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체크 앤 밸런스(check and balance)” 미국 월가(Wall Street)를 감독하는 증권거래위원회(SEC)를 지난해 취재하면서 들었던 말이다. SEC의 고위급 위원(commissioner)이자 ‘크립토 맘(Crypto Mom)’으로 불리는 헤스터 퍼스(Hester Peirce) 위원은 당시 워싱턴D.C에서 이데일리에서 만나 ‘한국의 새정부인 이재명정부가 자본시장 정책을 추진할 때 고려해야 할 점’에 대해 질문받자 이같이 답했다. 퍼스 위원이 ‘체크 앤 밸런스’를 강조한 것은 정책 실패를 막기 위해서다. 당국이 빠르게 변화하는 월가의 모든 상황을 알 수 없는 만큼 시장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다양한 시각에서 정책을 ‘체크’하며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그는 “정책으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를 견제하려면 결정을 뒷받침하는 사실을 ‘최대한 공개’하고 법령·규정을 어떻게 해석·적용했는지 법적 논리를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특히 그는 당국이 특정 정책의 취지나 성과를 부각하고 싶은 유혹이 생길수록 ‘체크 앤 밸런스’가 더욱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SEC는 시장 제보자에게 파격적인 보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추진하고 있었다. SEC 입장에서는 해당 제도의 실적을 보여주고 싶었고, 언론을 통해 ‘파격적인 보상금 지급 효과’가 대서특필 되길 원했다. 퍼스는 바로 이같은 순간에 정책의 부작용이 가려질 수 있다고 봤다. 정부가 정책 성과를 강조하고 싶은 유혹을 받을수록 정보의 투명한 공개와 다양한 여론수렴을 통해 ‘체크 앤 밸런스’를 작동시켜야 하다는 게 퍼스 제언의 핵심이었다.헤스터 퍼스 SEC 상임위원이 지난해 5월 미 워싱턴 D.C.의 SEC 본부에서 이데일리와 만났다.(사진=최훈길 기자, 통역=제레미 서·Jeremy Suh)이같은 ‘체크 앤 밸런스’ 필요성을 떠올린 것은 지난 4일 금융위원회의 ‘토큰증권 정책방향’ 정책 발표를 보면서다. 이날 금융위의 발표는 의미가 컸다. 당국이 ‘조각투자를 넘어 주식·채권·펀드 토큰화 허용 입장까지 밝힌 것’이어서다. 주식·채권·펀드 토큰화에 신중론을 취했던 당국이 전향적인 입장을 밝힌 것이다.그동안 시장에서는 내년 2월 토큰증권발행(STO) 법안이 시행되더라도 정작 팔 수 있는 상품이 부족해 ‘개점휴업’ 상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그런데 당국은 주식·채권·펀드 같은 정형증권 토큰화에 이어 상장 주식과 스테이블코인 결제까지 단계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이같은 3단계 로드맵을 제시하면서 시장의 우려를 일정 부분 해소했다. 토큰증권 발행·유통이라는 이재명정부 국정과제를 제대로 구현하기 위한 금융위의 고민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시장도 일단 박수를 보내고 있다.하지만 정책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하나둘 나오고 있다. 금융위 보도자료에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100페이지가 넘는 관련 자료를 뜯어보니 정책 추진 방식에서 짚어봐야 할 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보도자료만 봐서는 전혀 몰랐던 내용”이라며 비상등이 켜진 상황이다.(그래픽=챗GPT)대표적인 것이 조만간 전자증권법 시행령 개정안에 담길 분산원장 표준요건 가이드라인의 ‘상호운용 금지’ 규정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하나의 증권은 하나의 분산원장에서만 발행되고 유통돼야 하며, 일단 발행된 뒤에는 다른 분산원장으로 일부든 전부든 옮길 수 없다. 문제는 증권사마다 서로 다른 블록체인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국투자증권은 A 원장, 미래에셋은 B 원장, NH투자증권은 C 원장을 쓴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같은 주식 토큰이라도 서로 다른 원장에 존재하게 된다. 그런데 ‘상호운용 금지’ 규정에 따라 증권사 간 거래가 단절돼 서로 이동할 수 없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각각의 분산원장이 사실성 서로 단절된 ‘갈라파고스 섬’처럼 될 수 있다. 