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부족으로 가동중단 중소기업 속출

중국 싹쓸이…원자재난 6년만에 최악
  • 등록 2004-02-29 오후 5:45:52

    수정 2004-02-29 오후 5:45:52

[조선일보 제공] 경기도 시화공단에 있는 철근 생산업체인 제일제강공업. 요즘 이곳에선 원자재나 제품을 실어나르는 트럭을 발견하기 힘들다. 이 회사는 지난 1월 말 원자재난으로 조업을 중단한 이후 아직까지 가동 재개 시기를 잡지 못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원자재인 빌레트(billet)의 가격이 1년 사이에 거의 두 배 가까이 폭등한 데다 물량조차 구하기 어려워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중국이 전 세계 원자재 시장을 싹쓸이하면서 시작된 원자재 대란(大亂)으로 국내 기업들이 잇달아 조업을 단축하는 바람에 수출 전선도 함께 무너지고 있다. 29일 기업은행이 전국 2064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원자재 조달사정이 곤란해졌다고 응답한 업체의 비율이 28.9%를 기록했다. 이는 IMF 사태를 겪었던 지난 98년 4월(25.6%) 이후 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현재 주물협동조합의 207개 회원사 가운데 40개사가 조업을 단축하거나 일부 라인 가동을 중단했다. 서병문 주물조합 이사장은 “중간 유통상들의 사재기 수요까지 가세해 조업을 줄이거나 중단하는 업체들이 잇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고철(古鐵)을 녹여 공작용 기계나 볼트·너트류를 만드는 대구 C사는 최근 공장 가동률이 30%나 떨어졌다. 고철 가격이 1년 전보다 2배가 넘는 t당 37만원까지 뛰어오른 반면, 제품 판매가는 제자리이기 때문이다. 중소 건설업계에서는 일부 현장의 공사중단 사태가 빚어지면서 ‘3월 대란설’까지 나오고 있다. 대구 H사는 대구시내 6개 아파트 사업장에서 5일째 철근 공급이 안 돼 공사를 못하고 있다. 건설사자재직협의회 최현석 회장은 “철근 수급난이 계속되면 중소 업체들의 연쇄 부도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사상 최대의 수주량을 기록한 조선업계도 원료비의 15%나 차지하는 후판(厚板·두꺼운 철판) 가격이 최근 30% 이상 급등, 대량수주에 따른 이득을 전혀 누리지 못할까봐 우려하고 있다. 국제 시장에서 중국 때문에 원자재 물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자 원자재 수입대금 결제 대금으로 어음 대신 현금을 요구하는 사례도 크게 늘고 있다. 김인규 한은 경제통계국 과장은 “원자재 가격 상승은 수출기업의 채산성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원자재난이 심각해지면서 대구시 달서구, 포항시 새마을회 등에서는 고철 모으기 행사를 벌이는 등 전국적으로 원자재 수급을 돕기 위한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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