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곳에 시신 나눠 버려”…월세방 살던 남자의 자백 [그해 오늘]

수원 팔달산서 발견된 봉투 속 몸통 시신
“월세방 계약한 남성 연락 안 돼” 제보
가출 신고 된 40대 피해자와 교제하던 박춘풍
“여자 문제, 생활비 등으로 싸우다 밀쳐” 진술
우발적 범행 주장했지만 ‘거짓’이었다
  • 등록 2024-12-13 오전 12:01:02

    수정 2024-12-13 오전 12:01:02

[이데일리 강소영 기자] 2014년 12월 13일, 수원 팔달산에서 발견된 여성 토막 시신 사건의 피의자 박춘봉(당시 55세·중국 동포)은 토막낸 시신을 유기한 장소가 4곳이라고 자백했다. 이날 경찰은 박춘봉을 살인, 사체손괴,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수원 팔달산 토막살인 사건 범인 박춘풍. (사진=뉴스1)
사건은 그해 12월 4일 오후 1시 3분쯤 수원시 고등동 팔달산 등산로에서 한 40대 남성 등산객이 토막 시신이 든 검은색 비닐봉지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며 드러났다.

봉지 안에는 장기 일체가 사라진 몸통 시신과 목장갑이 담겨 있었고 피를 빼는 작업이 있었던 듯 혈흔은 없었다.

시신 일부가 발견된 이곳은 사건 2년 전 인육 논란이 일었던 ‘오원춘 사건’이 발생한 지점과 불과 1.4km 떨어진 곳이었다.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또다시 일어난 토막 살인 사건으로 공포에 떨기 시작했고, 일각에서는 장기가 거의 없던 점에서 장기 매매나 인신매매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괴담이 돌기 시작했다.

경찰은 시신 발견 지점 인근을 뒤졌으나 단서를 찾지 못했고 수색 인원을 대규모로 늘려 투입해 산을 샅샅이 수색했다. 시신 조각을 찾기 위해 팔달산 인근에 설치된 CCTV 11대 가량을 확인했지만 시신이 담긴 듯한 봉지를 들고 움직이는 사람의 모습은 확인되지 않았다. 7곳이 넘는 진입로에서 누가 어디로 드나들었는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토막 시신을 부검한 결과 혈액형이 A형인 30대 여성으로 추정했다.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에도 범인과 피해자를 특정할 만한 단서는 나오지 못했고 수사가 장기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졌다.

◆ 6개의 봉투와 시민의 결정적 제보

그러다 12월 11일 오전 11시 24분쯤 경찰이 수원시 팔달구 매교동 수원천 매세교와 세천교 사이 둑방 옆 관목들과 잡초 덤불 사이에서 검은색 비닐봉지 6개를 발견했다. 봉지들은 매듭 없이 개봉된 상태였는데, 일주일 전 몸통이 발견된 곳에서 약 1.2km 떨어진 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 안에는 살점과 장기가 들어 있었으며 한 봉지에는 여성의 속옷이 함께 있었다. 국과수에서는 해당 살점과 장기들을 피해자의 것이라고 밝혀냈다.

경찰이 A형인 여성 미귀가자와 실종자를 중심으로 DNA 채취에 나섰을 때쯤 시민의 결정적 제보로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피해자 김모(48세)씨의 언니가 12월 8일 밤 한 파출소를 찾아 실종된 김 씨를 찾기 위해 가출신고를 한 것. 경찰은 사건과 관련성을 확인하기 위해 다음 날 김 씨 언니의 DNA를 채취해 국과수에 의뢰했고 팔달산에서 발견된 토막 시신과 DNA가 일치한 것을 알아냈다.

박춘풍이 경찰과 동행한 현장검증에서 시신을 유기하는 장면을 재연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TV)
김 씨는 중국 국적의 조선족 남성 박춘풍과 교제하는 사이였다. 월세방을 계약한 박춘풍이 보름 동안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집주인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그를 용의자로 특정하고 박춘풍의 반지하 월세방으로 출동했다. 월세방은 토막 시신이 최초로 발견된 팔달산 등산로와 직선거리로 약 1.1㎞ 떨어져 있었다.

박춘풍은 사건 발생 10일 전 모 부동산을 통해 현금 20만 원을 주고 해당 월세방을 가계약한 뒤 시신을 처리하고 종적을 감췄다. 경찰의 현장 감식 결과 화장실에서 혈액 양성 반응이 나왔으며 토막 시신 유기에 사용한 것과 같은 비닐봉지 40여 개, 장갑, 세제 등이 나왔다.

증거가 확보된 이상 박춘풍을 검거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휴대전화 추적으로 위치를 파악한 뒤 당일 오후 11시 30분쯤 수원시 고등동 S모텔에 한 여성과 투숙하러 들어가는 박춘풍을 긴급체포했다.

◆ 박춘풍, 우발적 사고 주장했지만 ‘무기징역’

박춘풍은 중국 옌지 출신으로 2008년 12월 가명으로 여권을 위조한 뒤 방문 취업 비자로 불법 입국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족이 많은 수원 구도심에 주로 거주하며 경기도 일대에서 막노동을 해왔으며 가명을 여러 개 쓰는 등 신분을 속였다.

체포된 박춘풍은 “(김 씨와) 말다툼을 벌이다 밀쳤는데 벽에 부딪히며 쓰러져 숨졌다”며 우발적 사고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진술은 거짓이었다. 경찰이 이후 찾아낸 김 씨의 머리 부분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해 부검한 결과 목이 졸려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춘풍은 여자관계와 생활비 지원 등 문제로 김 씨와 다툼이 잦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박춘풍의 자백을 바탕으로 김 씨의 시신을 대부분 수습했다. 그리고 12월 13일 수원에서 남서쪽으로 5.2㎞ 떨어진 야산에서 비닐봉지에 든 머리, 왼쪽 팔, 장기 등을 발견했다. 처음 몸통이 발견된 팔달산 산책로로부터 360m 떨어진 지점에서 50㎝ 깊이로 파묻힌 오른쪽 다리도 찾아냈다.

하지만 아직까지 김 씨의 오른쪽 팔과 왼쪽 다리 등 시신의 일부는 아직 수습하지 못했다.

이듬해 6월 30일 수원지방법원은 박춘풍의 살인 혐의에 대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박춘풍과 검사 측이 각기 다른 이유로 항소했으나 2심에서 이를 모두 기각했고, 박춘풍이 형이 무겁다며 상고했으나 대법원이 기각하며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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