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면의 사람이야기
+더보기
-
![‘5극 3특’ 국가개조의 성공 조건[이근면의 사람이야기]](https://image.edaily.co.kr/images/vision/files/NP/S/2026/02/PS26020500040b.jpg)
-
‘5극 3특’ 국가개조의 성공 조건
-
최은영 기자
2026.02.05
-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 이번에는 뭔가 될 듯하다. 지방자치의 틀을 바꾸는 시발점이 될 것 같다. 대통령과 정부가 나서고 법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여당 원내 지도부가 1호 전략적 정책으로 밀겠다니 기대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야당이 이야기하는 지방선거 전략일지, 아닐지가 궁금해진다. 그 진정성은 다음에 답이 있다. 이번만은 성공의 길을 가야 한다. 5극 3특(5대 초광역권 및 3대 특별자치도) 광역통합 구상은 대한민국 국가 운영 체계를 재설계하겠다는 선언이다. 수도권 일극 체제를 넘어 권역별 자립과 경쟁을 통해 지속 가능한 국가 구조를 만들겠다는 목표다. 그러나 광역의 외형만 바꾸고 기초의 구조와 재정·경제 시스템을 그대로 둔다면 5극 3특은 실패한다.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행정구역을 바꾼 정치 이벤트에 불과하다.그동안 대한민국의 균형 발전 정책은 대부분 상부 구조에만 손을 댔다. 광역 권한을 키우고 예산을 이전하고 공공기관을 분산 배치했다. 그 결과 행정은 비대해졌고 책임은 흐려졌으며 국민 부담은 늘었다. 하부 구조를 건드리지 않는 개편은 언제나 실패했다. 광역통합의 성패를 가르는 첫 번째 조건은 시군구 기초자치단체의 전면적 개편이다. 지금의 기초자치 구조는 인구 성장과 지역 확장을 전제로 설계된 낡은 틀이다. 인구는 줄고 생활권과 경제권은 이미 광역화했는데 행정만 과거에 머물러 있다. 이 상태에서 광역만 키우면 행정은 이중화되고 정책은 분절되며 책임은 더 희석된다.특히 기초의회는 5극 3특을 가로막는 구조적 장애물이다. 기초의회는 지역 발전보다는 정치 부패와 개인의 이권 사업과 특정 개발을 위한 통로, 정당의 하부 조직으로서의 기능이 더 두드러졌다. 주민 삶의 질을 얼마나 개선했는지에 대한 성과는 실종됐고 선거를 위한 조직 관리만 남았다.권한은 있으나 책임은 없고 감시는 하나 성과 평가는 없는 구조에서 기초의회가 풀뿌리 민주주의로 작동하리라는 기대는 이미 무너졌다. 기초의회 폐지 또는 대폭 축소는 지방자치를 살리기 위한 구조 개혁이다. 교육감 제도 또한 재설계 대상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전국 어디서나 2시간 이내 이동이 가능한 단일 생활권 국가다. 학령인구는 급감했고 한 학년당 학생 수는 약 25만 명 수준이다. 이런 조건에서 17개 시도별로 서로 다른 교육 체계를 유지해야 할 실질적 이유는 거의 없다.학년당 약 1만 5000명 남짓한 학생을 기준으로 서로 다른 교육 행정과 정책 실험을 반복하는 것은 다양성이 아니라 비효율의 고착이다. 교육감 선거는 교육의 전문성보다 정치 구호와 진영 논리에 좌우됐고 교육 정책은 국가 인재 육성 전략이 아니라 4년 주기의 선거 공약으로 소비돼 왔다. 이는 교육을 황폐화하고 국가 경쟁력을 잠식하는 구조적 손실이다. 5극 3특이 국가 전략이라면 교육은 지방 정치의 실험장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핵심 인재 인프라로 재정의해야 한다. 교육감 선출제 폐지와 국가 단위 교육·인재 거버넌스 구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여기에 반드시 결합해야 할 것이 있다. 예산자치와 경제자치의 실질화다. 지금까지의 지방자치는 행정 권한은 분산했지만 경제 권한과 재정 책임은 중앙에 의존해 왔다. 이전 재원에 기대는 구조에서는 지역이 스스로 산업을 키울 유인이 없다. 5극 3특이 지향해야 할 자치는 경제 단위로서의 자치다. 각 권역은 스스로 벌고 쓰며 책임지는 구조를 가져야 한다. 예산자치는 세입과 세출, 성과 책임의 동시 이양이어야 한다. 스스로 벌지 못하는 예산은 자치가 아니라 의존이다.특히 방만한 재정자립도의 현실은 무책임과 포퓰리즘, 지역 갈등의 기형적 복합체가 된 지 오래다. 결국 아무도 내일을 책임지지 않는 예산자치의 실종은 미래 세대의 착취나 다름없다. 