서울에 있는 물건과 부산에 있는 물건이 있는데 그 사이를 연결하는 도로가 없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다 보니 “금융위가 토큰증권 문은 열었는데 통로는 막았다(김태림 한국웹3블록체인협회 사무총장)”,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서병윤 DSRV 대표)”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금융당국으로서는 안정성을 우선하겠다는 입장일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폐쇄형 인프라 방식이 이재명정부의 국정과제를 제대로 이행하는 것인지도 함께 고민해 봐야 한다. ‘디지털자산 생태계 구축’ 국정과제는 “분산 원장 기반의 효율적 계좌 관리, 스마트 컨트랙트 활용이 가능한 토큰증권의 발행·유통 제도 도입”이라고 명시돼 있다. 이같은 국정과제에 따라 토큰증권을 도입하는 이유는 단순히 증권의 기록 방식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다. 분산원장과 스마트컨트랙트를 활용해 발행·유통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서로 다른 원장을 연결할 수 없는 폐쇄적 구조로 되면 장기적으로 국정과제의 취지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스테이블코인 결제까지 도입해 해외 시장으로 뻗어나겠다는 구상과 우리만의 폐쇄형 인프라를 고집하는 방식이 양립할 수 있는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24시간 주식 거래 관련해 정책을 확정하기 전에 미 SEC는 오는 17일 라운드테이블올 통해 의견을 수렴한다. 일반 투자자들도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오프라인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할 수 있다. 라운드테이블은 온라인으로 생중계된다. (사진=SEC)바로 이 지점에서 필요한 것이 정책을 투명하게 알리고 시장과 투자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듣는 ‘체크 앤 밸런스’다. 관련해 미국의 정책소통 방식은 참조할 만하다. 미 SEC는 오는 17일 워싱턴 D.C.에서 공개 원탁회의(라운드테이블)를 열고 ‘24시간 주식 거래 준비를 위한 라운드테이블’을 연다. 논의 의제는 △24시간 거래 확대 관련 거래소·증권사 준비 상황 △청산·결제 시스템 안정성·유동성 확보 방안 및 투자자 보호 대책 등이다. 주목할 부분은 24시간 거래 관련 SEC 정책이 최종 확정되기 전에 이같은 논의를 온오프라인에서 전면 공개 형태로 진행하는 것이다. SEC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폴 앳킨스 SEC 의장을 비롯해 뉴욕증권거래소(NYSE), 나스닥, 블랙록, 시타델증권, 로빈후드 등 월가 주요 금융·거래소 기관의 발언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일반인들도 관련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이는 우리의 정책 결정 방식과 대조된다. 지난 4일 토큰증권 정책방향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일반 투자자들이 공개적으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라운드테이블 같은 자리는 없었다. 민·관 합동 토큰증권 협의체가 구성돼 세차례 회의가 진행됐지만 협의체 멤버가 아닌 기업이나 투자자들이 의견을 제시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지난 4일 열린 민·관 합동 토큰증권 협의체 회의 현장을 취재하러 갔지만 예탁원 1층 엘리베이터 출입부터 통제돼 회의 현장 취재조차 불허됐다. 앳킨스 위원장은 “시장과 발맞추는 동시에 투자자와 고객 보호라는 핵심 원칙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며 라운드테이블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직 안 가본 길이기 때문이다. 시장의 혁신을 촉진하면서도 투자자를 보호해야 하는 만큼 정책 결정은 쉽지 않다. 이럴수록 다양한 시장 참여자와 투자자의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듣고, 그 과정에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삼성전자·SK하이닉스 같은 인기 주식이나 BTS와 같은 콘텐츠·지식재산권(IP) 관련 자산을 토큰화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릴 수 있다. 이런 시대를 대비하고 해외 투자자들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적인 한국형 투자상품을 만들려면 당국의 정책 결정 방식 역시 한 단계 더 개방될 필요가 있다. 앞으로 관련 시행령을 마련·확정하는 과정에서 시장, 투자자들과 함께 하는 라운드테이블이 만들어지길 기대해본다. 우리나라 토큰증권 정책에도 정책 확정 전에 시장과 투자자들과 터넣고 정책을 살펴보는 ‘체크 앤 밸런스’가 필요하다.※‘최훈길의 뒷담화’는 이슈 현장이나 정책 논의 과정의 뒷이야기를 전하는 주말 연재 기사입니다.
