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생활부

김영환

기자

그해 오늘

  • 15년 만에 잡힌 살인범, 무죄..부산 다방女 살해사건[그해 오늘]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02년 5월31일. 부산 강서구 명지동 일대 해변에 마대자루 하나가 밀려왔다. 주변을 지나던 이가 묶인 자루 끈을 풀어보고 까무러쳤다. 자루 안에는 검은 비닐봉지에 싸인 여성의 시신이 들어 있었다. 전날 실종 신고가 접수된 스물두 살 여성 A씨였다.2002년 5월31일 부산 강서구 명지동 해변에서 발견된 마대자루(빨간 원).(사진=연합뉴스)사건은 열흘 전 5월21일로 거슬러 올라가 발생했다. 다방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A씨의 퇴근길은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이튿날 말도 없이 다방에 출근하지 않았다. 다방에서 연락해봤지만 닿지 않았다. 가족과 연락도 끊겼다. 혼자 사는 A씨를 걱정한 가족이 집으로 찾아갔지만 만날 수 없었다. 가족이 실종 신고한 지 하루 만에 A씨는 변사체로 발견됐다.A씨 금융거래 내역을 추적하자 사건의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실종된 다음날 다방 근처 은행에서 A씨 통장에 있던 저축 약 300만원이 인출됐다. CCTV를 틀어보니 인출자는 A씨가 아닌 의문의 남성이었다. 이어 6월12일, 다시 A씨의 통장에서 500만원이 인출됐다. 이미 A씨는 변사한 채 발견된 뒤였다. 이번에는 신원을 알기 어려운 여성이 돈을 빼 갔다.돈을 찾아간 남성과 여성은 A씨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됐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신원을 확인할 수 없어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시간이 흘러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폐지됐다. 여기에 발맞춰 경찰은 2015년 미제 전담팀을 꾸리고 A씨 수배 전단을 재배포했다.미제로 묻힐 뻔한 사건은 시민의 제보로 실마리를 잡았다. 경찰은 제보를 토대로 2017년 3월부터 8월까지 용의자 4명을 체포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15년 만이었다.CCTV 화면 속 남성은 양모씨. 수사 결과 양씨는 2002년 5월21일 A씨를 납치해 살해하고 마대자루에 넣어 바다에 유기한 것으로 조사됐다. 양씨는 이튿날 A씨 통장에서 돈을 인출하고, 이후 아는 여성을 시켜서 재차 A씨 통장에서 돈을 빼냈다.사실 양씨가 A씨를 살해한 걸 지목하는 직접 증거는 전혀 없었다. 양씨는 우연히 주운 A씨 가방에 있던 통장으로 돈을 인출한 것뿐이라고 했다. 살인 혐의는 부인했다. 그런데 양씨의 동거녀 진술이 결정적이었다. “물컹한 내용물이 담긴 마대자루 옮기는 걸 도왔다”는 것이다.검찰은 동거녀 진술 등을 토대로 양씨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양씨를 제외한 나머지 공범은 사기·사문서위조·위조사문서행사 혐의를 받았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양씨는 1심에 이어 2심에서 연달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반전은 3심에서 일어났다. 대법원은 양씨의 무기징역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2심으로 내려보냈다. A씨 살인 사건 범인으로 유력하게 의심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닐 수 있는 일말의 여지가 있다는 취지다. 동거녀 진술이 오락가락하고, 공범으로 몰리지 않으려 거짓으로 증언했을 수 있다고 봤다.제삼자 범행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했다. 애초 수사 초기 다방 단골 B씨가 의심을 받았다. B씨는 A씨가 사망 직전에 식사했던 인물인데, 경찰 조사에서 당일 행적을 허위로 진술했다. 공교롭게 A씨가 사망한 이후 연락을 뚝 끊었다. 이후 경찰 수사는 A씨 통장에서 돈을 인출한 이들에게 집중됐고, B씨는 자연스레 용의 선상에서 멀어져갔다.형사 재판은 ‘증거가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으로’를 원칙으로 삼는다. 범인 열 명을 놓치더라도 억울한 이를 한 명이라도 만들지 않으려고 경계하는 것이다.파기환송심 재판부는 2019년 7월 양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전재욱 기자 2023.05.31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02년 5월31일. 부산 강서구 명지동 일대 해변에 마대자루 하나가 밀려왔다. 주변을 지나던 이가 묶인 자루 끈을 풀어보고 까무러쳤다. 자루 안에는 검은 비닐봉지에 싸인 여성의 시신이 들어 있었다. 전날 실종 신고가 접수된 스물두 살 여성 A씨였다.2002년 5월31일 부산 강서구 명지동 해변에서 발견된 마대자루(빨간 원).(사진=연합뉴스)사건은 열흘 전 5월21일로 거슬러 올라가 발생했다. 다방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던 A씨의 퇴근길은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이튿날 말도 없이 다방에 출근하지 않았다. 다방에서 연락해봤지만 닿지 않았다. 가족과 연락도 끊겼다. 혼자 사는 A씨를 걱정한 가족이 집으로 찾아갔지만 만날 수 없었다. 가족이 실종 신고한 지 하루 만에 A씨는 변사체로 발견됐다.A씨 금융거래 내역을 추적하자 사건의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실종된 다음날 다방 근처 은행에서 A씨 통장에 있던 저축 약 300만원이 인출됐다. CCTV를 틀어보니 인출자는 A씨가 아닌 의문의 남성이었다. 이어 6월12일, 다시 A씨의 통장에서 500만원이 인출됐다. 이미 A씨는 변사한 채 발견된 뒤였다. 이번에는 신원을 알기 어려운 여성이 돈을 빼 갔다.돈을 찾아간 남성과 여성은 A씨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됐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신원을 확인할 수 없어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시간이 흘러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폐지됐다. 여기에 발맞춰 경찰은 2015년 미제 전담팀을 꾸리고 A씨 수배 전단을 재배포했다.미제로 묻힐 뻔한 사건은 시민의 제보로 실마리를 잡았다. 경찰은 제보를 토대로 2017년 3월부터 8월까지 용의자 4명을 체포했다. 사건이 발생한 지 15년 만이었다.CCTV 화면 속 남성은 양모씨. 수사 결과 양씨는 2002년 5월21일 A씨를 납치해 살해하고 마대자루에 넣어 바다에 유기한 것으로 조사됐다. 양씨는 이튿날 A씨 통장에서 돈을 인출하고, 이후 아는 여성을 시켜서 재차 A씨 통장에서 돈을 빼냈다.사실 양씨가 A씨를 살해한 걸 지목하는 직접 증거는 전혀 없었다. 양씨는 우연히 주운 A씨 가방에 있던 통장으로 돈을 인출한 것뿐이라고 했다. 살인 혐의는 부인했다. 그런데 양씨의 동거녀 진술이 결정적이었다. “물컹한 내용물이 담긴 마대자루 옮기는 걸 도왔다”는 것이다.검찰은 동거녀 진술 등을 토대로 양씨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양씨를 제외한 나머지 공범은 사기·사문서위조·위조사문서행사 혐의를 받았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양씨는 1심에 이어 2심에서 연달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반전은 3심에서 일어났다. 대법원은 양씨의 무기징역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2심으로 내려보냈다. A씨 살인 사건 범인으로 유력하게 의심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닐 수 있는 일말의 여지가 있다는 취지다. 동거녀 진술이 오락가락하고, 공범으로 몰리지 않으려 거짓으로 증언했을 수 있다고 봤다.제삼자 범행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했다. 애초 수사 초기 다방 단골 B씨가 의심을 받았다. B씨는 A씨가 사망 직전에 식사했던 인물인데, 경찰 조사에서 당일 행적을 허위로 진술했다. 공교롭게 A씨가 사망한 이후 연락을 뚝 끊었다. 이후 경찰 수사는 A씨 통장에서 돈을 인출한 이들에게 집중됐고, B씨는 자연스레 용의 선상에서 멀어져갔다.형사 재판은 ‘증거가 의심스러우면 피고인의 이익으로’를 원칙으로 삼는다. 범인 열 명을 놓치더라도 억울한 이를 한 명이라도 만들지 않으려고 경계하는 것이다.파기환송심 재판부는 2019년 7월 양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 유일한 목격자는 숨을 거두고..미제사건 '허양 납치살해'[그해 오늘]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08년 5월30일 새벽 4시10분께. 대구 달성군 유가면(현 유가읍) 한 민가에 잠을 자던 열한 살 허은정 양은 비명을 듣고 깼다. 소리는 할아버지 방에서 흘러나왔다. 둔탁한 충돌음과 할아버지 신음이 섞여 있었다. 부리나케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괴한 두 명이 70대 할아버지를 폭행하고 있었다.허은정양 납치살해 용의자 수배 전단.