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밤부터 시작된 파업이 사흘째에 접어들고 있다. 당초 국민은행 연수원 농성은 23일 오후 경찰력 투입과 함께 해산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노조지도부는 경찰의 위력시위에도 불구하고 농성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23일부터 크리스마스 연휴로 접어들기는 했지만 은행파업이 이틀째 계속되면서 국민과 주택은행 점포 상당수가 문을 닫아 예금 및 인출업무가 중단되는 등 고객 불편과 파업에 따른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금융노조는 정부가 국민,주택 합병문제를 노사간의 자율협의로 추진한다는 노정합의에도 불구하고 15시간만에 양 은행장에 의해 전격 합병선언이 이뤄진 것은 정부의 입김에 따른 것으로 규정하고 28일 총파업에 나선다는 입장이어서 향후 파장이 간단치 않을 전망이다.
◇파업·농성, 언제까지 갈까 = 국민은행 연수원에서의 농성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지만 오래가기는 힘들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먼저 농성 이틀째에 접어들면서 국민은행 연수원의 상황이 점차 한계점으로 치닫고 있어 이곳에서의 농성지속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수용능력 300명에 불과한 연수원에 1만명이상의 직원들이 만 이틀이상 머물면서 의식주 해결이 애로를 겪고 있다. 물품반입은 꾸준히 이뤄지고 있지만 외부로의 유일한 통로인 정문은 인력이탈을 막기위해 노조 사수대가 지키고 있어 농성을 장기적으로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한계를 넘은 수용능력외에도 추운 날씨, 크리스마스 연휴 등이 장기농성에 애로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농성은 풀더라도 파업은 28일 총파업때까지 연결시킨다는 것이 노조측 생각이다. 한 관계자는 "굳이 연수원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면서 "명동 등에 모여서 우리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도 좋지만 집에 있으면서라도 파업상황을 유지하면 된다"고 말했다.
23일 경찰력 투입이 임박한 상황에서 노조지도부가 "연수원 농성 성공적 마무리-26일 오전 9시 명동성당 재집결 지시"를 내린 것도 물리적 충돌없이 파업상황은 계속 이끌어 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명동성당은 당초부터 금융노조 지도부가 농성장소로 찍었던 곳. 하지만 한통노조가 미리 자리를 차지함에 따라 시위효과가 다소 떨어지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국민은행 일산연수원을 농성장소로 택했다.
이 같은 상황인식을 감안할 때 농성은 풀더라도 파업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공권력 투입으로 노조지도부가 와해되거나 대부분의 노조원들이 합병상황을 수용, 직장으로 복귀하지 않는 한 파업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노정합의를 통해 공을 은행과 노사자율로 넘겨버렸고 은행장들은 기습적으로 합병을 선언, 이제는 물러서기가 어려운 상황까지 왔다는 점에서 협상이나 타협을 통한 파업철회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
과거와 비교해 정부와 은행 사측의 상황이 더욱 나빠진 부분은 노조원만이 아니라 차장,팀장, 심지어 일부 지점장급 간부들도 합병추진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98년과 지난 7월 파업과 비교할 때 파업기간이 오래 지속된다는 점도 좋지않은 조짐이다.
결국 변수는 공권력 투입으로 보인다.국민,주택의 파업상황을 그대로 유지해 28일 총파업으로 연결될 경우 정부도 난감한 상황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연말까지로 약속한 금융·기업구조조정 약속이 물건너 가는 것은 물론 2월까지 마무리짓기로 한 공공·노동개혁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이는 현 정권 후반기 정국운영 구상에도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다.
정부 한 관계자는 "대표적인 화이트칼라 노조인 은행노조에 밀릴 경우 공기업노조의 반발을 어떻게 해결하겠느냐"며 은행 총파업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신용경색으로 가뜩이나 기업들의 자금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파업에 따른 자금대란이 올 수도 있다.
따라서 농성이나 파업상황을 풀기위해 정부가 조만간 공권력을 투입할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 23일 오후 투입이 일단 무삼됨에 따라 다음 시기는 24일중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권력 투입과 노조원 해산이 파업 가능성을 완전 차단하지는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파업 장기화 또는 총파업, 파장은 = 당장 예상되는 문제점은 거래고객과 기업들의 자금난이다. 2만명의 직원중 상당수가 농성장에 집결함에 따라 국민과 주택의 금융업무는 거의 마비상태에 빠졌다. 게다가 상황은 자금수요가 가장 많은 연말이다.
연말과 연초에 쓸 자금의 경우 대부분 크리스마스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인출이 시작된다고 볼 때 파업의 영향력은 클 수 밖에 없다.
기업의 경우 예금인출이나 운전자금 조달 뿐만 아니라 은행이 보관하고 있는 어음(수탁어음)의 현금화가 안돼 어음대금을 지급받을 기업들이 자금난에 빠질 가능성도 높다. 은행 자금부 관계자는 "28일 이후부터는 보통 작은 지점이라도 20억~30억원의 자금이 빠져나간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이 국민, 주택뿐 아니라 다수 은행에서 이뤄진다고 가정하면 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은 클 수 밖에 없다.하지만 개인이나 거래기어 등 고객의 불편이나 손해는 결국 비난여론으로 이어져 노조의 입지를 좁히고 합당한 공권력 투입의 근거를 제공할 가능성도 높다는 점에서 이 같은 파급효과가 반드시 은행에 유리한 쪽으로 작용하는 것만은 아니다.
파업이 불러올 또 다른 문제는 우리 경제상황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각이다. 우리 경제는 IMF이후 추락한 외부의 신뢰를 그동안 지속적인 구조조정 추진으로 상당부분 회복시켜왔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약속한 금융구조조정이 노조의 파업으로 지연되고 차질을 빚는다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 그동안 쌓아온 성과를 상당부분 까먹을 가능성도 있다.
결국 총파업은 구조조정을 피할 수 있다는 이점외에 거래고객이나 국가경제에 불이익을 가져다 주는 선택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정부가 촉박하게 일정을 정하고 은행 경영진은 노조에 대한 충분한 설득없이 구조조정을 추진함에 따라 반발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간과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