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는 무기력 해야하나"…법원이 박원순 유족에 던진 질문[사사건건]

法 "박원순 언동, 성희롱 맞다"…인권위 판단 재확인
"피해자 성적 굴욕감·불쾌감…朴의도 판단조건 아냐"
'피해자답지 않다' 주장 일축…"유족 자의적 기준일뿐'
법조계 "압도적 위력 속 사건…상급심도 승소 어렵다"
  • 등록 2022-11-17 오전 6:00:00

    수정 2022-11-17 오전 7:29:35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반전은 없었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족이 “성희롱을 인정할 수 없다”며 국가인권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이 ‘성희롱이 맞다’며 인권위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재판장 이정희)는 지난 15일 박 전 시장 유족의 청구를 기각하고 박 전 시장의 성희롱을 전제로 한 인권위의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결했다.

앞서 박 전 시장은 비서실 직원이던 피해자 김잔디(가명)씨가 2020년 7월 8일 자신을 성폭력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하루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인권위가 직권조사를 통해 2021년 1월 박 전 시장의 성희롱을 인정했고, 그로부터 1년 10개월 후인 2022년 11월 이번엔 법원이 재차 성희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7월 서울광장에 차려진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시민분향소가 철거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 전 시장의 구체적 가해 행위는 피해자를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피해자가 올해 1월 출간한 책 ‘나는 피해 호소인이 아닙니다’를 통해 박 전 시장에게 당한 다수의 성폭력을 털어놓은 것이다.

“어느 날부터 시장님의 부적절한 신체 접촉이 시작됐다. (중략) 평소 박 시장님은 화장실에 다녀와서도 손을 안 씻거나 자주 코를 팠다. 그런 손으로 셀카를 찍자면서 내 어깨에 자주 손을 올리고 허리와 엉덩이 등을 감쌌다. 내게서 나는 향기가 좋다면서 킁킁거리는 시늉을 하며 코를 내 신체에 가까이 대는 것도 정말 수치스러웠다.

나는 그때마다 너무 불쾌했고 소름이 끼쳤지만, 그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힘의 논리 때문에 그에게 대놓고 분명하고 강하게 그런 일을 하지 말아 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김씨는 성희롱을 넘어 ‘성추행’까지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지목한 일시는 2018년 9월이었다.

“업무차 집무실에 들어갔고 그 안에 시장님과 나, 둘만 있는 상황이었다. (중략) 그런데, 갑자기 시장님께서 “여기 왜 그래? 내가 호 해줄까?”라고 말하며 상체를 내 무릎 쪽으로 기울이면서 급기야 무릎에 입술을 갖다 댄 것이다. (중략) 분위기가 어색한 가운데 집무실을 나온 나는 탕비실에 가서 펌핌용 손세척제로 번질번질한 박 시장의 침이 묻어 있는 무릎을 깨끗이 닦았다. 너무 더럽고 찝찝했다.”

◇박원순, 텔레그램 비밀대화방 초대해 부적절 메시지 보내

이와 함께 추가적인 성폭력도 기록했다. 면전에서의 부적절한 발언 외에도 박 전 시장이 피해자를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에 초대해 부적절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냈다는 것이다.

“내실에서 둘만 있을 때 소원을 들어달라며 안아달라고 부탁을 하고, 여자가 결혼을 하려면 섹스를 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성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문자를 보냈고, 러닝셔츠 차림의 사진을 보내면서 나한테도 손톱 사진이나 잠옷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밤늦은 시간에 뭐하고 있냐고, 혼자 있냐고 물으면서 ‘내가 지금 갈까’ 같은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이 밖에도 ‘나 혼자 있어’, ‘나 별거해’, ‘셀카 사진 보내줘’, ‘오늘 너무 예쁘더라’, ‘오늘 안고 싶었어’, ‘오늘 몸매 멋지더라’, ‘내일 안마해줘’, ‘내일 손잡아줘’ 같은 누가 봐도 끔찍하고 역겨운 문자를 수도 없이 보냈다.”

인권위는 박 전 시장 사망 직후인 2020년 7월 직권조사에 착수해 반년 후인 지난해 1월 결과를 발표했다. 피해자가 제출한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와 서울시 전·현직 직원 및 지인 51명 참고인 조사, 경찰 수사 자료 등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가 이뤄졌다.