각 권역은 세계 산업 질서 속에서 명확한 산업 포지션과 특화 전략을 가져야 한다. 반도체, 바이오, 에너지, 물류, 방산, 농식품, 문화산업 등 선택과 집중 없는 나열식 정책으로는 어떤 지역도 자립할 수 없다. 5극 3특은 국내 균형이 아니라 글로벌 분업 구조 속에서의 역할 배분이어야 한다.이제 5극 3특의 행정 통합에 각기 20조원씩 4년간 국가 지원이 집중된다. 그 막대한 돈을 오순도순 나눠 써버릴 것인지 아니면 지역 경제를 끊게 할 미래 재원으로 쓸 것인지는 이 경제자치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이러한 경제자치는 행정 중심의 자치를 넘어 생활자치의 실질화로 이어진다. 주민의 삶은 행정구역이 아니라 일자리, 교육, 주거, 이동, 의료라는 생활 단위에서 결정된다. 권역이 하나의 경제 단위로 작동할 때 국민은 ‘어디에 살 것인가’를 행정 편의가 아니라 삶의 질과 기회를 기준으로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지역 선택권이다.이쯤에서 이런 반론이 나올 것이다. “기초의회 폐지는 민주주의 후퇴다.” “교육감 선출제 폐지는 지방자치의 근간을 흔든다.” “중앙집권 강화로 가는 길이다.”. 그러나 이런 반론은 제도의 이름만 보고 성과를 보지 않는 주장이다.민주주의는 제도의 개수가 아니라 책임성과 성과로 평가받는다. 주민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고 부패와 비효율을 양산하는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과연 민주주의인가. 교육을 정치의 장으로 끌어들여 국가 인재 육성을 흔드는 것이 자치의 본령인가. “지방의 다양성이 사라진다”는 또 다른 반론도 있다. 그러나 인구가 급감하고 생활권이 통합된 현실에서 제도의 파편화는 다양성이 아니라 국가 역량의 분산일 뿐이다. 다양성은 전략 안에서 확보해야지 무질서 속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5극 3특의 본질은 행정구역의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지방자치의 역할과 한계를 재규정하고 국가 운영의 하부 구조를 재설계하는 일이다. 기초의회를 그대로 두고 교육을 정치에 맡긴 채 재정은 이전에 의존하면서 광역 경쟁력을 말하는 것은 책임 회피다.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자치’가 아니다. 더 단순하고 더 책임 있는 자치, 경제·재정·산업이 완결된 진정한 자치다. 5극 3특은 정치적 슬로건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견인하는 구조 개혁이다. 역사적 전환으로 남으려면 그 출발점은 반드시 하부 구조 대개조여야 한다. 이것을 외면한 광역 통합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
![청년밥상과 노인밥상의 간극[이근면의 사람이야기]](https://image.edaily.co.kr/images/vision/files/NP/S/2026/01/PS26010800252b.jpg)
-
청년밥상과 노인밥상의 간극
-
최은영 기자
2026.01.08
-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 새해 벽두부터 국제 정세가 급박하게 흔들리고 있다. 지정학적 갈등, 미중 공급망 재편, 금융시장 불안이 동시에 작동한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정치권은 각종 정치 현안을 톱뉴스로 쏟아내지만 경제적 도움도 생산적 담론도 아닌 소모적 공방이 대부분이다. 정책은 길을 잃고 국정의 에너지는 갈등 관리에 소진되고 있다. 2026년 한 해 역시 이런 혼란 속에서 출발하는 듯하다. 모두가 한 살 더 나이를 먹지만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와 고민은 나아질 기미가 없다. 내 삶도, 고령화도, 청년 문제도 모두 구조적 긴급지원요청(SOS) 상태다.그렇다면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는 대한민국의 현재 상태는 과연 어떤가. 정치 일정과 권력 지형에 가려 가장 예측 가능했고 가장 준비해야 할 문제였던 고령화는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 그러나 인구는 기다려주지 않는다.