 우물을 파도록 하고 장·차관 등 리더로 키울 인재는 다양한 보직을 맡도록 관리하면 됩니다. 그런면에서 무차별적 순환보직제는 개선해야 해요.”▶민간기업의 인사 시스템을 적용할 필요도 있겠군요. “개발시대 기업은 정부에서 배워 따라했어요. 이젠 더 이상 정부로부터 배운다고 안 하죠. 정부는 기업에서 배우면 안 되나요.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한 공직사회 구축이 필요해요. 변방의 조그마한 기업이 세계를 제패하는 걸 봤어요. 삼성이 1등할 줄 누가 알았어요. 국가도 마찬가지에요. 예를 들어 ‘G3’까지 가보자며 국가적 비전을 세우면 안되나요. 꿈 꿀때가 됐어요. 된다고 믿는 사람이 있으면 되는거에요. 잘되는 조직은 된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는 거에요. 1인 창업자도 세계 일류를 꿈꾸고 나아가는데 국가는 왜 못하나요. 우리가 못 이루면 다음 세대가 하면 되요. 민간기업은 망하면 없어지지만 국가는 계속 그런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잖아요.” ◇개혁실종… 두들겨 맞아도 갈 길 가야 ▶구조개혁은 논의만 무성한 채 겉도는 것 같습니다. “개혁의 실종이에요. 개혁은 시대적 소명이고 공약인데….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국가적 역량을 모아야 하는데 아직 어젠다화도 돼 있지 않아요. 국가 대개조 수준의 개혁을 한다고 했으면 이를 조직화하고 정치적·정책적 자원을 배분해야지요. 일단 국가차원의 프로젝트인 연금 노동 교육 등 3대 개혁은 민관정 묶어 거국적으로 접근해야 해요. 개혁의 프레임을 짜고 이를 점진적 체계적으로 추진해 나갈 개혁위원회 같은 기구가 필요해요. 정부 혼자 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되요. 정부가 중심 잡고 여야 언론 학계 기업 시민사회 등이 머리를 맞대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조직을 출범시켜야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있어요. 개혁의 직접 수혜자인 청년층도 의사결과정 과정에 참여시켜 대안을 모색토록 해야 해요. 자신의 문제를 다룰때 가장 치열하고 생산적인 고민과 토론이 가능하지 않겠어요. 개혁의 마차는 결국 민간과 공공영역 두 바퀴로 굴러갑니다. 개혁의 청사진을 함께 그리고 현장에서 수용가능한 개혁안을 도출해야 해요. 그런 후국민에게 소상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행위를 무한 반복해야 합니다.”▶개혁 과제들에 대한 전략적 접근은 어떻게. “3대 개혁에 앞서 공공부문 개혁의 성과를 반드시 보여줘야 해요. 3대 개혁은 국민에게 부담을 요구하는 개혁이고 공공개혁은 정권 스스로 제살을 깎는 개혁이에요. 나부터 개혁하는 모습을 보여야 해요. 공공기관 개혁을 선도적으로 해서 일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들에게 고통분담을 요구할 수 있지 않겠어요. 이명박정부시절 공공개혁이 미완에 그친 건 정치적 동력이 약한 측면도 있었지만 의지의 문제였어요. 제살 제대로 못 깎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차기 대권을 희망하는 분들이 주도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미래 세대를 위한 개혁을 해달라고 하면 돼요. 실적이 있으면 국민이 신임하고 그걸로 검증하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검증된 대통령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공공부문 개혁의 방식은.“공공기관의 경우 대표(CEO)에게 분명한 미션을 주고 이를 수행하도록 하면 돼요. 임무 수행 못하면 해임절차 밟으면 되요. 임기제라도 해임의 명분이 있잖아요. (전임정권에서 임명한 인사들의 알박기 논란이 있는데) 미션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물러나는 게 당연한거죠. 이는 공인 의식의 문제에요. 알박기 인사의 폐해를 막기 위해 공공기관장 임기나 연임 기간을 대통령 임기와 일치시키는 법안까지 제출됐는데 이는 비정상의 합법화일뿐이죠. 오죽하면 이런 법이 나왔겠어요. 공공기관 CEO는 그 자리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관료가 가장 적합한 것 같아요. 민간기업 출신, 내부 승진자도 문제없지만 교수의 경우 조직 관리 능력이 검증된 경우에 한해 임명했으면 해요. 정치인은 개인별 능력에 따라 차이 많이 나요. 분명한 건 해당 자리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사심없는 분들이 맡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 자리를 발판으로 다른 자리로 영전해보겠다는 사람은 임명 안 했으면 좋겠어요. 비전과 조직장악 모두 문제 될 수 있어요.” 그는 공공기관 감사직에 대해서도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공기관 감사, 누구를 위한 자리인가요? 500명짜리 회사도 5000명 짜리 회사도 감사실이 있어 감사를 임명하겠다고 하는데 겸직이든 비상근이든 적정화시켜 합리화해야 합니다. 물론 법적으로 감사는 필요하지만 실제 일 할 사람을 보내야 하고 작은 기관에는 외부 감사로 대체하든 기관별로 묶든 통합감사 하면 됩니다. 위인설관식 세금자리는 더 이상 만들지 말아야 해요.”▶공무원연금 개혁을 벤치마킹한다면. “공무원연금개혁을 1년 가까이 진행했어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적 이해득실보다는 위국에 대한 의지가 강했고 확고한 원칙이 있었어요. 정치적 합의를 통해 성과를 낼 수 있었어요. 610조원 아꼈습니다. 공무원, 노동조합, 은퇴자 그룹 등 이해관계자 모두 가슴을 터놓고 협조해준 결과예요. 개혁의 공감대를 이룰 수 있었던 건 실상을 솔직히 밝혔기 때문이에요. 모든 데이터를 공개하고 사실대로 얘기했어요. 공무원노조가 처음에는 반대 많이 했어요. 그래서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돈 내는 건 당신 후배들이고 국민 세금으로 들어가는데 대안이 있어야 될 것 아니냐’고 반문했어요. 공무원이라면 최소 국민에 대한 봉사적 의무라는 DNA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 부담이 너무 높아진다는 데 대해 본인들로서도 석연치 않았던 것 같아요. 결국 그들도 받아들였어요. 절충선을 찾았지요. 전략상 계획했던 선에서 적절히 마무리했습니다. 해외에서도 성공적인 개혁이란 평이 나왔습니다.”문재인정부시절 공무원 13만명이 증원되면서 공무원연금의 추가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는 “단기적으로는 기여금이 늘겠지만 향후엔 눈덩이처럼 부담이 커질 게 확실하다”며 “어떤 형태로든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혁은 결국 리더의 의지에 달려있군요. “리더는 인기를 따를지 시대적 사명을 따를지 선택의 기로에 있게 마련이에요. 진정한 리더란 어떤 리더일까요. 국민에게 두들겨 맞아도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물론 그 밑바탕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하고 솔선수범이 필요해요. 지금 구조개혁은 외면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에요. 절체절명의 시기 아닌가요. 문재인 정부에서 연금 개혁의 씨앗조차 심어놓지 않은 게 두고두고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지금은 개혁의 골든타임이 아니라 라스트 미니트(Last minute)예요. 더 늦어지면 지금 이 시대를 살았다는 게 부끄럽게 됩니다. 개혁을 시도하기 좋은 환경이란 결코 오지 않습니다. 일단 시작해야 해요. 누가 언제 하더라도 혼란과 고통을 피할 수 없어요.” 이 초대 처장은…△1952년 경기 파주 출생 △성균관대 화학공학 학사 △아주대 경영학 석사, 강원대·창원대 명예경영학박사 △삼성SDS 교육본부장·삼성전자 인사팀장 △삼성광통신 대표이사 △강원대·성균관대 초빙교수, 아주대 겸임교수 △마르퀴스 후즈 후 등재 △청년위함 운영위원장 △초대 인사혁신처 처장 △공직자윤리위원회 부위원장 △국회 미래인사포럼 자문위원장 △한국장학재단 경영고문 △일본 와세다대 초빙연구원 △(현)사람들연구소 소장, 국가인재경영연구원 자문위원장, 성균관대 특임교수
  • 이인실 "구조적 전환, 복합위기 韓경제…개혁 미루다 더 큰 위기 자초"[송길호의 파워인터뷰]
    이인실 한국경제학회 명예회장은 “한국경제는 미증유의 복합위기와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직면했다”며 “제때 개혁을 못하면 외환위기 때처럼 빠르게 위기의 터널속으로 빨려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송길호 논설위원 겸 에디터] 한국경제에 혹독한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대내외 경제환경의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금융 외환시장이 요동치고 실물부문으로 침체가 전이되고 있다. 고금리·고환율·고물가 3고 파고 속에 스태그플레이션의 늪 속으로 점차 빠져들며 본격적인 침체의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모습이다. 지정학적 불안,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의 재편 등 경제 외적 요인으로 경제생태계도 근본적인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있다. 경제위기 극복과 구조개혁이라는 난제에 직면한 한국경제. 정부는 어떤 리더십으로 대응해야 할까. 개혁의 골든타임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지금, 개혁과제는 어떻게 드라이브를걸어야 할까. 이인실 한국경제학회 명예회장으로부터 해법을 들었다. 그는 최근 강남의 집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상황과 관련, “위기는 항상 다른 얼굴을 하고 온다는 말처럼 지금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미증유의 복합위기와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직면했다”며 “대통령이 주도하는 비상대응시스템을 구축, 현안에 빠르게 대응하고 미시적인 부문까지철저히 통제하고 있다는 점을 시장에 정확히 알려 불안을 불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제때 개혁을 못하면 대외신인도가 크게 떨어진다”며 “위기를 동력 삼아 경제 사회구조 변화에 대응한 개혁작업을 과단성 있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힘있는 경제컨트롤타워의 구축, 이를 통한 신속하고 효율적인 위기대응, 실상을 정확히 알리는 투명한 소통, 구조적 전환기 개혁과제의 해결을 통해 시장의 신뢰를 이끌어내는 일이 위기극복을 넘어 경제시스템을 한단계 도약시키는 첩경이라는 얘기다.◇예상보다 빠르게 하락하는 잠재성장률 ▶거시경제 환경은 외환위기나 금융위기때 보다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외환위기 때는 미국 등 세계 경제 상황이 좋았고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중국의 성장세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전 세계가 위기에 직면해있습니다. “전 세계 경제가 하향곡선을 그리며 저성장기조로 가고 있어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계속 경기 부양한다면서 돈을 풀어 인플레이션이 왔잖아요. 코로나 오면서 또 더 풀었고…. 위기의 징후는 이미 나타나고 있어요. 외환위기 때처럼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섰고 기업 수익성이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있어요. 여기에 인플레이션까지 극성을 부리고 있으니. 외환위기 땐 그래도 기업 부채는 높았지만 재정은 튼튼했고 가계부채도 낮았는데 지금은 정부 기업 가계 모두 부채비율이 높아요. ‘위기는 항상 다른 얼굴을 하고 온다’는 말이 있잖아요. 지금이 그런 상황이에요. 다만 모두 위기라고 하니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ing prophecy)이 이뤄지지 않도록 오히려 ‘괜찮다’는 말을 하려고 해요” ▶펀더멘털은 괜찮다는 얘기가 데자뷔처럼 흘러나오고 있군요. “크게 3가지 측면에서 외환위기 때와는 다르죠. 일단 대외채권국이에요. 대외충격을 완화하는데 충분한 수준이에요. 단기외채비중도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비율은 아니에요. 외환위기 때는 장단기 미스매칭이 심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무엇보다 금융시장이 개방되고 투명해졌어요. 모르는 게 갑자기 튀어나올 건 없어요. 옛날엔 도대체 부채가 얼마고 외환보유고가 얼마인지 시장에 공개되지 않아 불확실성을 심화시켰어요. 이런 요인들이 그나마 3대 신용평가사에서 한국의 신용등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근거가 될거예요. 최근 피치가 신용등급을 (AA-로) 유지했고 무디스와 S&P도 기존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해져요. 전 세계 시장이 흔들리고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국가가 20여개국이나 된다는데 이런 점에서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사실상 오른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대외 균형을 우선시해야 할 우리나라 입장에선 환율의 변동성이 초미의 관심입니다. “대내균형은 다양한 미시 정책을 통해 대응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처럼 개방 국가는 대외 균형에 초점을 맞추는 게 맞아요. 대외변수는 우리가 관리할 수 없잖아요. 특히 환율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이론적으로 환율은 그 나라의 펀더멘털과 수급에 영향을 받아요. 펀더멘털 측면에서 원화가치는 지금보다 높게 평가받아야 되요. 하지만 미국이 계속 돈줄을 죄고 수출이 부진한 지금, 수급차원에서 보면 원화가치는 계속 하락하고 환율은 올라갈 수밖에 없어요. 이런 고환율 상태가 내년 상반기까지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요. 다만 향후 미국의 통화정책을 감안하면 심리적 마지노선은 대략 1500원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 선을 넘기면 시장이 매우 위축될 수 있습니다. 미국과의 통화스왑(통화교환) 체결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많은데 궁극적으로 한국이 타격을 받으면 피해가 전이될 수 있기 때문에 상황이 닥치면 미국도 돕지 않을 수 없을거예요”▶IMF도 최근 세계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다고 진단했습니다.“우리나라도 스태그플레이션 초입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보여요. 물가는 높고 저성장은 계속되고 있죠. 내년 경제상황은 더 어렵구요. 향후 2년간은 침체기조에 빠질 거에요.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로선 세계 경기가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는 게 큰 타격이에요. 중국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시진핑 1인 영도체제 이후 통제경제로 복귀하면서 더욱 힘들어질거예요. 길게 보면 지금 우리는 12번째(2020년 5월 이후) 경기사이클에 들어와 있어요. 경기는 올라갈 때는 천천히 올라가고, 내려갈 때는 빨리 떨어져요. 경기수축기는 빠르게 오고 길게 갑니다. 다만 각 나라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우리로선 내년 성장률은 2%만 넘기면 다행이에요. 잠재성장률 수준만 성장해도 선방하는거예요” IMF는 지난달 11일 내년 세계경제성장률을 올해 전망치(3.2%)보다 0.5%포인트 하락한 2.7%로 전망했다. 한국경제도 올해 2.6%에서 내년 2.0%로 내리막을 탈 것으로 내다봤다. ▶잠재성장률은 계속 하락하고 있어요. 경제체력이 약화됐는데요.“잠재성장률은 1% 후반 정도에요. 문재인정부시절 2%이상 성장을 한건 재정으로 엄청 펌프질을 했기 때문이예요. 이전부터 민간 수요는 바닥을 헤맸는데 정부나 국민이나 저성장을 견디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정부가 중립적인 정책만 썼어도 그렇게 갈 수 없어요. 잠재성장률은 KDI, 한국은행, 예산정책처 등에서 계속 모형을 돌리는데 걱정스러운 건 3∼5년 측정할 때마다 그 하락 속도가 기대치를 뛰어넘는다는 거예요. 경제 시스템이 망가지기 시작하니 예상보다 더 빠르게 하락하는 거죠. 2%든 3%든 잠재성장률 수준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예요”▶자본과 노동투입 요소 모두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인구절벽이 초래하는 파장이 심상치 않습니다. “성장을 위해선 더 많은 사람이 일하든지 동일한 사람이 더 많이 일해 투입노동량을 늘려야 하는데 지금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어요. 생산인구가 감소하고 노령화 사회가 빠르게 진행되는데 주 52시간 근무제를 적용하면 투입노동량은 줄 수밖에 없잖아요. 1980년대 합계출산율이 떨어졌는데도 계속 산아제한정책을 쓴 것처럼 (성장측면에서 보면)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정책이죠. 전 세계에서 최하위권인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을 끌어올리고 정년연장을 통해 일을 더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해요. 인구정책도 리셋할 골든타임이 5∼10년이에요”이 명예회장은 최근 저출산 고령화문제의 해법을 마련하기 위한 민간 싱크탱크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을 맡았다. 그는 지금 한국은 10년이 지나면 부산시 전체에 해당하는 생산연령인구가 없어지고 2047년이 되면 299개 시군구중 3분의 2에 달하는 199개가 사라진다며 국민들이 인구문제의 실상을 여전히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인구문제는 교육·노동 등 구조개혁과 연관된다며 사회문화적 인식 개선을 통해 인구절벽 해소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대변화에 대응한 재정· 조세 개혁 필요 ▶재정의 책임있는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2006년부터 재정학자들이 건전재정법과 재정 준칙 법제화(재정수지 3%)의 필요성을 계속 얘기했어요. 지금 시행령에 규정돼 있는 재정준칙을 법으로 못박아 지키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해야 합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방법이에요. 재정전략위원회든 재정전략기구든 재정을 들여다보는 독립적 기구를 유럽처럼 따로 둬야 해요.중요한 건 거시정책에서 재정 통화정책 외에 국가채무정책 3가지를 같이 고려해야 한다는 거예요. 국가 채무 비율이 20∼30% 선이었을때는 국가채무정책이 부각되지 않았아요. 반면 국가채무비율이 30%를 넘으면 빚이 빚을 부르게 되니 재정건전성에 큰 타격을 줍니다. 이자를 갚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고 그 이자를 갚기 위해 채권을 또 발행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기 때문이에요. 일본이 그랬습니다. 우리도 지금 그럴 타이밍입니다. 후대에 빚더미 나라를 물려줄 수는 없잖아요”▶재정포퓰리즘을 극복한다면서도 ‘병사 월급 200만 원 지급’ 등 선심성 정책을 여전히 남발하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포퓰리즘이죠. 예전에 쓴 논문이 있는데 정권별로 경기조절형(counter cyclical policy) 재정정책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분석해보면 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확장정책은 모든 정권이 잘 해요. 반면 호황일때는 지출을 잘 줄이지 못해요. 재정 건전성 구현이 쉽지 않다는 얘기예요. 표가 날아가면 모든 게 날아간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 정도는 희생시켜도 좋다는건데 정치에서 자유로운 학자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히 그렇게 가면 안되는 거죠. 지금은 긴축으로 가야 해요. 건전재정 꼭 필요합니다. 큰 정치인이라면 그런 부분까지 길게 봐야 해요. 그런 리더가 없으니 국민에게 부담과 고통이 돌아가고 특히 젊은세대에게 부담을 안기게 됩니다. 무책임한거죠. 그러니 건전재정을 위한 마지노선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경제사회구조 변화에 대응한 조세 개혁도 필요할텐데요. “시대변화에 대응한 근본적인 세제개혁(Fundamental tax reform)이 필요해요. 김영삼 정부 시절 이후 제대로 된 개혁이 이뤄지지 않았어요. 지금 저성장시대에 진입했지만 여전히 자본과 노동을 대량 투입하던 고성장시대의 조세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어요. 자본 노동이 부족한 상태에서 계속 세금을 때려 투자나 근로 유인을 떨어뜨리면 경제는 작동하지 않아요. 그런 면에서 생산요소에 세금을 많이 부과하는 건 성장을 저해하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정부도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고 있지만 야당의 부자감세 프레임에 막혀 있군요.“중요한 건 과세 자체가 아니라 세금의 귀착점이 어디에 있느냐에 있습니다. 법인세는 과연 누구의 부담으로 돌아갈까요. 법인은 실체가 없지요. 결국 자연인 누군가가 부담해야 합니다. 국내외 무수한 연구결과를 보면 법인세 부담의 귀착지는 자본 보다는 노동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예컨대 법인세를 인상하면 기업으로선 재원 마련을 위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아야 되요. 반면 법인세를 인하하면 노동자들이 이득을 보지요. 그러니 법인세 인하를 부자감세라고 하는 건 정말 넌센스예요”▶법인세를 인상해도 힘 있는 노조가 있는 대기업들은 피해를 덜 보겠군요. “그 부문이 가장 고질적인 문제예요. 법인세가 인상되면 노조의 힘이 큰 대기업들은 비용을 해당 근로자들이 아닌 하청기업, 중소기업 근로자들에게 떠넘기게 됩니다. 지금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격차가 과도하게 벌어진 이유중의 하나도 여기에 있어요. 노동시장의 분절적 이중구조지요. 법인세 인상은 결국 중하층 근로자들의 부담으로 전가됩니다. 동일 노동의 몫에서 대기업이 많이 가져가고 중소기업이 덜 가져가는 구조 아닌가요. 소득세도 마찬가지예요. 열심히 일해 번 사람에게 세금을 많이 매기면 어떻게든 세금회피의 유인이 있어요. 고소득자는 정보도 많고 조세회피처도 널려 있고. 돈은 빠져나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소득재분배를 위한 형평성은 저소득 취약계층에 대한 선별적 복지지출을 통해 이뤄지는 게 효과적입니다. 경제학계에선 이미 끝난 논쟁입니다”◇속절없이 흘러가는 개혁 골든타임 ▶한국경제가 구조적 전환기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1930년대 대공황 때 경제사의 흐름이 바뀌면서 케인지언이 나오고 다시 신고전학파가 나왔잖아요. 지금은 그 정도 수준으로 경제학의 패러다임이 변하는 시기예요. 경제 이론을 새로 써야 할 정도로 중요한 포인트에 도달했어요. 지금 우리는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일들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에요. 인구문제, 과학기술발전, 여기에 각종 사회시스템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어요. 특히 지정학(geopolitical)이 정치뿐 아니라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시기가 됐어요. 경제학자로서 40년 동안 공부했지만 이렇게 비경제적 요인에 의해 경제현상이 좌우된 걸 본 적이 없어요. 이렇게 큰 불확실성(uncertainty)에 직면한 적이 없어요. 매우 어렵고 중요한 시기에요. 시대 흐름을 읽는 사람, 시대 흐름을 읽는 국가만이 살아남아요”▶정치 리더십의 역할이 역시 중요하겠군요. 정부가 위기의 실상을 알리고 긴장하고 챙기는 모습을 보여야 경제주체들도 심리적으로 덜 불안할텐데요. “레고랜드 사태처럼 마이크로 한 부분에서 사고가 터져 일이 크게 벌어지는거예요. 디테일을 챙기고 정보를 모으고 시장과 계속 소통해야 돼요. 경상 수지가 적자가 날 것 같으면 해외 여행에 대한 규제를 좀 조절한다든지…. 해외 투자자들에게 한국은 유연하게 결정하고 미세조정 잘하고 위기를 잘 통제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어요. 