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재청구에도…김태한 삼바 대표 구속영장 `두번째 기각`

영장기각에 분식회계 검찰수사 차질 전망
신병확보 실패…법원, `분식회계` 첫 판단
물산합병 주도한 미전실 최지성 前부회장
`승계정점` 이재용 부회장 소환도 `안개 속`
  • 등록 2019-07-20 오전 4:08:37

    수정 2019-07-20 오전 4:34:24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와 최고재무책임자(CFO) 김동중 전무, 재경팀장 심모 상무가 지난 1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박일경 기자] 4조5000억원대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를 받는 김태한(62)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성바이오) 대표이사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김 대표와 함께 검찰이 지난 16일 구속영장을 청구한 최고재무책임자(CFO) 김동중(54) 전무, 재경팀장 심모(51) 상무에 대해서도 법원은 영장을 기각했다.

명재권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0일 새벽 2시30분께 김 대표와 김 전무·심 상무 등 삼성바이오 임원 3명의 구속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검사 출신인 명 부장판사는 “주요 범죄 성부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기각 이유를 설명했다. 이미 증거가 수집돼 있고 주거 및 가족관계가 일정해 도주 우려가 없다는 점도 고려됐다.

특히 김 전무에 대해선 수사에 임하는 태도를, 심 상무의 경우 피의자의 지위와 관여 정도를 각각 봤을 때 구속까지는 힘들다고 법원은 밝혔다. 이로써 삼성바이오 임원 3명은 곧바로 대기 중이던 서울구치소를 나와 귀가했다.

김 대표는 전날(19일) 9시간 넘게 계속된 영장실질심사 내내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 측은 합작사 바이오젠의 주식매수청구권(콜옵션) 행사 가능성이 커진 데 따른 적법한 회계처리였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설령 회계처리에 일부 미비함이 있었더라도 이에 관여한 바가 없다는 주장을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신병 확보에 실패한 검찰은 향후 수사에서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 등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객관적인 증거나 진술 등의 보강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의 `정점`까지 다다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윤석열 차기 검찰총장 취임 후 예정된 검찰 간부 인사로 지휘라인이 교체되기 전까지 최대한 속도를 내 수사를 진행한다는 게 당초 수사팀의 계획이었다.

8개월 동안 벌인 수사에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검찰은 애초 수사가 무리한 게 아니었냐는 비판을 감수해야 할 처지가 됐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및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문제와 맞닿아 있는 까닭에 이 부회장 등 수사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검찰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당시 삼성그룹 `컨트롤 타워` 역할을 했던 미래전략실(미전실) 최지성 전 부회장조차 전혀 조사하지 않은 상태다. 이 부회장 소환 시기는 최 전 부회장 조사를 마치고 난 뒤로 보이는데 일본의 무역보복 등 대외 경제환경이 녹록치 않아 상당히 미뤄질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가 지난 1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반드시 구속” 부담감 컸나…`별건 수사` 논란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에서 증거인멸 지시 혐의가 아닌 분식회계 혐의를 적용한 것은 처음이어서 법원 판단에 이목이 쏠렸다. 앞서 삼성 임직원 8명이 증거인멸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되기는 했지만 김 대표 등에게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에 관한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법원의 사실상 첫 판단이 나왔다.

김 대표의 영장실질심사는 두 번째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송경호)는 지난 5월 22일 삼성바이오와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삼성에피스)의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로 김 대표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같은 날 25일 송경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증거인멸 교사 혐의로 청구된 김 대표의 구속영장을 “증거인멸교사의 공동정범 성립 여부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다”며 기각했다.

이후 검찰은 증거인멸 혐의를 보강 수사하고 사건의 본류에 해당하는 삼성바이오의 고의 분식회계 의혹과 연관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위반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감법) 위반 △증거인멸교사 등의 혐의 외에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를 새로 포함시켰다. 적용된 혐의만 4개다.

특히 김 대표에 대한 횡령 혐의가 검찰 수사의 본류인 분식회계 의혹과는 상관없는 `별건 수사`라는 논란이 제기된다. 김 대표의 신병확보에 한 차례 실패한 검찰이 반드시 구속시키기 위해 본류 수사인 분식회계 혐의와는 거리가 있음에도 비난을 감수하고 검찰 수사에서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온 `별건 수사`마저 불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여론 악화가 우려된다.