최근 대학가와 공공시설을 중심으로 ‘청년밥상’이 확산하고 있다. 급등한 물가와 불안정한 일자리 속에서 최소한의 식사권만큼은 국가가 함께 책임지겠다는 정책적 메시지다. 청년을 향한 이 시도는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 장면은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청년밥상은 있는데 노인밥상은 왜 없는가’라는 물음이다. 왜 노인의 기본적인 생활 안정은 늘 가족과 개인의 몫으로 남겨져 있는가.2026년은 1차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정점에 이르는 해다. 대한민국 산업화의 주역이자 중산층의 핵심이었던 이 거대한 세대는 은퇴와 동시에 노인 빈곤의 최전선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개인의 노후 준비 부족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국가가 국민의 노후를 체계적으로 설계하지 않은 결과에 가깝다. 물론 국가의 재정 여력과 정책 역량의 한계를 이유로 들 수는 있다. 그러나 설계하지 않은 것과 못한 것은 다르다. 준비하지 않은 대가는 늘 더 비싸게 돌아온다.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다. 정년은 60세에 멈춰 있는데 국민연금 수급 개시는 63세, 65세로 계속 늦춰지고 있다. 이 사이에 발생하는 수년간의 소득 공백은 제도적으로 방치해 왔다. 국가는 이 구조를 알면서도 개인의 저축과 가족 부양에 그 책임을 넘겨왔다. 가족 구조가 이미 붕괴한 사회에서 이는 사실상 무대책에 가까운 방치다.은퇴 이후 노동시장도 다르지 않다. 고령자의 경험과 숙련을 활용하는 구조는 여전히 미흡하고 대부분 단시간·저임금·불안정 일자리로 흡수된다. 일할 수 있는 노인은 ‘비용’으로, 돌봄이 필요한 노인은 ‘부담’으로 취급한다. 그 결과 많은 노인이 집은 있지만 수입은 없고 현금도 없으며 일할 의지는 있지만 기회가 없는 상태로 밀려난다. 이 과정에서 빈곤은 개인의 실패로 오인되고 구조적 책임은 흐려진다.이런 상황에서 기초연금과 건강보험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을 외면한 주장이다. 이는 복지가 아니라 국가 책임의 방기에 가깝다.고령화는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설계의 문제다. 노인정책은 부처별 사업 목록이 아니라 국정 차원의 핵심 과제로 재정렬해야 한다. 더 늦출수록 비용은 커지고 선택지는 줄어든다.노인 전담 부총리급 부처가 필요하다. 종합적으로 국가 기관의 각종 예산과 행정을 통합 조율해 노령화와 노인 복지를 체계적으로 다루고 특화할 고령화 시대의 필수 부서 말이다. 행정 부처는 시대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선행할 때 국가·사회적 비용의 효율화를 도모할 수 있는 법이다. 첫째, 노인 빈곤을 사후 보전이 아니라 사전 예방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기초연금은 보편성에 치우쳐 빈곤 완화 효과가 제한적이다. 이제는 하위 취약 노인에게 실질적으로 빈곤선을 넘을 수 있는 수준으로 수급을 차등 강화해야 한다. 동일하게 나누는 것이 공정이 아니라 최소한의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공정이다.둘째, 정년·고용·연금은 하나의 패키지로 설계해야 한다.정년 연장만 논의하고 임금체계와 직무 재설계를 미뤄온 과거의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계속고용 제도는 임금·직무 개편과 함께 법과 제도로 묶여야 한다. 정년만 있고 일자리는 없는 사회는 고령층에게 가장 잔인한 정책적 폭력이다.셋째, 의료·돌봄 정책의 중심을 치료에서 예방으로 옮겨야 한다.만성질환 관리, 낙상 예방, 고독 대응 같은 영역에 대한 선제적 투자는 의료비 절감이다. 적극적으로 운동하는 풍토 조성 및 확산은 사회적 비용 최소화다. 이는 복지 확대가 아니라 재정 합리화의 문제다. 지역 기반 건강·운동·의료의 종합 커뮤니티 케어는 초고령 국가의 기본 인프라다.넷째, ‘집이 있으니 가난하지 않다’는 행정적 판단을 버려야 한다.노인 빈곤의 핵심은 자산이 아니라 현금흐름이다. 주택연금 등 자산 연금화 제도는 존재하지만 현실 활용도는 낮다. 