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콘텐츠부

한광범

기자

그해 오늘

  • 韓 캐릭터의 시작과 끝…‘뽀로로’ 오신 날[그해 오늘]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2003년 11월27일생은 19년이 지난 27일 오늘부터 민법상 성인이 된다. 휴대폰 구매도 본인의 명의로 할 수 있고, 자동차나 부동산 계약도 스스로 힘으로 가능하며, 나아가 부모의 동의 없이도 결혼할 수 있다. 국민 캐릭터 ‘뽀통령’, ‘뽀로로’가 성인이 됐다.(사진=이데일리DB)2003년 11월27일. “안녕? 난 뽀로로야”라는 첫인사와 함께 뽀로로가 출연한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가 EBS를 통해 처음 전파를 탔다. 뽀로로 캐릭터는 처음 기안 당시 별달리 설정을 두지 않아 이날이 뽀로로의 생일로 인지됐다.어린 수컷 펭귄을 의인화한 캐릭터인 뽀로로는 애니메이션 제작사 아이코닉스·오콘의 공동작업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뽀로로는 빠르게 동심을 사로잡으면서 2010년을 전후해 보급된 스마트폰과 함께 어린 영유아를 달래는 콘텐츠로 많은 부모들에게도 사랑을 받았다. 뽀로로는 국내 캐릭터 산업이 전 세계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준 성공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아이코닉스는 지난 2021년 786억원으로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76억원으로 10%가 넘는다. 오콘의 지난해 매출액은 66억원 수준이다.해외에서도 뽀로로의 인기는 엄청나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2021년 8월 발간한 ‘2021 글로벌 한류 트렌드’에 따르면 뽀로로는 지금까지 130여 개국에 수출됐고 특히 중국과 태국, 싱가포르에는 테마파크까지 세워졌다.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로열티만 1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뽀로로의 높은 인기 속에 지난 2015년 뽀로로의 가치를 추산하기도 했다. 자유경제원 기업가연구회가 추산한 뽀로로의 브랜드 가치는 8000억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는 8700억원, 경제적 효과는 5조7000억원에 달했다. 뽀로로 이전에도 ‘아기공룡 둘리’나 ‘방귀대장 뿡뿡이’ 등 영유아,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캐릭터들이 있었지만 뽀로로가 가장 대별되는 점은 해외시장에서의 성공이다. 디즈니가 뽀로로의 판권 구매에 나섰을 정도다.뽀로로의 성공에 가능성을 본 국산 캐릭터들도 뒤를 따랐다. 꼬마버스 타요, 핑크퐁, 라바, 뿌까, 터닝메카드 등 다양한 콘텐츠가 개발됐다. ‘2021 글로벌 한류 트렌드’에서 해외 한류 콘텐츠 소비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로 뽀로로(19.4%)는 뿌까(21.4%)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김영환 기자 2022.11.27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2003년 11월27일생은 19년이 지난 27일 오늘부터 민법상 성인이 된다. 휴대폰 구매도 본인의 명의로 할 수 있고, 자동차나 부동산 계약도 스스로 힘으로 가능하며, 나아가 부모의 동의 없이도 결혼할 수 있다. 국민 캐릭터 ‘뽀통령’, ‘뽀로로’가 성인이 됐다.(사진=이데일리DB)2003년 11월27일. “안녕? 난 뽀로로야”라는 첫인사와 함께 뽀로로가 출연한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가 EBS를 통해 처음 전파를 탔다. 뽀로로 캐릭터는 처음 기안 당시 별달리 설정을 두지 않아 이날이 뽀로로의 생일로 인지됐다.어린 수컷 펭귄을 의인화한 캐릭터인 뽀로로는 애니메이션 제작사 아이코닉스·오콘의 공동작업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뽀로로는 빠르게 동심을 사로잡으면서 2010년을 전후해 보급된 스마트폰과 함께 어린 영유아를 달래는 콘텐츠로 많은 부모들에게도 사랑을 받았다. 뽀로로는 국내 캐릭터 산업이 전 세계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준 성공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아이코닉스는 지난 2021년 786억원으로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76억원으로 10%가 넘는다. 오콘의 지난해 매출액은 66억원 수준이다.해외에서도 뽀로로의 인기는 엄청나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2021년 8월 발간한 ‘2021 글로벌 한류 트렌드’에 따르면 뽀로로는 지금까지 130여 개국에 수출됐고 특히 중국과 태국, 싱가포르에는 테마파크까지 세워졌다.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로열티만 100억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뽀로로의 높은 인기 속에 지난 2015년 뽀로로의 가치를 추산하기도 했다. 자유경제원 기업가연구회가 추산한 뽀로로의 브랜드 가치는 8000억원, 부가가치 유발 효과는 8700억원, 경제적 효과는 5조7000억원에 달했다. 뽀로로 이전에도 ‘아기공룡 둘리’나 ‘방귀대장 뿡뿡이’ 등 영유아,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캐릭터들이 있었지만 뽀로로가 가장 대별되는 점은 해외시장에서의 성공이다. 디즈니가 뽀로로의 판권 구매에 나섰을 정도다.뽀로로의 성공에 가능성을 본 국산 캐릭터들도 뒤를 따랐다. 꼬마버스 타요, 핑크퐁, 라바, 뿌까, 터닝메카드 등 다양한 콘텐츠가 개발됐다. ‘2021 글로벌 한류 트렌드’에서 해외 한류 콘텐츠 소비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로 뽀로로(19.4%)는 뿌까(21.4%)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 '곰탕집 성추행' 30대 남성…진짜 억울하세요?[그해 오늘]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7년 11월 26일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시간. 대전 유성의 한 곰탕집에서 두 일행 간에 시비가 붙었다. 양측은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시비는 한쪽 일행의 여성 A씨가 다른 일행의 남성 최모(당시 38세)씨가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항의하며 시작됐다. A씨가 식당 화장실을 이용한 후 몸을 돌려 미닫이문을 열려던 상황에서, 최씨가 뒤쪽을 지나치면서 엉덩이를 움켜잡았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었다. A씨 항의에 최씨는 모르쇠로 일관했고, 결국 양측 일행이 가세하며 다툼으로 번진 것이다. 다툼이 계속되자 결국 경찰이 출동했다. 2017년 10월 26일 새벽 대전 모 곰탕집에서 ‘성추행’ 당시 상황이 담긴 CCTV 화면.A씨는 당일 이뤄진 경찰 피해자 조사에서 “남성이 손으로 오른쪽 엉덩이 부위를 밑에서 위쪽으로 움켜잡았다. 제가 바로 돌아서서 항의했으나 남성이 추행 사실을 부인했고 결국 양측 일행 사이에 다툼이 발생했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반면 최씨 진술은 전혀 달랐다. 당일 모임에서 폭탄주 15잔을 마셨다고 밝힌 최씨는 “신발을 신는 과정에서 해당 여성과 어깨만 부딪혔다. 이때 여성이 ‘왜 부딪히냐’고 해 죄송하다고 말한 것이 전부”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최씨 진술은 5일 후 완전히 달라졌다. 식당 내부에 설치된 CCTV에 피해자가 근처에 있는 상황에서 최씨가 신발을 신는 모습이나, 어깨를 부딪히는 장면이 없었기 때문이다.CCTV에는 피해자 A씨의 주장대로 뒤돌아서 있는 A씨 뒤편을 최씨가 지나가고, 그 직후 피해자가 최씨를 뒤쫓아가 항의하는 모습이 명확히 담겨 있었다. 최씨가 자신의 손을 순간적으로 A씨 쪽으로 향했다가 다시 모으는 듯한 모습도 포착됐다. ◇“신체접촉 없었다”→CCTV 본 후엔 “실수로 스쳤을 수 있다”최씨는 입건된 후 이뤄진 12월 1일 경찰 조사에서 “애초 신체접촉이 전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수로 제 손이 여성 엉덩이를 스쳤을 수 있고, 이를 피해자가 착각했을 수도 있다”고 말을 바꿨다. 그는 진술을 바꾼 경위에 대해 “CCTV 영상을 보기 전에는 피해자와 신체접촉이 전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CCTV 영상을 보니 신체접촉을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경찰은 최씨의 성추행 혐의가 인정된다는 보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최씨와 피해 여성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 ‘최씨는 거짓, A씨는 진실’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최씨는 검찰에서도 경찰 조사 때와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그는 “CCTV 화면상 터치가 된 것 같으나, 고의로 추행하려는 것은 아니었고 실수로 터치한 부분이 있고, 이 부분은 사과할 용의가 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또 “고의로 만진 게 아닌 만큼 성추행을 인정하거나 용서를 빌 생각은 없다. 실수로 터치한 것인데 억울하다”고 토로했다.검찰은 최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최씨는 뒤늦게 변호인을 통해 A씨 측에 합의금 300만원을 제시하며 합의를 시도했다. 하지만 A씨 측은 처음부터 “사과가 없다면 합의도 없다”는 강경 입장이었다. A씨 변호인이 “혐의를 인정하고 사과하겠다는 것이냐”고 물었지만, 최씨 측은 “혐의를 인정하진 않고 물의를 일으켰기에 합의하고 싶다”고 했다. 결국 합의는 불발됐다.최씨는 법정에서도 “피해자 엉덩이를 움켜잡은 사실이 없고, 실수로 제 손이 피해자의 엉덩이를 스친 것을 피해자가 착각했을 수도 있다”는 취지의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검찰은 최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2018년 10월 27일 오전 서울 혜화역 인근에서 ‘곰탕집 성추행 사건’ 2차 가해를 규탄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檢, 1심서 벌금 300만원 구형→법원은 ‘실형’ 선고1심은 2018년 9월 5일 강제추행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피해 당시의 상황을 일관되고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자연스럽다. 피해자가 손이 스친 것과 움켜잡힌 것을 착각할 만한 사정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양형은 검찰 구형보다 훨씬 높은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곧바로 A씨를 법정구속했다. 이와 함께 성폭력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3년 취업제한 명령도 함께 내렸다.재판부는 양형 이유에 대해 “최씨가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있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할 마음도 없어 보인다. 피해자가 느꼈을 수치심이 상당해 보이고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추행의 방법과 범행 후 정황 등을 고려하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밝혔다. 이는 CCTV 등의 추행 증거가 명백한 상황에서 최씨가 일말의 반성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를 공격하는 듯한 태도로 일관했던 점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수많은 강제추행 사건 중 하나였던 최씨 사건은 최씨 아내가 판결 하루 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과 인터넷 커뮤니티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올리며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남편인 최씨가 법정구속된 후에야 남편이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던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는 최씨 아내는 최씨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며 억울함을 토로했다.최씨 아내는 “(피해) 여자가 합의금으로 1000만원을 요구했고 신랑은 ‘갈 때까지 가보자’라며 자기는 명백하니 법정에서 다 밝혀줄 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재판까지 가게 됐다”고 사실과 다른 내용을 게시했다. 또 “신랑은 줄곧 (식당에) 있는 내내 손을 뒤로 하고 있거나 앞으로 모으고 있었다”라며 “윗사람들 모시고 준비하는 어려운 자리에서 그 짧은 순간에 여자 엉덩이 만질 생각을 (하는)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다”고 주장했다.최씨 아내의 글은 삽시간에 언론과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퍼졌다. 최씨 아내의 일방적 주장을 받아들인 일부 누리꾼들은 “최씨는 억울한 피해자”라며 피해 여성과 1심 판사에 대한 거센 비난을 퍼부었다. 판결을 비판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졸지에 ‘꽃뱀’으로 몰린 피해자는 직접 최씨 아내의 주장을 반박하는 인터뷰를 해야 했다.2018년 10월 27일 서울 혜화역 일대에서 ‘곰탕집 성추행 유죄 판결 규탄 집회’가 별도로 열리기도 했다. (사진=이데일리DB)◇가해남성 아내, 사실과 다른 글 올려 피해자 공격받아사회적 관심이 커진 상황에서 사건을 배당받은 2심 재판부는 10월 12일 보석청구를 인용해 최씨를 석방했다. 최씨는 법정구속된 지 38일 만에 풀려나 불구속 상태에서 2심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는 2심에서도 “피해자의 엉덩이를 만진 적이 없다”며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또 원심의 형이 너무 무겁다는 양형부당 주장도 폈다.검찰은 2심에서 사건 당시 식당 CCTV 영상의 화질을 개선한 새로운 영상을 제출했다. 2심 재판부는 화질이 개선된 CCTV 영상에 대해 분석의뢰했다. 