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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단은 선거제도 개편이다. 오는 4월 총선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서 미래통합당은 비례대표 전용 자매(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출범해 대응키로 했다. 지난 5일 미래한국당이 출범하자 민주당을 비롯한 범여권은 ‘꼼수·가짜·쓰레기 정당’ 등의 각종 비난을 쏟아냈다. 통합당이 범여권의 비난에도 미래한국당을 출범한 이유는 간단하다. 총선에서 지역구에 후보를 내는 다른 정당보다 비례대표 의석 수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현실적 이유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정당별 의석 수를 나눈 뒤 지역구 당선 의석 수를 뺀 의석 수에 50%의 연동률을 적용한다. 다만 연동형 캡(Cap)에 따라 최대 30석 내에서 1차(연동형)로 정당별 비례대표를 배분한다. 1차로 비례대표를 배분한 뒤 남은 17석은 정당별 득표율을 적용해 2차(병립형)로 나눈다.
미래한국당은 지역구에 후보를 내지 않는 만큼 비례대표 배분 때 통합당의 정당 득표율이 고스란히 반영될 수 있다. 현행 선거법상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으면 기호가 부여되지 않기 때문에 통합당 지지층 대부분은 혼동 없이 미래한국당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 비례후보 기호에서 통합당이 없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미래한국당이 통합당의 비례당이라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는 얘기다.
비례당 창당 시 범여권과 격전지 연대 흔들릴 수도
민주당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당장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최근 ‘민주당만 빼고’ 칼럼 고발과 대구·경북 봉쇄 논란 등 악재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총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통합당에게 제 1당의 자리를 내주게 되면 민주당이 여태까지 추진해왔던 검찰 개혁 등 각종 개혁과 정책들은 말짱 도루묵이 될 수 있다. 그간 민주당은 사실상 4+1협의체와 공조한 과반수 이상의 의석수라는 물리적인 힘으로 개혁 정책들을 밀어 붙어왔다. 또 문재인 정권 재창출은커녕 문 대통령이 탄핵 위기까지 몰릴 수 있다. 앞서 심재철 통합당 원내대표는 총선에 이기면 문 대통령의 탄핵을 추진했다고 강조했다.
‘절대 불가’라고 선을 그었던 민주당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창당을 막을 수 없다’며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고 있다. 이를 두고 사실상 민주당이 비난을 퍼부었던 비례당 창당으로 무게가 기운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원내대표와 사무총장 등 당내 실세들이 지난 27일 비밀회동을 갖고 비례당 창당을 논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는 점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참석자들은 다음 날 민주당 회의에서 ‘비례당 창당을 논의하지 않았다’고 부인했지만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도덕성 문제 등을 고려해 비례당 창당 대신 친문(親文)·친여(親與) 성향의 비례당들과 연대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했다. 여권 안팎에서는 친문·친여 성향의 인물이나 시민단체들의 비례당 창당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은 비례당 열린우리당(가칭) 창당을 선언했다. 손혜원 무소속 의원도 비례당 창당을 검토 중이다. 주권자전국회의 등 진보진영 시민단체들은 비례당 창당 뒤 민주당과 연대도 고려하고 있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민주당에게 비례당 창당은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며 “비례당 창당을 강행하게 되면 민생·정의당 등 범여권뿐 아니라 지지자들도 등을 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총선뿐 아니라 대선까지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지도부의 신중한 판단이 요구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