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람이 아니라고?” 엔터계에 부는 ‘버추얼(Virtual)’ 바람

‘사이버 가수’에서 ‘버추얼 셀럽’으로
"가상 인물과 소통으로 유대감 쌓아요"
"미래는 셀럽과 로봇의 세상이 될 것"
  • 등록 2020-11-03 오전 12:05:31

    수정 2020-11-03 오전 12:05:31

"아이 카리나와 저는 싱크로 연결되어 있어요. ‘또 다른 나’죠.”

지난달 28일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이 공개한 신인 걸그룹 에스파(aespa) 티저 영상에는 진짜 멤버인 '카리나'와 그의 아바타 ‘아이 카리나’가 등장한다. 가상의 캐릭터와 실제 사람이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은 이들이 마치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듯한 생생함을 전달한다.

SM이 공개한 신인 걸그룹 에스파의 멤버 카리나(오른쪽)와 아이카리나.(사진=유튜브 캡처)


인공지능(AI)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디지털 휴먼(Digital Human, 가상인물)이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특히 엔터테인먼트산업에서는 디지털 휴먼이 새로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은 것.

지난 1990년대말 사이버 가수가 등장한 데 이어 20여년이 흐른 최근에는 실제인물과 가상인물이 함께 공존하는 시대가 됐다.

1998년 사이버가수 아담(왼쪽)과 2019년의 디지털 아이돌 정세진. (사진=유튜브, 정세진 인스타그램)


사이버 가수에서 버추얼 셀럽으로

1990년대말에 등장해던 사이버 가수는 20년이 흐른 최근 ‘버추얼 셀럽’의 모습으로 재현되고 있다.

1998년 혜성처럼 등장해 온 국민을 놀라게 했던 사이버 가수 아담의 데뷔 앨범 ‘Genesis’는 20만장 이상 판매 기록을 세웠다. 또한 아담은 음반, CF 모델 등의 활동으로 5억원의 매출을 기록할 정도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당시의 컴퓨터그래픽(CG) 기술로는 아담이 연예계 활동을 이어가는 데에 한계가 있었다. 30초가량 짧은 분량의 방송 출연에도 아담의 입모양과 움직임 등을 구현하는 데에 상당한 작업량과 제작비용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반면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가상인물의 사실적인 연출이 가능해지면서 가상 인물은 음악, 게임, 디지털 콘텐츠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다.

컴퓨터 비전 전문 회사 딥스튜디오는 지난해 정세진, 민서준, 조은현, 도영원 4명의 가상 인물을 멤버로 한 4인조 남성 디지털아이돌 그룹을 제작했다. ‘연습생 콘셉트’인 이들은 멤버별로 각각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일상 사진을 올리며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들의 SNS 게시물은 카페, 쇼핑몰, 거리 등 일상적인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마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인물이 현실 세계에 살아있는 것 같은 생생함을 연출한다.

특수 효과인 컴퓨터 생성 이미지(CGI) 기술로 제작되어 현실과 가상의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사실적인 사진에 누리꾼들은 “정말 사람이 아니라고?”, “진짜인지 헷갈린다”,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나는 당신의 팬이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가상 인물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일부 누리꾼들은 “사진 보정이 예쁘다. 보정 애플리케이션을 알려 달라”며 댓글을 적기도 한다.

"가상 인물과 소통으로 유대감 쌓아요"

1990년대 사이버 가수와 최근 등장하고 있는 버추얼 셀럽의 차이점은 ‘소통’이다.

아담이 모니터 속 가상세계에만 존재하는 일방향적인 캐릭터에 불과했다면 최근에는 가상 인물들이 현실의 대중과 직접 소통하며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고 있는 것.

디지털 아이돌 정세진은 마트에서 초콜릿을 들고 있는 사진과 함께 “하필 다이어트 중에 초콜릿을 발견했다. 이것만 먹어도 될까요?”라고 적은 게시물을 올렸다. 해당 게시물에는 팬들이 “이해한다”, “녹차맛 추천한다”, “나도 초콜릿을 달라” 등의 댓글을 적으며 가상 인물과 대화를 나눈다.

류기현 딥스튜디오 대표는 “대중들의 외로움을 달래주고자 디지털 아이돌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팬들은 각각의 디지털 아이돌이 가지고 있는 서사에 몰입하고, 캐릭터들과 소통하며 외로움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류 대표는 “팬들이 가상인물에 열광하는 이유는 실제 사람 아이돌을 좋아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유사하다”며 “아이돌이 실제 사람이든 아니든 그들을 통해 위로받을 수 있다면 좋아하는 이유로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버추얼 모델, 미국의 릴 미켈라(Lil Miquela, 왼쪽)와 일본의 임마(Imma)(사진=인스타그램)


"미래는 셀럽과 로봇의 세상이 될 것"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들은 앞으로 이러한 가상 인물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 전망한다.

지난달 28일 세계문화산업포럼(WCIF)에서 이수만 SM 총괄 프로듀서는 “우리는 격동의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거치고 있다”며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간의 생활방식에 더욱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며, 미래 세상은 셀러브리티와 로봇의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가상인물을 이용한 브랜드와의 협업이나 홀로그램 콘서트 개최 등은 미국과 일본에서는 3~4년 전부터 이미 트렌드였다”며 “앞으로 가상 인물과 팬덤이 성장함에 따라 이들의 영향력은 오프라인 현실까지 확장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가상 인물 산업은 상업적인 수익 실현을 넘어 사회공헌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냅타임 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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