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양승태(71) 전 대법원장 등 사법농단 핵심 연루자들이 재판에 넘겨지면 주요 증거인 전·현직 법관들의 진술조서에 동의할 지 관심이 모아진다. “후배 법관의 모함·거짓말”을 주장한 양 전 원장이 조서의 증거사용에 동의하지 않으면 법정에서 선·후배 법관들이 사법농단의 진위를 두고 다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설 연휴기간 동안 양 전 원장을 몇 차례 불러 조사한 뒤 구속만료 기간인 오는 12일 전까지 기소할 방침이다. 검찰은 양 전 원장과 함께 박병대(62)·고영한(64)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유해용(53)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등을 재판에 넘길 것으로 보인다.
증거 부동의시 후배들과 불편한 싸움 벌어야
양 전 원장은 기존 최정숙 변호사(52·사법연수원 23기)와 김병성(41·38기) 변호사에 더해 판사 출신인 이상원(50·23기) 변호사를 추가 선임해 재판준비에 일찌감치 나선 모습이다. 이와 관련, 양 전 원장이 혐의입증 증거로 제시된 후배 법관들의 진술조서를 받아들일 지 주목된다. 재판이 시작되면 피고인 측은 공판준비기일 또는 이후 공판기일에 혐의 인정 여부 및 증거사용 동의 여부에 대한 의사를 밝혀야 한다.
검찰은 양 전 원장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소송 등 다수의 재판개입과 법관 사찰 및 인사불이익 등에 직접 개입했다는 취지의 다수 법관들의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검찰 조사를 받은 전·현직 법관은 줄잡아 100명이 넘는다. 검찰은 특히 양 전 원장이 강제징용 소송의 결과를 사실상 뒤집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는 당시 대법원 주심 김용덕(62) 전 대법관의 진술도 갖고 있다.
양 전 원장이 검찰이 신청한 전·현직 법관 진술조서의 증거사용에 동의하면 이를 바탕으로 재판이 진행된다. 이 경우 사실관계에 대한 다툼을 피할 수 있어 비교적 빠른 진행이 가능할 수 있다. 만약 부동의하면 한바탕 법정공방이 불가피하다. 검찰이 신청한 참고인 진술조서는 피고인이 동의해야 법정에서 증거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진술자를 법정에 증인으로 불러내 검찰과 변호인이 신문한다.
법조계에선 양 전 원장이 진술조서에 전면 부동의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법관들의 검찰 진술 신빙성을 부인하는 게 쉽지 않은 데다 무엇보다 전직 대법원장으로서 법정에서 후배들과 사실관계를 다투며 서로 얼굴 붉히는 상황을 원하지 않은 거라는 이유에서다. 서울소재 법무법인의 한 변호사는 “양 전 원장이 증거부인을 이유로 후배들과 다투는 모습은 법원 내 그에 대한 우호적 여론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며 “직권남용죄 미성립 등 법리다툼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비슷한 이유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역시 전·현직 법관의 진술조서의 증거사용에 대체로 동의할 거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양승태 전초전’ 임종헌, 이규진과 다툴 예정
이 전 위원이 양 전 원장의 각종 지시를 꼼꼼히 기록한 ‘업무수첩’은 양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의 핵심 증거가 됐다. 이에 따라 양 전 원장 역시 이 전 위원을 법정에 불러 다툴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이명박(71) 전 대통령의 경우 지난해 5월 1심 재판이 시작되자 검찰 수사기록의 증거사용에 동의했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변호인단에 “대부분 증인들이 같이 일을 해왔던 사람들인데 그들이 검찰에서 그 같은 진술을 하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그 사람들을 법정에 불러와 거짓말을 한 것 아니냐는 추궁을 하는 건 대통령을 지낸 사람으로서 금도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1심에서 징역 15년에 벌금 130억원, 추징금 82억원을 선고받자 항소심에서 변론전략을 전면 수정했다. 이 전 대통령은 항소심에서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과 이학수 전 삼성전자 부회장,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 진술자 15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박근혜(66) 전 대통령의 경우 1심에서 검찰과 특검의 진술조서 등 증거 대부분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100명이 넘는 사람이 법정에 증인으로 나왔다.