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틈새시장 공략해야…제2의 엔비디아 꿈 이룬다"

[만났습니다]ⓛ이창한 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
"엔비디아도 스타트업 시작…韓 팹리스, 美 적극 진출"
"인재·기술이 성공 관건…정부 파격지원 필요"
"韓 반도체지원책, 점수로 70점…外 투자수준 못 미쳐"
  • 등록 2024-06-11 오전 5:45:00

    수정 2024-06-11 오전 5:45:00

[이데일리 최영지 기자] “엔비디아가 이렇게 성공할 줄 누가 알았습니까. 과거 엔비디아가 그랬듯 우리나라 인공지능(AI) 기업들도 지금의 AI 시장에서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합니다. 결국 사람과 기술, 이 두 가지를 무조건 확보해야 합니다.”

이창한 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 (사진=김태형 기자)
이창한 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우리나라가 AI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전략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특히 메모리반도체만큼 시장을 선점하지 못한 시스템반도체, 생성형 AI의 경우 틈새시장 공략만이 기회이며, 이를 위해선 국가가 직접 나서 기업들의 미국 진출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이 전 부회장은 엔비디아를 언급하며 “컴퓨터 메인보드에 다닥다닥 붙이던 그래픽처리장치(GPU)로 반도체칩을 구현하는 것으로 결국 틈새시장을 공략하지 않았나”며 “우리 기업들도 엔비디아의 전략을 적극 본받아야 한다”고 했다. 과거 엔비디아는 다수 기업들이 반도체 팹(생산공장)으로 시장점유율을 늘리던 당시 팹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 종합반도체업체(IDM) 위주로 확장하던 반도체 생태계 내에서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 또 시장에 내놓은 그래픽카드(GPU) 역시 3D그래픽 전용 칩셋을 선보이던 업계 동향과는 반대 방향의 설계였다.

그러나 팹리스(반도체 설계업체)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등 변화한 분업 구조와 AI 시대 개화로 엔비디아가 공략한 틈새시장이 결국 AI 시장 장악을 이룰 수 있게 됐다는 게 이 전 부회장의 분석이다.

그는 또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를 비롯해 우리 AI반도체 기업들이 틈새시장 공략에 성공하기 위해선 인재(사람)와 지식(기술) 확보에 집중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 전 부회장은 ‘피크 차이나론’(중국 경제성장 한계)을 빗대 ‘피크 코리아론’을 언급하면서 “반도체의 경우 기술 혁신에 의한 발전이 필요하다”며 국가의 전폭적인 지지가 전제돼야 가능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글로벌 메모리와 파운드리 사업 선점에 나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대한 지원 규모가 최소한 미국 정부의 인텔·마이크론 등 경쟁기업에 투자하는 정도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 부회장은 반도체 지원을 대기업 특혜로 치부하는 일부 야권의 시각에 대해선 “글로벌 비즈니스 생리 자체를 모르는 것”이라며 “국가가 기본적인 인프라 정도는 지원해야 기업이 연구개발(R&D), 인재 확보 등 창의적인 활동에 몰입할 수 있고, 그때야 비로소 기술 혁신이 가능해진다”고 했다. 이를 위해 막 개원한 제22대 국회를 향해 K칩스법 일몰 연장 등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전 부회장은 대통령 비서실을 비롯해 산업통상자원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특허청 등 정부부처를 두루 거친 산업기술 전문가다. 협회 부회장 시절 반도체지원법인 이른바 ‘K칩스법’을 추진할 때 업계 의견을 최전선에서 대변했다. 올해 총선에 앞서 개혁신당 1호 인재로 영입되며 정치 활동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 전 부회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6일 서울 서초동 키투웨이 집무실에서 오전 10시부터 약 한 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이창한 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 (사진=김태형 기자)
◇다음은 이 전 부회장과의 일문일답

-우리나라 팹리스·정보기술(IT) 기업들이 각각 AI반도체 개발과 생성형AI 개발 등을 통해 AI 사업을 적극 확대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선점이 가능할까.