그런 면에서 내부에서 너무 정부를 흔들고 너무 걱정된다는 말은 자제하는 게 전략상 좋습니다. 우선 위기관리기구부터 필히 만들어 비상대응시스템을 가동해야 합니다.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해요. 지금처럼 대외 불균형이 올때는 박정희 대통령시절 (매달 진행한) 수출진흥 확대회의처럼 정부가 직접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해요. 이명박정부시절 서별관회의처럼 워룸(war room·위기상황실)이라도 만들어 매일 챙기는 모습을 보여야 해요. 겨울이 오고 있잖아요. 국민들에게는 지금 어려우니 최선을 다해 겨울을 짧게 만들어드리겠다고 소통하는 일이 중요해요. 못 알아들을 국민이 아니에요. 2030세대들에게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고 기성세대들도 조금씩 양보하고 참고 견디자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해요.”▶정교하게 국민과 소통하며 미시적인 부분 잘 챙기면서 경제시스템을 개선해야 된다는 얘기군요. “가장 뼈 아픈 부문이 경제규모 10위의 대국이 됐는데 금융업이 경제수준을 여전히 못 따라가는 거예요. 관치금융이 여전히 하늘을 찔러요. 문재인정부시절 특히 심했지요. 박근혜정부시절 금융부문의 경쟁력을 나타내는 금융심화도(GDP대비 금융 부가가치)가 7% 정도였는데 당시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10%까지 올리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10년이 다된 지금 7%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금융산업이 오히려 후퇴했다는 얘기예요. 당장의 위기 못지 않게 미래 먹거리를 위한 산업 구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더 문제예요. 금융부문 등이 이를 선도해야 하는데 규제때문에 막혀 있어요” ▶정부도 국가 대개조 수준의 구조 개혁을 천명하고 있습니다만 미흡해 보입니다.“국민만 보고 간다고 하는데 아직 결연한 의지가 보이지 않아요. 연금개혁부터 이미 골든타임을 놓친 게 아닌지 우려돼요. 정권초부터 밀어붙여야 하는데…. 물론 정략적으로 행동하는 거대 야당에 발목이 단단히 잡혀 있어요. 하지만 대통령 의지도 강해 보이진 않아요. 그러니 시장에선 또 이익단체들에 밀리겠구나라는 생각들이 확산하고 있어요. 어차피 단임 정부잖아요. 더 이상 잃을 게 없으니 한번 해보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지금과 같은 격변기는 위기이면서도 기회가 될 수 있겠지요“점프 안 하면 방법이 없습니다. 외환위기 직전 금융개혁 노동개혁이 야당의 반대로 모두 무산됐어요. 글로벌 투자자들이 볼 때 한국은 경제기적을 이뤘다고 해서 괜찮은 나라인 줄 알았는데 저 정도 개혁 하나 못하나라면서 신인도가 확 떨어졌어요. 지금도 똑같아요. 경제 시스템이 전환되는 상황에서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무성하지만 아직 진전이 없어요. 그러니 저 나라는 희망없네라고 볼 수 있고 투자를 거둬들이는 것 아니겠어요. 개혁을 제때 못 하면 대외신뢰도가 확 떨어져요. 외환위기 때처럼 빠르게 위기의 터널속으로 빨려들어갈 수 있어요. 개혁을 해야 신인도가 올라가고 투자자들이 돌아옵니다”▶그래서 외환위기를 ‘위장된 축복’이라고 했던가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쳤지만 구조조정을 통해 한국 경제와 기업의 체질이 이전과 근본적으로 달라졌잖아요. 당면한 구조개혁을 제2의 ‘위장된 축복’으로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는 우리 하기에 달려 있어요. 위기상황이 오히려 개혁을 할 타이밍이에요. 지난 정권 탓 하자면 끝도 없어요. 이제 정권 받았으니 책임감 있게 끌고 나갔으면 해요. 그리고 판단은 역사에 맡기면 돼요”이 명예회장은…△1956년 서울 출생 △경기여고,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미네소타대 경제학 박사 △하나금융연구소 금융조사팀장 △한국경제연구원 재정금융연구센터소장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 △국회 예산정책처 초대 경제분석실장 △한국여성경제학회 회장 △통계청장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한국경제학회 회장 △한국경제학회·한국여성경제학회·한국경제연구학회 명예회장, 지속가능경제사회개발원 이사장,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원장
    송길호 기자 2022.11.03
    이인실 한국경제학회 명예회장은 “한국경제는 미증유의 복합위기와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직면했다”며 “제때 개혁을 못하면 외환위기 때처럼 빠르게 위기의 터널속으로 빨려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송길호 논설위원 겸 에디터] 한국경제에 혹독한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대내외 경제환경의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금융 외환시장이 요동치고 실물부문으로 침체가 전이되고 있다. 고금리·고환율·고물가 3고 파고 속에 스태그플레이션의 늪 속으로 점차 빠져들며 본격적인 침체의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모습이다. 지정학적 불안,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의 재편 등 경제 외적 요인으로 경제생태계도 근본적인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있다. 경제위기 극복과 구조개혁이라는 난제에 직면한 한국경제. 정부는 어떤 리더십으로 대응해야 할까. 개혁의 골든타임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지금, 개혁과제는 어떻게 드라이브를걸어야 할까. 이인실 한국경제학회 명예회장으로부터 해법을 들었다. 그는 최근 강남의 집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한국 경제상황과 관련, “위기는 항상 다른 얼굴을 하고 온다는 말처럼 지금은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미증유의 복합위기와 패러다임의 전환기에 직면했다”며 “대통령이 주도하는 비상대응시스템을 구축, 현안에 빠르게 대응하고 미시적인 부문까지철저히 통제하고 있다는 점을 시장에 정확히 알려 불안을 불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제때 개혁을 못하면 대외신인도가 크게 떨어진다”며 “위기를 동력 삼아 경제 사회구조 변화에 대응한 개혁작업을 과단성 있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힘있는 경제컨트롤타워의 구축, 이를 통한 신속하고 효율적인 위기대응, 실상을 정확히 알리는 투명한 소통, 구조적 전환기 개혁과제의 해결을 통해 시장의 신뢰를 이끌어내는 일이 위기극복을 넘어 경제시스템을 한단계 도약시키는 첩경이라는 얘기다.◇예상보다 빠르게 하락하는 잠재성장률 ▶거시경제 환경은 외환위기나 금융위기때 보다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외환위기 때는 미국 등 세계 경제 상황이 좋았고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중국의 성장세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전 세계가 위기에 직면해있습니다. “전 세계 경제가 하향곡선을 그리며 저성장기조로 가고 있어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계속 경기 부양한다면서 돈을 풀어 인플레이션이 왔잖아요. 코로나 오면서 또 더 풀었고…. 위기의 징후는 이미 나타나고 있어요. 외환위기 때처럼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섰고 기업 수익성이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있어요. 여기에 인플레이션까지 극성을 부리고 있으니. 외환위기 땐 그래도 기업 부채는 높았지만 재정은 튼튼했고 가계부채도 낮았는데 지금은 정부 기업 가계 모두 부채비율이 높아요. ‘위기는 항상 다른 얼굴을 하고 온다’는 말이 있잖아요. 지금이 그런 상황이에요. 다만 모두 위기라고 하니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ing prophecy)이 이뤄지지 않도록 오히려 ‘괜찮다’는 말을 하려고 해요” ▶펀더멘털은 괜찮다는 얘기가 데자뷔처럼 흘러나오고 있군요. “크게 3가지 측면에서 외환위기 때와는 다르죠. 일단 대외채권국이에요. 대외충격을 완화하는데 충분한 수준이에요. 단기외채비중도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비율은 아니에요. 외환위기 때는 장단기 미스매칭이 심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무엇보다 금융시장이 개방되고 투명해졌어요. 모르는 게 갑자기 튀어나올 건 없어요. 옛날엔 도대체 부채가 얼마고 외환보유고가 얼마인지 시장에 공개되지 않아 불확실성을 심화시켰어요. 이런 요인들이 그나마 3대 신용평가사에서 한국의 신용등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근거가 될거예요. 최근 피치가 신용등급을 (AA-로) 유지했고 무디스와 S&P도 기존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해져요. 전 세계 시장이 흔들리고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국가가 20여개국이나 된다는데 이런 점에서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사실상 오른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대외 균형을 우선시해야 할 우리나라 입장에선 환율의 변동성이 초미의 관심입니다. “대내균형은 다양한 미시 정책을 통해 대응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처럼 개방 국가는 대외 균형에 초점을 맞추는 게 맞아요. 대외변수는 우리가 관리할 수 없잖아요. 특히 환율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이론적으로 환율은 그 나라의 펀더멘털과 수급에 영향을 받아요. 펀더멘털 측면에서 원화가치는 지금보다 높게 평가받아야 되요. 하지만 미국이 계속 돈줄을 죄고 수출이 부진한 지금, 수급차원에서 보면 원화가치는 계속 하락하고 환율은 올라갈 수밖에 없어요. 이런 고환율 상태가 내년 상반기까지는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요. 다만 향후 미국의 통화정책을 감안하면 심리적 마지노선은 대략 1500원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 선을 넘기면 시장이 매우 위축될 수 있습니다. 미국과의 통화스왑(통화교환) 체결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많은데 궁극적으로 한국이 타격을 받으면 피해가 전이될 수 있기 때문에 상황이 닥치면 미국도 돕지 않을 수 없을거예요”▶IMF도 최근 세계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했다고 진단했습니다.“우리나라도 스태그플레이션 초입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보여요. 물가는 높고 저성장은 계속되고 있죠. 내년 경제상황은 더 어렵구요. 향후 2년간은 침체기조에 빠질 거에요.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로선 세계 경기가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는 게 큰 타격이에요. 중국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시진핑 1인 영도체제 이후 통제경제로 복귀하면서 더욱 힘들어질거예요. 길게 보면 지금 우리는 12번째(2020년 5월 이후) 경기사이클에 들어와 있어요. 경기는 올라갈 때는 천천히 올라가고, 내려갈 때는 빨리 떨어져요. 경기수축기는 빠르게 오고 길게 갑니다. 다만 각 나라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우리로선 내년 성장률은 2%만 넘기면 다행이에요. 잠재성장률 수준만 성장해도 선방하는거예요” IMF는 지난달 11일 내년 세계경제성장률을 올해 전망치(3.2%)보다 0.5%포인트 하락한 2.7%로 전망했다. 한국경제도 올해 2.6%에서 내년 2.0%로 내리막을 탈 것으로 내다봤다. ▶잠재성장률은 계속 하락하고 있어요. 경제체력이 약화됐는데요.“잠재성장률은 1% 후반 정도에요. 문재인정부시절 2%이상 성장을 한건 재정으로 엄청 펌프질을 했기 때문이예요. 이전부터 민간 수요는 바닥을 헤맸는데 정부나 국민이나 저성장을 견디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정부가 중립적인 정책만 썼어도 그렇게 갈 수 없어요. 잠재성장률은 KDI, 한국은행, 예산정책처 등에서 계속 모형을 돌리는데 걱정스러운 건 3∼5년 측정할 때마다 그 하락 속도가 기대치를 뛰어넘는다는 거예요. 경제 시스템이 망가지기 시작하니 예상보다 더 빠르게 하락하는 거죠. 2%든 3%든 잠재성장률 수준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예요”▶자본과 노동투입 요소 모두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인구절벽이 초래하는 파장이 심상치 않습니다. “성장을 위해선 더 많은 사람이 일하든지 동일한 사람이 더 많이 일해 투입노동량을 늘려야 하는데 지금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어요. 생산인구가 감소하고 노령화 사회가 빠르게 진행되는데 주 52시간 근무제를 적용하면 투입노동량은 줄 수밖에 없잖아요. 1980년대 합계출산율이 떨어졌는데도 계속 산아제한정책을 쓴 것처럼 (성장측면에서 보면)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정책이죠. 전 세계에서 최하위권인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을 끌어올리고 정년연장을 통해 일을 더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해요. 인구정책도 리셋할 골든타임이 5∼10년이에요”이 명예회장은 최근 저출산 고령화문제의 해법을 마련하기 위한 민간 싱크탱크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을 맡았다. 그는 지금 한국은 10년이 지나면 부산시 전체에 해당하는 생산연령인구가 없어지고 2047년이 되면 299개 시군구중 3분의 2에 달하는 199개가 사라진다며 국민들이 인구문제의 실상을 여전히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인구문제는 교육·노동 등 구조개혁과 연관된다며 사회문화적 인식 개선을 통해 인구절벽 해소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대변화에 대응한 재정· 조세 개혁 필요 ▶재정의 책임있는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2006년부터 재정학자들이 건전재정법과 재정 준칙 법제화(재정수지 3%)의 필요성을 계속 얘기했어요. 지금 시행령에 규정돼 있는 재정준칙을 법으로 못박아 지키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해야 합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방법이에요. 재정전략위원회든 재정전략기구든 재정을 들여다보는 독립적 기구를 유럽처럼 따로 둬야 해요.중요한 건 거시정책에서 재정 통화정책 외에 국가채무정책 3가지를 같이 고려해야 한다는 거예요. 국가 채무 비율이 20∼30% 선이었을때는 국가채무정책이 부각되지 않았아요. 반면 국가채무비율이 30%를 넘으면 빚이 빚을 부르게 되니 재정건전성에 큰 타격을 줍니다. 이자를 갚기 위해 채권을 발행하고 그 이자를 갚기 위해 채권을 또 발행하는 악순환이 발생하기 때문이에요. 일본이 그랬습니다. 우리도 지금 그럴 타이밍입니다. 후대에 빚더미 나라를 물려줄 수는 없잖아요”▶재정포퓰리즘을 극복한다면서도 ‘병사 월급 200만 원 지급’ 등 선심성 정책을 여전히 남발하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포퓰리즘이죠. 예전에 쓴 논문이 있는데 정권별로 경기조절형(counter cyclical policy) 재정정책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분석해보면 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재정확장정책은 모든 정권이 잘 해요. 반면 호황일때는 지출을 잘 줄이지 못해요. 재정 건전성 구현이 쉽지 않다는 얘기예요. 표가 날아가면 모든 게 날아간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 정도는 희생시켜도 좋다는건데 정치에서 자유로운 학자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히 그렇게 가면 안되는 거죠. 지금은 긴축으로 가야 해요. 건전재정 꼭 필요합니다. 큰 정치인이라면 그런 부분까지 길게 봐야 해요. 그런 리더가 없으니 국민에게 부담과 고통이 돌아가고 특히 젊은세대에게 부담을 안기게 됩니다. 무책임한거죠. 그러니 건전재정을 위한 마지노선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경제사회구조 변화에 대응한 조세 개혁도 필요할텐데요. “시대변화에 대응한 근본적인 세제개혁(Fundamental tax reform)이 필요해요. 김영삼 정부 시절 이후 제대로 된 개혁이 이뤄지지 않았어요. 지금 저성장시대에 진입했지만 여전히 자본과 노동을 대량 투입하던 고성장시대의 조세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어요. 자본 노동이 부족한 상태에서 계속 세금을 때려 투자나 근로 유인을 떨어뜨리면 경제는 작동하지 않아요. 그런 면에서 생산요소에 세금을 많이 부과하는 건 성장을 저해하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정부도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고 있지만 야당의 부자감세 프레임에 막혀 있군요.“중요한 건 과세 자체가 아니라 세금의 귀착점이 어디에 있느냐에 있습니다. 법인세는 과연 누구의 부담으로 돌아갈까요. 법인은 실체가 없지요. 결국 자연인 누군가가 부담해야 합니다. 국내외 무수한 연구결과를 보면 법인세 부담의 귀착지는 자본 보다는 노동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예컨대 법인세를 인상하면 기업으로선 재원 마련을 위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깎아야 되요. 반면 법인세를 인하하면 노동자들이 이득을 보지요. 그러니 법인세 인하를 부자감세라고 하는 건 정말 넌센스예요”▶법인세를 인상해도 힘 있는 노조가 있는 대기업들은 피해를 덜 보겠군요. “그 부문이 가장 고질적인 문제예요. 법인세가 인상되면 노조의 힘이 큰 대기업들은 비용을 해당 근로자들이 아닌 하청기업, 중소기업 근로자들에게 떠넘기게 됩니다. 지금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격차가 과도하게 벌어진 이유중의 하나도 여기에 있어요. 노동시장의 분절적 이중구조지요. 법인세 인상은 결국 중하층 근로자들의 부담으로 전가됩니다. 동일 노동의 몫에서 대기업이 많이 가져가고 중소기업이 덜 가져가는 구조 아닌가요. 소득세도 마찬가지예요. 열심히 일해 번 사람에게 세금을 많이 매기면 어떻게든 세금회피의 유인이 있어요. 고소득자는 정보도 많고 조세회피처도 널려 있고. 돈은 빠져나가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소득재분배를 위한 형평성은 저소득 취약계층에 대한 선별적 복지지출을 통해 이뤄지는 게 효과적입니다. 경제학계에선 이미 끝난 논쟁입니다”◇속절없이 흘러가는 개혁 골든타임 ▶한국경제가 구조적 전환기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1930년대 대공황 때 경제사의 흐름이 바뀌면서 케인지언이 나오고 다시 신고전학파가 나왔잖아요. 지금은 그 정도 수준으로 경제학의 패러다임이 변하는 시기예요. 경제 이론을 새로 써야 할 정도로 중요한 포인트에 도달했어요. 지금 우리는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일들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에요. 인구문제, 과학기술발전, 여기에 각종 사회시스템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어요. 특히 지정학(geopolitical)이 정치뿐 아니라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시기가 됐어요. 경제학자로서 40년 동안 공부했지만 이렇게 비경제적 요인에 의해 경제현상이 좌우된 걸 본 적이 없어요. 이렇게 큰 불확실성(uncertainty)에 직면한 적이 없어요. 매우 어렵고 중요한 시기에요. 시대 흐름을 읽는 사람, 시대 흐름을 읽는 국가만이 살아남아요”▶정치 리더십의 역할이 역시 중요하겠군요. 정부가 위기의 실상을 알리고 긴장하고 챙기는 모습을 보여야 경제주체들도 심리적으로 덜 불안할텐데요. “레고랜드 사태처럼 마이크로 한 부분에서 사고가 터져 일이 크게 벌어지는거예요. 디테일을 챙기고 정보를 모으고 시장과 계속 소통해야 돼요. 경상 수지가 적자가 날 것 같으면 해외 여행에 대한 규제를 좀 조절한다든지…. 해외 투자자들에게 한국은 유연하게 결정하고 미세조정 잘하고 위기를 잘 통제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어요. 그런 면에서 내부에서 너무 정부를 흔들고 너무 걱정된다는 말은 자제하는 게 전략상 좋습니다. 우선 위기관리기구부터 필히 만들어 비상대응시스템을 가동해야 합니다. 대통령이 직접 챙겨야 해요. 지금처럼 대외 불균형이 올때는 박정희 대통령시절 (매달 진행한) 수출진흥 확대회의처럼 정부가 직접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해요. 이명박정부시절 서별관회의처럼 워룸(war room·위기상황실)이라도 만들어 매일 챙기는 모습을 보여야 해요. 겨울이 오고 있잖아요. 국민들에게는 지금 어려우니 최선을 다해 겨울을 짧게 만들어드리겠다고 소통하는 일이 중요해요. 못 알아들을 국민이 아니에요. 2030세대들에게 중점적으로 이야기하고 기성세대들도 조금씩 양보하고 참고 견디자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해요.”▶정교하게 국민과 소통하며 미시적인 부분 잘 챙기면서 경제시스템을 개선해야 된다는 얘기군요. “가장 뼈 아픈 부문이 경제규모 10위의 대국이 됐는데 금융업이 경제수준을 여전히 못 따라가는 거예요. 관치금융이 여전히 하늘을 찔러요. 문재인정부시절 특히 심했지요. 박근혜정부시절 금융부문의 경쟁력을 나타내는 금융심화도(GDP대비 금융 부가가치)가 7% 정도였는데 당시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10%까지 올리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10년이 다된 지금 7%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금융산업이 오히려 후퇴했다는 얘기예요. 당장의 위기 못지 않게 미래 먹거리를 위한 산업 구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더 문제예요. 금융부문 등이 이를 선도해야 하는데 규제때문에 막혀 있어요” ▶정부도 국가 대개조 수준의 구조 개혁을 천명하고 있습니다만 미흡해 보입니다.“국민만 보고 간다고 하는데 아직 결연한 의지가 보이지 않아요. 연금개혁부터 이미 골든타임을 놓친 게 아닌지 우려돼요. 정권초부터 밀어붙여야 하는데…. 물론 정략적으로 행동하는 거대 야당에 발목이 단단히 잡혀 있어요. 하지만 대통령 의지도 강해 보이진 않아요. 그러니 시장에선 또 이익단체들에 밀리겠구나라는 생각들이 확산하고 있어요. 어차피 단임 정부잖아요. 더 이상 잃을 게 없으니 한번 해보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지금과 같은 격변기는 위기이면서도 기회가 될 수 있겠지요“점프 안 하면 방법이 없습니다. 외환위기 직전 금융개혁 노동개혁이 야당의 반대로 모두 무산됐어요. 글로벌 투자자들이 볼 때 한국은 경제기적을 이뤘다고 해서 괜찮은 나라인 줄 알았는데 저 정도 개혁 하나 못하나라면서 신인도가 확 떨어졌어요. 지금도 똑같아요. 경제 시스템이 전환되는 상황에서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무성하지만 아직 진전이 없어요. 그러니 저 나라는 희망없네라고 볼 수 있고 투자를 거둬들이는 것 아니겠어요. 개혁을 제때 못 하면 대외신뢰도가 확 떨어져요. 외환위기 때처럼 빠르게 위기의 터널속으로 빨려들어갈 수 있어요. 개혁을 해야 신인도가 올라가고 투자자들이 돌아옵니다”▶그래서 외환위기를 ‘위장된 축복’이라고 했던가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쳤지만 구조조정을 통해 한국 경제와 기업의 체질이 이전과 근본적으로 달라졌잖아요. 당면한 구조개혁을 제2의 ‘위장된 축복’으로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는 우리 하기에 달려 있어요. 위기상황이 오히려 개혁을 할 타이밍이에요. 지난 정권 탓 하자면 끝도 없어요. 이제 정권 받았으니 책임감 있게 끌고 나갔으면 해요. 그리고 판단은 역사에 맡기면 돼요”이 명예회장은…△1956년 서울 출생 △경기여고,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미네소타대 경제학 박사 △하나금융연구소 금융조사팀장 △한국경제연구원 재정금융연구센터소장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 △국회 예산정책처 초대 경제분석실장 △한국여성경제학회 회장 △통계청장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한국경제학회 회장 △한국경제학회·한국여성경제학회·한국경제연구학회 명예회장, 지속가능경제사회개발원 이사장, 한반도미래인구연구원 원장