허 양이 격렬하게 저항하는 새 함께 잠을 자고 있던 허 양의 동생이 이웃에 달려가 도움을 요청했다. 허사였다. 이웃이 집에 도착해 보니 할아버지만 가쁜 숨을 몰아쉴 뿐 허 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괴한들이 저항하는 허 양을 데리고서 어둠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새벽 여명이 물러가지 않은 시각이라서 목격자도 마땅히 없었다.수사는 면식범의 소행으로 좁혀졌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날 낯선 남자들이 허 양의 집을 기웃거렸다고 한다. 금품을 노린 강도 행각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는 허 양네 집은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폐지를 주워서 생계를 잇는 정도였다. 실제로 당일 도난 당한 물품도 없었다.서로 간에 호칭도 이를 뒷받침했다. 범인들은 할아버지는 “너 같은 XX”라고 했고, 허 양이 범인들에게 저항할 때 “아저씨 왜 그러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모르는 사이보다 아는 사람끼리 주고받는 호칭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유일한 목격자는 허 양의 할아버지의 진술을 토대로 수사기 진행됐다. 그런데 진술이 오락가락해서 용의자를 특정하는 데 애를 먹었다. 수사가 갈피를 못 잡고 2주가 지난 새 허 양이 돌아왔다. 집에서 1.5km 정도 떨어진 야산 등성이에 암매장된 채였다. 주변 지형(야산)을 이용한 걸 보면 동네 주민일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했다. 경찰은 수사를 공개로 전환하고 전국에 몽타주를 뿌렸다.수사는 지지부진했다. 목격자가 유일한 게 컸다. 허 양의 동생도 물론이고 동네 사람 가운데 괴한을 정확히 보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할아버지의 진술은 여전히 신빙성이 떨어졌다. 범인이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기를 반복했다. 시골 마을에는 CCTV도 없었다.급기야 수사를 원점으로 돌려야 하는 건 아닌지도 몰랐다. 면식범의 소행이라면 할아버지의 진술이 구체적일 법한데 그렇지 않고 오락가락했기 때문이다. 외려 할아버지가 켕기는 사실이 있어서 말을 바꾸는 건 아닌지 하는 시선도 뒤따랐다.허 양의 할아버지는 그해 8월21일 숨을 거뒀다. 지병인 폐렴이 악화한 탓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지 84일 만이었는데 수사는 이렇다 할 진척이 없는 상황이었다. 유일한 목격자가 사라지면서 수사는 미궁 속으로 빠졌다. 사건은 이제껏 미제로 남아 있다.
    전재욱 기자 2023.05.30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08년 5월30일 새벽 4시10분께. 대구 달성군 유가면(현 유가읍) 한 민가에 잠을 자던 열한 살 허은정 양은 비명을 듣고 깼다. 소리는 할아버지 방에서 흘러나왔다. 둔탁한 충돌음과 할아버지 신음이 섞여 있었다. 부리나케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괴한 두 명이 70대 할아버지를 폭행하고 있었다.허은정양 납치살해 용의자 수배 전단.허 양이 격렬하게 저항하는 새 함께 잠을 자고 있던 허 양의 동생이 이웃에 달려가 도움을 요청했다. 허사였다. 이웃이 집에 도착해 보니 할아버지만 가쁜 숨을 몰아쉴 뿐 허 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괴한들이 저항하는 허 양을 데리고서 어둠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새벽 여명이 물러가지 않은 시각이라서 목격자도 마땅히 없었다.수사는 면식범의 소행으로 좁혀졌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날 낯선 남자들이 허 양의 집을 기웃거렸다고 한다. 금품을 노린 강도 행각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는 허 양네 집은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폐지를 주워서 생계를 잇는 정도였다. 실제로 당일 도난 당한 물품도 없었다.서로 간에 호칭도 이를 뒷받침했다. 범인들은 할아버지는 “너 같은 XX”라고 했고, 허 양이 범인들에게 저항할 때 “아저씨 왜 그러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모르는 사이보다 아는 사람끼리 주고받는 호칭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 분석이다.유일한 목격자는 허 양의 할아버지의 진술을 토대로 수사기 진행됐다. 그런데 진술이 오락가락해서 용의자를 특정하는 데 애를 먹었다. 수사가 갈피를 못 잡고 2주가 지난 새 허 양이 돌아왔다. 집에서 1.5km 정도 떨어진 야산 등성이에 암매장된 채였다. 주변 지형(야산)을 이용한 걸 보면 동네 주민일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했다. 경찰은 수사를 공개로 전환하고 전국에 몽타주를 뿌렸다.수사는 지지부진했다. 목격자가 유일한 게 컸다. 허 양의 동생도 물론이고 동네 사람 가운데 괴한을 정확히 보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할아버지의 진술은 여전히 신빙성이 떨어졌다. 범인이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기를 반복했다. 시골 마을에는 CCTV도 없었다.급기야 수사를 원점으로 돌려야 하는 건 아닌지도 몰랐다. 면식범의 소행이라면 할아버지의 진술이 구체적일 법한데 그렇지 않고 오락가락했기 때문이다. 외려 할아버지가 켕기는 사실이 있어서 말을 바꾸는 건 아닌지 하는 시선도 뒤따랐다.허 양의 할아버지는 그해 8월21일 숨을 거뒀다. 지병인 폐렴이 악화한 탓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지 84일 만이었는데 수사는 이렇다 할 진척이 없는 상황이었다. 유일한 목격자가 사라지면서 수사는 미궁 속으로 빠졌다. 사건은 이제껏 미제로 남아 있다.
  • '배고파서 그랬어요'..수락산 女등산객 피살[그해 오늘]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16년 5월29일 아침 이른 시각 5시20분. 서울 노원구 수락산 등산로에서 5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피해자는 흉기로 급소를 공격당해 절명했다. 인적이 드물고 CCTV도 없던 차에 수사는 미궁이었다. 같은 날 저녁 60대 남성이 경찰서에 나타나면서 해결됐다. 이 남성은 “내가 범인”이라고 했다.김학봉(사진=연합뉴스)범인 김학봉은 그해 1월 출소한 강력 전과를 가진 인물이다. 2001년 경북 청도군에서 강도 살인 혐의로 15년 형을 선고받고 이때까지 만기 복역했다. 출소하고 넉 달 만에 또다시 범행을 저지른 이유는 “배가 고파서 (돈을 빼앗아) 밥을 사 먹으려고”(경찰 진술)였다. 출소하고 유랑하며 소일거리로 연명하던 차에 범행을 계획했다. 애초 금품만 빼앗으려고 했으나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반항하자 살해했다고 한다.김은 조사를 받으면서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애초 ‘처음 만나는 사람을 살해하려고 했다’고 진술해 ‘묻지마 살인’이 의심됐다. ‘두 명을 더 죽이려고 했다’는 취지의 진술도 했다. 나중에 경찰과 언론에서 이 말을 번복했다. “홧김에 했던 말”이라는 것이다. 현장 검증 당시는 유족에 “죄송하다”고 했다.김학봉의 언행과 감정 기복은 앓고 있던 조현병과 연관있다. 김은 1990년대까지 알코올 중독과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이런 이유에서 2001년 강도 살인죄 재판에서 심신 미약 판정을 받아 양형에 반영됐다.그렇기에 수락산 범행을 예방했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앞선 재판을 받을 당시 정교하게 정신 감정이 이뤄졌으면 치료 감호 처분까지 뒤따랐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이 불발하면서 자연스레 치료 감호 명령도 뒤따르지 않았다. 치료감호는 심신미약자 등을 시설에서 치료하고 사회로 복귀하도록 돕는 제도다.결국 15년 징역을 사는 동안은 물론 출소하고서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수락산 범행을 저지르기 직전에도 전조는 있었다. ‘환청이 들린다’고 호소하고 정신병원에서 처방약을 받았다.이번 재판에서도 김은 다시 심신 미약을 주장했다. 정식으로 이뤄진 정신감정 결과는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있다’는 취지였다. 김이 빠져나갈 여지가 없었다. 검찰은 법정최고형 사형을 구형했다. 범행 수법이 잔인한 데다가 피해자 유족이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점 등을 고려한 결정이었다.법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생명을 박탈하기보다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해 잘못을 참회하고 속죄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유족이 반발하고 검찰이 항소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무기징역 판결은 항소심에서 확정됐다.