법영상분석연구소는 현장의 3차원 재구성 결과 “약 1.333초만에 주변 인물과 피해 여성 사이를 걸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우발적인 신체접촉이 발생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된다”는 결과를 회신했다.2심도 2019년 4월 26일 CCTV 영상과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 등을 토대로 최씨의 성추행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CCTV 영상을 보면 최씨가 출입구를 보면서 뒷짐을 지고 서 있다가 돌아서는 장면, 최씨 오른쪽 팔이 피해자 쪽으로 향하는 장면, 최씨가 피해자와 인접한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피해자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장면 등을 확인할 수 있어 피해자의 진술에 부합한다”고 설명했다.다만 최씨의 양형부당 주장은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최씨가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사회적 유대관계도 분명하다. 또 추행 정도가 그리 중하지 않다”며 “1심 양형은 무거워 부당하다”며 판단했다. 2심은 최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성폭력 치료강의 40시간 수강과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3년 취업제한 명령은 그대로 유지하는 한편, 사회봉사 160시간 명령은 추가했다.◇일부의 가해자 옹호에…“성추행사건 특징 모르는 주장”최씨는 이에 불복해 상고했다. 그는 “협소한 공간으로 인해 피해자와 접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추행의 고의에 대한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이 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9년 12월 12일 “강제추행을 유죄로 인정한 2심 판단엔 잘못이 없다”며 최씨의 유죄를 그대로 확정했다. 최씨를 옹호하던 사람들은 대법원 확정 판결마저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요지는 △“최씨가 평소 성추행을 할 사람이 아니다” △“여성의 일방적 주장만을 근거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설령 엉덩이를 만진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양형이 과도하다” 등이었다.하지만 법조계에선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성추행 사건의 전형적 특징을 모르는 주장”이라고 일축한다. 성추행 사건의 경우 화이트칼라 계층에서도 많이 발생하며 가해자 다수도 ‘평소에 그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피해자의 진술이라고 하더라도 일관되거나 객관적 증거와 일치할 경우에만 유죄 판단의 근거가 된다는 설명이다.양형과 관련해서도 충분히 가능한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부장판사 출신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최씨의 경우 아무런 반성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런 최씨 태도를 법원이 2차 가해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양형기준상 최대 징역 2년까지 선고가 가능한 상황에서 충분히 가능한 양형이었다”고 밝혔다.
    한광범 기자 2022.11.26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7년 11월 26일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시간. 대전 유성의 한 곰탕집에서 두 일행 간에 시비가 붙었다. 양측은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시비는 한쪽 일행의 여성 A씨가 다른 일행의 남성 최모(당시 38세)씨가 자신을 성추행했다고 항의하며 시작됐다. A씨가 식당 화장실을 이용한 후 몸을 돌려 미닫이문을 열려던 상황에서, 최씨가 뒤쪽을 지나치면서 엉덩이를 움켜잡았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었다. A씨 항의에 최씨는 모르쇠로 일관했고, 결국 양측 일행이 가세하며 다툼으로 번진 것이다. 다툼이 계속되자 결국 경찰이 출동했다. 2017년 10월 26일 새벽 대전 모 곰탕집에서 ‘성추행’ 당시 상황이 담긴 CCTV 화면.A씨는 당일 이뤄진 경찰 피해자 조사에서 “남성이 손으로 오른쪽 엉덩이 부위를 밑에서 위쪽으로 움켜잡았다. 제가 바로 돌아서서 항의했으나 남성이 추행 사실을 부인했고 결국 양측 일행 사이에 다툼이 발생했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반면 최씨 진술은 전혀 달랐다. 당일 모임에서 폭탄주 15잔을 마셨다고 밝힌 최씨는 “신발을 신는 과정에서 해당 여성과 어깨만 부딪혔다. 이때 여성이 ‘왜 부딪히냐’고 해 죄송하다고 말한 것이 전부”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최씨 진술은 5일 후 완전히 달라졌다. 식당 내부에 설치된 CCTV에 피해자가 근처에 있는 상황에서 최씨가 신발을 신는 모습이나, 어깨를 부딪히는 장면이 없었기 때문이다.CCTV에는 피해자 A씨의 주장대로 뒤돌아서 있는 A씨 뒤편을 최씨가 지나가고, 그 직후 피해자가 최씨를 뒤쫓아가 항의하는 모습이 명확히 담겨 있었다. 최씨가 자신의 손을 순간적으로 A씨 쪽으로 향했다가 다시 모으는 듯한 모습도 포착됐다. ◇“신체접촉 없었다”→CCTV 본 후엔 “실수로 스쳤을 수 있다”최씨는 입건된 후 이뤄진 12월 1일 경찰 조사에서 “애초 신체접촉이 전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실수로 제 손이 여성 엉덩이를 스쳤을 수 있고, 이를 피해자가 착각했을 수도 있다”고 말을 바꿨다. 그는 진술을 바꾼 경위에 대해 “CCTV 영상을 보기 전에는 피해자와 신체접촉이 전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CCTV 영상을 보니 신체접촉을 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경찰은 최씨의 성추행 혐의가 인정된다는 보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최씨와 피해 여성에 대한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 ‘최씨는 거짓, A씨는 진실’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최씨는 검찰에서도 경찰 조사 때와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그는 “CCTV 화면상 터치가 된 것 같으나, 고의로 추행하려는 것은 아니었고 실수로 터치한 부분이 있고, 이 부분은 사과할 용의가 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또 “고의로 만진 게 아닌 만큼 성추행을 인정하거나 용서를 빌 생각은 없다. 실수로 터치한 것인데 억울하다”고 토로했다.검찰은 최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최씨는 뒤늦게 변호인을 통해 A씨 측에 합의금 300만원을 제시하며 합의를 시도했다. 하지만 A씨 측은 처음부터 “사과가 없다면 합의도 없다”는 강경 입장이었다. A씨 변호인이 “혐의를 인정하고 사과하겠다는 것이냐”고 물었지만, 최씨 측은 “혐의를 인정하진 않고 물의를 일으켰기에 합의하고 싶다”고 했다. 결국 합의는 불발됐다.최씨는 법정에서도 “피해자 엉덩이를 움켜잡은 사실이 없고, 실수로 제 손이 피해자의 엉덩이를 스친 것을 피해자가 착각했을 수도 있다”는 취지의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검찰은 최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2018년 10월 27일 오전 서울 혜화역 인근에서 ‘곰탕집 성추행 사건’ 2차 가해를 규탄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檢, 1심서 벌금 300만원 구형→법원은 ‘실형’ 선고1심은 2018년 9월 5일 강제추행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피해 당시의 상황을 일관되고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는데 그 내용이 자연스럽다. 피해자가 손이 스친 것과 움켜잡힌 것을 착각할 만한 사정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양형은 검찰 구형보다 훨씬 높은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곧바로 A씨를 법정구속했다. 이와 함께 성폭력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3년 취업제한 명령도 함께 내렸다.재판부는 양형 이유에 대해 “최씨가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있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할 마음도 없어 보인다. 피해자가 느꼈을 수치심이 상당해 보이고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추행의 방법과 범행 후 정황 등을 고려하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밝혔다. 이는 CCTV 등의 추행 증거가 명백한 상황에서 최씨가 일말의 반성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를 공격하는 듯한 태도로 일관했던 점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수많은 강제추행 사건 중 하나였던 최씨 사건은 최씨 아내가 판결 하루 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과 인터넷 커뮤니티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올리며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남편인 최씨가 법정구속된 후에야 남편이 수사와 재판을 받고 있던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는 최씨 아내는 최씨의 주장을 그대로 옮기며 억울함을 토로했다.최씨 아내는 “(피해) 여자가 합의금으로 1000만원을 요구했고 신랑은 ‘갈 때까지 가보자’라며 자기는 명백하니 법정에서 다 밝혀줄 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재판까지 가게 됐다”고 사실과 다른 내용을 게시했다. 또 “신랑은 줄곧 (식당에) 있는 내내 손을 뒤로 하고 있거나 앞으로 모으고 있었다”라며 “윗사람들 모시고 준비하는 어려운 자리에서 그 짧은 순간에 여자 엉덩이 만질 생각을 (하는)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다”고 주장했다.최씨 아내의 글은 삽시간에 언론과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퍼졌다. 최씨 아내의 일방적 주장을 받아들인 일부 누리꾼들은 “최씨는 억울한 피해자”라며 피해 여성과 1심 판사에 대한 거센 비난을 퍼부었다. 판결을 비판하는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졸지에 ‘꽃뱀’으로 몰린 피해자는 직접 최씨 아내의 주장을 반박하는 인터뷰를 해야 했다.2018년 10월 27일 서울 혜화역 일대에서 ‘곰탕집 성추행 유죄 판결 규탄 집회’가 별도로 열리기도 했다. (사진=이데일리DB)◇가해남성 아내, 사실과 다른 글 올려 피해자 공격받아사회적 관심이 커진 상황에서 사건을 배당받은 2심 재판부는 10월 12일 보석청구를 인용해 최씨를 석방했다. 최씨는 법정구속된 지 38일 만에 풀려나 불구속 상태에서 2심 재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는 2심에서도 “피해자의 엉덩이를 만진 적이 없다”며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또 원심의 형이 너무 무겁다는 양형부당 주장도 폈다.검찰은 2심에서 사건 당시 식당 CCTV 영상의 화질을 개선한 새로운 영상을 제출했다. 2심 재판부는 화질이 개선된 CCTV 영상에 대해 분석의뢰했다. 법영상분석연구소는 현장의 3차원 재구성 결과 “약 1.333초만에 주변 인물과 피해 여성 사이를 걸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우발적인 신체접촉이 발생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된다”는 결과를 회신했다.2심도 2019년 4월 26일 CCTV 영상과 피해자의 일관된 진술 등을 토대로 최씨의 성추행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CCTV 영상을 보면 최씨가 출입구를 보면서 뒷짐을 지고 서 있다가 돌아서는 장면, 최씨 오른쪽 팔이 피해자 쪽으로 향하는 장면, 최씨가 피해자와 인접한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피해자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장면 등을 확인할 수 있어 피해자의 진술에 부합한다”고 설명했다.다만 최씨의 양형부당 주장은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최씨가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사회적 유대관계도 분명하다. 또 추행 정도가 그리 중하지 않다”며 “1심 양형은 무거워 부당하다”며 판단했다. 2심은 최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성폭력 치료강의 40시간 수강과 아동·청소년 관련기관 3년 취업제한 명령은 그대로 유지하는 한편, 사회봉사 160시간 명령은 추가했다.◇일부의 가해자 옹호에…“성추행사건 특징 모르는 주장”최씨는 이에 불복해 상고했다. 그는 “협소한 공간으로 인해 피해자와 접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추행의 고의에 대한 합리적 의심 없는 증명이 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9년 12월 12일 “강제추행을 유죄로 인정한 2심 판단엔 잘못이 없다”며 최씨의 유죄를 그대로 확정했다. 최씨를 옹호하던 사람들은 대법원 확정 판결마저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요지는 △“최씨가 평소 성추행을 할 사람이 아니다” △“여성의 일방적 주장만을 근거로 유죄 판결을 내렸다” △“설령 엉덩이를 만진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양형이 과도하다” 등이었다.하지만 법조계에선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성추행 사건의 전형적 특징을 모르는 주장”이라고 일축한다. 성추행 사건의 경우 화이트칼라 계층에서도 많이 발생하며 가해자 다수도 ‘평소에 그럴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피해자의 진술이라고 하더라도 일관되거나 객관적 증거와 일치할 경우에만 유죄 판단의 근거가 된다는 설명이다.양형과 관련해서도 충분히 가능한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부장판사 출신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최씨의 경우 아무런 반성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런 최씨 태도를 법원이 2차 가해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며 “양형기준상 최대 징역 2년까지 선고가 가능한 상황에서 충분히 가능한 양형이었다”고 밝혔다.
