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걱정되는 학생들의 문해력

  • 등록 2024-08-01 오전 5:00:00

    수정 2024-08-01 오전 5:00:00

[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몇 년 전 학교 현장을 취재하면서 들은 일화다. 한 고교 교사가 학생에게 “이지적이다”라고 칭찬하자 해당 학생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이지(理智)’를 ‘easy’로 알아듣고 ‘내가 쉬워 보이나’라며 불만을 나타낸 것이다.

요즘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떤 과목을 가르치든 단어·한자어·용어 풀이를 병행해야 한다는 게 요즘 교사들의 토로다.

문해력은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학업의 바탕이 되는 기본 소양에 해당한다. 텍스트의 내용을 이해하고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문해력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짚고 넘어가고 싶은 교육 정책이 있다. 바로 문재인 정부 때인 2017년 도입한 교육부의 ‘한글 책임교육’이다. 한글은 초등학교 입학 후에 배워도 된다는 게 해당 정책의 도입 취지다. 입학 후 연필 잡는 법부터 가르치는 대신 한글 교육 시간을 종전 27시간에서 68시간으로 늘렸다.

문제는 초등학교 땐 국어 외에도 수학 등 다른 과목의 진도를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한글을 모르니 교과서를 읽지 못하는 아이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교사들도 “한글을 배우는 동안 교과서 내용을 읽지 못하는 학생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교육부는 선뜻 한글 책임교육을 폐지하지 못한다. 유아교육 전문가들이 “발달 단계상 유아기에 한글을 배우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탓이다.

눈치 빠른 학부모들은 초등학교 입학 전에 자녀에게 한글을 가르친다. 교사들도 주변 지인들에겐 “한글을 떼고 입학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굳이 이런 조언이 아니더라도 유아기에 한글을 배우고 입학 전 독서에 흥미를 붙인 학생이 입시에서도 성과를 내는 일은 부지기수다.

교육부가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는 내년부터가 더 걱정이다. 교육부는 디지털 교과서가 인공지능(AI)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되기에 학생 개개인의 수준별 학습이 가능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반면 학교 현장에선 학생들의 디지털 기기 의존도를 걱정하고 있다. 안 그래도 하루종일 스마트폰·태블릿에 빠져있는데 교과서마저 디지털로 바꾸느냐는 불만도 나온다. 특히 디지털 교과서 도입 이후 학생들의 독서 기피 현상이 더욱 심화할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5월 말 국회 국민동의 청원 사이트에 올라온 ‘디지털 교과서 도입 유보’ 청원에는 한 달 만에 약 5만6000명이 동의했다.

스웨덴은 2017년 우리보다 먼저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했지만 작년 8월 유치원에는 이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유아기부터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면 문해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대신 책 읽기와 글쓰기 교육을 강화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2021년 초중고 교사 1152명을 대상으로 ‘학생 문해력 저하 원인’을 설문한 결과(복수 응답) ‘영상매체 과다 노출’이 1위(73%)를, ‘독서 소홀’이 2위(54.3%)를 차지했다.

학생들을 가까이에서 지도하는 교사들의 이런 진단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영상매체에 대한 과다 노출을 줄이고 독서 교육을 강화해야 바닥까지 떨어진 문해력을 회복할 수 있다. 교육부는 디지털 교과서 도입 속도를 조절하든가 아니면 이로 인한 부작용을 완벽히 차단할 대책을 세워야 한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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