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반환점을 갓 돈 윤석열 정부가 과거 정권 말마다 반복됐던 ‘식물 정부’ 전철을 밟아가고 있다는 지적이 잦아지고 있다. 임기 말이 가까워질수록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떨어지고 공무원 사회에는 보신주의가 만연해 왔지만 윤 정부에서는 이런 현상이 유난히 더 빨리 나타났기 때문이다. 거대 야당에 입법 권력을 내준 윤 정부가 법안 발의, 처리 등에서 국회 벽을 넘지 못한 데다 대국민 소통도 실패하면서 고립을 자초하고 국정에 심각한 차질을 초래한 탓이다. 때문에 야심차게 닻을 올린 연금, 교육, 노동 등 각종 개혁 과제들도 사실상 표류하면서 구호만 남은 상태로 빠져들었다. 총체적 위기다.
식물 정부 조짐은 규제 개혁 등 핵심 정책이 올스톱하고 부처 간 엇박자 및 업무 기피 현상이 두드러진 게 대표적이다. 의료·연금 개혁 담당 공무원들의 경우 일부가 최근 내년 정기 인사에서 다른 보직을 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동해의 심해 석유·가스전 개발 프로젝트 담당 부서로 가게 될까 봐 걱정하는 공무원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모두 일은 많은데 정치적 논란에 휘말릴 소지가 큰 업무들이다. 이에 따라 상당수 프로젝트는 방향을 잃고 멈춰섰다는 지적이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식물 정부 현상은 더 심해질 전망이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바닥을 헤매는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대표의 25일 위증 교사 1심 재판 무죄 선고를 계기로 대정부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어서다. 국회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AI(인공지능)기본법과 반도체특별법 하나도 처리를 못한 상태지만 다수당인 민주당은 김건희 특검법 재표결과 윤 대통령 퇴진 압박 등 윤 정부 때리기에 총력을 쏟고 있다.
사정이 이런데도 국민의힘은 온라인 당원 게시판 댓글 문제로 집안싸움에 여념이 없다. 그제는 한동훈 대표와 김민전 최고위원이 설전을 벌이는 낯 뜨거운 장면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통령실과의 불화에 이은 내홍으로 풍비박산 직전이다. 민주당의 정치 공세로부터 윤 정부를 보호하고 국정 동력의 훼손을 막기는커녕 이제는 원팀 의식마저 팽개친 볼썽사나운 모양새다. 무기력한 정부와 위기불감증의 집권 여당이 되레 국민의 걱정거리가 되고 있다. 각성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