“1300만명 코인 과세”…이대로면 폭망하는 이유
최훈길 기자2026.08.30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가상자산 과세를 제대로 하려면 리모델링이 아닌 재건축이 필요합니다.” 한 세법 전문가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가상자산 과세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현행 과세 제도에 허점이 많은 만큼 국제적 정합성, 조세 형평성 등을 고려하면 제도 전반을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22일 공개한 ‘가상자산 과세상 쟁점 및 개선방안 연구’ 용역 최종보고서(안성희·조형태·김익현)를 보면 ‘왜 가상자산 과세 제도의 재건축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140쪽 분량의 보고서를 읽고 나면 눈앞이 아찔해진다. 현행법을 이대로 시행할 경우 정부·여당이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우려돼서다. 현행 소득세법에 따르면 내년 1월1일부터 가상자산을 양도하거나 대여해 발생한 소득은 기타소득으로 분류돼 과세된다. 연간 가상자산 소득 가운데 기본공제액 250만원을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 기타소득세 20%와 지방소득세 2%를 합친 총 22%의 세율이 적용된다. 과세는 전체 투자자 1326만명(작년 12월 업비트 누적 회원 기준)이 대상이다.정부가 작년 7월15일 청와대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재 부처 업무보고에서 보고하고 있다. 왼쪽부터 임광현 국세청장, 이억원 금융위원장,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모습. (사진=연합뉴스)조세저항이 크게 예상되는 부분은 가상자산 손실 이월공제 불허다. 1억원을 손실을 본 뒤 이듬해 250만원(과세최저한) 넘게 수익을 냈다고 가정해보자. 2년을 합산하면 여전히 큰 손실을 봤는데도 현행 제도상 22% 세율로 세금을 내야 한다. 손실을 이듬해 이익에서 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해외 주요국의 가상자산 제도와 대조된다. 국회예정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영국 등 해외 선진국은 가상자산 손실에 대해 무기한 이월공제를 허용하고 있다. 일본은 올해 세법 개정에 따라 3년 손실 이월공제를 허용하기로 했다. 우리나라가 내년 1월에 시행하는 가상자산 과세 제도가 글로벌 스탠더드와 거리가 있는 셈이다.250만원이라는 과세 최저한 역시 논란거리다. 왜 하필 250만원까지만 공제될까. 이 기준은 민주당의 기존 약속과도 배치된다. 민주당은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가상자산 기본공제 한도를 5000만원으로 높이는 공약을 제시했다. 2024년 11월22일 당시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를 “국민과의 약속이라 함부로 뒤집기 어려운 당론”이라고 했다. 하지만 불과 1년여 만에 이 약속은 없었던 일이 됐다.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때인 2020년 7월22일 공개한 세법개정안 문답자료. (자료=기획재정부)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조세 형평성이다. 정부는 가상자산에 세금을 부과하는 이유로 다른 자산과의 형평성을 강조해왔다. 기획재정부(현 재경부)는 2020년에 가상자산 과세 법안을 최초로 공개했다. 이 법안이 내년에 시행되는 과세다. 