피해자의 주장은 인권위에서 일부만 사실관계가 받아들여졌다. 인권위는 “(사망한) 박 전 시장의 진술을 청취하기 어렵고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반적 성희롱 사건보다 사실관계를 좀 더 엄격하게 인정했다”고 부연했다. 다만 피해자의 주장 중 사실관계를 인정한 일부만으로도 박 전 시장의 행동이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결론 내렸다.

“박 전 시장이 늦은 밤 시간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 이모티콘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네일아트 한 손톱과 손을 만졌다는 피해자의 주장은 사실로 인정 가능하고, 이와 같은 박 시장의 행위는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성적 언동으로 성희롱에 해당한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에 대해 전혀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는 두 책. 왼쪽은 피해자 김잔디(가명)씨가 쓴 ‘나는 피해호소인이 아닙니다’, 오른쪽은 손병관 기자가 쓴 ‘비극의 탄생’.


인권위, ‘냄새 난다 킁킁’ 등 메시지 성희롱 명백

인권위가 인정한 구체적 성희롱 행위는 △‘좋은 냄새 난다, 킁킁’, ‘혼자 있어? 내가 갈까?’, ‘신랑 빨리 만들어야지’, ‘지금 방에 있어’, ‘늘 내 옆에서 알았지’, ‘꿈에서는 마음대로 ㅋㅋㅋ’ 등의 메시지 △러닝셔츠 차림 셀카 사진 전송 △네일아트 한 피해자 손톱과 손 만진 행위 △여성 가슴 부각된 이모티콘 전송이었다.

다만 인권위는 피해자의 주장 외에 참고인의 진술 등 객관적 증가가 추가적으로 없는 경우엔 사실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피해자가 책에 열거한 ‘성추행’과 함께 다수 성희롱 피해 주장에 대해선 판단을 하지 않았다. 가장 논란이 컸던 ‘무릎에 호’ 주장도 내용을 전해 들었다는 참고인 진술이 있었지만, ‘피해자가 먼저 요구했다’는 반론이 있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전 시장 유족 주장의 요지는 “인권위가 성희롱으로 인정한 박 전 시장의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 ‘향기 좋아 킁킁’, ‘너네 집에 갈까’ 등 일부 메시지와 러닝셔츠 입은 사진, 네일아트 한 손톱 만진 행위는 객관적인 증거 없이 사실관계가 인정됐다고 항변했다. 아울러 인권위가 인정한 사실관계 주장을 받아들이더라도 이 같은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폈다.

이에 대해 법원은 포렌식을 통해 복구된 ‘꿈에서는 마음대로 ㅋㅋㅋ’ 등의 메시지 외에도, 복구되지 않은 메시지나 러닝셔츠 차림 사진, 선정적 여성 이모티콘의 경우도 이를 보았다는 피해자 지인이나 서울시 동료들의 진술을 통해 사실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피해자의 네일아트 한 손을 만졌다는 주장 역시 피해자 지인이나 동료들의 진술은 물론, 유족이 제출한 자료로도 사실관계가 인정된다고 결론 냈다. 그러면서 이들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설령 성적 동기 없었다 해도 성희롱 인정

“피해자로서는 이들 행위에 대해 박 전 시장에게 거부 의사나 불쾌감을 표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가 그동안 이들 행위를 묵인한 것은 시장의 심기와 컨디션을 보살펴야 하는 비서 업무의 특성상 박 전 시장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박 전 시장의 이 사건 각 행위로 인하여 초래된 불편함을 자연스레 모면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보인다. 이들 행위는 일회적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여러 번 행해져 피해자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주었다.

결국 이들 각 행위는 성적인 언동에 해당하고, 피해자로 하여금 성적인 굴욕감이나 불쾌감을 주는 정도에 이르러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 박 전 시장이 피해자에게 보낸 일부 메시지의 경우 박 전 시장에게 성적인 동기나 의도가 없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성희롱 인정에 장애가 되지 않는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를 대리하는 김재련 변호사(오른쪽)와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 관계자들이 1차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박 전 시장 유족 측은 법정에서 피해자의 행동이 성희롱 피해자답지 않았다는 취지의 주장도 폈다. 피해자가 박 전 시장에게 보냈던 ‘사랑해요’, ‘꿈에서 만나요’, ‘꿈에서는 돼요’ 등의 메시지도 문제 삼았다.

