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과학연구소(ADD) 연구원들이 퇴직하면서 무기관련 정보를 무더기로 빼돌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국정원과 군사안보지원사령부, 경찰은 최근 ADD 고위급 연구원 60여명이 퇴직하면서 무단으로 유출한 기밀을 이용해 방산기업이나 대학, 연구소 등에 취업한 정황을 포착하고 합동 수사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수사가 집중되고 있는 20여명 가운데 대부분이 지난해 퇴직자라고 한다.
작년 개정된 공직자윤리법의 시행령이 오는 7월 발효되면 취업심사 대상이 확대되므로 그전에 서둘러 퇴사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기밀을 경쟁적으로 유출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드론, 로봇 등 최첨단 미래무기 관련자료 68만건을 유출한 경우도 드러났다. 지난해 ADD를 그만두고 어느 사립대의 인공지능(AI)연구소 책임자로 자리를 옮긴 연구원이 그 당사자라고 한다.
이번 사건은 규모와 내용에서 가히 충격적이다. 한두 명도 아니고 수십 명이, 그것도 각자마다 엄청난 정보를 빼돌렸다. 더구나 최고급 군사기밀을 다루는 연구기관에서 버젓이 자행됐다는 점에서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다. 수사가 몇 년 전 퇴직자들로 확대되고 있으므로 기밀유출 사례가 더 많이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자료를 외국에 넘겼거나 외국과 공동 개발한 기술이 유출됐다면 국제 문제로 비화할 수도 있다.
연구원들의 윤리의식이 땅바닥에 떨어졌기에 벌어진 사태다. 수사 과정에서 “기술 유출이 관행이었다”는 진술들이 나왔다니 이러고도 군사기밀을 다루는 국책연구소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이런 수준의 책임감이라면 퇴직 이후가 아니라 재직 중에도 유혹에 넘어갔을 공산이 크다. 국책연구소 전반에 대해 비슷한 사례가 없는지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자주 국방의 초석’을 기치로 1970년 출범한 ADD는 지난해까지 350종이 넘는 신무기를 개발했다. 대한민국을 ‘방산 강국’에 올려놓은 그동안의 공적이 이번 사태로 단번에 무너질 위기에 놓인 것이다. 방위산업 비리는 중형에 처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철저한 진상 규명과 함께 확실한 재발 방치책을 내놔야 한다. 그게 막대한 혈세로 무기 개발을 지원하는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