  • 정덕구 "안보·경제 시계제로, 정치 바로서야 위기 넘어설 수 있다" [송길호의 파워인터뷰]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1997년 외환위기때처럼 지금도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으며 위기가 증폭되고 있다”며 “위기의 블랙홀인 정치가 제대로 작동해야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이데일리 송길호 논설위원 겸 에디터]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세번째 대관식이 오는 16∼22일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열린다. 덩샤오핑(鄧小平)이후 연성화된 집단지도체제를 이어오던 중국이 자국 특색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마오쩌둥(毛澤東)식 1인 영도체제로 회귀하고 있는 모습이다. 국내 경제엔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 미국의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환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며 외환시장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인플레이션의 확산 속에 실물경제의 둔화, 금융시장 불안과 자산가격 폭락, 최후의 보루격인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서며 외환위기의 재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내외 정세가 요동치며 안보와 경제 모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계제로. 흔들리는 거대한 체스판 위에서 고난도의 게임을 진행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어떤 전략적 선택을 모색해야할까.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외채협상 수석대표로 위기 극복의 선봉에 섰고 산업자원부 장관과 17대 국회의원을 거쳐 16년째 중국 전문 싱크탱크 니어재단을 이끌고 있는 정덕구 이사장으로부터 해법을 들었다. 최근 서울 강남의 집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시진핑 체제이후 강화된 중국의 대국주의는 (사드사태에서 보듯) 한국을 테스트케이스로 삼고 있다”며 “국익에 근거한 원칙있는 외교로 돌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진핑 체제의 중국과 공존의 틀을 유지하기 위해선 “정경분리를 바탕으로 한미 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되 중국에게 꼭 필요한 10개 이상의 고도 핵심 기술을 개발, 범접할 수 없는 기술력으로 그들의 필수국가가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 이사장은 경제위기론에 대해선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질때 급격한 자본이동을 막을 금리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내균형에 집중하다 위기대응에 실패한 외환위기때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며 “대외균형에 초점을 맞춰 경상수지 방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 이사장은 특히 “국가 리더십이 흔들릴때 위기는 더욱 증폭된다”며 “위기의 블랙홀인 정치가 제대로 작동해야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외환위기때처럼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은 리더십을 회복하고 여야 정치권은 정쟁에서 벗어나 위기극복에 한몸으로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 1인 영도체제로 전환하는 中, 어디로 갈까▶이번 당대회를 통해 시진핑 3연임이 확정됩니다. 의미와 관전 포인트는. “덩샤오핑은 정경분리(정치는 사회주의, 경제는 자본주의)를 통해 실용주의 노선을 채택했어요.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는 이런 연성화된 집단지도체제를 통해 집권 10년이 되면 물러났지요. 시진핑체제 들어 정경분리가 흔들리면서 이 같은 권력분점의 원칙이 무너졌어요. 여기에 미국과의 충돌로 공산당 체제에 대한 불안감이 조성되면서 독자적인 생존권을 확보하는게 절실해졌지요. 시진핑 1인 영도체제는 최소 10년은 더 갈거에요. 시진핑은 그동안 정적들을 제거해나가면서 끊임없이 세대교체라는 무기를 썼지요. 이번 당대회에서 어떤 사람들이 중용되는지 보면 향후 그림을 그려볼 수 있겠지요.” ▶1인 영도체제로 전환하는 중국은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요. “시진핑은 자신이 추구하는 중국의 미래를 완성하려고 할거에요. 한마디로 중국 특색 사회주의, 중화 민족주의, 과학기술 중국몽, 디지털 공산주의 등… 이런 목표들이 중국몽(中國夢)이라는 형태로 설정돼 있는데 지난 5년동안 이를 실현하기 위해 당규도 바꾸고 각종 통치기반을 조성하면서 정지 작업들을 많이 했어요. 가장 큰 정책상의 변화는 (성장을 우선시하는) 덩샤오핑의 선부론(先富論)에서 (분배를 중심으로 한) 공동 부유(共同富裕)로 전환하는 거지요.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거에요. 6억명에 달하는 절대 빈곤층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선도적인 국가가 될 수 없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격화되는 미중충돌과 다가오는 경기침체 등을 감안하면 험로가 예상됩니다. 자칫 집권 동력을 상실할 수도 있어요.”▶마오쩌둥식 회귀군요. 성장보다는 분배에 치중하게 되면 경제의 활력은 떨어질텐데요. “반쯤 회귀하는 거지요. 가난했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고 부강한 중화민족주의를 실현한다는거에요. 그러나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매우 폐쇄적이거나 축소지향적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변화는 (‘중국제조2025’에서 볼 수 있듯) 탈허향실(脫虛向實·허세를 탈피해서 실질을 숭상한다)이에요. 제조업중심의 실물경제를 강화하는 전략이지요. 경제가 발전할 수록 서비스부문의 비중이 커지는데 중국은 산업의 확장보다는 제조업 중심의 축소형으로 가고 있어요. 미국은 제조업이 약하기 때문에 제조업으로 미국을 누르면 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어요. 그래서 과학기술의 선진화를 통해 제조업을 중심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하면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새로운 생존 방정식을 도출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지요.”▶미국의 압박으로 중국식 글로벌밸류체인(GVC)이 깨지고 있는데 이런 목표가 가능할까요. “지금까지는 세계화를 전제로 중국식 GVC가 형성돼 있었어요. 그런데 탈 세계화로 중국 중심의 GVC가 깨지는 건 불가피해요. 미국이 그 약한 고리를 때리고 있지요. IPEF, 칩4등은 중국의 핵심 공급망을 깨는거지요. 중요한 핵심 틈새 원천 기술의 고리를 끊어버리면 독자생존력이 약한 중국은 고사될 수밖에 없다는 게 미국의 판단이에요. 실제 중국은 핵심 부품 소재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공급망이 무너지면 과학기술 중흥을 이룰 수 없어요.”▶실제 중국 경제에 위기론이 팽배합니다. “중국의 잠재성장률을 6%정도로 보면 최근 투자 위축이나 노동생산성 저하로 1%포인트 정도 떨어졌다고 봐요. 그 수준까지 회복하는데 3~4년 이상 걸릴거에요. 실제성장률과의 디플레 갭이 2∼ 3%포인트 존재하지요. 이 갭을 메울 수 있는 방법이 간단치 않아요. 현실적으로 코로나 봉쇄를 풀고 이후에 생존 자원의 생산에 필요한 모든 물자들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더라도 세계경제침체, 미국의 압박 등으로 국내 소비나 투자가 획기적으로 늘어나기는 어렵지요. 앞으로 중국 경제는 4∼ 5%의 중저성장 체제로 갈 겁니다. 그런데 이런 중저성장으로는 6억 명에 달하는 빈곤층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특히 앞으로 세계경제는 2∼ 3년 동안 극심한 침체에 빠질텐데 그 기간 중국 경제가 버텨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중국식 사회주의…전략적 선택은 ▶중국식 사회주의로의 회귀는 한국에겐 새로운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경제적으로 한국과 중국은 상호 의존적이에요. 어떤 면에서 보면 중국식 사회주의로의 회귀는 한국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수도 있어요. 한국의 양극화는 우리나라 산업구조에 따른 원인이 절반, 나머지 절반은 중국 때문이었지요. 우리의 저부가가치 노동력을 중국이 다 뺏아가면서 중소기업과 중산층이 무너진 거예요. 중국과의 거래는 우리에게 많은 부를 가져다주었지만 중하층 계층에겐 타격을 준 셈입니다. 그런 면에서 중국 중심의 GVC가 깨지는 건 우리로선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외교적 대응도 달라져야겠군요. “중국은 기본적으로 주변국을 얕잡아보는 대국주의(소국은 대국이 만든 질서의 순응해야 한다)· 복속주의(작은 나라는 복속해야 된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중국은 지금 다른 나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한국을 테스트 케이스로 삼고 있는 거에요. 중국이라는 나라는 가시 많이 달린 장미꽃과 같아요. 박근혜 대통령 후반기와 문재인 대통령 전반기는 장미꽃의 향기만 봤어요. 그렇게 접근하다 가시에 찔린 거예요. 절대 서두르지 말라는 게 교훈이지요.” ▶이를 북핵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겠군요. “한국이 중국에게 북한의 비핵화를 막아달라는 건 과잉기대에요. 중국은 오히려 이를 역이용해 우리를 장악하려고 합니다. 중국은 절대로 한국을 위해 북한을 압박하지 않을 거에요. 중국의 국익은 아직도 북한이 방파제 역할을 해 주는거에요. 중국은 두 개의 한국을 공평하게 대우한다고 하지만 속지 말아야 합니다. 70%이상의 무게추는 북한에 가 있어요. 북한은 동맹국이고 한국은 경제적 의존성 때문에 관계를 맺고 있을뿐이에요. 북한 핵 문제를 풀기 위해선 중국을 활용할 수밖에 없으니 우리는 다소 만만하게 보일 수 있지요. 그런데 북한이 현실적으로(de facto) 핵 보유국이 되면 남북한 간에는 핵 균형이 필요합니다. 독자적인 전술핵을 갖든 미군 핵함정을 정박시키든 간접 보유를 할 수밖에 없어요. 핵 균형이 없으면 평화는 없어요. 지금처럼 어정쩡한 스탠스로는 거대 중국이나 북한의 극악스러움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물론 미국은 일본 등 동북아지역의 핵도미노를 우려해 이를 반대할 겁니다. 앞으로 대협상이 기다리고 있는 셈입니다.”▶우리 사회에선 지나치게 중국에 대한 공포심이 있는 것 같아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사태 그에 따른 한한령(限韓令) 이후 일말의 공포심이 생겼어요. 그들의 농간에 준비없이 질질 끌려다니며 굴욕만 당한거에요. 하지만 윤석열정부는 미국과 더 밀착하면서 중국에 대해 겁 먹지 말고 할 말 다 해야 합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최근 ‘우리는 3불 (사드 추가 배치 없음,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제· 한미일 군사동맹 불참)은 없다’고 선언하니 기정사실화됐잖아요. 원칙 있는 외교지요. 국익에 근거해 원칙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중국과의 분쟁은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야해요.”▶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 주도의 공급망, IPEF나 칩4 와 달리 안보동맹 성격의 쿼드에 대해선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철저하게 정경 분리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쿼드 부분 중에 과학 기술이나 전염병 대책 등 비정치적 부문에 대해서는 적극 동참하되 대중국 압박 등 정치적 문제에 대해선 의사 결정을 상당히 유보해야 합니다. 쿼드나 쿼드플러스는 상당 기간 한국이 동맹 체제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문이 열려야 합니다. 미국도 이런 부분을 이해하고 있을 겁니다.”▶중국과 공존의 틀은 어떻게 짜야합니까. “우리나라는 지정학 지경학적 리스크가 큰 나라에요. 이를 헷징할 수 있는 길은 첫째 한미 동맹, 둘째 고도 기술이에요. 우리는 중국에 꼭 필요한 10개 이상의 핵심 원천 틈새기술을 확보해야 해요. 이를 통해 중국의 필수 국가가 돼야 합니다. 중국은 자기들의 생존에 꼭 필요한 나라라고 하면 못 건드립니다. 그동안 한중간엔 갈등은 있었어도 특유의 보완적 생존 관계 , 보완적 산업 관계를 형성했어요. 중국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고. 하지만 이젠 시진핑 체제하에선 그런 기대와 가능성이 완전히 불식됐어요. 정체성의 대립이 생기면서 이질적인 나라가 돼 버렸어요. 중국 사람들이 어느 정도 먹고 살게 되고 민족주의로 넘어가며 우월감을 뽐내면서 약소 국가를 폄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중국이 전 세계에 약속했던 정경분리 원칙이 깨지면서 중국 투자에 대한 리스크도 엄청나게 커졌죠. 우리는 이 과정에서 중국 의존을 최소화하며 보완적 생존 관계, 보완적 산업관계를 유지해야 해요.” ◇복합위기에 빠진 한국경제...돌파구는▶한국경제에 비상등이 켜졌습니다. “매크로한 관점에서 보면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사태는 오지 않을 것 같아요. 무역수지는 6개월째 마이너스이고 경상수지도 적자로 돌아섰지만 아직 위기 국면이라고 판단하기엔 이릅니다. 신용등급도 괜찮고 국채에 대한 수요도 계속 있고…. 지금 외환시장 불안은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적기에 대응하지 못한 미국 연준의 정책실패의 결과에요. 집단 히스테리에 따른 거시경제의 불안정이라고 할까요. 다만 남미를 중심으로 신흥국 전체가 큰 파동을 일으킬 것 같습니다. 우리는 신흥국 시장에 묶여 있기 때문에 다른 신흥국이 무너지면 위기의 전염이 우려되요. 이 때문에 정책대응은 위기에 상응하는 프레임으로 대처해야 겠지요.”그는 위기대응은 모니터링(monitoring), 얼리워닝(early warning), 세이프가드(safeguard) 3단계로 진행된다며 지금은 타이트 모니터링(tight monitoring)단계라고 진단했다. ▶위기의 징후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바로미터는 무역수지 적자와 이에 연결되는 경상수지 적자가 얼마나 장기화될 것이냐에 달려있지요. 경상수지 적자가 본격화하면 단기자본 유출이 현실화되면서 위기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IMF전망에 따르면 세계경제는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한 상태입니다. 최소 2∼3년 수축기에 진입하고 물가압박은 내년 상반기중 어느 정도 해소된다고 해도 공급망 문제로 당분간 지속될거에요. 수출주도형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나라로선 전체 무역규모가 축소되면서 적자기조는 당분간 이어질 겁니다. 이를 얼마나 최소화하며 경상수지를 흑자로 반전시키느냐가 관건이지요.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질때 급격한 자본유출을 막을 금리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됩니다.”▶대내균형보다 대외균형에 더 초점을 맞춰야 된다는거군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경제팀은 대내 균형에 집중했어요. 동아시아에서 큰 폭풍이 몰려오는데도 금리나 환율을 거의 고정시켰지요. 수문을 열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그냥 댐이 무너진 셈입니다. 경상수지를 탄탄히 관리하지 못해 외환위기를 맞았어요. 대외균형과 대내균형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대외균형과 대내균형은 국가지급 능력이 우선이냐 국내 가계나 기업 부문의 지급 능력이 우선이냐의 차이지요. 거의 완전 개방된 비교환성 통화국인 우리나라로선 지금과 같은 대외불안이 고조되는 상황에선 대외균형에 좀 더 비중을 둬야합니다. 설령 국내에서 부채 문제가 불거져 가계파산이나 기업 연쇄부도가 이어져도 대응여력이 없는 게 아니에요. 통화와 재정을 많이 풀었기 때문에 대내 부문의 위험은 상대적으로 줄고 있어요.” ▶한미 금리격차는 어느 선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경상수지 등 대외요인에 문제 없다면) 1%포인트까지는 견딜 수 있어요. 외환위기 당시 생각해보면 그 정도를 넘어서면 자본 계정에서 이탈이 시작되요. 그 기간을 너무 길게 가져가면 안 돼요. 자본 계정에서 자본 이동이 촉발되지 않도록 관리해야되요. 경상에서 적자가 되면 자본에서 메꿔줘야 하는데 여기서 빠져나가면 위기가 오는겁니다. 12일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면서 한미 금리격차는 0.25%포인트로 좁혀졌다. 미국이 11월 연준 이사회에서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을 한번 더 이어가도 연말 또는 내년초까진 1%포인트 정도 유지되니 극단적인 상황에 이를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정 이사장의 진단이다. 그는 “앞으로 1년 정도 잘 버텨야 된다”고 강조했다.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한미 통화스와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은데요. “통화스와프가 외환시장 불안을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어요. 다만 격류가 흐르는 강물에 수중보와 같은 역할은 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국가 디폴트 리스크에 대한 간접 보증 역할을 하는거에요. (지난 5월) 바이드 대통령 방한때 요구했어야 했어요. 바이든으로서도 국내 기업들이 대대적인 대미 투자를 약속했으니 보따리를 풀 수 있었는데 아쉬워요. 정책 외교의 실패지요. 다행히 그 이후 엘런 재무장관 방한때 논의 테이블에 올리는 등 실무적으로는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좀 서둘렀어야해요.”▶통화스와프는 시장의 신뢰와 연결되지요. “1997년 외환위기는 동아시아 위기라는 외풍에다 내부 거시경제 정책의 실패해서 온 거예요. 특히 미국이 세이프가드를 해 줄 것으로 믿고 별다른 방비를 하지 않다가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 데 대한 실망으로 한순간에 무너졌지요. 시장의 신뢰를 잃으면 오지 않을 위기도 오게 마련입니다. 특히 정치적 고려에 의해 정책이 휩쓸리거나 거시정책이 시장흐름에 역행할때 불신을 초래합니다. 그러면 이유없는 투매가 일어날 수 있어요. 정책당국의 행동이 신뢰를 잃지 않도록 시장흐름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경제의 펀더멘탈에는 문제가 없나요. “외환위기 당시 펀더멘탈 문제는 과잉 투자 그래서 빚의 문제였고 금융의 문제로 전이됐어요. 지금은 투자 감소에요. 과잉투자상황에선 위기 극복 후 금방 회복될 수 있지요. 하지만 투자가 적으면 경제의 동력이 떨어지는거에요. 무엇보다 잠재성장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요. 앞으로 가까운 시일 내에 제로성장으로 갈 수 있어요. 일본형 축소 불균형 시대로 간다는거지요. 이를 벗어나려면 엄청난 노동생산성과 자본의 효율이 필요한데 투자분위기가 조성되지 않고 있어요.” ▶외환위기때처럼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지요. “지금은 정치가 블랙홀이에요. 장수가 위기 극복을 위해 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면 불안감이 덜어지는데 지금은 안에서 싸우고 있으니 불안감이 더 증폭되지요. 위기 불감증에 빠진 정치권은 정신 차려야되요. 정치와 정책은 연결됩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국회에서 통과 안 되면 소용없어요. ‘정치-정책 프로세스’가 잘 가동되고 창조적 파괴와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끌어올릴때 성장동력을 회복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 정치판을 보면 누가 투자 하겠어요.”▶정책 난맥상도 심합니다. “아직 새 정부로서 인적 체제나 정책 체제가 확립이 안 된 것 같아요. 정책을 착착 밀고 나갈 수 있을 만큼 인적 구성이 아직 덜 돼 있고 정책 프레임도 상호 간에 체계가 약해요. 무엇보다 야당이 결사항전하고 있으니 이를 방어하는데 급급한 것 같아요. 이럴때일수록 특단의 노력을 해야되요. 대통령은 정쟁에서 빠져나와야 되요. 선거에 관계없이 주요 국가 백년대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치고 나갔으면 합니다. 신뢰를 얻는 길입니다. 지금 총선이 1년도 더 넘게 남았는데 (연금개혁 등) 각종 구조개혁을 시작도 안 한다면 말이 되겠어요. 일단 대통령이 직접 지휘하는 태스크포스를 만들고 국가관이 투철한 최고의 전문가들로 팀을 짜서 개혁 로드맵을 제시하는 게 중요합니다. 기본에 충실하면서 담대하게 뚜벅뚜벅 전진하다 보면 진실의 순간이 올 거에요.” ▶결국 정치 리더십이 관건이군요. “국가 리더십이 흔들릴 때 위기가 더 증폭되요. 대통령 임기 초에 외환위기가 왔으면 신뢰의 위기로까지 확산되진 않았을거에요. 그런데 대통령 선거 한복판에서 그런 위기가 터지니 수습 능력이 없었던 거에요. 위험을 궁극적으로 타개할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는데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지니 경제 전체가 무너진 겁니다. 지금 위기론이 팽배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리더십이 흔들리면 정말 위험할 수 있습니다. 위기가 터져나오는 건 화산이 폭발하는 것과 같아 지표면의 가장 약한 곳을 뚫고 나오는 거에요. 경제체질이 약한 곳이 문제인데 적기에 시행 조치를 하면 위기를 막을 수 있지요. 하지만 대통령의 리더십이 약화되면 적기 시행조치를 취하기 어려워요. 그러니 대통령이 빨리 리더십을 회복하고 야당도 더 이상 무책임하게 발목잡는 일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정치가 잘 리드해야 합니다. 국가 리더십이 확실히 작동해야 합니다.”정 이사장은…△1948년 충남 당진 출생 △배재고, 고려대 상학과 △위스콘신대 경영학 석사 △행정고시 10회 △IMF 외채협상 수석대표 △재정경제부 차관 △산업자원부 장관 △서울대, 중국 베이징대, 런민대 초빙교수 △17대 국회의원 △중국사회과학원(CASS)정책고문 △니어(NEAR)재단 이사장