  • 신의 곁으로 떠난 '축구의 신' 마라도나[그해 오늘]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이탈리아 축구 1부리그 세리에 A의 SSC나폴리는 1980년대 황금기를 보냈다. 1986-87, 1989-90시즌 두 차례 리그 우승과 1990년 UEFA컵(챔피언스리그의 전신) 우승을 각각 차지했다. 1983-84시즌 강등권을 겨우 벗어난 약체 구단의 환골탈태였다. 아르헨티나 축구선수 디에고 마라도나가 1984년 나폴리에 입단하고서 달라진 일이었다. 이후로 지금까지 나폴리는 리그와 컵에서 단 한 차례도 우승하지 못했다.1986년 멕시코월드컵 8강전에서 붙은 아르헨과 잉글랜드. 경기 도중 디에고 마라도나가 손으로 골을 넣고 있다. 경기는 아르헨이 2대 1로 이겼다.(사진=FIFA)축구는 열한 명이 하는 경기다. 모두가 한 몸으로 움직여야 경기를 지배할 수 있다. 이걸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선수가 마라도나다. 빼어난 실력으로 경기를 지배하는 선수도 많다. 시즌 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앞서 나폴리의 황금기 시절을 들여다보면 마라도나가 이런 선수라는 데에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다.1986년 아르헨티나의 멕시코 월드컵 우승도 마찬가지였다. 역대 아르헨 국가대표팀 선수단 가운데 당시를 최고로 평가하는 의견은 우세하지 않다. 그러나 당시 사실상 마라도나가 월드컵을 지배한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대회에서 그는 골 5개와 도움 5개를 기록하고 골든볼을 차지하며 우승을 견인했다. 당시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아르헨에 3대 1로 패하면서 제물이 됐고, 8강전의 잉글랜드는 축구사 유일한 ‘신의 손’ 골을 먹고서 눈물을 삼켰다. 마라도나는 “내 머리와 신의 손으로 골을 넣었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세상은 그를 ‘축구의 신’이라고 불렀다.이처럼 마라도나는 가장 화려한 길을 걸은 축구선수로 평가된다. 1960년 10월 아르헨티나 브에노스 아이레스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가족이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축구로 성공하려고 했다. 유년기부터 뛰어난 실력을 보이면서 1976년 아르헨 1부리그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 데뷔했다. 만 16세였다. 1981년 같은 리그 명문 보카주니어스로 이적하고 첫 시즌 리그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198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FC를 거쳐서 1984년 이탈리아 나폴리로 이적했다.축구선수로서 황금기는 나폴리에서 만개했다. 나폴리는 당시 역대 최대 이적료를 지불하고 마라도나를 영입했다. 이후 위와 같은 성과를 거두면서 팀 역사상 최고 성적을 거뒀다. 나폴리 시민은 약체이면서 타 구단에 멸시받던 팀을 구세한 마라도나를 떠받들었다. “마라도나를 비난하는 것은 신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이런 대접은 조국 아르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탈리아와 아르헨에는 마라도나를 숭배하는 ‘마라도나교’라는 종교가 생겼다.축구선수로서 경력은 화려했지만 자기 관리에는 소홀했다. 나폴리 황금기를 직접 이끌던 1991년 코카인 흡입 사실이 적발된 이래 줄곧 마약 중독에 시달렸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약물검사에서 금지약물 양성 반응이 나와 조별리그 도중 귀국했다.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되고 후유증으로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2004년 쿠바에서 카를 카스트로 도움을 받아 마약을 끊기까지 마약의 늪에서 헤맸다. 1997년 현역에서 은퇴할 당시도 마약에 절어 있었다. 이탈리아 진출 이후 마피아와 만나면서 마약에 손을 댔다는 게 정설이다. 이탈리아는 마라도나에게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안겨줬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아르헨이 4강에서 이탈리아를 제친 것이 화근이었다. 승부 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르헨 승리로 마무리됐다. 이탈리아 여론은 마라도나에게 급격하게 등을 돌렸다. 마치 안정환 선수가 한일 월드컵 16강에서 결승골을 넣어 이탈리아를 무너뜨리고, 이탈리아 소속팀에서 방출된 것과 같았다. 이탈리아 사법 및 세무 당국은 마라도나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마약 복용과 탈세 혐의가 드러났다.몰락한 축구 영웅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자국 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되면서 재기에 성공하는 듯했다. 아르헨이 8강에서 독일에 4대 0으로 패배하면서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2018년까지 여러 클럽 팀을 돌면서 감독직을 맡았는데 우승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축구 실력과 감독의 용병술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리오넬 메시가 22일(현지시간) 카타르 월드컵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경기 도중 얼굴을 감싸쥐고 있다. 경기에서 사우디가 아르헨을 2대 1로 이겼다.(사진=로이터)건강이 좋지 않던 차에 2020년 11월25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코로나 19 증상이 의심돼 자가격리 와중에 변을 당했다. 아르헨은 마라도나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렀다. 대통령은 공식일정을 취소했고 모든 공공기관은 조기를 게양했다. 코로나 19가 한창이라 감염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조문 인파가 수km 줄을 섰다. 앙숙 관계인 클럽 팬들도 얼싸안고 울며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마라도나를 방출했던 나폴리는 마라도나 등번호 10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그러면서 경기장 이름을 ‘스타디오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로 바꿨다.생전 마라도나는 2000년 12월 국제축구연맹(FIFA)이 선정한 세기의 축구선수에 올랐다. 매해 선정하는 올해의 선수와 격이 달랐다. 20세기 백 년을 대표하는 선수가 누구인지 가린 것이다. 공동 수상한 브라질 펠레는 축구인이 뽑았지만, 마라도나는 축구 팬이 뽑았다. 시대를 초월해 라이벌로 평가받는 아르헨의 리오넬 메시는 마라도나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아르헨은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사우디에 패배하고 고전 중이다.
