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수한 정씨는 재판을 받으면서 태도를 바꿨다. 자신이 자수한 이유는 구속된 형을 석방하고 자신에게 5년 미만 징역형을 선고받도록 해준다는 경찰의 회유 탓이라고 했다. 수사기관에서 한 자백도 이걸 믿고 한 거짓말이라고 했다.
1심은 그의 태도 변화를 믿지 않고 그해 10월 사형을 선고했다. 법원은 혐의 모두를 유죄로 인정했다. 이어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반성하지 않으며 ▲강간치상 등 전과가 있고 ▲피해자와 가족에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김 점을 두루 고려해 “사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2심도 마찬가지로 사형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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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는 “생명권은 헌법의 기본권이지만 모든 규범을 초월해 영구히 타당한 권리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며 “다른 생명 또는 이에 못지않은 공공의 이익을 보호하고자 불가피하게 적용하는 사형제는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형이 다른 형벌보다 위압감이 커서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이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범죄에 대한 응보 욕구가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이라고 봤다.
다만 “위헌과 합헌 논의를 떠나 사형 존치 여부는 진지하게 계속 논의해야 한다”며 “시대 상황이 바뀌어 사형으로 범죄 예방 필요성이 없게 되거나, 국민 법감정이 그렇게 인식을 하면 사형은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헌재가 사형제에 대한 판단을 내놓은 것은 1988년 기관이 설립하고 처음이었다. 그간 여러 사형수가 헌법소원을 냈지만,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모두 각하했다. 이런 이유에서 헌재는 정씨의 헌법소원에 대한 답을 내놓고자 머리를 싸매고 고심했다. 기본권 수호의 최후 보루 기관으로서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하는 수준이었다.
헌재의 노력이 무색할 만큼 정씨 형사 사건은 물 흐르듯이 흘러갔다. 대법원은 1994년 12월 정씨에게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했다. 정씨의 진술은 인정했지만, 증거와 증언이 객관적인 사실과 어긋나는 게 흠이었다. 이로써 정씨는 일부 혐의가 무죄가 날 여지가 있고, 그러면 형량이 줄 수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씨는 헌법소원을 냈던 것이다.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2부는 1995년 5월 혀 절단은 무죄로, 초등생 살인 및 사체유기죄는 유죄로 각각 인정하고 무기징역으로 감형했다.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현재 헌재는 사형제가 합헌인지를 심리하는 세 번째 심리에 착수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