기재부는 당시 7월22일 공개된 세법개정안 문답자료에서 가상자산 과세 이유에 대해 “주식 등 다른 자산도 양도 소득에 대해 과세하는 점을 감안시 가상자산도 과세함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2024년 12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를 골자로 한 소득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일반(소액) 투자자들의 양도 소득은 현재 비과세다. 그런데 가상자산 투자자는 연간 250만원 넘는 수익이 발생하면 과세 대상이 된다. 같은 소액 투자자라도 주식과 가상자산의 세금이 달라지는 만큼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하다.정부가 해외주식(250만원 초과 수익에 22% 세금 부과)처럼 가상자산 과세를 하는 것도 논란이다. 왜냐하면 현행법상 가상자산은 주식과 같은 금융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년에 시행되는 소득세법에 따르면 가상자산 소득은 기타소득으로 분류된다. 가상자산 수익은 로또 당첨금이나 슬롯머신 당첨금과 같은 일시적 우발적 기타소득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정책의 논리적 모순, 부처 간 엇박자가 발생한다. 이재명정부는 국정과제 ‘디지털자산 생태계 구축(금융위원회)’을 통해 △디지털자산기본법을 제정하는 디지털자산 규율체계 마련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도입 추진 계획을 밝혔다. 금융위는 “(이를 통해) 디지털자산 산업 성장 및 투자자 편익 제고”를 한다고 밝혔다. 그런데 재경부·국세청이 추진 중인 가상자산 과세에선 가상자산 소득을 로또·사행 행위·슬롯머신 당첨금처럼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결국 문제의 뿌리는 내년 1월 시행되는 가상자산 과세 제도(소득세법 개정안)가 6년 전에 만들어진 낡은 제도라는데 있다. 기재부가 과세 법안을 처음 발의했던 2020년 7월 당시 비트코인 가격은 1만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금은 비트코인이 작년 10월 12만달러를 넘어서는 등 시장 자체가 급성장하면서 가상자산 시장과 법제 역시 급변했다.일본이 올해 세법을 개정해 가상자산을 금융상품으로 인정하기로 한 것도 이같은 시장 변화를 반영한 결과다. 해외 주요국이 가상자산의 시장 변화에 맞춰 과세 체계를 조정하는 동안 우리나라 국회는 2020년에 만들어진 과세 제도를 3차례 유예하며 제도개선을 뭉개고 있던 것이다.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22일 공개한 ‘가상자산 과세상 쟁점 및 개선방안 연구’ 용역 최종보고서(안성희 가톨릭대 경영대학 교수·조형태 홍익대 경영대학 교수·김익현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자료=국회예산정책처)정부도 이같은 논란과 문제를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인지하고 있고 내부에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앞서 국세청은 지난 24일 가상자산 과세 고시 제정 자문위원단 첫 회의를 열었다. 세법 전문가 등 자문위원들은 내년에 가상자산 제도가 이대로 시행될 경우 나타날 조세 불복, 논란에 대해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국세청의 고시 제정이라는 리모델링 수준이 아니라 가상자산 과세 전반을 뜯어고치는 재건축이 필요하다는 게 자문위원단 제언의 핵심이다. 과세를 또다시 유예한다고 문제가 자동적으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이미 세 차례 유예했지만 손실 이월공제, 250만원 공제 한도, 기타소득 분류 등 핵심 쟁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유예는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 뿐, 정부·국회가 가만히 있으면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정치적으로 부담된다며 여권에서 쉬쉬한다고 해결될 수도 없다. 내년에 과세를 시행하면 납세자는 2028년 5월에 가상자산 과세에 대한 첫 신고를 해야 한다. 신고를 준비하면서 국민들은 현행 가상자산 과세 제도의 문제를 피부로 체감하게 될 것이다. 이때는 2028년 4월 23대 총선과 맞물린 때다. 여당이 논의를 미룰수록 조세저항은 더 커지고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내달 3일 국회에서 여당 의원 주최로 가상자산 과세 첫 토론회(주최 국회 재경위 문진석 민주당 의원실)가 열린다. 이제라도 어떤 방식으로 납세자가 납득할 수 있는 과세 체계를 만들 것인지 논의해야 한다. 정부·국회에서 누가 총대를 메고 ‘가상자산 과세 재건축’에 나설지 지켜볼 때다.※‘최훈길의 뒷담화’는 이슈 현장이나 정책 논의 과정의 뒷이야기를 전하는 주말 연재 기사입니다.