    전재욱 기자 2022.11.25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이탈리아 축구 1부리그 세리에 A의 SSC나폴리는 1980년대 황금기를 보냈다. 1986-87, 1989-90시즌 두 차례 리그 우승과 1990년 UEFA컵(챔피언스리그의 전신) 우승을 각각 차지했다. 1983-84시즌 강등권을 겨우 벗어난 약체 구단의 환골탈태였다. 아르헨티나 축구선수 디에고 마라도나가 1984년 나폴리에 입단하고서 달라진 일이었다. 이후로 지금까지 나폴리는 리그와 컵에서 단 한 차례도 우승하지 못했다.1986년 멕시코월드컵 8강전에서 붙은 아르헨과 잉글랜드. 경기 도중 디에고 마라도나가 손으로 골을 넣고 있다. 경기는 아르헨이 2대 1로 이겼다.(사진=FIFA)축구는 열한 명이 하는 경기다. 모두가 한 몸으로 움직여야 경기를 지배할 수 있다. 이걸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선수가 마라도나다. 빼어난 실력으로 경기를 지배하는 선수도 많다. 시즌 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앞서 나폴리의 황금기 시절을 들여다보면 마라도나가 이런 선수라는 데에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다.1986년 아르헨티나의 멕시코 월드컵 우승도 마찬가지였다. 역대 아르헨 국가대표팀 선수단 가운데 당시를 최고로 평가하는 의견은 우세하지 않다. 그러나 당시 사실상 마라도나가 월드컵을 지배한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대회에서 그는 골 5개와 도움 5개를 기록하고 골든볼을 차지하며 우승을 견인했다. 당시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아르헨에 3대 1로 패하면서 제물이 됐고, 8강전의 잉글랜드는 축구사 유일한 ‘신의 손’ 골을 먹고서 눈물을 삼켰다. 마라도나는 “내 머리와 신의 손으로 골을 넣었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세상은 그를 ‘축구의 신’이라고 불렀다.이처럼 마라도나는 가장 화려한 길을 걸은 축구선수로 평가된다. 1960년 10월 아르헨티나 브에노스 아이레스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가족이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축구로 성공하려고 했다. 유년기부터 뛰어난 실력을 보이면서 1976년 아르헨 1부리그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 데뷔했다. 만 16세였다. 1981년 같은 리그 명문 보카주니어스로 이적하고 첫 시즌 리그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198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FC를 거쳐서 1984년 이탈리아 나폴리로 이적했다.축구선수로서 황금기는 나폴리에서 만개했다. 나폴리는 당시 역대 최대 이적료를 지불하고 마라도나를 영입했다. 이후 위와 같은 성과를 거두면서 팀 역사상 최고 성적을 거뒀다. 나폴리 시민은 약체이면서 타 구단에 멸시받던 팀을 구세한 마라도나를 떠받들었다. “마라도나를 비난하는 것은 신을 비난하는 것”이었다. 이런 대접은 조국 아르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탈리아와 아르헨에는 마라도나를 숭배하는 ‘마라도나교’라는 종교가 생겼다.축구선수로서 경력은 화려했지만 자기 관리에는 소홀했다. 나폴리 황금기를 직접 이끌던 1991년 코카인 흡입 사실이 적발된 이래 줄곧 마약 중독에 시달렸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약물검사에서 금지약물 양성 반응이 나와 조별리그 도중 귀국했다. 마약 소지 혐의로 체포되고 후유증으로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2004년 쿠바에서 카를 카스트로 도움을 받아 마약을 끊기까지 마약의 늪에서 헤맸다. 1997년 현역에서 은퇴할 당시도 마약에 절어 있었다. 이탈리아 진출 이후 마피아와 만나면서 마약에 손을 댔다는 게 정설이다. 이탈리아는 마라도나에게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안겨줬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아르헨이 4강에서 이탈리아를 제친 것이 화근이었다. 승부 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르헨 승리로 마무리됐다. 이탈리아 여론은 마라도나에게 급격하게 등을 돌렸다. 마치 안정환 선수가 한일 월드컵 16강에서 결승골을 넣어 이탈리아를 무너뜨리고, 이탈리아 소속팀에서 방출된 것과 같았다. 이탈리아 사법 및 세무 당국은 마라도나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마약 복용과 탈세 혐의가 드러났다.몰락한 축구 영웅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자국 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되면서 재기에 성공하는 듯했다. 아르헨이 8강에서 독일에 4대 0으로 패배하면서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2018년까지 여러 클럽 팀을 돌면서 감독직을 맡았는데 우승으로 이끌지는 못했다. 축구 실력과 감독의 용병술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리오넬 메시가 22일(현지시간) 카타르 월드컵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경기 도중 얼굴을 감싸쥐고 있다. 경기에서 사우디가 아르헨을 2대 1로 이겼다.(사진=로이터)건강이 좋지 않던 차에 2020년 11월25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코로나 19 증상이 의심돼 자가격리 와중에 변을 당했다. 아르헨은 마라도나의 장례식을 국장으로 치렀다. 대통령은 공식일정을 취소했고 모든 공공기관은 조기를 게양했다. 코로나 19가 한창이라 감염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조문 인파가 수km 줄을 섰다. 앙숙 관계인 클럽 팬들도 얼싸안고 울며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마라도나를 방출했던 나폴리는 마라도나 등번호 10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그러면서 경기장 이름을 ‘스타디오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로 바꿨다.생전 마라도나는 2000년 12월 국제축구연맹(FIFA)이 선정한 세기의 축구선수에 올랐다. 매해 선정하는 올해의 선수와 격이 달랐다. 20세기 백 년을 대표하는 선수가 누구인지 가린 것이다. 공동 수상한 브라질 펠레는 축구인이 뽑았지만, 마라도나는 축구 팬이 뽑았다. 시대를 초월해 라이벌로 평가받는 아르헨의 리오넬 메시는 마라도나의 벽을 넘을 수 있을까. 아르헨은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사우디에 패배하고 고전 중이다.
  • '장난삼아' 권총 겨누던 경찰관…21세 청년을 죽였다[그해 오늘]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6년 11월 24일. 1989년 순경으로 임용돼 경찰 경력만 27년이던 전직 경찰 간부 박모씨(당시 56세)에 대해 대법원이 징역 6년을 확정했다. 권총으로 사람을 죽게 한 박씨가 살인 혐의는 무죄, 중과실치사 혐의만 유죄로 확정된 순간이다.박씨는 2015년 구파발 군경합동검문소에서 자신이 관리하던 의경에게 권총을 발사해 죽게 한 범인이다. 베테랑 경찰이었던 박씨는 왜 의경에게 권총을 쐈을까? 그리고 왜 법원은 살인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을까?서울 은평경찰서는 사고 발생 이후인 2016년 1월 1층 로비에 구파발 검문소 총기사고 피해자 의경 A씨의 추모동판을 설치했다. (사진=연합뉴스)당시 구파발 검문소엔 경찰에선 의경 4명과 경찰관 3명이 배치돼 있었다. 검문소 내 생활관에서 숙식하는 의경들이 돌아가며 교대근무를 했고, 감독관인 경찰관들은 3명이 3교대로 돌아가면서 근무했다. 검문소의 경찰 책임자 중 한 명이었던 박씨는 여러 차례 권총으로 의경들을 위협했다. 그는 별다른 이유 없이 의경들에게 일렬로 서도록 한 후 권총을 겨눴다. 검문소에서 함께 근무하는 군사경찰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권총을 꺼내기도 했다. 경찰서와 떨어진 외딴섬인 검문소에서 근무 시엔 경찰관이 자신 혼자였기에 박씨를 제재할 사람은 없었다. 박씨는 경찰관에게만 비상용으로 지급된 권총을 이용해 ‘장난’을 빙자해 수차례 의경들을 위협한 것이다. 그러던 중 2015년 8월 25일 결국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는 의경 중 1명이 탈영해 검문소에 의경이 3명만 근무하던 상태였다.◇“위험하다” 의경들 만류에도 안전장치까지 풀어당일 저녁 식사시간 직전인 오후 4시55분께 의경 3명이 생활관에서 간식을 먹고 있는 것을 보자, 박씨는 욕설과 함께 “나 빼고 맛있는 거 먹냐? 다 없애겠다”며 또다시 일렬로 서라고 소리쳤다. 그는 곧바로 경찰 조끼에서 권총을 꺼내 의경들을 향해 겨눴다. 놀란 의경들이 몸을 피하며 “살려주세요. 위험합니다”라고 소리쳤으나 박씨는 총구를 내리지 않고 오히려 안전장치를 풀었다.숨어 있던 의경 A씨(당시 21세)가 이 광경을 보고 놀라 “진짜 뺐다”고 소리를 지르자, 박씨는 소리를 지른 A씨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약 1m 지점까지 다가간 후 A씨의 가슴 부분에 총구를 겨눈 후 손잡이를 당겼다. 권총에서 발사된 실탄은 A씨 왼쪽 가슴을 그대로 관통했고 결국 A씨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A씨가 총을 맞고 쓰러졌지만 박씨는 그 자리에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는 당황해 울면서 피해자 이름을 부르며 “안돼”, “이건 꿈이야”라고 말을 했다. 또 권총의 탄창을 열었다가 총알이 바닥에 떨어지자 “빈 탄창이었어야 하는데”라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고는 총알을 다시 권총에 넣었다.그 사이 다른 의경들이 쓰러진 A씨에게 달려가 심폐소생술을 하고 경찰과 119에 신고했다. 의경들이 피해자에 대한 긴급조치를 취하고 소방관들과 다른 경찰관들이 현장에 도착한 상황에서도 박씨는 아무런 조치에 나서지 않고 현장에 그대로 머물렀다. A씨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결국 숨졌다.의경 사망 총기사고가 발생했던 구파발 군경합동검문소. (사진=연합뉴스)긴급체포 후 구속된 박씨는 첫 경찰 조사에서 “의경들에게 총구를 겨누는 장난을 몇 번 친 적이 있지만 잠금장치를 빼고 방아쇠를 당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고 진술했다. 이어진 조사에선 방아쇠를 고의로 당겼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탄창의 첫 번째 칸이 비어 있는 것으로 알고 실탄은 물론 공포탄도 나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 격발을 했다”고 주장했다. 경찰관 장비관리규칙은 첫 격발 시엔 공포탄이 발사되도록 하고, 이후부턴 실탄이 장전되도록 규정하고 있다.◇경찰 “과실치사”→검찰 “살인”→법원 “중과실치사”경찰은 “살해 의도가 확인되지 않는다”며 살인이 아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보강수사를 통해 “의경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서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던 박씨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 인정된다”며 살인과 특수협박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검찰은 “숨지기 직전 피해자는 엄청난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유족도 엄벌을 내려달라고 탄원하고 있고, 법의 엄정함을 깨닫게 하도록 중형을 선고할 필요성이 있다”며 살인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징역 12년을 선고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유족도 “27년 경력의 경찰이 공포탄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박씨는 피해자가 쓰러지자 탄피를 빼냈다 다시 끼워 넣는 등 증거인멸도 시도했다”며 살인 혐의를 인정해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2009년 하반기 중앙경찰학교 내에서 신임 경찰 교육생들이 사격 예비 연습장에서 찍은 사진. 당시 사진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알려지면서 경찰의 안일한 총기관리 인식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기도 했다.반면 박씨는 “고인을 쏠 이유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 하나만 믿어달라”며 살인 혐의를 부인했다.법원도 박씨 주장을 받아들여 살인이 아닌 중과실치사만 인정했다. 1심은 “살해 고의를 인정하기 위해선 박씨가 권총 첫 격발 시 실탄이 발사된다는 점을 알았어야 하는데 이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결론 냈다. 또 검찰이 범행 동기로 주장한 것과 달리 박씨가 의경들과 친밀한 관계였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1심은 중과실치사와 특수협박 혐의 등을 유죄로 인정하며 “총기를 이용해 의경들의 생명이나 신체에 큰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행위를 거듭하다 결국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던 무고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징역 6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살인 혐의가 인정돼야 한다며 상소했지만 2심과 대법원 모두 “살인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1심 판단을 유지했다.유족은 별도로 박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일실수입과 위자료 등을 합쳐 박씨가 유족에게 약 4억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박씨가 항소하지 않아 배상액은 그대로 확정됐다.
