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고물가, 기업 타박만이 답인가

  • 등록 2022-10-04 오전 6:30:00

    수정 2022-10-04 오전 6:30:00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솔직히 가격을 비교적 일찍 올린 편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인상할 수밖에 없는데 요즘 같은 때에 올렸다가 뭇매 맞을 생각하면 말이죠.”

올해 초 5년여 만에 가격 인상을 단행했던 한 소비재 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소비자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조심히 올렸고 당시에도 ‘쓴소리’를 들었지만 차라리 그때 올린 게 나았다는 이야기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과일을 살펴 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올 상반기부터 ‘입고 먹고 마시는’ 국민 필수 소비재 가격이 줄인상했다. 하반기 들어서는 인상 종목이 다양해지고 있다. 라면, 과자, 가정간편식, 김치, 장류를 비롯해 오르지 않은 품목을 찾기 힘들 정도다. 고기, 야채류, 밀가루 가격까지 뛰면서 외식물가까지 동반상승하고 있다.

생활 물가 상승세는 국민들에게 더욱 부담을 주고 있다.

지난 1일부터 전기요금은 킬로와트시(kwh) 당 7.4원, 민수용(주택용·일반용) 도시가스 요금은 메가줄(MJ·가스사용 열량 단위)당 2.7원 올랐다. 4인 가구 기준 전기요금은 월 2270원, 가스요금은 5400원가량 더 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나마 가격을 일찍 올린 게 다행’이라는 업계 관계자의 말은 여러 가지를 시사해 준다. 어느 제조업체든 어차피 가격은 올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나마 빨리 올리다보니 나중에 올린 업체들에 ‘묻혀’ 욕을 덜 먹었다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가격 인상이 일종의 ‘눈치 게임’처럼 된 것이다.

정부와 국회의 움직임을 보면 기업의 이런 반응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최근 ‘뒤늦게’ 가격을 올린 기업은 정부로부터 일종의 ‘벌칙’을 받고 있다.

지난달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일각의 가격 인상 움직임은 민생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고 물가 안정 기조 안착을 저해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주 식품업계 임원들을 불러다 간담회를 열고 ‘가격인상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또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4일부터 열리는 국정감사에 쌀값 하락 및 식품 물가와 관련해 CJ제일제당 부사장 및 오리온농협·농심 미분·오뚜기 대표이사 등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물가 인상을 둘러싸고 정부 여당도 질타를 받고 있으니 기업인들을 불러다 혼쭐내는 ‘액션’이 벌어지지 않을까”라고 우려했다.

현재 물가 인상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상반기 유가 급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 곡물가격 상승, ‘초 강달러 현상’에 수입 원부자재 상승 등 여러 가지가 맞물렸다.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지만 전문가들은 일부 품목은 충분히 정부가 대응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식료품, 소비재별로 리스트를 만들고 재고와 가격 추이를 확인해 상승 징후가 높은 품목은 선매입이 가능했지만 대응이 미비했다는 것이다.

실제 현 정부는 출범 당시 ‘110대 국정과제’로 서민 물가 안정을 꼽았지만 세부적인 로드맵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가격 인상의 출발점인 고유가 관련 대책이나 개인서비스 물가 관리방안 등이 부재했다는 비판이 당시에도 나왔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으니 다양한 외부 변수 발생에 대응이 안 됐던 것이다.

물가고공행진은 소비자뿐만 아니라 정부, 기업 모두에게 비상이다. 현상의 원인과 대책을 합리적으로 판단해 대응하는 것이 맞다. 단순히 ‘기업이 가격을 올려 정부 물가 안정 정책을 방해한다’는 식의 논리는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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