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K워치]'조건부' 포워드 가이던스에서 왜 '조건'이 묻혔을까

베이비스텝 포워드 가이던스, 헷갈리는 '조건들'
美 최종금리 상향→환율 급등→물가 전망 상향?
한미 역전폭 최소화가 '조건'이었나…환율 급변동이 조건 인식 바꿨나
'조건' 흔들리자 포워드 가이던스 사라지고 '연속 빅스텝'까지
총재 '소통' 강화 노...
  • 등록 2022-09-29 오후 5:00:00

    수정 2022-09-30 오후 6:04:59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물가가 현재 전망하고 있는 경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금리를 당분간 0.25%포인트씩 점진적으로 인상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7월 13일 금통위)

“7월 밝힌 포워드 가이던스가 유지된다. 경기 하방 불확실성이라든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9월 결정을 보면서 0.25%포인트씩 올리면서 계속 갈지, 조정할지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8월 25일 금통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7월부터 ‘조건부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시해왔다. 조건을 밝히고 조건이 맞는 상황이 전개될 경우 이에 맞는 금리 전망 경로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미 연준이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금리 점도표를 통해 연말 금리를 4.4%(중간값), 최종 금리를 4.6%로 올릴 것을 예고하자 0.25%포인트씩 금리를 올리겠다는 총재의 베이비스텝 ‘포워드 가이던스’가 잘못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한미 금리 역전폭을 크게 벌릴 것처럼 메시지를 전달해서 원·달러 환율을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이다.

이 총재는 2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제가 공격을 받고 있지만 25bp씩 인상하겠다는 것에는 ‘조건’이 있었다”며 “시장에서 전제조건을 생략하는 것은 이해되지만 앞으로 제가 포워드 가이던스를 하면 이것은 ‘조건부’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조건부 포워드 가이던스에서 ‘조건’은 무엇이었을까. 왜 총재가 말하는 ‘조건’은 사라지고 ‘베이비스텝’만 둥둥 떠다녔던 것일까.

*미국은 정책금리 상단 기준 출처: 한국은행


◇ 포워드 가이던스의 조건 ‘물가’, 바뀌었나


이 총재가 밝힌 ‘베이비스텝 포워드 가이던스’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경기와 물가였다. 그렇다면 연준의 금리 인상 결정이 경기와 물가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연준은 9월 정책금리를 3~3.25%로 0.75%포인트 올렸다. 한은 금리(2.5%)와 0.75%포인트 역전이 났다. 이미 예고됐던 일이다. 핵심은 금리 점도표에 있었다. 이 총재는 연말 연준 금리 상단이 4% 수준일 줄 알았는데 4.5%로 높아졌다고 밝혔다. 기존 포워드 가이던스에 따르면 한은 연말 금리는 3%로 당초 한미 금리 역전폭은 1%포인트로 예측됐으나 9월 금리 점도표로 1.5%포인트 벌어지게 된다.

한미 금리 역전폭이 예상보다 더 커지게 될 경우 어떤 문제가 있을까. 한은에 따르면 자본 유출보다 환율이 올라 물가가 상승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9월 FOMC 결과가 공개되자 환율이 1400원을 돌파했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면 한은 금리 결정의 가장 큰 기준이 되는 물가 전망은 바뀌지 않았다. 이 총재는 26일 기재위에서 “유가가 빨리 떨어진 반면 환율이 절하됨으로써 그 효과가 상쇄돼 정점은 10월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재가 ‘베이비스텝’ 포워드 가이던스를 처음 밝힌 7월에도 “3분기 말이나 4분기 정도를 물가 정점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기 때문에 FOMC 결과 물가 정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환율 급등세가 향후 물가를 더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올 상반기 물가상승률이 4.6%인데 환율이 9.2% 올랐고 환율 급등으로 인해 물가는 0.4%포인트 더 끌어올려졌다. 환율이 1500원까지 오른다고 가정하면 환율은 하반기에만 15.5% 급등하고 환율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도 대략 1%포인트 커질 전망이다. 그러나 환율 급등이 한은이 전망하는 올해와 내년 물가상승률(5.2%, 3.7%)을 상향 조정할 변수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중국 경기 둔화, 영국의 금융위기 등 세계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려 수요을 망쳐버리는, 즉 물가 하방 압력 또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건이 ‘한미 금리 역전폭 1%p였나’…1.5%p는 안 된다는 신호?

그렇다면 ‘한미 금리 역전폭을 과도하게 벌리지 않는 것’이 포워드 가이던스의 전제조건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로 인해 환율 등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니 조건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던 것일까. 여기엔 혼선이 있다.

이 총재는 8월 금통위에서 “한은은 연준으로부터 독립돼 있지 않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미 금리차가 1% 중심으로 왔다갔다 했기 때문에 격차가 너무 커지지 않는 정도로 부정적 영향을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한미 금리가 역전된다고 해도 자본이 유출될 가능성이 낮다고 거듭 언급해왔지만 한미 금리차를 1.5%포인트 이상으로 벌리기에는 부담스럽다는 뜻이다. 과거 한미 역전폭이 가장 컸던 때는 2000년 5월로 당시 1.5%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이 총재는 기재위에서 1.5%포인트 역전폭을 허용할 것이냐는 질문에 “과거 최대치가 1.5%포인트였다는 것이고 이를 허용해도 된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겉으로는 한미 금리 역전폭이 커졌을 경우 가장 큰 걱정은 물가라고 말하고 있지만 결국엔 환율 등 금융시장 불안, 혹시 모를 자본유출이 두렵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조건 흔들리니 금리 기대치 또 다시 ‘무방비 상태’

포워드 가이던스의 조건을 명확히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한은의 설명이다. 어찌됐든 이 총재는 FOMC회의 결과가 공개된 직후 22일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기자들과 만나 “연준 최종금리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바뀌었다”며 “전제조건의 변화가 국내 물가와 성장흐름, 외환시장에 주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한 뒤 기준금리 인상 폭, 시기 등을 결정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재의 발언은 ‘베이비스텝 포워드 가이던스’를 수정할 것으로 읽혔다. 시장에선 한 발 더 나가 한미 금리차를 1%포인트 이상으로 벌리진 않을 것으로 판단, 10월 뿐 아니라 11월 금통위에서도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이 단행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최종 금리도 3.75%로 높아졌다. 심지어 국고채 3년물 금리는 4.5%를 넘어 한은 최종금리 4%를 반영할 정도로 급등했다. 포워드 가이던스는 사라지고 금리 기대치가 순식간에 ‘무방비 상태’로 돌아갔다.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도 이 총재가 조금이라도 명확한 포워드 가이던스를 주려고 하는 것은 경제주체들이 금리 수준을 어느 정도 가늠한 후 경제활동을 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과거 “내 뜻을 정확히 알아들었다면 내가 말을 잘못한 거다”라는 식의 ‘앨런 그린스펀(전 연준 의장)식 화법’보다는 훨씬 더 책임감 있는 소통 방식이고 지향해야 할 길이다. 그러나 불명확한 조건들과 제한된 소통 창구는 한은 총재의 전례 없는 적극적 소통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 총재 혼자 소통이란 무게를 짊어지고 나머지 금통위원들은 입을 닫고 있는 것이 옳은 일인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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