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뉴욕증시 상승랠리가 버블이라고요? 지금 시장이 오르는 건 기업들이 이익 증가세를 보이고 향후 실적 전망도 양호하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달러 약세로 인해 이익이 늘어나는 효과가 크고 그 배후에는 미국 경제를 망가뜨리지 않으려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선택이 있었을 겁니다. 이 때문에 연준이 증시 버블을 만들고 있다고 비판하고 싶다면 마음대로 하세요.”
펀드매니저 출신으로 투자관련 작가로, 또 방송 투자전문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짐 크레이머는 얼마 전 자신이 미국 CNBC에서 진행하고 있는 <매드 머니(Mad Money)>라는 프로그램에서 이같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특유의 독설과 강한 어조로 유명한 그는, 바로 전날 같은 방송사의 다른 프로그램에서 “지금의 뉴욕증시는 버블 상태이니 미국 주식 투자비중을 줄여야 한다”고 경고한 제러미 그랜텀 GMO 공동설립자를 겨냥해 이렇게 반박한 겁니다. 연준은 미 경제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 결과물로서의 달러 약세가 미국 기업 이익을 늘려주고 주가 상승을 이끌고 있으니 이게 왜 버블이냐는 것이죠.
실제 주요 6개국 통화대비 달러화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3월 중순 코로나19가 팬데믹(전 세계 대유행)으로 확산되자마자 3주만에 9%나 폭등해 102.99까지 올라갔지만, 이후 미끄러져 내려왔습니다. 현재 93선 안팎이니 넉 달여만에 고점대비 10%나 폭락한 겁니다. 특히 7월 한 달간 5%나 하락하며 최근 10년만에 가장 큰 월간 하락폭을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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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건 달러화 약세가 과하다 보니 주식 외에 다른 자산 가치도 동시에 뜨고 있다는 겁니다. 달러화를 대체할 만한 투자자산으로 부각되며 금(金)이 역사상 처음으로 온스당 2000달러를 돌파했고 은(銀) 가격 또한 덩달아 급등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디지털 금`이라는 별칭을 가진 비트코인 마저 다시 1만2000달러에 육박하며 1년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이제 미국 달러화가 대세 하락국면에 진입했느냐를 두고 시장에서 논쟁까지 벌어지고 있는 형국인데요. 달러 약세가 얼마나 더 계속될 것인가를 점쳐 보려면 우선 지금까지의 달러 약세 원인을 파악해야 할텐데요. 코로나19가 미국 남부를 중심으로 재확산하면서 미국 경제 회복세가 서서히 정체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실망감이 있고 그로 인해 연준의 통화부양기조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커진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실제 최근 나타난 달러화 약세 가운데서도 미 국채금리는 오히려 역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려가 있습니다. 이는 미국 경제 성장률이 당분간 의미있는 회복세를 보이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을 반영한 것이며, 이로 인해 안전자산 선호가 여전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최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코로나19 충격으로부터 미국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정책수단을 다 쓸 수 있다”고 공언한 것이죠.
이 때문에 지난 2011년부터 이어진 유로존 재정위기에서도 분열했던 유럽 마저도 7500억유로(원화 약 1060조원)의 코로나19 경제회복기금 조성에 합의하며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마당에 미국 의회와 정치는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모두가 가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7월 한 달 동안에만 달러대비 유로 가치가 7% 급등한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인데요. 이는 유로화가 출범한 이후 월간으로 최대 상승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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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관건은 이같은 달러 약세가 얼마나 더 이어질 것인가 하는 건데요. 이는 선진국을 대변하는 주요 10개국(G10) 통화와 이머징마켓 통화로 나눠서 살펴 보는 게 유용할 듯 합니다. 일단 G10 통화대비 달러화 가치는 지난 2014~2015년 큰 폭으로 상승한 뒤 꾸준히 안정적인 흐름을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이는 주로 선진국들의 통화정책에서 기인한 건데요.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동시에 최대한의 통화완화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이같은 패턴이 유지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달러대비 유로화 환율은 최근 상승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최고치에 비해 한참 못미치지만, 무역가중 환율 기준으로는 지난 2008~2009년 고점에 거의 육박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유로화 추가 상승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더구나 실질 국내총생산(GDP) 수준으로 보면 미국은 코로나19 쇼크에도 불구하고 2008년 당시보다 10% 이상 높지만, 독일은 2008년 수준에,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그보다 20% 이상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처럼 디플레이션 리스크 측면에서 미국보다 유로존이 훨씬 더 불리하기 때문에 유로 가치 상승이 추세적으로 이어지긴 어려워 보입니다.
