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조작한 살인범…진범이 무죄를 증언하다[그해 오늘]

화성살인사건 진범 이춘재 "8차도 내가 했다"
'20년 옥살이' 윤성여씨 30년만에 억울함 풀어
경찰, 고문으로 범인 조작…다수 피해자 양산
  • 등록 2022-10-04 오전 12:03:00

    수정 2022-10-04 오전 12:03:00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9년 10월 4일.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임이 드러난 이춘재가 ‘모방범죄’로 알려졌던 8차 사건 역시 자신이 저지른 범행이라고 자백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춘재는 경찰과의 면담에서 “8차 사건도 모방범죄가 아니라, 내가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 중 유일하게 범인이 잡혔던 사건마저 자신이 저지른 범행이라고 자백함에 따라 자백의 진위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경찰은 애초 이춘재가 화성 연쇄살인사건 10건 중 8차 사건을 제외한 9건과 함께 추가로 5건의 범행과 강간과 강간미수 30여건에 대해서도 범행을 시인했다고 밝혔다. 언론은 당시 경찰 발표를 토대로 일제히 ‘진범이 잡힌 8차 사건 제외한’ 범행에 대해 자백을 했다고 보도했으나 경찰은 이를 바로 잡지 않았다.

경찰의 고문에 따른 허위자백으로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씨가 2020년 12월 17일 수원지법에서 열린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축하를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 한 주택에서 박모(당시 13세)양이 자신의 집에서 성폭행당한 후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경찰은 이듬해 7월 26일 8차 사건의 범인을 검거했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다. 경찰이 발표한 범인은 인근의 농기계 수리공인 윤성여(당시 22세)씨였다.

“당시 허위자백 안했으면 지금 세상에 없었다”

소아마비 장애인으로 어렵게 살았던 윤씨는 1989년 7월 25일 집에서 저녁을 먹다, 집으로 찾아온 경찰에 의해 임의동행 형식으로 끌려갔다. 형식은 임의동행이었지만 사실상 불법체포에 가까웠다. DNA 검사 기술이 없던 시절, 당시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 내 금속 성분이 윤씨 것과 유사하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서가 유일한 단서였다. 현재 기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감정이었다.

경찰들은 윤씨는 경찰서가 아닌 인근의 야산으로 데리고 갔다. 이미 캄캄해진 시간이라 야산엔 인적조차 없었다. 덩치가 큰 경찰관 여러 명은 윤씨에게 협박조로 “순순히 자백하라”고 요구했다. 윤씨가 혐의를 부인하자 그는 경찰서로 끌려갔다. 그는 계속된 추궁에도 혐의를 강력 부인했지만, 부인 대가로 날아온 건 경찰의 모진 구타와 가혹행위였다.

결국 그는 이를 이기지 못하고 다음날인 26일 새벽 거짓 자백을 하게 됐다. 이 자백으로 그가 다시 세상에 나오기까지 20년의 세월이 걸렸다. 윤씨는 수감 중이던 2003년 한 언론과의 옥중 인터뷰에서도 ‘당시 자백을 왜 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때 자백을 안 했으면 내가 이 세상에 없었을 거예요”라며 경찰의 잔혹했던 고문을 언급했다.

경찰들 “검찰·법원서도 허위자백 유지해라” 압박

경찰은 가혹행위로 받아낸 허위 자백을 토대로 윤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해 법원으로부터 28일 영장을 발부받았다. 경찰은 하루 뒤 현장검증을 실시한 후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윤씨는 경찰에 있는 3일 동안 모진 고문을 지속적으로 받았다. 검찰은 경찰 수사 그대로 윤씨를 살인과 강간치사죄로 재판에 넘겼다. 윤씨에게 가혹행위를 했던 경찰관 5명은 ‘범인 검거 공로’를 인정받아 그해 12월 특별승진을 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진범 이춘재. 이춘재는 2020년 11월 2일 윤성여씨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자신이 8차 사건의 진범이라고 증언했다. (사진=연합뉴스)
재판에 넘겨진 윤씨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1심에서도 범행을 모두 인정했다. 여기엔 “검찰 조사와 재판 중에도 경찰 진술을 유지해야 한다”는 경찰관들의 협박이 작용했다. 1심 재판부는 1989년 10월 윤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1심 판결 후 윤씨는 경찰의 고문 사실을 법정에서 털어놨다. 그는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다. 경찰에 연행돼 혹독한 고문을 받고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허위 진술을 했고, 검찰 조사와 법정에서도 진술을 유지하도록 강요당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수사기관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볼 아무런 증거가 없고, 자백의 신빙성을 의심할 만한 부분이 전혀 없다”고 판단하고, 무기징역형을 유지했다. 대법원 역시 1990년 5월 “자백의 신빙성이 넉넉히 인정된다”며 형을 확정했다.

고문 경찰관, 사과도 불이익도 없다

무기수가 된 윤씨는 지속적으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옥중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지속적으로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세상은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았다. 윤씨는 수감 중에도 재심을 신청하려 했으나 진범이 특정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재심 신청이 받아들이지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이를 포기했다.

윤씨는 모범수로서 징역 20년으로 감형돼 2009년 출소했다. 그는 출소 후 ‘살인 전과자’라는 사회적 냉대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렇게 10년을 사회에서 보낸 후 이춘재의 자백이 나온 후에야 자신의 억울함을 풀 수 있었다. 법원은 2020년 12월 윤씨 재심 사건에서 윤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오랜 기간 옥고를 거치며 정신적·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받은 피고인에게 사법부 일원으로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화성 연쇄살인사건 당시 경찰의 가혹수사로 수많은 시민들이 피해를 봤다. 임의동행으로 불려가 경찰로부터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한 사례도 부지기수였다. 경찰서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던 시민들 일부는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호소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윤씨는 당시 고문에 대해 “경찰관들이 ‘네가 죽어도 상관없다’며 고문을 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청이 윤씨에게 공식 사과했지만, 윤씨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웠던 당시 수사 경찰관들은 누구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독직폭행 등에 대한 공소시효 만료로 형사처벌을 피했고, 소멸시효 만료로 민사책임도 지지 않았다. 경찰청은 2021년 윤씨를 수사했던 경찰관 5명에 대한 1989년 특진을 취소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퇴직한 이들 5명의 퇴직계급은 그대로 인정돼 이들에겐 실제 불이익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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