국가가 노후 자산을 소득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면 그 비용은 결국 하우스푸어, 빈곤 탈출, 의료·돌봄 지출로 되돌아온다. 사회적 부담과 비용을 낮추는 길은 늘 사전 예방에 있다. 청년밥상이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사회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다. 그런데 그 신호를 노인 문제로까지 확장하지 못한다면 국가는 미래를 설계할 자격이 없다. 오늘의 노인은 어제의 청년이었고 오늘의 청년은 내일의 노인이다.2026년은 단순한 인구 구조의 전환점이 아니다. 국가가 노후를 방치할 것인지 공동으로 책임질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분기점이다. 노인을 비용으로만 보는 국가는 결국 사회 전체를 고비용·반문명적 구조로 밀어 넣게 된다. 청년밥상에서 시작된 질문은 이제 분명해졌다. 이 나라는 늙어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나라인가. 국가와 사회는 모든 연령층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진솔한 복지국가인가. 그 시작은 노인밥상을 차리는 일이다.
-
![바보야, 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효율이야[이근면의 사람이야기]](https://image.edaily.co.kr/images/vision/files/NP/S/2025/12/PS25120400035b.jpg)
-
바보야, 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효율이야
-
최은영 기자
2025.12.04
-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 열심히 일한다와 잘한다, 시간만 때운다의 차이는 무엇일까. 성과 그리고 집중도와 생산성이다. 우리의 자화상은 어떨까.“한국은 과중한 노동시간에 억눌려 있다.” 이 말은 오랫동안 상식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정말 그럴까. 숫자만 보면 사실인 듯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연간 평균 근로시간은 약 1872시간으로 주요 7개국(G7) 평균(1500~1700시간)보다 길다. 그러나 이 수치가 한국 근로자의 전체 현실을 설명하지는 않는다.문제는 평균의 착시다. 한국의 장시간 근로는 주로 소규모 제조업, 영세 자영업, 하청 업체, 서비스업 종사자 등에서 발생한다. 반면 대기업, 공공기관, 금융·정보통신기술(ICT) 부문은 이미 주 52시간제가 정착해 있고 재택근무·유연근무·장기휴가제·워케이션 등 다양한 제도를 누리고 있다. 즉, 한국의 문제는 ‘국가 전체의 과로’가 아니라 산업과 기업 규모별 격차의 문제다.대기업 근로자들은 정시 퇴근과 휴식이 비교적 보장되고 성과 중심의 근무 문화로 전환 중이다. 하지만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하청 구조에 놓인 근로자들은 여전히 하루 10시간 이상을 일한다. 한국의 평균 근로시간이 높게 나오는 이유는 바로 이들 영세사업장의 비중 때문이다.전체 사업체의 98%가 50인 미만 소기업이며 이들이 전체 고용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평균 1900시간’이라는 통계는 대기업과 공공부문이 아닌 중소기업 노동자의 현실을 반영한 수치다.그런데 정부는 이런 구조적 차이를 무시하고 ‘모든 기업에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려 한다. 근로시간 단축은 대기업에는 추가 복지에 불과하지만 인력 여유가 없는 중소기업에는 생존의 문제다. 결과적으로 ‘쉴 수 있는 사람만 더 쉬는 제도’가 돼버리는 것이다. OECD 2023년 기준으로 보면 독일은 약 1340시간, 프랑스 1490시간, 영국 1540시간, 일본 1640시간, 캐나다 1650시간, 미국 1790시간 수준이다. 이들 국가의 평균은 1570시간 내외로 한국보다 300시간 이상 짧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시간당 노동생산성’이다.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약 51.1달러 수준으로 미국(약 83달러), 독일(약 75달러), 프랑스(약 70달러), 일본(약 60달러)보다 낮다. 