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수 환경칼럼니스트]유난히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여름의 더위야 매년 겪는 일이지만 지난여름은 유별났다.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나도 더위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급기야 한가위 추석에도 폭염 경보가 이어지면서 ‘추석’(秋夕)이 아닌 ‘하석’(夏夕)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선선한 가을바람에 보름달을 배경으로 맞는 추석이 아니라 열대야 속에 맞는 한여름 밤의 하석이 된 셈이다. 계절은 요란한 비로 전국을 물바다로 만드는 소란을 치르
고 나서야 겨우 제자리를 찾았다. 일부 사람들은 기후변화에 맞게 추석도 음력이 아닌 양력 10월로 바꾸자는 주장도 제기한다. 이런 변화는 기후변화가 더 이상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임을 말해준다.
전문가들은 폭염의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지목한다. 기후변화는 날씨가 단순히 변덕을 부리는 게 아니라 지구의 오랜 날씨 패턴이 변하고 있다는 의미다. 날씨를 기분에, 기후를 성격에 비유해 보자면 최근의 기후변화는 마치 오랜 친구의 성격이 갑자기 변한 것처럼 우리를 당황스럽게 한다.
기후변화라고 하는 다소 복잡한 개념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최근 유행하고 있는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 성격 검사를 떠올려 볼 수 있을 듯하다. MBTI는 사람의 성격을 네 가지 지표로 분류하고 개인의 성격은 타고난 기질과 환경 요인에 의해 정해진다고 본다. 사람의 MBTI가 본래 타고난 성격에 환경이 더해져 형성되듯이 지구의 기후 역시 본래의 기후에 인간 활동과 자연환경이 더해져 변화한다는 점에서 이 둘은 서로 닮았다. 지구의 MBTI, 즉 기후가 변화한 이유에 대해 다양한 주장이 있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인류의 지나친 화석연료 사용이 원인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이제는 전문가뿐만 아니라 많은 일반인도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더위를 피하는 방법은 여전히 에어컨을 켜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워낙 복잡하고 거대한 문제라서 개인의 역할이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주체로 개인 대신 국제기구나 기업을 지목한다. 국제기구와 기업이 기후변화 대응에 앞장서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변화를 촉발할 수 있는 원동력은 결국 개인이다. 개인의 친환경 소비 패턴과 생활습관은 그들을 압박하는 힘이 된다. 비록 개인의 노력이 즉각적인 성과를 가져오지는 못하더라도 미래의 큰 변화를 일으키는 나비의 날갯짓이 될 수 있다.
우리가 기후변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기온이 올라가는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후변화는 지구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람의 성격이 바뀌면 일상에서의 행동이 달라지고 주변 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기후가 변화하면 날씨 패턴이 달라지고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가 영향을 받는다. 지구의 성격이 괴팍해진 원인이 인류에게 있다면 그 성격을 되돌리는 것도 인류의 몫이다. 우리가 기후변화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MBTI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묻는 일은 일상적인 대화가 되었다. MBTI를 알면 상대방의 성향이나 사고방식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그걸 토대로 상대방과 더 잘 소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지구에도 MBTI를 물어야 할 때다. 지구의 성격이 바뀐 원인이 우리에게 있고 그 성격을 되돌릴 책임 또한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인간의 무관심과 무분별한 행동으로 인해 상처받은 지구의 마음을 달래줘야 한다. 지난여름의 폭염은 지구가 우리에게 보낸 ‘나 화낼 거야’라는 경고였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름에 맞는 추석을 보내면서 ‘하석’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났다. 이는 어쩌면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지구의 경고를 받아들이고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지구의 ‘기분’을 조금씩 풀어주는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열대야의 ‘하석’이 아닌 선선한 가을바람과 함께하는 진정한 ‘추석’을 누릴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