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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지난해 10월, 대검찰청 국정감사에 검찰의 수사가 ‘정치보복’ ‘야당탄압’이라고 반발하는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한 여당 의원은 이렇게 쏘아붙였습니다. 고성이 난무하는 혼돈의 도가니에서 홧김에 내놓은 말이겠지만, 지난 1년 검찰의 행보를 가장 잘 함축한 한마디로 꼽을만합니다.
윤석열 정권 출범 후 검찰은 다사다난한 한해를 보냈습니다.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수사권이 반토막 난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검찰수사권 완전박탈’ 법안까지 통과되면서 조직의 위상을 완전히 상실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검찰은 권력형비리의혹 수사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유력 대권 주자였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매주 법원에 드나드는 신세가 됐고,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외교·안보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기소됐습니다. 전 당대표인 송영길도 검찰 소환이 임박했고 현역 민주당 의원 10명 이상이 그 뒤를 따를 것으로 보입니다.
주어진 할 일 할 뿐인데…‘돌 던지는 자 누구인가’
검찰 출신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종종 같은 논리를 구사하며 검찰을 지원사격했습니다. 최근 ‘60억 코인’ 의혹에 휘말린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한동훈 검찰의 작품이다, 얄팍한 술수”라고 반발했고 이에 한 장관은 “누구도 코인을 사라고 한 적 없다”고 쏘아붙였습니다. 수사기관은 본업에 따라 제기된 의혹을 들여다볼 뿐이니, 이것이 불만이면 처음부터 책잡힐 행동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재명 당대표 집중수사를 비난하는 여론엔 “이 대표 범죄 혐의가 많은 게 검찰 탓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고, 추미애 전 장관의 ‘마약 정치 그만하고 여의도에서 정치하라’는 비판에는 “마약 잡겠다는데 정치가 왜 나오나”라고 응수했습니다. 날뛰는 마약범죄에 몽둥이를 든 건 당연한 것이니, 불필요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는 반박입니다.
‘유능한 수사’ 존재가치 증명했지만…‘공정한 수사’ 신뢰회복 당면과제
물론 이 원칙론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야권 쪽 비리만 파헤치는 듯한 불균형한 행보와 지지부진하게 느껴지는 김건희 여사 의혹 수사는 매번 검찰의 공정성을 의심케 합니다. 주어진 할 일을 할 뿐이라는 당연한 방어논리에도 씁쓸한 뒷맛이 남는 이유입니다.
여론 일각의 싸늘한 시선을 의식한 듯 최근 검찰 관계자는 “김 여사 출석 등을 포함해 수사방식에 제한을 두지 않을 것”이라며 “증거와 법리에 따라 결과를 도출하겠다, 지켜봐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어떤 결과를 내놓든 상당한 파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온 국민이 충분히 수긍하는 이유를 내놓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립니다.
윤석열 정권 출범 직후, 한바탕 물갈이 인사를 벌이고 쉴 틈 없이 달려온 검찰입니다. 지난 한 해는 거침없는 수사로 국민에게 ‘검찰이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설득했다면, 올 한해는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일한다’는 신뢰를 얻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