“일본이 진짜 잘했다”…JPYC가 루센트블록에 던진 질문
최훈길 기자2026.08.23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일본이 진짜 너무 잘했다.”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인 민병덕 의원은 지난 21일 국회 세미나에서 JPYC와 만나 “스타트업이 엔화 스테이블코인 최초 발행 기업이 된 것은 정말 대단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JPYC는 금융당국 인가를 받아 작년 10월부터 엔화 스테이블코인을 최초 발행한 스타트업이다. 이날 민 의원은 JPYC 측에 “어떻게 스타트업이 최초 발행사가 될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인 민병덕 의원이 지난 21일 국회에서 2시간 가량 열린 ‘금융질서 대전환과 K-스테이블코인 발행 성공방정식’ 세미나(주최 민주당 민병덕·이강일·강준현·김현정 의원 및 한국경제연구원) 내내 자리를 지킨 뒤 세미나 직후 쇼타 사이토(맨오른쪽) JPYC 총괄과 만나 일본의 스타트업 혁신 배경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 (사진=최훈길 기자)쇼타 사이토(Shota Saito) JPYC 사업개발·마케팅 총괄은 두 가지 이유를 꼽았다. 첫째는 4년 이상 축적한 ‘경험’이다. JPYC는 일본이 자금결제법 개정안을 만든 2022년 6월 이후 본격적으로 엔화 스테이블코인을 준비했다. 2023년 6월 개정 자금결제법이 시행된 이후에는 관련 사업 준비를 더욱 구체화했다. 2025년 8월에는 일본 금융청의 자금이동업자 인가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엔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에 필요한 경험과 실적을 차곡차곡 쌓았다.두 번째는 금융당국과의 지속적인 ‘소통’이다. 쇼타 사이토 총괄은 “금융당국과 지속적이고 긴밀한 커뮤니케이션을 해왔기 때문에 최초 발행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JPYC가 이 기간 중에 일본 금융청에 제출한 서류만 200종이 넘는다고 한다. 그는 “일 당국과 앞으로의 내용까지 포함해 긴밀해 논의했고, 이런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안정성과 신뢰를 쌓는 밑거름이 됐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스타트업이 최초 엔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되는 과정에서 은행 등 전통 금융권의 반발은 없었을까. JPYC는 이같은 세 번째 질문에 대해 △JPYC가 1호 발행사를 준비해온 ‘프론티어’로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던 점 △일본 정부가 금융의 혁신을 위해 스타트업 지원에 나선 점 △JPYC가 은행의 적이 아니라 파트너라는 점을 각인시킨 점 등을 강조해 시장 내 반발을 해소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답변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뿐 아니라 국내 금융 스타트업 정책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특히 현 조각투자 구조를 최초 설계한 국내 1호 조각투자 스타트업, 충청권 유일의 핀테크 기업인 루센트블록을 둘러싼 정책 결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루센트블록은 1112개 이상의 규제 샌드박스 참여 기업 중 관련 사업을 초기에 시작해 7년여간 유지해온 ‘프론티어’ 스타트업이다.그동안 루센트블록은 △350억원 이상의 투자를 받았고, 이용자 50만명을 유치해 누적 300억원 규모의 자산을 금융사고 없이 발행·유통해 온 ‘경험’ △조각투자 샌드박스에 참여해 안정적이고 신뢰받는 서비스를 위해 금융당국과 수년간 지속적으로 ‘소통’한 점 △하나증권 등 다양한 전통 금융사들과 ‘파트너십’을 체결한 점 등에서 JPYC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은 금융당국의 결정이다. 물론 혁신보다 안정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금융위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KDX·NXT컨소시엄보다 작은 스타트업에 조각투자 장외거래소를 인가해줬다가 금융사고가 터지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는 게 금융위의 최대 고민 중 하나다. 