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심심한 사과' 논란, 킹받지 마세요

  • 등록 2022-08-31 오전 5:15:19

    수정 2022-08-31 오전 7:02:29



[이데일리 권소현 마켓인 센터장] “어쩔티비는 요새 잘 안 써”

‘어쩌라고? 가서 TV나 봐’라는 뜻의 어쩔티비란 표현을 알게 된 건 올해 초다. 유튜브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익숙한 신세대에 대비해 TV가 편한 기성세대를 비꼬는 표현이라는데, 이것도 이제는 옛날 말이 돼 버렸다고 한다. ‘열받네’라는 뜻의 ‘킹받네’라는 표현도 요새는 ‘kg받네’로 바뀌었다고 하고, 웃긴다는 뜻의 ‘코쿠루삥뽕’은 요새 ‘루삥뽕’이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초등학생인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초딩 언어’의 벽에 맞닥뜨리게 된다. 줄임말은 기본이고 언어 파괴 수준의 표현도 많이 쓴다. 외계어 느낌이랄까.

매번 뜻을 물어보자니 민망하고 결국은 그런 비속어는 쓰지 말라고 훈계(?) 후 급하게 대화를 마무리하기 일쑤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나도 이제 꼰대가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최근 ‘심심한 사과’에서 불거진 문해력 논란이 뜨겁다. ‘마음 깊이, 간절하게’라는 뜻을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뜻으로 오해한 소위 요새 아이들에 대해 기성세대는 개탄한다. ‘금일’이 금요일인 줄 알았다거나 ‘사흘’이 왜 4일이 아니라 3일이냐고 묻는 사례가 알려지면서 한자교육을 강화하고 독서량을 늘려야 한다는 등의 주장도 나온다.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과도한 노출이 애들을 버려놨다고 한숨 쉬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소위 ‘인싸 용어’엔 빠삭해도 한자어는 낯설다는 젊은 세대는 왜 굳이 자주 쓰지도 않는 한자어를 써야하냐고 항변한다. 한 영화 평론가가 썼던 ‘명징한’과 ‘직조’와 같은 표현은 일상생활에서 쓰지 않는데 왜 알아야 하냐는 것이다.

사실 젊은 세대는 디지털 문법에 익숙하고 한자를 잘 모르는 것일 뿐 문해력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작년 9월 발간한 자료를 보면 20·30대 문해력은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았다. 오히려 고연령층으로 갈수록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왔다.

문해력을 둘러싼 논쟁이 세대갈등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결국은 문해력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문해 의지가 없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심심한 사과’ 논란에서도 댓글에서 느낀 건 지나치게 날 선 지적이다. 심심한의 다른 뜻을 몰랐다면 사과 앞에 왜 심심한이라는 표현을 붙였을까, 심심한이라는 표현이 다른 뜻을 갖고 있지는 않을까 찾아보려는 노력이 없었다는 점이 아쉽다. 기성세대도 마찬가지다. 요새 유행하는 인싸 용어를 쓰지 말라고 면박을 줄 게 아니라 무슨 뜻인지 찾아보고 이해햐려는 노력을 어느정도는 기울어야 한다.

언어는 시대가 바뀌면서 달라진다. 수많은 신조어가 만들어지고 그 중 일부는 국어사전에 등재되기도 한다. 영끌이나 빚투, 존버 등 언론에서도 자주 쓰는 표현이지만 사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없는 단어다. 특정 의미로 이런 언어를 사용하기로 했다고 사회적인 합의가 이뤄지면 언어로서의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려면 세대별로 쓰는 언어를 받아들이고 이해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부 조사에서 고연령층의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난 건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내용을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성향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아이들에겐 독서, 한자교육도 좋지만 상대방을 이해하도록 노력하게 만드는 인성교육이 더 필요하다. 어른들은 심심한 사과 논란에 킹받을 필요가 없다.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꼼짝 마
  • 우승의 짜릿함
  • 돌발 상황
  • 2억 괴물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