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한국 정책당국이 국내 상황만 보고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세계 경제를 이끄는 선진국들의 움직임에 답안지가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국은행 통화정책은 사실상 미국과 같이 가는 영역이다. 재정이라고 다르지 않다. 정부는 주요국 재정정책의 굵직한 흐름을 일단 예의주시해야 한다. 선진국들이 투입하는 돈에 따라 세계 산업 지도가 달라져서다.
특정 산업에 정부 보조금을 주는 것은 언제나 논란과 논쟁이 있다. △다른 산업군에 대한 역차별 △인센티브 구조를 바꾸는데 따른 시장 왜곡 △특정 분야 과잉 투자 등이다.
그럼에도 요즘 한국 각계에서 반도체 보조금 목소리가 쏟아지는 것은 이유가 있다. 만약 미국, 일본, 중국, 유럽 등이 수십조원 단위의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투입하지 않았다면, 한국 역시 관련 논쟁이 필요 없었을지 모른다. 원칙적으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스스로 자금을 조달해 투자하는 게 맞는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가안보상 반도체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선진국들이 돈을 쏟아붓고 있고, 한국 기업들은 생산·연구시설 이전의 유인을 받고 있다.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수조원을 더 도와준다는데, 애국심을 이유로 마다할 이가 있을까. 안타깝지만 이게 현실이다. 자동차와 함께 한국 경제를 이끌다시피 하는 반도체가 하나둘 한국을 떠나면 그 후폭풍은 쉬이 가늠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발표한 26조원 반도체 지원 패키지는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 재정 현실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최선을 다한 것과 국제사회가 어떻게 볼지는 별개의 문제다.
한 반도체 전문가는 “한국도 직접 보조금까지 검토한다는 움직임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만, 네덜란드가 보조금을 주는 마당에 한국 경제의 생사를 건다면 못 할 일이 아니다. 정부와 국회가 반도체 문제만큼은 초당적으로, 전향적으로 나서길 바란다.
| (그래픽=이미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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