    전재욱 기자 2023.05.29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16년 5월29일 아침 이른 시각 5시20분. 서울 노원구 수락산 등산로에서 5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피해자는 흉기로 급소를 공격당해 절명했다. 인적이 드물고 CCTV도 없던 차에 수사는 미궁이었다. 같은 날 저녁 60대 남성이 경찰서에 나타나면서 해결됐다. 이 남성은 “내가 범인”이라고 했다.김학봉(사진=연합뉴스)범인 김학봉은 그해 1월 출소한 강력 전과를 가진 인물이다. 2001년 경북 청도군에서 강도 살인 혐의로 15년 형을 선고받고 이때까지 만기 복역했다. 출소하고 넉 달 만에 또다시 범행을 저지른 이유는 “배가 고파서 (돈을 빼앗아) 밥을 사 먹으려고”(경찰 진술)였다. 출소하고 유랑하며 소일거리로 연명하던 차에 범행을 계획했다. 애초 금품만 빼앗으려고 했으나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반항하자 살해했다고 한다.김은 조사를 받으면서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애초 ‘처음 만나는 사람을 살해하려고 했다’고 진술해 ‘묻지마 살인’이 의심됐다. ‘두 명을 더 죽이려고 했다’는 취지의 진술도 했다. 나중에 경찰과 언론에서 이 말을 번복했다. “홧김에 했던 말”이라는 것이다. 현장 검증 당시는 유족에 “죄송하다”고 했다.김학봉의 언행과 감정 기복은 앓고 있던 조현병과 연관있다. 김은 1990년대까지 알코올 중독과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이런 이유에서 2001년 강도 살인죄 재판에서 심신 미약 판정을 받아 양형에 반영됐다.그렇기에 수락산 범행을 예방했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앞선 재판을 받을 당시 정교하게 정신 감정이 이뤄졌으면 치료 감호 처분까지 뒤따랐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이 불발하면서 자연스레 치료 감호 명령도 뒤따르지 않았다. 치료감호는 심신미약자 등을 시설에서 치료하고 사회로 복귀하도록 돕는 제도다.결국 15년 징역을 사는 동안은 물론 출소하고서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수락산 범행을 저지르기 직전에도 전조는 있었다. ‘환청이 들린다’고 호소하고 정신병원에서 처방약을 받았다.이번 재판에서도 김은 다시 심신 미약을 주장했다. 정식으로 이뤄진 정신감정 결과는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있다’는 취지였다. 김이 빠져나갈 여지가 없었다. 검찰은 법정최고형 사형을 구형했다. 범행 수법이 잔인한 데다가 피해자 유족이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점 등을 고려한 결정이었다.법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생명을 박탈하기보다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해 잘못을 참회하고 속죄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유족이 반발하고 검찰이 항소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무기징역 판결은 항소심에서 확정됐다.
  • 손발묶인 치매노인 잠든 요양병원 방화..28명 사상 참사[그해 오늘]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14년 5월28일 새벽 0시27분께. 전남 장성군 삼계면에 있는 병원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초동 대응이 빨랐던 터에 불은 진화를 시작한 지 수분 만에 진압됐다. 그런데 결과는 28명이 사상하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여가 지나 또다시 터진 초대형 참사였다.체포된 방화범 김모씨.(사진=연합뉴스)불이 난 병원은 효사랑요양병원.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매 질환을 앓는 60~90대 노인이 요양 치료를 위해 입원해 있었다. 의료진만 127명에 이르는 정부인증 의료기관으로 선정된 규모가 있는 요양병원이었다.사건이 발생한 당시 환자 324명이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불이 시작된 지점은 병원 별관 2층. 2층에는 환자 34명이, 1층에는 환자 44명이 입원한 상태였다. 의료인력이 부족한 모두가 잠든 새벽에, 거동이 불편하고 상황 판단이 더딘 노인들은 무방비 상태로 화재에 노출됐다. 소방당국이 신속하게 화재를 진압했지만 안타까운 희생이 커진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결국 이 불로 환자(21명)와 간호조무사 22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화재는 방화였다. 범인은 이 병원에 입원한 80대 남성 김모씨. 발화 지점 별관 다용도실에 김씨가 들어갔다가 나온 직후에 불이 시작된 사실이 CCTV로 드러났다. 범행 한 달 전쯤 입소한 김씨는 주변 환자와 의료진과 갈등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평소 “가족이 강제로 수면제를 먹여 입원시켰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김씨는 현존건조물방화치사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재판에서 자신은 치매 환자라서 상황을 판단할 능력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CCTV 화면을 보면 범행 당시 간호조무사의 눈을 피하고, 범행 도구인 라이터를 현장에 버리는 모습이 찍혔다. 정상적인 인지능력을 가진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벌인 범행이었다. 1심은 징역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형량이 너무 무겁다고 항소한 김씨는 항소심 재판 중에 노환으로 사망했다.병원 측은 화를 키운 측면이 있었고, 이후에도 증거를 감추려고 시도했다. 현행법상 갖춰야 하는 소방 시설이 허술했다. 유족은 희생자의 사진을 공개하고 손목과 발목에 결박 흔적이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환자의 정형 행동이나 자해 등을 방지할 목적으로 병원이 편의상 손발을 묶었다는 것이다. 최소한 환자 2명이 결박 상태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대피와 구조가 늦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잘잘못을 가리려는 수사가 시작되자 주요 증거를 없앴다.병원 이사장은 징역 3년이 확정됐다. 증거를 없애라고 지시하고 수행한 병원 관계자는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받았다.이후 의료시설에 대한 소방 방재 체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 일었다. 그러나 2018년 1월26일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 화재(누전)로 47명이 사망하고 112명이 부상했다. 입원 환자 가운데 요양시설 입소자의 피해가 컸다. 병원에는 스프링쿨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전재욱 기자 2023.05.28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2014년 5월28일 새벽 0시27분께. 전남 장성군 삼계면에 있는 병원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초동 대응이 빨랐던 터에 불은 진화를 시작한 지 수분 만에 진압됐다. 그런데 결과는 28명이 사상하는 비극으로 이어졌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여가 지나 또다시 터진 초대형 참사였다.체포된 방화범 김모씨.(사진=연합뉴스)불이 난 병원은 효사랑요양병원.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매 질환을 앓는 60~90대 노인이 요양 치료를 위해 입원해 있었다. 의료진만 127명에 이르는 정부인증 의료기관으로 선정된 규모가 있는 요양병원이었다.사건이 발생한 당시 환자 324명이 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불이 시작된 지점은 병원 별관 2층. 2층에는 환자 34명이, 1층에는 환자 44명이 입원한 상태였다. 의료인력이 부족한 모두가 잠든 새벽에, 거동이 불편하고 상황 판단이 더딘 노인들은 무방비 상태로 화재에 노출됐다. 소방당국이 신속하게 화재를 진압했지만 안타까운 희생이 커진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결국 이 불로 환자(21명)와 간호조무사 22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화재는 방화였다. 범인은 이 병원에 입원한 80대 남성 김모씨. 발화 지점 별관 다용도실에 김씨가 들어갔다가 나온 직후에 불이 시작된 사실이 CCTV로 드러났다. 범행 한 달 전쯤 입소한 김씨는 주변 환자와 의료진과 갈등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평소 “가족이 강제로 수면제를 먹여 입원시켰다”는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김씨는 현존건조물방화치사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재판에서 자신은 치매 환자라서 상황을 판단할 능력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CCTV 화면을 보면 범행 당시 간호조무사의 눈을 피하고, 범행 도구인 라이터를 현장에 버리는 모습이 찍혔다. 