이머징마켓 통화대비 달러화 가치는 2014~2015년 큰 폭 상승 이후 정체되다가 작년에 10% 이상 또다시 가파르게 뛰었습니다. 작년에 국제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자원이 많은 신흥국 경제가 어려움을 겪은 탓이었는데요. 글로벌 금융위기 때만 해도 중국이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통한 부양책을 펴며 국제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렸던 반면 최근엔 인프라 투자가 없어 달러화 약세가 이머징 통화 반등에 제한적 역할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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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최근 커진 달러화에 대한 불신도 마찬가집니다. 코로나19가 절정이던 지난 3월 글로벌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품귀가 벌어졌을 때 달러화의 국제적 역할에 대한 신뢰는 더 강화됐을 겁니다. 특히 글로벌 금융시스템에서 연준의 역할을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은 뚜렷하게 각인됐을 겁니다.
결국 이를 종합할 때 달러화가 언젠가 추세적인 하락세로 돌아설 가능성은 있겠지만 지금 당장 그런 흐름이 나타날 것 같지 않습니다. 특히 최근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데이터를 봐도 달러화 하락을 부추기고 있는 투기세력들의 선물 매도 포지션이 역사상 최고 수준까지 높아져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매도가 더 늘어나기보다는 이 포지션이 서서히 차익실현에 나서면서 달러화 가치가 횡보 내지 반등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다만 달러 약세가 어느 정도 더 이어질 수 있는 건, 시장참가자들의 기대가 그 방향으로 쏠려있기 때문인데요. 기대 쏠림을 되돌리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실제 로이터가 지난달 31일부터 8월5일까지 62명의 외환시장 전략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절반이 넘는 33명이 “적어도 6개월 정도 달러화 약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특히 24명은 “1년 이상 약세가 지속될 것”으로 점쳤습니다. 반면 “달러 약세가 6개월 내에 멈출 것”이라고 답한 전문가는 15명이었고, 11명은 “3개월 이내에 멈출 것”으로 봤고, “달러가 곧 강세로 돌아설 것”으로 본 전문가는 단 3명에 그쳤습니다.
또 하나의 관심사는 달러 약세가 증시랠리를 이끄는 형국이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하는 건데요. 미국의 경우 달러화 약세가 대형 테크주를 중심으로 한 미국 다국적 기업들의 실적 개선을 도와 증시 상승세를 이끌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 달러값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뚜렷한 역(逆)의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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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약달러가 신흥국 증시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는 제한적일 겁니다. 통상 달러 가치 하락은 글로벌 경제에 대한 낙관론이 커질 때 나타나는데, 지금 상황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죠. 앞서 얘기한대로, 신흥국 내에서도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달러 약세의 수혜를 제대로 누릴 국가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최근 자금흐름에서도 잘 나타나는데요.
지난 2018년 1분기에 달러화 가치가 2.5% 하락했을 때 이머징마켓으로의 자금 순유입은 1180억달러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최근 넉 달간 달러 가치가 그 2배인 5%나 떨어졌는데도 지금까지 이머징마켓으로 순유입된 자금은 700억달러를 살짝 넘는데 그쳤습니다. 그나마 이머징마켓에 제한적으로 유입되는 자금이 한국을 찾을 수 있도록 할 수 있을지는 우리 경기 회복 모멘텀이 달려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