    한광범 기자 2022.11.24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6년 11월 24일. 1989년 순경으로 임용돼 경찰 경력만 27년이던 전직 경찰 간부 박모씨(당시 56세)에 대해 대법원이 징역 6년을 확정했다. 권총으로 사람을 죽게 한 박씨가 살인 혐의는 무죄, 중과실치사 혐의만 유죄로 확정된 순간이다.박씨는 2015년 구파발 군경합동검문소에서 자신이 관리하던 의경에게 권총을 발사해 죽게 한 범인이다. 베테랑 경찰이었던 박씨는 왜 의경에게 권총을 쐈을까? 그리고 왜 법원은 살인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을까?서울 은평경찰서는 사고 발생 이후인 2016년 1월 1층 로비에 구파발 검문소 총기사고 피해자 의경 A씨의 추모동판을 설치했다. (사진=연합뉴스)당시 구파발 검문소엔 경찰에선 의경 4명과 경찰관 3명이 배치돼 있었다. 검문소 내 생활관에서 숙식하는 의경들이 돌아가며 교대근무를 했고, 감독관인 경찰관들은 3명이 3교대로 돌아가면서 근무했다. 검문소의 경찰 책임자 중 한 명이었던 박씨는 여러 차례 권총으로 의경들을 위협했다. 그는 별다른 이유 없이 의경들에게 일렬로 서도록 한 후 권총을 겨눴다. 검문소에서 함께 근무하는 군사경찰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권총을 꺼내기도 했다. 경찰서와 떨어진 외딴섬인 검문소에서 근무 시엔 경찰관이 자신 혼자였기에 박씨를 제재할 사람은 없었다. 박씨는 경찰관에게만 비상용으로 지급된 권총을 이용해 ‘장난’을 빙자해 수차례 의경들을 위협한 것이다. 그러던 중 2015년 8월 25일 결국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는 의경 중 1명이 탈영해 검문소에 의경이 3명만 근무하던 상태였다.◇“위험하다” 의경들 만류에도 안전장치까지 풀어당일 저녁 식사시간 직전인 오후 4시55분께 의경 3명이 생활관에서 간식을 먹고 있는 것을 보자, 박씨는 욕설과 함께 “나 빼고 맛있는 거 먹냐? 다 없애겠다”며 또다시 일렬로 서라고 소리쳤다. 그는 곧바로 경찰 조끼에서 권총을 꺼내 의경들을 향해 겨눴다. 놀란 의경들이 몸을 피하며 “살려주세요. 위험합니다”라고 소리쳤으나 박씨는 총구를 내리지 않고 오히려 안전장치를 풀었다.숨어 있던 의경 A씨(당시 21세)가 이 광경을 보고 놀라 “진짜 뺐다”고 소리를 지르자, 박씨는 소리를 지른 A씨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약 1m 지점까지 다가간 후 A씨의 가슴 부분에 총구를 겨눈 후 손잡이를 당겼다. 권총에서 발사된 실탄은 A씨 왼쪽 가슴을 그대로 관통했고 결국 A씨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A씨가 총을 맞고 쓰러졌지만 박씨는 그 자리에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는 당황해 울면서 피해자 이름을 부르며 “안돼”, “이건 꿈이야”라고 말을 했다. 또 권총의 탄창을 열었다가 총알이 바닥에 떨어지자 “빈 탄창이었어야 하는데”라고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고는 총알을 다시 권총에 넣었다.그 사이 다른 의경들이 쓰러진 A씨에게 달려가 심폐소생술을 하고 경찰과 119에 신고했다. 의경들이 피해자에 대한 긴급조치를 취하고 소방관들과 다른 경찰관들이 현장에 도착한 상황에서도 박씨는 아무런 조치에 나서지 않고 현장에 그대로 머물렀다. A씨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결국 숨졌다.의경 사망 총기사고가 발생했던 구파발 군경합동검문소. (사진=연합뉴스)긴급체포 후 구속된 박씨는 첫 경찰 조사에서 “의경들에게 총구를 겨누는 장난을 몇 번 친 적이 있지만 잠금장치를 빼고 방아쇠를 당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고 진술했다. 이어진 조사에선 방아쇠를 고의로 당겼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탄창의 첫 번째 칸이 비어 있는 것으로 알고 실탄은 물론 공포탄도 나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 격발을 했다”고 주장했다. 경찰관 장비관리규칙은 첫 격발 시엔 공포탄이 발사되도록 하고, 이후부턴 실탄이 장전되도록 규정하고 있다.◇경찰 “과실치사”→검찰 “살인”→법원 “중과실치사”경찰은 “살해 의도가 확인되지 않는다”며 살인이 아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보강수사를 통해 “의경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서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던 박씨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 인정된다”며 살인과 특수협박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검찰은 “숨지기 직전 피해자는 엄청난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유족도 엄벌을 내려달라고 탄원하고 있고, 법의 엄정함을 깨닫게 하도록 중형을 선고할 필요성이 있다”며 살인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징역 12년을 선고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유족도 “27년 경력의 경찰이 공포탄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박씨는 피해자가 쓰러지자 탄피를 빼냈다 다시 끼워 넣는 등 증거인멸도 시도했다”며 살인 혐의를 인정해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2009년 하반기 중앙경찰학교 내에서 신임 경찰 교육생들이 사격 예비 연습장에서 찍은 사진. 당시 사진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알려지면서 경찰의 안일한 총기관리 인식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기도 했다.반면 박씨는 “고인을 쏠 이유가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 하나만 믿어달라”며 살인 혐의를 부인했다.법원도 박씨 주장을 받아들여 살인이 아닌 중과실치사만 인정했다. 1심은 “살해 고의를 인정하기 위해선 박씨가 권총 첫 격발 시 실탄이 발사된다는 점을 알았어야 하는데 이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결론 냈다. 또 검찰이 범행 동기로 주장한 것과 달리 박씨가 의경들과 친밀한 관계였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1심은 중과실치사와 특수협박 혐의 등을 유죄로 인정하며 “총기를 이용해 의경들의 생명이나 신체에 큰 위험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행위를 거듭하다 결국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던 무고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징역 6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살인 혐의가 인정돼야 한다며 상소했지만 2심과 대법원 모두 “살인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1심 판단을 유지했다.유족은 별도로 박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일실수입과 위자료 등을 합쳐 박씨가 유족에게 약 4억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박씨가 항소하지 않아 배상액은 그대로 확정됐다.
  • 6·25 이후 첫 韓영토·민간인 공격…전쟁 가까웠던 연평도 포격전[그해 오늘]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여느 때와 다름 없었던 2010년 11월23일. 오후 2시34분이 되면서 대한민국령 서해 5도 중 한 곳인 연평도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선전포고도 없이 북한군이 쏘아 올린 포탄이 연평도 전역에 낙하했다. (사진=연합뉴스)한반도에 정전 협정 이후 크고 작은 분쟁이 있었지만 연평도 포격전은 가장 전쟁의 가능성이 컸던 날 중 하나다. 1950년 6·25전쟁 이래 한국 영토에 대한 첫 번째 공격이었고, 심지어 민간 거주구역에도 타격을 입힌 명백한 범죄였다. 이 사건으로 해병 2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북한의 도발에 우리 군도 즉각 응수했다. 한국군은 오후 2시47분 북한군 기지를 향해 50발의 대응 사격에 나섰다. 북한이 다시 사격을 재개하자 우리 군도 보복 사격에 나서면서 연평도 일대는 전쟁터가 됐다. 교전 중지가 이뤄진 오후 3시41분까지 북한군 170여발, 우리군 80여발의 포탄이 오갔다.우리 군은 서해 5도 지역에 최고 수준의 국지도발 대비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다. 첫 번째 포격이 일어난 지 4분만에 한국 공군의 KF-16 2대가 출격했다. 추가로 KF-16 2대와 F-15K 4대 등 8대 전투기가 연평도로 몰려들었다. 북한도 MiG-23과 경비정을 출격시켰다.확전의 가능성을 둔 출격이었다. 실제로 당시 전투기들은 북한이 포탄 도발을 넘어 미사일 발사 징후가 보일 경우 정밀타격 임무를 갖고 있었다. 일촉측발의 상황에서 북한의 사격이 멈추면서 양 측의 충돌 공중전과 해상전까지는 비화되지 않았다.이 사건으로 우리 군은 해병대원 전사자 2명, 군인 부상자 16명과 함께, 민간인 사망자 2명, 민간인 부상자 3명 등 사상자가 발생했다. 연평도의 각종 시설 및 가옥도 파괴됐다. 북한 측의 피해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우리 군 전사자는 서정우 병장과, 문광욱 이병이었다. 전역을 한 달 앞뒀던 서 병장은 휴가로 섬을 떠나려던 상태였으나 포격에 부대 복귀를 하다 2차 포격에 사망했다. 자대 배치를 받은 지 불과 12일이 된 문 이병 역시 작전 수행 중 포탄 파편에 전사했다. 두 사람은 사후 하사, 일병으로 각각 추서됐다.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도발 사태 때 해병대 K9 자주포가 포화를 뚫고 나오고 있다. 훈련 홍보 촬영을 하던 정훈장교가 포탄이 떨어진 실제 상황 당시를 찍은 사진이다.(사진=해병대)우리 정부는 북한의 의도된 도발이라며 강력 규탄했다. 반면 북한은 우리군의 훈련에 대한 자위적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전조도 있었다. 이날 오전 8시20분 북한은 군 통신선을 통해 우리 군의 사격 훈련 시 좌시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전통문을 보내왔다.우리 정부는 당시 공중 공격과 포격이 포함된 보복 공격을 계획한 것이 훗날 드러났다. 미국이 보복 타격을 막았는데 한미 연합군이 사상 최대 규모로 서해에서 훈련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것으로 합의가 됐다. 미 해군 USS 조지 워싱턴 항공모함이 서해에 들어와 4일간 훈련이 지속됐다.이후로도 우리 군은 여러 차례 인근 해상에서 작전을 전개했다. 북한도 해안포를 전진시키는 등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포탄 발사 등의 직접적 대응은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더구나 북측은 금강산 관광 재개 회담이나 6자 회담 등도 제안하는 황당한 모습을 보였다. 우리 정부는 이에는 선을 그었다.이후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소집됐지만 중국의 반대로 합의안이 도출되지 않았다. 연평도 포격전을 전쟁범죄로 묻기 위한 시도도 있었으나 국제형사재판소(ICC)는 고의적 민간인 공격을 입증하기 어렵다며 전쟁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2010년 당시에는 공식 명칭을 ‘연평도 포격 도발’로 규정했지만 ‘도발’의 주체가 북한이고 우리 군의 대응이 포함되지 않은 용어여서 명칭 변경 논의가 이어졌다. 결국 2021년 3월 국방부는 공식 명칭을 ‘연평도 포격전’으로 변경했다.