“피해자가 박 전 시장에게 생일을 축하한다거나 해외 순방을 떠나는 박 전 시장에게 존경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손으로 직접 쓰기도 했다. 피해자는 박 전 시장과의 셀카 촬영을 즐거워했으며 SNS에 박 전 시장과 함께 촬영한 사진을 올리고 박 전 시장 생일파티를 주도하면서 친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2019년께 비서실을 떠나면서 인수인계서에 서울시장 비서로서 자부심을 가지라는 충고와 박 전 시장의 인품과 능력이 훌륭해 배울 것이 많다는 내용을 기재하기도 했다. 네일아트를 한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박 전 시장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피해자는 비서실에서 강제로 계속 남았다고 하나 오히려 승진을 위해 비서실 근무 연장을 희망했고, 4년 동안 피해를 호소하지 않았다.”

피해 공론화시 불이익 우려해 친밀감 표시 가능

하지만 법원은 이 같은 피해자의 행동은 성희롱 인정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 전 시장은 피해자의 직장상사 관계를 넘어서 피해자의 신분상 지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피해자로서는 자신의 성희롱 피해를 공론화하는 경우 자신에게 발생할 수 있는 직무상, 업무상 불이익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피해자가 처한 상황에서는 성희롱 피해를 받은 이후에도 자신의 피해를 숨기고 직장에서의 박 전 시장과의 관계를 고려해 박 전 시장에게 어느 정도의 친밀감을 표시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피해자로서는 자신의 직장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 서울시장 비서직 공무원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는데 조금이라도 차질을 주지 않기 위한 소명의식 내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경력을 쌓기 위한 차원에서 내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성희롱 피해를 감수하는 측면이 있음을 피해자 입장에서 다방면으로 충분히 고려할 필요도 있다. 또 성희롱 피해를 받은 수치심으로 인하여 피해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존재할 수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성희롱 인정 결정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부인 강난희씨. (사진=연합뉴스)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주장하는 유족의 태도를 꼬집기도 했다.

“(유족 주장은)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는 피해를 보면 즉시 어두워지고 무기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성희롱 피해자라면 ‘이러한 태도를 보였을 것이다’는 자의적인 생각에 기초한 것으로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는 성희롱 피해자들의 양상을 간과한 것이다.

피해자로선 자신이 입은 성희롱 피해와 별개로 박 전 시장이 그동안 인권변호사 및 서울시장으로서 사회에서 행한 활동 등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도 있던 것으로 보여 성희롱 피해로 인한 고통과 별개로 친밀감을 표현했을 여지도 있다.”

‘사랑해요’는 박원순 비서실 관용적 인사말

피해자가 박 전 시장에게 보낸 ‘사랑해요’ 등의 메시지도 결국 성희롱을 피하기 위한 방어용 차원일 수 있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실제 가장 논란이 됐던 ‘사랑해요’는 비서실 내에서 관용적으로 통용되던 인사말이었다.

“‘사랑해요’라는 단어는 이성 사이의 감정을 나타낼 의도로 표현한 것이라기보다는 피해자가 속한 부서에서 동료들 내지 상·하급 직원 사이에 존경의 표시로 관용적으로 사용됐던 것으로 보인다. 또 ‘꿈에서는 된다’는 취지의 말의 경우, 박 전 시장이 피해자에게 대답이 곤란한 성적인 언동을 하자 이를 회피하고 대화를 종결하기 위한 수동적 표현으로 보인다. 박 전 시장에게 밉보이지 않고 박 전 시장을 달래기 위해 피해자가 어쩔 수 없이 한 말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

이번 1심 판결에 대해 박 전 시장 유족 측은 항소 가능성을 내비쳤다. 유족 대리인은 선고 직후 “판결의 세세한 부분은 동의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유족들과 잘 상의해서 1심 재판부가 판단한 부분에 대해 항소 여부를 비롯해 어떤 점이 부당한지 밝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법조계에선 유족이 항소심에서 피해자의 행동을 문제 삼는 변론 전략을 다시 구사하더라도 1심 때와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여성 법조인은 “피해자의 일부 주장이 일부 틀리거나 입증이 되지 않았다고 해서 객관적으로 성희롱이 명백한 부분이 탄핵될 수는 없다”며 “서울시 절대 권력자인 60대 시장과 20대 7~9급이던 비서 사이에 벌어진 사건이다. 압도적 위력이 존재하는 관계 속에서 ‘피해자가 유발했다’ 취지의 주장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성희롱성 메시지가 보내진 것이 명백한 상황에서 유족이 항소하더라도 반전을 만들긴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이 사건은 결국 행정소송이다. 유족이 처분의 부적법성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맥락상 성희롱이 아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객관적 증거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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