△현재로선 쉽지 않다고 본다. 이미 미국 팹리스와 ICT업체들이 시장을 선점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팹리스 분야는 특히 미국 말고는 성공한 나라가 없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하는 팹리스는 태생적으로 장기 생존이 어렵다. 미국 팹리스의 경우를 보더라도 반도체를 대량 양산하더라도 수익성을 지속하는 게 어려워 결국 기업결합(M&A) 등을 바라보는 게 현실이다. 결국 틈새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대기업, 중견기업이 할 수 없는 니치마켓(틈새시장)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은 (팹리스들에)기회다. AI가속기 정도 양산해서는 역부족이며 빅테크들에 차별화한 AI반도체를 공급하는 것이 관건이다.

-우리나라 AI 기업에 필요한 조언은 무엇일까.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 등 AI 기업의 태생지인 미국 실리콘밸리 본토로 가야 한다. 틈새시장을 비롯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선 현지화가 필수다. 미국에서 사업하는 기업들이 많아져야 하고 우리나라가 아닌 미국을 전투기지로 삼고 경쟁을 본격화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이같은 환경을 만들어보기 위해 한국생성AI파운데이션(KGAF)을 출범시켰다. 미국 내 AI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 시키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산업인 만큼 기업 지원정책도 더욱 중요해졌다. 최근 정부는 26조원을 투입해 반도체산업을 지원한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보조금 지급이 빠졌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우리 산업지원 정책은 구조적 한계상 70점 이상 점수를 받기 어렵다. 세계무역기구(WTO) 규범 위반 소지를 피하기 위해 (정책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해석되지만 경쟁국 지원책과 비교가 된다. 특히 보조금의 경우 중국 정부가 3440억위안(약 64조원) 상당 반도체 투자기금 조성하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로선 일몰되는 세액공제 연장한 내용과 연구개발(R&D) 지원을 늘린다는 부분이 기업들에 제일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기업 입장에선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에 대한 부담을 여전히 느끼고 있다.

△아쉬운 것은 산업입지 정책이다. 기본적인 생산요소가 땅과 노동력인데 우리나라는 이 두 가지 확보를 하기 위한 환경이 미국·중국 등 경쟁국에 비해 열악하다. 지금 우리 기업들의 경우 생산량을 늘리고 글로벌 경쟁을 하려면 도로를 내고 물과 전력을 확보하는 것을 다 기업 스스로 해야 하는데 규제에서 막히는 게 현실이다. 토지 규제는 더 풀어도 부족하다. 착공 전 상당시간이 소요되는 토지보상 역시 국가가 주민들에게 충분히 보상하고 재산권을 존중한다면 문제 될 게 없다. 이 같은 일련의 과정을 대기업 특혜라는 야당 지적은 글로벌 비즈니스 생리 자체를 모르는 것이다. 국가가 기본적인 인프라 정도는 지원해야 기업이 R&D, 인재 확보 등 창의적인 활동에 몰입할 수 있고 비로소 그때 기술 혁신이 가능하다.

-최근 삼성전자가 HBM3E 12H 제품에 대한 엔비디아 품질 테스트 통과를 두고 고군분투 중이다. 메모리 후발주자였던 SK하이닉스, 마이크론과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위기론이 지속 언급되는 원인은 무엇인가.

△구조적으로 삼성전자가 HBM 기술력이 부족해서 엔비디아 품질 테스트를 쉽사리 통과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게 아니다. 경쟁사에 비해 HBM 기술력을 뒤늦게 주목 받았다고 보는 게 맞다. 지금 삼성전자는 HBM보다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는 게 더 시급한 과제다. HBM 1위를 차지한 SK하이닉스의 경우 메모리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HBM 상업화 시점에 맞춰 제품 출시가 가능했다. AI 시대에 늘어나는 시장 수요 역시 잘 맞아떨어졌다. 반면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뿐 아니라 파운드리, 시스템반도체 등 굵직한 비즈니스를 병행하고 있다. 반도체뿐 아니라 가전과 통신사업에도 주력하고 있어 이 모든 사업 영역에서 미래 지향적이고 발전적인 투자를 성공 시키기엔 버겁다고 볼 수 있다.

◇이창한 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은…

△서울대 기계공학 학사 △미국 컬럼비아대 경제학 석사 △경희대 경제학 박사 △특허청·통일부·산업통상자원부·국방부·대통령 비서실·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재직 △키투웨이 상임고문 △한국생성AI파운데이션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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