정상적인 인지능력을 가진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벌인 범행이었다. 1심은 징역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형량이 너무 무겁다고 항소한 김씨는 항소심 재판 중에 노환으로 사망했다.병원 측은 화를 키운 측면이 있었고, 이후에도 증거를 감추려고 시도했다. 현행법상 갖춰야 하는 소방 시설이 허술했다. 유족은 희생자의 사진을 공개하고 손목과 발목에 결박 흔적이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환자의 정형 행동이나 자해 등을 방지할 목적으로 병원이 편의상 손발을 묶었다는 것이다. 최소한 환자 2명이 결박 상태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대피와 구조가 늦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잘잘못을 가리려는 수사가 시작되자 주요 증거를 없앴다.병원 이사장은 징역 3년이 확정됐다. 증거를 없애라고 지시하고 수행한 병원 관계자는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받았다.이후 의료시설에 대한 소방 방재 체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 일었다. 그러나 2018년 1월26일 발생한 밀양 세종병원 화재(누전)로 47명이 사망하고 112명이 부상했다. 입원 환자 가운데 요양시설 입소자의 피해가 컸다. 병원에는 스프링쿨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 보험금이 뭐기에..니코틴 탄 찬물 먹여 남편 죽인 아내[그해 오늘]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새벽에 찬물을 마시고 잠든 40대 남편이 죽었다. ‘죽음의 독극물’로 불리는 니코틴 원액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범인은 아내였다.이미지=픽사베이.2021년 5월 27일 오전 7시 20분께. 평소 지병 없이 건강하던 A(당시 46세)씨가 갑자기 숨졌다. 하지만 사실 전날부터 A씨의 몸 상태는 급격히 나빠지고 있었다.전날인 5월 26일 오전 6시 50분께 A씨는 경기도 화성시 자택에서 아내 B(37)씨가 건넨 미숫가루를 먹고 출근했다. 그러나 30여 분 뒤 체한 것 같은 가슴 답답함을 느낀 A씨는 회사를 조퇴하고 그날 오후 3시 귀가했다.속이 좋지 않아 이날 내내 골골대던 A씨는 결국 저녁으로 아내가 만들어 준 흰죽을 먹었다. 그러나 A씨는 오히려 극심한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이날 오후 10시 38분께 응급실로 실려 갔다.수액과 진통제를 맞고 호전된 A씨는 27일 오전 1시께 귀가했다. 그러고선 아내가 건넨 찬물을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더이상 깨어나지 못했다.아내 B씨는 응급실에서 제대로 조치를 하지 않아 남편이 사망했다며 ‘의료 사고’를 주장했다. 그러나 40여 일 뒤 밝혀진 부검 결과 A씨의 사인은 급성 니코틴 중독이었다. A씨의 혈액에서 치사량의 니코틴이 검출됐다. A씨는 사건 발생 수년 전 아내가 임신하자 그때부터 담배를 끊은 상태였다.이를 수상히 여긴 경찰은 곧 수사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B씨가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전자담배용 니코틴 액상에 불법으로 니코틴 농도를 높인 이른바 ‘닉샷’ 용액을 구매한 사실이 확인됐다. B씨는 남편의 금연 사실을 숨기기 위해 지인에게 ‘A씨가 생전에 담배를 피웠다고 수사 기관에 얘기해 달라’고 부탁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B씨에게 1억여 원의 빚이 있었고 남편 A씨의 사망 보험금이 최대 1억 원 이상이라는 사실도 확인하자 경찰은 같은 해 11월 B씨를 A씨 살해 혐의 등으로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 수사 결과 B씨는 자신의 내연 관계를 남편 A씨에게 들키자 A씨 명의로 가입된 사망 보험금 등을 노리고 A씨에게 치사량이 넘는 니코틴 원액을 탄 미숫가루, 흰죽, 찬물을 먹게 해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B씨는 A씨 사망 직후 보험사에 A씨의 사망 보험금을 청구했다.니코틴은 주로 담배에 많이 들어 있는 성분으로 순수한 니코틴은 무색무취의 액체로 물과 알코올에 잘 녹는다. 성인 기준 3.7~5.8mg만 섭취해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흔히 두 방울이 치사량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B씨는 1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 받았으나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의 재판을 받아 왔다. 그러다 지난 2월 항소심에서도 징역 30년을 선고 받아 법정 구속됐다.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공소 사실 중 미숫가루와 흰죽의 경우 A씨가 이로 인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합리적 의심이 배제될 정도로 B씨의 범죄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무죄로 봤다. 의료진 및 법의학자 등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볼 때 A씨가 호소한 증상들이 니코틴 중독이 아닌 식중독일 수도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그러나 재판부는 B씨가 남편이 숨지기 전 여러 차례에 걸쳐 다량의 액상 니코틴을 구매한 점, 연초나 전자담배를 피우지 않는 A씨 몸에서 치사 농도의 니코틴이 검출된 점 등에 비춰봤을 때 A씨가 퇴원한 뒤 집에서 니코틴이 포함된 물을 마시고 숨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이연호 기자 2023.05.27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새벽에 찬물을 마시고 잠든 40대 남편이 죽었다. ‘죽음의 독극물’로 불리는 니코틴 원액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범인은 아내였다.이미지=픽사베이.2021년 5월 27일 오전 7시 20분께. 평소 지병 없이 건강하던 A(당시 46세)씨가 갑자기 숨졌다. 하지만 사실 전날부터 A씨의 몸 상태는 급격히 나빠지고 있었다.전날인 5월 26일 오전 6시 50분께 A씨는 경기도 화성시 자택에서 아내 B(37)씨가 건넨 미숫가루를 먹고 출근했다. 그러나 30여 분 뒤 체한 것 같은 가슴 답답함을 느낀 A씨는 회사를 조퇴하고 그날 오후 3시 귀가했다.속이 좋지 않아 이날 내내 골골대던 A씨는 결국 저녁으로 아내가 만들어 준 흰죽을 먹었다. 그러나 A씨는 오히려 극심한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이날 오후 10시 38분께 응급실로 실려 갔다.수액과 진통제를 맞고 호전된 A씨는 27일 오전 1시께 귀가했다. 그러고선 아내가 건넨 찬물을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으나 더이상 깨어나지 못했다.아내 B씨는 응급실에서 제대로 조치를 하지 않아 남편이 사망했다며 ‘의료 사고’를 주장했다. 그러나 40여 일 뒤 밝혀진 부검 결과 A씨의 사인은 급성 니코틴 중독이었다. A씨의 혈액에서 치사량의 니코틴이 검출됐다. A씨는 사건 발생 수년 전 아내가 임신하자 그때부터 담배를 끊은 상태였다.이를 수상히 여긴 경찰은 곧 수사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B씨가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전자담배용 니코틴 액상에 불법으로 니코틴 농도를 높인 이른바 ‘닉샷’ 용액을 구매한 사실이 확인됐다. B씨는 남편의 금연 사실을 숨기기 위해 지인에게 ‘A씨가 생전에 담배를 피웠다고 수사 기관에 얘기해 달라’고 부탁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B씨에게 1억여 원의 빚이 있었고 남편 A씨의 사망 보험금이 최대 1억 원 이상이라는 사실도 확인하자 경찰은 같은 해 11월 B씨를 A씨 살해 혐의 등으로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 수사 결과 B씨는 자신의 내연 관계를 남편 A씨에게 들키자 A씨 명의로 가입된 사망 보험금 등을 노리고 A씨에게 치사량이 넘는 니코틴 원액을 탄 미숫가루, 흰죽, 찬물을 먹게 해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 B씨는 A씨 사망 직후 보험사에 A씨의 사망 보험금을 청구했다.니코틴은 주로 담배에 많이 들어 있는 성분으로 순수한 니코틴은 무색무취의 액체로 물과 알코올에 잘 녹는다. 성인 기준 3.7~5.8mg만 섭취해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흔히 두 방울이 치사량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B씨는 1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 받았으나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의 재판을 받아 왔다. 그러다 지난 2월 항소심에서도 징역 30년을 선고 받아 법정 구속됐다.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공소 사실 중 미숫가루와 흰죽의 경우 A씨가 이로 인해 사망에 이르렀다는 합리적 의심이 배제될 정도로 B씨의 범죄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무죄로 봤다. 