    송길호 기자 2022.10.13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은 “1997년 외환위기때처럼 지금도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으며 위기가 증폭되고 있다”며 “위기의 블랙홀인 정치가 제대로 작동해야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이데일리 송길호 논설위원 겸 에디터]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세번째 대관식이 오는 16∼22일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열린다. 덩샤오핑(鄧小平)이후 연성화된 집단지도체제를 이어오던 중국이 자국 특색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마오쩌둥(毛澤東)식 1인 영도체제로 회귀하고 있는 모습이다. 국내 경제엔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 미국의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환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며 외환시장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인플레이션의 확산 속에 실물경제의 둔화, 금융시장 불안과 자산가격 폭락, 최후의 보루격인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서며 외환위기의 재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대내외 정세가 요동치며 안보와 경제 모두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계제로. 흔들리는 거대한 체스판 위에서 고난도의 게임을 진행하고 있는 대한민국은 어떤 전략적 선택을 모색해야할까.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외채협상 수석대표로 위기 극복의 선봉에 섰고 산업자원부 장관과 17대 국회의원을 거쳐 16년째 중국 전문 싱크탱크 니어재단을 이끌고 있는 정덕구 이사장으로부터 해법을 들었다. 최근 서울 강남의 집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시진핑 체제이후 강화된 중국의 대국주의는 (사드사태에서 보듯) 한국을 테스트케이스로 삼고 있다”며 “국익에 근거한 원칙있는 외교로 돌파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진핑 체제의 중국과 공존의 틀을 유지하기 위해선 “정경분리를 바탕으로 한미 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되 중국에게 꼭 필요한 10개 이상의 고도 핵심 기술을 개발, 범접할 수 없는 기술력으로 그들의 필수국가가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 이사장은 경제위기론에 대해선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질때 급격한 자본이동을 막을 금리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내균형에 집중하다 위기대응에 실패한 외환위기때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며 “대외균형에 초점을 맞춰 경상수지 방어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 이사장은 특히 “국가 리더십이 흔들릴때 위기는 더욱 증폭된다”며 “위기의 블랙홀인 정치가 제대로 작동해야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외환위기때처럼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은 리더십을 회복하고 여야 정치권은 정쟁에서 벗어나 위기극복에 한몸으로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 1인 영도체제로 전환하는 中, 어디로 갈까▶이번 당대회를 통해 시진핑 3연임이 확정됩니다. 의미와 관전 포인트는. “덩샤오핑은 정경분리(정치는 사회주의, 경제는 자본주의)를 통해 실용주의 노선을 채택했어요. 장쩌민(江澤民)과 후진타오(胡錦濤)는 이런 연성화된 집단지도체제를 통해 집권 10년이 되면 물러났지요. 시진핑체제 들어 정경분리가 흔들리면서 이 같은 권력분점의 원칙이 무너졌어요. 여기에 미국과의 충돌로 공산당 체제에 대한 불안감이 조성되면서 독자적인 생존권을 확보하는게 절실해졌지요. 시진핑 1인 영도체제는 최소 10년은 더 갈거에요. 시진핑은 그동안 정적들을 제거해나가면서 끊임없이 세대교체라는 무기를 썼지요. 이번 당대회에서 어떤 사람들이 중용되는지 보면 향후 그림을 그려볼 수 있겠지요.” ▶1인 영도체제로 전환하는 중국은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요. “시진핑은 자신이 추구하는 중국의 미래를 완성하려고 할거에요. 한마디로 중국 특색 사회주의, 중화 민족주의, 과학기술 중국몽, 디지털 공산주의 등… 이런 목표들이 중국몽(中國夢)이라는 형태로 설정돼 있는데 지난 5년동안 이를 실현하기 위해 당규도 바꾸고 각종 통치기반을 조성하면서 정지 작업들을 많이 했어요. 가장 큰 정책상의 변화는 (성장을 우선시하는) 덩샤오핑의 선부론(先富論)에서 (분배를 중심으로 한) 공동 부유(共同富裕)로 전환하는 거지요.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거에요. 6억명에 달하는 절대 빈곤층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선도적인 국가가 될 수 없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격화되는 미중충돌과 다가오는 경기침체 등을 감안하면 험로가 예상됩니다. 자칫 집권 동력을 상실할 수도 있어요.”▶마오쩌둥식 회귀군요. 성장보다는 분배에 치중하게 되면 경제의 활력은 떨어질텐데요. “반쯤 회귀하는 거지요. 가난했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고 부강한 중화민족주의를 실현한다는거에요. 그러나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매우 폐쇄적이거나 축소지향적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변화는 (‘중국제조2025’에서 볼 수 있듯) 탈허향실(脫虛向實·허세를 탈피해서 실질을 숭상한다)이에요. 제조업중심의 실물경제를 강화하는 전략이지요. 경제가 발전할 수록 서비스부문의 비중이 커지는데 중국은 산업의 확장보다는 제조업 중심의 축소형으로 가고 있어요. 미국은 제조업이 약하기 때문에 제조업으로 미국을 누르면 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어요. 그래서 과학기술의 선진화를 통해 제조업을 중심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하면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새로운 생존 방정식을 도출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지요.”▶미국의 압박으로 중국식 글로벌밸류체인(GVC)이 깨지고 있는데 이런 목표가 가능할까요. “지금까지는 세계화를 전제로 중국식 GVC가 형성돼 있었어요. 그런데 탈 세계화로 중국 중심의 GVC가 깨지는 건 불가피해요. 미국이 그 약한 고리를 때리고 있지요. IPEF, 칩4등은 중국의 핵심 공급망을 깨는거지요. 중요한 핵심 틈새 원천 기술의 고리를 끊어버리면 독자생존력이 약한 중국은 고사될 수밖에 없다는 게 미국의 판단이에요. 실제 중국은 핵심 부품 소재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 공급망이 무너지면 과학기술 중흥을 이룰 수 없어요.”▶실제 중국 경제에 위기론이 팽배합니다. “중국의 잠재성장률을 6%정도로 보면 최근 투자 위축이나 노동생산성 저하로 1%포인트 정도 떨어졌다고 봐요. 그 수준까지 회복하는데 3~4년 이상 걸릴거에요. 실제성장률과의 디플레 갭이 2∼ 3%포인트 존재하지요. 이 갭을 메울 수 있는 방법이 간단치 않아요. 현실적으로 코로나 봉쇄를 풀고 이후에 생존 자원의 생산에 필요한 모든 물자들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더라도 세계경제침체, 미국의 압박 등으로 국내 소비나 투자가 획기적으로 늘어나기는 어렵지요. 앞으로 중국 경제는 4∼ 5%의 중저성장 체제로 갈 겁니다. 그런데 이런 중저성장으로는 6억 명에 달하는 빈곤층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요. 특히 앞으로 세계경제는 2∼ 3년 동안 극심한 침체에 빠질텐데 그 기간 중국 경제가 버텨낼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중국식 사회주의…전략적 선택은 ▶중국식 사회주의로의 회귀는 한국에겐 새로운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경제적으로 한국과 중국은 상호 의존적이에요. 어떤 면에서 보면 중국식 사회주의로의 회귀는 한국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줄 수도 있어요. 한국의 양극화는 우리나라 산업구조에 따른 원인이 절반, 나머지 절반은 중국 때문이었지요. 우리의 저부가가치 노동력을 중국이 다 뺏아가면서 중소기업과 중산층이 무너진 거예요. 중국과의 거래는 우리에게 많은 부를 가져다주었지만 중하층 계층에겐 타격을 준 셈입니다. 그런 면에서 중국 중심의 GVC가 깨지는 건 우리로선 기회가 될 수도 있어요.” ▶외교적 대응도 달라져야겠군요. “중국은 기본적으로 주변국을 얕잡아보는 대국주의(소국은 대국이 만든 질서의 순응해야 한다)· 복속주의(작은 나라는 복속해야 된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중국은 지금 다른 나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한국을 테스트 케이스로 삼고 있는 거에요. 중국이라는 나라는 가시 많이 달린 장미꽃과 같아요. 박근혜 대통령 후반기와 문재인 대통령 전반기는 장미꽃의 향기만 봤어요. 그렇게 접근하다 가시에 찔린 거예요. 절대 서두르지 말라는 게 교훈이지요.” ▶이를 북핵문제에도 적용할 수 있겠군요. “한국이 중국에게 북한의 비핵화를 막아달라는 건 과잉기대에요. 중국은 오히려 이를 역이용해 우리를 장악하려고 합니다. 중국은 절대로 한국을 위해 북한을 압박하지 않을 거에요. 중국의 국익은 아직도 북한이 방파제 역할을 해 주는거에요. 중국은 두 개의 한국을 공평하게 대우한다고 하지만 속지 말아야 합니다. 70%이상의 무게추는 북한에 가 있어요. 북한은 동맹국이고 한국은 경제적 의존성 때문에 관계를 맺고 있을뿐이에요. 북한 핵 문제를 풀기 위해선 중국을 활용할 수밖에 없으니 우리는 다소 만만하게 보일 수 있지요. 그런데 북한이 현실적으로(de facto) 핵 보유국이 되면 남북한 간에는 핵 균형이 필요합니다. 독자적인 전술핵을 갖든 미군 핵함정을 정박시키든 간접 보유를 할 수밖에 없어요. 핵 균형이 없으면 평화는 없어요. 지금처럼 어정쩡한 스탠스로는 거대 중국이나 북한의 극악스러움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물론 미국은 일본 등 동북아지역의 핵도미노를 우려해 이를 반대할 겁니다. 앞으로 대협상이 기다리고 있는 셈입니다.”▶우리 사회에선 지나치게 중국에 대한 공포심이 있는 것 같아요.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사태 그에 따른 한한령(限韓令) 이후 일말의 공포심이 생겼어요. 그들의 농간에 준비없이 질질 끌려다니며 굴욕만 당한거에요. 하지만 윤석열정부는 미국과 더 밀착하면서 중국에 대해 겁 먹지 말고 할 말 다 해야 합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최근 ‘우리는 3불 (사드 추가 배치 없음, 미국의 미사일 방어 체제· 한미일 군사동맹 불참)은 없다’고 선언하니 기정사실화됐잖아요. 원칙 있는 외교지요. 국익에 근거해 원칙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중국과의 분쟁은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야해요.”▶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 주도의 공급망, IPEF나 칩4 와 달리 안보동맹 성격의 쿼드에 대해선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철저하게 정경 분리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쿼드 부분 중에 과학 기술이나 전염병 대책 등 비정치적 부문에 대해서는 적극 동참하되 대중국 압박 등 정치적 문제에 대해선 의사 결정을 상당히 유보해야 합니다. 쿼드나 쿼드플러스는 상당 기간 한국이 동맹 체제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과정에서 서서히 문이 열려야 합니다. 미국도 이런 부분을 이해하고 있을 겁니다.”▶중국과 공존의 틀은 어떻게 짜야합니까. “우리나라는 지정학 지경학적 리스크가 큰 나라에요. 이를 헷징할 수 있는 길은 첫째 한미 동맹, 둘째 고도 기술이에요. 우리는 중국에 꼭 필요한 10개 이상의 핵심 원천 틈새기술을 확보해야 해요. 이를 통해 중국의 필수 국가가 돼야 합니다. 중국은 자기들의 생존에 꼭 필요한 나라라고 하면 못 건드립니다. 그동안 한중간엔 갈등은 있었어도 특유의 보완적 생존 관계 , 보완적 산업 관계를 형성했어요. 중국의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고. 하지만 이젠 시진핑 체제하에선 그런 기대와 가능성이 완전히 불식됐어요. 정체성의 대립이 생기면서 이질적인 나라가 돼 버렸어요. 중국 사람들이 어느 정도 먹고 살게 되고 민족주의로 넘어가며 우월감을 뽐내면서 약소 국가를 폄하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에요. 중국이 전 세계에 약속했던 정경분리 원칙이 깨지면서 중국 투자에 대한 리스크도 엄청나게 커졌죠. 우리는 이 과정에서 중국 의존을 최소화하며 보완적 생존 관계, 보완적 산업관계를 유지해야 해요.” ◇복합위기에 빠진 한국경제...돌파구는▶한국경제에 비상등이 켜졌습니다. “매크로한 관점에서 보면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사태는 오지 않을 것 같아요. 무역수지는 6개월째 마이너스이고 경상수지도 적자로 돌아섰지만 아직 위기 국면이라고 판단하기엔 이릅니다. 신용등급도 괜찮고 국채에 대한 수요도 계속 있고…. 지금 외환시장 불안은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적기에 대응하지 못한 미국 연준의 정책실패의 결과에요. 집단 히스테리에 따른 거시경제의 불안정이라고 할까요. 다만 남미를 중심으로 신흥국 전체가 큰 파동을 일으킬 것 같습니다. 우리는 신흥국 시장에 묶여 있기 때문에 다른 신흥국이 무너지면 위기의 전염이 우려되요. 이 때문에 정책대응은 위기에 상응하는 프레임으로 대처해야 겠지요.”그는 위기대응은 모니터링(monitoring), 얼리워닝(early warning), 세이프가드(safeguard) 3단계로 진행된다며 지금은 타이트 모니터링(tight monitoring)단계라고 진단했다. ▶위기의 징후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바로미터는 무역수지 적자와 이에 연결되는 경상수지 적자가 얼마나 장기화될 것이냐에 달려있지요. 경상수지 적자가 본격화하면 단기자본 유출이 현실화되면서 위기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IMF전망에 따르면 세계경제는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한 상태입니다. 최소 2∼3년 수축기에 진입하고 물가압박은 내년 상반기중 어느 정도 해소된다고 해도 공급망 문제로 당분간 지속될거에요. 수출주도형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나라로선 전체 무역규모가 축소되면서 적자기조는 당분간 이어질 겁니다. 이를 얼마나 최소화하며 경상수지를 흑자로 반전시키느냐가 관건이지요. 경상수지 적자가 이어질때 급격한 자본유출을 막을 금리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시장의 신뢰를 잃게 됩니다.”▶대내균형보다 대외균형에 더 초점을 맞춰야 된다는거군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경제팀은 대내 균형에 집중했어요. 동아시아에서 큰 폭풍이 몰려오는데도 금리나 환율을 거의 고정시켰지요. 수문을 열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그냥 댐이 무너진 셈입니다. 경상수지를 탄탄히 관리하지 못해 외환위기를 맞았어요. 대외균형과 대내균형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대외균형과 대내균형은 국가지급 능력이 우선이냐 국내 가계나 기업 부문의 지급 능력이 우선이냐의 차이지요. 거의 완전 개방된 비교환성 통화국인 우리나라로선 지금과 같은 대외불안이 고조되는 상황에선 대외균형에 좀 더 비중을 둬야합니다. 설령 국내에서 부채 문제가 불거져 가계파산이나 기업 연쇄부도가 이어져도 대응여력이 없는 게 아니에요. 통화와 재정을 많이 풀었기 때문에 대내 부문의 위험은 상대적으로 줄고 있어요.” ▶한미 금리격차는 어느 선까지 버틸 수 있을까요. “(경상수지 등 대외요인에 문제 없다면) 1%포인트까지는 견딜 수 있어요. 외환위기 당시 생각해보면 그 정도를 넘어서면 자본 계정에서 이탈이 시작되요. 그 기간을 너무 길게 가져가면 안 돼요. 자본 계정에서 자본 이동이 촉발되지 않도록 관리해야되요. 경상에서 적자가 되면 자본에서 메꿔줘야 하는데 여기서 빠져나가면 위기가 오는겁니다. 12일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면서 한미 금리격차는 0.25%포인트로 좁혀졌다. 미국이 11월 연준 이사회에서 자이언트스텝(0.75%포인트)을 한번 더 이어가도 연말 또는 내년초까진 1%포인트 정도 유지되니 극단적인 상황에 이를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정 이사장의 진단이다. 그는 “앞으로 1년 정도 잘 버텨야 된다”고 강조했다.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한미 통화스와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은데요. “통화스와프가 외환시장 불안을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어요. 다만 격류가 흐르는 강물에 수중보와 같은 역할은 할 수 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국가 디폴트 리스크에 대한 간접 보증 역할을 하는거에요. (지난 5월) 바이드 대통령 방한때 요구했어야 했어요. 바이든으로서도 국내 기업들이 대대적인 대미 투자를 약속했으니 보따리를 풀 수 있었는데 아쉬워요. 정책 외교의 실패지요. 다행히 그 이후 엘런 재무장관 방한때 논의 테이블에 올리는 등 실무적으로는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좀 서둘렀어야해요.”▶통화스와프는 시장의 신뢰와 연결되지요. “1997년 외환위기는 동아시아 위기라는 외풍에다 내부 거시경제 정책의 실패해서 온 거예요. 특히 미국이 세이프가드를 해 줄 것으로 믿고 별다른 방비를 하지 않다가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 데 대한 실망으로 한순간에 무너졌지요. 시장의 신뢰를 잃으면 오지 않을 위기도 오게 마련입니다. 특히 정치적 고려에 의해 정책이 휩쓸리거나 거시정책이 시장흐름에 역행할때 불신을 초래합니다. 그러면 이유없는 투매가 일어날 수 있어요. 정책당국의 행동이 신뢰를 잃지 않도록 시장흐름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경제의 펀더멘탈에는 문제가 없나요. “외환위기 당시 펀더멘탈 문제는 과잉 투자 그래서 빚의 문제였고 금융의 문제로 전이됐어요. 지금은 투자 감소에요. 과잉투자상황에선 위기 극복 후 금방 회복될 수 있지요. 하지만 투자가 적으면 경제의 동력이 떨어지는거에요. 무엇보다 잠재성장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요. 앞으로 가까운 시일 내에 제로성장으로 갈 수 있어요. 일본형 축소 불균형 시대로 간다는거지요. 이를 벗어나려면 엄청난 노동생산성과 자본의 효율이 필요한데 투자분위기가 조성되지 않고 있어요.” ▶외환위기때처럼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지요. “지금은 정치가 블랙홀이에요. 장수가 위기 극복을 위해 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면 불안감이 덜어지는데 지금은 안에서 싸우고 있으니 불안감이 더 증폭되지요. 위기 불감증에 빠진 정치권은 정신 차려야되요. 정치와 정책은 연결됩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국회에서 통과 안 되면 소용없어요. ‘정치-정책 프로세스’가 잘 가동되고 창조적 파괴와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끌어올릴때 성장동력을 회복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 정치판을 보면 누가 투자 하겠어요.”▶정책 난맥상도 심합니다. “아직 새 정부로서 인적 체제나 정책 체제가 확립이 안 된 것 같아요. 정책을 착착 밀고 나갈 수 있을 만큼 인적 구성이 아직 덜 돼 있고 정책 프레임도 상호 간에 체계가 약해요. 무엇보다 야당이 결사항전하고 있으니 이를 방어하는데 급급한 것 같아요. 이럴때일수록 특단의 노력을 해야되요. 대통령은 정쟁에서 빠져나와야 되요. 선거에 관계없이 주요 국가 백년대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치고 나갔으면 합니다. 신뢰를 얻는 길입니다. 지금 총선이 1년도 더 넘게 남았는데 (연금개혁 등) 각종 구조개혁을 시작도 안 한다면 말이 되겠어요. 일단 대통령이 직접 지휘하는 태스크포스를 만들고 국가관이 투철한 최고의 전문가들로 팀을 짜서 개혁 로드맵을 제시하는 게 중요합니다. 기본에 충실하면서 담대하게 뚜벅뚜벅 전진하다 보면 진실의 순간이 올 거에요.” ▶결국 정치 리더십이 관건이군요. “국가 리더십이 흔들릴 때 위기가 더 증폭되요. 대통령 임기 초에 외환위기가 왔으면 신뢰의 위기로까지 확산되진 않았을거에요. 그런데 대통령 선거 한복판에서 그런 위기가 터지니 수습 능력이 없었던 거에요. 위험을 궁극적으로 타개할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는데 대통령이 레임덕에 빠지니 경제 전체가 무너진 겁니다. 지금 위기론이 팽배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리더십이 흔들리면 정말 위험할 수 있습니다. 위기가 터져나오는 건 화산이 폭발하는 것과 같아 지표면의 가장 약한 곳을 뚫고 나오는 거에요. 경제체질이 약한 곳이 문제인데 적기에 시행 조치를 하면 위기를 막을 수 있지요. 하지만 대통령의 리더십이 약화되면 적기 시행조치를 취하기 어려워요. 그러니 대통령이 빨리 리더십을 회복하고 야당도 더 이상 무책임하게 발목잡는 일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정치가 잘 리드해야 합니다. 국가 리더십이 확실히 작동해야 합니다.”정 이사장은…△1948년 충남 당진 출생 △배재고, 고려대 상학과 △위스콘신대 경영학 석사 △행정고시 10회 △IMF 외채협상 수석대표 △재정경제부 차관 △산업자원부 장관 △서울대, 중국 베이징대, 런민대 초빙교수 △17대 국회의원 △중국사회과학원(CASS)정책고문 △니어(NEAR)재단 이사장
  • 진대제 "반도체 10년 후면 기술적 한계, 패키징시장서 활로 찾아야" [송길호의 파워인터뷰]
    진대제 스카이레이크 회장은 반도체 산업의 미래전략과 관련, “앞으로 10년이면 기술적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며 “시스템반도체분야에서 대기업들이 패키징 등 후(後)공정분야에 적극 진출, 미래의 먹거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송길호 이데일리 논설위원 겸 에디터]미중 패권 경쟁 속에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칩4(Chip4·한국 미국 일본 대만)의 출범이 임박하면서 글로벌 반도체시장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중국을 배제한 생산체제의 블록화로 반도체 시장의 생태계는 전략적 변곡점에 다가서고 있다. ‘산업의 쌀’ 반도체는 이미 경제적 부가가치의 영역을 넘어 외교 안보 차원의 핵심 전략물자로 의미가 확대된 상태. 지금 전 세계는 반도체 전쟁 중이다. 반도체 산업의 전환기, 한국 반도체는 어떻게 대응하고 미래를 설계해야 할까. 메모리분야에서 30년간 누려온 아성을 계속 지키며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까. 반도체 첨단공정의 기술력이 거의 한계에 이른 상황에서 향후 이를 돌파할 전략은 무엇일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이 주도하는 국내 반도체 생태계를 더욱 공고히 할 수는 없을까. 정부의 반도체 지원정책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삼성전자시절 세계 최초로 16메가·64메가·256메가 디램(DRAM)을 차례로 개발한 주역으로 오늘날 삼성 반도체 신화의 밑거름을 이룬 ‘미스터 반도체’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장관으로부터 그 해법을 들었다. 사모투자펀드(PEF)운용사 스카이레이크를 이끌고 있는 그는 최근 서울 강남의 집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지금 반도체 시장은 사이클에 따른 일시적 위기가 아닌 지정학적 갈등, 그에 따른 공급망 재편으로 인한 구조적 위기”라며 “칩4 출범에 따른 파장은 내년초 본격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진 회장은 “반도체 산업의 펀더멘탈 리밋(기술력의 근본적 한계)은 앞으로 10년”이라며 “메모리분야에서 초격차 전략을 유지하되 대기업들은 패키징 등 후(後)공정분야에 적극 진출, 미래의 먹거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인력양성과 관련해선 “단순히 대학 반도체 학과 정원을 늘리는 식의 단편적 접근에서 벗어나 기초과학 분야를 튼튼히 다지고 이공계 기술인력 전체를 늘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특히 고급인력은 정부가 첨단 국가프로젝트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직접 판을 짜주면 전문기술 습득을 통해 자연스럽게 육성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반도체 공급망 재편…구조적 위기 ▶반도체 산업 위기론이 팽배합니다. 예년에 비해 불황과 호황 사이클이 짧아졌다는 분석도 있구요. “반도체시장은 20∼ 30년 전만해도 호황과 불황 사이클이 4년주기로 있었어요. 올림픽 열리는 해는 호황, 월드컵때는 불황 이런 식이었죠. 호황때 공장을 여러 회사에서 동시에 짓게 되면 공급과잉으로 값이 크게 떨어져요. 생산능력에 비해 5%과잉이면 20%정도 하락하죠. 반대로 공급이 5%부족일때 값은 20%올라갑니다. 공장 짓는 사이클에 따라 공급 과잉과 부족이 반복된거지요. 이를 ‘실리콘 사이클’이라고 불렀어요.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이런 흐름이 없어졌어요. 메모리는 삼성, 파운드리는 TSMC 등 분야별로 독과점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하니 다른 기업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할리 없지요. 