삼성전자·하이닉스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논란 이후 금융위가 새로운 뭔가를 시도하는 운신의 폭이 더욱 좁아졌다. “이런 와중에 루센트블록에 특혜를 주는 거냐”는 시장 반발도 우려할 수밖에 없다.(사진=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박용진 부위원장 페북)그럼에도 한 가지 의문은 남는다. ‘사실상 1호 조각투자 기업으로 고군분투 해온 루센트블록을 이대로 죽이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대통령 직속 규제합리화위원회 박용진 부위원장은 지난 18일 페북에 “샌드박스에서 뛰게 해놓고 본게임이 시작되자 벤치에 앉히는 것이 규제혁신의 결론이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박 부위원장은 한성숙 국무총리,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 등과 루센트블록에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예비인가 추가신청 기회를 부여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특혜성 자동 인가를 해주자는 것이 아니라 석연치 않은 이유로 탈락한 루센트블록에 한 번 더 도전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참조 이데일리 8월18일자 <루센트블록 만난 박용진 “‘본게임’ 기회 줘야…금주 한성숙·권대영과 논의”>)또 하나 고민해볼 문제는 지금 가장 걱정해야 할 것은 ‘조각투자 금융사고’가 아니라 ‘조각투자 개점휴업’이라는 점이다. 내년 2월 토큰증권발행(STO) 관련 법 시행을 앞두고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예비인가를 받은 KDX와 NXT컨소시엄은 지난 10일 금융위에 본인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관련 기업들의 최대 고민은 ‘이대로 가면 내년에 조각투자 상품을 발행해도 투자자들 관심이 거의 없을 텐데, 어떻게 수익성 있는 상품을 내놓을 것인가’다. 이렇게 시장 파이가 작은 상황에서 루센트블록까지 뛰어든다고 하니, 업계 의견을 들어보면 대부분 루센트블록에 대한 부정적인 뒷담화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조각투자 시장 개점휴업 사태를 막기 위한 한 방법으로 루센트블록을 통한 ‘메기 효과’를 고려해봤으면 한다. 사업자가 늘어나면서 레드오션이 되는 게 아니라 경쟁을 촉진해 시장 전체의 상품과 서비스 수준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대전에 본사를 둔 루센트블록의 직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허세영 대표는 "루센트블록 직원 평균 나이는 29세로 직원 약 20%가 근무 중에 결혼을 했고 대부분이 출산을 했다. 요즘 같이 출산율과 혼인율이 저조한 시기에 큰 자부심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허세영 대표 페북)허세영 루센트블록 대표는 이데일리 인터뷰에서 “7년여 동안 조각투자 사업을 하면서 느낀 것은 중요한 것은 ‘1호 상품 대박’이 아니라 5년, 10년 이상을 보며 얼마나 안전하고 양질의 자산을 선보이느냐는 것”이라며 차별화된 전략을 예고했다. (참조 이데일리 8월19일자 <“2828일은 배신 않는다…1호 조각투자 루센트블록 재도전”>)이재명 대통령은 청년들과 만나 “실패한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더 많다”며 “과감히 도전하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이 실현되려면 청년 스타트업이 실패 이후에도 다시 도전할 수 있었던 사례, 청년들이 정부를 믿고 창업 전선에 뛰어들 수 있는 선례가 필요하다. 루센트블록이 이 선례가 될 것이라고 100% 장담할 수는 없다. 루센트블록 스스로도 책임 있고 신뢰받는 행보를 보여줘야 한다. 그럼에도 박용진 부위원장과 금융위, 루센트블록 관련 기사를 쓰는 이유는 루센트블록이 지난 7년여간 보여준 진정성 있는 행보가 배신하지 않을 것이란 기대가 있어서다. 일본의 스타트업 JPYC가 해낸 일을, IT 강국인 우리나라의 스타트업이 못할 이유도 없지 않겠나.※이슈 현장이나 정책 논의 과정의 뒷이야기를 전하는 주말 연재로 ‘최훈길의 뒷담화’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