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코앞에 두고 이른바 ‘코리아 패싱’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16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자택에서 열린 당선 후 첫 기자회견장에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과 함께 나타났다. 트럼프는 손 회장이 미국에 1000억달러(약 143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며 추켜세웠다. 또한 트럼프는 이시바 시게루 총리에게 기념품과 책을 보냈다며 “취임식 전에 만나기를 바란다면 여기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이날 트럼프는 일찌감치 주일 대사도 지명했다.
트럼프는 회견에서 중국 시진핑 주석에 대해 “친구이자 놀라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여러차례 언급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선 “내가 잘 지내는 또 다른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한국을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의 ‘코리아 패싱’은 국익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워싱턴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는 16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2기가 출범하면 관세와 주한미군, 미·북 관계 등에서 패러다임을 바꾸는 큰 변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은 탄핵 혼란 속에 현재 온전히 선출된 행정부가 없기 때문에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트럼프가 취임하자마자 김정은 위원장과 회담을 추진할 경우 한국은 구경꾼으로 전락할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에게 한국의 존재감을 심는 것은 국익이 걸린 문제다. 당장 우리 기업들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칩스법에 따른 보조금 지급에 제동이 걸릴까 초긴장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달 7일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에서 “조선업에 대한 한국의 도움과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한국은 지난해 215억달러(약 30조원)로 대미 최대 투자국이 됐다. 트럼프의 관심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다른 것은 잘못하면 고칠 수 있지만 외교를 잘못하면 나라가 망하고 전쟁이 날 수도 있다”며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김대중 육성회고록’).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과 여야가 ‘코리아 패싱’ 대책에 힘을 모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