그래서 이후 반도체 사이클은 뚜렷하지 않게 됐어요.”▶반도체 경기는 매크로 경제상황과 연관이 있다는 얘기군요. “분명히 구별해야 해요. 경제 상황에 영향을 받아 반도체시장이 침체에 빠진 것인지 지정학적 문제 등 구조적 문제 때문인지. 매크로 상황에 영향을 받아 불황이 오는 건 크게 걱정할 게 없어요. 수급조절하고 경쟁력 올리면서 대응하면 되요. 그러다가 경기 사이클이 좋아지면 해소되지요. 진짜 위기는 내가 잘 만든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을때 오는거에요. 전략적 위기지요. 미중 갈등 속에 2015년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이후 반도체 패권과 맞물려 우리나라는 지금 그 사이에 끼어 있어요. 진짜 위기, 전략적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겁니다.”▶실제 칩4는 점점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공급망재편이 본격화되고 있지요. “미국이 블록을 형성해 중국 배제전략을 펼치겠다는 건데 반도체는 분명 미국이 우위에 있으니 이 전략은 상당히 먹힐 겁니다. 파장은 내년초부터 눈에 띄게 나타날 거에요. 지금은 중국이 반도체 재료 등을 일정부문 확보하고 있어 문제 없겠지만 내달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이 연임된 이후엔 IT업계, 전자회사 등에서 실상이 드러날거에요. 지금 반도체 공급망 문제로 자동차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처럼 중국내 반도체 부족으로 생산이 어려워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전자제품 품귀현상이 나타날 수 있지요. 세계 전자제품의 3분의 2가량을 중국에서 만들잖아요.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서방에서 러시아에 제재를 가했더니 러시아 천연가스가 끊기면서 유럽에 비상이 걸린 것과 마찬가지지요.”▶우리로선 전략적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는군요. 단순히 미국 편에 선다고 끝날 게 아니라 중국에 대한 대처가 고민입니다. 홍콩 포함 중국에 대한 반도체수출이 60%이상되고 공급망도 촘촘히 엮여 있는데 중국시장을 외면할 수는 없잖아요. “제조측면에선 당연히 칩4에 들어가야해요. 장비나 원자재에 대한 미국 의존도가 높잖아요. 문제는 파는 건데…눈치를 잘 봐서 팔아야죠. 중국시장이 고립된다고 해서 예전 코콤 규제 때처럼 메모리반도체 등에 대한 수출을 전면적으로 제한하진 못할 겁니다. 당시에도 기업들은 홍콩 등 우회로를 찾아 팔건 다 팔았어요.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되는 러시아 미사일을 보니 서양의 반도체가 모두 들어있었다는 것 아니에요. 이런 문제는 굳이 공식화할 필요 없어요. 미국이 수출을 제한해도 기업으로선 비용이 더 들더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있으니. 정부의 통제 밖이 될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중국에 메모리 공장도 있어서 그쪽 생산분은 중국 시장에 판매할 수 있잖아요?” 코콤(COCOM·대공산권전략물자 수출통제위원회)은 냉전시절 서방권이 공산권에 대한 첨단기술 수출을 제한하는 기구였다. 소련 붕괴후에도 90년대말까지 마이크로프로세서 등 첨단제품은 중국에 팔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은 반도체 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을 통해 자국에서 보조금 받는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에 설비투자를 할 수 없도록 가드레일 조항을 두고 있잖아요. 설비를 업그레이드해야 할텐데 계속 투자할 수도 없고.“둘중에 하나 택하면 되요. 반도체의 경우 미국 보조금을 받으면 좋겠지만 꼭 받아야 되는 것도 아니고. 중국에 설비투자를 해야 할 필요성과 보조금을 받는 것의 유불리를 따져 봐야지요. 하지만 미국 입장에선 투자유치를 위해 어떻게든 보조금을 주려고 할거에요. 시간이 지나면 절묘한 타협점을 찾게 될 거에요. 그동안 인내가 필요하고 전략적 모호성도 필요합니다” ▶그러면 미국 입장에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계속 압박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되는 겁니까 “정치적인 요인이 크죠. 미중 갈등이 패권 전쟁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잖아요. 지금 바이든 대통령이 내세우는 건 중국과 분명히 선을 긋고 다른 동맹국들에게 같이 협력하자고 하는건데 칩4는 중국고립을 위한 일종의 상징적인 조치에요. 11월 중간선거를 의식하고 있겠고.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체면이 있어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지만 내달 시진핑의 3연임이 확정되면 달라질거에요. 바이든도 시진핑도 약간씩 유화정책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아요.”▶이 같은 구조적 위협 속에서 어떻게 기회를 모색할 수 있을까요. “블록간 마찰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여러 갈등상황에서 줄타기를 잘 해야되죠. 삼성은 1등기업이기 때문에 그 파고를 가장 크게 맞을수도 있어요. 1986년 미일반도체협정으로 (반도체 공급망 재편 이후) 일본 NEC가 세계 1등에서 그대로 주저앉았잖아요. 삼성으로선 기술적 초격차를 유지해야만 안전합니다. 중국이 코너에 몰려 몇년간 주춤할때 오히려 시스템 반도체 사업을 포함한 반도체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돌파해야 합니다.”◇後공정 분야를 미래의 먹거리로 ▶실제 삼성전자는 파운드리(위탁생산)분야에서 1등으로 도약하겠다고 공언했어요. 대만 TSMC에 비해 시장점유율은 3분의 1 정도에 불과한데. 여기에 인텔까지 가세하고 있으니 파운드리 시장에서도 본격적인 치킨게임이 벌어질 것 같군요. “인텔이 파운드리를 하면 TSMC만큼 잘할 겁니다. 빠르게 따라잡을 거에요. 기반이 워낙 탄탄한데다 미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겠지요. TSMC가 1등이니 시장을 가장 많이 빼앗길거고 삼성은 특유의 제조능력으로 지금 할 수 있는 몫은 할겁니다. (인텔의) 팻 겔싱어 CEO가 매출 1000억 달러 정도 하겠다고 하던데 이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점유율을 3분의 1까지 끌어올리겠다는거에요. 첨단 공정과 서비스로 시장을 공략하겠다는건데 인텔이면 해낼 수 있습니다. 필요 인재와 자금력도 확보할 수 있으니 자신감도 있어요. 반면 삼성이 TSMC를 물리치고 1등으로 도약하기엔 역부족이지 않을까요? 휴대폰, 컴퓨터, 가전산업 등 유사 분야의 고객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메모리와 파운드리, 시스템반도체 모두 합쳐 반도체 종합 1위 기업은 될 수 있겠지요.” 인텔은 지난해 2월 전설의 CEO 앤디 그로브(1979∼2005년) 시절 CTO를 역임했던 팻 겔싱어를 다시 영입해 재도약에 나섰다. 진 회장은 지난 5월 팻 겔싱어의 방한때 그의 요청으로 만났다. 1990년대 삼성 메모리사업부장과 인텔 CTO였던 두 사람은 이후에도 계속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반도체산업은 정말 격변기에 돌입하는군요. “(겔싱어에게) 지금 3㎚(나노미터)기술을 상용화한다고 하는데 반도체 기술이 언제까지 연장될 수 있겠느냐고 물어봤어요. 10년은 더 할 수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반도체는 펀더멘탈 리밋에 접근한지 꽤 오래됐습니다. 반도체는 극도로 미세한 ㎚ 크기 선폭의 해상도로 생산을 합니다. 실리콘 원자 간격이 0.35nm인데 3nm선폭은 실리콘 원자를 10개 모아둔 공간이지요. 전자는 이 실리콘의 다이아몬드 격자구조의 벽과 충돌하면서 일정 속도로 움직여야 하는데 이 선폭이 너무 작으면 움직임을 제어할 수 없어 연산 기능이 안 돼요. 또한 이 크기의 정밀도를 요하는 노광, 에칭, 증착 등 제조공정을 위한 장비와 소재들의 값이 천문학적으로 뛰어올라 투자 부담이 지나치게 커지지요. 그러면 더 이상 혁신이 어려워지고 가격경쟁만 치열하게 일어날테니 반도체 산업 전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어요. 이런 현상이 앞으로 10년 후에 나타날 수 있다고 겔싱어가 얘기했고 상당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산업으로선 재앙이자 도전입니다.” ▶어떻게 돌파구를 찾아야합니까.“그래서 패키징과 같은 후(後)공정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어요. 전(前)공정만큼 혁신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전력소모를 줄이고 반도체 칩의 속도와 성능을 올리기 위한 첨단기술은 전공정 만큼 후공정에도 필요합니다. 전공정 제조기술을 패키징에 적용하는 날이 다가옵니다. 반도체 칩을 3차원으로 여러개 쌓아 올리고 칩 사이에 전기공급을 연결하고 칩 간 네트워킹이 원활해지면 칩 패키지 하나로 컴퓨터나 자율주행 자동차를 움직이는 세상이 오게 될거에요. 시스템반도체는 설계와 파운드리 뿐 아니라 패키징 기술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파운드리+패키징’ 복합전략을 구사해야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어요. 현재 패키징 시장 규모는 1000억 달러 정도로 팹리스나 파운드리와 거의 비슷해요. 대만과 중국이 80%가까이 시장을 차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톱10에 들어가는 패키징 전문회사 하나 없습니다. 후공정에 과감히 투자해야 10년 후 후회하지 않을거에요. 하지만 지금 (국회에 상정된) 반도체특별법에도 패키징 육성 방안은 없습니다.”반도체 산업의 가치사슬(value chain)은 제조공정에 따라 설계(Fabless+Chipless) → 제조(Foundry) → 조립(Packaging) →검사(Testing) 단계로 이뤄진다. 설계와 제조단계를 전공정, 조립과 검사 단계를 후공정이라고 한다. 설계는 미국, 제조는 대만이 선두. 대만은 미어텍 등 팹리스가 맡긴 설계에 따라 TSMC 등 파운드리 회사가 전공정을 맡고, 협력사인 ASE 등이 후공정을 담당하는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 생태계의 문제점이군요. 반도체 산업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후공정 분야에 관심이 없다는 점은 환기해야 할 부분이군요.“삼성이 파운드리 분야에 투자를 더한다고 하니 후공정쪽에 투자하는 대기업들이 따로 나와야 해요. 일반 중소기업들은 어려워요. 10년은 내다보고 최소 1조원은 투자해야 하니. 아예 이 분야의 1조원 짜리 회사를 M&A해도 되요. 돈을 많이 주고라도 미래를 봐야죠. 윤석열정부 인수위원회에도 이 분야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전달했어요. 앞으로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중요한 분야입니다.”▶시스템 반도체 내에서도 인공지능 반도체가 유망하다고 하는데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을까요. “설계능력에 한계가 있어요. 지금 우리나라 비메모리분야 설계 인력 다 합쳐도 엔비디아나 퀄컴보다 적어요. 삼성전자 비메모리 설계 인력이 만 명이 채 안된다고 하는데 엔비디아 한 회사만 6만명이에요.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인력 다 합쳐도 마이크로소프트에 대적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올해 전세계 반도체시장 규모는 6332억 달러. 이중 메모리분야(1665억 달러)가 26%, 시스템반도체 분야는 4333억달러(68.4%) 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WSTS). 미국은 시스템 반도체를 기반으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51%, 메모리분야를 장악하고 있는 한국은 25%, 파운드리 분야 선두 대만은 15%를 차지하고 있다.(IC Insights)기업별로는 2021년 기준 삼성전자가 매출 831억 달러로 인텔(756억 달러), TSMC(566억달러)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정부, 첨단 프로젝트 만들어 고급인력 양성▶반도체 산업은 인력의 산학 연계가 미흡하고 미스매치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인력양성을 위해 반도체 학과 정원을 늘린다고 하는데. “반도체 과를 만들면 반도체 인력이 만들어집니까? 반도체 기술은 상당히 복합적이에요. 수학, 물리, 금속, 전자·전기, 화학, 재료 등 모든 영역에 걸쳐 있는 분야입니다. 반도체라는 분야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만약 반도체 인력이라고 특정한다면 전자 전산학과를 전공한 설계인력을 말하는 걸 겁니다. 그러나 반도체는 자율주행차나 5G통신 같은 시스템의 특정 기능을 실행하는 부품입니다. 시스템 전체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설계 전반을 이끌 수 있는 상위 개념의 리더가 있어야 해요. 그 역할을 누가 할까요? 반도체 과를 만들어 인력을 육성해도 절반은 인공지능 등 다른 소프트웨어 분야에 빼앗길거에요. 요즘은 반도체분야 보다 소프트웨어 전문인력들의 대우가 훨씬 좋아요. 모두 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나온 발상입니다.” ▶반도체 학과를 많이 만들어 인력을 양성한다는 건 단편적인 시각이라는거군요. 종합적인 시각으로 기초과학을 융성해야 한다는 얘기군요 “정원 조정을 통해 이공계 인력 전체를 늘려야 해요. 학과 정원 틀어 막아놓고 필요 인력을 어떻게 양성합니까. 이해관계가 있는 교수들을 설득해서 유연하게 움직여야 해요. 반도체 학과에서 1년에 1000명이나 배출할 수 있나요. 삼성반도체 종사가가 10만명 됩니다. 삼성전자 한 회사에 필요한 반도체 인력 공급도 어려워요. 특히 고급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지요. 해외에서 데려오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지금 실리콘밸리 임금수준이 우리나라의 3∼5배 정도되요. 벤처로 대박을 꿈꾸는 인재들을 한국으로 유치하는 게 녹록지 않아요.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산업에서 배출되는 인력은 연간 650명 수준으로 필요인력(1500명 정도)의 43%수준에 그치고 있다. ▶고급인력은 어떻게 확보해야 합니까. “특출한 고급인력을 육성하기 위해선 해당 분야를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정부가 주도해 첨단 프로젝트를 제시하고 여러 학교나 연구소, 기업의 인력을 참여시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정부가 몇천억원 내놓고 자율주행 자동차용 반도체 칩 개발을 특별과제로 선정해 공동연구를 유도한 후 지적자산을 공유하도록 하면 됩니다. 그러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과정속에서 전문기술이 습득되고 자연스럽게 고급인력이 육성되는거지요. 이스라엘의 경우 군대에서 보안 소프트웨어(SW)를 이런 식으로 개발해 세계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정부는 왜 안하는 겁니까. 나중에 프로젝트가 잘못되면 책임문제에 걸려서 그럴까요.“상상력 부족이에요. 자신도 없을테고. 장관이 1년이면 떠날텐데 그런 중장기 프로젝트는 엄두도 안 나겠지요. 그러니 대통령 과제로 직접 진행해야 합니다. 만약 대통령이 임기중 자율주행 자동차 레벨 4(완전자동화단계)를 만들자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추진력이 생기겠지요. 반도체 뿐 아니라 관련 소프트웨어는 저절로 만들어지는거에요. 80년대 중반 정부에서 1메가·4메가 디램 개발을 위해 당시로선 큰 돈인 400억원을 지원했습니다. 이런 프로젝트들이 미래 먹거리 산업을 태동시킬 마중물 역할을 하는거에요. 정부가 나서서 판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국가적으로 붐업하는 길입니다.”진 회장은…△1952년 경남 의령 출생 △경기고 △서울대 전자공학과 △메사추세츠 주립대 전자공학과 석사 △스탠퍼드대 공학박사 △IBM왓슨연구소 연구원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사장·디지털미디어총괄 대표이사 사장 △정보통신부 장관 △스카이레이크 에퀴티 파트너스 회장 △KAIST 석좌교수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송길호 기자 2022.09.22
    진대제 스카이레이크 회장은 반도체 산업의 미래전략과 관련, “앞으로 10년이면 기술적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며 “시스템반도체분야에서 대기업들이 패키징 등 후(後)공정분야에 적극 진출, 미래의 먹거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송길호 이데일리 논설위원 겸 에디터]미중 패권 경쟁 속에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칩4(Chip4·한국 미국 일본 대만)의 출범이 임박하면서 글로벌 반도체시장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중국을 배제한 생산체제의 블록화로 반도체 시장의 생태계는 전략적 변곡점에 다가서고 있다. ‘산업의 쌀’ 반도체는 이미 경제적 부가가치의 영역을 넘어 외교 안보 차원의 핵심 전략물자로 의미가 확대된 상태. 지금 전 세계는 반도체 전쟁 중이다. 반도체 산업의 전환기, 한국 반도체는 어떻게 대응하고 미래를 설계해야 할까. 메모리분야에서 30년간 누려온 아성을 계속 지키며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우위를 확보할 수 있을까. 반도체 첨단공정의 기술력이 거의 한계에 이른 상황에서 향후 이를 돌파할 전략은 무엇일까.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이 주도하는 국내 반도체 생태계를 더욱 공고히 할 수는 없을까. 정부의 반도체 지원정책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일까. 삼성전자시절 세계 최초로 16메가·64메가·256메가 디램(DRAM)을 차례로 개발한 주역으로 오늘날 삼성 반도체 신화의 밑거름을 이룬 ‘미스터 반도체’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장관으로부터 그 해법을 들었다. 사모투자펀드(PEF)운용사 스카이레이크를 이끌고 있는 그는 최근 서울 강남의 집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지금 반도체 시장은 사이클에 따른 일시적 위기가 아닌 지정학적 갈등, 그에 따른 공급망 재편으로 인한 구조적 위기”라며 “칩4 출범에 따른 파장은 내년초 본격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진 회장은 “반도체 산업의 펀더멘탈 리밋(기술력의 근본적 한계)은 앞으로 10년”이라며 “메모리분야에서 초격차 전략을 유지하되 대기업들은 패키징 등 후(後)공정분야에 적극 진출, 미래의 먹거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인력양성과 관련해선 “단순히 대학 반도체 학과 정원을 늘리는 식의 단편적 접근에서 벗어나 기초과학 분야를 튼튼히 다지고 이공계 기술인력 전체를 늘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특히 고급인력은 정부가 첨단 국가프로젝트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직접 판을 짜주면 전문기술 습득을 통해 자연스럽게 육성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반도체 공급망 재편…구조적 위기 ▶반도체 산업 위기론이 팽배합니다. 예년에 비해 불황과 호황 사이클이 짧아졌다는 분석도 있구요. “반도체시장은 20∼ 30년 전만해도 호황과 불황 사이클이 4년주기로 있었어요. 올림픽 열리는 해는 호황, 월드컵때는 불황 이런 식이었죠. 호황때 공장을 여러 회사에서 동시에 짓게 되면 공급과잉으로 값이 크게 떨어져요. 생산능력에 비해 5%과잉이면 20%정도 하락하죠. 반대로 공급이 5%부족일때 값은 20%올라갑니다. 공장 짓는 사이클에 따라 공급 과잉과 부족이 반복된거지요. 이를 ‘실리콘 사이클’이라고 불렀어요.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이런 흐름이 없어졌어요. 메모리는 삼성, 파운드리는 TSMC 등 분야별로 독과점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하니 다른 기업에서 공격적인 투자를 할리 없지요. 그래서 이후 반도체 사이클은 뚜렷하지 않게 됐어요.”▶반도체 경기는 매크로 경제상황과 연관이 있다는 얘기군요. “분명히 구별해야 해요. 경제 상황에 영향을 받아 반도체시장이 침체에 빠진 것인지 지정학적 문제 등 구조적 문제 때문인지. 매크로 상황에 영향을 받아 불황이 오는 건 크게 걱정할 게 없어요. 수급조절하고 경쟁력 올리면서 대응하면 되요. 그러다가 경기 사이클이 좋아지면 해소되지요. 진짜 위기는 내가 잘 만든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을때 오는거에요. 전략적 위기지요. 미중 갈등 속에 2015년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이후 반도체 패권과 맞물려 우리나라는 지금 그 사이에 끼어 있어요. 진짜 위기, 전략적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겁니다.”▶실제 칩4는 점점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공급망재편이 본격화되고 있지요. “미국이 블록을 형성해 중국 배제전략을 펼치겠다는 건데 반도체는 분명 미국이 우위에 있으니 이 전략은 상당히 먹힐 겁니다. 파장은 내년초부터 눈에 띄게 나타날 거에요. 지금은 중국이 반도체 재료 등을 일정부문 확보하고 있어 문제 없겠지만 내달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이 연임된 이후엔 IT업계, 전자회사 등에서 실상이 드러날거에요. 지금 반도체 공급망 문제로 자동차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처럼 중국내 반도체 부족으로 생산이 어려워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전자제품 품귀현상이 나타날 수 있지요. 세계 전자제품의 3분의 2가량을 중국에서 만들잖아요. 우크라이나전쟁 이후 서방에서 러시아에 제재를 가했더니 러시아 천연가스가 끊기면서 유럽에 비상이 걸린 것과 마찬가지지요.”▶우리로선 전략적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는군요. 단순히 미국 편에 선다고 끝날 게 아니라 중국에 대한 대처가 고민입니다. 홍콩 포함 중국에 대한 반도체수출이 60%이상되고 공급망도 촘촘히 엮여 있는데 중국시장을 외면할 수는 없잖아요. “제조측면에선 당연히 칩4에 들어가야해요. 장비나 원자재에 대한 미국 의존도가 높잖아요. 문제는 파는 건데…눈치를 잘 봐서 팔아야죠. 중국시장이 고립된다고 해서 예전 코콤 규제 때처럼 메모리반도체 등에 대한 수출을 전면적으로 제한하진 못할 겁니다. 당시에도 기업들은 홍콩 등 우회로를 찾아 팔건 다 팔았어요.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되는 러시아 미사일을 보니 서양의 반도체가 모두 들어있었다는 것 아니에요. 이런 문제는 굳이 공식화할 필요 없어요. 미국이 수출을 제한해도 기업으로선 비용이 더 들더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있으니. 정부의 통제 밖이 될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는 중국에 메모리 공장도 있어서 그쪽 생산분은 중국 시장에 판매할 수 있잖아요?” 코콤(COCOM·대공산권전략물자 수출통제위원회)은 냉전시절 서방권이 공산권에 대한 첨단기술 수출을 제한하는 기구였다. 소련 붕괴후에도 90년대말까지 마이크로프로세서 등 첨단제품은 중국에 팔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은 반도체 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을 통해 자국에서 보조금 받는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에 설비투자를 할 수 없도록 가드레일 조항을 두고 있잖아요. 설비를 업그레이드해야 할텐데 계속 투자할 수도 없고.“둘중에 하나 택하면 되요. 반도체의 경우 미국 보조금을 받으면 좋겠지만 꼭 받아야 되는 것도 아니고. 중국에 설비투자를 해야 할 필요성과 보조금을 받는 것의 유불리를 따져 봐야지요. 하지만 미국 입장에선 투자유치를 위해 어떻게든 보조금을 주려고 할거에요. 시간이 지나면 절묘한 타협점을 찾게 될 거에요. 그동안 인내가 필요하고 전략적 모호성도 필요합니다” ▶그러면 미국 입장에서 이렇게 공개적으로 계속 압박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되는 겁니까 “정치적인 요인이 크죠. 미중 갈등이 패권 전쟁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잖아요. 