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떠들썩했던 올해 1월이 지나고 2월이 왔습니다. 1월 뉴욕 증시는 암울했습니다. 대형주 중심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1월 한달간 5.26% 하락했습니다. 12% 이상 폭락한 2020년 3월 이후 최대 낙폭입니다. 1월 마지막 2거래일 때 반등하지 않았다면 낙폭은 더 컸을 겁니다. 특히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 지수는 8.98% 급락했습니다. 2월 첫 거래일인 1일(현지시간) 주요 지수는 소폭 상승했지만, 장중 분위기를 보면 보합 속 눈치보기 장세였다는 게 더 적절한 분석입니다.
채권시장 주목도 높아진 월가
정신없이 롤러코스터를 탔던 1월을 한 번 찬찬히 돌아보지요. 시장이 흔들린 건 연방준비제도(Fed)의 급격한 긴축 의지 때문이었는데요. 이게 가장 잘 나타난 게 뉴욕채권시장이었습니다.
월가의 한 채권 어드바이저는 “요즘 월가의 화두는 단연 채권수익률곡선(일드커브)”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드커브는 만기 기간 차이에 따라 달라지는 채권 수익률의 변동을 나타냅니다. 장단기 금리 차이가 작아지면 곡선은 편평한 형태(커브 플래트닝·yield curve flattening)를 띱니다. 당장 눈앞보다 먼 미래의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높은 게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예컨대 10년 후에도 경기가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으로 장기금리가 낮아진다면, 다시 말해 경기 불확실성이 커져 초안전자산으로 불리는 미국 장기국채 수요가 커진다면 그 차이는 좁혀지겠지요. 시장은 이를 ‘커브가 눕는다’고 표현합니다. 이는 곧 경기 둔화 혹은 침체의 전조로 받아들여집니다. 반대의 경우 일드커브는 가파른 형태(커브 스티프닝·yield curve steepening)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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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일드커브는 급격하게 편평해졌습니다. 글로벌 장기시장금리 벤치마크인 미국 10년물 국채금리와 연준 통화정책에 민감한 미국 2년물 국채금리의 차이는 1월 초만 해도 0.9%포인트에 육박했습니다. 그런데 이날 그 차이는 0.63%포인트까지 좁혀졌습니다. 연초만 해도 0.7%였던 2년물 금리는 높게는 1.2%대까지 급등했고요. 10년물 금리는 1.6%대에서 1.8%대로 오르는데 그쳤습니다. 이 인사는 “요 며칠새 10년물은 1.8%를 기점으로 해서 매수가 조금씩 들어온다”고 말했습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대표적입니다. 블랙록의 웨이 리 글로벌 최고투자전략가는 이날 메모를 통해 “우리는 미국 국채에 대한 비중 축소(underweight)를 줄였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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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히 눕는 일드커브의 함의
채권시장 참가자들의 시각의 총화인 일드커브는 어떤 경제 지표보다 예측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 지난 2년간 다소 잠잠했지요. 일드커브가 다시 주목 받는 건 이유가 있을 텐데요. 첫 손에 꼽히는 게 연준의 테이퍼링(채권 매입 축소)입니다. 연준은 그동안 월 800억달러씩 기계적으로 국채를 사들였고요. 이 때문에 일드커브에 녹아 있는 시장 참가자들의 신호는 가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준의 테이퍼링은 곧 끝나지요. 이제 채권시장의 시간이 도래하는 겁니다.
많은 월가 빅샷들은 이미 일드커브를 입에 올리고 있습니다. 지난 <월가브리핑>에서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의 언급을 소개해 드렸지요. 핑크 회장은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단기금리가 2.5%로 상승한다면, 이게 장기금리에 어떤 영향을 마칠지가 지금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며 커브 플래트닝을 넘어 장단기 금리 역전 가능성까지 전망했습니다. 그러니까 2년물 금리가 10년물 금리보다 높아질 수 있다는 겁니다.