    김영환 기자 2022.11.23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여느 때와 다름 없었던 2010년 11월23일. 오후 2시34분이 되면서 대한민국령 서해 5도 중 한 곳인 연평도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선전포고도 없이 북한군이 쏘아 올린 포탄이 연평도 전역에 낙하했다. (사진=연합뉴스)한반도에 정전 협정 이후 크고 작은 분쟁이 있었지만 연평도 포격전은 가장 전쟁의 가능성이 컸던 날 중 하나다. 1950년 6·25전쟁 이래 한국 영토에 대한 첫 번째 공격이었고, 심지어 민간 거주구역에도 타격을 입힌 명백한 범죄였다. 이 사건으로 해병 2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북한의 도발에 우리 군도 즉각 응수했다. 한국군은 오후 2시47분 북한군 기지를 향해 50발의 대응 사격에 나섰다. 북한이 다시 사격을 재개하자 우리 군도 보복 사격에 나서면서 연평도 일대는 전쟁터가 됐다. 교전 중지가 이뤄진 오후 3시41분까지 북한군 170여발, 우리군 80여발의 포탄이 오갔다.우리 군은 서해 5도 지역에 최고 수준의 국지도발 대비태세인 ‘진돗개 하나’를 발령했다. 첫 번째 포격이 일어난 지 4분만에 한국 공군의 KF-16 2대가 출격했다. 추가로 KF-16 2대와 F-15K 4대 등 8대 전투기가 연평도로 몰려들었다. 북한도 MiG-23과 경비정을 출격시켰다.확전의 가능성을 둔 출격이었다. 실제로 당시 전투기들은 북한이 포탄 도발을 넘어 미사일 발사 징후가 보일 경우 정밀타격 임무를 갖고 있었다. 일촉측발의 상황에서 북한의 사격이 멈추면서 양 측의 충돌 공중전과 해상전까지는 비화되지 않았다.이 사건으로 우리 군은 해병대원 전사자 2명, 군인 부상자 16명과 함께, 민간인 사망자 2명, 민간인 부상자 3명 등 사상자가 발생했다. 연평도의 각종 시설 및 가옥도 파괴됐다. 북한 측의 피해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우리 군 전사자는 서정우 병장과, 문광욱 이병이었다. 전역을 한 달 앞뒀던 서 병장은 휴가로 섬을 떠나려던 상태였으나 포격에 부대 복귀를 하다 2차 포격에 사망했다. 자대 배치를 받은 지 불과 12일이 된 문 이병 역시 작전 수행 중 포탄 파편에 전사했다. 두 사람은 사후 하사, 일병으로 각각 추서됐다.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도발 사태 때 해병대 K9 자주포가 포화를 뚫고 나오고 있다. 훈련 홍보 촬영을 하던 정훈장교가 포탄이 떨어진 실제 상황 당시를 찍은 사진이다.(사진=해병대)우리 정부는 북한의 의도된 도발이라며 강력 규탄했다. 반면 북한은 우리군의 훈련에 대한 자위적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전조도 있었다. 이날 오전 8시20분 북한은 군 통신선을 통해 우리 군의 사격 훈련 시 좌시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전통문을 보내왔다.우리 정부는 당시 공중 공격과 포격이 포함된 보복 공격을 계획한 것이 훗날 드러났다. 미국이 보복 타격을 막았는데 한미 연합군이 사상 최대 규모로 서해에서 훈련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는 것으로 합의가 됐다. 미 해군 USS 조지 워싱턴 항공모함이 서해에 들어와 4일간 훈련이 지속됐다.이후로도 우리 군은 여러 차례 인근 해상에서 작전을 전개했다. 북한도 해안포를 전진시키는 등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포탄 발사 등의 직접적 대응은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더구나 북측은 금강산 관광 재개 회담이나 6자 회담 등도 제안하는 황당한 모습을 보였다. 우리 정부는 이에는 선을 그었다.이후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소집됐지만 중국의 반대로 합의안이 도출되지 않았다. 연평도 포격전을 전쟁범죄로 묻기 위한 시도도 있었으나 국제형사재판소(ICC)는 고의적 민간인 공격을 입증하기 어렵다며 전쟁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2010년 당시에는 공식 명칭을 ‘연평도 포격 도발’로 규정했지만 ‘도발’의 주체가 북한이고 우리 군의 대응이 포함되지 않은 용어여서 명칭 변경 논의가 이어졌다. 결국 2021년 3월 국방부는 공식 명칭을 ‘연평도 포격전’으로 변경했다.
  • '아시아 최초' BTS, 美AMA 수상…1년만에 월드컵도 '접수'[그해 오늘]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한국시간으로 지난해 11월22일 낭보가 날아들었다. 물 건너 미국 ‘2021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에서 최고영예인 ‘올해의 아티스트’에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오른 것이다. 1974년 AMA가 생긴 이래 첫 번째 아시아 가수의 수상이었다.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지난해 제49회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 시상식에서 대상에 해당하는 ‘아티스트 오브 더 이어’(올해의 아티스트)를 수상하고 감격해하고 있다.(사진=로이터·연합뉴스)지난 2017년 BTS는 이 시상식에서 ‘DNA’를 부르며 미국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4년만에 ‘올해의 아티스트’라는 쾌거를 거뒀다. AMA는 그래미 어워즈, 빌보드 뮤직 어워즈와 함께 미국 3대 대중음악 시상식으로 분류된다.의미하는 바가 컸다. AMA는 판매량, 방송 횟수 등 대중성을 기준으로 상을 준다. 2006년부터 투표를 반영했는데 지난해부터는 이마저도 팬 투표 100%로 수상자를 뽑았다. 지구상에서 가장 대중적인 가수로 BTS가 호명된 것이다.‘올해의 아티스트’ 후보에 오른 것부터 아시아 가수 최초였으니, 그간 서구 시장에서의 아시안 아티스트들의 입지가 짐작된다. 백인·흑인이 아닌 아티스트도 세계 최대 음악 시장 미국에서 경쟁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던진 셈이다.‘올해의 아티스트’의 경우 아리아나 그란데, 드레이크, 올리비아 로드리고, 테일러 스위프트, 위켄드 등 쟁쟁한 뮤지션과 경합을 벌였다. 특히 테일러 스위프트는 이전 3개년 동안 ‘올해의 아티스트’ 자리를 내주지 않은 강자였다. BTS는 이 시상식에서 ‘페이보릿 팝송’과 ‘페이보릿 팝 듀오/그룹’ 부문상도 받으면서 3관왕에 올랐다. 지난해 BTS는 ‘버터’(Butter)로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인 ‘핫100’에서 10주간 1위에 올랐고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 록밴드 콜드플레이와 함께 작업한 ‘마이 유니버스’(My Universe)도 각각 1위를 차지했을 만큼 성취가 컸다. 그룹 방탄소년단(BTS) 정국이 20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알코르 알베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에서 월드컵 공식 사운드트랙 ‘드러머스’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사진=뉴스1)1년여가 지난 현 시점에도 BTS의 영향력은 진행형이다. 지난 21일(한국시간) 카타르 알코르 알바이트 스타디움에서 개최된 2022 카타르월드컵 개막식에서 BTS 멤버 정국이 대회 공식 주제가인 ‘드리머스’(Dreamers)를 불렀다. 한국 가수가 월드컵 공식 주제가를 부른 건 정국이 처음이다.AMA의 ‘올해의 아티스트’ 수상에도 BTS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미국 대중음악계 최고 권위를 지닌 그래미 어워즈가 남은 숙제다. 내년 2월5일 열리는 제65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BTS는 ‘마이 유니버스’로 ‘베스트 팝 듀오 그룹 퍼포먼스’와 ‘베스트 뮤직비디오’ 부문 후보에 올랐다.그래미 어워즈 3년 연속 후보 지명이라는 쾌거를 거뒀지만 첫 수상은 아직 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다. 더욱이 BTS는 오는 12월 맏형 진의 입대가 예고돼 있어 한동안은 완전체 활동이 어려운 상태다.
    김영환 기자 2022.11.22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한국시간으로 지난해 11월22일 낭보가 날아들었다. 물 건너 미국 ‘2021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에서 최고영예인 ‘올해의 아티스트’에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오른 것이다. 1974년 AMA가 생긴 이래 첫 번째 아시아 가수의 수상이었다.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지난해 제49회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 시상식에서 대상에 해당하는 ‘아티스트 오브 더 이어’(올해의 아티스트)를 수상하고 감격해하고 있다.(사진=로이터·연합뉴스)지난 2017년 BTS는 이 시상식에서 ‘DNA’를 부르며 미국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4년만에 ‘올해의 아티스트’라는 쾌거를 거뒀다. AMA는 그래미 어워즈, 빌보드 뮤직 어워즈와 함께 미국 3대 대중음악 시상식으로 분류된다.의미하는 바가 컸다. AMA는 판매량, 방송 횟수 등 대중성을 기준으로 상을 준다. 2006년부터 투표를 반영했는데 지난해부터는 이마저도 팬 투표 100%로 수상자를 뽑았다. 지구상에서 가장 대중적인 가수로 BTS가 호명된 것이다.‘올해의 아티스트’ 후보에 오른 것부터 아시아 가수 최초였으니, 그간 서구 시장에서의 아시안 아티스트들의 입지가 짐작된다. 백인·흑인이 아닌 아티스트도 세계 최대 음악 시장 미국에서 경쟁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던진 셈이다.‘올해의 아티스트’의 경우 아리아나 그란데, 드레이크, 올리비아 로드리고, 테일러 스위프트, 위켄드 등 쟁쟁한 뮤지션과 경합을 벌였다. 특히 테일러 스위프트는 이전 3개년 동안 ‘올해의 아티스트’ 자리를 내주지 않은 강자였다. BTS는 이 시상식에서 ‘페이보릿 팝송’과 ‘페이보릿 팝 듀오/그룹’ 부문상도 받으면서 3관왕에 올랐다. 지난해 BTS는 ‘버터’(Butter)로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인 ‘핫100’에서 10주간 1위에 올랐고 ‘퍼미션 투 댄스’(Permission to dance), 록밴드 콜드플레이와 함께 작업한 ‘마이 유니버스’(My Universe)도 각각 1위를 차지했을 만큼 성취가 컸다. 그룹 방탄소년단(BTS) 정국이 20일 오후(현지시간) 카타르 알코르 알베이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에서 월드컵 공식 사운드트랙 ‘드러머스’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사진=뉴스1)1년여가 지난 현 시점에도 BTS의 영향력은 진행형이다. 지난 21일(한국시간) 카타르 알코르 알바이트 스타디움에서 개최된 2022 카타르월드컵 개막식에서 BTS 멤버 정국이 대회 공식 주제가인 ‘드리머스’(Dreamers)를 불렀다. 한국 가수가 월드컵 공식 주제가를 부른 건 정국이 처음이다.AMA의 ‘올해의 아티스트’ 수상에도 BTS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미국 대중음악계 최고 권위를 지닌 그래미 어워즈가 남은 숙제다. 내년 2월5일 열리는 제65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BTS는 ‘마이 유니버스’로 ‘베스트 팝 듀오 그룹 퍼포먼스’와 ‘베스트 뮤직비디오’ 부문 후보에 올랐다.그래미 어워즈 3년 연속 후보 지명이라는 쾌거를 거뒀지만 첫 수상은 아직 넘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다. 더욱이 BTS는 오는 12월 맏형 진의 입대가 예고돼 있어 한동안은 완전체 활동이 어려운 상태다.