의료진 및 법의학자 등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볼 때 A씨가 호소한 증상들이 니코틴 중독이 아닌 식중독일 수도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그러나 재판부는 B씨가 남편이 숨지기 전 여러 차례에 걸쳐 다량의 액상 니코틴을 구매한 점, 연초나 전자담배를 피우지 않는 A씨 몸에서 치사 농도의 니코틴이 검출된 점 등에 비춰봤을 때 A씨가 퇴원한 뒤 집에서 니코틴이 포함된 물을 마시고 숨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 무자격자 용접에 20분 만에 124명 사상 고양터미널 화재[그해 오늘]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불이 나 20분 만에 12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철저한 인재(人災)였다.지난 2014년 5월 26일 발생한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현장 모습. 사진=뉴스1.2014년 5월 26일 오전 9시 5분께 경기도 고양시 백석동 고양종합터미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한 주의 시작 월요일의 아침이었다. CJ푸드빌은 지하 1층 공간을 임차해 외식 업체들에 다시 내어 주는 푸드 코트(food court) 사업을 위해 공사를 한창 진행 중이었다.그러던 중 갑자기 불꽃이 천장을 향해 치솟았다. A사, B사를 거쳐 개인 사업자에게 하도급돼 진행 중이던 가스 배관 작업 중, 누출된 가스에 용접 불꽃이 튀었다. 이는 곧 천장의 우레탄 폼으로 옮겨 붙었다.유독 가스를 품은 연기는 열기와 함께 급속히 퍼져 나갔지만 소방 장비들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특히 공사 기간을 줄이기 위해 스프링클러 배관의 물을 빼놓았으며 소화기조차 없었다. 연기 확산을 막아줄 방화 셔터도 전원이 차단돼 작동하지 않았고, 화재 자동 연동 장치를 수동으로 전환해 둬 화재 경보와 대피 안내 방송도 늦어졌다.유독 가스가 에스컬레이터 빈 공간을 타고 불과 58초 만에 지상 2층까지 불이 번졌다. 소방 당국은 화재 발생 이후 4분 만인 오전 9시 9분께 현장에 도착했다. 130여 명의 소방관과 40여 대의 소방차가 출동했다. 20분 만에 진화를 마무리했지만 9명이 사망하고 115명이 부상을 입어 총 124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500억 원의 재산 피해도 발생했다.사망자의 사인은 모두 유독 가스로 인한 질식이었다. 소방서의 출동과 진화 작업은 신속했으나 큰 인명 피해가 생긴 이유는 안전 불감증이었다. 가스 배관 공사를 용접 기능사 자격이 없는 사람이 했다. 건물·시설 관리 업체도 충분한 안전성 검토 없이 스프링클러 퇴수, 방화 셔터 전원 차단, 화재 자동 연동 장치 차단 등을 승인했다.화재로 터미널 건물과 연결돼 있는 수도권 전철 3호선 백석역에도 연기가 일부 유입돼 약 1시간 가량 양방향 모두 무정차 통과했다. 고양종합터미널은 완전 정상화까지 약 6개월의 시간이 소요됐으며, 건물에 입점해 있던 홈플러스 고양터미널점과 메가박스 백석점도 몇 달 간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같은 해 9월 17일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형사2부는 안전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현장 소장 등 7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공사 하도급 업체 대표 등 18명을 불구속 기소하며 수사를 마무리했다. 현장 소장 등 책임자 7명은 지난 2016년 7월 모두 실형이 확정됐다.해당 화재가 인재로 밝혀지면서 민사 소송도 제기됐다. 당시 터미널 1층 전산실에 전산 장비 납품·설치 공사를 진행 중이던 롯데정보통신은 전산 장비가 훼손되자 CJ푸드빌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지하 2층에서 매장을 임차해 영업을 하던 임차인들도 CJ푸드빌 등에 손해를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지난해 4월 대법원 1부(주심 노택악 대법관)는 롯데정보통신이 제기한 소송에서 ‘CJ푸드빌이 롯데정보통신에 2억2000여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도 당시 지하 2층 매장 임차인들이 CJ푸드빌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유지했다.당시 화재 진압 때 배우 최우식과 조동혁이 투입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 일선 소방서에 배치돼 현직 소방 공무원들과 함께 근무하는 SBS 리얼리티 프로그램 ‘심장이 뛴다’에 출연 중이었던 이들은 대원들과 함께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인명 구조에 직접 참여했다. 최우식은 방송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입구부터 시작해서 검은색 페인트를 칠해 놓은 것처럼 어두웠고 무서웠다”고 털어놨다.
    이연호 기자 2023.05.26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 불이 나 20분 만에 12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철저한 인재(人災)였다.지난 2014년 5월 26일 발생한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현장 모습. 사진=뉴스1.2014년 5월 26일 오전 9시 5분께 경기도 고양시 백석동 고양종합터미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한 주의 시작 월요일의 아침이었다. CJ푸드빌은 지하 1층 공간을 임차해 외식 업체들에 다시 내어 주는 푸드 코트(food court) 사업을 위해 공사를 한창 진행 중이었다.그러던 중 갑자기 불꽃이 천장을 향해 치솟았다. A사, B사를 거쳐 개인 사업자에게 하도급돼 진행 중이던 가스 배관 작업 중, 누출된 가스에 용접 불꽃이 튀었다. 이는 곧 천장의 우레탄 폼으로 옮겨 붙었다.유독 가스를 품은 연기는 열기와 함께 급속히 퍼져 나갔지만 소방 장비들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특히 공사 기간을 줄이기 위해 스프링클러 배관의 물을 빼놓았으며 소화기조차 없었다. 연기 확산을 막아줄 방화 셔터도 전원이 차단돼 작동하지 않았고, 화재 자동 연동 장치를 수동으로 전환해 둬 화재 경보와 대피 안내 방송도 늦어졌다.유독 가스가 에스컬레이터 빈 공간을 타고 불과 58초 만에 지상 2층까지 불이 번졌다. 소방 당국은 화재 발생 이후 4분 만인 오전 9시 9분께 현장에 도착했다. 130여 명의 소방관과 40여 대의 소방차가 출동했다. 20분 만에 진화를 마무리했지만 9명이 사망하고 115명이 부상을 입어 총 124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500억 원의 재산 피해도 발생했다.사망자의 사인은 모두 유독 가스로 인한 질식이었다. 소방서의 출동과 진화 작업은 신속했으나 큰 인명 피해가 생긴 이유는 안전 불감증이었다. 가스 배관 공사를 용접 기능사 자격이 없는 사람이 했다. 건물·시설 관리 업체도 충분한 안전성 검토 없이 스프링클러 퇴수, 방화 셔터 전원 차단, 화재 자동 연동 장치 차단 등을 승인했다.화재로 터미널 건물과 연결돼 있는 수도권 전철 3호선 백석역에도 연기가 일부 유입돼 약 1시간 가량 양방향 모두 무정차 통과했다. 고양종합터미널은 완전 정상화까지 약 6개월의 시간이 소요됐으며, 건물에 입점해 있던 홈플러스 고양터미널점과 메가박스 백석점도 몇 달 간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같은 해 9월 17일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형사2부는 안전 관리 감독을 소홀히 한 현장 소장 등 7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공사 하도급 업체 대표 등 18명을 불구속 기소하며 수사를 마무리했다. 현장 소장 등 책임자 7명은 지난 2016년 7월 모두 실형이 확정됐다.해당 화재가 인재로 밝혀지면서 민사 소송도 제기됐다. 당시 터미널 1층 전산실에 전산 장비 납품·설치 공사를 진행 중이던 롯데정보통신은 전산 장비가 훼손되자 CJ푸드빌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지하 2층에서 매장을 임차해 영업을 하던 임차인들도 CJ푸드빌 등에 손해를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지난해 4월 대법원 1부(주심 노택악 대법관)는 롯데정보통신이 제기한 소송에서 ‘CJ푸드빌이 롯데정보통신에 2억2000여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도 당시 지하 2층 매장 임차인들이 CJ푸드빌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유지했다.당시 화재 진압 때 배우 최우식과 조동혁이 투입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 일선 소방서에 배치돼 현직 소방 공무원들과 함께 근무하는 SBS 리얼리티 프로그램 ‘심장이 뛴다’에 출연 중이었던 이들은 대원들과 함께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인명 구조에 직접 참여했다. 최우식은 방송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입구부터 시작해서 검은색 페인트를 칠해 놓은 것처럼 어두웠고 무서웠다”고 털어놨다.