헤지펀드의 전설인 억만장자 투자자 스탠리 드러켄밀러는 비슷한 주장을 했습니다. 그는 최근 CNBC와 만나 “(연준이 채권 매입을 줄이는 건) 투자자들이 다시 한 번 채권시장을 유용한 경제 신호로 사용할 수 있음을 뜻한다”며 “우리는 채권시장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단기금리 상승에 따른 커브 플래트닝을 그는 주시하고 있을 겁니다.
‘신채권왕’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캐피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11일 자사의 토털리턴 펀드 투자자 대상 화상 대담을 했는데요. 기자 역시 현장에 함께 하며 그의 혜안을 들었습니다. 그의 언급 중 눈에 띄었던 건 “채권시장이 ‘너무 걱정하지마(Don’t worry, Be happy)’ 신호를 더 이상 보내지 않고 있다”고 강조한 점이었습니다. 그는 “일드커브가 매우 평탄해지고 있다”며 “경기 침체 압력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상적인 우상향 일드커브가 점차 눕고 있다는 뜻입니다.
건들락 CEO는 더 나아가 “연준이 기준금리를 4번만 올려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연준이 인플레이션 탓에 긴축 속도를 높여야 하지만, 그럴 경우 미국 경제가 긴축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침체가 심화할 것이라는 겁니다. 연준이 진퇴양난에 빠졌다는 것이지요. 건들락 CEO가 대담했을 당시 월가의 컨센서스는 3~4회 인상이었습니다. 지금은 많게는 7회까지 높아져 있지요. 그의 지적이 점차 맞아들어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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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드커브 평탄화의 증시 여파
중요한 건 일드커브의 급격한 평탄화가 증시에 미치는 영향일 겁니다. 웨이 리 전략가는 “연준은 이번 통화정책 정상화를 2015년 이전에 비유한다”며 “이런 논리는 연준으로 하여금 매우 강한 긴축을 하게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곧 단기금리가 예상보다 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는 “연준이 (부작용이 큰 가파른 긴축에서) 결국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시장은 지금 험난한 여정(bumpy ride)에 대비하고 있다”고 예측했습니다.
웨이 리 전략가가 몸담고 있는 블랙록이 올해 내건 투자 테마 3가지 중 첫번째가 ‘인플레이션과 함께 살아가기(Living with inflation)’입니다. 핑크 회장은 “우리는 인플레이션과 함께 살면서 적응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이는 증시는 더 하락해야 함을 뜻한다”고 말했습니다.
드러켄밀러는 어떨까요. 그가 자체적으로 지난 금융시장 역사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유의미한 약세장(meaningful bear markets)의 계기는 크게 2가지인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하나는 금리 상승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전쟁 발발입니다. 공교롭게도 이번에는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겹쳐져 있네요. 건들락 CEO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채권시장이 보내는 침체 신호를 근거로 “(주식을 비롯한) 위험 자산과 더 나아가 경제 전반에 역풍이 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월가의 한 뮤추얼펀드에서 일하는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증시 전망을 둘러싼 견해는 여전히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연준이 어느 정도로 긴축에 나설지 아직도 불분명하다”고 토로했습니다. 월가 최고 전략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마르코 콜라노비치 JP모건체이스 수석시장전략가는 △더 적은 기준금리 인상 전망 △주요 기업 실적 호조 △견조한 미국 경제 성장세 등을 이유로 여전히 저가 매수를 외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강세론자인 야데니 리서치의 에드 야데니 대표는 이날 CNBC와 인터뷰에서 “시장은 침체를 야기하지 않는 한 긴축적인 통화정책에서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월가 내에는 이같은 강세론자들이 적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연준의 테이퍼링 종료와 함께 채권시장이 주는 신호는 더 명확해졌다는 겁니다. 앞으로 일드커브가 어떻게 움직일지 집중하면서 투자 전략을 세우는 게 하나의 방법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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