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노태우 전 대통령 영면…삶처럼 '명과 암' 갈렸던 마지막 길(종합)

30일 오전 발인…연희동 사저서 조촐히 노제 진행
오전 11시 '영광의 장소' 올림픽공원서 추도식 거행
"현대사에 씻을 수 없는 과오, 움직일 수 없는 사실"
"문맹률 80%서 육사 엘리트 장교 정치참여는 필연"
  • 등록 2021-10-30 오후 4:14:48

    수정 2021-10-30 오후 4:19:43

[이데일리 정병묵 기자]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이 3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엄수된 국가장 영결식을 끝으로 영면에 들어갔다. 국가장 거행은 2015년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 장례에 이어 두 번째다.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을 마친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노제가 열리는 자택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날 오전 8시 55분쯤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빈소에 추모객 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이 시작됐다. 장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장남 노재헌 변호사 등 유족들과 노태우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6공 황태자’로 불린 박철언 전 의원 등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했다.

고인을 추모하는 노제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간소하게 치러졌다. 운구차는 오전 9시 18분께 서대문구 연희동 사저에 도착했고 노 전 대통령의 맏손주인 노 변호사의 아들 장호씨가 영정사진을 들고 운구차에서 내렸다.

집안에선 부인 김옥숙 여사가 남편을 맞았다. 유족들은 고인의 영정 사진을 들고 약 5분간 천천히 집안을 돌았다. 고인의 유언대로 노제는 25분여 만에 간소하게 끝났다.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영정이 3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사저에 도착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오전 11시부터 올림픽공원에서 고인의 영결식이 한 시간 동안 거행됐다. 고인이 대통령 재임 시절이던 1988년 개최된 서울올림픽을 기념한 장소다. 김옥숙 여사와 노소영 관장, 노재헌 변호사 등 유가족, 장례위원회 위원, 국가 주요 인사를 중심으로 50명 안팎의 인원이 참석했다.

국가장 개최 여부를 두고 국민 여론이 극명하게 갈렸던 것처럼 영결식에서도 고인을 둘러싼 반응이 그대로 드러났다. 영결식장 주변에선 5·18 사과를 요구하는 1인 시위나 손팻말 항의가 벌어지기도 했다.

장례위원장인 김부겸 국무총리는 “노태우 대통령님은 재임 중에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셨다”며 “이념의 대립을 넘어 12년 만에, 세계가 한자리에 모인 사상 최대의 올림픽이었다. 우리 국민들에게는 불가능은 없다는 자신감을, 세계인들에게는 한민족의 저력을 보여주는 계기였다”고 전했다.

그러나 김 총리는 “현대사에서 지울 수 없는 큰 과오를 저지른 것도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국가장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한다”며 “어떤 사죄로도 5.18과 민주화 과정에서 희생되신 영령들을 다 위로할 수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고 밝혔다.

30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엄수된 고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가장 영결식에서 김부겸 국무총리가 이동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고인이 대통령 재임 시 국무총리를 지냈던 최측근 노재봉 전 총리는 추도사를 통해 노 대통령의 치적을 강조하면서 그를 둘러싼 비판에 대해 적극 해명했다.

노 전 총리는 “서울올림픽 이전 (노태우) 각하께서 하신 6·29 선언을 두고 세간에서는 대선 승리를 위한 승부수라고 했지만 그런 게 아니었다”며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에 이어 바뀐 한국사회 구조의 변화를 확인하는 선언이었다”고 언급했다.

6·29 선언은 1987년 6월항쟁 이후 당시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 대표위원이 국민들의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여 발표한 시국 수습 특별선언이다.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의 다음해 집권을 위해 마지못해 한 선언이었다는 해석도 있었지만, 고인이 바뀐 시대 흐름을 받아들였던 것이라고 높게 평가한 것이다.

3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고 노태우 전대통령 국가장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노재봉 전 국무총리가 추도사를 하고 있다.(사진=뉴스1)
노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리더십을 비하하는 별명이었던 ‘물태우’에 대한 언급도 했다. 노 전 총리는 “오랬 동안 권위주의에 익숙했던 이들은 각하를 ‘물태우’라고 이름 붙이기도 했다”며 “각하는 이를 시민사회 출현에 따른 능동적 관심이 싹트는 것이라고 판단하셨다”고 설명했다.

특히 “‘군 출신 대통령은 내가 마지막’이라는 고인의 말도 이러한 배경을 알아야 한다”며 “한국전쟁 후에는 문맹률이 80%가 넘고 정규 육군사관학교 1기생 엘리트 장교들이 통치에 참여하는 것은 숙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고 울먹였다.

노 전 대통령의 유족 등은 영결식이 끝난 뒤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진행했다. 이후 고인의 유해는 경기도 파주 검단사에 임시 안치됐다가 파주 통일동산에 안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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