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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현지시간) 파월 의장은 국제결제은행(BIS)이 디지털뱅킹을 주제로 연 원격 패널 토론회에서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를 투기적 자산에 가깝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는 “가상화폐들은 매우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유용한 가치저장 수단이 아니다”라며 “어느 것도 가상화폐들을 뒷받침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코인 투자 열풍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평소 파월 의장의 견해를 있는 그대로 재강조한 것입니다.
코인러들의 귀에는 ‘뻔한 잔소리’에 지나지 않았을 듯합니다. 다만 한 대목에선 귀를 쫑긋 세웠을 수 있습니다. “비트코인은 달러화보다는 기본적으로 금의 대체제인 투기적 자산에 더욱 가깝다”라는 부분입니다.
한대훈 sk증권 연구원은 “파월의 발언을 들으면서 미국 정부나 연준이 그간 비트코인을 대하는 태도에 비교했을 때 진일보했다고,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느꼈다”며 “그간 가상화폐의 존재 자체를 무시해왔다면 이젠 인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습니다.
코인러들은 ‘코인이 절대 달러는 될 수 없다’는 파월의 본래 의도는 무시하고, ‘금정도로는 이제 인정해 주는구나’라며 방점을 다른 곳에 찍었습니다. 파월 의장의 발언에도 비트코인은 최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날 비트코인 한 개당 가격은 5만9000달러 안팎에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역대 최고가는 지난달 13일 6만1683달러입니다. 일명 ‘김치 프리미엄’ 현상이 나타나면서 국내 비트코인은 더 비쌉니다. 이날 업비트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이날 7900만원을 기록, 최고가를 또 썼습니다.
애꿎은 금만 하락세
파월 의장의 투자를 자제하라는 주문은 애먼 금에서 실행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플레이션 헷지 수단인 금은 최근의 물가 상승 논란에도 하향 곡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제 금 가격은 지난해 8월 6일 온스(oz)당 2070.05달러를 기록한 뒤 6일 새벽 기준 1729.42달러에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3월 말에는 1684.21달러까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다만 1600달러선이 바닥이란 진단이 나옵니다.
전규연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금은 우선 경기 침체 때 안전자산으로 지난해 코로나19 이후 가격이 크게 올랐다”며 “이외 인플레이션 헷지 수단이면서 금리 상승에 역행하는 성격을 갖는데, 이에 금리와 기대 인플레이션의 속성을 다 지닌 실질금리의 움직임을 가지고 가격 전망이 가능하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금리는 계속 오르겠지만 1분기와 같은 급격한 상승은 더는 없다는 전제하에 실질금리는 현 수준에서 크게 오르진 않을 걸로 본다”며 “1600달러선에서 하방이 지지될 것으로 예상하는데, 다만 금리 상승이 예견돼 있단 점에선 가격이 크게 오르거나 하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비트코인을 금과 비교하는 시도는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자산 중 금 대신 비트코인을 늘리려는 투자자가 늘어나고 있단 분석도 있습니다.
지난 5일 니콜라오스 파니기르초우글로우 JP모건 스트래티지스트는 “만약 금 시장에 들어와 있는 총 민간 투자만큼 비트코인 투자가 늘어난다면 그 가격은 13만달러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비트코인의 목표가격으로 제시했습니다. JP모건은 앞서 비트코인 목표가를 14만6000달러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비트코인이 금과 ‘동급’이여야 한다는 가정에 근거한 진단인 셈입니다.
JP모건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까지 약 2분기에 걸쳐 금과 관련된 상장지수펀드(ETF)들에선 70억달러의 자금이 유출됐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 글로벌 암호화폐 투자펀드 그레이스케일의 암호화폐 운용자산 규모(AUM)은 약 30억달러가 증가했습니다. 일부 투자자들이 금을 판 돈으로 비트코인을 사고 있을 걸로도 추정되는 대목입니다.
어쩌면 파월 의장은 이미 비트코인이 금이 된다고 확신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비트코인이 금의 지위를 탈환하는 것은 못 막으니 달러라도 확실히 보호해야겠단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