  • "얼마나 더 참혹하게 죽여야 사형인가"...고유정, 전 남편 살해[그해 오늘]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이혼 후 소송 끝에 면접교섭권을 얻은 강모 씨는 2년 만에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 벅차오르는 가슴을 억누를 수 없었다. 강 씨는 아이를 만나러 가는 차 안에서 록그룹 들국화의 노래 ‘걱정 말아요 그대’를 개사해 부르며 아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2년 만에 아들과 상봉한 기쁨도 잠시, 그는 곧 아들과 영원히 이별하고 만다.지난 2020년 2월 20일 고유정이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후 교도소로 가는 호송차에 탑승하기 위해 제주지법에서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고유정, 아이 게임하는 사이 전 남편 살해...범행 도구 등 사며 카드 포인트까지 적립2019년 5월 25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고유정(사건 당시 36세)은 전 남편 강모(36) 씨에게 수면제인 졸피뎀을 먹이고 그를 흉기로 살해한다. 6세 아들은 다른 방에서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고유정은 완전 범죄를 꿈꾸며 전 남편 살해를 치밀하게 계획했다. 고유정은 같은 달 9일 법원이 강 씨의 면접교섭권을 인정하고 5월 25일을 면접기일로 정하자 곧 강 씨 살인 계획 수립에 착수한다.우선 10일부터 자신의 휴대전화로 ‘수면 유도제’, ‘니코틴 치사량’, ‘살인 도구’, ‘뼈의 무게’, ‘시신 유기 방법’ 등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17일엔 충북 청주시의 자택에서 약 20km 떨어진 충북 청원군의 한 병원에서 졸피뎀 성분이 들어 있는 수면제 일주일 치를 처방 받았다. 톱 등 범행 도구 일부도 차에 실었다.다음 날인 18일엔 자신의 승용차를 여객선에 싣고 제주도에 입도했다. 인터넷을 통해 제주시 조천읍 소재 한 무인 펜션도 이날 예약했다. 범행 사흘 전인 22일, 고유정은 제주시의 한 마트에서 식칼, 표백제, 베이킹파우더, 고무장갑, 세제, 세숫대야, 청소용 솔 등을 구매했다. 카드로 결제하며 본인의 휴대전화로 바코드를 제시해 포인트까지 적립했다.범행 당일인 25일 오후 5시께 전 남편 및 아들과 함께 예약한 펜션에 입실한 고유정은 이후 강 씨에게 졸피뎀을 넣은 카레라이스를 권유한다. 고유정은 카레를 먹고 잠든 강 씨를 흉기로 찔러 죽였다.고유정은 범행 다음 날인 26일 아들을 제주시의 친정에 가 맡기고 다시 펜션으로 돌아왔다. 이어 피해자의 시신 훼손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톱으로 시신을 토막 내다 오른손을 다쳤다.그러나 청소 도구로 현장을 깨끗이 청소한 뒤 종이 상자와 스티로폼 상자 등을 들고 27일 오전 11시 30분 펜션에서 퇴실했다.◇두 차례 걸쳐 시신 훼손...의붓 아들 살해 혐의는 무죄펜션을 나서고 몇 시간 뒤인 27일 오후 5시께는 강 씨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본인의 휴대전화로 ‘취업도 해야 하니 (성폭행 혐의로) 고소하지 말아 달라’는 취지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마치 전 남편이 살아 있는 것처럼 속이는 것은 물론 자신이 성폭행 당한 것처럼 꾸미기 위한 의도였다. 고유정은 이후 경찰 조사에서도 “전 남편이 덮치려 해 수박을 썰기 위해 손에 들고 있던 흉기를 한두 차례 휘둘렀다”며 우발적 범행을 주장했다.고유정은 펜션을 퇴실한 다음 날인 28일 오후 3시 30분께 범행에 사용한 물품을 샀던 마트를 다시 찾아 범행 후 남은 물건들을 환불했다. 오른손에 하얀 붕대가 감겨 있던 고유정의 이때 모습은 해당 마트 폐쇄회로(CC) TV에 찍혔다.같은 날 오후 6시께 고유정은 제주시 다른 마트에 들러 종량제 봉투 30장과 여행용 가방을 샀고 이후 인적이 드문 장소로 이동해 강 씨의 시신을 나눠 담았다.오후 8시 30분 완도행 여객선에 탑승한 고유정은 훼손한 시신을 바다에 버렸다. 고유정이 배에 탄 지 1시간쯤 지난 오후 9시 30분경부터 7분에 걸쳐 피해자 시신 일부가 든 것으로 추정되는 봉지 등을 유기하는 모습이 여객선 CCTV에 포착됐다.고유정의 시신 훼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완도에 내린 후 밤새 운전해 29일 오전 4시께 경기도 김포시의 친정아버지 소유 아파트로 갔다. 완도행 선상에서 인터넷 쇼핑으로 주문했던 목공용 전기톱 등 물품의 배송지였다.고유정은 같은 날 인천의 한 가게로 직접 가서 사다리와 방진복, 커버링, 덧신, 덮개 등도 추가로 구입했다. 2차 시신 훼손 시 혈흔이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도구들이었다.이후 31일 오전 3시께 고유정은 시신된 훼손이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종량제 봉투를 아버지 아파트 내 분리수거장에 버렸다. 고유정은 다음 날인 6월 1일 충북 청주시 자택 지하 주차장에서 긴급체포됐고 같은 달 5일 신상이 공개됐다. 지난 2020년 2월 20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정봉기)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전 남편 살인죄와 사체손괴죄, 사체은닉죄에 대해 유죄가 인정돼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은 고유정은 같은 해 11월 5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다. 다만 재혼한 남편의 아들(의붓아들) 살해 혐의는 무죄 판단을 받았다.재판 과정에서 고유정에 줄곧 사형을 구형했던 검사의 ‘눈물의 호소’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20년 4월 22일 광주고등법원 제주제1형사부(왕정옥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린 ‘고유정 사건’ 항소심 첫 공판에서 이환우 검사는 “도대체 얼마나 더 참혹하게 살해해야 사형이 선고되는 것이냐. 항소심 재판부는 유족의 간절한 외침을 들어 달라”며 재판부에 호소했다. 이어 이 검사는 같은 해 6월 17일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피해자 강 씨가 어린 아들과 만나는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을 공개하며 구형 도중 눈물로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연호 기자 2023.05.25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이혼 후 소송 끝에 면접교섭권을 얻은 강모 씨는 2년 만에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 벅차오르는 가슴을 억누를 수 없었다. 강 씨는 아이를 만나러 가는 차 안에서 록그룹 들국화의 노래 ‘걱정 말아요 그대’를 개사해 부르며 아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2년 만에 아들과 상봉한 기쁨도 잠시, 그는 곧 아들과 영원히 이별하고 만다.지난 2020년 2월 20일 고유정이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후 교도소로 가는 호송차에 탑승하기 위해 제주지법에서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고유정, 아이 게임하는 사이 전 남편 살해...범행 도구 등 사며 카드 포인트까지 적립2019년 5월 25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의 한 펜션에서 고유정(사건 당시 36세)은 전 남편 강모(36) 씨에게 수면제인 졸피뎀을 먹이고 그를 흉기로 살해한다. 6세 아들은 다른 방에서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고유정은 완전 범죄를 꿈꾸며 전 남편 살해를 치밀하게 계획했다. 고유정은 같은 달 9일 법원이 강 씨의 면접교섭권을 인정하고 5월 25일을 면접기일로 정하자 곧 강 씨 살인 계획 수립에 착수한다.우선 10일부터 자신의 휴대전화로 ‘수면 유도제’, ‘니코틴 치사량’, ‘살인 도구’, ‘뼈의 무게’, ‘시신 유기 방법’ 등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17일엔 충북 청주시의 자택에서 약 20km 떨어진 충북 청원군의 한 병원에서 졸피뎀 성분이 들어 있는 수면제 일주일 치를 처방 받았다. 톱 등 범행 도구 일부도 차에 실었다.다음 날인 18일엔 자신의 승용차를 여객선에 싣고 제주도에 입도했다. 인터넷을 통해 제주시 조천읍 소재 한 무인 펜션도 이날 예약했다. 범행 사흘 전인 22일, 고유정은 제주시의 한 마트에서 식칼, 표백제, 베이킹파우더, 고무장갑, 세제, 세숫대야, 청소용 솔 등을 구매했다. 카드로 결제하며 본인의 휴대전화로 바코드를 제시해 포인트까지 적립했다.범행 당일인 25일 오후 5시께 전 남편 및 아들과 함께 예약한 펜션에 입실한 고유정은 이후 강 씨에게 졸피뎀을 넣은 카레라이스를 권유한다. 고유정은 카레를 먹고 잠든 강 씨를 흉기로 찔러 죽였다.고유정은 범행 다음 날인 26일 아들을 제주시의 친정에 가 맡기고 다시 펜션으로 돌아왔다. 이어 피해자의 시신 훼손을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톱으로 시신을 토막 내다 오른손을 다쳤다.그러나 청소 도구로 현장을 깨끗이 청소한 뒤 종이 상자와 스티로폼 상자 등을 들고 27일 오전 11시 30분 펜션에서 퇴실했다.◇두 차례 걸쳐 시신 훼손...의붓 아들 살해 혐의는 무죄펜션을 나서고 몇 시간 뒤인 27일 오후 5시께는 강 씨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본인의 휴대전화로 ‘취업도 해야 하니 (성폭행 혐의로) 고소하지 말아 달라’는 취지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마치 전 남편이 살아 있는 것처럼 속이는 것은 물론 자신이 성폭행 당한 것처럼 꾸미기 위한 의도였다. 고유정은 이후 경찰 조사에서도 “전 남편이 덮치려 해 수박을 썰기 위해 손에 들고 있던 흉기를 한두 차례 휘둘렀다”며 우발적 범행을 주장했다.고유정은 펜션을 퇴실한 다음 날인 28일 오후 3시 30분께 범행에 사용한 물품을 샀던 마트를 다시 찾아 범행 후 남은 물건들을 환불했다. 오른손에 하얀 붕대가 감겨 있던 고유정의 이때 모습은 해당 마트 폐쇄회로(CC) TV에 찍혔다.같은 날 오후 6시께 고유정은 제주시 다른 마트에 들러 종량제 봉투 30장과 여행용 가방을 샀고 이후 인적이 드문 장소로 이동해 강 씨의 시신을 나눠 담았다.오후 8시 30분 완도행 여객선에 탑승한 고유정은 훼손한 시신을 바다에 버렸다. 