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 우주기술은 착하고 건설기술은 나쁜가

사고확률 높은 업종 특성 무시
산업재해 이유로 포상서 제외
현장 안전도 기술 있어야 확보
차별적 시선 아닌 지원 나설 때
  • 등록 2023-05-28 오후 5:31:25

    수정 2023-05-28 오후 7:44:53

[이데일리 김아름 기자] 개화의 선구자 유길준 선생은 1908년 발간한 ‘노동야학독본’에서 “노동은 사람의 근본이고 직업에는 귀천이 없으므로 노동자는 각자 직분과 재주대로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로부터 100여년이 훌쩍 넘은 대한민국은 당시와 비교해 어떨까. 오죽하면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대행사’에서 주인공 이보영이 “학교에서 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가르치는지 아나? 귀천이 있기 때문에 없다고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했을까.

21세기 대한민국은 정부가 나서서 ‘좋은 기술자’, ‘나쁜 기술자’를 규정하며 차별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가 쏘아 올린 차세대 소형위성 2호가 궤도에 안착해 지상과 정상 신호를 주고받는 데 성공했다. 우리 기술 발사체로, 우리 실용위성을 쏘아 올려 고무적인 분위기다. 앞서 지난달에는 과학의 날과 정보통신의 날을 맞아 누리호 발사 성공 유공자 110명에 정부포상이 주어졌다. ‘우주 강국’이라는 꿈에 한 발짝 다가서기 위한 땀과 수고의 결과를 제대로 치하한 것이다.

여기에 유독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건설기술자다. 건설기술계는 마치 죄인 취급을 받으며 정부의 따가운 시선을 감내하고 있다. 한 건설사 기술자는 해당 건설사의 현장에서 산업재해가 발생했다는 이유로 정부포상 명단에 올랐다가 제외됐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산업재해 등과 관련해 명단이 공표된 사업장과 그 임원은 포상추천을 제한하는 ‘유공자 추천공고안’ 규정 때문이다.

정부포상에서 누락됐다는 사실에 건설기술계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건설기술계 종사자가 자식에게 ‘건축과는 절대 가면 안 되는 곳’이라고 전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나돌 정도다. 건설현장에서 재해는 예기치 않게 수없이 발생한다. 물론 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현장의 책임을 강화하는 제도는 필요하다. 다만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낮은 산업계에서만 착한 기술이 개발되는 건 아니다. 우리 삶을 획기적으로 향상하는 건설기술을 발굴했지만 그 기술자가 속한 기업의 어느 공사 현장에서 사고가 났다면 그 기술은 착한 기술이 아닌 게 된다.

특히 산업재해는 오히려 건설기술로 극복할 수 있다. 건설 현장에 로봇·드론이나 스마트 기술을 도입해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어서다. 건설 현장의 안전 확보와 품질과 생산성 제고를 위한 건설 로봇 분야 연구 개발에 기업이 공을 들이는 이유다.

건설 기술자들도 우리가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바지하고 있다. 건설기술자의 열정이 결코 우주기술자보다 덜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우주 강국’ 외에도 ‘4대 해외건설 강국 진입’이라는 목표를 내세우고 건설사에 해외 사업 확대를 독려하고 있다. 막대한 국부를 창출하는 해외 건설 강국으로 나아가려면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은 필수적이다. 건설기술자가 위축됨 없이 직업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이중적인 잣대로 차별적 시선으로만 건설업을 바라본다면 ‘4대 해외건설 강국 진입’의 목표는 허상에 그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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