지금 바이든 대통령이 내세우는 건 중국과 분명히 선을 긋고 다른 동맹국들에게 같이 협력하자고 하는건데 칩4는 중국고립을 위한 일종의 상징적인 조치에요. 11월 중간선거를 의식하고 있겠고.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체면이 있어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지만 내달 시진핑의 3연임이 확정되면 달라질거에요. 바이든도 시진핑도 약간씩 유화정책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아요.”▶이 같은 구조적 위협 속에서 어떻게 기회를 모색할 수 있을까요. “블록간 마찰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여러 갈등상황에서 줄타기를 잘 해야되죠. 삼성은 1등기업이기 때문에 그 파고를 가장 크게 맞을수도 있어요. 1986년 미일반도체협정으로 (반도체 공급망 재편 이후) 일본 NEC가 세계 1등에서 그대로 주저앉았잖아요. 삼성으로선 기술적 초격차를 유지해야만 안전합니다. 중국이 코너에 몰려 몇년간 주춤할때 오히려 시스템 반도체 사업을 포함한 반도체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돌파해야 합니다.”◇後공정 분야를 미래의 먹거리로 ▶실제 삼성전자는 파운드리(위탁생산)분야에서 1등으로 도약하겠다고 공언했어요. 대만 TSMC에 비해 시장점유율은 3분의 1 정도에 불과한데. 여기에 인텔까지 가세하고 있으니 파운드리 시장에서도 본격적인 치킨게임이 벌어질 것 같군요. “인텔이 파운드리를 하면 TSMC만큼 잘할 겁니다. 빠르게 따라잡을 거에요. 기반이 워낙 탄탄한데다 미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겠지요. TSMC가 1등이니 시장을 가장 많이 빼앗길거고 삼성은 특유의 제조능력으로 지금 할 수 있는 몫은 할겁니다. (인텔의) 팻 겔싱어 CEO가 매출 1000억 달러 정도 하겠다고 하던데 이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점유율을 3분의 1까지 끌어올리겠다는거에요. 첨단 공정과 서비스로 시장을 공략하겠다는건데 인텔이면 해낼 수 있습니다. 필요 인재와 자금력도 확보할 수 있으니 자신감도 있어요. 반면 삼성이 TSMC를 물리치고 1등으로 도약하기엔 역부족이지 않을까요? 휴대폰, 컴퓨터, 가전산업 등 유사 분야의 고객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메모리와 파운드리, 시스템반도체 모두 합쳐 반도체 종합 1위 기업은 될 수 있겠지요.” 인텔은 지난해 2월 전설의 CEO 앤디 그로브(1979∼2005년) 시절 CTO를 역임했던 팻 겔싱어를 다시 영입해 재도약에 나섰다. 진 회장은 지난 5월 팻 겔싱어의 방한때 그의 요청으로 만났다. 1990년대 삼성 메모리사업부장과 인텔 CTO였던 두 사람은 이후에도 계속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반도체산업은 정말 격변기에 돌입하는군요. “(겔싱어에게) 지금 3㎚(나노미터)기술을 상용화한다고 하는데 반도체 기술이 언제까지 연장될 수 있겠느냐고 물어봤어요. 10년은 더 할 수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반도체는 펀더멘탈 리밋에 접근한지 꽤 오래됐습니다. 반도체는 극도로 미세한 ㎚ 크기 선폭의 해상도로 생산을 합니다. 실리콘 원자 간격이 0.35nm인데 3nm선폭은 실리콘 원자를 10개 모아둔 공간이지요. 전자는 이 실리콘의 다이아몬드 격자구조의 벽과 충돌하면서 일정 속도로 움직여야 하는데 이 선폭이 너무 작으면 움직임을 제어할 수 없어 연산 기능이 안 돼요. 또한 이 크기의 정밀도를 요하는 노광, 에칭, 증착 등 제조공정을 위한 장비와 소재들의 값이 천문학적으로 뛰어올라 투자 부담이 지나치게 커지지요. 그러면 더 이상 혁신이 어려워지고 가격경쟁만 치열하게 일어날테니 반도체 산업 전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어요. 이런 현상이 앞으로 10년 후에 나타날 수 있다고 겔싱어가 얘기했고 상당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산업으로선 재앙이자 도전입니다.” ▶어떻게 돌파구를 찾아야합니까.“그래서 패키징과 같은 후(後)공정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어요. 전(前)공정만큼 혁신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전력소모를 줄이고 반도체 칩의 속도와 성능을 올리기 위한 첨단기술은 전공정 만큼 후공정에도 필요합니다. 전공정 제조기술을 패키징에 적용하는 날이 다가옵니다. 반도체 칩을 3차원으로 여러개 쌓아 올리고 칩 사이에 전기공급을 연결하고 칩 간 네트워킹이 원활해지면 칩 패키지 하나로 컴퓨터나 자율주행 자동차를 움직이는 세상이 오게 될거에요. 시스템반도체는 설계와 파운드리 뿐 아니라 패키징 기술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파운드리+패키징’ 복합전략을 구사해야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어요. 현재 패키징 시장 규모는 1000억 달러 정도로 팹리스나 파운드리와 거의 비슷해요. 대만과 중국이 80%가까이 시장을 차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톱10에 들어가는 패키징 전문회사 하나 없습니다. 후공정에 과감히 투자해야 10년 후 후회하지 않을거에요. 하지만 지금 (국회에 상정된) 반도체특별법에도 패키징 육성 방안은 없습니다.”반도체 산업의 가치사슬(value chain)은 제조공정에 따라 설계(Fabless+Chipless) → 제조(Foundry) → 조립(Packaging) →검사(Testing) 단계로 이뤄진다. 설계와 제조단계를 전공정, 조립과 검사 단계를 후공정이라고 한다. 설계는 미국, 제조는 대만이 선두. 대만은 미어텍 등 팹리스가 맡긴 설계에 따라 TSMC 등 파운드리 회사가 전공정을 맡고, 협력사인 ASE 등이 후공정을 담당하는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 생태계의 문제점이군요. 반도체 산업을 지원한다고 하지만 후공정 분야에 관심이 없다는 점은 환기해야 할 부분이군요.“삼성이 파운드리 분야에 투자를 더한다고 하니 후공정쪽에 투자하는 대기업들이 따로 나와야 해요. 일반 중소기업들은 어려워요. 10년은 내다보고 최소 1조원은 투자해야 하니. 아예 이 분야의 1조원 짜리 회사를 M&A해도 되요. 돈을 많이 주고라도 미래를 봐야죠. 윤석열정부 인수위원회에도 이 분야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전달했어요. 앞으로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중요한 분야입니다.”▶시스템 반도체 내에서도 인공지능 반도체가 유망하다고 하는데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을까요. “설계능력에 한계가 있어요. 지금 우리나라 비메모리분야 설계 인력 다 합쳐도 엔비디아나 퀄컴보다 적어요. 삼성전자 비메모리 설계 인력이 만 명이 채 안된다고 하는데 엔비디아 한 회사만 6만명이에요.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인력 다 합쳐도 마이크로소프트에 대적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올해 전세계 반도체시장 규모는 6332억 달러. 이중 메모리분야(1665억 달러)가 26%, 시스템반도체 분야는 4333억달러(68.4%) 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WSTS). 미국은 시스템 반도체를 기반으로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51%, 메모리분야를 장악하고 있는 한국은 25%, 파운드리 분야 선두 대만은 15%를 차지하고 있다.(IC Insights)기업별로는 2021년 기준 삼성전자가 매출 831억 달러로 인텔(756억 달러), TSMC(566억달러)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정부, 첨단 프로젝트 만들어 고급인력 양성▶반도체 산업은 인력의 산학 연계가 미흡하고 미스매치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인력양성을 위해 반도체 학과 정원을 늘린다고 하는데. “반도체 과를 만들면 반도체 인력이 만들어집니까? 반도체 기술은 상당히 복합적이에요. 수학, 물리, 금속, 전자·전기, 화학, 재료 등 모든 영역에 걸쳐 있는 분야입니다. 반도체라는 분야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만약 반도체 인력이라고 특정한다면 전자 전산학과를 전공한 설계인력을 말하는 걸 겁니다. 그러나 반도체는 자율주행차나 5G통신 같은 시스템의 특정 기능을 실행하는 부품입니다. 시스템 전체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설계 전반을 이끌 수 있는 상위 개념의 리더가 있어야 해요. 그 역할을 누가 할까요? 반도체 과를 만들어 인력을 육성해도 절반은 인공지능 등 다른 소프트웨어 분야에 빼앗길거에요. 요즘은 반도체분야 보다 소프트웨어 전문인력들의 대우가 훨씬 좋아요. 모두 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나온 발상입니다.” ▶반도체 학과를 많이 만들어 인력을 양성한다는 건 단편적인 시각이라는거군요. 종합적인 시각으로 기초과학을 융성해야 한다는 얘기군요 “정원 조정을 통해 이공계 인력 전체를 늘려야 해요. 학과 정원 틀어 막아놓고 필요 인력을 어떻게 양성합니까. 이해관계가 있는 교수들을 설득해서 유연하게 움직여야 해요. 반도체 학과에서 1년에 1000명이나 배출할 수 있나요. 삼성반도체 종사가가 10만명 됩니다. 삼성전자 한 회사에 필요한 반도체 인력 공급도 어려워요. 특히 고급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지요. 해외에서 데려오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지금 실리콘밸리 임금수준이 우리나라의 3∼5배 정도되요. 벤처로 대박을 꿈꾸는 인재들을 한국으로 유치하는 게 녹록지 않아요.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산업에서 배출되는 인력은 연간 650명 수준으로 필요인력(1500명 정도)의 43%수준에 그치고 있다. ▶고급인력은 어떻게 확보해야 합니까. “특출한 고급인력을 육성하기 위해선 해당 분야를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정부가 주도해 첨단 프로젝트를 제시하고 여러 학교나 연구소, 기업의 인력을 참여시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정부가 몇천억원 내놓고 자율주행 자동차용 반도체 칩 개발을 특별과제로 선정해 공동연구를 유도한 후 지적자산을 공유하도록 하면 됩니다. 그러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과정속에서 전문기술이 습득되고 자연스럽게 고급인력이 육성되는거지요. 이스라엘의 경우 군대에서 보안 소프트웨어(SW)를 이런 식으로 개발해 세계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정부는 왜 안하는 겁니까. 나중에 프로젝트가 잘못되면 책임문제에 걸려서 그럴까요.“상상력 부족이에요. 자신도 없을테고. 장관이 1년이면 떠날텐데 그런 중장기 프로젝트는 엄두도 안 나겠지요. 그러니 대통령 과제로 직접 진행해야 합니다. 만약 대통령이 임기중 자율주행 자동차 레벨 4(완전자동화단계)를 만들자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추진력이 생기겠지요. 반도체 뿐 아니라 관련 소프트웨어는 저절로 만들어지는거에요. 80년대 중반 정부에서 1메가·4메가 디램 개발을 위해 당시로선 큰 돈인 400억원을 지원했습니다. 이런 프로젝트들이 미래 먹거리 산업을 태동시킬 마중물 역할을 하는거에요. 정부가 나서서 판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국가적으로 붐업하는 길입니다.”진 회장은…△1952년 경남 의령 출생 △경기고 △서울대 전자공학과 △메사추세츠 주립대 전자공학과 석사 △스탠퍼드대 공학박사 △IBM왓슨연구소 연구원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사장·디지털미디어총괄 대표이사 사장 △정보통신부 장관 △스카이레이크 에퀴티 파트너스 회장 △KAIST 석좌교수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 전광우 "국민연금 개혁 ‘모수개혁·기금운용혁신’ 두 바퀴로 가야” [송길호의 파워인터뷰]
    [이데일리 송길호 논설위원 겸 에디터]공적연금 정상화와 금융혁신을 위한 윤석열정부의 구조개혁이 첫 발을 내디뎠다. 정부는 최근 업무보고를 통해 국민연금과 공무원·군인·사학연금 등 직역연금의 통합을 추진하고, 내년 10월까지 관련 법안 등 종합운영계획을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연금개혁 로드맵을 제시했다. 민간주도의 금융규제혁신위원회 출범을 통해 금산분리 등 해묵은 금융규제 혁파에도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연금개혁과 관련, “현 정부에서 실효성 있는 결과를 내려면 직역연금과의 통합보다는 일단 국민연금 개혁에만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모수개혁과 기금운용혁신 투 트랙 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산넘어 산이다.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국민연금의 ‘모수개혁’자체도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공적연금 전반을 연계해 통합하는 일은 난제 중의 난제다. 선명한 비전과 전략 없이 구호만으로 금융혁신이 이뤄질리도 만무하다.절체절명의 과제인 연금개혁은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선진금융으로 나아가기 위한 그림은 어떻게 그리고 어떤 실행전략을 마련해야 할까. 초대 금융위원장과 최장수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지낸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으로부터 그 해법을 들었다. 지난 26일 서울 강남의 세계경제연구원 집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전 이사장은 연금개혁의 큰 틀을 다시 설계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국민연금과 직역연금은 이해관계자가 너무 다르고 시스템의 차이도 크다”며 “현 정부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내려면 일단 국민연금 자체개혁에만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 기금의 기대수익률을 높이게 되면 제도개혁을 촉진시킬 수 있다”며 “제도개혁(모수개혁)과 기금운용혁신 투트랙 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전 이사장은 한국금융의 비전에 대해선 “민간이든 공공이든 파이를 나누는데만 관심을 두지 말고 어떻게 파이를 키우느냐는 쪽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글로벌 플레이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판을 만들기 위해 경쟁력 있는 금융 중심지를 조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연금개혁...尹정부 플랜B 가동해야 ▶정부가 국민연금 등 4대 공적연금 개혁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어떤 전략으로 접근해야할까요. “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시절의 경험상 국민연금과 직역연금을 연계해 접근하는 일은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매우 어렵습니다.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이 너무 다르고 시스템의 차이도 크기 때문이지요. 예컨대 국민연금 수급자들은 월평균 50만∼60만원 받는데 공무원연금은 200만원이상 받어요. 반면 공무원연금 보험료는 국민연금의 2배에 달하지요. 물론 형평성을 고려해 각 연금을 유기적으로 통합한다는 접근법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 프로세스는 훨씬 복잡하고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현 정부 임기내 실효성 있는 결과를 내려면 플랜B차원에서 그 타깃을 가장 시급한 국민연금에 집중해야 합니다.”2018년 진행된 제4차 재정추계 결과 국민연금은 2042년 적자를 내기 시작해 2057년 기금이 소진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현재 9%인 보험료율과 43%인 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연금 급여의 비중)을 조정하는 모수개혁은 진전이 없는 상태다. ▶국민들은 보험료를 더 내야 할 필요성엔 공감하고 있지만 막상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연금개혁이라고 하면 ‘더 내고 덜 받는다’는 쪽으로 프레임이 형성돼 있어요. 반면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디자인 하기 나름이에요. 보험료를 점진적으로 올려도 지금받는 금액보다 좀 더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설득시켜야 해요.”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연금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보험료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평균 수준인 15%로 올려야 해요.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일단 12∼13%선으로 올리고 점진적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금운용 혁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해야 합니다. 시뮬레이션 결과 보험료수준, 기대수명, 경제성장률, 금리 등 기금고갈시기를 결정하는 여러 변수중 기금운용수익률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지금 국민연금 기금규모가 1000조원에 달하는데 수익률을 1%포인트만 올려도 10조원의 수익을 낼 수 있잖아요. 기금운용혁신을 통해 기대수익률을 높이면 그만큼 보험료 인상 부담을 덜어줄 수 있습니다. 제도개혁과 기금운용혁신 두 수레바퀴로 나아가야 합니다.“▶그동안 기금운용혁신에 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연금개혁을 주도하는 전문가들이 대부분 제도사이드에서만 접근하는 경향이 있어요. 금융투자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지요. 그러니 연금개혁을 하자고 하면 기금고갈 시점은 언제이고 그래서 보험료를 얼마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어느 수준으로 낮출지에 대한 논의만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운용성과는 불확실하기 때문에 소극적으로 접근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동안 기금운용수익률이 벤치마크 수준(5∼6%)에 그친 건 이 때문이지요.” 올 상반기 국민연금 운용수익률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8%까지 곤두박질쳤다. 손실액만 76조 7000억 원. 2년 반 가까이 연금으로 지급할 수 있는 규모다. ▶기금운용혁신을 위한 핵심과제는.“자율성과 전문성 두가지가 중요합니다만 지금은 다소 미흡합니다. 지배구조가 정부입김에 영향을 받을 우려가 있지요.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을 복지부장관이 맡고 있잖아요. 기금운용본부를 공단에서 독립시켜 별도의 기금운용공사를 만드는 방안을 포함해 지금 시스템보다는 훨씬 더 독립적이고 전문가 중심으로 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전문성 측면에서도 기금운용본부가 서울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전문인력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경쟁력 있는 전문가를 영입하기는커녕 기존 직원들이 이탈하는 상황 아닌가요.” 그는 부연했다. “해외 투자자들이 국민연금을 방문하면 꼭 이런 얘기를 합니다. ‘어떻게 이런 먼 곳에서 기금운용을 하는가’라고. 특히 기금운용 관계자들이 국정감사에 불려갔다고 하면 도저히 이해를 못합니다. 실제 기금운용본부 간부들은 1년의 절반을 감사받느라 아무 일도 못합니다. 기금운용본부내 준법감시인으로부터 공단내 감사, 복지부 차원의 감사, 감사원 감사, 국회 국정감사까지 중복감사가 심각합니다.” ▶전문인력 확보를 위해 기금운용위원회만이라도 서울로 이전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사실 공단 이사장 시절 기금운용본부만은 서울에 남겨두려고 했어요. 국회와도 공감대를 이뤘구요. 국내외 금융인사들과의 밀접한 소통을 위해서지요. 그런데 이후 정치적 요인에 의해 전주 이전이 결정됐어요. 기금운용의 경쟁력을 떨어뜨린 결정적인 요인입니다. 특정 지역민이 아닌 전체 국민을 위한 결정이 필요합니다.” 2017년 국민연금 본사의 전주 이전 이후 기금 운용본부에서 빠져나간 전문인력만 130여명에 달한다. 지금도 정원의 20%가량 부족한 상태다. ▶기금의 포트폴리오는 어떤 방향으로 재편해야 할까요. “선진국 연기금일 수록 대체투자 비중이 높아요. 주식이나 채권투자보다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벤치마킹대상이 있습니다. 캐나다 연기금(CPPIB)은 지난 10년 연평균 수익률이 10.8%로 국민연금 거의 2배수준입니다. 자산운용규모는 국민연금의 절반 조금 넘는 수준이지만 대체투자를 중심으로 인력은 몇배나 되지요. 가치있는 리스크테이킹을 하는 전문가들이 포트폴리오를 잘 짜면 수익률을 올릴 수 있습니다”. 그의 경험담. “2009년 공단 이사장으로 처음 갔을때 포트폴리오의 90%가 채권이었어요.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초저금리 상태였으니 수익이 날리 없었지요. 글로벌시각에서 본격적으로 해외 대체투자를 처음 시작했습니다. 국민연금 운용실적은 올 상반기까지 마이너스(-8%)지만 그래도 해외 부동산, 인프라 등 대체투자는 플러스(+7.3%)를 내고 있어요. 주요 선진국의 우량자산중 가격이 많이 떨어진 걸 선별해 투자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금운용 혁신은 국내 금융산업 발전과도 연계되겠군요. “국민연금 기금 규모는 일본 공적연금(GPIF)에 이어 전세계 두번째에 해당합니다. 글로벌 투자자들과의 접점이 많을 수밖에 없지요. 국민연금이 해외에서 앵커투자자로 나서면 국내 투자자들이 이를 따라 국제 투자커뮤니티에도 동참할 수 있습니다. 기금운용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단순히 연금재정 측면 뿐 아니라 국내 금융의 선진화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지요. 국민연금이 지렛대가 되어 금융산업 발전의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금융혁신…공공·민간 함께 파이 키워야 ▶한국 금융산업은 여전히 답보상태입니다. “지난 몇년간 한국에서 주요 해외 금융회사들이 많이 떠났어요. 외국 금융인사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비즈니스 환경이 어려워졌다고 해요. 규제환경이 복잡해지고, 사법· 노동· 세제 등 다양한 이슈가 더욱 부각됐다고 하지요. 특히 조삼모개식 정책으로 규제와 감독의 일관성이 부족하고 자의적인 집행도 많다고들 합니다. ▶선진금융회사들이 돌아오게 하려면. “윔블던 효과(자국기업보다 외국계 기업의 활동이 더 활발한 현상)라고 있지요. 글로벌 플레이어들이 뛰어놀 수 있는 판을 제대로 만들면 외국 선진 금융회사들이 국내에서 가치를 창출하게 됩니다. 허브 전략의 일환이구요. 민간이든 공공이든 파이를 나누는데만 관심을 두지 말고 어떻게 키우느냐는 쪽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지금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분아래 산은의 부산이전이 논란이 되고 있는데요. 공공기관 지방이전계획에만 매달리다간 금융산업 발전은 요원합니다.”▶금융허브, 금융중심지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거군요. “서울 부산 모두 경쟁력 있는 금융 중심지로 만들려는 노력을 재점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설령 이 노력이 성과를 내지 못해도 적어도 그 과정에서 금융산업 발전에 보탬이 될 수 있을 거에요 규제개혁측면에서 그렇고 금융산업 발전에 대한 공감대도 형성될 수 있지요. 지금 아시아 지역의 금융허브들이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어요. 홍콩이 기반을 잃으면서 싱가포르로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어요. 지금 기회를 살려야 합니다.” ▶노무현정부의 동북아금융허브는 구호에 그쳤고 이명박정부의 금융중심지 전략도 큰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요. “이명박정부시절 초 금융산업선진화를 위해 금융중심지를 만들자는 방안은 국정과제로도 선정됐어요. 하지만 감독체계개편 등 드라이브를 거는 과정에서 금융위기라는 태풍을 만났어요. 그래서 지금도 그런 상황이 걱정됩니다. 당장 불을 끄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이지요. 개혁의 방향은 민간부문이 더 뛰도록 하자는건데 위기 극복을 위해선 오히려 정부가 더 조여야 하는 상황이 됐지요. 위급상황을 극복하려다보니 개혁어젠다는 힘이 실릴 수 없었지요.” ▶금융중심지로 도약하기 위해선 어떻게. “군집효과(Cluster effect)를 일으켜야 해요. 맨하튼, 런던, 홍콩 등 금융중심지는 군집효과를 활용합니다. 여의도, 청라, 송도 등에 하나의 큰 서클을 만들고 규제혁신을 통해 디지털을 탑재한 혁신이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주거 언어 교육 등 기본적인 인프라를 구축해야 합니다. 그의 경험담. “80년대말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 시절 중국 자본시장 발전전략의 일환으로 상해를 국제금융허브로 만드는 방안이 과제로 떨어졌어요. 당시 열악한 환경에서 허황되게만 들렸지요. 그 상황에서 프로젝트 결론은 규제개선, 생활환경 조성도 물론 필요하지만 가장 화급한 과제는 능통한 영어실력을 갖춘 인재 양성이라는 것이어요. 금융분야는 특히 국제거래상 영어가 중요해요. 그래야 소통이 되고 외국 금융회사들이 많이 들어오게 됩니다.” ▶금융중심지 조성은 규제 개혁과도 밀접히 연관되겠군요. “금융의 디지털화가 다각도로 이뤄진 상태에서 금융혁신의 큰 그림은 전통금융과 새로운 디지털금융과의 시너지를 위해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에요. 금산분리의 부분적 완화가 논의되고 있는 것도 대기업의 은행 소유 지분을 늘려주자는 기존 은산분리 차원이 아닌 은행 등 전통 금융회사들이 디지털계통의 자회사를 둘 수 있도록 디지털화를 진전시킨다는 차원이지요. 전통금융과 빅테크 기업간 규제 불균형을 극복하는 게 궁극적으로 양측이 윈윈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법입니다.” ▶금융위원장이 ‘금융의 BTS’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금융의 BTS를 육성하기 위해선 균형(Balance), 신뢰(Trust),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등 3요소가 필요합니다. 금융은 쏠림현상을 경계하고 늘 균형을 생각해야 합니다. 전통금융과 빅테크, 시장원리와 모럴해저드간 균형된 접근이 필요합니다. 시장의 신뢰, 소비자의 신뢰를 확보하는 일은 금융의 본질이지요. 궁극적으로 금융산업은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는 ESG경영과도 관련 있어요. 기후변화대응,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 모두 지속가능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금융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전 이사장은…△1949년 서울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인디애나대 대학원 졸업(경영학박사) △미시간주립대 교수 △세계은행 수석연구위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특보 △국제금융센터 소장 △우리금융지주 총괄부회장 △포스코 이사회의장 △딜로이트코리아 회장 △외교부 국제금융대사 △금융위원회 위원장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현)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송길호 기자 2022.09.01
