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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희룡 무소속 제주지사 당선자가 과반이상 득표했다. 선거기간 이뤄진 여론조사에서 단 한번도 보지 못한 50%대 수치다.
특히나 도의원 선거 31곳중 25개를 싹쓸이 한 민주당 표밭에서 거둔 의미있는 승리다.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국민들은 보수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 한국당은 대구·경북만 간신히 지켰고, 제주는 전국에서 유일한 무소속 당선자가 나왔다. 부산·울산·경남을 비롯한 나머지 14곳은 민주당 깃발이 꽂혔다.
연초에 만난 당시 원희룡 제주지사는 고민이 깊었다. 바른정당이 국민의당과 합당을 한참 추진할 때다. 핵분열적인 이합집산적 합당은 승산이 없다고 단언했다. 한국당은 아직까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고 신랄히 비판했다. 결과적으로 바른미래당을 탈당, 무소속 출마카드를 선택한 그의 도박은 성공했다. 뒤진 채 시작해 두 자릿수 격차 역전극을 펼쳤다. 원 캠프에서도 51.7%의 득표율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후문이다.
그는 지난 4월 10일 제주도청에서 가진 바른미래당 탈당 기자회견에서 “현재 특정정당에 매이지 않고, 당파적인 진영의 울타리도 뛰어넘겠다”며 “제주도민의 더 나은 삶과, 더 밝은 미래에 집중하며 민생정치에 매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상대인 민주당은 중앙당 차원에서 문대림 후보를 전폭 지원했지만, 인물경쟁력에서 뒤진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추미애 대표, 홍영표 원내대표 등이 제주를 찾아 “문재인 대통령의 핫라인”이라고 추켜 세웠지만 역부족이었다.
원 당선자의 이번 승리는 단순한 재선 성공 이상이다.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보수를 철저히 응징한 6.13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이 아닌 유일한 보수 출신 광역지자체장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제주가 낳은 천재 원 당선자가 제주지사로 오기까진 우여곡절이 많았다. 1964년 제주 서귀포에서 태어나 제주일고, 서울대 법대를 나온 그는 젊고 개혁적인 보수를 표방하며 1999년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2000년 양천갑에 출마해 16대부터 18대까지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당시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으로 불리며 젊은 소장파로 당내 주류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왔다. 2014년 당의 요구로 원희룡은 제주지사로, 남경필은 경기지사로 흩어졌다. 당내 주도권을 잡고 있던 친박계들이 출마하지 않으면 정치생명을 끝내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했다고 알려진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두고 바른정당으로 옮긴 남원정가운데 한국당으로 복당한 남경필은 재선에 실패했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원희룡은 높은 지지 속에 당선됐다. 결국 4년전 어쩔 수 없이 갔던 제주지사 출마 외길이 이제는 확실한 차기 대권가도로 돌아온 셈이다.
다만 그가 바른미래당에 남아있거나 한국당 소속이었다면 당선이 쉽지 않았다는 얘기가 많다. 제주는 17개 광역시도중 유일하게 녹색당 후보(3.5%)가 한국당 후보(3.3%)를 앞선 지역이다. 그만큼 적폐세력이 된 보수에 대한 반감이 크다는 의미다.
“이번 선거를 통해 제 삶과 정치의 과정을 뼈저리게 되돌아보고 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권력을 만드는 것도, 권력을 바꾸는 것도 도민이고, 권력을 통해 위대한 업적을 만드는 것도 도민들밖에 없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그가 밝힌 당선 소감에서 참패한 보수정당 출신 정치인의 고민이 읽힌다.
원 당선자는 “당분간 도정에 전념하며 제주도민을 받들겠다”고 선을 그었지만, 중앙정치로의 컴백은 시기의 문제다. 특히 이번 참패로 보수야권 정계개편이 부각되고, 2020년 총선이 다가올수록 각 당별 차기 대권주자 찾기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보수야당이 지리멸렬하다. 거기에 전념하지 못하지만 늘 고민하는 부분이고,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 당장 어떻게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지난 1월 이데일리 인터뷰)”
제주도민들 역시 제주 대망론을 꿈꾸고 있어 중앙무대에서 뛰는 보수 대권주자 원희룡을 보게 될 날이 그리 머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