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해우소] “전태일의 유산, 근로기준법 여전히 유명무실”

직장인 40% “근로기준법 여전히 지켜지지 않는다”
불법 악용하는 사업주들도 생겨나…작은 회사는 더 취약
  • 등록 2020-10-10 오전 6:00:00

    수정 2020-10-10 오전 6:00:00

[이데일리 황효원 기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7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 전태일 동상 앞에서 열린 전태일 50주기 캠페인에서 한 참석자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내달 13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를 외치며 분신 사망한 고 전태일 열사의 50주기다. 하지만 한국인 노동자 상당수는 여전히 이 법이 제대로 준수되지 않는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직장인 10명 중 4명은 여전히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특히 근기법이 안 지켜지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정규직(34.7%)보다 비정규직(47.8%)이 높았다. 또 월급이 500만원을 넘긴 고소득 집단(26.4%)보다 월급 150만원 이하 저소득 집단(41.2%)에서 근기법이 준수되지 않고 있다는 응답이 많았다.

‘유명무실’ 근기법, 지켜지지 않는 주된 이유로 ‘노동시간 미보장’, ‘임금 체불’ 순

일터에서 근기법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고 답한 이들이 꼽은 주된 이유는 ‘노동시간·휴가 미보장’(51%)였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계약직으로 근무했지만 “당장 그만두라”는 상사에 의해 부당해고를 당하거나, 미용실에서 주60시간씩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일한 경우다. 계약서상 프리랜서기 때문에 임금체불 구제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신고돼 있어 연차수당·야간수당을 받지 못하는 등 사실상 근기법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은 평균보다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 2016년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8254원으로 전체 평균(1만 3456원)의 60% 수준으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10명 중 7명은 비정규직이다.

여기에 5인 미만 사업장이 근로기준법상 예외가 되다 보니 이를 악용해 허위로 5인 미만 사업장인 것처럼 꾸며 등록하는 사업주들도 있다. 사업장을 여러 개로 쪼개 허위 신고하거나, 5인 이상임에도 4명에게만 4대 보험을 가입시키는 등의 편법까지 생겨났다.

다음으로는 ‘임금, 연장·야간·휴일 수당, 퇴직금 등 체불’(48%)이 뒤를 이었다. 모성보호(임산부 노동시간 제한, 보건휴가, 산전후휴가, 육아휴직)나 직장 내 괴롭힘 금지 등이 잘 준수되지 않는다고 답한 응답자 비율도 각각 32.8%와 32.5%로 높았다.

전태일 외침 50주년 흘렀지만…“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 보장해야”

특히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로 1월부터 7월까지 임금체불액은 약 9800억 원에 이른다. 임금 체불액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억원이 늘었다. 작은 사업장 일수록 취약한 구조인데, 규모가 큰 기업은 임금체불 이후 구조조정과 정리해고가 이어졌다. 단체에 따르면 약 10명 중 1명이 임금을 못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아울러 현 정부 3년간 노동자의 삶과 처우가 개선됐는지를 물었더니 51%가 부정적인 인식을 보였다. 비정규직과 프리랜서, 특수고용노동자에게서 부정적 인식이 더 많았다. 학교나 직장에서 근로기준법을 배워본 적이 있다고 답한 노동자는 31.4%에 불과했다. 전체 응답자의 91.6%가 학교에서부터 근로기준법을 교육해야 한다고 답했다.

공공기관은 64.7%가 개선됐다고 응답한 반면 5인 미만 사업장은 57.2%가 개선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노동 처우 인식에는 세대간 차이도 드러났다. 개선되지 않았다는 응답은 20대(53.9%), 노조 없음(53.5%), 비사무직(56.2%), 150만원 미만(55.6%)에서 더 높았다.

직장갑질119는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열사가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산화했다”며 “50년이 지난 오늘 비정규직, 5인 미만, 프리랜서, 저임금노동자, 20대 청년 등 일터의 약자들은 근기법도 지켜지지 않는 일터에서 기계처럼 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단체는 “‘21세기 시다’인 비정규직에게 근로기준법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며 “근로감독청 설치와 감독관 증원으로 노동법의 실효성을 높이고 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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