  • 협객?깡패? 국회에 똥물 던졌던 ‘장군의아들’ 김두한 사망[그해 오늘]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972년 11월21일 ‘장군의 아들’로 일컬어지던 김두한이 사망했다. 서울 모처로 이동하는 길에 쓰러진 김두한은 끝내 뇌졸중으로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시대를 풍미한 ‘조선의 주먹’이 길에서 비명횡사한 것이다.김두한의 어린 시절은 자세하게 알려진 바 없다. 본인이 서울교동보통학교(초등학교)를 다녔다고 했으나 진실 여부는 규명되지 않았다. 고아나 다름 없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김두한 의원이 국회에서 오물을 던지고 있다.(사진=합동통신)일제강점기 말엽에 들어서부터 종로를 중심으로 이름이 알려지게 됐다. 싸움 실력으로 입지를 다졌는데 18세 무렵이던 1935년에 당시 서울에서 가장 큰 극장이었던 우미관 일대를 제패한 주먹으로 이름을 날렸다.이 당시는 보호비 명목으로 일대 상인들에게 돈을 갈취하는 깡패에 불과했다. 1940년 7월14일자 동아일보에는 “종로 거리의 차방(다방)은 부량패(불량배)들이 우굴우굴(중략) 종로서(경찰서)에서는 이를 숙청하고저 눈초리를 노리고 있는 중”이라며 김두한의 검거 소식을 보도하기도 했다.친일 행적도 의심받고 있다. 1943년 김두한이 가입한 경성특별지원청년단(반도의용정신대)는 조선경시청의 어용단체였다. 이 단체를 조직했던 장명원 단장은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서 조사를 받았다. 다만 김두한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김두한은 자신의 절친을 죽이기도 했던 인물이다. 자신의 죽마고우였던 정진룡을 사망케 했는데 좌우익 간의 무력충돌이 이유였다. 김두한은 이 사건으로 구속돼 재판을 받았고 미군정청에 의해 사형선고가 내려졌다.김두한은 사형 집행을 위해 대전형무소로 이감됐으나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이승만 전 대통령에 의해 특별사면 됐다. 김두한은 이승만, 김구, 신익희 등이 주도하는 대한청년단의 감찰부장을 맡아 반공대열의 최선봉에서 활약했다.6·25 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난을 떠났다가 전쟁 후 서울로 돌아온 김두한은 1954년 서울 종로을에서 제3대 민의원으로 당선된다. 당시 37세의 젊은 나이였다. 국회의원 재임 중에는 이승만의 사사오입 개헌에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반대 의사를 표현한 의원이었다.4,5대를 내리 낙선한 뒤 용산구에서 6대 국회의원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1966년 그 유명한 ‘국회 오물 투척 사건’을 일으켰다. 1966년 9월 22일 사카린 밀수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정일권 국무총리, 장기영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김정렴 재무부장관, 민복기 법무부장관 등에게 분뇨를 집어던진 사건이다.삼성그룹의 계열사였던 한국비료가 일본에서 사카린의 원료를 밀수해와 사회 전체가 뒤집혔다. 정부가 삼성 비호에 연일 나서자 김두한은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면서 미리 준비해둔 오물을 뿌려버린 것이다.사건은 일파만파 커졌다. 다른 곳도 아니고 국회에서 분뇨를 뿌렸으니 조용히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정 총리를 비롯해 내각이 총사퇴를 선언했고 김두한도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김두한은 “대통령이 여기에 나왔으면 호되게 한번 따지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 이에 충격을 받은 박정희 대통령이 엄격한 수사를 지시했다. 김두한은 1년 정도 수감됐는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이 때 몸이 상해 급사의 원인이 됐다는 주장도 있다.김두한은 이후에도 반공법 위반, 선관위장 폭행 등 수감과 병보석으로 인한 석방을 반복했다.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끝내 정치적 재기에도 실패했다.
    김영환 기자 2022.11.21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1972년 11월21일 ‘장군의 아들’로 일컬어지던 김두한이 사망했다. 서울 모처로 이동하는 길에 쓰러진 김두한은 끝내 뇌졸중으로 의식을 되찾지 못했다. 시대를 풍미한 ‘조선의 주먹’이 길에서 비명횡사한 것이다.김두한의 어린 시절은 자세하게 알려진 바 없다. 본인이 서울교동보통학교(초등학교)를 다녔다고 했으나 진실 여부는 규명되지 않았다. 고아나 다름 없는 삶을 살았다고 한다.김두한 의원이 국회에서 오물을 던지고 있다.(사진=합동통신)일제강점기 말엽에 들어서부터 종로를 중심으로 이름이 알려지게 됐다. 싸움 실력으로 입지를 다졌는데 18세 무렵이던 1935년에 당시 서울에서 가장 큰 극장이었던 우미관 일대를 제패한 주먹으로 이름을 날렸다.이 당시는 보호비 명목으로 일대 상인들에게 돈을 갈취하는 깡패에 불과했다. 1940년 7월14일자 동아일보에는 “종로 거리의 차방(다방)은 부량패(불량배)들이 우굴우굴(중략) 종로서(경찰서)에서는 이를 숙청하고저 눈초리를 노리고 있는 중”이라며 김두한의 검거 소식을 보도하기도 했다.친일 행적도 의심받고 있다. 1943년 김두한이 가입한 경성특별지원청년단(반도의용정신대)는 조선경시청의 어용단체였다. 이 단체를 조직했던 장명원 단장은 해방 이후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서 조사를 받았다. 다만 김두한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김두한은 자신의 절친을 죽이기도 했던 인물이다. 자신의 죽마고우였던 정진룡을 사망케 했는데 좌우익 간의 무력충돌이 이유였다. 김두한은 이 사건으로 구속돼 재판을 받았고 미군정청에 의해 사형선고가 내려졌다.김두한은 사형 집행을 위해 대전형무소로 이감됐으나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이승만 전 대통령에 의해 특별사면 됐다. 김두한은 이승만, 김구, 신익희 등이 주도하는 대한청년단의 감찰부장을 맡아 반공대열의 최선봉에서 활약했다.6·25 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난을 떠났다가 전쟁 후 서울로 돌아온 김두한은 1954년 서울 종로을에서 제3대 민의원으로 당선된다. 당시 37세의 젊은 나이였다. 국회의원 재임 중에는 이승만의 사사오입 개헌에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반대 의사를 표현한 의원이었다.4,5대를 내리 낙선한 뒤 용산구에서 6대 국회의원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그리고 1966년 그 유명한 ‘국회 오물 투척 사건’을 일으켰다. 1966년 9월 22일 사카린 밀수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정일권 국무총리, 장기영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김정렴 재무부장관, 민복기 법무부장관 등에게 분뇨를 집어던진 사건이다.삼성그룹의 계열사였던 한국비료가 일본에서 사카린의 원료를 밀수해와 사회 전체가 뒤집혔다. 정부가 삼성 비호에 연일 나서자 김두한은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면서 미리 준비해둔 오물을 뿌려버린 것이다.사건은 일파만파 커졌다. 다른 곳도 아니고 국회에서 분뇨를 뿌렸으니 조용히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정 총리를 비롯해 내각이 총사퇴를 선언했고 김두한도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김두한은 “대통령이 여기에 나왔으면 호되게 한번 따지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 이에 충격을 받은 박정희 대통령이 엄격한 수사를 지시했다. 김두한은 1년 정도 수감됐는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이 때 몸이 상해 급사의 원인이 됐다는 주장도 있다.김두한은 이후에도 반공법 위반, 선관위장 폭행 등 수감과 병보석으로 인한 석방을 반복했다.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끝내 정치적 재기에도 실패했다.
  • “12시야. 게임 꺼” 청소년 게임 막은 ‘셧다운제’ 실시[그해 오늘]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지난 2011년 11월20일, 청소년의 심야 게임을 법으로 막는 ‘셧다운제’가 시행됐다. ‘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심야 6시간 동안 인터넷 게임 제공을 제한한다’는 것이 법안의 골자였다.지스타2019(사진=이데일리DB)이 법의 시행으로 게임 회사들은 심야 시간대에 청소년 게임 서비스를 금지당했다. 인터넷게임을 서비스하는 업체들은 이 시간대에 연령과 본인 인증을 통해 청소년 게임 이용을 강제로 원천차단해야 했다.인터넷을 이용하는 PC 온라인게임과 CD를 통해 접속하는 PC 패키지게임 등에 적용돼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게임은 모두 셧다운제의 적용을 받았다. 개인정보를 받지 않거나 온라인 접속이 필요없는 콘솔 게임기에는 적용되지 않았다.셧다운제가 적용되는 게임물의 범위에 대해서는 여성가족부장관과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협의 하에 2년마다 평가해 적용했다. 주무부처가 여성가족부였다.청소년에게 게임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했다는 점에서 비판도 받았다. 이에 대한 위헌 청구도 있었다. 위헌 확인 청구에 대해 2014년 4월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헌재의 합헌 결정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MS)의 ‘마인크래프트’가 성인 게임이 된다는 소식에 여론이 요동쳤다. MS가 글로벌 계정 통합에 따라 국내 이용자는 만 19세 이상이어야 마인크래프트를 즐길 수 있다고 공지하면서다.결국 지난해 11월 11일 국회가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 법률안을 가결하면서 셧다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강제적 셧다운제 법률안이 통과된 지 정확히 10년 6개월 13일 만의 일이다. 2022년 1월 1일부터 강제적 셧다운제가 폐지됐다.셧다운제 폐지 배경으로 청소년의 권리 침해 문제와 미디어 이용 환경 변화 등이 반영됐다. 청소년의 주 이용 매체가 스마트폰 등 모바일기기로 바뀌면서 PC게임을 규제하는 문제가 불거졌다.유럽연합(EU),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이 개인·가정의 자율적 조절을 원칙으로 하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중국을 제외하고는 국가가 일방적으로 게임이용을 제한하는 사례는 없는 실정이다.현재 게임시간을 제한하는 제도는 ‘게임시간 선택제’다. 청소년 본인 또는 법정대리인이 원하는 시간대로 게임 이용시간을 설정할 수 있는 방안으로, 청소년의 자기결정권과 가정 내 교육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김영환 기자 2022.11.20
    [이데일리 김영환 기자] 지난 2011년 11월20일, 청소년의 심야 게임을 법으로 막는 ‘셧다운제’가 시행됐다. ‘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오전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심야 6시간 동안 인터넷 게임 제공을 제한한다’는 것이 법안의 골자였다.지스타2019(사진=이데일리DB)이 법의 시행으로 게임 회사들은 심야 시간대에 청소년 게임 서비스를 금지당했다. 인터넷게임을 서비스하는 업체들은 이 시간대에 연령과 본인 인증을 통해 청소년 게임 이용을 강제로 원천차단해야 했다.인터넷을 이용하는 PC 온라인게임과 CD를 통해 접속하는 PC 패키지게임 등에 적용돼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게임은 모두 셧다운제의 적용을 받았다. 개인정보를 받지 않거나 온라인 접속이 필요없는 콘솔 게임기에는 적용되지 않았다.셧다운제가 적용되는 게임물의 범위에 대해서는 여성가족부장관과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협의 하에 2년마다 평가해 적용했다. 주무부처가 여성가족부였다.청소년에게 게임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했다는 점에서 비판도 받았다. 이에 대한 위헌 청구도 있었다. 위헌 확인 청구에 대해 2014년 4월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헌재의 합헌 결정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MS)의 ‘마인크래프트’가 성인 게임이 된다는 소식에 여론이 요동쳤다. MS가 글로벌 계정 통합에 따라 국내 이용자는 만 19세 이상이어야 마인크래프트를 즐길 수 있다고 공지하면서다.결국 지난해 11월 11일 국회가 강제적 셧다운제 폐지 법률안을 가결하면서 셧다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강제적 셧다운제 법률안이 통과된 지 정확히 10년 6개월 13일 만의 일이다. 2022년 1월 1일부터 강제적 셧다운제가 폐지됐다.셧다운제 폐지 배경으로 청소년의 권리 침해 문제와 미디어 이용 환경 변화 등이 반영됐다. 