즉, 한국은 더 오래 일하면서도 생산성은 훨씬 낮은 구조다.임금 수준에서도 비슷한 격차가 나타난다.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 연간 임금은 약 4만8000달러, 미국은 7만7000달러, 독일은 6만달러, 프랑스는 5만달러, 일본은 4만1000달러 수준이다. 한국의 임금이 일본보다 높아졌다고 하지만 이는 노동시간이 길기 때문이지 생산성이 높아서가 아니다. 시간당 보상으로 환산하면 여전히 주요 선진국보다 20~40% 낮다. 결국 한국의 문제는 ‘일을 많이 해서 피곤하다’가 아니라 ‘많이 일해도 덜 번다’라는 데 있다. 우리의 병목은 근로시간이 아니라 생산성이다.법의 기본 원리는 평등이지만 경제의 원리는 효율성이다. 모든 기업과 근로자에게 동일한 노동시간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일까.생산 라인에서 정해진 공정에 따라 일하는 근로자와 창의적 사고가 요구되는 연구개발자나 기획직의 노동시간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어떤 직무는 10시간을 일해도 집중도가 낮을 수 있고 또 어떤 직무는 5시간 만에 10시간의 성과를 낼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다양한 근무 형태를 모두 ‘주 52시간’이라는 하나의 법으로 묶어버려 효율적인 직무조정이나 성과 중심의 일 문화가 자리잡기 어려워졌다. ‘모두에게 평등한 법’이 실제로는 비효율적이고 불공정한 제도가 되는 이유다. 과연 어느 나라가 신생 소규모 기업에 노동시간을 규제하고 있나. 같은 일을 해도 성과와 기여도가 다르고 직무의 책임이 다르다. 임금은 그 차이를 반영하는 수단이다. 이를 억제하려는 제도는 열심히 일한 사람의 동기를 떨어뜨리고 혁신을 막는다.노동시간도 마찬가지다. 개인, 기업, 산업마다 생산성이 다르다. 법으로 획일화한 근로시간을 강제하면 고성과자와 저성과자가 같은 조건에 놓인다. 결국 이런 제도는 생산성 향상을 막고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벼농사와 밭농사, 과수농사를 같이 하는 농민에게조차 일을 얼마만큼 하느냐는 적용할 수 없는 개인적 의사결정의 영역이다. 우리 사회는 급속한 인구감소를 겪고 있다.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드는 시대에 노동시간을 줄이겠다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스스로 축소하는 일이다. 줄어드는 인력을 보완할 유일한 방법은 단위당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인구감소 시대의 경제 생존 전략이다. 생산성 향상은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의 혁신이다. 기업 문화 개선, 직무 전문성 강화, 재교육, 인공지능(AI)·자동화 도입, 유연근무제 확산 등으로 일의 효율을 높여야 한다.‘적게 일하고도 더 잘 버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이지 단순히 ‘적게 일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프랑스와 독일의 연차휴가 사용률은 90%를 넘는다. 한국은 60% 수준이다. 주어진 휴가만 모두 소진해도 근로시간은 연간 100시간 이상 줄고 사회 전체적으로 7% 이상의 추가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는 분석도 있다. 법으로 시간을 줄이지 않고 휴식 문화만 바로 세워도 근로시간은 충분히 줄일 수 있다. 주 4.5일제보다 더 현실적인 방법이다.한국의 근로시간 논쟁은 결국 생산성 논쟁이다. ‘법으로 시간을 줄이면 모두가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은 착각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근로시간 단축이 아니라 시간당 부가가치를 높이는 혁신이다. 이는 국가의 저출생·고령화에 대체하는 노동 존중 정책이며 경제정책이고 유일한 생존전략이다. 더 일하고 더 쉬고 더 행복해지는, 다 같이 살아가는 사회는 우리 가까이에 있다.
포럼사무국 뉴스룸
[목멱칼럼]반·차 뒤이을 숨은 수출 역군들
최은영 기자
2026.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