    [이데일리 송길호 논설위원 겸 에디터]공적연금 정상화와 금융혁신을 위한 윤석열정부의 구조개혁이 첫 발을 내디뎠다. 정부는 최근 업무보고를 통해 국민연금과 공무원·군인·사학연금 등 직역연금의 통합을 추진하고, 내년 10월까지 관련 법안 등 종합운영계획을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연금개혁 로드맵을 제시했다. 민간주도의 금융규제혁신위원회 출범을 통해 금산분리 등 해묵은 금융규제 혁파에도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연금개혁과 관련, “현 정부에서 실효성 있는 결과를 내려면 직역연금과의 통합보다는 일단 국민연금 개혁에만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모수개혁과 기금운용혁신 투 트랙 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산넘어 산이다.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국민연금의 ‘모수개혁’자체도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공적연금 전반을 연계해 통합하는 일은 난제 중의 난제다. 선명한 비전과 전략 없이 구호만으로 금융혁신이 이뤄질리도 만무하다.절체절명의 과제인 연금개혁은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선진금융으로 나아가기 위한 그림은 어떻게 그리고 어떤 실행전략을 마련해야 할까. 초대 금융위원장과 최장수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지낸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으로부터 그 해법을 들었다. 지난 26일 서울 강남의 세계경제연구원 집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전 이사장은 연금개혁의 큰 틀을 다시 설계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국민연금과 직역연금은 이해관계자가 너무 다르고 시스템의 차이도 크다”며 “현 정부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내려면 일단 국민연금 자체개혁에만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 기금의 기대수익률을 높이게 되면 제도개혁을 촉진시킬 수 있다”며 “제도개혁(모수개혁)과 기금운용혁신 투트랙 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전 이사장은 한국금융의 비전에 대해선 “민간이든 공공이든 파이를 나누는데만 관심을 두지 말고 어떻게 파이를 키우느냐는 쪽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글로벌 플레이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판을 만들기 위해 경쟁력 있는 금융 중심지를 조성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연금개혁...尹정부 플랜B 가동해야 ▶정부가 국민연금 등 4대 공적연금 개혁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어떤 전략으로 접근해야할까요. “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시절의 경험상 국민연금과 직역연금을 연계해 접근하는 일은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매우 어렵습니다.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이 너무 다르고 시스템의 차이도 크기 때문이지요. 예컨대 국민연금 수급자들은 월평균 50만∼60만원 받는데 공무원연금은 200만원이상 받어요. 반면 공무원연금 보험료는 국민연금의 2배에 달하지요. 물론 형평성을 고려해 각 연금을 유기적으로 통합한다는 접근법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 프로세스는 훨씬 복잡하고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현 정부 임기내 실효성 있는 결과를 내려면 플랜B차원에서 그 타깃을 가장 시급한 국민연금에 집중해야 합니다.”2018년 진행된 제4차 재정추계 결과 국민연금은 2042년 적자를 내기 시작해 2057년 기금이 소진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현재 9%인 보험료율과 43%인 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연금 급여의 비중)을 조정하는 모수개혁은 진전이 없는 상태다. ▶국민들은 보험료를 더 내야 할 필요성엔 공감하고 있지만 막상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연금개혁이라고 하면 ‘더 내고 덜 받는다’는 쪽으로 프레임이 형성돼 있어요. 반면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디자인 하기 나름이에요. 보험료를 점진적으로 올려도 지금받는 금액보다 좀 더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설득시켜야 해요.”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연금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보험료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평균 수준인 15%로 올려야 해요. 수용성을 높이기 위해 일단 12∼13%선으로 올리고 점진적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금운용 혁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해야 합니다. 시뮬레이션 결과 보험료수준, 기대수명, 경제성장률, 금리 등 기금고갈시기를 결정하는 여러 변수중 기금운용수익률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지금 국민연금 기금규모가 1000조원에 달하는데 수익률을 1%포인트만 올려도 10조원의 수익을 낼 수 있잖아요. 기금운용혁신을 통해 기대수익률을 높이면 그만큼 보험료 인상 부담을 덜어줄 수 있습니다. 제도개혁과 기금운용혁신 두 수레바퀴로 나아가야 합니다.“▶그동안 기금운용혁신에 관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는. “연금개혁을 주도하는 전문가들이 대부분 제도사이드에서만 접근하는 경향이 있어요. 금융투자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지요. 그러니 연금개혁을 하자고 하면 기금고갈 시점은 언제이고 그래서 보험료를 얼마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어느 수준으로 낮출지에 대한 논의만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운용성과는 불확실하기 때문에 소극적으로 접근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동안 기금운용수익률이 벤치마크 수준(5∼6%)에 그친 건 이 때문이지요.” 올 상반기 국민연금 운용수익률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8%까지 곤두박질쳤다. 손실액만 76조 7000억 원. 2년 반 가까이 연금으로 지급할 수 있는 규모다. ▶기금운용혁신을 위한 핵심과제는.“자율성과 전문성 두가지가 중요합니다만 지금은 다소 미흡합니다. 지배구조가 정부입김에 영향을 받을 우려가 있지요.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을 복지부장관이 맡고 있잖아요. 기금운용본부를 공단에서 독립시켜 별도의 기금운용공사를 만드는 방안을 포함해 지금 시스템보다는 훨씬 더 독립적이고 전문가 중심으로 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전문성 측면에서도 기금운용본부가 서울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전문인력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경쟁력 있는 전문가를 영입하기는커녕 기존 직원들이 이탈하는 상황 아닌가요.” 그는 부연했다. “해외 투자자들이 국민연금을 방문하면 꼭 이런 얘기를 합니다. ‘어떻게 이런 먼 곳에서 기금운용을 하는가’라고. 특히 기금운용 관계자들이 국정감사에 불려갔다고 하면 도저히 이해를 못합니다. 실제 기금운용본부 간부들은 1년의 절반을 감사받느라 아무 일도 못합니다. 기금운용본부내 준법감시인으로부터 공단내 감사, 복지부 차원의 감사, 감사원 감사, 국회 국정감사까지 중복감사가 심각합니다.” ▶전문인력 확보를 위해 기금운용위원회만이라도 서울로 이전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사실 공단 이사장 시절 기금운용본부만은 서울에 남겨두려고 했어요. 국회와도 공감대를 이뤘구요. 국내외 금융인사들과의 밀접한 소통을 위해서지요. 그런데 이후 정치적 요인에 의해 전주 이전이 결정됐어요. 기금운용의 경쟁력을 떨어뜨린 결정적인 요인입니다. 특정 지역민이 아닌 전체 국민을 위한 결정이 필요합니다.” 2017년 국민연금 본사의 전주 이전 이후 기금 운용본부에서 빠져나간 전문인력만 130여명에 달한다. 지금도 정원의 20%가량 부족한 상태다. ▶기금의 포트폴리오는 어떤 방향으로 재편해야 할까요. “선진국 연기금일 수록 대체투자 비중이 높아요. 주식이나 채권투자보다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벤치마킹대상이 있습니다. 캐나다 연기금(CPPIB)은 지난 10년 연평균 수익률이 10.8%로 국민연금 거의 2배수준입니다. 자산운용규모는 국민연금의 절반 조금 넘는 수준이지만 대체투자를 중심으로 인력은 몇배나 되지요. 가치있는 리스크테이킹을 하는 전문가들이 포트폴리오를 잘 짜면 수익률을 올릴 수 있습니다”. 그의 경험담. “2009년 공단 이사장으로 처음 갔을때 포트폴리오의 90%가 채권이었어요.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초저금리 상태였으니 수익이 날리 없었지요. 글로벌시각에서 본격적으로 해외 대체투자를 처음 시작했습니다. 국민연금 운용실적은 올 상반기까지 마이너스(-8%)지만 그래도 해외 부동산, 인프라 등 대체투자는 플러스(+7.3%)를 내고 있어요. 주요 선진국의 우량자산중 가격이 많이 떨어진 걸 선별해 투자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금운용 혁신은 국내 금융산업 발전과도 연계되겠군요. “국민연금 기금 규모는 일본 공적연금(GPIF)에 이어 전세계 두번째에 해당합니다. 글로벌 투자자들과의 접점이 많을 수밖에 없지요. 국민연금이 해외에서 앵커투자자로 나서면 국내 투자자들이 이를 따라 국제 투자커뮤니티에도 동참할 수 있습니다. 기금운용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단순히 연금재정 측면 뿐 아니라 국내 금융의 선진화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지요. 국민연금이 지렛대가 되어 금융산업 발전의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금융혁신…공공·민간 함께 파이 키워야 ▶한국 금융산업은 여전히 답보상태입니다. “지난 몇년간 한국에서 주요 해외 금융회사들이 많이 떠났어요. 외국 금융인사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비즈니스 환경이 어려워졌다고 해요. 규제환경이 복잡해지고, 사법· 노동· 세제 등 다양한 이슈가 더욱 부각됐다고 하지요. 특히 조삼모개식 정책으로 규제와 감독의 일관성이 부족하고 자의적인 집행도 많다고들 합니다. ▶선진금융회사들이 돌아오게 하려면. “윔블던 효과(자국기업보다 외국계 기업의 활동이 더 활발한 현상)라고 있지요. 글로벌 플레이어들이 뛰어놀 수 있는 판을 제대로 만들면 외국 선진 금융회사들이 국내에서 가치를 창출하게 됩니다. 허브 전략의 일환이구요. 민간이든 공공이든 파이를 나누는데만 관심을 두지 말고 어떻게 키우느냐는 쪽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지금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분아래 산은의 부산이전이 논란이 되고 있는데요. 공공기관 지방이전계획에만 매달리다간 금융산업 발전은 요원합니다.”▶금융허브, 금융중심지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거군요. “서울 부산 모두 경쟁력 있는 금융 중심지로 만들려는 노력을 재점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설령 이 노력이 성과를 내지 못해도 적어도 그 과정에서 금융산업 발전에 보탬이 될 수 있을 거에요 규제개혁측면에서 그렇고 금융산업 발전에 대한 공감대도 형성될 수 있지요. 지금 아시아 지역의 금융허브들이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어요. 홍콩이 기반을 잃으면서 싱가포르로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어요. 지금 기회를 살려야 합니다.” ▶노무현정부의 동북아금융허브는 구호에 그쳤고 이명박정부의 금융중심지 전략도 큰 성과를 내지 못했는데요. “이명박정부시절 초 금융산업선진화를 위해 금융중심지를 만들자는 방안은 국정과제로도 선정됐어요. 하지만 감독체계개편 등 드라이브를 거는 과정에서 금융위기라는 태풍을 만났어요. 그래서 지금도 그런 상황이 걱정됩니다. 당장 불을 끄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이지요. 개혁의 방향은 민간부문이 더 뛰도록 하자는건데 위기 극복을 위해선 오히려 정부가 더 조여야 하는 상황이 됐지요. 위급상황을 극복하려다보니 개혁어젠다는 힘이 실릴 수 없었지요.” ▶금융중심지로 도약하기 위해선 어떻게. “군집효과(Cluster effect)를 일으켜야 해요. 맨하튼, 런던, 홍콩 등 금융중심지는 군집효과를 활용합니다. 여의도, 청라, 송도 등에 하나의 큰 서클을 만들고 규제혁신을 통해 디지털을 탑재한 혁신이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주거 언어 교육 등 기본적인 인프라를 구축해야 합니다. 그의 경험담. “80년대말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 시절 중국 자본시장 발전전략의 일환으로 상해를 국제금융허브로 만드는 방안이 과제로 떨어졌어요. 당시 열악한 환경에서 허황되게만 들렸지요. 그 상황에서 프로젝트 결론은 규제개선, 생활환경 조성도 물론 필요하지만 가장 화급한 과제는 능통한 영어실력을 갖춘 인재 양성이라는 것이어요. 금융분야는 특히 국제거래상 영어가 중요해요. 그래야 소통이 되고 외국 금융회사들이 많이 들어오게 됩니다.” ▶금융중심지 조성은 규제 개혁과도 밀접히 연관되겠군요. “금융의 디지털화가 다각도로 이뤄진 상태에서 금융혁신의 큰 그림은 전통금융과 새로운 디지털금융과의 시너지를 위해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에요. 금산분리의 부분적 완화가 논의되고 있는 것도 대기업의 은행 소유 지분을 늘려주자는 기존 은산분리 차원이 아닌 은행 등 전통 금융회사들이 디지털계통의 자회사를 둘 수 있도록 디지털화를 진전시킨다는 차원이지요. 전통금융과 빅테크 기업간 규제 불균형을 극복하는 게 궁극적으로 양측이 윈윈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법입니다.” ▶금융위원장이 ‘금융의 BTS’를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금융의 BTS를 육성하기 위해선 균형(Balance), 신뢰(Trust),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등 3요소가 필요합니다. 금융은 쏠림현상을 경계하고 늘 균형을 생각해야 합니다. 전통금융과 빅테크, 시장원리와 모럴해저드간 균형된 접근이 필요합니다. 시장의 신뢰, 소비자의 신뢰를 확보하는 일은 금융의 본질이지요. 궁극적으로 금융산업은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는 ESG경영과도 관련 있어요. 기후변화대응,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 모두 지속가능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금융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전 이사장은…△1949년 서울 출생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인디애나대 대학원 졸업(경영학박사) △미시간주립대 교수 △세계은행 수석연구위원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특보 △국제금융센터 소장 △우리금융지주 총괄부회장 △포스코 이사회의장 △딜로이트코리아 회장 △외교부 국제금융대사 △금융위원회 위원장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현)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 박병원 "민심과 동떨어진 정책은 필패…국민 설득이 먼저다" [송길호의 파워인터뷰]
    [송길호 이데일리 논설위원 겸 에디터]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이 난맥상이다. 각종 인사논란과 설익은 정책으로 민심이반을 자초하며 초장부터 스텝이 꼬이고 있다. 각종 정책추진의 동력은 크게 약화됐고 의회를 장악한 야당의 벽에 막혀 각종 제도개혁작업도 난항이 예상된다. 미증유의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위기)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지금 윤 정부는 이 파고를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전 회장으로부터 해법을 들었다. 노무현정부 재정경제부 차관, 이명박정부 경제수석으로 정파에 관계없이 중용된 정통 경제관료인 그는 우리금융그룹 회장, 은행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최근엔 금융규제혁신회의 의장에 위촉되는 등 민관을 넘나들며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박 전 회장과의 인터뷰는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24%로 폭락한 지난 5일 광화문의 한 사무실에서 4시간 동안 진행됐다. 그는 시종일관 ‘국민설득’을 강조했다. 그는 “철권을 갖고 있던 전두환도 국민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며 “이 정부는 정책에 대한 수용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너무 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책은 홍보전”이라며 “끊임없는 설득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저항의 강도를 낮추는 일이 성공적인 정책 추진의 토양”이라고 설명했다. 물가안정을 위한 각종 정책처방도, 규제개혁도 노동개혁도 연금개혁도 국민적 이해와 지지, 그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지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얘기다.◇경제정책…결국 홍보전▶윤석열정부의 각종 정책이 힘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에 대한 설득이 부족해요. 국민들에게 정책의 당위성을 이해시키려고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의문입니다. 전두환 시대와 같은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국민 설득을 위해 총력을 다했어요. 정책은 결국 홍보전이에요. 정치인은 국민들에게 끌려 다니게 마련입니다. 국민들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안돼요.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국민 5%만 늘리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결국은 국민과의 소통이 문제군요“국민들이 자발적으로 협조하도록 만들어야 해요. 옳은 처방을 내릴 때에도 이 약이 어떻게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이해시켜야 해요. 정책을 추진할 때 궁극적으로 나라 경제에, 그리고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을 납득시키는 과정을 생략하니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요. 팩트만 가르쳐주면 우리 국민들은 현명하게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운동을 보세요. 달러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모두 알게 되니 자발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을 벌였잖아요”▶어떤 식으로 설득하면 될까요 “지금 나오는 개별 정책들이 전체 국정기조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이해시켜야 해요. 정부가 제시한 국정기조에서 이 정책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그 효과는 어떤지 설득하는 과정이 보이지 않아요. 윤석열 정부는 ‘자유를 더 주겠다’, ‘민간주도로 하겠다’, ‘보편적복지가 아닌 선별적 복지를 통해 어려운 사람들을 더욱 두텁게 보호하겠다’고 했는데 각 부처에서 나오는 구체적인 정책들이 이런 기조에 부합하는지 제대로 설명을 안 합니다. 예컨대 내년도 세제개편안이 이 정부가 지향하는 자유, 민간주도, 선별적 복지와 어떻게 연결돼 있고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충분히 설명을 했어야 해요. 그런 과정이 없으니 부자감세 등 야당의 프레임에 걸려 논란이 되고 있지요” ◇물가안정...경제주체 역할분담 필요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물가안정입니다.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국민들이 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지 이해시켜야 하겠군요. “각 경제주체들의 역할분담이 필요합니다. 