고유정이 배에 탄 지 1시간쯤 지난 오후 9시 30분경부터 7분에 걸쳐 피해자 시신 일부가 든 것으로 추정되는 봉지 등을 유기하는 모습이 여객선 CCTV에 포착됐다.고유정의 시신 훼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완도에 내린 후 밤새 운전해 29일 오전 4시께 경기도 김포시의 친정아버지 소유 아파트로 갔다. 완도행 선상에서 인터넷 쇼핑으로 주문했던 목공용 전기톱 등 물품의 배송지였다.고유정은 같은 날 인천의 한 가게로 직접 가서 사다리와 방진복, 커버링, 덧신, 덮개 등도 추가로 구입했다. 2차 시신 훼손 시 혈흔이 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도구들이었다.이후 31일 오전 3시께 고유정은 시신된 훼손이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종량제 봉투를 아버지 아파트 내 분리수거장에 버렸다. 고유정은 다음 날인 6월 1일 충북 청주시 자택 지하 주차장에서 긴급체포됐고 같은 달 5일 신상이 공개됐다. 지난 2020년 2월 20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정봉기)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전 남편 살인죄와 사체손괴죄, 사체은닉죄에 대해 유죄가 인정돼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은 고유정은 같은 해 11월 5일 대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다. 다만 재혼한 남편의 아들(의붓아들) 살해 혐의는 무죄 판단을 받았다.재판 과정에서 고유정에 줄곧 사형을 구형했던 검사의 ‘눈물의 호소’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20년 4월 22일 광주고등법원 제주제1형사부(왕정옥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린 ‘고유정 사건’ 항소심 첫 공판에서 이환우 검사는 “도대체 얼마나 더 참혹하게 살해해야 사형이 선고되는 것이냐. 항소심 재판부는 유족의 간절한 외침을 들어 달라”며 재판부에 호소했다. 이어 이 검사는 같은 해 6월 17일 항소심 결심 공판에서 피해자 강 씨가 어린 아들과 만나는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을 공개하며 구형 도중 눈물로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이웃에 호의로 준 김치가 불러온 살인[그해 오늘]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김치가 화근이었다. 지난해 5월 24일 밤 11시 55분께. 전북 전주에 사는 A씨(52·여)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이웃집 남성 B씨의 전화였다.이미지=연합뉴스.밤늦은 시각이긴 했지만 B씨의 용건은 간단했다. 며칠 전 받은 김치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기 위한 전화였다. 그런데 이를 들은 A씨의 동거남 C씨(58)는 A씨가 전화를 끊은 후 A씨에게 “어떤 놈이냐, 왜 밤중에 남자한테 전화가 오냐”, “행동거지를 어떻게 했냐”며 거친 욕을 내뱉었다. 이 같은 폭언은 2시간 동안 지속됐다.사실 A씨는 지난 2015년부터 C씨와 사실혼 관계를 맺어 왔지만 지속적으로 그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려야 했다. 이로 인해 A씨는 발가락과 갈비뼈, 척추뼈 등이 부러져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C씨의 상습적인 폭행은 A씨의 지인은 물론 그의 아들까지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112에 신고하기도 했지만 C씨의 행동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다행히 2020년부터는 C씨의 폭행이 줄어들었다.다음 날인 25일 C씨가 출근하자 A씨는 이웃 2명을 집으로 불러 전날 일에 대한 대처 방안을 상의했다. C씨는 퇴근 후 A씨 및 이웃 2명과 함께 술을 마셨다. C씨는 그 자리에서도 “한밤중 남자가 전화했다. 얼마나 좋아했으면 밤중에 전화하겠냐. 뭔가 반응을 보냈으니 했겠지“라며 화를 냈다. C씨가 술에 취해 잠들자 A씨는 지인 2명과 함께 B씨 집을 찾았다. A씨는 B씨에게 “밤에 뭐 하러 전화했느냐. 나 죽일 일 있냐”고 따졌다.집으로 돌아온 A씨. 그때 A씨의 뇌를 엄습한 것은 자신이 B씨에게 김치를 준 사실마저 C씨가 알게 되면 또다시 폭행을 당할 것이라는 불안감이었다. 결국 A씨는 칼을 꺼내 자고 있던 C씨의 가슴을 찔렀다. 결국 C씨는 과다 출혈로 숨을 거뒀고 A씨는 같은 해 6월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1심 재판을 맡은 전주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노종찬)는 지난해 10월 “살인은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로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어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다만 피고인은 범행 직후 112에 신고해 자수했고, 범행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으며, 형사 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A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진료 기록 등 증거를 종합하면 피고인은 피해자에게서 오랜 기간 상습적인 폭언·폭행을 당해온 것으로 판단된다”며 “사건 당일에도 폭언을 당했고 또다시 폭행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우발적으로 피해자를 1회 찔렀지만 피해자가 사망해 다소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덧붙였다.A씨와 검찰은 양형 부당을 이유로 모두 항소했다. 하지만 광주고법 전주제1형사부(부장판사 백강진)는 지난 3월 양측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을 유지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에게서 당했던 가정 폭력이 직접적인 범행 원인이었다기보다 피해자의 당시 언행으로 촉발된 순간적인 분노와 함께 더 깊은 갈등으로 나아갈 경우 피해자의 평소 성행에 비춰 신체적인 위협을 당할 수 있겠다는 압박감으로 인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이연호 기자 2023.05.24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김치가 화근이었다. 지난해 5월 24일 밤 11시 55분께. 전북 전주에 사는 A씨(52·여)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온다. 이웃집 남성 B씨의 전화였다.이미지=연합뉴스.밤늦은 시각이긴 했지만 B씨의 용건은 간단했다. 며칠 전 받은 김치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기 위한 전화였다. 그런데 이를 들은 A씨의 동거남 C씨(58)는 A씨가 전화를 끊은 후 A씨에게 “어떤 놈이냐, 왜 밤중에 남자한테 전화가 오냐”, “행동거지를 어떻게 했냐”며 거친 욕을 내뱉었다. 이 같은 폭언은 2시간 동안 지속됐다.사실 A씨는 지난 2015년부터 C씨와 사실혼 관계를 맺어 왔지만 지속적으로 그의 폭언과 폭행에 시달려야 했다. 이로 인해 A씨는 발가락과 갈비뼈, 척추뼈 등이 부러져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C씨의 상습적인 폭행은 A씨의 지인은 물론 그의 아들까지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112에 신고하기도 했지만 C씨의 행동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다행히 2020년부터는 C씨의 폭행이 줄어들었다.다음 날인 25일 C씨가 출근하자 A씨는 이웃 2명을 집으로 불러 전날 일에 대한 대처 방안을 상의했다. C씨는 퇴근 후 A씨 및 이웃 2명과 함께 술을 마셨다. C씨는 그 자리에서도 “한밤중 남자가 전화했다. 얼마나 좋아했으면 밤중에 전화하겠냐. 뭔가 반응을 보냈으니 했겠지“라며 화를 냈다. C씨가 술에 취해 잠들자 A씨는 지인 2명과 함께 B씨 집을 찾았다. A씨는 B씨에게 “밤에 뭐 하러 전화했느냐. 나 죽일 일 있냐”고 따졌다.집으로 돌아온 A씨. 그때 A씨의 뇌를 엄습한 것은 자신이 B씨에게 김치를 준 사실마저 C씨가 알게 되면 또다시 폭행을 당할 것이라는 불안감이었다. 결국 A씨는 칼을 꺼내 자고 있던 C씨의 가슴을 찔렀다. 결국 C씨는 과다 출혈로 숨을 거뒀고 A씨는 같은 해 6월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1심 재판을 맡은 전주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노종찬)는 지난해 10월 “살인은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로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어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다만 피고인은 범행 직후 112에 신고해 자수했고, 범행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으며, 형사 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A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진료 기록 등 증거를 종합하면 피고인은 피해자에게서 오랜 기간 상습적인 폭언·폭행을 당해온 것으로 판단된다”며 “사건 당일에도 폭언을 당했고 또다시 폭행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우발적으로 피해자를 1회 찔렀지만 피해자가 사망해 다소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덧붙였다.A씨와 검찰은 양형 부당을 이유로 모두 항소했다. 