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정치·행정을 배웠다고 해서 박 당선인 스스로 ‘뼈노’(뼛속부터 노무현)라고 한다.
박 당선인은 20여년 동안 해양수산부에서 쌓은 행정력과 재선 국회의원 출신의 정치력을 토대로 인천을 평화의 도시, 동북아 경제·교통·문화 중심도시로 육성할 계획이다.
|
박 당선인은 1959년 7월2일 인천시 중구 송월동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한국전쟁 때 북한에서 인천으로 피난을 와 과일장사를 시작했고 아버지는 인천 미8군 항만사령부 군무원이었다.
부모의 교육열 때문에 송월초등학교에서 박문초등학교로 전학한 박 당선인은 인천 답동성당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고 자연히 신앙생활을 했다.
동산중학교 재학 때는 쪽방촌 사람들의 삶을 보고 자원봉사 활동을 하게 됐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청소년적십자회(RCY) 활동을 한 박 당선인은 고등학교에서도 활동을 이어갔고 RCY 경기도지역 중등부 회장을 맞아 농촌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는 행정고시 합격 후 1981년 해운항만청 수습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건설교통부 산하였던 해운항만청은 1998년 해양수산부 조직으로 바꼈다.
노무현 해수부 장관 제안으로 혁신작업 동참
박 당선인은 2000년 당시 노무현(전 대통령) 해양수산부 장관의 제안으로 해수부 혁신작업에 참여했다.
이때 박 당선인은 해수부 국장 승진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노무현 장관이 승진을 고사하고 총무과장을 맡아달라고 했고 이를 거절하지 못한 박 당선인은 행정혁신의 길을 함께 가게 됐다.
|
이때 노무현 대통령과 ‘사람 사는 세상’의 철학을 공유하고 이를 실현할 시스템을 배우고 경험했다. 박 당선인은 노 전 대통령의 가르침을 뼈에 새겼다며 ‘뼈노’를 강조한다.
민생을 걱정했던 국회의원
박 당선인은 청와대 근무를 마친 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 인천시 항만물류정책자문위원 등을 맡았고 2012년 19대 총선에서 인천 남동갑지역에 출마해 당선됐다.
국회의원이 된 박 당선인은 누구보다 인천과 남동구의 미래를 고민했다. 지역구인 남동구는 정치를 하기 위한 터전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하는 삶의 터전이었다. 어린 시절 남동구 도림동에서 생활했고 어머니는 여전히 간석동에서 살고 있다.
|
국회에서는 국회의원 특권 폐지 등의 성과를 인정받아 300명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4년 의정 종합평가에서 7위, 인천지역 1위라는 평가를 받았다. 국민 안전을 위한 활동에도 나서 소방안전교부세를 신설하고 국가의 안전예산을 확충하는 데 기여했다.
박남춘 당선인 약력
△1959년 인천 출생 △1977년 제물포고 졸업 △1981년 고려대 졸업 △2012~2018년 국회의원 △2016~2018년 더불어민주당 인천시당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