가계는 남들도 고통분담을 하고 있다는 실상을 알아야 합니다. 인건비가 오르면 물가가 안 오를 수 없어요. 물가 오른 만큼 월급을 올리면 절대 물가 못 잡아요. 악순환의 고리지요. 사실 장사하는 사람들은 값을 올리지 못하고 폐업하기도 하고 값을 올려도 매상이 줄어 소득이 주는 형태로 이미 고통 분담을 하고 있어요. 장사는 많이 팔아야 돈을 벌지 비싸게 받는다고 돈을 버는 게 아니거든요. 월급쟁이들은 소득이 줄지는 않잖아요”▶핵심은 임금인상을 자제하자는 거군요. “물가상승의 고리를 조기에 차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임금상승을 억제하는 일이에요. 최근 정부가 대기업의 임금인상 자제를 요청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지요. 다만 경제단체에서 이를 요구한 건 번지수를 잘 못 찾은 거예요. 양대 노총에 가서 설득했어야 했지요. 취약계층 노동자들이나 자영업자들의 실정은 대기업 월급쟁이들과 비교해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어야 했어요. 바로 수긍을 하지는 않겠지만 투쟁의 강도를 떨어뜨리는 정도의 효과는 있을 겁니다” ▶수요억제를 위해선 소비절약도 필요하겠지요.“인플레이션은 가장 확실한 강제 소비절약 수단이에요. 핵심은 해외 수입을 줄이는 일입니다. 특히 식량, 에너지, 원자재를 거의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수입품을 줄이게 되면 물가안정은 물론 국제수지방어, 환율안정에도 도움이 돼요. 공급 부족으로 초래된 물가 상승에는 수요 억제가 만병통치약인 거지요.”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수입품은 에너지와 식량 비중이 가장 크지요. 식량의 경우 예를 들어 지금 쌀가격이 폭락하고 밀 가격은 뛰고 있습니다. 쌀은 공급과잉 밀은 공급부족입니다. 이럴때 굳이 밀을 먹어야 되는가라는 생각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면 됩니다. 이런 비상시국엔 단기적으로 국민들이 수입곡물을 10%만 덜 먹고 쌀로 대체해 더 먹는다면 얼마나 많은 달러가 절약되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최근 유류세 인하는 물가안정에 역행하는 것 아닌가요. “유가가 오르면 절약을 해야 하는데 유류세를 내리면 소비수요가 줄지 않아 오히려 물가를 더 부추기게 되지요. 가격을 규제하면 공급은 줄고 수요는 늘어나게 마련입니다. 어려운 사람에게 지원을 집중하겠다는 이 정부의 정책기조와도 맞지 않아요. 유류세 인하는 무차별적인 혜택이기 때문입니다. 유가상승 시에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도움을 줄 수 있는 장치는 과거부터 잘 작동돼 왔어요. 트럭 한대 끌고 다니는 개인자영업자나 농민에게 기름을 싸게 공급해주고 있어요. 필요한 계층에는 보조금 형태로 지원하면 되는데 일률적으로 세금을 내리니 굳이 도와주지 않아도 될 사람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는 우를 범하지요” ▶물가를 잡기 위한 노력과 동시에 각종 정책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지출을 늘려야 할 상황입니다. 물가안정기조와는 배치되는 적극적 재정지출,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요. “아이러니컬하게도 전 정부가 재정을 너무 방만하게 운영하면서 이 정부에서는 긴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요. 예산이 방만하게 편성됐다는 건 깎을 수 있는 예산도 많다는 얘기 아닌가요. 대표적으로 공기업의 방만한 지출, 공무원 정원, 예비타당성조사없이 벌여놓은 토목공사들이지요. 토목공사의 경우 이미 시작한 건 어쩔 수 없지만 공사기간을 늘리면 예산을 줄일 수 있어요. 게다가 코로나 피해 보상 예산 등이 내년에는 필요 없게 될 테니 총량으로 대폭 흑자 예산을 편성, 국채 상환을 통해 긴축을 하면서도 필요한 투자 예산은 충분히 늘릴 수 있을 것입니다.”▶국채상환과 투자를 동시에 진행하자는 건가요“모든 경제정책의 최종 목표는 투자와 일자리 창출이에요. 민간투자는 규제에 막혀 있으니 어느 세월에 투자가 일어날까요. 민간이 못할 투자를 정부라도 해야 됩니다. 의료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면 좋겠습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느낀 점은 의료의 질은 우수하지만 양은 부족하다는 겁니다. 백신, 치료제, 병상 등 의료자원을 제때 확보하지 못해 낭패를 당한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공공부문이 병원을 지어 민간에 위탁하면 됩니다. 사우디에서 병원을 건설해 서울대병원이 위탁 운영하듯이요. 바이오 의료산업의 경우 정부 지원으로 선제적 투자가 이뤄져야 합니다”◇규제개혁…핵심은 가격규제 철폐 ▶거시경제운용수단이 일정부분 제약을 받는 상황에선 규제개혁과 같은 미시적 수단을 잘 써야 할 것 같은데요…역대 정부 모두 규제개혁을 공언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손톱 밑 가시든 전봇대든 모래 주머니든 행정적 규제 철폐에만 급급했기 때문이에요. 규제개혁의 핵심은 가격규제를 철폐하는 일입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특히 심했지요. 문 정부는 의료비 보육료 주거비 교육비 교통비 등 국민생계비절감에 나선다고 공언했어요. 은행수수료나 통신비도 마찬가지구요. 이런 가격규제를 통해 생계비 지출을 줄여 가처분소득을 늘린다는 게 소득주도성장의 일환이었는데 결과는 참담했지요.”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분명한 사실은 의료비든 보육료든 모두 가계에는 부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소득원이라는 사실입니다. 가격규제를 강화하면 해당 업종의 경쟁력을 떨어뜨려요. 교육을 예로 들까요. 14년째 대학등록금 동결하면서 대학교육이 초토화됐잖아요. 그러면서 반도체, 바이오 산업 인재 양성을 대학이 제대로 해 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결국 가격규제는 가장 암적인 규제입니다. 가격을 인위적으로 억제해 질적 향상과 고급화를 원천 봉쇄하면 결국 국민만 피해보게 마련입니다”▶경제활동에 제약을 가하는 또다른 핵심 규제는 토지이용규제지요.“토지를 싸게 공급하는 건 투자유치의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모든 산업에 악영향을 미치는 규제가 토지이용 규제입니다. 토지는 자본의 일부이긴 하지만 공급이 제한 돼 있다는 결정적인 제약이 있습니다. 농지보존 임야보존 환경보존 수도권 인구집중억제 등 이념적으로 규제의 덫에 갇혀 토지이용 규제가 너무 경직돼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농림업 외에 토지의 8%밖에 못쓰고 있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영국의 경우 13%를 쓰고 있어요. 투자 뿐 아니라 집값 안정에 필요한 게 땅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땅값으로는 어떻게 투자를 해도 국제경쟁력이 없어요” ▶SK하이닉스의 용인 클러스터는 부지 확보문제로 2년간 착공이 늦어졌지요. “토지 이용규제는 사전적으로 풀어줘야 합니다. 60, 70년대는 정부가 토지공급을 책임졌습니다. 농지·임야를 수용해 공단을 조성하고 기업에게 공장 지어달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왜 토지공급을 위해 정부가 책임지지 않습니까. 규제의 복마전인 땅을 투자 주체인 기업이 알아서 하라고 하는 건 투자를 하지 말라는 얘기와 같습니다. 가용토지를 선제적으로 공급하는 방식으로 지자체간 투자유치 경쟁이 불붙도록 해야 합니다. 토지의 선제적 공급은 집값 안정에도 도움 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투자를 하겠다는 기업이 나타나면 오히려 땅값 올리는데 지자체가 방조하고 있어요. 지역별로 투자유치 경쟁이 벌어지는 상황을 조성하지 못하면 규제개혁 100년 한다고 해도 투자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노동개혁은 어떻게 접근해야 합니까. “노동규제의 수혜자가 누구인지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모든 노동규제는 사용자 뿐 아니라 미취업노동자를 규제하고 있어요. 최저임금규제는 그 이하의 임금에선 취직하지 못하게 하는 노동자에 대한 규제입니다. 최저임금을 못 받는 근로자가 320만명정도 됩니다. 최저임금 이하라도 일할 용의가 있다는 거지요. 주 52시간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용자가 52시간 이상 일을 시키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좋은데 노동자가 그 이상 일할 자유까지 박탈해야 해야 할까요? 노동자가 원하는 자유를 노동자에게 돌려주는 것부터라도 시작했으면 좋겠어요”▶결국 선택의 자유를 넓혀주자는 게 핵심이군요. “최상위 10% 노동자의 기득권은 유지시켜주되 대신 취약계층 노동자들, 실업자와 미취업자들이 원하는 것은 풀어주자고 해야 합니다. 지역별, 연령별로 최저임금을 차등화하고 노조나 노동관서의 확인을 거쳐 52시간 이상도 일할 수 있게 해주면 됩니다. 호봉제 폐지, 직무급 도입 등 임금체계 개편도 노동자 개개인이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신입사원부터 차차 실시하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20년 후면 모두 직무급제로 갈 겁니다. 현재의 노동 규제의 수혜자는 상위 10% 남짓한 사람들입니다. 다른 선택을 원하는 노동자가 분명히 있어요. 획일적으로 바꾸려고 하지 말고 원하는 사람부터 선택의 폭을 넓혀 주는 방식으로 일단 시작하는 게 중요합니다”박 전 회장은…△1952년 부산 출생 △경기고, 서울대 법학과 △행정고시 17회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 △재정경제부 1차관 △우리금융지주 회장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 △전국은행연합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장 △안민정책포럼 이사장, 금융규제혁신회의 의장
    송길호 기자 2022.08.11
    [송길호 이데일리 논설위원 겸 에디터]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이 난맥상이다. 각종 인사논란과 설익은 정책으로 민심이반을 자초하며 초장부터 스텝이 꼬이고 있다. 각종 정책추진의 동력은 크게 약화됐고 의회를 장악한 야당의 벽에 막혀 각종 제도개혁작업도 난항이 예상된다. 미증유의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위기)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지금 윤 정부는 이 파고를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전 회장으로부터 해법을 들었다. 노무현정부 재정경제부 차관, 이명박정부 경제수석으로 정파에 관계없이 중용된 정통 경제관료인 그는 우리금융그룹 회장, 은행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최근엔 금융규제혁신회의 의장에 위촉되는 등 민관을 넘나들며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박 전 회장과의 인터뷰는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24%로 폭락한 지난 5일 광화문의 한 사무실에서 4시간 동안 진행됐다. 그는 시종일관 ‘국민설득’을 강조했다. 그는 “철권을 갖고 있던 전두환도 국민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며 “이 정부는 정책에 대한 수용도를 높이려는 노력이 너무 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책은 홍보전”이라며 “끊임없는 설득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저항의 강도를 낮추는 일이 성공적인 정책 추진의 토양”이라고 설명했다. 물가안정을 위한 각종 정책처방도, 규제개혁도 노동개혁도 연금개혁도 국민적 이해와 지지, 그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이뤄지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얘기다.◇경제정책…결국 홍보전▶윤석열정부의 각종 정책이 힘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에 대한 설득이 부족해요. 국민들에게 정책의 당위성을 이해시키려고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의문입니다. 전두환 시대와 같은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국민 설득을 위해 총력을 다했어요. 정책은 결국 홍보전이에요. 정치인은 국민들에게 끌려 다니게 마련입니다. 국민들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안돼요.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국민 5%만 늘리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결국은 국민과의 소통이 문제군요“국민들이 자발적으로 협조하도록 만들어야 해요. 옳은 처방을 내릴 때에도 이 약이 어떻게 당신에게 도움이 되는지 이해시켜야 해요. 정책을 추진할 때 궁극적으로 나라 경제에, 그리고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을 납득시키는 과정을 생략하니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요. 팩트만 가르쳐주면 우리 국민들은 현명하게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운동을 보세요. 달러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모두 알게 되니 자발적으로 금 모으기 운동을 벌였잖아요”▶어떤 식으로 설득하면 될까요 “지금 나오는 개별 정책들이 전체 국정기조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이해시켜야 해요. 정부가 제시한 국정기조에서 이 정책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그 효과는 어떤지 설득하는 과정이 보이지 않아요. 윤석열 정부는 ‘자유를 더 주겠다’, ‘민간주도로 하겠다’, ‘보편적복지가 아닌 선별적 복지를 통해 어려운 사람들을 더욱 두텁게 보호하겠다’고 했는데 각 부처에서 나오는 구체적인 정책들이 이런 기조에 부합하는지 제대로 설명을 안 합니다. 예컨대 내년도 세제개편안이 이 정부가 지향하는 자유, 민간주도, 선별적 복지와 어떻게 연결돼 있고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충분히 설명을 했어야 해요. 그런 과정이 없으니 부자감세 등 야당의 프레임에 걸려 논란이 되고 있지요” ◇물가안정...경제주체 역할분담 필요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는 물가안정입니다. 물가안정을 위해서는 국민들이 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지 이해시켜야 하겠군요. “각 경제주체들의 역할분담이 필요합니다. 가계는 남들도 고통분담을 하고 있다는 실상을 알아야 합니다. 인건비가 오르면 물가가 안 오를 수 없어요. 물가 오른 만큼 월급을 올리면 절대 물가 못 잡아요. 악순환의 고리지요. 사실 장사하는 사람들은 값을 올리지 못하고 폐업하기도 하고 값을 올려도 매상이 줄어 소득이 주는 형태로 이미 고통 분담을 하고 있어요. 장사는 많이 팔아야 돈을 벌지 비싸게 받는다고 돈을 버는 게 아니거든요. 월급쟁이들은 소득이 줄지는 않잖아요”▶핵심은 임금인상을 자제하자는 거군요. “물가상승의 고리를 조기에 차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임금상승을 억제하는 일이에요. 최근 정부가 대기업의 임금인상 자제를 요청한 것도 이 같은 맥락이지요. 다만 경제단체에서 이를 요구한 건 번지수를 잘 못 찾은 거예요. 양대 노총에 가서 설득했어야 했지요. 취약계층 노동자들이나 자영업자들의 실정은 대기업 월급쟁이들과 비교해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어야 했어요. 바로 수긍을 하지는 않겠지만 투쟁의 강도를 떨어뜨리는 정도의 효과는 있을 겁니다” ▶수요억제를 위해선 소비절약도 필요하겠지요.“인플레이션은 가장 확실한 강제 소비절약 수단이에요. 핵심은 해외 수입을 줄이는 일입니다. 특히 식량, 에너지, 원자재를 거의 모두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 수입품을 줄이게 되면 물가안정은 물론 국제수지방어, 환율안정에도 도움이 돼요. 공급 부족으로 초래된 물가 상승에는 수요 억제가 만병통치약인 거지요.”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수입품은 에너지와 식량 비중이 가장 크지요. 식량의 경우 예를 들어 지금 쌀가격이 폭락하고 밀 가격은 뛰고 있습니다. 쌀은 공급과잉 밀은 공급부족입니다. 이럴때 굳이 밀을 먹어야 되는가라는 생각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면 됩니다. 이런 비상시국엔 단기적으로 국민들이 수입곡물을 10%만 덜 먹고 쌀로 대체해 더 먹는다면 얼마나 많은 달러가 절약되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최근 유류세 인하는 물가안정에 역행하는 것 아닌가요. “유가가 오르면 절약을 해야 하는데 유류세를 내리면 소비수요가 줄지 않아 오히려 물가를 더 부추기게 되지요. 가격을 규제하면 공급은 줄고 수요는 늘어나게 마련입니다. 어려운 사람에게 지원을 집중하겠다는 이 정부의 정책기조와도 맞지 않아요. 유류세 인하는 무차별적인 혜택이기 때문입니다. 유가상승 시에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도움을 줄 수 있는 장치는 과거부터 잘 작동돼 왔어요. 트럭 한대 끌고 다니는 개인자영업자나 농민에게 기름을 싸게 공급해주고 있어요. 필요한 계층에는 보조금 형태로 지원하면 되는데 일률적으로 세금을 내리니 굳이 도와주지 않아도 될 사람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는 우를 범하지요” ▶물가를 잡기 위한 노력과 동시에 각종 정책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지출을 늘려야 할 상황입니다. 물가안정기조와는 배치되는 적극적 재정지출,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요. “아이러니컬하게도 전 정부가 재정을 너무 방만하게 운영하면서 이 정부에서는 긴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여지가 많아요. 예산이 방만하게 편성됐다는 건 깎을 수 있는 예산도 많다는 얘기 아닌가요. 대표적으로 공기업의 방만한 지출, 공무원 정원, 예비타당성조사없이 벌여놓은 토목공사들이지요. 토목공사의 경우 이미 시작한 건 어쩔 수 없지만 공사기간을 늘리면 예산을 줄일 수 있어요. 게다가 코로나 피해 보상 예산 등이 내년에는 필요 없게 될 테니 총량으로 대폭 흑자 예산을 편성, 국채 상환을 통해 긴축을 하면서도 필요한 투자 예산은 충분히 늘릴 수 있을 것입니다.”▶국채상환과 투자를 동시에 진행하자는 건가요“모든 경제정책의 최종 목표는 투자와 일자리 창출이에요. 민간투자는 규제에 막혀 있으니 어느 세월에 투자가 일어날까요. 민간이 못할 투자를 정부라도 해야 됩니다. 의료산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면 좋겠습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느낀 점은 의료의 질은 우수하지만 양은 부족하다는 겁니다. 백신, 치료제, 병상 등 의료자원을 제때 확보하지 못해 낭패를 당한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공공부문이 병원을 지어 민간에 위탁하면 됩니다. 사우디에서 병원을 건설해 서울대병원이 위탁 운영하듯이요. 바이오 의료산업의 경우 정부 지원으로 선제적 투자가 이뤄져야 합니다”◇규제개혁…핵심은 가격규제 철폐 ▶거시경제운용수단이 일정부분 제약을 받는 상황에선 규제개혁과 같은 미시적 수단을 잘 써야 할 것 같은데요…역대 정부 모두 규제개혁을 공언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손톱 밑 가시든 전봇대든 모래 주머니든 행정적 규제 철폐에만 급급했기 때문이에요. 규제개혁의 핵심은 가격규제를 철폐하는 일입니다. 문재인 정부에서 특히 심했지요. 문 정부는 의료비 보육료 주거비 교육비 교통비 등 국민생계비절감에 나선다고 공언했어요. 은행수수료나 통신비도 마찬가지구요. 이런 가격규제를 통해 생계비 지출을 줄여 가처분소득을 늘린다는 게 소득주도성장의 일환이었는데 결과는 참담했지요.”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분명한 사실은 의료비든 보육료든 모두 가계에는 부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소득원이라는 사실입니다. 가격규제를 강화하면 해당 업종의 경쟁력을 떨어뜨려요. 교육을 예로 들까요. 14년째 대학등록금 동결하면서 대학교육이 초토화됐잖아요. 그러면서 반도체, 바이오 산업 인재 양성을 대학이 제대로 해 주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결국 가격규제는 가장 암적인 규제입니다. 가격을 인위적으로 억제해 질적 향상과 고급화를 원천 봉쇄하면 결국 국민만 피해보게 마련입니다”▶경제활동에 제약을 가하는 또다른 핵심 규제는 토지이용규제지요.“토지를 싸게 공급하는 건 투자유치의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모든 산업에 악영향을 미치는 규제가 토지이용 규제입니다. 토지는 자본의 일부이긴 하지만 공급이 제한 돼 있다는 결정적인 제약이 있습니다. 농지보존 임야보존 환경보존 수도권 인구집중억제 등 이념적으로 규제의 덫에 갇혀 토지이용 규제가 너무 경직돼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농림업 외에 토지의 8%밖에 못쓰고 있습니다. 우리와 비슷한 영국의 경우 13%를 쓰고 있어요. 투자 뿐 아니라 집값 안정에 필요한 게 땅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땅값으로는 어떻게 투자를 해도 국제경쟁력이 없어요” ▶SK하이닉스의 용인 클러스터는 부지 확보문제로 2년간 착공이 늦어졌지요. “토지 이용규제는 사전적으로 풀어줘야 합니다. 60, 70년대는 정부가 토지공급을 책임졌습니다. 농지·임야를 수용해 공단을 조성하고 기업에게 공장 지어달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왜 토지공급을 위해 정부가 책임지지 않습니까. 규제의 복마전인 땅을 투자 주체인 기업이 알아서 하라고 하는 건 투자를 하지 말라는 얘기와 같습니다. 가용토지를 선제적으로 공급하는 방식으로 지자체간 투자유치 경쟁이 불붙도록 해야 합니다. 토지의 선제적 공급은 집값 안정에도 도움 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투자를 하겠다는 기업이 나타나면 오히려 땅값 올리는데 지자체가 방조하고 있어요. 지역별로 투자유치 경쟁이 벌어지는 상황을 조성하지 못하면 규제개혁 100년 한다고 해도 투자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노동개혁은 어떻게 접근해야 합니까. “노동규제의 수혜자가 누구인지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모든 노동규제는 사용자 뿐 아니라 미취업노동자를 규제하고 있어요. 최저임금규제는 그 이하의 임금에선 취직하지 못하게 하는 노동자에 대한 규제입니다. 최저임금을 못 받는 근로자가 320만명정도 됩니다. 최저임금 이하라도 일할 용의가 있다는 거지요. 주 52시간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용자가 52시간 이상 일을 시키는 것을 금지하는 것은 좋은데 노동자가 그 이상 일할 자유까지 박탈해야 해야 할까요? 노동자가 원하는 자유를 노동자에게 돌려주는 것부터라도 시작했으면 좋겠어요”▶결국 선택의 자유를 넓혀주자는 게 핵심이군요. “최상위 10% 노동자의 기득권은 유지시켜주되 대신 취약계층 노동자들, 실업자와 미취업자들이 원하는 것은 풀어주자고 해야 합니다. 지역별, 연령별로 최저임금을 차등화하고 노조나 노동관서의 확인을 거쳐 52시간 이상도 일할 수 있게 해주면 됩니다. 호봉제 폐지, 직무급 도입 등 임금체계 개편도 노동자 개개인이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신입사원부터 차차 실시하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20년 후면 모두 직무급제로 갈 겁니다. 현재의 노동 규제의 수혜자는 상위 10% 남짓한 사람들입니다. 다른 선택을 원하는 노동자가 분명히 있어요. 획일적으로 바꾸려고 하지 말고 원하는 사람부터 선택의 폭을 넓혀 주는 방식으로 일단 시작하는 게 중요합니다”박 전 회장은…△1952년 부산 출생 △경기고, 서울대 법학과 △행정고시 17회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 △재정경제부 1차관 △우리금융지주 회장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 △전국은행연합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장 △안민정책포럼 이사장, 금융규제혁신회의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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