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고위 임원들이 최근 국회와 야당을 찾아 반도체특별법에 ‘주 52시간 예외’ 조항을 포함시켜 달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노동계 반발을 의식해 주 52시간 예외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가운데 보조금·세제 혜택 내용만 담은 법의 처리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여야는 26일 소관 상임위원회의 법안 소위를 열고 이견을 조율할 예정이지만 현재대로라면 연구개발(R&D) 인력에 대한 주 52시간 예외가 물거품이 될 전망이다. 반도체업계가 초격차기술 개발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매달렸던 핵심 내용은 빠진 채 포장만 번듯한 특별법이 국회 문턱을 넘게 된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에게는 글로벌 반도체 전쟁의 포성과 한국 반도체의 위기 사이렌이 들리지 않는지 의문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의 정치인들이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의 절규를 “특혜”라며 뿌리칠 만큼 한가한 때가 아니어서다. 10여 년 전 만 해도 대만에 공포의 대상이었던 삼성전자는 최근 모리스 창 TSMC 창업자로부터 “기술력에 문제가 있다”는 조롱성 지적까지 들었다. 차세대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건 TSMC가 R&D를 하루 24시간 체제로 풀가동하며 세계 1위에 오르는 동안 삼성은 주 52시간 족쇄와 정치 외풍 등에 발목잡혔던 탓이다.
주 52시간에 갇힌 한국 반도체의 낙오는 필연적 결과다. 더 나쁜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현장 임직원들 사이에서는 30분만 더하면 끝낼 수 있었는데 장비가 자동으로 꺼져 다음 날 다시 2시간 동안 세팅해야 했다는 등 기막힌 사연이 하나둘이 아니다. 밤을 새워가며 일하는 다른 나라의 두뇌들과 이런 상태로 기술 경쟁을 벌일 수 있을까. 부지런함이 사라진데다 인재 부족과 두뇌 유출까지 겹쳐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다는 공학한림원의 진단에 틀린 곳이 없다.
먹고사는 게 중요하다며 내건 ‘먹사니즘’이 진심이라면 야당 의원들도 시각을 바꿔야 한다. 중국 반도체의 추격과 대만 벽에 갇힌 한국 반도체의 살길은 주 52시간 족쇄를 풀어 연구실 불을 밤새 밝히고 기술 개발에 온 힘을 쏟는 것뿐이다. 세계를 호령했던 일본 반도체가 클린룸에서 채소나 키우는 신세로 전락한 것이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