하지만 광주고법 전주제1형사부(부장판사 백강진)는 지난 3월 양측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을 유지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에게서 당했던 가정 폭력이 직접적인 범행 원인이었다기보다 피해자의 당시 언행으로 촉발된 순간적인 분노와 함께 더 깊은 갈등으로 나아갈 경우 피해자의 평소 성행에 비춰 신체적인 위협을 당할 수 있겠다는 압박감으로 인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노무현 서거[그해 오늘]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대단히 충격적이고 슬픈 소식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오늘 오전 9시 30분경 이곳 양산부산대병원에서 운명하셨습니다.”2009년 5월 23일 오전, 노 전 대통령의 오랜 친구로 그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리던 당시 문재인 변호사는 침통한 심정을 억누른 채 차분한 어조로 이 같이 ‘노무현 서거’ 소식을 발표했다. 주요 일간지들은 서둘러 호외를 찍어 서울 도심에 뿌렸다.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이 거행된 지난 2009년 5월 29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제가 끝난 뒤 수많은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노 전 대통령 운구 행렬이 숭례문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낸 자연인 노무현은 이날 오전 5시 21분께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사저 내 컴퓨터로 유서를 작성하고 아래아 한글 파일로 그것을 저장한다. 그러고선 경호원 이모 씨를 불러 5시 47분께 산책을 나서기 위해 사저를 출발한다.산책길에 마을 주민을 만나 마늘 작황에 대한 주제로 짧게 담소를 나누기도 한 노 전 대통령은 오전 6시 10분께 봉화산 부엉이바위에 도착한다. 잠시 후 6시 14분께 경호원 이 씨에게 “정토원에 가서 선법사가 있는지 확인하고 오라”고 지시한다. 약 3분 후 돌아온 이 씨는 노 전 대통령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을 찾기 위해 근처 등산로 등을 수색하던 이 씨는 6시 51분께 부엉이바위 아래 쓰러져 있는 노 전 대통령을 발견한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양산부산대병원에서 이날 오전 9시 30분 사망 판정을 받는다.그는 열다섯 줄짜리 짧은 유서에서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는 등의 마지막 말을 남겼다. ‘풍운아 노무현’, ‘바보 노무현’으로 불렸던 그는 이렇게 향년 63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그가 투신을 선택한 표면적 원인은 검찰 수사로 인한 압박감 때문이었다. 그는 2009년 정관계 로비 사건인 ‘박연차 게이트’로 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본인도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심적으로 크게 위축됐다. 이런 와중에 ‘논두렁 시계’ 등 망신 주기 식 보도까지 나오자 그의 입장에서는 심한 모욕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자존심이 강했던 그는 결국 이 보도가 나오고 10일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피의자인 노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검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당시 검찰은 “수사 도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망해 안타깝고 애통하게 생각한다”면서도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최선을 다해 수사했다. 수사 기록은 영구히 보존되고 추후 역사적 평가의 영역으로 남겨 둬야 한다”고 밝혔다.노 전 대통령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는데 전국에 총 335곳(지방자치단체 운영 102개, 민간 운영 233개)의 분향소가 설치됐고 국민장 장의위원회 추산 약 500만 명의 조문객이 분향소를 찾았다.그의 사망은 큰 후폭풍을 몰고 왔다. 여당 일각에서조차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검찰 수사에 대한 비판이 나왔을 정도로 당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은 악화됐다.반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친노 세력이 부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노 전 대통령 사망 이전까지만 해도 정치에 뜻이 없었던 문재인은 노 전 대통령 국민장 이후 정계에 입문해 결국 제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유시민 작가는 문재인 전 대통령 취임 직후 방송된 한 종합편성채널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현실 정치에서 사실상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복권이 이뤄진 것”이라고 평가했다.한편 노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오열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인 2009년 8월 18일에 폐렴으로 사망했다.
    이연호 기자 2023.05.23
    [이데일리 이연호 기자]“대단히 충격적이고 슬픈 소식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오늘 오전 9시 30분경 이곳 양산부산대병원에서 운명하셨습니다.”2009년 5월 23일 오전, 노 전 대통령의 오랜 친구로 그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리던 당시 문재인 변호사는 침통한 심정을 억누른 채 차분한 어조로 이 같이 ‘노무현 서거’ 소식을 발표했다. 주요 일간지들은 서둘러 호외를 찍어 서울 도심에 뿌렸다.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이 거행된 지난 2009년 5월 29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제가 끝난 뒤 수많은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노 전 대통령 운구 행렬이 숭례문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을 지낸 자연인 노무현은 이날 오전 5시 21분께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사저 내 컴퓨터로 유서를 작성하고 아래아 한글 파일로 그것을 저장한다. 그러고선 경호원 이모 씨를 불러 5시 47분께 산책을 나서기 위해 사저를 출발한다.산책길에 마을 주민을 만나 마늘 작황에 대한 주제로 짧게 담소를 나누기도 한 노 전 대통령은 오전 6시 10분께 봉화산 부엉이바위에 도착한다. 잠시 후 6시 14분께 경호원 이 씨에게 “정토원에 가서 선법사가 있는지 확인하고 오라”고 지시한다. 약 3분 후 돌아온 이 씨는 노 전 대통령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을 찾기 위해 근처 등산로 등을 수색하던 이 씨는 6시 51분께 부엉이바위 아래 쓰러져 있는 노 전 대통령을 발견한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양산부산대병원에서 이날 오전 9시 30분 사망 판정을 받는다.그는 열다섯 줄짜리 짧은 유서에서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는 등의 마지막 말을 남겼다. ‘풍운아 노무현’, ‘바보 노무현’으로 불렸던 그는 이렇게 향년 63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삶을 스스로 마감했다.그가 투신을 선택한 표면적 원인은 검찰 수사로 인한 압박감 때문이었다. 그는 2009년 정관계 로비 사건인 ‘박연차 게이트’로 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본인도 검찰 수사를 받게 되자 심적으로 크게 위축됐다. 이런 와중에 ‘논두렁 시계’ 등 망신 주기 식 보도까지 나오자 그의 입장에서는 심한 모욕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자존심이 강했던 그는 결국 이 보도가 나오고 10일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피의자인 노 전 대통령이 사망하자 검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당시 검찰은 “수사 도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망해 안타깝고 애통하게 생각한다”면서도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최선을 다해 수사했다. 수사 기록은 영구히 보존되고 추후 역사적 평가의 영역으로 남겨 둬야 한다”고 밝혔다.노 전 대통령 장례는 국민장으로 치러졌는데 전국에 총 335곳(지방자치단체 운영 102개, 민간 운영 233개)의 분향소가 설치됐고 국민장 장의위원회 추산 약 500만 명의 조문객이 분향소를 찾았다.그의 사망은 큰 후폭풍을 몰고 왔다. 여당 일각에서조차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검찰 수사에 대한 비판이 나왔을 정도로 당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은 악화됐다.반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친노 세력이 부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노 전 대통령 사망 이전까지만 해도 정치에 뜻이 없었던 문재인은 노 전 대통령 국민장 이후 정계에 입문해 결국 제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유시민 작가는 문재인 전 대통령 취임 직후 방송된 한 종합편성채널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현실 정치에서 사실상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복권이 이뤄진 것”이라고 평가했다.한편 노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권양숙 여사의 손을 잡고 오열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인 2009년 8월 18일에 폐렴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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