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 사회는 좋든 싫든 인공지능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시대다. 누가 더 적절한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활용도는 크게 달라진다. 다만 좋은 질문을 하려면 관련 지식이 필요하다는 점이 ‘함정’이 될 수 있다. 문제해결력이나 창의력도 기초학력과 배경지식의 토대 위에서 배양된다. 앞으로는 질문하는 능력이 중요하기에 지식전달식 수업이나 학력 진단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은 성립하기 힘들다.
얼마 전 종로학원이 전국 중학교 3200여곳의 학업성취도를 분석해봤더니 중학생의 35.2%가 ‘예비 수포자(수학 포기자)’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 셋 중 하나 이상이 내신 최저 등급에 해당하는 E등급(60점 미만)을 받은 것이다.
현재 초등학교에서는 지필고사가 사라진 지 오래다. 중학교에 올라와서도 1학년은 자유학년제로 시간을 보내고 2~3학년 때는 시험을 보더라도 절대평가를 치른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관하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는 2017년 전수평가에서 3% 표집평가로 전환됐다. 초·중학교 공교육에선 자기 학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기회가 없어진 셈이다.
학생 문해력 저하로 교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수업 진도를 나가기 어렵다는 점이다. 단어·용어 뜻을 설명해주다 보면 그만큼 수험할 시간을 뺏기기 때문이다.
정근식 서울시 교육감이 지난 17일 취임했다. 그는 취임 첫날 기자회견에서 “일제고사(전수평가) 부활은 학교 현장에는 재앙”이라며 “일제고사가 만들어지는 순간 학교들은 성적을 올리기 위해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과거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로 학교를 줄 세우던 때를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구더기 무서워 장을 담지 말아야 하는가’란 논리로 반박할 수 있다. 부작용 때문에 해야 할 정책을 피하는 꼴이 될 수 있어서다. 오히려 전수평가를 재개한 뒤 평가 결과가 학교 서열화 등에 악용되지 않게 철저히 감시하는 게 더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