청소년의 주 이용 매체가 스마트폰 등 모바일기기로 바뀌면서 PC게임을 규제하는 문제가 불거졌다.유럽연합(EU),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이 개인·가정의 자율적 조절을 원칙으로 하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중국을 제외하고는 국가가 일방적으로 게임이용을 제한하는 사례는 없는 실정이다.현재 게임시간을 제한하는 제도는 ‘게임시간 선택제’다. 청소년 본인 또는 법정대리인이 원하는 시간대로 게임 이용시간을 설정할 수 있는 방안으로, 청소년의 자기결정권과 가정 내 교육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 연하 내연남 살해한 수십억대 건물주…피해자는 양자였다[그해 오늘]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2년 11월 19일. 경기경찰청 광역수사대가 60대 여성 윤모씨와 그의 30대 아들 A씨를 긴급체포했다. 혐의는 살인이었다. 피해자는 윤씨의 양아들이던 40대 채모씨였다. 윤씨의 며느리이자 A씨 아내도 함께 입건됐다. 경찰은 이들이 공모해 보험료를 노리고 채씨를 살인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들은 도대체 어떤 일을 꾸몄던 걸까.기사 내용과 무관. (자료사진)안양에 40억원대(2012년 공시지가 기준) 상가건물을 소유했던 윤씨는 2002년 안양의 한 골프장에서 채씨를 처음 만났다. 남편과 이혼 후 혼자 지내던 윤씨가 당시 50대 중반이었던데 반해 채씨는 이보다 스무 살가량 젊은 30대 중반이었다.경제력이 있던 윤씨는 전직 조직폭력배였던 채씨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겠다. 건달 생활을 그만두라”고 말했고, 채씨도 윤씨 요구를 따랐다. 두 사람은 서로를 ‘엄마’, ‘아들’로 호칭했지만 실제로는 연인관계였다.윤씨는 얼마 후 용인에서 혼자 살던 채씨에게 자신의 집에 들어와 살도록 했다. 중년의 여성이 젊은 남성과 산다는 소문이 동네에 퍼지자 윤씨는 2004년 2월 채씨를 양아들로 입적했다. 동거 초반 좋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유지되지 못했다. 채씨의 과도한 음주와 여자 문제 등으로 다툼이 반복되며 두 사람의 사이는 점점 멀어졌다.◇시신서 80알 분량 수면제 성분 검출갈등이 계속되며 윤씨의 분노는 점차 커져갔고 그는 2010년초 채씨를 사고사로 위장해 살해하고 보험금을 챙기겠다는 구체적 계획을 마련했다. 윤씨는 양자 입적 전부터 채씨 사망 시 보험금 1억 90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보험을 가입해둔 상태였지만, 살해계획을 세운 후 추가로 사망보험금 4억 40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보험상품에 가입했다.전직 조폭으로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인 채씨를 힘으로 제압하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윤씨는 수면제를 먹여 의식을 잃게 한 후 연탄난로를 이용해 자살로 위장해 살해하기로 계획했다.그리고 처방 등의 방법으로 졸피뎀 등 신경안정제 87알을 마련해 2010년 2월 이를 여러 방법으로 채씨가 먹도록 했다. 신경안정제를 먹은 채씨가 깊은 잠에 빠지자 연탄난로를 채씨가 잠든 방에 갖다놓는 등의 방법으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하게 했다.새벽 시간 연탄난로를 방에 틀어놓은 채 사우나에 간 윤씨는 10시간 후 집에 다시 돌아와 방독 마스크를 쓴 채 새 연탄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그 후 안방에 머물던 윤씨는 저녁 무렵 채씨가 사망한 것을 확인한 후 119에 신고했다.채씨가 숨지자 경찰은 살해혐의를 의심해 수사에 착수했다. 보험사들도 채씨 사망 직전 고액의 상해보험에 집중 가입한 것을 이상하게 여겨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고 경찰에 윤씨를 신고했다.하지만 경찰은 직접적인 살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윤씨는 수사 초기 “연탄가스 사고사일 뿐”이라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고, 건물주로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윤씨의 ‘보험 가입은 재테크 목적이었다’는 주장을 깰 증거를 찾지 못한 것이다.미제사건이 될 뻔했던 사건은 경찰이 2012년 5월 재수사에 착수해 윤씨 친아들 부부 등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며 실체가 서서히 드러났다.◇초기 수사서 “연탄가스 사고”→재수사선 “동반자살 고심”윤씨는 체포된 후 구속돼 살인과 사기미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그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윤씨는 초기 조사 때 전혀 언급하지 않았던 ‘동반자살 시도’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동반자살을 고심하다가 채씨 혼자 자살을 한 것이라는 게 윤씨 주장이었다.그는 “숨진 채씨가 2008년께부터 죽고 싶다는 얘기를 해왔다. 저 역시 우울증이 심해지던 중 ‘함께 죽자’는 채씨 제안에 따라 자살을 위해 수면제를 처방받았는데, 채씨가 이를 이용해 혼자 자살했다”고 항변했다.하지만 법원은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윤씨 주장에 따르면 윤씨에 대한 미안함으로 동반자살을 제안한 채씨가 수면제를 구입하기 위한 어떠한 시도도 없이 수면제 구입까지 윤씨에게 맡겼다는 것이 납득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평소 지인들에게 ‘좋은 가족을 만나 기쁘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등 행복감을 보였던 채씨가 동반자살을 제안한 윤씨에게 사망보험 가입을 요청했다는 윤씨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윤씨에겐 보험금 편취 목적 및 피해자와의 갈등관계와 피해자의 주폭 습성 등으로 인해 계속 발생하는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목적 등이 살인의 복합적인 동기가 됐다고 봐야 한다”고 결론 냈다.1심은 “치밀하게 사전 준비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범행에 사용할 수면제를 구입하기 위해 아들과 며느리까지 도구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그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며 징역 20년을 선고했다.다만 윤씨와 살인 공범으로 기소된 윤씨의 아들과 며느리에 대해선 “살인을 공모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살인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윤씨는 판결에 불복해 상소했지만 2심과 대법원은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광범 기자 2022.11.19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2년 11월 19일. 경기경찰청 광역수사대가 60대 여성 윤모씨와 그의 30대 아들 A씨를 긴급체포했다. 혐의는 살인이었다. 피해자는 윤씨의 양아들이던 40대 채모씨였다. 윤씨의 며느리이자 A씨 아내도 함께 입건됐다. 경찰은 이들이 공모해 보험료를 노리고 채씨를 살인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들은 도대체 어떤 일을 꾸몄던 걸까.기사 내용과 무관. (자료사진)안양에 40억원대(2012년 공시지가 기준) 상가건물을 소유했던 윤씨는 2002년 안양의 한 골프장에서 채씨를 처음 만났다. 남편과 이혼 후 혼자 지내던 윤씨가 당시 50대 중반이었던데 반해 채씨는 이보다 스무 살가량 젊은 30대 중반이었다.경제력이 있던 윤씨는 전직 조직폭력배였던 채씨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겠다. 건달 생활을 그만두라”고 말했고, 채씨도 윤씨 요구를 따랐다. 두 사람은 서로를 ‘엄마’, ‘아들’로 호칭했지만 실제로는 연인관계였다.윤씨는 얼마 후 용인에서 혼자 살던 채씨에게 자신의 집에 들어와 살도록 했다. 중년의 여성이 젊은 남성과 산다는 소문이 동네에 퍼지자 윤씨는 2004년 2월 채씨를 양아들로 입적했다. 동거 초반 좋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유지되지 못했다. 채씨의 과도한 음주와 여자 문제 등으로 다툼이 반복되며 두 사람의 사이는 점점 멀어졌다.◇시신서 80알 분량 수면제 성분 검출갈등이 계속되며 윤씨의 분노는 점차 커져갔고 그는 2010년초 채씨를 사고사로 위장해 살해하고 보험금을 챙기겠다는 구체적 계획을 마련했다. 윤씨는 양자 입적 전부터 채씨 사망 시 보험금 1억 90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보험을 가입해둔 상태였지만, 살해계획을 세운 후 추가로 사망보험금 4억 40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보험상품에 가입했다.전직 조폭으로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인 채씨를 힘으로 제압하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윤씨는 수면제를 먹여 의식을 잃게 한 후 연탄난로를 이용해 자살로 위장해 살해하기로 계획했다.그리고 처방 등의 방법으로 졸피뎀 등 신경안정제 87알을 마련해 2010년 2월 이를 여러 방법으로 채씨가 먹도록 했다. 신경안정제를 먹은 채씨가 깊은 잠에 빠지자 연탄난로를 채씨가 잠든 방에 갖다놓는 등의 방법으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하게 했다.새벽 시간 연탄난로를 방에 틀어놓은 채 사우나에 간 윤씨는 10시간 후 집에 다시 돌아와 방독 마스크를 쓴 채 새 연탄으로 교체하기도 했다. 그 후 안방에 머물던 윤씨는 저녁 무렵 채씨가 사망한 것을 확인한 후 119에 신고했다.채씨가 숨지자 경찰은 살해혐의를 의심해 수사에 착수했다. 보험사들도 채씨 사망 직전 고액의 상해보험에 집중 가입한 것을 이상하게 여겨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고 경찰에 윤씨를 신고했다.하지만 경찰은 직접적인 살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윤씨는 수사 초기 “연탄가스 사고사일 뿐”이라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고, 건물주로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윤씨의 ‘보험 가입은 재테크 목적이었다’는 주장을 깰 증거를 찾지 못한 것이다.미제사건이 될 뻔했던 사건은 경찰이 2012년 5월 재수사에 착수해 윤씨 친아들 부부 등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를 벌이며 실체가 서서히 드러났다.◇초기 수사서 “연탄가스 사고”→재수사선 “동반자살 고심”윤씨는 체포된 후 구속돼 살인과 사기미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그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윤씨는 초기 조사 때 전혀 언급하지 않았던 ‘동반자살 시도’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동반자살을 고심하다가 채씨 혼자 자살을 한 것이라는 게 윤씨 주장이었다.그는 “숨진 채씨가 2008년께부터 죽고 싶다는 얘기를 해왔다. 저 역시 우울증이 심해지던 중 ‘함께 죽자’는 채씨 제안에 따라 자살을 위해 수면제를 처방받았는데, 채씨가 이를 이용해 혼자 자살했다”고 항변했다.하지만 법원은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윤씨 주장에 따르면 윤씨에 대한 미안함으로 동반자살을 제안한 채씨가 수면제를 구입하기 위한 어떠한 시도도 없이 수면제 구입까지 윤씨에게 맡겼다는 것이 납득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평소 지인들에게 ‘좋은 가족을 만나 기쁘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등 행복감을 보였던 채씨가 동반자살을 제안한 윤씨에게 사망보험 가입을 요청했다는 윤씨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윤씨에겐 보험금 편취 목적 및 피해자와의 갈등관계와 피해자의 주폭 습성 등으로 인해 계속 발생하는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목적 등이 살인의 복합적인 동기가 됐다고 봐야 한다”고 결론 냈다.1심은 “치밀하게 사전 준비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범행에 사용할 수면제를 구입하기 위해 아들과 며느리까지 도구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그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며 징역 20년을 선고했다.다만 윤씨와 살인 공범으로 기소된 윤씨의 아들과 며느리에 대해선 “살인을 공모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살인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윤씨는 판결에 불복해 상소했지만 2심과 대법원은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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