`특수통`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검찰이 지난해 12월 삼성바이오와 삼성물산 압수수색 뒤 수사 8개월째에 접어들었지만 수사의 본류인 분식회계 의혹과 관련해서 아직 결과를 내놓지 못했던 게 사실”이라며 “근래 재계를 중심으로 삼성바이오에 대한 분식회계 혐의 적용 자체가 무리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자 수사 동력이 상실되지 않을까하는 염려에서 오는 부담감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이데일리 이동훈 기자)


檢 “기각 이해 어렵다”…추가수사 후 재청구

검찰에 따르면 김 대표 등은 2015년 말 삼성바이오가 삼성에피스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했다며 종속회사(단독지배)에서 관계회사(공동지배)로 회계처리 기준을 바꿔 장부상 회사 가치를 4조5000억원 늘린 혐의(자본시장법 위반 등)를 받는다. 검찰은 삼성바이오가 2014년 회계처리 당시 합작사 바이오젠의 콜옵션으로 인한 부채를 감췄고 2016~2017년에도 종전 분식회계를 정당화하고자 삼성에피스 회사 가치를 부풀리는 분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에피스 분식이 결국 2015년 9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출범한 통합 삼성물산의 분식회계로 이어졌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검찰은 2016년 11월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 역시 거짓 재무제표로 이뤄진 만큼 위법하다고 보고 구속영장에 김 대표 등의 범죄사실로 적시했다. 김 대표는 상장된 삼성바이오 주식을 개인적으로 사들이면서 매입비용과 우리사주조합 공모가의 차액을 현금으로 받아내는 방식으로 30억원대의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도 추가됐다. 이 과정에서 김 대표의 횡령행위를 미전실이 알고도 묵인한 정황이 나타나고 있다.

김 대표가 2016~2017년 사이 100억원 상당의 자사주를 매입하고 이 중 38억원 가량을 코스피 시장 상장에 기여했다는 명목으로 회사로부터 돌려받았는데 이것이 횡령이라는 설명이다. 검찰은 김 대표가 회사에서 받아간 돈이 수년에 걸쳐 비정상적으로 회계처리됐고 이사회 등 정식 상여금 지급 절차를 밟지 않은 것을 횡령의 근거로 삼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의 변호인은 횡령 혐의에 대해 “회사 성장 기여에 대한 정당한 성과급”이라며 “주주총회 의결 등을 거쳐 임원 보수 한도를 늘려 적법하게 지급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쳤다.

(사진=연합뉴스)


삼성바이오 재무를 총괄하는 김 전무는 전날 영장심사에서 “자본잠식을 피하기 위해 2015년 회계처리 방식을 변경했고 2016년 이후에도 부풀린 삼성에피스 사업계획을 회계사에게 건네 재무제표에 반영하도록 했다”며 사실관계를 대체로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14년과 2015년도 삼성바이오 회계 처리에 위법한 부분이 있고 2016년과 2017년에도 조작된 사업계획을 바탕으로 작성된 회계법인 보고서를 삼성바이오 재무제표에 반영했다고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대표의 변호인은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김 대표는 엔지니어 출신”이라며 “회계 처리는 기본적으로 CFO의 영역”이라고 항변했다. 반면 김 전무는 김 대표에게 회계처리 과정 전부를 보고·승인받았다는 입장이어서 “김 전무가 알아서 한 것”이라는 김 대표 측 진술과 엇갈린다.

검찰은 법원의 영장 기각이 결정된 직후 “혐의의 중대성, 객관적 자료 등에 의한 입증의 정도, 임직원 8명이 구속될 정도로 이미 현실화된 증거인멸, 회계법인 등 관련자들과의 허위진술 공모 등에 비춰 구속영장 기각을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반박했다. 앞으로 검찰은 추가 수사 후 구속영장 재청구 등을 검토할 계획이다.

현재 검찰은 통합 삼성물산 출범 이후 상당 기간에 걸쳐 분식회계가 이어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최근 검찰 조사에서 삼성 측 요구에 맞춰 감사보고서를 만들었다고 자백한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과 한영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들에 대해서도 추후 구속영장 청구가 이어질 전망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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